천안함은 좌초입니다.
천안함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선박 전문가 신상철의 비망기
오동나무 아래서 역사를 기록하다.
권력을 사익 확대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오늘날 부패한 고위 관료들.. 김종익
도둑맞은 주권
18대 대선은 합법으로 위장한 부정선거였다. 김후용
진보적 글쓰기
우리의 글쓰기가 사회를 개선하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김갑수
진보를 복기하다
국회의원으로서 내놓았던, 내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정책을 열한 가지의 주제로 묶어 정리했다. 이정희
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
사건의 재구성과 57명의 증언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
분단체제 프레임 전쟁과 과학 논쟁 (한겨레 오철우 기자)
논  쟁   문재인정부   천안함   세월호   최순실   검찰개혁   국방개혁   정치개혁   일반   전체 
동상반대 -인간말종 박정희와 박종규 조폭일당!! 심층공개
  번호 55663  글쓴이 귀태100주년  조회 312  누리 10 (30,20, 1:5:4)  등록일 2017-11-14 10:57 대문 0

동상반대 -인간말종 박정희와 박종규 조폭일당!! 심층공개
귀태100주년 -귀타 탄생 100주년이라고 동상 세우겠다고 지랄들이네여!
심층공개

그런데 그의 별명이 피스톨 박인 이유가 단순히 총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총을 차고 다니면서 박정희의 눈에 거슬릴법한 인물은 국회의원이고 장관이고 도지사고 가리지 않고 권총을 겨누고 두들겨 패서이기도 하다. 박정희가 전라북도 현지 시찰을 갔을 때 이춘성 전북도지사가 박정희에게 불을 붙여주었는데 라이터가 고물이었는지 불이 높게 치솟아 박정희가 흠칫 놀라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 뿐이었다. 박정희가 다치지도 않았고 큰 소동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박종규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박정희가 안보는 틈을 타서 도지사를 골목으로 끌고 가서 감히 각하를 놀라게 한 죄(…)로 두들겨 팼다. 나중에 도지사가 박정희에게 정식으로 항의하였는데 박정희는 그 말을 듣고 "임자 나한테 한대 맞은 셈 치세."라고 해서 그냥 유야무야되었다고…

그런가 하면 박정희가 시찰 중에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는 무의식적으로 "야 박정희 오랜만이다!"라고 했고 박정희도 반갑다고 인사했는데 둘이 헤어지고 나서 박종규가 손을 써서 그 사람을 직장에서 내쫓아 버렸다.친구 잘못 둔 죄? 대통령이 니 친구야?! 친군데요... 나중에 그 사람이 박정희를 만날 일이 또 있었는데 박정희에게 니가 대통령이라지만 명색이 우리 둘이 친구 사인데 반말 한번 했다고 이럴 수가 있느냐라고 항의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고 박정희는 친구를 직장에 복직시킨 다음 박종규를 불러다가 일을 이따위로 할 수가 있느냐고 질책했지만[4] 고쳐지지 않았다.

손찌검말고도 여러 과잉충성의 나쁜 사례들을 만들어냈는데 대표적인 예로 박정희가 영남대학교 근처[5]를 지날 일이 있었는데 "여기선 대학이 안보이네"라고 한마디 하자 즉시 거대한 탑[6]을 세워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영남대가 보이게 했다고 한다(…).

박정희가 전라남도의 어느 섬에 세운 목조 주택을 보고 "내년에는 저기서 휴가를 보내면 되겠군"이라고 한마디 하자 정주영과 함께 그 목조 주택을 석조 주택으로 둔갑시킨 전력도 있어 다음해에 온 박정희가 노발대발하기도 했다.

김종필 증언록에 따르면 술에 만취하면 청와대 본관 앞에서 박정희 나오라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이튿날 가볍게 꾸짖었다고 한다.

생전에 경남대학교를 소유하였으며,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의 박재규 통일부 장관(現 경남대학교 총장)이 그의 동생이다.



☩괴물 박정희는 한명숙을 이렇게 고문했다
서중석글 펌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8405
서중석 : 당국의 발표 내용은 혹독한 고문으로 조작해낸 것이었다. 다른 여러 사건과 비슷한 점인데, 그것이 이들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예컨대 이우재는 "내가 정보부에서 25일간 조사를 받았는데 거의 15일을 고문 받았다"고 하면서 그때 어떻게 당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몽둥이로 때리고, 야전 침대 각목을 무릎 사이에 넣고 양쪽에서 밟으면서 '간첩도 이렇게 네 시간이면 다 얘기한다'고 하면서, 야전 침대봉이 부러지니까 또 가져다가 밟고, 그리고 담뱃불로 지지고", 담뱃불 얘기를 하면서 등을 가리켜 보였는데, "벽에 세워 놓고 주먹으로 가슴을 쳐서 숨을 못 쉬어 골병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가슴을 가리키면서 "지금도 가슴 여기는 건드리지 못한다"고 하고는 왼쪽 다리를 가리키며 "그리고 지금도 이쪽 다리를 짚으면 '찌릉찌릉' 저린다"고 말했다.

한명숙은 "그 기억을 다시 살리고 싶지 않다. 말하고 싶지 않지만 간단히 얘기하겠다"고 하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띄엄띄엄 얘기했다. "거기서 '공산당이면 죽인다. 너 공산당이지? 네 남편하고 어떻게 접선했느냐. 네 남편과의 편지가 암호가 아니냐. 암호 풀이를 해라. 이북에서 누가 내려왔느냐. 배후를 대라. 무슨 조직이 있느냐'"고 자신을 몰아붙였다고 말했다. 여기서 남편은 통혁당 사건으로 걸려든 박성준 교수를 가리킨다. 이 사람은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13년이나 복역했는데,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이 터졌을 때도 감옥에 있었다. 그런 남편하고 어떻게 접선했느냐고 몰아세운 것이다.

이어서 한명숙은 "따귀를 맞고 힘찬 구둣발로 몰아대며 야전 침대의 커다란 각목으로 온몸을 두들겨 맞았는데 난 도저히 살아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나중에 일어나보니 뼈 마디마디는 부어 있고 온몸에 피가 맺히고 멍이 들어 걷지도 못했다.
나중에 지하실로 옮길 때 수사관이 부축해 옮겼다. 나는 자살하고 싶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완전히 항복했다", 변호사 물음에 이렇게 답변했다.

정말 기가 막히다고 할까, 추악한 것은 정보 기관이 이렇게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해내는 정도에 머문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간사들이 성행위를 했다는 식으로 정말 추잡한 조작까지 서슴지 않고 했다는 점이다. 노동자, 농민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해 노동 운동, 농민 운동을 벌이도록 간사들이 헌신적으로 참교육을 한 것을 왜곡해 아주 타락한 행위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그런 짓까지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신의 참모습이라고 할까, 광태(狂態)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나쁜 짓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박정희 “일황을 위해 개같이 충성하겠심더!”
증거사진들
동족을 학살하고 일황에 충성을 맹세한 희대의 탕아 박정희뫼똥을 국립묘지에서 들어내 버려야 비로소 민족정기가 확립될 것이다.

박정희가 일황에 혈서로 “개나 말같은(견마지로)” 충성을 맹세!! 당시 신문보도와 민족문제연구소의 한글해설

일장기, 직경 10cm

박정희 국정화 트렁크에 민주주의 여인

박정희 일본도 군관복 사진과 토벌이다 설명

박정희 ‘죠센징 토벌’ 명령 떨어지면 ‘요오시(좋다)!’ 고함

장준하선생 테러, 박정희 타살... 박근혜 과거에 살지...

장준하 머리뼈 외부가격...

▲ 곽태영 박정희기념관 반대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4.19기념 화환을 짓밟고 있는 모습

박정희 궁정동 심수봉 신재순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우표? 10.26사건 기념우표랑 같이 만들자!!


딸박통(일명 댓통령)은 뭐가 왜곡 되었다고 발끈하니? 뭐 한X이 뭐 한다더니... 그꼴이다.

나라를 국수 휘말아먹듯 먹어버린 친일악질의 딸 박근혜
박정희 혈서기사가 조작이라구요? - 종북놀음과 박정희 혈서(2) | 역사전쟁 2012.12.05 17:07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

박정희 혈서기사 발굴의 일등공로자, 조갑제

▲ 일본국회도서관 소장 만주신문 마이크로 필름 ⓒ 민족문제연구소

▲ 일본국회도서관의 마이크로필름 판독기에 나온 만주신문의 혈서지원 기사 ⓒ 민족문제연구소

그들이 그렇게도 조작이라고 믿고 싶은 박정희 혈서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원본은 현재 일본 국회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일반인은 마이크로필름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출력도 가능하다(『滿洲新聞』 康德 六年(昭和 十四年) 三月 三十一日, 日本 國會圖書館 所藏 마이크로필름). 이조차 일본이 박정희를 음해하기 위해 조작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정신분석학적 처방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 혈서 발굴의 일등 공로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조갑제 씨다. 그는 자신의 저작인 『박정희』(1992, 까치)에서 박정희가 군관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혈서를 쓴 사실을 처음 언급하여 발굴추적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박정희 연구자들의 끈질긴 조사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증거자료는 찾을 수가 없었다. 민족문제연구소도 친일인명사전 집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2009년 10월에 가서야 가까스로 관련 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다. 증언만 있었을 뿐 확실한 증거가 발굴되지 않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지 못할 뻔했던 엄청난 내용들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우리들은 예나 지금이나 “마지막 순간에 순국선열들의 보살핌이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여기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당초 발굴한 혈서기사에 관한 보도자료를 따로 내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었다. 혈서 자체도 충격이거니와 ‘조국(일본)을 위해 일사봉공(一死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하겠다’는 등 편지 내용이 워낙 엽기적이라 톱뉴스가 되고도 넘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정치쟁점화를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연구소가 방침을 바꿔 자료 공개를 결정하게 된 데는 박 전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의 도발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2009년 10월 28일 일차적으로 게재금지가처분신청을 낸 뒤, 11월 8일로 예정되어 있던 발간보고회 직전인 11월 4일 기습적으로 법원에 배포금지를 추가 신청했다. 사실상 친일인명사전을 금서로 만들려는 악의적인 시도였다. 거기에다 박정희 지지자들의 위협도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연구소는 결정적인 증거자료 공개만이 유일한 대응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11월 5일 즉각 보도자료를 배포하게 된 것이다.

박정희가 일본군으로 복무한 적이 없다고요?

이밖에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이지 일본군으로 복무한 적이 없다는 주장도 친일인명사전이 허위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모함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해서도 연구소는 확고한 반증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둔다.(『舊時陸軍軍人(軍屬)屆』, 昭和 二十年 三月 一日.)

▲ 박정희가 일본군 예비역 소위임을 입증하는 공문서 ⓒ 민족문제연구소

만주국은 일제의 괴뢰국이며 만주군은 일본 관동군의 통제를 받았고 일본군 현역 장교가 직접 지휘하는 경우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졸업한 엄연한 일본군 예비역 소위이며, 관동군에서 복무한 시기도 있었다.

또 박정희가 대적한 팔로군은 중공군이므로 공비토벌이지 항일세력 탄압이 아니라는 유치한 발상도 연구소를 공격하는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팔로군도 항일부대이며 중국 소련에 대한 적대행위는 당시로서는 연합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상식 수준의 이해도 하지 못하는 억설이라 치부하겠다. 특히 다수의 조선 청년들이 항일을 위해 팔로군에 복무하고 있었던 사정을 감안하면 이런 궤변은 더더욱 삼가야 마땅하다.

중위를 단순하게 하급장교 정도로 간주하는 ‘대범함’도 당시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치게 관대한 시각이다. 당시의 위관급 장교는 지금과 달리 군이 절대적 우위에 있던 파시즘 국가의 고등관으로서 군수나 경찰서장도 쩔쩔맬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출세욕에 불탄 박정희가 연령 제한에 걸리고도 혈서까지 써가며 거듭 군관을 지원했던 이유의 하나이다. 참고로 일제 35년간을 통틀어 자발적으로 일본제국의 장교된 자는 일본육사와 만주군관학교 출신을 포함 17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식민지 출신으로서는 드물게 간택받은 존재들이었던 셈이다.

무엇보다도 대일선전포고를 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박정희는 바로 적국의 장교다. 비록 착수 전에 해방이 되긴 했지만 만약 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이 개시되었다면, 박정희는 그토록 꺼려했던 장준하처럼 사선을 넘어 광복군에 입대한 상당수의 일본군 출신 애국자들과 전장에서 만나는 운명이 되었을지도 알 수 없다.

박정희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대우와 존경을 받고 안정적인 직업이었던 교직을 버리고 군관의 길을 선택하였다. 강요에 의한 입대도 아니었으며 생계나 생존이 위협받는 불가피한 상황도 아니었다. 목적이 출세였든 영웅심의 발로였든 간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부일협력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실과 정황이 이를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논쟁에도 규칙이 있고 예의가 있다.


▲ 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은 각 분야 교수 학자 180여명이 참여하여 3,000여종에 이르는 방대한 증거자료에 의거 객관적으로 집필한, 한국근현대 최대최고의 인물사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역사적 학문적 성과물이다 ⓒ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의 구성원과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이들을 빨갱이로 모는 야비한 공격은 일찍부터 있어왔다. 자신들의 견해와 다르면 4대강 반대도 파업도 무상급식도 모두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고삐 풀린 극우세력의 방약무인함을 보면서 동시에 냉전의 끝자락을 붙잡고 유지해 온 그들의 기득권도 이제 소멸의 때가 왔음을 예감하게 된다. 도대체 합리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집단들이기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은 각 분야 교수 학자 180여명이 참여하여 3,000여종에 이르는 방대한 증거자료에 의거 객관적으로 집필한, 한국근현대 최대최고의 인물사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역사적 학문적 성과물이다. 지난 4월 13일 만주국 사무관을 지낸 박정희의 동서 홍순일의 후손이 제기한 서적복제배포금지소송이 대법원에서 기각됨으로써 3년간에 걸친 기나긴 소송도 끝이 났다. 사법부는 박정희를 포함한 5건의 관련 소송에서 모두 연구소 승소로 판결했다. 일관되게 친일인명사전의 공공성 객관성 엄밀성을 인정한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은 민족 내부의 자성이 담긴 과거사에 대한 최소한의 학문적 정화과정의 결과물이다. 왜 친일인명사전을 정치의 이름으로 오염시키려 하는가.

민족문제연구소는 1991년 발족 때부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목적사업으로 추진해 왔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정계에 입문하기도 전이었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20여 년간 시쳇말로 영양가 없는 작업을 해왔다는 언설이 가당하기나 한가. 도대체 무슨 정치적 목적이 있단 말인가. 이는 친일인명사전 편찬과정에서 나타난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와 관계자들의 헌신을 모독하는 횡포일 뿐이다.

이미 객관적인 증거도 제시되었고 최종 판결까지 내려졌다. 논쟁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고 예의가 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내세울 것이 있으면 내세우자. 역사 앞에 성역은 없고 인물에 대한 비판에 금기가 있을 수 없다. 언제까지 박정희신화에 얽매여 그를 맹목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삼을 셈인가. 박정희를 극복하고 나아가지 못하는 한 한국사회에 미래는 없다. 장담하거니와 보수세력 그대들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주신문 기사 번역문

▲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7면 전문 ⓒ 민족문제연구소

만주신문 기사 번역문

혈서(血書) 군관지원 -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피로 쓴 반지(半紙)가 봉입(封入)된 등기로 송부되어 관계자(係員)를 깊이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아무쪼록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만주신문』 1939.3.31. 7면)



해방후 악질 친일목사들이 교권을 쥐고 흔들어 오늘날 세상과 뜻있는 기독교언론으로부터도 “개독교”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 핵심 최고지도자들이 “불륜6걸”로 꼽히게 된 것이다.


박근혜 호떡 먹는 모습.



비명을 지르는 여자는 때려 쓰러뜨린 후


3.1절 기념●한국교회 친일목사 명단 발표●
사진■첨부

◆강조점들을 컬러처리하여 기억하기에 좋게 만들었사오니 저장해 두시어 여기저기 게시판들에 푸기 등 많은 이용바랍니다.

여러분! 오늘이 광복 55주입니다. 해방은 되었으나 해방되지 못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친일파들이 가장 강력하고 철저하게 해먹은 데가 기독교계입니다.

정계는 대통령이 명색이 독립투사였고, 국회의장 신익희도 임정요인이었습니다. 심지어 공군사관학교에서도 초대총장 김정열이 친일파라고 근래에 사관생도들이 반대하여 동상을 세우는 게 저지되었고 사관학교의 일부 교수들이 부추기기까지 하였답니다.

불교계는 이승만 대통령의 1952 등 2차에 걸친 불교유시까지 겹쳐 해방후 불과 200명 남은 비구승들이 7천명이나 되는 대처승들을 장장 17년간의 정화운동 끝에 1969년 마침내 왜색승인 대처승들을 절에서 쫓아내고 대처종단인 태고종단(현재는 여기도 40%는 비구승)을 만들어 나가게 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기독교계는 위에 비교하여 일제에 아부하고 신사참배에 항거하는 성도들을 일경에 밀고하여 죽도록 고문 당하게 만든 친일목사들이 지금까지도 살아 숨쉬며 교계의 최고 원로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신사참배에 반대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대부분 순교하고(50명) 나온 20여명의 목사, 전도사들을 장로교 총회에서 축출하고 그들의 예배당까지 탈취해 버렸습니다.

알아서 긴 감리교, 성결교는 모조리 썩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카토릭은 그나마 최근 추기경이 사과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들의 똘마니들인 다수의 사이비 교회사가들이 교회사 왜곡에 광분하고 있고, 신학교에서는 교수들이 밥그릇싸움이나 하며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과거에 눈감으면 현재에도 봉사가 됩니다. 내일은 오늘의 미래입니다. 오늘 바로 잡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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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2:28-30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철저히 파헤친 한국교회사 그 실상과 허상 II
바로 알고 바로 믿자


* 아래 책의 저자는 학살자들을 축복한 한경직 목사를 반란방조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한 이선교 목사님. 맨뒤에 소개가 나옴. 사진과 만화 등은 모두 다른데서 검색해서 찾아 넣음.


<<다시 써야할 한국 기독교사>>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여성들은 일찍 결혼하여 아이를 안고 오면 얘기를 잡아 떼어 놓고 억지로 끌고갔다. 비명을 지르는 여자는 때려 쓰러뜨린 후 끌고 갔다. 그는 10-20만 정도가 정신대로 끌려갔고 이중 5천명 정도가 조국으로 가지 않고 일본에 있으면서 이름을 바꾸어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1942년 12월 김활란은 <신시대>에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라는 글을 썼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반도여성은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
라고 하면서 전시 동원에 적극 협력하라고 외쳤다.

1941년 12월 모윤숙은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직후 조선임전 보국단이라는 친일 어용단체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
우리들 여성의 머리 속에 대화혼이 없고 보면
이 위대한 승리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
이라고 권장하였다. 이런 여성에게 전두환 정부는 3·1문화상을 수상했고, 1990년 그녀가 죽은 후 노태우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으니 국민정신이 제대로 되겠는가?

김동환, 노천명, 김동인, 주요한, 김상용, 서정주, 장덕조, 김소운 등은 일본을 대대적으로 찬양하였다.

1941년 12월 20일 반도호텔에서 미·영타도 좌담회가 박희도 목사의 사회로 15명이 참석하여 7시간 동안 개최되었다. 다음은 목사들의 주장을 요약하였다.

1. 백락준(조선야소교서회 편집총무)

황금만능주의 밑에서 운전되는 것이 미국입니다. 선전만 잘하면 전국적으로도 지위를 얻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침략의 마수를 뻗어왔던 것입니다. 이 형세를 그대로 방임해 두면 동아공영권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을 보기보다 명백한 것입니다.
영원히 광만 뻗도록
그동안 날과 달을 거듭할 수록 더욱 감개 깊이 생각되는 것은 이 싸움이 가진 도의적인 성격과 위대한 이상이다. 이렇게 숭고하고 위대하고 엄숙한 한낱의 전쟁을 가진적이 없었다.
(1943년 12월 5일자 매일신보에 기고)

그는 해방 후 문교부 장관과 연세대 총장까지 하였다.


2. 전필순 목사(조선장로교회 부총무)

미국은 동양이나 우리 일본에 대해서 온갖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괴롭힘으로써 일종의 쾌감을 느끼고 우월감을 갖고 싶어하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그는 후에 장로교 통합측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3. 정춘수 목사(조선감리교 총감독)
-생략-

7. 양주삼 목사(조선성서회 행정총무 감리교 목사)
-생략-

8. 윤치영(중앙 기독교 청년회 부총무)
-생략-

9. 윤일선 목사(세브란스의전 교수)
-생략-

11. 최태용 목사(복음교회 감독)
조선을 일본에 넘긴 것은 신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을 섬기듯이 일본국가를 섬겨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채필근은 “국민 정신 총동원이 필요한 이때 종교인들도 국가에 충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이단이라고 말하는 자야말로 도리어 이단이다”라고 단정하였다. 친일파인 그들은 신사참배를 반대한 분들에게 “유다 같은 사람이다”라고 매도하였다.

분단이 외세에 의한 것이라고 미국과 소련을 규탄할 수 있는가! 친일파들은 독립을 위해서 무엇을 하였는가. 감히 기독교는 얼굴조차 들 수 없는 형편이 아닌가. 진실로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이대로는 절대 안된다.

웨슬레는 “우리는 사람의 잘못된 행실을 징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얼마동안은 그를 참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그가 잘못을 회개하지 않으면 그를 우리 가운데 계속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네 형제가 범죄하거든 권고하고 듣지 않거든 증인을 세워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였다(마태 18:17).

친일파 그들은 반드시 처벌받아 강단과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해방과 함께 기독교는 범 회개운동이 있어야 했는데 우리는 회개운동을 하지 못하였다. 이유는 강력한 세력을 갖고 있는 친일파들 때문이며 그들은 반성은 커녕 변명으로 일관하여 분열과 분단을 추래하였다. 그들은 이승만 대통령 독재자의 앞잡이가 되어 기독교와 한국정신을 부패하게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너무 쉽게 용서해주고 잊어버리고 있다.

현재 기독교 목사들의 사고방식은 거의가 어용 사상이 지배적으로 어용목사가 훌륭한 목사요 국가를 사랑하는 목사로 인식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로 우리는 혼돈가운데 있다. 그들은 국민들에게 비겁한 마음과 자기를 위한 어용기회주의 사상을 전염시켜 사회 어느 한 곳 부패하지 않은 곳이 없게 하여 마귀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였다. 그들은 우리사회의 암적존재이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이토록 반성하지 않는 자들을 용서해 주고 덮어 주고 변호하고 찬양하는 것이 기독교 사랑인 것처럼 기독교 사상을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성 회복과 정의가 실현되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어용사상이 사라지지 않는한 이땅에 도덕성 회복은 요원하다.

한경직 목사는 1992년 6월 18일 여의도 63빌딩에서 뎀 풀턴상 수상 축하식 인사말에서 “먼저 나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했습니다”라고 47년만에 회개를 하였으나 그는 회개할 일이 너무 많은 목사이다.

기독교의 분열
1945년 8월 17일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평양 감옥에 있던 많은 교역자들이 출옥하여 집에도 가지 않고 평양시내 산정현교회에 모여 2개월간 있으면서 한국교회 재건에 관한 5가지를 1945년 9월 20일에 발표하였다. 출옥한 이기선 목사는 5가지 원칙을 지지하는 산정현교회를 중심으로 30여교회를 합쳐 1949년 5월 독노회를 조직하였다.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되었다가 출옥한 분은 다음과 같다.

(출옥성도들, 유명한 사진인데 구하기 힘든 고화질 저장바람)
이기선 목사, 고흥봉 목사, 채정민 목사, 한상동 목사(1901-1976), 주남선 목사, 오윤선 장로, 김인희 전도사, 김화준 전도사, 서정환 전도사, 조수옥 전도사(2001년 현재 생존), 이현숙 전도사, 최덕지 전도사, 손명복 전도사, 이주원 전도사, 방계성 장로, 박신근 집사, 장두희 집사, 양대록 집사, 이광록 집사, 김형락 선생.


1945년 11월 14일 평북노회 주최로 선천 월곡동교회에서 평북노회 교역자 퇴수회가 있었다. 강사는 이기선 목사와 박형룡 박사였고 참석한 교역자는 200여명이었다. 여기서 박형룡 박사는 한국교회 재건운동의 5원칙을 발표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박형룡 박사(1897-1978, 프린스턴, 평신교수, 고신교장, 총신교수)
1. 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두 신사참배를 했으니 권징의 길을 취하여 통회 자복한 뒤 교역에 나설 것.
2. 권징은 자책이나 자숙으로 하되 최소한 2개월간 통회 자복할 것.
3. 목사나 장로가 휴직중에는 집사나 평신도가 예배를 주관할 것.
4. 교회 재건의 기본 원칙을 전국에 전달하여 일제히 시행할 것.
5.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도 복구 재건 할 것.

이상의 5가지 원칙에 신사참배 결의시 총회장이었던 홍택기 목사등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홍택기 목사는 “옥중에서 고생한 사람이나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고생한 사람이나 그 고생은 마찬가지였고 교회를 버리고 해외로 도피생활을 했거나 혹은 은퇴생활을 한 사람의 수고보다는 교회를 등에 지고 일제의 강제에 할 수 없이 굴복한 사람의 노고가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괴변을 토하였다.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책벌은 하나님과의 직접관계에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다.”라고 하면서 반대하여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산정현교회 정일선 목사, 남산현교회 송정훈 목사, 김철훈 목사 등은 “어떻게 목사가 자기만 살기 위해서 교회를 버리고 남으로 탈출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면서 탈출을 반대하다 북한에서 순교당하고 말았다.

조만식 장로는 “이 가엾은 백성을 남겨두고 나만 살겠다고 월남할 수는 없다. 나는 살아도 북한 동포들과 같이 살고 죽어도 북한 동포들과 같이 죽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월남 권유를 거절하였다.

1946년 김일성 비서인 강량욱 목사의 권유로 기독교도연맹을 조직하였다. 또한 김익두 목사가 회장이 되자 북한의 교역자가 거의 이 연맹에 가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감리교 부흥파의 목표는 일제의 잔재와 부역 교역자들의 완전퇴진을 주장했고, 재건파측은 죄가 많고 적음을 논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죄를 통회하는 신앙부흥을 통하여 교회를 재건하고자 하였다.

1947년 1월 11일 연합회의에서 감독을 의장으로 고치고 강태희 목사가 의장이 되었다. 총회는 친일파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친일반역자들이 감리사로 출세하게 되었다. 1947년 2월 3일 홍현설, 변홍규 등 40여 명 목사와 문창모, 박현숙 등 평신도 56명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내용은 “교권을 잡은 재건파가 교회 장정을 유린하고 불법적 방법으로 연합을 가로막고 친일파를 두호하고 있다. 특히 친일교역자 19명은 감리교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고발하였다. 고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성서모독죄: 구약성서와 요한계시록을 배척하였고 복음서를 제외한 신약성경을 거부하려 하였고 김진철 학생이 신학교에서 구약성서를 읽었다고 출교시켰다.
2) 신사참배찬양죄: 모든 교회와 신자들의 가정에 가미나다를 설치케하고 상동교회를 신사로 만들고 교역자들을 미소기바라에 참여케하였다.

3) 재산매매비리죄: 감리교 37개의 교회건물과 31개의 목사관을 매각처분하였고 공주 영명학교 농지 18,360평과 은퇴교역자를 위한 땅도 매각처분한 돈 40만원 중 절반은 일본군을 위하여 비행기 헌납금으로 하였고 나머지는 총리원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 수 없다. 특히 은퇴교역자 농지매각은 1945년 9월에 하였다. 사용처를 밝혀라.
4) 배신교역자: 친미적인 교역자 40여명을 해직 강등 자격취소를 하였고 그리고 일본 정부당국과 야합하여 그들을 투옥, 고문하게 하였다.

1954년 3월 16일 서울 정동교회에서 다시 분열되었다가 1958년 8월 다시 재통합이 되었다.

성결교회는 1945년 11월 9일-10일 서울에서 재건총회를 개최하였다. 교단명칭도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라고 변경하였다.

이때 총회장에 박현명 목사가 추대되었고, 신학교도 개교가 되어 이건 목사가 교장이 되었다. 박현명 목사는 해산성명서에 서명한 분이요, 이건 목사는 징병제를 찬양한 분이었으나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거나 항의하거나 친일파를 규탄하는 일이 없어 교단이 분열되지 않았다.

1945년 9월 18일 출옥성도가 많은 경남노회는 서둘러서 경남 재건노회를 조직하고 신사참배교역자들에게

1) 목사 전도사 등은 일제히 자숙한 후 일반 교회를 시작할 것.
2) 자숙기간이 종료되면 교회는 교직자에 대한 시무투표를 실행하여 그 진퇴를 결정할 것.

1946년 7월 9일 제47회 정기노회에서 임원진의 총사퇴를 요구하고 출옥성도 주남선 목사가 회장이 되었다.

이에 친일파 목사들은 “신사참배는 이미 우리 양심으로 해결할 것이며 지금 해방이 되었다 해서 죄로 운운함은 비 양심적이다.”라고 하면서 오히려 출옥성도를 비양심적이라고 매도하면서 교묘히 자숙안을 삭제하고 피하였다. 그로 인해 1946년 12월 3일 진주에서 열린 제48회 노회에서는 신사참배가 죄냐 아니냐를 가지고 웃지 못할 논쟁이 시작되었다. 신사참배자들의 뻔뻔스런 태도에 한심할 지경이었다.
한상동 목사(1901-1976, 고려파 총수)
1946년 4월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담임하고 있던 한상동 목사는 공산주의자들의 위협과 친일목사들과의 갈등으로 견디지 못하고 월남하여 주남선, 박윤선 박사와 만나 고려신학교를 세울 것을 협의하였다.
박윤선 교수(1905-1988, 평북 철산, 고신교장, 총신교장, 합신교장)
1946년 6월부터 8월까지 진해에서 하기 신학강좌를 개최하였는데 이것이 힘이 되어 1946년 9월 2일 고려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1947년 제48회 경남노회에서는 고려신학교 인정을 취소하고, 학생추천 취소 결의를 하였다. 그 이유는 극단 보수주의 선교사를 영입했다는 것이다.

이에 1946년 12월 3일 한상동 목사는 “불순한 태도를 고침이 없이 그대로 나아가는 경남노회가 바로 설 때까지 탈퇴한다”라고 선언하고 신사참배 교역자들과 결별하였다. 경남노회 67개 교회도 제48회 노회 결의에 항거하고 한상동 목사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박형룡 박사가 교장에 취임하였다.

경남노회는 이를 수습하기 위하여 1947년 3월 10일 임시노회를 소집하고 노회장 김길창 목사와 임원 전원이 사임하고 신사참배에 대해 통회하고 출옥 성도들의 마음을 상치 않게 하여 수습하였다. 한상동 목사도 제49회 경남노회에서 탈퇴를 철회하였다.
메이천(웨스트민스터신학교 설립자, 프린스턴의 자유화로)
그러나 1948년 4월 고려신학교 교장 박형룡 박사는 메첸파 선교사와 신앙노선 갈등으로 고려신학교 교장직을 사임하였다. 이 기회를 틈타 신사참배 교역자들은 1948년 7월 “고려신학교와 소위 신성파에 대하여”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한상동 목사에 대하여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하였다.

1948년 9월 21일 경남노회 49회 임시노회에서 44대 21로 고려신학교 설립 인정을 취소하였다. 이렇게 되어 경남노회는 출옥 성도 지지파와 적극반대파 중간파로 갈리어졌다. 1948년 5월 총회에서 정치부장 김관식 목사는 “고려신학교는 우리 총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고 하였다.

김재준 목사는 축자 영감설을 부인하였다. 이에 보수진영에서는 성경 오류설에 대한 해명과 취소와 사과를 요구하였다. 이일로 총회는 수라장이 되어 기마경찰대가 동원되어 총회는 해산되었다. 6.25 두 달 전 일이다.

1947년 4월 대구에서 제33회 총회시 51명의 연서로 김재준 교수의 강의 내용에 대한 진정서가 제출되었다. 새벽예배 시간에 학생끼리도 서로 싸움하여 수라장이 되었고 특히 정규오, 이노수, 손치호, 이성권, 이치복, 손두환 학생들이 김재준 교수의 강의를 해명하라고 요구하고 나왔다. 진정서 내용은

1) “신앙은 보수적이나 신학은 자유다”라는 학교 이념을 이해할 수 없다.
2) 근대주의와 고등비평 성서해석법 도입
3) 김재준 교수의 문서설과 성서 권위부정, 정통교회 공박, 성경에서 삼위일체 교리 찾을 수 없다. 칼빈 예정론은 숙명론이다.

4) 송창근 교수의 공관복음 금과 돌 설명
5) 정대위 교수의 속죄론이 이해할 수 없다. 등의 내용이다.

1950년 4월 21일 제36회 총회가 대구 제일교회에서 개최되었을 때 조선신학교측은 장로회 신학교측의 대의원을 총대로 인정하지 않자 서로가 인정하지 않아 조선신학교측이 강단에 올라가 총회장을 끌어내리고 기물을 파괴하는 대 소동이 벌어져 기마경찰이 출동되어 총회는 해산되었고 특별위원의 수습방안에 따라 정회하고 회의는 9월로 연기되었으나 6.25의 난리로 9월에도 속회되지 못하였다.

1951년 5월 25일 부산중앙교회에서 제36회 총회가 속회되어 총회 직영 새 신학교를 대구서 개교하기로 하였다. 이때 총회 서기는 유호준 목사였다.

1952년 4월 29일 대구 서문교회에서 37회 총회때 김재준 목사는 교수의 면직, 목사직 박탈, 조선신학교 졸업생 교역자 불채용으로 처벌하자 1953년 4월 25일 대구 서문교회에서 제38회 총회시 한국 기독교장로회로 되었다.

1951년 5월 24일 남북이 치열한 전쟁중에 있을 때 기독교 대표들은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할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하지 않고 장로교 36회 총회가 부산 중앙교회에서 개회되어 총회에서는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되어 신앙을 지켜온 고려파를 정죄하고 출옥성도가 제외된 가운데 경남노회가 조직되었다.

1952년 4월 29일 제37회 총회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고신측이 되었다.



★충격진상★(사진첨부)
철저폭로

길닦아 놓으니 문둥이가 먼저...
사기꾼 목사들-한국교회 지도부

글쓴이 : 김보강 (guest) , 글쓴시각 : 1998년 11월20일 08:46:18

한국이 망해 자빠진 이유를 이제서야 바로 알았습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그 스스로 버려져 밟히울 뿐 아니라 다른 음식도 썩게 만든다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니느웨 백성들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한경직씨는 전두환을 “여호수아같은 지도자가 되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대며?

1961년 6월 정일권, 김활란, 최두선, 한경직 등 민간 사절단이 미국에 건너가 5.16군사혁명을 설명하고 있다.




철저히 파헤친 한국교회사-실상과 허상 III
바로 알고 바로 믿자




1948년 조선신학교에서 정통을 자랑하던 51명의 학생과 그외 10여명으로 복음동지회를 구성하여 김재준 교수를 몰아내고 1952년 7월 N.A.E.(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를 조직하고 12월에 이 단체에 가입하였다. 이 운동의 고문이 바로 박형룡박사이다. 이들은 단순한 신앙운동이 아니라 43회 총회 때는 총회 임원이 이들의 일색이었다. 이들은 박형룡 박사의 3,000만환 사건이 터지자 박형룡 교장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 하였다.

1959년 9월 24일 대한 예수교장로회 제44회 총회가 대전 중앙교회에서 개회되었다.
다음날 이환수 목사가 경기노회 총대 선출 내용을 가지고 계속 되풀이 발언을 하자 박희몽, 김자경 장로 등이 “독사의 자식들아 에큐메니칼은 용공단체요 신신학이다”라는 폭언과 함께 회의를 방해하였다. 경기노회는 총대를 다시 선출하여 보고하도록 하고 노진현 목사는 정회를 선포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대전중앙교회 교인들이 회의장에 나타나 교회의자를 뒤엎으면서 회원 목사들(통합측)을 고무신짝으로 두들겨 패나 목사들은 얻어 맞으면서도 이리저리 피하며 150여 명의 회원이 남아 회의장을 떠나려 하지 않자 대전중앙교회 목사요 부총회장인 양화석 목사가 나타나 “더이상 장소를 제공할 수 없으니 회원들은 나가달라”고 하며 강제 추방시켰다. 4.19와 5.16 얼마전 일로서 한심한 일이었다.

대전중앙교회에서 쫒겨난 149명 총대들은 1959년 9월 28일 오후 1시 대전 미락식당에 모여 전필순 목사를 회장, 김광현 목사를 서기로 선정하고 총회 속개 준비를 구성하고 29일 오전 10시 서울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개최하여 통합측이 되었다.

합동측은 1962년 11월 19일 박병훈 목사가 주도하는 호헌파로 분열되었고 다시 김치선 목사가 주도하는 성경장로회로 분열하였고 다시 1963년 9월 17일, 고신측과 합동하였다가, 분열하였다.

다시 대한 예수교장로교 합동측은 개혁파, 개혁2파, 개혁3파, 개혁보수, 개혁정통, 근본1, 근본2, 독노회1, 독노회2, 로고스공의회, 보수, 보수개혁, 보수재건, 보수측, 법통, 보수합동, 사당동측, 보수합동, 홍은동측, 성합, 성합측, 순장, 연합측, 장신, 재건, 정립, 정통, 종합, 중립, 중앙, 합동개혁, 합동보수1, 합동보수, 합동장신, 합동정통, 합동중앙, 합동총신, 합동총연, 합동총회, 합동환원, 혁신, 협동, 호헌1, 호헌2, 호헌3, 합동총회측 등 헤아릴 수가 없다.

사도바울은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하였다(고린도 전서 3:3-4). 여기 성서대로 한다면 그들은 목사는 그만두고 사람도 아니다.

감리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예수교대한감리회, 예수교대한감리회 등이며 성결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등이다.

1945년 9월 윤하영과 한경직등은 신의주에서 기독교 사회민주당을 조직하였다.

이재복 목사는 14연대 반란사건에 깊숙이 관여하였고 이재복 목사는 남로당 군사부 조직책이었으며 박정희는 육군안의 조직책이었다.

쌍룡그룹 전회장 김성곤씨는 경북인민위원회 재정부장으로 대구폭동에 가담하였고
공화당 당의장 서리 백남억씨는 부산철도노조 파업지도자로서 대구폭동에 가담하여 대한민국에서는 출세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일본을 찬양했던 친일파 목사들은 일본이 망하여 해방되었으면 자숙하고 근신해야 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회개는 커녕 교권을 유지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1950년 6월 27일 종로1가 기독교서회 2층에서 교역자들 약 40여 명이 모였다.

장로교: 한경직, 김종대, 김린서, 강원용
감리교: 김유순, 박만춘
성결교: 김유연

이때 1946년 교회를 버리고 월남한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는 “...이북에서 양들을 버리고 월남했으니 이제는 참회하는 의미에서도 우리는 양을 지키고 또한 수도를 지킬 순교적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한경직 목사의 말에 교역자들은 서울사수를 결의하였고 그 후 제일 먼저 도망친 분은 한경직 목사였다. 입으로야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기독교민주동맹 위원장 김창준 목사는 교단별로 환영대회 대표를 선정하였다.

고문: 신흥우 목사
총무: 박성산 목사
장로교: 유호준, 김종대
, 최문식
감리교: 박만춘, 심명섭, 최택
성결교: 1명
구세군: 황종률

이상의 대표들은 처음에는 인민군 환영대회를 거부하였으나 서울시 종교를 담당하고 있는 경동교회 신자인 김욱이 강력히 권고하여 환영대회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1950년 7월 10일 종로2가 YMCA강당에서 환영대회를 가졌다.

사회: 유호준 목사
환영사: 김종대 목사

사회를 보기로 결정한 유호준 목사가 신병으로 불참하고 대신 다른 사람이 사회를 보았으며 설교 김종대 환영문 낭독은 임영빈 목사가 하였다 내용은 “김일성 장군!...”

심명섭은 일본 식민지 때는 일본의 앞잡이었다가 인민군이 서울에 입성하자 공산당 앞잡이 노릇을 하였다.

1950년 10월 25일 장로교 한경직 목사, 선교사 아담스 목사, 권세열, 윤하영, 친일파 전필순 목사 등이 평양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오후 2시 서문밖교회에서 3,000여 명의 신도들이 모여 위의 교역자와 함께 감격의 예배를 드렸다. 한경직 목사가 사회를 보았고 황은균 목사가 설교를 하였다.

1950년 11월 말경 평양시내 교회는 연합으로 부흥회를 열었다. 부흥회에 참석한 약 5,000여 명의 성도들은 첫 시간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세쨋날이 지나고 네쨋날이 돌아왔을 때 강사와 교역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성도들은 영문을 모르고 아무리 기다려도 강사와 교역자들은 영영 나타나지를 않았다. 알고보니 미 고위 장성으로부터 중공군이 개입했다는 말을 듣고 강사 이대영 목사와 다른 목사들이 부흥회를 마치지도 않고, 또 성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고 자기들만 살기 위해서 양을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1952년 제2대 대통령 선거 때 한국 기독교는 이승만을 돕기 위하여 선거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그를 도왔다. 1960년 2월 18일 반도호텔에서 열린 교계 지도자 초청모임에서 목사들은 이승만 장로를 대대적으로 지지하였다.

이승만은 1925년 독직사건으로 탄핵이 되었고 미국에서도 독립자금 운영에 대해서 규탄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 잘못은 생각지 않고 독립운동가들이 자기의 잘못을 폭로할까봐 천대한 것이 민족의 골수까지 사무친 친일파를 숙청하지 못하고 대한민국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설곳이 없게 하였다.

이승만은 장로요, 최인규는 장로교 집사이며 이기붕은 감리교 권사였다. 이승만 정권의 부패에 대해서 기독교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 이러기에 공산당은 종교를 아편이라고 하면서 종교는 가장 무서운 사회악으로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를 박해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 사회에 있어서는 안될 암적 존재들이다.

기독교는 해방이 되어 신앙과 정의에 사는 분이 심히도 적어 하나님과 조국을 배신한 무리들을 정리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민족의 반역자들이 큰 소리를 치는 것은 세계 기독교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기독교였다.

1959년 44회 장로회 총회 분열후 통합측은 민족반역자 전필순을 용납하고 그를 총회장에 추대하였고 성결교회는 이명직을 서울신대 학장으로 추대하였다. 어떻게 이들이 하나님의 일꾼될 위대한 종들을 교육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가 없다면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마태 7:21) 일반 친목단체이다. 그들은 개인구원에 집착하여 오직 자기 환상에 도취되어 있다.

식민지시대와 이승만 장로의 독재시대 때 얼마나 많은 교역자들이 로마서 13장 1절을 악용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순종하라.”하면서 기독교 정신을 왜곡했던가?

박정희가 불법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장면 정부를 몰아냈는 데도 기독교 일부에서는 그의 잘못을 지적하기는 커녕 환영하는 추세였다.

1961년 반란을 일으킨지 35일만인 6월 21일, 반란정부를 강력히 반대하는 미국정부에게 반란정부를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하여 기독교대표 한경직 목사와 최두선, 김활란, 정일권 등이 미국에 도착 애원을 할 정도였다.


1969년 9월 4일 평안교회 김윤찬 목사,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대학생선교회 김준곤 목사, 김장환 목사등의 보수교파라고 하는 242명의 목사들은 대한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하여 회장에 김윤찬 목사를 선출하고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3선개헌 지지와 양심자유선언을 위한 기독교 성직자 일동’으로 발표하고 또 ‘강력한 영도력을 지닌 지도체제를 바란다.'고 하며 더욱더 강력한 독재를 요구하였다.


대한기독교연합회는 1972년 “유신개헌과 유신헌법을 지지한다”고 성명서를 발표
하였다. 1975년 지원상과 신촌성결교회 정진경 목사, 홍현설 목사 등이 중심이 되어 대한기독교연합회를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로 다시 발족하고 “서울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전북 김제군 백구면 소재의 난산교회 강희남 목사가 1976년 신·구교 월요기도회에서 기도한 내용과 강희남 목사가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은 부정부패의 근원인 유신정권의 뿌리를 뽑는 길이다.”라고 하자 이 내용이 긴급조치 9호 위반과 반공법 위반이라고 하며 구속하였다. 강희남 목사는 “박정희 정부는 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하여 합법정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았다.”라고 하며 신청을 거부하였다. 그는 일생을 농촌에서 목회하였다. 1977년 11월 5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 자격정지 7년의 선고를 받은 강희남 목사는 박정희의 죽음으로 복역중 석방되었다.
5.18직후 전두환을 한경직목사가 조찬기도회서 축복기도
여기 국보위 종교담당은 신촌성결교회 정진경 목사이며 입법에는 조향록 목사가 관여하였다.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국보위 종교담당 정진경 목사와 영락교회 한경직, 입법부 조향록 목사, 김지길 목사 등 20명의 기독교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호화찬란하게 열렸다.

사회 문만필 목사로 시작된 예배에 조향록 목사의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김지길 목사의 ‘한국 기독교를 위한 기도’가 이어졌고 국보위 종교담당 정진경 목사는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에서 “구석구석 악을 제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김인득 장로의 ‘군 장병을 위한 기도’에 이어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의 설교가 있었다. 배후 주선은 보안사령부 군목 문만필 성결교 목사였다.

이 조찬기도회는 문화방송, 중앙방송에서 여러 번 반복 방영하였고, 일간·중앙신문은 머리기사로 다루어 전두환소장을 국민들에게 부각시켰다.

만화 첨부: 전두환이가 “여호수아같은 지도자가 되달라” 한경직
더욱 기막힌 것은 전두환 집단의 죄를 지적하기는 커녕 찬양을 하고도 그들은 지금껏 큰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인지 선한 일인지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이 어떻게 교인들을 가르치겠는가?(에레미아 5:30-31) 그들이 가르친다고 교인들이 감화를 받겠는가? 그들은 자기과시를 위해 허공에 외치고 있지 않은가?

김수환 추기경은 70년대 부활절 강론에서 “박정희는 비 민주적이다”하면서 유신을 반대하고 도덕적 잘못과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하여 박정희의 간담을 써늘하게 하였다.


세계 복음주의자들은 1974년 7월 16일 세계복음화 국제대회를 스위스 로잔에서 가졌다. 이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우리는 전도와 사회적, 정치적 참여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의 두부분인 것을 인정한다.”라고 고백하면서 “지금까지 사회문제에 대하여 등한시 했던 것과 때로는 전도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서로 배타적인 것인양 생각했던 일에 뉘우침을 표명하고” 신학적으로 정리하였다. 로잔언약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자이신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에서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권념에 참여해야 한다.

새로운 신자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제자로서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따라서 사회 경제 또는 정치적 불의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는 대분부를 왜곡하는 것이다.

국가의 권력은 하나님의 위임으로 절대 권력이 있을 수 없다. 권력자는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만일 권력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나 하나님의 백성을 탄압하는 일이나 권력자가 자신을 위하여 악하게 휘두르는 경우 기독인은 불복으로 항거해야 한다. 워싱턴의 독립전쟁 크롬웰의 혁명등은 법과 정의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권력자에게 저항한 좋은 예이다.

맺음말
기독교 목사들이 징병제를 찬양할 때 조선의 젊은이 26만 명이 개끌려 가듯 징병에 끌려가 죽거나 포로가 되었고, 징용으로 50여만 명이, 정신대로 20여만 명이 끌려갔다.

친일파 목사들은 죽음의 길로 가는 동족을 찬양하였으니 살인 협조자들이 아닌가! 그들이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일본이 패전하여 해방되었을 때 회개와 반성은 고사하고 그들은 너무나 뻔뻔스러웠다. 처벌받기는 커녕 오히려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과연 이래서야 되겠는가?

1944년 8월 24일 드골 장군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로써 나치스를 위해 협력한 자들을 처단한 것이었다. 그들은 1만 1천여 명을 즉결처형하였고, 정기 재판소가 설치된 뒤에도 767명이 사형되었으며, 3만 9천여 명이 투옥되었고 4만여 명이 시민권을 박탈당하였다.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독일군에게 부역한 자들도 여생을 시민들에게 멸시를 당하며 숨져가도록 하였다. 1차대전의 영웅 패당 원수는 나치스와 협력하여 비시 괴뢰정권을 이끌었다고 하여 종신형을 선고받고 섬 유배지에서 복역중 사망하였다. 그리고 그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묻지 못하게 하였다.

독일에서는 현재까지도 나치스 범법자들을 추적하고 있어 형사처벌에 시효가 없다.
나치스에 협력한 목사들도 가차없이 처단하여 교회와 공직에서 축출했으며 현상학의 거두 하이데거도 나치스에 협력하였다고 하여 일생을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하였다.

1948년 8월 17일 해방후 3년을 끌어오던 반민법 초안이 국회 의사 일정에 상정되어 9월 7일 제36차 본 회의에서 141명중 찬성 103표, 반대 6표로 절대적 다수로 통과되었다. 이승만 장로는 친일파 숙청에 가장 앞장을 서야 할 분이 반민법은 비민주적이라고 반대하고 나왔다.

반민특위는 7,000여명의 친일 반역자를 파악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 목사들은 장로교 정인과, 김길창, 신흥우, 윤치호, 김활란, 감리교 정춘수, 김인선, 양주삼, 등이 검거되어 친일 반역자 검거에 한창이었다.

반민특위활동을 강력히 저지하는 단체는 이승만 장로를 중심해서 친일반역자들과 일경 출신의 경찰 간부들이었다. 반민특위는 영장 408건 발부, 305명 체포, 221건을 기소, 사형 1명, 무기 1명, 유기징역 10명의 판결을 내렸으나 1950년 봄 전원 석방되고 말았다.

장면 정부의 제2공화국은 60%가 친일 반역자였고 박정희 정부의 제3공화국은 본인이 일본 육사출신으로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이므로 더 설명이 필요없는 정부였다.

우리의 골수까지 사무친 친일 반역자들을 철저히 숙청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어용이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국가의 질서와 기강을 바로잡고 도덕성을 회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방된지 42년이 지난 오늘까지 친일 반역자들을 처단하지 못하고 어용 천국을 만들었다.

친일 반역 교역자들이 주기철 목사 가족을 산정현교회 목사관에서 몰아 내고도 서울에서 버젓이 목회를 하고 있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장로교단, 양주삼 목사가 아직까지 존경을 받고 있는 감리교단 등 기독교는 어용의 온상으로 민족정기를 좀먹는 단체로 오늘의 현실문제를 낳았다.


징병제를 찬양하고 신사참배를 권고하고 황국신민된 것을 감사하고 성경과 하나님을 부인하는 해산성명서에 서명한 이명직 목사가 서울신학대학 학장이 되어 학생을 가르쳤으니 그의 제자들의 사상이 어떠하겠는가! 그러기에 성결교회 역사와 문학연구회에서 출판한 성결교회 인물전을 보면 이들을 대대적으로 칭찬하기를 ‘사부요 교부’라고 하기까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으며 성결교가의 작사자가 이명직 목사인데도 누구 한 사람 말하는 목사들이 없다. 이러한 이명직 목사를 칭찬하면 출세하고 나쁘다고 하면 고립되는 교단 풍토가 되었다.

어용 목사들은 독재자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충과 같은 인간들로서 독재자의 죄를 지적하여 바른 길을 가도록 할 용기가 없다면 목회나 할 일이지 범죄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범죄의 협조자가 되어 이땅을 범죄의 소굴이 되게 하고 있다.

어용을 몰아내지 않고는 교회의 화평이나 법의 회복, 질서 회복, 도덕성 회복을 절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법과 질서와 도덕성이 마비된지 오래다.

기독교 목사들은 독재자를 축복해 주고 부자를 우대하고 정직한 생활과 용기 있는 생활 예수님 고난에 동참하는 생활에 대해서는 외면하였다. 의를 위해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처벌로 인식되었고 시민 대중과 근로자의 고통을 믿음이 적은 결과로 돌려버리고 관심조차 없었다. 특히 조용기 목사와 일부 부흥강사라는 자들은 한국 기독교정신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출세를 위한 것이라면 사탄의 앞잡이도 주저하지 않는다(열왕기 상 22: 6, 20-23)
어용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도 도덕성 회복도 절대 불가능하다.



<<다시 써야할 한국 기독교사>>

발행처: 풀빛목회, 1993년 4월 발행
저자: 이선교/1942년 11월 평양 동산동 출생, 성결교신학교 졸, 서울 신학대학원 졸, 현재 수유리 백운교회 담임목사

환난의 현장에서 몸소 환난을 당하면서 현재의 고난을 하나님께 호소하여 하나님의 도움으로 환난을 해결하려는 믿음의 노력은 하지 않고 자기만 살기 위하여 양을 버리고 도망쳐온 한경직 목사외 다수의 목사들이 또 도망쳐 고난에 동참하는 종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사회는 어느 한 구석 썩지 않은 곳이 없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목사들의 사명이 무엇인가 “악인에게 경고하여 악한길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다”(에스겔 33:8).

1993년 3월 이선교


* 다운로드 저장해두었다가 참고도 하시고 여기 저기에도 올리시고 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55663




IP : 172.56.33.x
[1/2]   조폭두목 김태촌:   IP 172.56.33.x    작성일 2017년11월14일 10시58분      
조폭두목 김태촌: “목사님들이 가장 큰 고객이다. 아무래도 드러낼 수 없는 사생활이 많아 주먹들을 많이 찾는다”
나무위키: '동쪽에는 조구라(조용기 목사), 서쪽에는 옥이빨(옥한흠 목사)'이란 말이 있다. 거짓말, 허세부리고, 유창하게...

옥한흠 목사 “교회,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나부터 지도자들이 십자가를 지고 정도를 걷기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하는데, 그럴 용기가 없다. 나부터 용기가 없다.”
“100% 목회자의 잘못”이며 “교회 침체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본질이 파괴되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비상섭리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에는 비관적인 이야기를 할 만한 자유도 없는 기막힌 상황”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깨어 있으면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를 뒤집어 놓고도 모자람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지금 교회 모습을 보면 우리가 잘못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 제일의 목사(옥한흠, 일명 옥이빨)라는 사람이, 할일도 안하고, 하나님의 이적(기적, 비상섭리)을 바라다니... 옥한흠 목사의 ‘비상섭리’ 심뽀는, 스스로 ‘나부터 용기가 없었다’ 고백하듯, 하나님 앞에 태만의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마태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하나님이 세계를 매 순간 조정, 통치하신다. 비상섭리(非常攝理)는 제2 원인의 매개없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신적 원인인 제1 원인으로 역사하는 방법이다. 흔치 않다.

“남조선에 와보니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을 찬양하는 종북가요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이 노래를 허락 없이 부르면 정치범이 된다”고 전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종북가요도 김일성 찬양가요도 아니고, 오히려 김정은의 압제에 신음하는 북한 인민이 따라 배워야 할 정신”

한국 기독교 치욕의 죄악사 3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글 : 정바울 박사 한국교회기독교영성총연합회(UCSC) 대표회장

사진 설명 : 1941년 조선예수교장로회 K노회 소속 장로교 목사들이 "천조대신 외에는 참 하나님이 없다"고 신앙 고백을 하며 '미소기 바라이'(신도침례)를 집단적으로 행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기념촬영한 사진. 기독교에서 행하는 침례(히6:2)는 받지 않으면서 신사참배하는 조선예수교장로회 목사들이 잡신(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해 일본 불교 중들에 의해 집행되는 '미소기 바라이'를 단체로 행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사진설명: 조선예수교장로회 소속 목사가 미소기바라이를 행하고 있는 모습
위 두 개의 사진은 ■한국 기독교 치욕의 죄악사■★←클릭!!에서 퍼옴.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사진제공: 최덕성교수

작금의 한국목사들은 총회의 치리를 '개방귀'로 알고 있다. 오히려 교계신문에 "탈퇴성명서"로 맞받아 쳐버리고 교회를 나누고 교단을 가른다. 악질 친일파들을 교회지도자로 내세우고 ●신사참배에 항거한 출옥성도들을 장로교 총회에서 축출한 결과이다. 그래서 오늘날 장로교 242개 교단이 된 것이다. 똑같은 사기꾼들이 보수 혹은 자유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밥그릇 다툼 하기에 앞서 '건전한 상식'부터 찾아야 한다. 보수가 더 썩었다. 선진국 교회에서는 자유주의 교회라도 그런 몰상식한 독재는 없다.

태양신에 절하는 것을 거절하는 성도들을 일경에 밀고하여 죽도록 고문 당하게 만든 해방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까지 체포된 목사들을 장로교총회장, 한국교회연합회회장에 까지 추대하였다. 이중 일부는 오늘도 살아 숨쉬며 한국교회의 최고원로로 존경받고 있다. 구원은 커녕 ●사탄 마귀의 자식에 불과한 기독교인이라 부르기에도 곤란한 인간들이 어찌하여 존경 받고 있는가? 여기에 한국교회의 비극이 있다.

[2/2]   무덤파야  IP 73.15.65.x    작성일 2017년11월15일 08시47분      

정희 일제 앞잡이, 공산당 남로당 여순반란사건 군사총책, 구테타로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국가와 국민을 고문 살인 협박, 재산탈취, 국가재산 해처먹기, 월남전 파병 전투수당 빼돌려 처먹기, 국내외 재산 빼돌리기, 온갖 못된짓으로 지들 부패집단들이 나라를 말아먹은 죄는 이땅에 이자의 무덤을 둘 수가 없다.!!!
다시 파내서, 갈아서 동경 앞바다에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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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국모 (1) 호남평야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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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JTBC 안나경 앵커 명성교회 김삼환 초토화 포... (1) 김하나2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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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인의 업적 (1) 굴욕적외교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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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평화헌법 개정, 세계평화포럼으로 막자 다른백년 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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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이명박 검찰청 포토라인 발언 요약!!!! (1) 바기와 그네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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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귀순자를 델고 왔다고 구라친 대대장 면상 (1) 구라가먼저다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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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8차] 정호원 88수중개발 부사장의 증언 ② (1) 신상철 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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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도둑 홍준표, ‘국회 특수활동비’ 해명 말 바꿨... (1) 아이엠피터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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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네~ 걍 거기다 싸인하라고 멍청아! (1) 임종석대통령 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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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MB 공항성명=전두환 골목성명 떡치네!!!!!!!... (1) ~~~~~~~~~~~~...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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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김삼환 “평양감사도 싫으면 못하는 법!!!!” (2) 김하나 세습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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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문주주의 윤서인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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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게 나쁜피를 빼는 과정이라고 국선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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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될려면 욕을 많이 먹어봐야 해-아퍼도 견뎌 (1) 나무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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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작두질하는 문재인이 전부가 4년후 어케 되는지 (1) 달바라기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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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고싶은 TV드라마 영광의 1위 발표 (1) 시청자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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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70.208.69.x 요 아이피로 지랄발광하는 왜놈간첩... 포항 때려잡...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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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왜역도 왜놈간첩 한마리 쥐닭합체 댓글 蟲 달빛기사... 달빛기사단 ...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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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박영선 “MB 도둑넘이 제발 저려서...” (1) 화끈한 타격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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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은 보장받고 불만을 가진다고- 나가는게 남자답다... 그렇다고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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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행정부 소속이란 말이다.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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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제도가 아니라고 착각하지말고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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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투쟁은 이렇게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게 된다고 (1) 징후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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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제 검사라면 사건배당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지 (1)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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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대로 처리해야지 뭐 면담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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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마나호에서 세월호로 바뀐것도 (1) 남전참묘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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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 트윗에서 '서울마포 성유"같은 인간 발견 (3) 달빛기사단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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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에 관심없는 문제인 (1) 포항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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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사의 악몽 (1) 봉하마을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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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는 성지가 됩니다 (2) 윤서인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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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의 어뢰, 잠충 어떤게 사기일까? (2) 正추구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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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시골목사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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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많은 학살을 자행한 독재자는? (2) 타이완넘버원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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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이니 봉구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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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꼴 정치인 (1) 피아제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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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인 남자들이 저지른 바람일 거... 산전수전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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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 1억 “왜 나만 갖고 그래?” 천억짜리 놔두... (1) 청와대 상납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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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국정원도 증거조작” 김만복 전 원장 ... (1) 적폐청산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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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렐루야! 감리교 강간먹사 징역 8년 먹었따!! (1) 문대식2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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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인이 포항 지진에 관심이 없는 이유 포항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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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만들게 유도한 미국일본과 박정희일가 나라망치... (1) 진짜보수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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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9년, 제비족 문화 대규모로 번성 (1) 개혁시대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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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장 직무유기 죄 고발사건 대한 시민 사회단체 ... 시골목사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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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인 정권이 여론조사를 조작하는 방법 (1) 여론조사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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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8차] 정호원 88수중개발 부사장의 증언 ① (1) 신상철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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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실제 통치자는 임종석 (1) 청와대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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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유라시아 평화마라톤 31 강명구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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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뜬금없이 이상한짓은 왜 했나 ? 적폐청산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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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노동당 서열은 임종석이가 문재인보다 높다네 (1) 임종석대통령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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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저주’ 때문에 지진이 발생했다고? (1) 아이엠피터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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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노무현 파일 꺼내겠다? MB, 조폭 두목인가” (4) 노컷뉴스 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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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공화국을 이긴 다스,현대 공화국 (1) 전체적흐름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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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김태촌 국민통합위원장 목조르다 -특급비화 (1) 최성규 목사2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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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무 기능을 마비 시켰어 (1)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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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만큼만은 돌려준다. (1) 까불지마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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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투쟁이란게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는게 아니라고 경고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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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견이 권력이 있으면서 언론플레이 하는거야 (1) 피해의식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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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있으면 보고는 해야 할거 아냐 하프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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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가 검사들을 보호해주는 기능이 있어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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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미술관 특별전] 박은신 작가 회화전 - '고요의 ... (1) 편집국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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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vs 문재인, ‘지진 대응’ 비교해봤더니 (1) 아이엠피터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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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연기된 수능, 아예 폐지됐으면 좋겠다 (3) 권종상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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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한 댓글에 감사: [3/3] 먹사정리 IP 73.15.65.x -... (1) 부패척결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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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3가지 (1) 안종주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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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핀의 김정숙여사 (1) 국모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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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를 하면 현대,다스가 이익 (1) 장님코끼리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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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좀들의 구라 (1) 좌좀의구라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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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영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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