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문화가 한자의 한계에 갇혀있다는 문제 제기죠”
상용자해’와 ‘한자의 재구성’ 펴낸 군산대 박영철 교수
100년경에 쓰인 ‘설문해자’에 의존한 한자 해석
갑골문·금문으로 들여다보면 맥락 달라져
이제 해석 패러다임의 변화를 고민해야 할 시기
한자어 ‘행복(幸福)’을 이루는 ‘행(幸)’은 수갑에서 기원했다는 연구가 있다. 갑골문의 자형을 통해 한자의 뜻을 분석한 일본의 한자학 대가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1910~2006)는 저서 <상용자해(常用字解)>에서 “행(幸)은 뜻밖에도 형벌 도구인 수갑의 모양”에서 왔으며 애초 이 글자는 “쇠고랑만의 형벌로 끝나는 것은 요행(僥倖), 즉 ‘뜻밖에 얻는 행복’이고 무거운 형벌을 면한다”는 의미로 ‘다행’의 뜻을 갖게 됐다고 해석한다.
<상용자해>를 번역한 군산대 사학과 박영철 교수는 이 해석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중국을 포함한 한자문화권에서 행복은 “국가가 시행하는 가혹한 형벌을 요행히 면하거나 군주의 권력에 기생하는 데서 비롯”한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6년에 가까운 <상용자해> 번역 기간 동안 떠오른 이 같은 상념들이 모여 하나의 생각 줄기가 됐다. 최근 <상용자해>와 함께 출간된 박 교수의 저서 <한자의 재구성>은 그렇게 탄생했다. 책은 한자 해석의 패러다임을 바꾼 <상용자해>를 비롯한 시라카와의 성과를 주목함과 동시에, 행복을 대하는 동서문명의 차이를 언어와 문자를 통해 해명하는 두 가지 과제를 성실히 수행한다. 지난달 23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박 교수는 <상용자해>와 <한자의 재구성>을 함께 펴내게 된 이유를 단어 ‘행복’을 통해 설명했다.
“중국 법제사와 사회사 전공자로서 왜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역사는 비극과 불행에 치우쳐 있을까 돌아보곤 했습니다. 서양의 경우 행복을 주제로 한 역사·철학책이 굉장히 많은데 말이죠. 그러다 시라카와 선생의 연구에서 한자 ‘행(幸)’의 기원을 찾아보게 됐습니다. ‘행’뿐만 아니라 ‘법(法)’자의 기원에도 처벌의 의미가 중요하게 담겨 있더군요. 서양에서 법이 정의와 권리의 개념으로 읽히는 것과 다르게 말입니다. 두 문자의 기원을 들여다보며 서글프게 느껴지는 동양에서의 행복, 그 역사의 근원을 문자학적으로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한자라는 표의문자는 관민(官民) 간의 의사소통 불편의 문제를 낳았고, 일반 민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국가 통제의 도구로 쓰였어요. 결국 한자의 한계가 동서양의 문화 발전의 차이를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한자의 기원을 통해 풀어낸 <한자의 재구성>은 시라카와의 한자학 연구에 기대고 있다. 한문학이 아닌 중국사를 전공한 박 교수는 시라카와의 연구를 통해 한자에 대한 강한 흥미, 그리고 문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역사도 포괄해 바라보는 방법론을 익혔다고 했다. 시라카와는 한자문화권에서 지난 2000여년 동안 최고 권위의 사전 역할을 해온 중국 후한시대 학자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의 위상을 흔들고, 갑골문·금문 연구를 바탕으로 한자 해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문자학 연구를 남겼다.
현재까지도 주요 한자사전에 인용되는 <설문해자>는 서기 100년경에 쓰였다. 9353자의 한자를 540개 부수에 따라 나누며 자형을 설명한 탁월한 연구서로 꼽히지만, 1899년에야 발굴된 최초의 한자 형태인 갑골문과 청동기 시대에 쓰인 금문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쓰였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설문해자>와 달리 한자의 최초 형태인 갑골문에서 출발하는 시라카와의 한자학은 현대의 관점이 아닌 한자를 만들어낸 고대인의 생활과 의식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박 교수는 시라카와의 연구가 “3000년 전 과거, 그 시대의 의식 형태로 돌아가 그 시대를 응시해야 한다”는 전제를 통해 “도처에 주령(주술)이 존재하는 범신론적인 세계”를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예컨대 ‘집 가(家)’의 경우 <설문해자>를 비롯한 다수 연구에서는 ‘돼지 시(豕)’의 의미에 주목하지만, 시라카와는 갑골문과 금문의 자형에서 ‘豕’ 대신 ‘개 견(犬)’의 형상을 확인한다. 여기에 건축을 하기 전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지진제(地鎭祭)’ 과정에서 개가 매장되곤 했다는 문화인류학적 연구를 결합해 ‘집’의 의미를 주술적인 맥락에서 새롭게 밝혀낸다. 박 교수가 시라카와의 한자학 총체인 사전 3부작 <자통(字統)> <자훈(字訓)> <자통(字通)>을 대중적으로 요약한 <상용자해>의 번역에 나선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상용자해>와 <한자의 재구성>은 고대인들의 생활과 사고 습관이 고스란히 담긴 박물관으로서의 한자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박 교수는 <한자의 재구성>이 두 가지 의미의 재구성을 내포한다고 설명했다. “<설문해자> 식의 해석 패러다임을 바꾼 시라카와 선생의 한자 재구성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동서양의 대결적 구도에서 동양이 뒤처지게 된 하나의 이유인 한자에 이제는 새로운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제 나름의 문제제기죠.” 개인의 행복보다 국가를 위한 획일적 복종이 중시되는 동양 특유의 문화와 길항하며 발전한 표의문자 한자의 한계를 인정하고, 한자문화권이 함께 이 문자의 변화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는 이야기다.
“좋든 싫든 한자는 이미 우리말입니다. 시라카와 선생의 설득력 있는 한자학 연구를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자에 흥미를 갖게 된다면, 풍부한 조어력 등 한자만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소통의 용이함 등을 더하는 새로운 변화가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를 많이 알수록 미래로 향하는 길이 더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상용자해>가 결국 <한자의 재구성>으로 이어지게 된 것 아닐까요?”
고순도 석영은 반도체 칩의 기반이 되는 얇고 평평한 실리콘 원반 ‘웨이퍼’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필수 재료다. 다결정 실리콘을 석영 도가니에 채운 뒤 녹이는 식인데, 이때 석영의 순도는 최소 99.999%여야 한다. 순도가 이보다 낮을 경우 불순물이 다결정 실리콘과 반응할 수 있는 탓이다. 러시아와 브라질 등에서도 석영을 생산하고 있으나 스프루스파인 수준의 순도와 품질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