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 스캔들] ② 이명박처럼...엉터리상에 세금 쓴 183개 공공기관


뉴스타파가 이른바 ‘비즈니스계의 오스카상’로 선전돼 온 국제 비즈니스 대상 ‘스티비 어워즈’를 받은 우리나라 정부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과 이들이 이 상을 받기 위해 쓴 세금을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83개 기관이 770개의 스티비상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이 스티비상을 받기 위해 출품료, 트로피 제작비, 시상식 참가비(해외 출장비 포함) 등으로 쓴 예산은 2014년 이후에만 7억 원 가량이다. 공공기관이 직접 ‘스티비 어워즈’에 응모하고 수상하는 과정에서 쓴 세금만 이 정도였다. 공공기관이 홍보대행사나 광고대행사를 통해 상을 출품한 163건은 정확한 예산 사용 내역이 파악되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스티비 어워즈’ 측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공개된 역대 수상자 명단을 우선 정리한 뒤, 여기서 확인된 우리나라 공공기관들을 상대로 ‘스티비 어워즈’ 수상 관련 정보공개를 청구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축하 영상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태평고’는 2008년 ‘스티비상’ 금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수상소식을 알린 2008년 8월 18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명박 취임식 영상이 금상 받은 뒤 스티비상 수상 공공기관 급격히 증가

이명박은 2008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 17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취임식이 끝난 직후 이명박 청와대는 취임식 축하영상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태평고’를 엉터리상 ‘스티비 어워즈’에 출품해 금상을 받았다. 이 사실은 MB 정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을 통해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정책브리핑’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다.

“대통령 취임 기념영상 ‘태평고’가 비즈니스 분야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국제비즈니스대상(International Business Awards. 이하 IBA) 스티브상의 애니메이션/일러스트레이션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는 IBA는 전 세계 기업과 조직들이 한 해 동안 펼친 경영, 성장, 홍보 등의 사업 활동을 총 131개 분야에 걸쳐 평가하는 국제대회다.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08.8.18)

공교롭게도 이명박 청와대가 이 상을 받은 다음해부터 ‘스티비 어워즈’에 출품해 수상하는 우리나라 공공기관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2008년 9곳에 불과했던 공공기관 수상자 수는 2009년 29곳, 2012년 61곳, 2017년 104곳, 2019년 93곳으로 증가했다.


1위 도로교통공단 43개, 2위 서초구청 35개, 3위 한전원자력연료

뉴스타파는 스티비상을 한 번 이상 받은 전력이 있는 183개 공공기관을 상대로 순위를 매겨봤다. 상을 많이 받은 숫자를 기준으로 삼았다.

1위는 경찰청 산하 공공기관인 도로교통공단이었다. 도로교통공단은 2010년 처음 스티비상을 받은 이후 2020년까지 내리 9년간 한 해도 빼지 않고 이 상에 도전, 총 43개의 트로피를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2위는 2017년부터 4년 동안 35개의 트로피를 쓸어 담은 서울 서초구가 차지했다. 3위는 한국전력공사가 95% 넘는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공기업 한전원자력연료였다. 한전원자력연료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총 26개의 스티비상을 받았다.

4위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총 21개의 스티비 트로피를 받은 송파구청, 5위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에 걸쳐 총 20개의 스티비상을 받은 부산광역시였다. 부산광역시는 특히 2018년 한 해에만 14개의 스티비상을 몰아 받아 눈길을 끌었다. 한 해 동시 수상 숫자로는 공공기관 중 최다 기록이었다.

육군이 NGO?...엉뚱한 분야서 스티비상 받은 공공기관들

공공기관들이 받은 스티비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해하기 힘든 특이점도 발견됐다. 기관의 소속, 성격과는 전혀 관계없는 분야에서 상을 받은 기관들이 의외로 많았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도 그 중 하나다. 이 위원회는 2019년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에서 금상 2개와 은상 2개, 그랜드 스티비상(BR컴 스폰서)을 받았는데 수상 분야 가운데 하나가 ‘공기업 이벤트 혁신 부문’이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공기업으로 둔갑해 상을 받은 것이다.

엉터리 직함과 가짜 출품작으로 스티비 상을 받을 수 있었던 뉴스타파 취재진과 함께 ‘2020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에서 금상을 수상한 경기도 산하기관인 경기도일자리재단의 수상 부문도 재단의 성격과 전혀 관계없는 ‘정부 서비스 웹사이트’ 부문이었다.

국방을 책임지는 육군이 받은 상은 더 황당했다. 육군은 2020년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에 기관지 ‘육군’을 출품해 금상을 받았는데, 수상 부문이 ‘비영리 기구/비정부 기구(Non-profit Organization/NGO)’였다. 이 부문은 주로 공익단체나 비영리 민간단체들이 출품하는 분야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가짜 이력으로 금상을 받은 표절 작품 출품 분야도 마찬가지다. 뉴스타파 ‘트로피 스캔들’ 취재팀은 지난해 ‘2020년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에 서울의 한 지자체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낀 뒤 수도권의 한 지자체 이름으로 출품했는데, ‘공기업 고객서비스’ 부문 수상자가 됐다.

‘스티비 어워즈’가 얼마나 허술한 출품-심사 구조를 갖고 있는지, 얼마나 마구잡이로 심사와 수상이 결정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인 도로교통공단은 2010년부터 내리 9년간 스티비상에 도전, 총 43개의 트로피를 챙겼다.


송파구 7900만 원, 서초구 7100만 원...스티비상에 쏟아 부은 세금

스티비상을 받기 위해서는 이중 삼중 돈이 들어간다. 뉴스타파는 22일 공개한 ‘트로피 스캔들’ 1편에서 이 상을 받기 위해서는 출품료로만 최소 30~50만원, 트로피 제작비와 시상식 참가 티켓 비용으로도 건당 80만 원 가량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작품 하나를 출품하고 상을 받는데 최소 100만 원 가량을 써야 하는 구조다. 주로 해외에서 진행되는 시상식 참가비용을 빼 것만 그 정도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공공기관들은 스티비상을 받는데 얼마나 많은 국민 세금을 탕진했을까.

뉴스타파는 2019년 11월부터 15개월에 걸쳐 ‘트로피 스캔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스티비상 수상 경력이 있는 공공기관 모두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관련 예산 지출 규모를 확인해 봤다. 집계 시점은 편의상 ‘스티비 어워즈’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22개 국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상(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을 신설한 2014년 이후로 잡았다. 우리나라 공공기관들이 그 동안 받은 전체 스티비상 770개(2006~2020년) 가운데 387개가 해당됐다.

그 결과 정부부처와 지자체, 공기업들이 지난 7년(2014~2020년)간 387개의 스티비상을 받으면서 7억 원 가량 예산을 지출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집계한 7억 원은 공공기관이 스티비상에 쏟아 부은 예산의 일부에 불과하다.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인한 결과, 공공기관들 중 상당수는 자신들이 고용한 홍보대행사나 광고대행사를 통해 스티비상을 출품하고 상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 이런 식으로 상을 받은 경우에는 상을 출품하고 받는 과정에서 쓴 예산 규모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집계 대상의 30%에 달하는 163건의 수상 사례가 그런 식이었다.

이 163건과 관련된 예산을 포함한다면, 지난 7년간 우리나라 공공기관들이 스티비상을 받는데 사용한 예산 규모는 1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타파 확인 결과, 스티비상에 가장 많은 돈을 쓴 공공기관은 21개의 스티비상을 수상하면서 뉴욕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시상식에도 참가한 서울 송파구청이었다. 송파구청은 7942만 원의 예산을 스티비 어워즈에 준 것으로 확인됐다. 2위 역시 강남3구 중 하나인 서초구청이었다. 서초구청은 35개의 스티비상을 받고 구청장 등이 런던, 홍콩, 싱가포르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7102만원의 예산을 허비했다.


3위는 26개를 수상하며 5068만 원을 쓴 한전원자력연료였다. 한전원자력연료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매번 시상식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파리(2014), 토론토(2015), 로마(2016), 바르셀로나(2017), 런던(2018), 오스트리아 빈(2019)이었다.



스티비상에 예산을 허비한 공공기관 상위 10곳. (단위: 개, 원)


공공기관 지출 예산 7억 원 중 절반 이상은 해외 출장 비용


우리나라 공공기관이 ‘스티비상’을 받는 과정에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예산 7억 원 중 절반 이상은 해외 시상식 참석을 위해 쓴 출장비였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공공기관의 해외 출장 사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사례가 여럿 확인됐다. 먼저 소개할 곳은 경기도 용인시다.


2017년, 정찬민 당시 용인시장(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17년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에 참석하면서 아예 응원단을 만들어 대동했다. 용인시의 행정지원과 비서, 정책기획 과장, 공보관, 도서관 직원 등 여러 부서 직원 9명으로 구성된 응원단이었다. 용인시는 이 시상식에서 금상 2개, 은상 2개를 받았다. 응원단은 정 시장이 수상 소감을 발표할 때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했다.

용인시는 이 도쿄 시상식 참가 비용으로만 시 예산 2300여만 원을 지출했다. 10명이나 참석하면서, 시상식장 입장 티켓을 사는데만 558만 원을 썼다. 용인시 측은 뉴스타파와의 전화통화에서 “원래는 더 많은 인원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상식에 참가한 공공기관 10곳, 비용 9100만 원

같은 해 스티비 어워즈는 스페인의 유명 관광지 바르셀로나에서 간판 상품인 ‘국제 비즈니스 대상(International Business Awards, IBA)’ 시상식을 개최했다. 우리나라 공공기관 10곳이 이 시상식에 참가했다. 서울시, 서울 강남구청, 한국공항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철도공사, 국립생태원,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본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한전원자력연료, 한전KDN이었다.

그런데 ‘스티비 어워즈’ 한국대표부가 만든 공식 참관단 일정을 보니 시상식 참가는 일정의 극히 일부일 뿐 나머지는 ‘발렌시아 투우장’, ‘바르셀로나 가우디 탐방’ 같은 여행 일정으로 채워져 있었다. 한국대표부는 홈페이지 공지문을 통해 아예 ‘선진기업 방문과 문화탐방을 통해 힐링’이라고 여행일정을 소개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 출장에 참가한 10개의 공공기관이 쓴 세금은 도합 9100만 원이 넘었다.


시상식 참석을 빌미로 해외 출장비를 펑펑 쓴 사례는 수두룩하다. 2018년 홍콩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 시상식에도 13개 공공기관 소속 직원 26명 이상이 참가해 5400여만 원, 2019년 싱가폴에서 열린 같은 시상식에도 10개 공공기관이 참가해 6100여만 원을 지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2018년 런던에서 열린 ‘IBA 스티비 어워즈’에는 9개 공공기관 소속 직원 15명 이상이 참석해 출장비 등으로 약 6700만 원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한영 공항철도 사장도 시상식에 참가한 사람 중 하나였다.



김한영 전 공항철도 사장.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해외에서 열린 스티비상 시상식에 빠지지 않았다. 최근 제7대 국가철도공단 이사장으로 영전했다.

매년 3000억 원 나랏돈 쓰는 공항철도, 3년 내내 해외 시상식 참여

서울역과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철도 운영사인 공항철도는 만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이 회사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매년 3000억 원 넘는 예산을 비용 보전 명목으로 쏟아붓고 있다. 적자가 커지면 정부가 보전해주는 비용도 커지는 구조다.


그런데도 공항철도는 스티비상을 받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김한영 사장 재직 기간 중 4년 연속(2017~2020년) 국민 세금을 들여 스티비상을 챙겼다. 황당한 건 연속 수상의 기쁨을 안겨준 작품의 이름. 공항철도는 2018년부터 내리 3년 연속 ‘CEO 김한영’을 출품해 상을 받았다. 다음은 공항철도의 출품작 명단.


2018년 - ‘고객과의 행복한 동행을 꿈꾸는 공항철도 CEO, 김한영’
2019년 - ‘자기관리 혁신의 아이콘, 공항철도 CEO 김한영’
2020년 - ‘고객의 안전과 행복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 공항철도 CEO 김한영’


김한영 사장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해외에서 열린 스티비상 시상식에도 빠지지 않았다. 기관장이 3년 연속 해외 시상식에 참가한 거의 유일한 사례다. 2016년부터 올해 1월까지 공항철도 대표를 지낸 김한영 사장은 최근 제7대 국가철도공단 이사장으로 영전했다.


그럼 공항철도가 그 동안 스티비상을 받으며 쓴 예산은 얼마나 될까.

뉴스타파는 정보공개 청구 대상이 아닌 공항철도에 연락해 예산 사용 내역을 문의했다. 공항철도 측은 구체적인 금액은 공개하지 않은 채 “출장자는 CEO, 관련 부서장과 부서원이다. 출장비는 일비 규정에 따라 지급했고 스티비 어워즈 한국대표부의 일정을 따랐다”고 답했다. 뉴스타파는 공항철도의 설명을 근거로 김한영 사장 일행이 해외 출장을 다니며 쓴 예산을 계산해 봤다. 항공료를 제외하고도 최소 750만 원 이상을 썼을 것으로 추정됐다.




2017년 ‘여성 기업인 스티비 상’을 받은 박춘희 당시 송파구청장. 뉴욕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가하며 4444만 원의 예산을 사용해 단일 건 최다 금액을 기록했다.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 뉴욕 출장비로만 4444만 원 지출

2017년, 우리나라 공공기관장 중 유일하게 ‘여성 기업인 스티비 상’을 받았던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 박 구청장의 수상작 이름은 ‘올해의 여성 지도자, 송파구의 수장, 박춘희를 소개합니다’였다. 시상식은 미국 뉴욕에서 열렸다. 아래는 박 구청장의 수상소감.

“Thank you for the lovely honor to be here. 저는 오늘 이 수상의 기쁨을 67만 송파구민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송파구민이 모두 행복하고 편안한, 대한민국 대표 행복도시 송파를 만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Thank you very much!

--박춘희 전 구청장 2017년 스티비 어워즈 수상소감(2017, 뉴욕)

송파구청은 박춘희 구청장의 뉴욕 시상식 참석을 위해 여행경비 3600만 원, 통역비 400만 원 등 4444만 원의 세금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스티비 어워즈 시상식 참석을 위해 쓴 단일 금액으로는 최다 금액이었다.


뉴스타파는 오는 3월 3일, 소중한 국민 세금을 쏟아부어 스티비 상을 쇼핑해 온 공공기관과 공직자들이 이 엉터리상을 어떻게 활용해 왔는지, 그리고 스티비 어워즈 측은 어떻게 우리나라 공직자들을 이용해 돈을 벌어 왔는지를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