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권 회복과 사회대개혁 성공시키자
중동전쟁은 국제 역학관계 진정한 힘이 민에 기초해야 함 드러내
(WWW.SURPRISE.OR.KR / 정호일 / 2026-04-13)
중동 정세와 국내 정세의 유리한 호조건을 맞이하여 이번만큼은 한국에서 주권을 회복하고 사회 대개혁을 성공시켜 시대사적 대전환을 이룩하자
1. 중동 전쟁은 국제 역학관계의 진정한 힘이 사회 역사의 주체인 민에 기초해야 함을 드러내주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중동 전쟁은 인류사와 국제 정치사에 커다란 전환점이자 분기점의 계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제관계에 있어서 주권 존중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역사적 흐름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국제 사회에서는 군사 무기가 우월하고 군사력이 강하면 약소국을 침략해서 약탈과 수탈 체계를 수립해도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여겨왔지만, 이란 민의 총력전 앞에 미국의 그런 욕망은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된 이유를 이란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비대칭 무기를 잘 활용해 선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데에서 찾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군사적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의 힘은 압도적입니다. 심지어 트럼프는 그런 우월성을 내세워 에너지와 사회 인프라 시설까지 파괴해서 이란 사회를 석기 시대로 돌려놓겠다고 협박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란은 그런 미국의 협박 앞에서도 인간 띠를 형성하고 결사 항전의 의지를 내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런 이란의 행동에 어찌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미국이 세계를 지배 통치하는 국제 카르텔 조직인 나토는 물론이고 한국, 일본 등의 동맹국들마저 미국의 요구와 압박에 순순히 따르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미국 내부의 마가 세력마저 트럼프를 반대하고 나섬으로써 분열되어 가고 있습니다.
군사적 측면만을 놓고 볼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중동 전쟁에서 탈출구를 찾기 위해 이란에 협상을 제기했고, 이란은 10개 항의 요구 조건을 내밀었으며, 미국은 이를 협상의 기초로 삼아 진행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2주간 동안 잠정 휴전하고 4월 11일부로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란과 휴전하고 협상하겠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나왔고, 이에 대해 트럼프는 합의 사항에 들어 있지 않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의 행동을 두둔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중동 전역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휴전한다고 했으면 모든 부분에 통용되어야지 어떻게 어떤 부분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겠습니까? 그 때문에 트럼프는 마지못해 이스라엘에 자제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한 휴전도 성립하지 못하는 방식이 되게 하는 것인 만큼, 협상의 진행 자체도 매우 유동적인 상황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결국 첫 협상은 서로의 의견 차이로 결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트럼프의 행동이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중동 전쟁의 상황이 유동적으로 되는 근본 이유가 어디에 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제 역학관계에서 힘에 대한 내용과 본질이 시대 흐름에 따라 근본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는 어차피 힘의 역관계에 따라 움직여집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힘의 우열은 주되게 군사적, 경제적 역량이라고 하는 객관적 측면에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우월한 힘을 이용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입니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런 것들은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힘은 단순히 객관적 조건의 우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주체에 달려 있고, 여기서 민의 지지를 얼마나 받느냐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의 이란 침공 과정은 이미 사람들로부터 그 정당성과 명분을 잃었습니다. 반면에 이란은 민에 의거한 총력전의 싸움을 전개함으로써 미국의 수많은 타격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지만, 정당성과 명분을 확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이란 민으로부터 미국의 침략에 대항해 결사 항전으로 싸워야 한다는 정당성과 명분을 확보했다는 측면에서 이번 중동 전쟁은 커다란 흐름으로 볼 때 미국은 필패하고, 이란이 승리한다는 것은 거의 명백하게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전개되고 있는 미국과 이란 간의 협상이 실패하여 또다시 중동 전쟁이 전개될 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종결될지를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힘의 역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만은 분명한데, 지금은 국제 역학관계에서 힘에 대한 내용과 본질이 얼마나 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방향으로 인류 사회가 바뀌고는 있지만, 그것이 완전히 완성된 시점이 아니라 전환점이자 분기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란이 어떤 정치적, 군사적 전략 전술을 전개하느냐에 따라 곧바로 승리의 길로 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 얼마간 우여곡절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힘의 내용과 본질이 사람, 즉 민의 지지에 기반하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중심으로 새롭게 바뀌며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한 조건에서, 민의 지지에 기반한 총력전의 싸움으로 대응하여 미국의 침략과 약탈, 간섭을 배격하고 주권을 철저히 행사하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한다면, 이란이 미국을 패퇴시키고 끝내 승리의 길로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2. 민이 직접 주인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방향은 지금 시기 인류사의 시대 흐름이자 요구이다
그러면 이렇게 이란이 민에 의거한 총력전 싸움으로 전개해 나간다면 필연코 승리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인류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민의 힘이 얼마나 장성해 가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사는 인간이 주체로 활동하여 전개되는 역사라는 점에서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을 파악하자면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한 측면을 전체인 양 설정하고 파악하게 되기에 필연코 부분적인 이해로 귀착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살펴보면 인류사의 문제는 먼저 인간 간의 관계 문제가 주된 의제로 설정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 간의 관계에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면 인간으로서 지위와 역할을 누리고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으로 자각하여 사회를 구성해서 인류사가 시작되는 맨 첫 단계에서는 노예제가 성립되었습니다.
노예제는 인간 간의 관계에서 노예를 사람이 아닌 짐승이나 도구로 취급하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사람인데 그리 취급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했기에 노예제는 붕괴되고, 노예 또한 사람으로 취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인정하면서도 고귀한 혈족에서 태어난 사람과 하찮은 족속에서 태어난 인간은 그 존엄이 똑같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신분적 차별을 내세운 신분제 사회가 그다음으로 성립되었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난 존재를 신분적으로 제약하여 차별하는 주장 또한 정당화될 수는 없었고, 급기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으로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확립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유와 평등 사상의 확립은 인간 간의 관계가 어떻게 풀어져야 하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정한 해명을 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간의 관계 자체를 놓고 그 해답을 찾을 때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사는 존재라는 것 이상의 해명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간 간의 관계가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대답하면 인간이 살아가는 제반의 문제가 다 해명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간 간의 관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런 관계만 있지 않고 인간 외적 관계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인간은 인간 외적인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면 생명조차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인간 간의 관계 문제가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명된 조건에서는, 그다음 단계로 인간 외적인 문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의 관계 문제가 제기되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 인간 외적인 관계 앞에 굴복하게 되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주장은 형식적인 선언에 그치고, 실질적으로 누릴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말로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간 외적 부분인 자본의 법칙에 굴복을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자유와 평등을 형해화시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의 법칙에 따라 산업자본, 독점자본, 국가독점자본, 세계거대독점자본으로 발전했고, 그에 맞추어 중상주의, 제국주의, 현대제국주의, 세계제국주의 정책을 구사함으로써, 노동자와 농민 등 민이 창출한 사회적 재부에 대해 자신들이 자본을 소유하고 있다는 미명하에 약탈하고 수탈하여 빈부격차를 확대하였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은 궁핍을 겪으면서 자유와 평등마저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해결하자면 인간 외적인 부분에 대해, 그것이 자본의 법칙이든, 아니면 과학적 법칙이든 간에 민이 주인답게 직접 권리를 행사하는 관계로 전환시켜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 외적인 부분에 대해 인간이 굴복하게 되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는커녕 자유와 평등마저 실질적으로 누리고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인간이 인간 외적 부분에 대해 주인답게 권리를 행사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인간 자신의 힘을 증폭시켜야 할 필요성이 절박하게 요구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적으로 지금 시기는 자본의 법칙이 극대화되어 미국이 세계거대독점자본의 힘으로 세계 유일 패권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원무궁할 것 같았던 미국의 유일 패권 체제는 붕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 민의 힘이 성장하여 국제 역학관계의 저울추가 변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민의 힘이 집대성되어 세계거대독점자본이든, 아니면 객관적 법칙 같은 인간 외적 힘 앞에 무조건 굴복하고 지배받는 상황으로 손쉽게 귀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류사가 인간 간의 관계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해명된 조건에서, 이것을 형식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인간이 인간 외적 부분과의 관계에서도 주인답게 직접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고, 바로 이를 해결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시기의 인간은 인간 외적 부분인 세계와의 관계에서도 주인답게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객관 세계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요구를 내세워 풀어가겠다는 입장에서 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인류사에서 민의 힘이 증폭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국제 역학관계의 변화를 불러오고, 인류사의 대전환을 가져오는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으로 우월한 객관적인 힘 앞에서도 무조건 이란이 굴복하고 패배하는 관계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민이 외적 조건에 대해서도 직접 주인답게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때문에 미국의 강압적 행위가 제대로 먹히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란 민의 결사 항전 앞에 미국의 강압적 폭력은 힘을 잃고 통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3. 민이 주인답게 권리를 행사하고 살아야 한다는 요구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더욱 그 정당성이 확증되고 있다
인간 외적 부분에 대해 굴복하지 말고 인간으로서 주체적 요구를 내세워 주인답게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중요한 원칙으로 절박하게 제기되는 이유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더욱 명확히 증명됩니다.
인공지능이 처음 등장한 초창기만 해도 바둑에서는 워낙 변수가 많은 관계로 인간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세계 일인자라고 자타가 공인했던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무너졌습니다.
그로부터 인공지능의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고, 데이터의 분석과 통합 능력은 인간이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은 이제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자율주행과 로봇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번 중동 전쟁에서 보듯 군사 무기 체계에서도 자동화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사회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인류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는 결국 인간의 외적 문제인 과학적 법칙과 객관적 법칙에 대해 어떻게 대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사실상 과학적 법칙과 객관적 법칙의 총아라고 할 수 있고, 인간은 가치관을 세워 이에 접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문제는 과학적 법칙과 객관적 법칙에 그대로 굴복할 것이냐, 아니면 과학적 법칙과 객관적 법칙을 인간의 가치관에 따라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의 대응 문제로 갈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과학적 법칙과 객관적 법칙에 굴복하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삶을 주인답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법칙과 객관적 법칙의 총아이자 우월한 힘을 지닌 인공지능 앞에 순응하고 따라야 하는 노예적 삶의 처지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인공지능을 성공시켜 소유한 자본가들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우월성이 확보된 만큼 이것을 소유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빈부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말 것입니다.
인간이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객관적 법칙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삶을 더 복되게 하려는 것인데, 도리어 과학기술과 객관적 법칙으로 인간이 고통을 겪는다면 그런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단적으로 이번 중동 전쟁에서 미국이 사용한 군사 무기의 자동화로 초등학생이 다니는 학교에 폭격을 가해 수많은 어린 학생들을 살상해 놓고 과학기술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물론 이것은 인공지능의 우월한 측면을 발전시키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객관적인 법칙을 발견하지 말자거나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굴복하지 말고 인간에게 이롭게 이용해야 하는 것처럼, 인공지능 또한 그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인공지능이 사회 전 방면으로 침투되어 가는 상황에서 인간이 자신의 가치관을 확고히 세우고 인간 외적 부분에 대해 주인답게 권리를 행사하며 이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고히 세우는 것은 절박한 시대적 요구로 제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인공지능 같은 인간 외적 조건에 대해 굴복하게 됨으로써 자기 삶을 주인답게 살아갈 수 없게 될 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유와 평등조차도 누리고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4. 인간이 주인답게 권리를 누리고 행사하자면 주권부터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 외적 부분에서 주인답게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자면 주체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회 역사의 주체인 민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의 생존방식과 생활방식에 의해 해명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인답게 권리를 행사하자면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전 영역에서 관철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결국 민이 살아가는 삶의 생존방식과 생활방식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은 누구나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 외적 부분에 대해 주인답게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영역에서 관철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부분은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입니다.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개성의 실현과 집단의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제 질서의 확립이 나라와 민족 단위의 주권 행사에 따라 결정되는 조건에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면 식민지 노예의 처지에 빠지는데, 거기서 개성을 실현하고 집단의 권리를 누리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권 행사가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각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을 볼 때, 최대의 방해 세력부터 청산해야 하는데 그 주체와 대상이 서로 동일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만 놓고 보더라도 주권 회복을 가로막는 최대의 방해 세력은 외세와 매국노이고, 주체는 민인데, 개성의 실현과 집단의 권리를 가로막는 최대의 방해 세력 또한 외세와 매국노이고, 이를 풀어가는 주체 역시 민으로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이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자면 주권 회복이 가장 일차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권 회복이 일차적인 시대 요구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인류사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가 없었다는 뜻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히 역사 속에서 그런 나라들은 존재하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옛날의 주권 행사는 정치 군사적인 힘의 역관계에 의해 유지되었을 뿐이지, 그것이 깨지면 언제든지 주권을 유린하고 침략하는 행위가 벌어지는 상황으로 전변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시기의 주권 존중의 요구는 국력이 세다고 해서 약소국의 주권을 유린하는 행위가 통용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는 상황으로 전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시기는 인간관계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 외적 관계 부분에서도 인간의 이익에 맞게 이용함으로써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전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요청으로 되고 있고, 그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세계 민의 힘이 급성장하여 주권 존중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영역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미국의 유일 패권이 붕괴된다고 해서 국제 사회에서 미국을 대신한 새로운 패권 국가가 등장하는 방식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국제 사회는 국력이 강하냐, 약하냐에 관계없이 어떤 나라든지 주권을 존중받고 제대로 행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시대사적 흐름이자 요구라는 것입니다.
주권을 존중받고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일차적인 시대적 요청 사항으로 되고 있다는 것은 한 나라의 경제 문제를 나라와 민족 단위에 근거해서 풀어가야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세계 유일 패권 국가인 미국마저 자기 나라 내부에 근거해 경제 정책을 펼쳐가지 못했을 때 파국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지금까지의 미국의 경제 정책을 바꾸어 자기 내부 기반에 근거하여 경제적 문제를 풀어가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트럼프의 입장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그것을 미국 자체의 힘으로 풀어가면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인데, 그렇지 않고 다른 나라를 약탈하고 수탈해서 풀어가려고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런 트럼프의 행위가 국제적으로 비판받고 조롱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일 패권국인 미국마저 자기 내부에 기반해 경제 정책을 전개하지 않으면 경제적 파국을 맞이하는 조건이라면 다른 나라들은 더 따져볼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자국의 경제 문제를 옳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라와 민족 단위를 근거로 해서 풀어가야 하고, 그래야만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나라와 민족 단위로 경제 정책을 옳게 풀어가기 위해서는 필연코 주권을 회복해서 제대로 행사하는 측면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경제 정책을 자기 나라의 요구대로 수립할 수 없고, 그러면 자기 나라 내부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주권부터 회복하여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해야만 외세와 매국노에 의해 형성된 반민적이고 매국적이며 기형적인 한국의 경제 체제를 극복하여 나갈 수 있고, 극대화된 빈부격차를 해소하며,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경제적 권리와 혜택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5. 한국은 지금 시기에 형성된 유리한 정세를 이용하여 기필코 주권을 회복하고 사회 대개혁을 성공시켜 시대사적 대전환을 이룩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그 여느 시기와 달리 매우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봐도 미국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란을 기습 침공함으로써, 국제 관계에서 그 정당성과 명분을 잃고 고립되며 붕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미국의 요구만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매국노들이 민에게 총칼을 겨누며 내란 범죄를 일으켰지만, 분연히 떨쳐나선 민의 빛의혁명으로 내란 세력을 청산해 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에서 주인 행세했던 외세와 매국노들이 점차 고립되며 몰락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기필코 이번만큼은 승리하여 한국 사회에서 시대사적 대전환을 이룩하여야 합니다.
그러자면 이 모든 관건이 주권을 회복하여 제대로 행사하느냐에 달려 있으니만큼 여기에 화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 여야, 진보와 보수를 떠나 주권 회복의 길에 함께한다면 단결해 나가고, 반대로 이를 반대하고 훼방을 놓는다면 매국노로 규정하고 응징해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권의 회복은 여야의 대결이나 진보와 보수의 대결로는 결단코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러 번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심지어 촛불혁명으로 탄핵까지 이뤄졌지만 주권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명확히 증명됩니다. 그러니까 주권의 회복은 애국과 매국의 대치 관계로 놓고 풀어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정당성과 명분을 확보해야만 쟁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번 지방 선거에서 여야나 진보와 보수 간의 대결 구도로 갈 것이 아니라 주권을 회복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대치 관계를 조성해 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여기에 뜻을 함께하는 세력부터 단합해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단합된 힘을 기초로 거대 양당 세력에 대해 주권 회복에 동참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물어야 합니다. 여기서 함께하려고 한다면 정치적 세력 관계에 맞게 단일 후보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만약 주권 회복의 길로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면 매국노로 규정하고 응징해 가야 합니다.
물론 이번 지방 선거에서 이런 입장이 효과적으로 작동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정치적 정당성과 명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당성과 명분이 확보되면 그것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정치 세력을 형성할 수 있고, 그러면 그 힘을 확대 강화하여 끝내 주권을 회복해서 제대로 행사하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에 유리하게 조성된 지금 시기의 정세를 허투루 보내지 말고, 기필코 주권을 회복하는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진공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정당성과 명분을 확보하면서 주권 회복을 위한 정치 세력을 한국 사회에서 구축할 수 있고, 그러면 주권 회복의 길이 열리고, 민의 이해와 요구에 맞게 한국 사회를 대개혁하여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시대사적 대전환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26. 4. 13.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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