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정진석 ‘귀엣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5일 제주 서귀포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 환영 만찬 후 악수를 하며 귀엣말을 하고 있다. 중앙일보 제공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72)이 대권 도전 의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1년여 만에 한국을 찾은 첫날, 첫 공식 자리에서 대선과 관련한 발언들을 쏟아낸 것이다. 사무총장 퇴임 직후 ‘결심’을 언급했고, 국내 정치를 작심 비판하면서 ‘대통합’을 화두로 제시했다. 자신의 경쟁력도 은근히 과시했다.
대선 출마 여부부터 어느 것 하나 반반(半半)이어서 ‘반반 총장’이라는 별명이 달려온 것과 비교할 때 이례적이다. 대선을 염두에 둔 반 총장의 ‘정치 시계’가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흐름이다.
■대권 후보 거론에 “자부심 느껴”
반 총장은 25일 ‘반기문 대망론’ 등 자신으로 향하는 질문에 거침없이 말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날 오후 제주공항으로 입국한 직후 첫 일정으로 선택한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과의 간담회 자리에서다.
대권 도전에 대해선 “내년 1월1일 한국 사람이 되니까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를 그때 가서 고민하고 결심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말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는 것을 계기로 국내 정치권에서의 역할을 고민하겠다는 의미다. 대권 출마 의사를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임기를 6개월여 앞두고 예상보다 빨리 구체적인 일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던 입장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고 여권 ‘잠룡’들이 사실상 궤멸되면서 ‘반기문 대망론’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반 총장은 자신이 대권 후보로 언급되는 데 대해선 “제가 인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헛되게 살지는 않았고 노력한 데 대한 평가가 있구나. 자부심 느끼고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작심한 듯 ‘정치 상황’ 비판
주목되는 부분은 반 총장이 질의응답 과정이 아닌 모두발언에서 국내 정치를 작심 비판했다는 점이다. 반 총장은 “너무 국가가 분열돼 있다”면서 “남북으로 분단된 것도 큰 문제인데, 내부에서 여러 가지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이런 것이 해외에 가끔 보도되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 창피하게 느낄 때가 많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그러면서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을 언급했다.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통합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남북통일은 당장 어렵지만 국가통합은 정치 지도자들 뜻만 있으면 내일이라도 가능하다”고 했다. 반 총장은 특히 “아주 좁은 집단 이익이나 당파 이익 등을 갖고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정쟁”이라면서 “대통합을 선언하고 나와 솔선수범하고, 국가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100% 대한민국’을 공약한 박근혜 정부 들어 오히려 심화되는 우리 사회의 분열을 지적하면서 ‘국민통합’을 화두로 거론한 것이다.
반 총장은 남북 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그는 “북한과의 고위급 대화 채널을 계속 열고 있다. 남북 간 대화채널을 유지해온 것은 제가 유일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기회가 되면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국 사회 문제로 ‘남북분단’ ‘국론분열’을 지목하고, 통일·통합을 제1 과제로 내건 셈이다. 실제 ‘반기문 대망론’을 주장하는 측에선 ‘통일 대통령’과 충청 출신으로서 ‘통합 대통령’을 내세운다.
■경쟁력 과시에도 적극적
반 총장이 ‘대권 경쟁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들을 장시간 나열한 것도 이채로운 대목이다.
반 총장은 “지난 10년을 마라톤을 해야 하는데 100m 뛰는 기분으로 뛰었다”면서도 “역대 어떤 사무총장도 저보다 열심히 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약자 편에 서서 독재자들에게 쓴소리하고, 강대국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에 들어가서 민주화를 열었다”고 주장했다. 반 총장에 대해 “전 총장들에 비해 강대국들에 맞서는 것을 싫어했다” 등 혹평이 나오는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은 아울러 나이와 체력 문제에 대해서도 “별 문제가 안된다”고 했다. “미국 대통령 나온 사람들이 민주당은 전부 70세(힐러리 클린턴), 76세(버니 샌더스) 이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1년에 하루도 아파 결근했다거나 감기에 걸려 쉰 적도 없다”고도 했다.
내년이 되면 반 총장은 73세가 된다. 그가 고령이란 점을 들어 대통령직 수행에 의문을 다는 데 대해 반박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