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물질로 통일되어 있고 합법칙적으로 변화 발전한다
(WWW.SURPRISE.OR.KR / 정호일 / 2026-01-26)
출처: 『애민철학의 이해』(도서출판 우리겨레) 118쪽~122쪽에서 발췌
세계는 물질로 통일되어 있고 합법칙적으로 변화 발전한다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을 세워주는 것이 철학의 기본 임무라고 하니, 언뜻 보면 세계가 합법칙적으로 변화 발전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소리로 들립니다. 하지만 정반대입니다.
가치관에 따라 세계를 대한다는 것은 주관적 사고에 따라 자기 맘대로 세계의 합법칙성을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상 세계의 합법칙성은 인간의 가치관에 따라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객관적 법칙을 어떻게 이용할지는 인간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객관적인 법칙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가치관 자체를 적용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을 세워주는 철학은 물질세계의 합법칙성을 인정하는 조건에서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세계의 합법칙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물질의 객관적 법칙을 인정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대체 물질의 합법칙적인 변화 발전을 누가 가르쳐줍니까? 물질의 합법칙적인 변화 발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인간 자신이 이해하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 이해가 맞는지 그른지는 물질이 가르쳐주지 않으나 인간이 자신의 필요성에 의해서 결정합니다. 여기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제기하고 올바로 풀자면 물질의 객관적인 법칙을 찾아낼 필요성이 얼마나 절실히 요청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질의 합법칙적인 발전 법칙을 찾는 것도 결국 인간이 자신의 이해와 필요 때문에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법칙의 판단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물질세계가 결정합니다.
이런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인간이 자신의 주체적 요구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물질세계의 발전 법칙에 대해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부문이 무너진다면 인간은 자신의 주체적 요구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실현할 수 없고, 오로지 우연 내지는 자신의 주관적 욕구를 실현하는 부분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합법칙적으로 해결될 수 없으니 무조건 우연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이 주체적 요구를 실현하자면 어떤 방식이든 간에, 그것을 자연이 인정하든 아니든, 인간은 세상이 어떻게 변화 발전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에 대한 명백한 이해관계를 가질 필요성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과 물질세계에 대한 파악이 가치관과는 별반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바로 자연과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가 그 기본전제로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철학은 자연과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를 기본전제로 삼는다
자연과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를 기본전제로 삼는다는 것은 철학의 주된 과제는 아니지만, 그것을 기본 근거로 삼아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를 기본전제로 삼지만, 가치관의 문제를 주된 과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철학과 학문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실상 철학과 학문이 등장한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요구에서 출발했습니다. 여기서 무엇보다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변화 발전하는가는 첫 출발 지점에서 매우 중대한 과제로 등장했습니다.
그 때문에 철학이 처음 전개될 때 종합적인 학문의 위치를 차지하면서 자연과학의 문제 또한 주된 영역으로 포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철학과 학문이 시작되는 초기에는 그런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사는 끊임없이 발전하였고, 그 과정에서 과학기술은 물론 제반의 학문 분야 또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을 비롯한 제반 학문은 점차 여러 분야로 분화되어 나갔습니다. 얼마나 분화하여 발전하고 있는가는 생물학만 보더라도 생화학, 미생물학,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발생학, 유전학 등으로 분화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학문 분야가 전문적으로 분화되어 가는 조건에서 물질세계의 발전 법칙을 밝히는 것은 자연스럽게 과학자들의 영역으로 자리 잡습니다. 여기서 철학의 고유 영역의 문제가 제기되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의 문제가 자연스레 철학의 담당 영역으로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물질세계의 발전 법칙에 대한 이해가 과학자들의 영역으로 되었으니 철학이 관심을 가지거나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제조건으로 되느니만큼 물질세계의 합법칙적인 변화 발전에 대한 이해를 더욱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이것은 학문이 분화되는 것만이 아니라 융합된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는 것에서 확인됩니다.
현시기에 어떤 제품을 만들려고 해도 여러 과학 분야가 이용됩니다. 스마트 혁명 같은 것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연과학적 측면의 결합만으로 그치지 않고 인문학적 영역까지 융합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도시 건설만 놓고 보더라도 자연과학적 측면은 당연히 고려되겠지만 그 부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도시 건설로 인해 인간이 어떻게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살 것인가의 문제까지 판단해야 할 때 인문학적인 영역까지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 학문 간의 영역이 융합되는 것은 그렇게 해야 창조적 과정이 잘 이뤄질 수 있기도 하지만, 그 근본 원인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관계되어 있기에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물질세계가 어떻게 합법칙적으로 변화 발전하는가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과학자들이 주된 담당자라고 해도 철학은 그에 대해 항상 고도의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철학이 우선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물질세계의 변화 발전에 대해 객관적 토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물질세계에 대한 객관적 토대가 사라지게 되면 융합학문은 물론이고 가치관의 영역에까지 적용할 수 있는 근거를 잃고 흔들려버립니다. 이런 점에서 철학은 물질세계의 법칙으로 세계가 물질로 통일되어 있고 합법칙적으로 변화 발전한다는 것을 항상 명확히 해야 합니다.
물질세계가 합법칙적으로 변화 발전한다는 것은 세계가 객관적 토대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말합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전제가 명확해야 할 필요성은 지금 현시기 가치관의 아노미 상태가 이뤄지고 과학계에 이르기까지 그와 관련해 여러 혼란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혼란은 그만큼 인간이 자기 삶을 주인답게 풀어가는 데에 제약을 주게 될 것입니다.
이런 혼란을 극복하는 데서 세계가 물질로 통일되어 있고 합법칙적으로 변화 발전한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등장은 철학사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우리겨레연구소 소장(준) 정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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