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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전선에 새겨진 조선 / 통일담론자료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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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새로운 개념
(The Concept of Power and the Zapatistas)
죤 홀로웨이 (John Holloway)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의 저항, 한울, 1998>

1. 사파티스타가 안겨주고 있는 도전
2. 국가는 사회변혁의 도구가 될 수 없다.
3. 국가권력 지향성을 거부하고 민중권력을 지향 한다
4. 인간의 존엄성으로 무장하고 인간해방을 추구 한다

1.사파티스타가 안겨주고 있는 도전
– 정치와 권력의 새로운 개념

<<하나의 신종(新種) 거짓말이 역사라는 상품명(商品名)으로 우리에게 강매되고 있다. 희망이 패배했다는 거짓말! 인간의 존엄성이 패배했다는 거짓말! 인간성이 패배했다는 거짓말! 그리고 그런 것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거짓말!(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륙간 회합 : Intercontinental Gathering Against Neo-Liberalism 개최에 대한 Subcomondante Marcos의 초청장에서, 라 죠르나다紙, 1996년 1월 30일)>>

각도를 바꾸어서 보면 이 거짓말은 또한 권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거짓말이다. 그리고 이 거짓말은 또 인간에게 있어서 필요란 무엇인가에 대한 거짓말이다.

그런데 이 거짓말의 주인공인 신자유주의가 역사 무대에 등장한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 저들의 거짓말도 많이 달라졌다. 저들의 거짓말은 이제 더 이상 <<이러저러하게 하면 이러저러하게 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꾀는 정도의, 속임수 수준의 거짓말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고 나서 20여 년 동안 발전하는 사이에 저들의 거짓말 또한 변화․발전했다. 80년대식의 낙관주의적인 거짓말이 90년대식의 현실주의적인 거짓말로 대체되어 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시장 체제하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거짓말은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고 그 대신 <<자유시장 질서, 이것이 세상사가 존재하는 방식이고 또 존재해야만 하는 방식이다. 현실 속에서는 이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는 보다 악랄한 거짓말, 민중을 꾀는 거짓말이 아니라 민중을 윽박지르고 협박하는 거짓말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현실과 모습이 다른 사회를 머리ㅅ속에 그려볼 수는 있다. 그렇게 머리ㅅ속에서 그려낸 사회의 모습은 아름답고, 고상하고, 즐겁고, 그래서 매우 바람직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과 다른 모습을 가진 사회는 머리ㅅ속에서는 몰라도 지상에서는 만들어 낼 수도, 존속할 수도 없다>>라고.

이처럼 <<희망이 패배한다>>는 거짓말은 곧 <<가능성이 패배한다>>는 거짓말이 되고, 나아가 <<변화․변혁을 만들어 내는 권력, 세력, 권능, 동력 또는 힘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거짓말이 된다.

사파티스타는 희망 또는 가능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또 권력이라는 것에 대해서 신자유주의의 이 같은 거짓말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주제(主題)들에 대한 사파티스타의 독특한 관점은 사파티스타와 멕시코 정부 사이에 진행되었던 회담에 관해서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논평한 말 속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건 공평한 회담이 아니다. 대등한 당사자들 사이의 회담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회담은 회담에 임하는 쌍방에 대해 상호 대등한 지위를 인정하면서 진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그렇지만 이 회담의 양 당사자 가운데서 사파티스타는 결코 약자 쪽이 아니다. 오히려 강자 쪽이다. 정부 측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은 군사적 폭력과 일부 몰지각한 언론매체들이 퍼뜨리는 거짓말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폭력과 거짓말은 결코 이성(理性)보다 강할 수가 없다. 저들은 여러 날, 여러 해 동안 저들의 폭력과 거짓말을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에 가서는 저들과 우리를 각기 자기 본래의 분수에 맞는 자리에 가져다 놓을 것이다(부사령관 마르코스, 95. 5. 5. 라 죠르나다紙, 1995. 5. 11.)>>

그거 아주 멋진 얘기다. 하지만 황당무계한 얘기일 뿐이다. 마르코스가 하고 있는 선언문 문구 같은 진술(陳述)이 어떻게 과학적으로 맞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거짓과 진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강한가라는 문제에 대한 최종 판정을 역사에다 의뢰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의문점은 전혀 풀어질 수가 없다. 사회과학에 따르면 역사란 거짓과 진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강한지를 판정하는 장(場)이 아니고 단지 권력의 소유를 둘러싼 폭력적인 투쟁들의 결과일 따름이며,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역사가 폭력적인 투쟁들의 결과물일 따름이라고 할 때, 사파티스타가 멕시코 정부보다 강하다는 마르코스의 주장을 우리들이-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객관적 근거들에 입각해서-<<그 말이 맞다>>고 옹호할 수가 과연 있겠는가? 도대체 이성(理性)이 폭력과 거짓말보다 더 강하다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계속 견지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 따위의 황당무계한 말을 옹호하려고 한다면 결국 권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황당무계한 이론을 옹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상에서 이야기한 문제들은 사파티스타와 그들의 황당무계한 반란이 안고 있는 심각한 난제이면서 그들이 우리들에게 안겨 주고 있는 중대한 도전임에 틀림없다. 사파티스타의 반란은 실로 황당무계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산디니스타가 패배한 이후,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에서의 민족해방운동이 패배한 이후,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점점 더 깊숙이 통합되어 가고 있는 지금, 쿠바 혁명이 어떤 형태로 변형되건 살아남기가 갈수록 어려워져 가고 있는 지금,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리고 세계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주요한 혁명운동들이 사라져 버린 지금, 그리고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창설을 통해서 자신의 현대화(또는 근대화)를 대내외에 선언하고 있는 지금>>, 바로 그러한 순간에 일단의 원주민 농민들이 치아파스州의 산크리스토발 읍과 기타 몇몇 고을(邑)들의 통제권을 장악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대다수는 목총으로 무장을 하고서!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인가?

이들이 황당무계한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이들은 황당무계한 행동을 벌인 데에 바로 이어서 자신들의 황당무계한 생각들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멕시코 동남부 지역의 정글 속에 모인 고작 수천 명의 반란자 집단에 지나지 않는 자들이 자신들은 세계를 변화․변혁시키고 싶고, 세계를 변화․변혁시키고자 투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위에, 그들의 황당무계한 기획 안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이면서 동시에 가장 심하게 황당무계한 점은 그들이 권력(국가권력이든 정권이든)을 잡지 않고서 세계를 변화․변혁시키고자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들의 담화는 농담, 떠들썩한 이야기 소리, 어린이들의 떠드는 소리, 춤추기 등 어지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따위의 반란을 어떻게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현실적이고(공상적이 아니라) 중차대한 과제인 新유럽 건설에 있어서 그 심장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인 브뤼셀, 그 브뤼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들의 말과 행위는 우리들 자신과 현실적으로 중대한 관련성이 있는 사안으로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가브리엘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소설에서 나오는 환상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사파티스타를 진지하게 맞이하고자 하고 있다. 나는 마르코스가 자기들이 멕시코 정부보다 강하다고 말할 때 그의 말이 옳기를, 틀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또 그들이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서 세계를 변화․변혁시키고자 기도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러한 그들이 정말로 옳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비극적인 현실로부터 벗어날 다른 어떤 대안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옳기를 바라고 있다.

오늘날 이 비극적인 현실-약 5만 명의 인간 생명이 매일 굶주림으로 죽어 가고 있는 세계, 10억 이상의 인간이 극도의 빈곤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 비극적인 세계에서 혁명은 몹시도 절실하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우리들이 불가능성이라는 덫에-혁명이 몹시도 절실한 만큼이나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몹시도 심하게-족쇄 채워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마르코스의 선언이 단지 아름답고, 詩적일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 또 실천적으로 튼튼한 현실적인 기초를 가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옳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약 우리가 그들이 옳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하고 있는 것들의 이론적 및 실천적 기초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것을 이해(理解)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파티스타는 하나의 이론적․실천적인 도전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우리들의 기성(旣成) 관념들에 대해 도전하고 있으며, 멕시코 국가에 관한(또는 여타의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대한, 나아가서는 이 세계 모든 국가에 관한) 사람들의 이해(理解)에 대해 도전하고 있다. 나아가 사파티스타는 혁명적 좌파든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좌파든 실로 좌파라고 지칭되는 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제반 고정관념들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마르코스가 봉기 첫해에 어느 논평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 해에 무엇인가가 일어났다.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강제로 팔아먹고 있는 왜곡된 거짓 근대성(또는 현대성)이 아닌 그 무엇! 거짓된 정부 프로젝트들이나 알량한 선심으로 포장된 제도권 구호 기관들의 기만성이 아닌 그 무엇! 태고 적 부터 이 땅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에 대해 나라가 이들을 부당하게 방치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닌 그 무엇! 그런 것들이 아닐 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이러저러한 현실이나 경험 또는 전통 같은 것들을 우려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른바 좌파들의 경직된 도식들도 아닌 그 무엇이 일어났다!

고통으로부터 희망으로 빠져나가는 이 벅찬 투쟁의 항해 과정 속에서 정치투쟁은 고통으로부터 물려받은 누더기 옷을 모두 벗어 던진다. 이 항해로 하여금 새로운 투쟁형태 다시 말해서 민중이 정치적인 존재가 되고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방식들을 새롭게 바꾼, 새로운 정치투쟁 형태들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항해가 목적으로서 지니고 있는바 희망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치적 도덕성, 새로운 정치적 윤리 등등의 문제는 그저 정치가 좀 더 새롭고, 좀 더 도덕적이고, 좀 더 윤리적이면 좋겠다고 하는 요망사항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들이야말로 전진하기 위한, 그리고 상대편을 능가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부사령관 마르코스, 라 죠르나다紙, 1995. 5. 2.)>>

그는 정치적 도덕성, 정치적 윤리에다가 다음의 것들을
덧붙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새로운 정치 이론, 정치와 권력에 관한 새로운 이해>>라는
말을.

2. 국가는
사회변혁의 도구가 될 수 없다.

종래의 정치이론에서는 권력은 돈 또는 국가에 대한 통제권과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통례였다. 특히 좌파는 이렇게 권력을 통제권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변혁이라는 것이 권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권력 가운데서도 국가에 대한 통제권을 통해 이루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통례였다.

주류 좌파는 일반적으로 국가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고서 이 국가와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것을 운동의 전략적 목표로 삼아 왔다. 주류 좌파의 한 흐름인 개혁주의적인 좌파는 국가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는 일을 선거에서 이김으로써 합법적으로 집권하는 문제로 보고 있다면, 다른 한 흐름인 혁명적 좌파는 국가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을 비합법적으로 국가권력을 탈취하는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레닌주의적인 전통과 게릴라 투쟁 전통을 따르는 혁명주의 조류들에서는 확실히 그러하다).

이렇게 볼 때 개혁주의적 좌파와 혁명주의적 좌파 간의 해묵은 논쟁들은 실은 좌파의 전략적 목표 그 자체를 둘러싼 논쟁이기보다는 <<국가에 대한 통제권 장악을 위한 수단을 무엇으로-선거냐 폭력혁명이냐-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를 변화․변혁시키기 위해서 국가권력을 쟁취․장악해야 한다는 입장은 좌파 안에서 이의 없이 널리 받아들여져 왔으며, 국가권력의 확보를 실제적인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개혁주의냐 혁명주의냐를 가릴 것 없이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으로서 전혀 쟁점이 아니었다. 좌파들은 모두들 국가권력의 장악을 사회변혁을 위한 전제조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전제조건으로 간주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국가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했던 시도들(혁명적 수단에 의해서건 개혁적 수단에 의해서건)은 그 어느 것도 자신들이 설계했던 사회변혁을 결코 달성하지 못하였다. 그러한 시도들은 숱하게 역사적 패배를 겪어야 했는데, 그 수많은 패배들 모두에 대해 혁명운동의 배반 또는 민중의 배반 대문에 그렇게 패배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그 탓을 돌려서는 그러한 실패의 이유가 제대로 규명될 수 없다. 그러한 시도들이 실패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는 것 같다. 국가권력을 사회변혁의 매개체로 사용 또는 이용하고자 했던 그 많은 시도들이 대부분 실패했다는 사실은 많은 실례를 통해 그러한 탓들을 증명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전략 자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즉 그 실패들은 국가라는 곳이 진정한 권력-민중을 통제하는 힘이 아니라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이 소재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국가들은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전세계적 그물망 안에 끼워 넣어져 있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전세계적인 그물망이 개개 국가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국가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 즉 사회변혁을 만들어낼 수 없다. 쉬운 예로 자본주의 사회는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기만 해도 실제로 이루어져 버리는 자본의 철수(撤收)만 가지고도 개개 국가들에 대해 존립 그 자체까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권력이라는 관념은
하나의 신기루다.
국가를 장악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통해서 사회를 변혁사고자 했던 시도들은 사회변혁이라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실패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국가와 국가권력에 대한 집착은 변혁운동으로 하여금 근본적 변화를 향해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것을 곤란케 하고 나아가 변혁운동 그 자신을 무너뜨리기까지 하는 등 운동에 해악을 끼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잠시 살펴보자.

만약 개개 국가들이 물고기가 그물에 끼워져 있듯이 자본주의 그물망에 속박되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면, 국가는 자신이 영위하는 정규적인 운행 그 자체를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재생산하는 경향-해체하는 경향이 아니라는 진실을 지니게 된다. 국가는 이렇게 자본주의라는 기성의 질서를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기능한다. 국가가 우리들과 관계함에 있어서 또 우리들이 국가와 관계함에 있어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재생산과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이건 간에 여과되어 제거되게 마련인 것이다.

이러한 여과 과정은 또한 혁명과 전복 활동에 대한 탄압의 경우처럼 광포하고 격렬한 것일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쉽게 감지하기 어려운 형태의 교묘한 여과일 수도 있다. 감정, 정서, 사랑, 미움, 분노, 웃음, 춤 같은 것을 억압하거나 배제시키는 형태의 여과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국가는 공적인 것을 사적인 것과 구분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공적인 생활 즉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측면을 우리들의 사적인 생활(흔히 사생활이라고 하는 것) 즉 시시하고 별 의미 없는 측면으로부터 떼어서 가져가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엄격히 구획하고 공적인 것을 앗아감으로써 우리들 사이에 어거지로 칸막이를 짓는다. 즉 민중은 공적인 생활에서 배제되고 사적인 생활만을 가진 존재로서 개별화되는 것이다. 국가는 이렇게 한편으로는 우리를 사사로운 개인으로 파편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소외되게 한다.

그래서 국가권력의 장악을 지향점으로 하는 좌파의 활동들은 어느 것이건 문제를 지니게 된다. 그러한 활동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파편화를 재생산하는 것과 똑같이 인간의 파편화를 재생산하는 경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권력이 곧 국가와 동일한 것이라고 한다면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은 곧 우리들 자신의 주요 부분을 억압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 그것도 진지함과 헌신성과 희생과 모든 종류의 <<무책임성>>을 제거하는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선거라는 수단에 의해 국가에 대한 통제권을 쟁취하고자 하는 개혁주의적인 정당의 경우에 <<국가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 굳게 유착되어 있다>>는 국가의 본질적 속성으로 말미암아 진보정당은 사유재산에 대하여 엄숙하고, 책임감 있고, 존중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라는 압력을-그것도 상당히 크게-받게 된다. 그와 동시에 이러한 체제내적인 정당이라는 위상에 부합하지 않는 평당원들의 변혁지향적인 활동들을 억압하라는 압력 또한 매우 크게 받게 된다.

혁명주의자들은 국가의 모습을 이와 전적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도 권력의 쟁취라고 하는 보다 고차원의 목표를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하고, 그 목표 아래에 자신을 종속시킬 태세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어떠한 혁명 조직도 비합법 비밀활동일 수밖에 없는 조건 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서도 비록 그들이 목적하는 바는 인간이 완전한 인간이 됨을 보장하는 사회, 인간소외가 극복된 사회를 창조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당분간은 국가권력의 획득을 위해 자기들 자신의 파편화와 비인간성이 불가피하게 요청된다는 관점이 암암리에 가정되어 있다. 이 더럽고, 인간이 소외된 세상에서 지배 권력에게 도전하는 유일한 길은 그들의 어법(語法)과 조직형태를 그대로 채택하는 것뿐이라는 관점이 가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권력은 곧 통제하고 지배하는 물리적 힘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은 극단으로 나아갈 경우 권력을 군사력과 동일시하는 것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런데 군대는, 국가의 군대든 혁명군이든, 공장조직이 모방하는 본보기일 뿐 아니라 공장조직의 나쁜 점들을 더욱 악화시킨 모습을 가지고 있다. 군대는 인간의 자기소외를 극단적으로 강화한 조직형태이며, 인간의 정상적인 정서 생활을 조직의 임무에 극한에 이르기까지 복속시키는 조직형태의 전형이다. 그래서 권력이 곧 군사력이라고 생각하는(그리고 권력은 군사력으로써 획득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권력과 비인간화(자기 자신과 타인의)는 사실상 같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한편 운동조직의 국가지향적인 전통-운동조직이 국가조직을 본보기로 삼는 전통-은 남성에게(그리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매우) 특권적 지위를 부여한다. 이는 <<반드시 여성을 남성에 비하여 직접적으로 차별한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사회적 경험의 여러 가지 형태들에 대하여 가치 평가를 하는 방식에 있어서 여성이 불리하게끔 차별적이다>>는 의미다. 예컨대 운동에 대한 직업적인 헌신은 사회적 경험과 활동 각각에 대하여 차별적으로 위계를 설정하는 조직문화를 조장한다. 국가권력 획득을 지향하는 행동이나 경험은 우대 받는다. 반면에 다른 유형의 경험들 예컨대 감성적 관계들, 어린이와 노는 것, 육감적인 것 등은 부차적인 중요성 밖에 부여받지 못한다. 이러할 때 남성, 특히 젊은 독신의 남성이 유리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렇게 해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분리,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의 분리 같은 인간 총체성의 파괴-이것이 바로 국가가 존립하게 되는 기반인데-라는 문제가 운동(혁명적인 혹은 개혁적인)조직 안에서도 일어난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정치는 딱딱한 용무(따분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이며 다른 누구보다도 딱딱한(따분하다고 까지는 말하지 못할지라도) 성(性)에 특히 알맞은 일거리이다. 그것은 어린이에게는 끼어드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농담이나 놀이 같은 것을 허용하지 않는 엄숙한 일거리이다. 전통적 좌파의 세계에서도 사정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3. 사파티스타는
국가권력 지향성을 거부하고 민중권력을 지향 한다

국가권력의 혁명적 장악이라는 관점이 누구보다도 특히 젊은 독신의 남자의 경험 세계에 아주 잘 어울리는 관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하면, 아니 그러한 올바른 이해에 기초해야만, 사파티스타가 일단의 혁명가 그룹으로부터 무장한 지역공동체로 전환하게 되면서 왜 혁명에 관한 전통적인 생각을 포기했는지를 수긍할 수 있다. 그들은 거듭 자신들은 국가권력을 정복하거나 획득하고자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듭거듭 반복해서 그들은 실제 행동에서 그리고 선언문에서 자신들은 국가기관에서의 활동을 변혁운동의 활동형태 가운데 하나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통제와 억압을 통해 지배하는 것을 그 원리로 하는 국가라는 것에 대해 변혁운동이 몸담을 조직형태 중의 하나로 인정할 수 없다는 그들의 입장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례로서는 그들이 <<복종함으로써 지도한다(mander obedeciendo)>>는 원칙을 견결하게 고수하고 있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복종함으로써 지도한다는 것은 운동의 지도자들은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복종해야만 하며, 주요한 사항에 대한 결정은 모두 조직구성원 전체의 집단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하여, 즉 대중민주주의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관점이다. 그런데 이 원칙을 고수한다는 것은 정부와의 교섭 과정에서 부단히 마찰을 빚게 됨을 뜻하였다. 예컨대 시간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사파티스타 간의 갈등에서 그 원칙의 고수에 따른 마찰을 잘 확인할 수 있다.

라캉도나 숲에서는 교통․통신 조건이 매우 열악하였는데 반해서 협상에서 논의되는 문제들은 모두가 매우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매 사안마다 모두 철저하게 토의되어야만 했다. 이럴 때 복종함으로써 지도한다는 원칙을 견지한다는 것은 곧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대표단이 조속한 답변을 달라고 고집했을 때, 사파티스타는 자신들의 원칙을 버리는 대신 당당하게 <<당신들은 인디안의 시계(時計)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수했던 것이다.

훗날 데이비드 사령관(Comandante David)이 이 일에 관하여 자세히 이야기해 준 바에 따르면 사파티스타는 정부 측 협상대표에게 이렇게 대응했다고 한다. <<우리들 인디안은 문제를 이해하고, 의사결정을 하고, 합의에 도달하는 우리들 나름의 리듬과 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이런 입장을 밝혔을 때 그들은 우리를 조롱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좋아요. 그런데 우리는 당신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소. 당신은 지금 일제 시계를 차고 있지 않소. 그런데 어째서 당신이 원주민의 시계를 차고 있다고 말하는 거요. 그 시계는 일본에서 온 것이지 않소라고(라 죠르나다紙, 1995. 5. 17.)>>

이 일화와 관련해서 타쵸 사령관(Comandante Tacho)은 이렇게 논평했다. <<그들은 남으로부터 배울 줄 몰랐다. 그들은 우리의 말을 완전히 거꾸로 알아듣는다. 우리는 시간을 사용하지 시계를 사용하지 않는다(라 죠르나다紙, 1995. 5. 18.)>>

국가를 변혁운동의 활동 공간으로 삼기를 거부하는 입장은 사파티스타가 시민사회와 관계함에 있어서도 또한 중심적인 원칙이다. 사파티스타는 여타 형태의 투쟁들-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행동의 통일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그들의 전략들-민족 민주 대회의 조직이라든가 사파티스타민족해방전선의 조직 등-모두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국가의 의의를 무시한다. 최근 즉 이 해 초에 발표된 라캉도나 정글의 제4차 선언서에서 그들은 민족해방전선의 구성을 제안하였는데, 그들은 그 제안에서 <<이 전선에 참여하려면 그 구성원은 국가의 공직,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또 어떤 급수의 자리이건 그것을 차지하려는 바램 같은 것은 일체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명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파티스타의 입장은 개혁주의적인 좌파로부터 트로츠키주의적 좌파에 이르기까지 국구권력 지향적인 좌파 모두에게서 사파티스타에 동조하던 사람들을 일제히 분개하게 만들었다.

4. 사파티스타는
참과 인간의 존엄성으로 무장하고 인간해방을 추구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사파티스타는 자신들은 세계를 정복하고 싶지 않고 단지 세계를 새로워지게 만들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세계를 새로워지게 만들려면 세계에 대해 변화가 일어나게끔 작용하는 힘이 무언가 있어야 할 터이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권력, 세력 또는 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무언가 자기 나름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권력, 세력 또는 힘이란 곧 국가권력 또는 군사력이라는 식으로 한정적(限定的)으로 명확히 정의(定議)되지 않는다면 그런 것이 아닌 권력이나 힘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권력이 없는 자들의 권력, 얼굴이 없는 자들의 얼굴, 목소리가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단 말인가?

사파티스타는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말을 <<참과 불로 무장한 자들의 말(la palabra de los armados de verdard y fuego)>>이라고 지칭한다. 불은 그렇다손 치고, 참(진리 또는 진실)은 단지 도덕적 속성임에 그치지 않고 바야흐로 하나의 무기로서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참 즉 진실과 진리로써 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총기의 화력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무기이다. 비록 그들이 군대로서 조직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불에 의해서가 아니라 참 즉 진실과 진리로써 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총기의 화력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무기이다. 비록 그들이 군대로서 조직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불에 의해서가 아니라 참 즉 진실과 진리에 의해서 이기려고 작정하고 있다.

목소리 없는 자들, 얼굴 없는 자들이 참으로써 무장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들이 참되다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서양적인 관념과는 사뭇 다르다. 참되다는 것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나 자신들의 나라 사정에 관해 진실 즉 거짓이 아닌 객관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뜻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인간적 본성에 대하여 어긋나지 않는 생각과 행위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참이다.

그래서 참은 곧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다. 존엄해지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는 자주적 지향이기 때문이다. 참은 또 참다 참다 안 되면 마침내 야! 바스타! 라고 즉 <<이제 그만 좀 해!>>라고 말할 수 있는 긍지,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싸우다 죽은 자들의 죽음은 그 의의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역설하는 것은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취급하는 이 사회현실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민중이 인간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역설하는 것은 우리들을 파편화시키고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들 하나하나가 모래알이 아니라 모두가 어우러져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역설하는 것은 또한 자기 자신의 생활을 자기 스스로 통제하겠다고-그러한 자율적 또는 자주적 통제를 금하고 있는 사회 속에 살면서-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다는 것은 또 우리가 투쟁을 통해 향후에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다운 생활 즉 <<실현 가능하지만 아직은 미처 실현되지 않은 생활>>을 지금의 시점에서 미리 실천하는 것이다. 참으로써 또는 존엄성으로써 무장한다는 것은 <<아직은 미처 실현되지 못한 인간다운 생활>>을 지금 현시점에서 실천하는 권력 또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 사파티스타들이, 그리고 우리들이 참 또는 존엄성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종래 통용되던 진부한 권력 개념은 거꾸로 뒤집힌다. 권력, 세력 또는 힘은 이제 현재 존재하는 것을 계속 존재하게 하는 힘-현상 유지하는 통제력 및 지배력-이 아니고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현시키는 힘-현상을 타파하는 창조력-이라고 180도 다르게 개념화된다. 권력 또는 세력이란 <<실현 가능하지만 아직은 미처 실현되지 않은 것(Bloch가 말하는 방식을 빌리자면)을 실현되게 하는 힘이다.

현존하는 것-그것은 한마디로 압축하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이다-이(이것이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이다라는 지배 논리와 더불어) 즉 악(惡)이 질서로서 통용되고 있는 현실 사회에서, 동일성 또는 획일성이 주인 노릇을 하며 군림하고 있는 현실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으로 무장한다는 것은 현존의 지배 질서를 거부할 수 있는, 지배자와 동일해지지 않을 수 있는, 획일적이지 않을 수 있는 권력과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소외에 기초해서 굴러가고 있는 세상에서 사파티스타는 탈(脫)소외, 비(非)소외의 기치를 들어올린다. 억압되고 있는 것 즉 웃는 것, 노래하는 것, 춤추는 것의 기치를 들어올린다. 사회과학, 겉으로 드러난 현 존재에만 의거하고 있거나 세계의 동일성이라는 인식론적 기초 위에서 건축되어 있는 현재의 주류 사회과학의 정규 과목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들의 기치를 들어올린다.

그렇지만 사파티스타의 그러한 시도는 쓸데없는 헛수고가 아닐까? 너무나 공상적이지 않을까? 어떻게 아직 미처 실현되지도 않은 것이 권력 또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어떻게 비소외, 비동일성, 존엄성과 참 같은 것의 권력 또는 힘에 대해 운운할 수 있는가? 그런 것이 과연 권력이나 힘을 가질 수 있는가? 역사 속에는 참과 존엄성을 가지고 있으나 끝내 권력이나 세력과 힘을 갖지 못한, 그래서 무기력하게 패배한 자들의 시체들이 너부러져 있지 않은가?

아직은 미처 실현되지 않은 것이 어떤 형태로건 현재 이미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 하면 아직은 미처 실현되지 않은 것의 힘에도 호소한다는 것은 극히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인 짓거리일 것이다. 순 정신적인 실재로서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이해되는 것들인, 그 가는 길이 선험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역사라든가 이런저런 존엄성이라든가 하는 데에 의거하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먼저 존엄성, 참, 비동일성, 아직은 미처 실현되지 않은 것 등이 어떤 형태로건 지금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에만 역사라든가 존엄성이라든가 참이라든가 하는 것들의 권력 또는 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것들은 현존한다. 물론 그러한 것들은 초월적인 실재로서 현존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반(反)진리인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현재의 거부, 현재의 투쟁, 현재의 부정과 반대라는 형태로 엄연히 현존한다. 참은 반(反)진리에 대한 투쟁으로서 현존한다. 존엄성은 모욕에 대한 투쟁으로서, 비소외는 소외에 대한 투쟁으로서, 비동일성은 동일성에 대한 투쟁으로서 현존한다. 그리고 아직은 미처 실현되지 않은 것은 현재 일방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에 대한 투쟁으로서 현존한다. 요컨대 그것들은 야!바스타!로서, <<이제 그만 좀 해!>>로서 우리들 모두의 내부에 현존한다.

이러한 지점에 대해 안토니오 가르샤 드 레온(Antonio Garcia de Leon)은 사파티스타 성명서들의 편집물 중의 하나의 서문에서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거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반란 성명서가 점점 더 많이 발표되면서 우리는 반역이 실은 우리들 자신의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연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사파티스타의 권력과 힘은 야! 바스타!의 권력과 힘이다. 우리들 모두의 내면 깊숙한 곳에 현존하고 있는, 억압에 대해 반대하고 거부하는 권력, 세력 또는 힘이다.

그러면 그와 같은 야! 바스타!가 현존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우리는 그것이 우리들 모두에게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매우 억압되어 있고, 그래서 항상 모순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들의 내면에 항상 존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야! 바스타!가 존재한다는 것을 특별한 경험을 통해서만, 그런 경험이 있어야만 아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데 따르는 저항심은 민중의 생활에서 ?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굳이 경험해 보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저항심의 표출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수백만 가지의 각종 투쟁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말 프랑스를 뒤흔든 노동자 파업으로부터 이른 아침 직장, 자기를 인간적으로 소외시키는 곳으로 출근할 시간임을 알려주는 괘종시계의 경보에 대해 악담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투쟁이고 그 모든 투쟁 속에 저항심이 내재해 있다.

그러나 이 저항심을 수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도는 없다. 또 이 저항심에 대하여 경험주의적으로 개념 정의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것은 그저 감지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이 야! 바스타!는 존재하기는 하지만 명료하게 표현되지 않는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것의 표현이 종종 명료하지 않은 형태를 가짐으로 인해서 사회의 변화․발전에는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의 예측 불가능성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사파티스타가 과연 권력이나 힘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질문은 이만하면 해명되었을 터이므로 이제 우리들은 어떻게 우리들의 야! 바스타!를, 그들의 야!바스타!가 아니라 우리들의 야! 바스타!를 명확하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우리들 논의의 주제를 바꾸어 정식화할 수 있겠다.

한편 우리들이 사파티스타가 권력 또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위와 같은 식으로 파악할 때, 그러한 인식은 사파티스타들이 어째서 멕시코 정부의 군사력에 의해서 쉽게 압살되어 버리지 않았는지 또는 아직 그렇게 되지 않고 건재한지 그 이유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사파티스타가 압살되지 않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군사력에 힘입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야! 바스타!에 대한 멕시코 국내 및 나아가 전 세계에 걸친 이례적으로 높은 공명에 힘입고 있는 것이다.


권력과 힘의 문제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런 것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 자체에서 나아가 우리들로 하여금 사파티스타 정치활동의 여러 측면들에 대해서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민중을 모욕하고 있는 사회에서 이미 존엄성을 가진 민중이 존재한다는 것, 거짓투성이의 사회에서 참(진실과 진리)을 가진 민중의 존재한다는 것(참과 인간의 존엄성이 그 본질을 충분히 실현하는 것은 못되고 단지 모욕과 반(反)진리에 대한 대립물의 형태로서 존재할 뿐이지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때 운동관(觀)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이루어진다. 즉 민중이 지금 현재 인간적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할 때 정치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활동가가 대중을 향해 일방적으로 말하고 가르치는 정치사업 방식이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귀를 기울여 듣는 정치사업 방식을 중심으로 삼는 것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기 마련인 것이다(이것은 활동가와 대중의 상호 인정의 정치이다).

운동이 라캉도나 정글의 원주민 공동체들과 일체화되어 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운동이 출범하던 당시 일단의 혁명가 집단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하여 원주민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혁명운동의 위대한 전통인 말하기 즉 민중에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지 가르쳐 주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혁명의 정치는 계급의식을 민중의 밖에서부터 민중에게로 가져가는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대신에 민중이 이미 수행하고 있는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받아 안고 그것을 보다 분명하게 표현되게 하는 사업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사파티스타 담론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두 개의 구절이 도출되게 된다. 즉 복종함으로써 지도한다(mander obedeciendo)는 원칙과 물어 가며 함께 걸어간다(preguntando caminamos)는 원칙이 그것이다.

혁명은 이미 주어져 있는 대답을 실행하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는 과정이라고 재정의 된다. 혁명은 대문자 R로 시작되는 Revolution이 아니라 소문자 r로 시작되는 revolution이 된다. 이러한 인식전환으로 혁명은 이제 이미 사전(事前)적으로 그 모습이 규정되어 있는 약속된 땅에 도달하는 것 또는 미래의 어느 날에 갑자기 일어나는 커다란 사건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혁명이라는 말은 이제부터는 지금 현재의 삶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창조적이고 풍부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일을 지칭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인간의 존엄성을 사고의 중심에 놓고 운동을 생각하는 관점과 민중의 투쟁에 귀 기울이기를 중심에 놓는 활동 자세 등은 또한 사파티스타들이 왜 그 지지자들에게 자기들의 정글로 와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게릴라 투쟁에 동참하라고 요청하지 않는지를, 그 대신 민중은 자신이 위치하는 곳이 어디이건 그 현장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이건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지를 납득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요컨대 그들은 <<우리들이 옳다. 그러니 우리에게 동참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대신 <<우리 모두들 우리들의 야! 바스타!를 표현하기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정치행사를 제안하고 주도했다. 아구아스칼리엔트스(Aguascalientes)에서 열린 민족 민주 대회, 사파티스타민족해방운동의 목적과 장래에 대한 범민족적 및 국제적인 자문, 원주민 포럼 등을 발기하고 주도했다. 그리고 지금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륙 간 회합>>을 제안하고 이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두는 자신들의 회원 수를 불리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것이 아니다. 자신들에 대한 지지․지원 운동을 꾸리기 위해서 마련된 것도 아니다. 이 정치행사들은 모두 자기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투쟁, 민주주의와 자유와 정의를 위한 투쟁을 강화하도록 자극하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공명해 줄 것을 호소하는 대상은 아주 일반적인 보통사람들로서 사파티스타는 그것을 시민사회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은 또 계급투쟁이나 프롤레타리아에 관해서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들이 몇몇 마르크스주의자들로 하여금 사파티스타는 개량주의자들이라고 비판을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물론 시민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몇 가지 점에서 보면 불만스러운 바가 있다. 하지만 사파티스타가 왜 마르크스주의 전통 용어들의 사용을 극구 피하고자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마르크수주의 전통 용어들은 지난 1백여 년간 독단적으로 해석되어 옴으로 인해서 지금 상태로서는 그 좋지 못한 전통이 남긴 유산을 잔뜩 부하로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논쟁적이다.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그대로 이 말은 자본에 대하여 특정한 유형 또는 방식으로 예속되어 잇는 특정한 민중집단을 엄격히 한정해서 지칭하는 개념이다.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의 개념이 이와 같음으로 인해서 이 개념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되면 부지불식간에 어느 한 민중집단의 투쟁을 여타 민중집단들의 투쟁에 비해 특권적인 지위에 올려놓게 되며, 어느 한 유형의 투쟁을 여타의 투쟁 유형들에 비해 특권적인 지위에 올려놓게 된다.

그런데 사파티스타의 야! 바스타!라는 개념은 이러한 사고방식과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다른 한편 내가 보기로는 사파티스타의 야! 바스타!라는 개념은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에 비해 마르코스 자신의 노작(勞作)들에 보다 더 부합하는 개념인 것 같다. 또 야! 바스타!라는 개념은 계급적 대립이 비록 관통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우리들 모두를 관통하고 있다는 관점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투쟁에 대한 새로운 개념 즉 인간 활동의 모든 측면을 포괄하는 보다 풍부한 투쟁개념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개념으로 볼 수 있겠다. 나에게는 그렇게 비춰진다.

지난 두 해 동안 멕시코 동남부 정글에서 들고일어난 이 반란집단은 일단의 혁명가들이 치아파스 주 원주민의 투쟁 전통과 상호 접목됨으로써 생겨났다. 이 반란은 또 수많은 민중들로 하여금 불행과 고통으로 인해 죽어 버리거나 아니면 야! 바스타!라고 외치며 들고일어나도록 강요하는 전세계적 신자유주의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1990년대라는 시대 속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최근 수년 동안 진보운동 안에서 전 세계에 걸쳐 토의되어 왔던 주제인 성의 문제, 연령의 문제, 어린이 문제, 죽은 자들 및 죽음의 문제 등 저항운동의 사상과 행동에 관한 여러 주제들에 대하여 상당한 정도로 이를 구체화시켰다(그리고 그것을 한걸음 진전시켰다). 이 모든 것들은 정치를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정치적 활동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연원하고 있다. 또 여성, 어린이, 노인에 대하여 이들 각각에 대해 각각 특정한 형태의 억압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 여성, 어린이, 노인들의 투쟁을 존중하는 정치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에서 연원하고 있다.

노인들의 투쟁을 존중하는 것은 마르코스의 이야기 속에서, 특히 안토니오 노인(Old Antonio)이라는 인물을 매개로 하여, 단골 주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노인들의 투쟁에 대해 존중하는 기풍은 산 안드레서(San Andres)에서 있은 정부와의 회담에서 연로한 트리니다드 사령관(Comandante Trinidad)이 지도적 인물의 하나로 떠오르는 과정을 통해서도 강력하게 부각된 바 있다.

사파티스타 여성들이 사파티스타 남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여성들의 투쟁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봉기의 첫날에 공표된 여성을 위한 혁명헌법과 같은 예를 통해서 여성들의 이러한 노력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1994년 1월 1일 산 크리스토발 고을을 점령한 군사행동, 사파티스타가 수행한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군사행동을 이끈 것이 아나 마리아(Ana Maria)라는 여성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사파티스타 안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어떠한지가 잘 드러나 있다.

마르코스의 문필에서는 어린이 문제와 어린이들의 뛰어 놀 자유의 문제가 줄곧 그 주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는 그가 어린이 문제를 운동이 관심을 가져야 할 제반 문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눈에 띄게끔 두드러지게 이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들의 꿈 안에서 어린이들은 그냥 어린이들일 뿐이며, 그들이 할 일은 어린이답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농지 재분배라든가, 대규모의 대중 동원이라든가, 정부가 무너지는 것이라든가, 선거라든가 선거에서 좌파가 승리하는 것이라든가 하는, 그런 등등의 것들을 꿈꾸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들에 대해서 꿈을 꾸며 꿈속에서 그들이 어린이가 되는 것을 본다…… 우리 사파티스타는 사실상 운동적으로 아직 어리다. 운동적으로 어린이들인 우리 사파티스타가 운동의 어린이로서 할 일은 열심히 뛰어 놀고 그러면서 배우는 것이다(Cristian Calonico Lucio)와의 인터뷰에서, 1995. 11. 11. 미발행)>>


<<그것 봐라. 사파티스타의 투쟁-군사적 충돌과 정부와의 지루한 회담-도 역시 이러한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했다>>라고 말하기 위해 사파티스타의 예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파티스타의 투쟁 안에서 이 문제들-여성 문제, 노인 문제, 어린이 문제 같은-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구체적인 실례를 든 것이다.

사파티스타의 투쟁은 보다 나은 주택, 학교, 병원 등등과 같이 물질적 조건의 개선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만이, 단지 그런 것만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사파티스타의 투쟁은 민중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세계, 사람들이 가면을 쓴 채로 서로에게 자기 자신을 감추지 않고서 상호 관계할 수 있는 세계, 서로가 서로를 상호 인정하는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투쟁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마르코스의 문필작품, 시, 아구아스칼리엔트스의 극장과, 사파티스타가 하고 있던 일들 모두를 잠시 일단 정지시키는 춤들은 혁명 과정의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혁명에 있어서 중심적인 내용들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바와 같다고 하면 우리들에게 던져진 문제는 어떻게 사파티스타를 지원하는 연대위원회를 꾸릴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시작한 운동 과정에 우리들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함께하는 연대를 할까라는 것으로 된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의 야! 바스타!를 이론화하고 행동으로 구체화할 것인가? 우리들의 매개의 투쟁들과 멕시코 동남부 지역에 있는 그들 사파티스타들의 투쟁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문제에 대해 어떤 것이 좋은 대답이 될까? 존엄성이 더 이상 모욕에 대한 투쟁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 인간의 존엄성이 사회 운영의 중심적인 기준이 되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 안에서 그러한 통일을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까? 사파티스타가 인간성을 지키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륙 간 회합을 1997년 4월에서 8월 사이에 5개 대륙에서 개최하는 방식으로 가지자고 제안하고 초청한 것은 아마도 그 같은 질문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파티스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땅에서 일어난, 우리와는 별 상관이 없는 또 하나의 반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론상으로 및 실천상으로 심각한 도전을 안겨 주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도전장인 것이다.

대륙 간 회합을 갖자고 요청한 마르코스의 발표문에 따르면 <<인간의 존엄성이란 민족감정(우월감이나 열등감 같은)에 사로잡히지 않는 민족이며, 다리이기도 한 무지개이며, 심장 속에 끓고 있는 피가 무엇이든 그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또 국경선이니 세관이니 전쟁이니 하는 것들, 지배 권력이 민중을 지배하고자 만들어 놓은 것들을 조롱하는 반란자의 불경한 행위이다>>

우리는 물어가며 함께 걸어간다.
Asking we work. Preguatando caminamos.
서로 물어 가며 함께 걸어가자!

[[나ㅡ1]]
실제와 가상의 치아파스:
마술적 사실주의와 좌파

http://kfhr.org/?p=26992
admin | 2007년 11월 11일
<<실제와 가상의 치아파스: 마술적 사실주의와 좌파
(Real and Virtual Chiapas: Magic Realism and the Left)>>
주디스 애들러 헬먼(By Judith Adler Hellman)
소셜리스트 레지스터(Socialist Register)
2000년호에서.

1994년 1월1일 봉기 전까지 치아파스는 주변부에서도 주변부에 있었다. 이 땅이 스페인에서 독립했을 때에는 아즈텍과 마야 제국 두 쪽 모두의 경계지역에 있었다. 또 명목상 독립됐으나 비참하리만치 가난한 중앙아메리카의 평범한 시골 곧 과테말라의 최북단 지방이 될지, 아니면 멕시코의 최남단 주로 편입돼 사실상 내부 식민지가 될지도 불분명했다.

인구가 300만명 약간 넘는 치아파스는 지금 세계의 배꼽이 되었다. 잉카 사람들이 자신들의 서울을 쿠즈코(Cuzco)라고 불렀듯이 말이다. 이 땅은 너무나 역동적인 동시에 눈길을 끌어당기는 사건들의 땅이 되었다. 그래서 5만 명의 이탈리아 시위대를 로마의 포폴로 광장으로 뛰어나오게 할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치아파스 연대단체 네트워크가 전 세계를 띠처럼 둥글게 둘러싸고, 수십 개의 인터넷 사이트가 알토스 데 치아파스(Altos de Chiapas)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추적하는 데 헌신하며, 5천명의 외국인이 이 땅이 펼쳐 보이는 드라마에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참여하려 이 고지대에 쫙 퍼졌다.

그리고 1998년 4월에는 45개 미국 단체 대표들이 연대네트워크를 결성하기 위해 워싱턴시에 모였다. 요컨대,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EZLN)과 연대하는 것을 정치적, 사회적 헌신의 핵심으로 삼는 열정적인 활동가들이 전 세계에 널려 있다. 그들은 부사령관 마르코스(Marcos)와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도전을 선언한 것으로 평가한다. 또 그들은 사파티스타를 전자 통신을 이용한 정치의 혁명적인 방법을 개척한 대표주자로 본다.

치아파스의 드라마가 그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이유는 뭘까? 그렇게 많은 멕시코 국외의 진보 인사들이 관심의 초점을 치아파스에 두게 만드는 매력은 뭘까? 초기에 마르코스의 통렬한 관찰, 자기반성적인 지혜, 날카로운 지각은 외국인들을 마법에 걸고 놀라게 했으며 수백만 명의 멕시코인을 매혹시켰다. 그러나 때에 따라 영웅적이고, 분석적이고, 반역적이고, 재미있고, 엄숙한 마르코스의 풍모 뒤에는 사건을 아주 멀리서 볼 때 느끼는 매력이라는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 피에를루이지 술로(Pierluigi Sullo), 니노 리시(Nino Lisi), 마르첼로 빌리(Marcello Vigli)가 이탈리아 일간지 <일 마니페스토>(Il Manifesto)의 지면을 통해 지적하고 논쟁했듯이, 치아파스와 관련한 이탈리아에서의 거대한 대중 동원, 대규모 탄원서 서명, 아크테알(Acteal)에서 벌어진 학살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 참가는 <<좌파에게 뭔가 중요한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이 정확하게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유럽과 캐나다와 미국 좌파 일부의 치아파스에 대한 강박 관념은 논외로 하더라도, 그들의 맹렬한 애착을 무엇으로 설명할까? 치아파스에서 멀리 떨어진 이들이 느끼는 매력은, 마르코스의 발언이 쉽게 번역될 수 있고 모든 사건을 설명하도록 쉽사리 재구성될 수 있고 게다가 모든 개인적 및 집단적 요구에 관한 말로 재구성하기 쉽다는 점에 있나? 마이클 로위(Michael Lowy)는 <<이것은 마술, 신화, 유토피아, 시, 낭만주의, 열정, 거친 희망, 신비주의, 믿음이 실린 운동이다. 이는 또한 오만과 유머와 풍자, 스스로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고 열정적으로 썼다. 이는 비참하리만치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의 투쟁이 전혀 다른 환경에 있는 이들에게 주는 매력의 상당 부분을 열거한 것이다. 그가 스스로 지적했듯이, <<매력에 다시 사로잡힘(re-enchantment)을 되살려내는 이 능력이 사파타주의(Zapatism)로 하여금 치아파스 산맥 넘어 멀리 있는 사람들을 황홀하게 하는 이유의 한가지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외부인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것이 엄밀히 말해 환멸한 이들의 매력에 다시 사로잡힘 추구 때문이 아니라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혁명적 변화 전망이 없는 데 낙심해 제3 세계의 혁명 대의를 받아들인 사르트르와 드 보부아르가 가진 것과 비슷한 충동일까? 국내의 투쟁에 참여하고 힘을 쏟는 대신 외부 사람들의 투쟁에 개입하는 것의 현대판인가?

의심의 여지없이 외부인이 남부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일에 느끼는 매력의 상당 부분은 이 사건이 명백하게 극단적이라는 데 있다. 이 사건은 권력자와 권력 없는 이들, 순수한 이와 불순한 이들, 정직한 이와 타락한 이들의 직접 대결로 보인다. 흔히 모호함(더 심하면 포스트모던 상대주의!)으로 가득 찬 세계에 제기된 이런 이미지들의 세련된 단순함을 생각하면, 혼란스럽게 만드는 세부 사실에 직면하는 걸 뺀 무엇이든 할 용의가 있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널려 있다는 건 놀라울 게 없다. 간단히 말하면, 많은 외국인들 사이에 현재 치아파스에서 활동하는 세력들의 지독한 복잡함을 인식하는 데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상황을 단번에 너무나 폭발적으로 만들고 단호한 의지를 갖는 데 강한 걸림돌이 되는 많은 복잡함을 따져볼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사건의 단순화를 부르는 환원주의를 드러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군대와 준군사조직의 폭력과 인권 탄압을 전 세계에 중계함으로써 셀 수 없이 많은 목숨을 구한 측면도 있지만, 치아파스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그 무대의 배우들에 대한 현저히 평면적인 그림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는 전자 통신의 양면적인 기능을 분석할 것이다. 컴퓨터 화면에 즉각 나타나는 이 평면적인 그림은 진짜(real) 치아파스를 극히 일면적으로만 닮은 가상(virtual) 치아파스를 구성한다. 진짜 치아파스는 그 지역 사람들은 물론 외국 활동가들, 인권 운동가들, 사파티스타인민해방군 동조자들, 심지어 우연히 찾아간 방문객조차 이곳 남멕시코 땅에 발을 딛기만 하면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가상 치아파스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행위가 안고 있는 정치적 위험을 강조할 것이다. 국제 반신자유주의 세력의 일부라는 소속감을 강화시키는 이미지, 상징, 표어 묶음을 수천마일 떨어져 있는 이들이 붙잡고 있다고 무슨 해악이 있겠는가? 이렇게 물을 수 있으리라. 확실히 하건대, 이런 열정의 상당 부분은 해롭지 않다. 또 많은 해외 사파티스타 지지단체들이 자국내에서 투쟁을 벌임으로써 치아파스에서 벌어지는 노력을 지원할 필요성도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진짜 치아파스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지닌 호소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매력을 가상의 치아파스가 좌절한 좌파들에게 제시한다는 점도 보일 것이다. 진짜 치아파스에 살고 있는 진짜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은, 가상의 치아파스를 가장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정치적 성숙함을, 그리고 모호함에 대한 더욱 강한 인내를 요구한다.

이는 현재 좌파 정치학의 심각한 문제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문제는, 치아파스에 대한 뜨거운 연대가 성립하려면 명백하게 탄압받는 동질적인 인디오 집단이 필요한 것 같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인디오들은 하나같이 선하고 순수하며, 다면적이지 않으며, 복잡한 개성이라고는 없고, 서로 다른 다양한 이해관계를 지닌 성숙한 사람들이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단순화하려는 충동은 이해할만 하지만, 나는 컴퓨터 화면에 표시되는 치아파스와 땅 위의 실제 상황을 구별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제시할 것이다.

동의하는
지점들 (Points of Agreement)

물론 몇 가지 측면은 논란의 여지가 거의 또는 아예 없다. 예를 들어, 사파티스타 봉기의 배경에 대한 믿을 만한 설명들은, 국민 대다수가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이 사는 천연자원이 특히 풍부한 땅이라는 역설과 비극적 불균형을 당연히 강조한다. 이 멕시코의 내부 식민지에서 적당한 피난처도, 적합한 음식도, 마실 물도, 전기도 없는 사람들이 목재, 옥수수, 콩, 가스, 기름, 수력발전을 멕시코 다른 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치아파스 봉기의 원인에 대한 진지한 분석에서 또 다른 공통점은, 멕시코시티의 중앙 정부가 수세기 동안 소홀히 다루던 이 지역에서 최근 몇십 년 사이에 많은 정부 지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나타난 급격한 경제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루이스 에체베리아(Luis Echeverría) 대통령(1970-1976)의 인민주의적 프로그램은 치아파스에서 정부의 입김을 크게 강화시켰고 공화국의 변두리였던 이 곳의 공공예산 지출이 10배나 늘게 했다. 아주 짧은 기간에 실시된 야심찬 사업으로 치아파스의 정치경제적, 사회적 구조가 뒤바뀌었다. 이 사업은 도로와 댐 건설, 석유 사업, 상업용 커피 경작, 축산과 낙농업에 투자하는 동시에, 멕시코 다른 지역과 치아파스주 내부 다른 지역의 땅 없는 농민들을 라칸돈(Lacandon) 밀림으로 이주시키는 식민화 계획이다.

이런 정부 정책은 마침 중남미 전쟁 및 그 전쟁으로 생긴 대규모 난민 때문에 남부 멕시코 전체의 고용구조가 바뀌던 바로 그 때 치아파스 주민들을 세계 경제 구조 속에 몰아넣었다.

당연히, 이 변화는 여러 원주민 부족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끼쳤다. 일부는 더욱 가난해졌고, 다른 부족은 생계용이 아닌 (상업용) 농업, 교통, 건설, 기름, 목축, 낙농업 분야에서 새로운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경제, 사회적 변화가 유발한 불안정은 곧이은 석유 호황의 붕괴로 더 커졌다.

그런데 석유 호황은 (치아파스) 중심부 고원지대의 많은 원주민들을 멕시코만 해안지역의 임금 노동으로 끌어들인 요인으로 작용했다.(6) 80년대 내내, 석유 호황과 불황이 유발한 사회적 긴장은 연이은 정치, 경제적 충격으로 더욱 깊어졌다. 1982년 외채 위기가 들이닥치고, 이어 커피값이 폭락했으며, 마지막으로 카를로스 살리나스(Carlos Salinas) (1988~1994)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이어진 것이다.

이 정책은 치아파스 주민들에게는 주로 옥수수 및 기초 농산물 생산자에 대한 가격 지원의 폐지와 헌법 27조 수정이라는 형태로 영향을 끼쳤다. 헌법 27조 수정은 멕시코 농촌의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는 핵심이던 땅 분배 프로그램을 북미자유무역지대 참여에 따른 양허 차원에서 중단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치아파스 무력 충돌의 간접 원인과 직접 원인을 이해하기 위한 분석 틀은 이런 연속적인 변화에 중심을 두게 된다. 가장 유용한 분석들은, 자본주의적 관계의 급속한 침투와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뒤이은 개입 철회를 원주민에 대한 인종적 탄압이라는 배경에 비춰 판단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 인종적 탄압은 스페인 정복 때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측면에서 줄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또 이런 분석들은, 역사적으로 치아파스 지주들의 과두정치가 인종차별적 담론 주도와 주도(州都)인 툭스틀라 구티에레스(Tuxtla Gutiérrez)에 있는 제도혁명당(PRI) 지구당 장악이라는 두가지 통제 수단을 경제, 사회, 정치적 지배의 강화에 이용한 것도 강조한다.

이런 조건에서 중앙 정부의 개입은 치아파스 과두정치의 주도권에 도전했지만, 통제력의 밑바탕을 허무는 데까지 가지는 않았다. 반면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경제적 변화가 만들어낸 사회 격변은 원주민과 메스티소(백인과 인디오 혼혈) 농민의 전투성과 자각을 재촉했다. 사건에 대한 거의 모든 설명이, 1994년 사파티스타 봉기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 의식의 각성이다.

투쟁성은 두가지 형태를 통해 표현됐다. 첫째 형태는 사무엘 루이스(Samuel Ruíz) 주교가 이끄는 가톨릭 교구의 현지 활동에서 자라났다. 가톨릭 활동은 1960년대에 전도사들을 훈련시켜 고지대에 파견한 뒤, 성경을 원주민어로 번역하고 그들의 말로 설교하며, 자신들의 억압에 대해 발언하도록 유도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풀뿌리 활동은 1974년에 첫번째 원주민의회를 성사시켰는데, 원주민의회에는 300여 지역사회에서 1250명의 인디언 대표들이 모였다. 이 의회를 처음엔 멕시코 정부가 후원했다. 하지만 사무엘 루이스 주교와 전도사들은 의회를 장악해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내는 통로로 활용했다.

해방신학의 새로운 개념을 전하면서, 지역사회가 스스로 대표를 뽑고 자신들의 문제를 자신들의 말로 개념화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콜리어(Collier)가 지적했듯이, 의회는 “밑으로부터의 조직화 모델을 제시했고 독자적인 농민 단체들이 이 모델에 의지하게 됐다.” 의회는 또 사파티스타의 논의보다 정확하게 20년 앞서 치아파스 원주민들이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두 번째 유형의 전투성은 종종 급진적인 전국 조직과 연계된 농민 조합의 형태를 띠었다. 1968년 10월 철저한 탄압에 직면했던 도시 학생운동 출신자들이 중심이 돼 새로운 좌파세력을 구성했다. 이 조직은, 장기적 관점에서 대중적인 농민운동과 도시빈민운동을 조직하는 고된 작업이 멕시코시티를 장악한 정치 지배층의 주도권에 도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학생운동 출신자들의 신념을 반영한다. 첫 번째 원주민의회가 민족적, 언어적 경계를 넘어 연대하고 자신들의 불만을 파악해 명백히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뚜렷이 보여준 직후, 이런 조직 형태가 치아파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이런 조직적 시도의 역사는 놀랄 것 없이 연대와 분열의 역사이다. 마오주의자, 공산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독자적인 농민운동가, 가톨릭 선교사와 전도사, 복음주의 개신교도간의 협력 이야기이면서 경쟁 이야기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대항 농민조직 지원을 통해 조직 파괴를 꾀한 멕시코 정부에 맞서는 가운데 이뤄졌다. 사파티스타운동은 명백히 이런 조직들의 활동이 자연적으로 성장, 발전한 것이다. 이 사실은, 선구자들이 원주민 지도자를 세우고 밑에서부터 조직을 구성하도록 이끄는 걸 기본 원칙으로 견지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파티스타는, 과거 수많은 조직들이 결국 선택한 체제 타협에 대한 반기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파티스타 운동의 기원을 종교적 조직화 시도와 세속적 조직화 시도, 이 두가지에서 찾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 사파타주의의 성격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들이(12) 한가지 명백하게 공감하는 게 또 있다. 그 공감대란, 지지 기반 형성 방식의 차별성에 대한 것이다. 사파티스타는 10년 이상 동안 치아파스 고지대의 다양한 종족들로부터 넓고 강력한 지지 기반을 확보했다.

일단 혁명적 운동을 일으킨 뒤 주변에서 추종자들을 끌어들이려 하는 전통적인 게릴라 거점 방식과 달리, 사파티스타는 활동 영역 전체에 걸쳐 수천여 마을의 강력한 지지를 끌어낸 것이다. 이런 지지를 구축하기 위해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조직운동가들은 오랜 전통의 멕시코 민족주의 원칙에 의지했다.

또 <<수십 년 동안 집권당의 전유물이었던 멕시코 혁명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전통 깊은 급진적 주제를 제시함으로써, 이들은 치아파스의 가장 억압당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멕시코 전체의 박해받는 사람들을 겨냥한 담론을 개척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전 세계의 활동가와 지지자들을 소집함으로써, 사파티스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국제적 대중의 비판을 의식적으로 선언하고 대변했다.

멕시코 정부로부터 모순적인 대응들을 유발한 것 또한 이 봉기를 규정하는 특징이라는 게 명백하다. 치아파스의 경제, 정치 엘리트들은 정부로부터 이 운동을 깰 확실한 대응책을 끌어내려고 힘을 합쳐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살리나스나 그의 후계자 에르네스토 세디요(Ernesto Zedillo)는 화해정책을 택하지도, 그렇다고 억압정책을 선택하지도 못했다. 또 협상을 하지도, 군사행동을 취하지도 못했다.

대신 상황에 따라 그 때 그 때 가능한 대응책을 추구했다. 일관된 정책이 없다는 것은,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전례 없는 환경과 관련이 있다. 멕시코 정부로서는 이 사건을 국내 문제 또는 지역 문제로 규정하길 원했지만, 기술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고 국제적 여론을 형성하며, 사건을 평가할 수 있었다. 전자 통신의 혁명과 마르코스의 예외적이리만치 효과적인 의사소통 기술은 국제적 연대를 만들어 냈으며, 이 연대는 운동의 지속과 운동가 각 개인의 생명 유지에 기여했다.

복잡함(The complexities)

그래서 반란을 촉발하고 멕시코 정부의 심히 모순된 대응을 부른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 또는 사파티스타가 직접 분쟁지역을 넘어 다른 멕시코인과 세계의 동조자들을 자신들의 더 넓은 운동에 결합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조건에 대한 분석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다. 하지만 국제적 지지 세력을 동원한 부분으로 넘어가면, 흔히 알려진 치아파스 상황은 복잡한 현실을 아주 단순화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 그림이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사람들을 잘못된 쪽으로 유도한다. 치아파스의 투쟁에 동조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계속 펼쳐지는 사건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힘든 처지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아래 제시하겠지만, 심지어 때에 따라서는 의미 있는 방식으로 투쟁을 지원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든다.

치아파스의 복잡한 상황 가운데 정치적으로 중요하지만 외부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빠졌거나 무시된 것으론 어떤 것들이 있을까?

땅 보유(Land tenure)

치아파스의 원주민과 빈농들의 복지를 염려하는 이들 대부분은 이 지역 땅의 56%가 개인 소유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주 반복되는 이 통계는 오해를 유발하는데, 왜냐하면 개인 소유 땅이 몇몇 대지주들에게 집중된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인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정하면, 대농장을 징발해 땅을 요구하는 농민들에게 줄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토지개혁법에 따른 임대용 집단 농지(에히도, ejido)로 개인 소유 땅을 활용할 수 있다고 추론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이 농민운동적 희망 사항은 동 치아파스 곧 사파티스타의 근거지인 로스 알토스(Los Altos)와 라칸돈 셀바(Lacandon Selva)의 분쟁지역에서 실현될 수 없다. 이 지역에는 분배할 수 있는 땅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동 치아파스에는 기존 대토지 소유자(latifundios)와 신 대토지 소유자(neolatifundios)가 지난 30년 동안 거의 사라졌다.

일정한 땅은 초기 토지개혁 및 분배 과정에서 나뉘어져서 집단 농지 임대 형태로 분배됐다. 또 1980년대에 연방정부는 159개 농민 정착지에 분배하기 위해 사유지 8만 헥타르를 사들였다. 그래서 1950년대 이후 수력발전소 건설에 따른 서 치아파스 주민의 동 치아파스 이주,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다른 14개 주와 연방 직할 지역에서 온 땅 없는 농민들의 정착, (국제 환경운동 단체와 라칸돈 마야(역4) 보호운동가들의 압력에 따른) 생태보전지 지정 등으로 해서, 이 지역 땅 상당 부분은 조각조각 나뉘어서 분배됐다. 그래서 이 지역 대지주들은 땅 강제수용에 저항하느니 자신들의 땅 일부를 주변 농민들에게 팔아넘기는 게 낫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됐다.

치아파스 전역에 걸쳐 토지 자원에 비해 사람이 월등히 많은 데서 비롯된 압력으로, 전체 토지의 56%라는 압도적인 비율의 개인 소유 땅은 사실 5헥타르 이하의 소규모 농장들이다. 이 지역의 집단 농지 할당 최소 규모는 20헥타르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외부인으로선 땅 없는 농민들과 지주가 맞서는 농촌 계급투쟁 양상의 전통적인 농민 싸움이 벌어지는 땅으로 보기 십상인 치아파스에서, 땅을 둘러싼 싸움이 실제로 심했다. 그러나 문제는, <<슬프게도 이 싸움이 보통은 가난한 이들 간의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이 결과, 충분치 못한 땅뙈기를 넓히려 애쓰는 국유지 임차 농민들 또는 땅을 물려받을 수 없는 국유지 이용자의 자녀들은 주변의 소지주들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소지주들은 그들대로 불쌍하리만치 작고 질도 떨어지는 생계용 땅을 지키려 맞서고 있다.

종교(Religion)

대부분의 인터넷 이용자들이 익숙한 가상의 치아파스에는 종교적 행위자들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 우리가 컴퓨터 화면에서 만나는 종교적 행위자들은 사무엘 루이스 주교, 그의 교구, 산바르톨로메 인권센터(San Bartolomé Centre for Human Rights)의 가톨릭 인권 운동가들이다. 아마 미국에 근거지를 둔 평화를 위한 목자들(Pastors for Peace)로 대표되는 몇몇 개신교도들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오늘날 치아파스에서 펼쳐지는 사건에서 종교가 중심적인 기능을 하고는 있지만, 실제 현실의 그림은 화면에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가슴과 정신, 무엇보다 영혼을 사로잡기 위한 가톨릭과 다른 종교의 경쟁은 지난 50년 동안 치아파스에서 벌어진 모든 일의 핵심 원동력이었다.

사무엘 주교가 전통적인 보수주의자에서 사회 문제에 개입하는 활동가로 변신한 것은, 1960년대말에 농민들 사이에서 복음주의적 개신교가 퍼지는 것을 제지하기 위해선 가톨릭교회가 밑바닥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 전 지역, 특히 중앙 아메리카에서 그렇듯이, 가난한 이들의 관심과 애정과 지지를 끌어 내기 위한 가톨릭과 개신교 선교사간의 치열한 경쟁이 치아파스에도 있다.

그런데 전도사들의 용기와 진실 된 노력, 사무엘 주교의 지도력과 헌신이 있었음에도, 오늘날 치아파스 인구의 51%만이 가톨릭교도다. 이는 멕시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치다.

치아파스의 억압받는 이들이 정치적 선택의 자유는 결코 얻어 본 적 없지만 종교적 선택의 자유는 점점 더 크게 느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에서 보수까지 수많은 종류의 개신교가 개종자들을 끌어들였다.

개신교 교회에서는 장로교가 가장 세력이 크면서도 가장 오래 됐고, 그 뒤를 오순절교(하느님의 총회, 카리스마틱스, 엘림, 유니서),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이 따르고 있다. 또 비록 숫자는 적지만, 침례교, 루터교, 나자레스교회, 예수교회 또는 예수의 추종자들, 하느님의 교회, 세상의 빛, 평화의 왕자, 진정한 그리스도교회, 중앙아메리카교회 등도 있다.

가장 최근에는 이슬람교와 모르몬교 선교사들이 개종자들을 모으고 있으며, 가톨릭이 우세한 지역에서 쫓겨난 개신교도의 새 정착 지역에서는 곧 이슬람이 숫자 면에서 주요한 종교집단이 될 것이다. 그래서 치아파스의 종교 지도는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분파와 신흥 분파의 조각을 이어 붙여 놓은 형상이다. 게다가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은, 이런 종교적 성향이 정치적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여당인 제도혁명당(PRI) 또는 중도우파의 야당인 민주혁명당(PRD)과 일치하거나 상반되는 것이다.


그래서 치아파스에 대한 가상공간의 설명에서는 마르코스 이외의 인물 가운데서 사무엘 주교가 주인공으로 나타나고,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는 그를 아주 높게 평가하지만, 현장에서 사무엘 주교는 주요 종교 행위자의 하나일 뿐이다. 다른 행위자들을 간과한다면, 인종 정치학을 가로지르는 저강도 종교 분쟁이라고들 평가하는 사태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정치적 행위자들(The Political Actors)

치아파스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의 정치적 행위자들은 복잡하다. 가상의 치아파스가 선한 쪽과 악한 쪽의 분명한 범주로 나뉘지만, 훨씬 더 복잡한 이 땅의 현실은 더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심지어는 정의하거나 분류하기도 힘든 몇몇 그룹까지 등장한다.

가상 치아파스에서 나쁜 놈들은 세디요 정권,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 본인, 내무장관 프란시스코 라바스티다(Francisco Labastida), 내부장관의 공식 협상대표 에밀리오 라바사(Emilio Rabasa 그는 치아파스의 명문 출신이다), 제도혁명당 (아마도 이른바 공룡과 개혁주의자로 다시 분리됨.), 멕시코 정부, 멕시코군, 여기에 미국의 반군진압부대 또는 적어도 반군진압세력으로 은밀하게 행동하는 미국 마약단속국이다. 좋은 편은 사파티스타, 원주민, 일반적으로 농민이라고 불리는 좀 더 폭넓은 범주, 여기에 비정부기구 지원자들, 사무엘 주교와 그의 교구다.

물론 실제로는 더 많은 행위자들이 있고 쟁점이 되는 이해관계도 더 많다. 더 완벽한 상황 분석을 하려면 치아파스 주 정부의 이해관계를 멕시코 정부의 이익과 구별해야 하고, 국가 차원의 전략적 에너지 문제를 치아파스 지역의 경제 및 정치권력들과 구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치아파스의 제도혁명당과 민주혁명당 지구당도 각각 중앙당과 상당히 관심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원주민들의 인종적 차이 외에도 (이 점은 초칠(Tzotzil), 첼탈(Tzeltal), 촐(Chol), 토홀라발(Tojolabal)의 다인종 혼재 현상이 사파티스타 집단의 중요한 특징이 됐기 때문에 사건의 인터넷 판에도 반영됐다),

우리는 땅 임차기간의 중요한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이 차이는 위에서 거론한 국유지 임차 경작자, 소지주, 땅 없는 이들간의 분쟁 과정에서 빈농 내부의 이해 차이를 유발한다. 게다가 이따금 외부의 주목을 받는 게 고작이지만 핵심 집단이 하나 있는데, 스스로를 <<내쫓긴 이들의 군대(army of the displaced)>>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이들은 고지대에서 빠져 나와 해변의 타파출라(Tapachula)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에 흩어진 피난민으로 사파티스타를 지지하지 않는 원주민이다. 이들은 분쟁지역에서 탈출한 치아파스 사람들인데, 대부분은 1993년말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동참 요구를 받았을 때 무기를 들지 않는 쪽을 선택한 이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역사회에서 쫓겨났거나 십자 포화에 갇힐 것을 걱정해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1만 명을 훨씬 넘는 이 내어 쫓긴 이들은, 멕시코 군대 또는 멕시코 정부가 원주민들로 구성한 준군사조직의 폭력에 희생될 때면 인터넷 통신에서 중심사가 된다. 그러나 이들 난민의 상당수가 사파타주의를 거부한다는 사실은 인터넷의 설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인터넷은 비정부기구를 언제나 시민 사회라고 표현한다. 또 실로 많은 전자적 의사소통이 어떤 지점에서는 비정부기구에 의해 걸러진다. 하지만 시민사회라는 용어는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750개 이상의 멕시코 국내 또는 국제 비정부기구들의 다양성과 차이를 담기에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대개 비정부기구들은 우리의 컴퓨터 화면에 서로 차이가 없는 진보적인 외국인과 멕시코인 무리로만 나타난다. 치아파스 분쟁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다소간 협력하며 억압받는 이들을 지지하며 이 외딴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진실을 전하는 이들로만 표현된다.

사건의 인터넷판이 치아파스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비정부기구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이지 않지만, 실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같은 태도를 나타내는 건 아니다. 컴퓨터 화면에서만 치아파스에 관여하는 이들이 실제로 비정부기구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멕시코로 간 이들을 비판하기를 꺼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치아파스에서 일하는 비정부기구 활동가들이나 기타 활동가들은 그리 과묵하지 않다.

1998년에 내가 다양한 비정부기구 활동가들을 인터뷰한 것으로 보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서로 좋아하지도 신뢰하지도 존경하지도 않음이 나타난다. 그 결과 이들은 함께 일하지도 않는다. 멕시코 비정부기구 소속의 많은 이들은 정부의 합리화 과정에서 축소된 정부기구에서 일하던 이들이다.

게다가 몇몇은 비정부기구 활동을 하면서도 과거 정부에서 일할 때 가난한 이들과 어떤 관계였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그래서 다른 비정부기구 활동가들로부터 노골적으로 비난을 받는다. 깊은 철학적 차이는 물론이고 한정된 국제 기부금을 받기 위한 경쟁과 줄다리기가, 비정부기구 활동가들 내부 관계 및 다른 기구 활동가와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예를 들어, 사무엘 주교와 그의 교구는(외부의 진보적인 이들, 특히 진보적인 가톨릭교도들 사이에서 이들의 용기는 폭넓게 존경받고 있는데) 치아파스에서 여성 문제를 위해 일하는 비정부기구 여성들로부턴 아주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많은 여성 활동가들은 사무엘 주교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용기 있는 정치적 태도의 아이러니한 유사점을 지적한다. 이 태도가 아이러니한 것은, 두 지도자의 피임과 낙태, 여성의 권리에 대한 보수적인 사회관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몇 비정부기구 활동가들은 사무엘 주교의 교구와 치아파스의 가장 중요한 국내 인권단체인 프라이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센트레(Fray Bartolomé de las Casas Centre)를 통해 자신들의 일을 여과하라는 압력을 받는 것에 분개했다. 이 인권단체는 사무엘 주교가 세우긴 했으나 비종교적 자치 기구로 운영되어 왔는데, 1994년 봉기 이후에는 다시 사무엘 주교의 교구가 장악했다.

마르코스 부사령관과 사무엘 주교의 관계는 물론이고 사파티스타와 교회의 관계도 기복이 있다.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현지에서 활동하던 농민 권리 옹호 단체들이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에 열정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듯하자, 마르코스는 그들을 제3의 길 주의자들이라고 비난했다. 오랫동안 농민 지도자로 있던 이는 나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르코스는 언제나 시민사회를 들먹이는데, 그가 우리는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는, 농민들이 요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정부 (기관들)과 관계를 맺은 걸 타협이라고 하면서 우리를 제쳐버렸다. 그는 여기 있는 사람들 머리 너머로 멕시코의 다른 지역과 해외의 시민사회에 호소한다. 마치 치아파스에서 멀리 떨어진 이들은 타협한 적이 없기라도 한 듯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치아파스 문제, 더 넓게는 멕시코 문제를 해결할 세력이라고 많은 치아파스 연대 활동가들이 기대하는 시민 사회는 사파티스타 웹사이트와 이메일 리스트를 통해 유통되는 것보다 훨씬 이념적으로 다양하고 서로 충돌하는 공간임이 드러나고 있다. 활동가들의 배열과 얽힌 이해관계 전체를 가까이에서 점검하면, 급진주의, 개혁주의, 보수주의 종교 단체 및 세속 단체가 오늘날 치아파스에서 추구하는 수많은 의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토착성(Indigenismo)

원주민의 정체성을 신장하고 이들의 자치를 추구하는 것이 인터넷 통신에서는 아주 명백한 목표 같아 보인다. 하지만, 멕시코에 원주민이 650만 명이나 있고, 원주민 문제가 멕시코가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심 문제였다는 점에서, 자치 사회를 구성하라는 국제 사회의 거의 일치된 요구가 연상시키는 것보다 이 문제는 훨씬 논란이 큰 것임이 밝혀지고 있다.

자치에 대한 국제 사회의 열광적 지지를 따져보기 전에, 이런 환경에서 멕시코 혁명(1910~1917)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과 이 개념이 만들어낸 공공 정책에 대해 약간이라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할 것이다.

최소한 우리는 멕시코 민족주의의 역사적 정체성을 원주민의 과거와 함께 인식할 필요가 있다.혁명의 여파로, 이 땅의 원주민 뿌리에 대한 이해 및 관심이 되살아나고 스페인에 맞선 봉기를 이끈 목테수마(Móctezuma)의 조카 쿠아우테목(Cuauhtémoc)이라는 인물이 재조명되고, 혁명 이후 지식 사회의 원주민 역사 찬양(새 혁명 정부가 발간한 교과서 또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다비드 시키에로스(David Siquieros),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Jose Clemente Orozco) 같은 멕시코 벽화가의 작업에 나타나는 찬양)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근대 멕시코 원주민들의 미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책 논란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논의는 원주민 사회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인디언 문제 정책 수립에 대한 자의식이 거의 없는 메스티소 또는 백인 곧 원주민 옹호론자들간에 벌어졌다. 놀랄 것도 없이 진보적인 멕시코 지식인들과 정책결정자들은 언제나 이 문제를 놓고 심하게 대립했다.

문화적 생태주의자들, 인종차별 폐지주의자들, 마르크스주의 원주민 옹호론자들이(이들은 인디오와 메스티소의 관계에서 민족 문제를 계급 문제와 대등한 것으로 이해했다.) 혼합주의적 토착주의자들과 정책 형성 주도권을 놓고 대결했다. 혼합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쥐었으며, 이들은 지역 개발 사업과 학교, 의료시설, 도로 건설 사업을 통해 소외당하던 원주민들이 나라의 경제, 정치, 사회적 영역에 동참하도록 유도했다. 이와 동시에, 그들의 전망을 실현시키려면 원주민 언어 사전 발간과 수공예 촉진 같은 일을 통해 원주민 문화를 보존하는 게 필요했다.

하지만 원주민들을 멕시코라는 국가와 시장에 통합시키려는 바로 이 시도는, 제도혁명당에 의한 공작, 인디언 아닌 이들에 의한 총체적 착취, 원주민의 국가에 대한 의존 심화의 길을 열어줬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주의적 정책의 부작용이 드러나는 가운데 1970년대 치아파스 고지대에서 종교 활동을 펼친 전도사들의 주목표는 자치능력 계발이었다.

<<민족적 차이를 지워버리는 대신 초월하는 데 맞춰진 구조를 규범 삼아 다양한 원주민의 다민족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로스 알토스 지역 전도사들의 핵심적인 목표였다. 닐 하비(Neil Harvey)가 서술한 것처럼 <<지역사회 밀착은 타고난 전통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투쟁성과 종교적 신념에 밑바탕을 둔 것이었다. 민족 정체성은 정치적 단결의 기초로 재창조됐다>>.

자치라는 개념이야말로 사파티스타가 제안하고 1996년 2월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과 멕시코 정부 대표간에 체결된 산 안드레스(San Andrés) 협정에 포함된 원주민 자치를 떠받치는 것이다. 이 협정은 <<자치라는 맥락에서 원주민의 자결권을 인식하고 원주민의 참여와 정치적 대표성의 신장, 사법제도에 대한 접근의 보장, 원주민의 문화 교육 경제 활동을 촉진할 것>>을 제기한다.

세디요 정권이 이 협정에 서명하고도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은 합의를 깼다. 또 산 안드레스 협정 이행 요구가 온 땅의 사파티스타 지지자들의 규합 지점이 됐다. 이는 또 멕시코 전역의 원주민들을 선동하는 주제가 됐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설명을 읽어보면, 전세계 진보진영의 의견이 모두 바로 이 모델 뒤에 굳게 버티고 있는 것 같다.

또는,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San Cristobal de las Casas) 교구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총대리인 파드레 곤살로 이루아르테(Padre Gonzalo Iruarte)가 1998년 5월 인터뷰에서 나에게 말했듯이, <<원주민들의 자치 능력을 존중하지 않는 뿌리깊은 온정주의자들이나 이 합의에 담긴 원칙에 반대하는 쪽에 설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구상에 대한 비판이 있다. 멕시코의 원주민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뿌리 깊은 의견 불일치가 이 문제에 대한 각 진영의 태도를 특징짓는다. 내가 고지대 원주민 사회에 관여하는 치아파스의 정치 활동가와 인류학자들을 인터뷰했을 때 두드러진 것이 자치에 대한 열정이 없다는 점이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자치에 대한 다른 전망 제시를 수용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워낙 강한 탓에 치아파스에 자리잡은 이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열정적으로 제시했으나,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아예 꺼려했다는 사실이다.

[[나ㅡ2]]
실제와 가상의 치아파스: 마술적 사실주의와 좌파 2
admin | 2007년 11월 11일
인터넷을 이용한 혁명?(Revolution by Internet?)

치아파스의 투쟁과 전자적 의사소통의 관계는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하나는, 앞부분에서 논했듯이 치아파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정보가 단순화하고 평면화하고 심지어 가끔씩은 인터넷을 통해 재전송되는 과정에서 왜곡돼 전달되는 문제이다. 물론 이 문제는 월드 와이드 웹에서 사람들이 사물에 대해 익히는 방식에 관한 질문과 관련된다. 정보원이 무엇인가? 다른 질문은 우리가 전자적으로 받은 정보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것이다. 인터넷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정치 활동을 하는가?’ 편안한 안방을 벗어나지 않고 빗속에 서있거나 행진하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운동에 참여 할 수 있을 때 이는 뭘 뜻하는가?

정보원(Sources)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번역되고 요약되고 전달되는 것을 세심히 검토해보면, 거의 대부분이 멕시코시티에서 발행되는 좌파 일간지 <<라 호르나다(La Jornada)>>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라 호르나다>는 처음부터 사파티스타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으며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은 여러 측면에서 이 신문에 의지한다. 사파티스타가 인터넷에 직접 연결해 셀바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자신들의 소식을 전한다고 대중들이 알고 있지만, 사실은 <라 호르나다>가 그들의 소식을 중계해준다. 린 스티븐(Lynn Stephen)은 이 사실을 이렇게 썼다.

<<실제로는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이 전자우편이나 인터넷에 직접 연결하지 않는다. 인터넷 사이트 <> 관리자 저스틴 폴슨(Justin Paulson)에 따르면 처음에 라 호르나다를 포함한 몇몇 신문에 팩시밀리로 소식이 전달되며 신문들은 이를 지면에 싣는다. 많은 인터넷 사이트들이 그 다음에 라 호르나다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이를 받아간다.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성명이 인터넷에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에 마치 해방군이 직접 인터넷에 올린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내가 사파티스타 지역사회를 방문했을 때 치아파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들에게 알려준 적도 종종 있다. 심지어는 40킬로미터 밖에 안 떨어진 곳 소식조차도 말이다>>.

사파티스타가 자신들의 소식을 세상에 알릴 때만 <라 호르나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치아파스에서 인터뷰한 많은 사람들에 따르면, 이 신문은 사파티스타에게 치아파스 경계 또는 멕시코 경계 밖의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하도록 메시지를 다듬는 걸 돕는 핵심 자문역을 수행한다. 게다가 라 호르나다는 사파티스타와 특별한 관계가 있어서, 어떤 이들은 이 특별한 관계가 이 신문의 보도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1998년 4월에 만난 치아파스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농담조로 <라 호르나다>를 치아파스 가제트(관보) 또는 오코싱고 타임스라고 부른다. 이 신문이 어떤 지역 소식보다 치아파스와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에 대한 소식을 많이 싣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수도 멕시코시티 소식보다 많을 지경이다. 물론 여기 살면서 두개의 지역 신문을 본다는 점에서 편리하다.

그런데 나는 <라 호르나다>의 기사 가운데 상당 부분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들이 기사를 조작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아주 편파적으로 보도한다는 거다. 사파티스타 동조자 2명이 협곡에서 주검으로 발견되면 이 사실은 언제나 신문에 난다. 하지만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지지자가 아닌 농민 두 명이 주검으로 발견됐다고 치면, 이 신문은 가끔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는다>>.

편집 방향에서 볼 때 이 신문은 몇몇 요소에서 좌파에 가깝고 다른 부분에서는 좌파에 비판적이다. 이 신문이 좌파보다 사파티스타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종종 좌파의 대안적 전망을 도외시하는 일이 생긴다. 예를 들면, 라 호르나다의 의견난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이들은, 자신들의 글이 선거와 관련해 사파티스타보다는 민주혁명당에 더 공감하는 내용일 경우 신문에 실리지 않는 일을 당해 당황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선거는 사기이며 반동적인 이해에 이롭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두지 말아야 한다는 사파티스타의 주장보다 치아파스 지역에서 선거 참여를 촉구하는 민주혁명당의 주장에 더 공감하는 경우이다.

1994년 선거 참관인으로 참여했던 나는, 치아파스 선거에서 문제는 선거 부정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마지막 사람일 것이다. 치아파스의 지배계층이 역사적으로 선거를 자신들의 정당성 없는 정치권력 장악을 강화하는 데 이용해왔기에,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이 1994년 선거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지지자들의 선거 참여를 독려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선거 참여냐 의회 밖 활동이냐의 문제가 좌파의 아주 오래된 논쟁거리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를 논하는 것 자체는 여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1996년 사파티스타는 선거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고, 그 때 민주혁명당은 분쟁지역 주민들이 선거에 참여한다면 툭스틀라 구티에레스 지역 의회를 장악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1998년 5월 나는 민주혁명당 치아파스 지부 지도자인 힐베르토 고메스 마사(Gilberto Gómez Maza)를 인터뷰했는데,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민주혁명당은 주 전체 지자체 111곳 모두에서 조직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얻은 의석에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이 장악한 지역의 사람들이 투표했다면 얻었을 의석을 합쳐 계산하면 야당인 국민행동당(PAN) 의원과 공동으로 의회 다수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농촌지역 학교 선생님들의 아들인 고메스 마사는 국립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치아파스 고지대 원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몇 십 년만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소아과 의사가 됐다. 로스 알토스에서 가난과 무시를 목격하고는 정치활동에 뛰어들어 멕시코노동자당과 에베르토 카스티요(Heberto Castillo)의 추종자가 됐고 이어 카스티요가 1988년 대통령선거에서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Cuauhtémoc Cárdenas)를 지지하기로 하자 민주혁명당에 들어갔다. 그는 <<우리가 싸우는 것은 권력 관계를 바꾸기 위해서다.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반 선거적 태도만 아니었다면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한참 진전할 수 있었을 거다>>라고 주장했다.

고메스 마사와 대화하면서 나는 치아파스의 미래를 걱정하는 외국 활동가들은 적어도 이런 주장을 검토하고 논쟁을 벌이고 싶어할 거라고 느꼈다. 그러나 외국의 치아파스 연대 모임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적당한지를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충실히 논의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선거참여를 지지하는 이들은 보통 자신들의 주장을 지면을 통해 드러내지 않으며 그렇게 하더라도 세상에 이 소식을 전하는 <라 호르나다>가 싣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라 호르나다>의 편파성은, 만약 멕시코 외부의 치아파스 연대 모임들이 비교 분석할 다른 정보원을 갖고 있다면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네트워크를 통해 오고 가는 번역물이나 요약물을 세심히 살펴보면, 전자적으로 전달되는 대부분이 <라 호르나다>에서 나온 것들이다. 확실히 이것은 <라 호르나다>의 한계는 아니다. 이 신문은 민주혁명당과 노조, 다른 좌파의 투쟁을 폭넓게 보도한다. 문제는 인터넷을 통해 유통하기 위해 선택되는 정보의 한계다.

놀라운 것은, 부르주아 언론의 보도를 의심하고 다른 좌파가 만들어내는 분파적 전망에 대해서는 적당한 조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보는 것은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 정보도 특정한 정치적 전망의 렌즈로 거르기는 마찬가지인 데 말이다.

1996년부터 97년까지 캐나다에서 치아파스 연대 활동가 10여명을 인터뷰하면서, 나는 인터넷 사이트 관리자가 누구인지 (이름을 빼고), 그들의 정치관이 뭔지, 또 왜 사람들이 몇몇의 소수가 관리, 감독하는 몇개의 사이트에 의존하면서 불편을 느끼지 않는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세상의 다른 사람들처럼, 나는 텍사스대학의 해리 클리버(Harry Cleaver) 같은 사람들을 존경하며 그에게 감사한다. 그들은 첫 봉기가 일어난 때부터 지금까지 치아파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해주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우리가 접하는 치아파스와 멕시코의 시민사회 전반에 대한 글은 해리 클리버 또는 우리가 그들의 정치적 전망을 전혀 모르는 다른 몇몇 사람들이 고르고 전달한 것이라는 인식이 너무 약하다는 점이다. 그들의 정치적 전망 가운데 우리가 아는 것은 인터넷의 힘과 인터넷이 ‘사이버공간의 시민사회’를(38) 건설할 잠재력에 대한 열정적인 신념뿐이다.

불공평한 접근 문제(The problem of unequal access)

이는 우리가 진보적인 세계의 견해에 공평하게 접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만들어 낸다. 권력과 의사소통에 대한 전통의 지혜는 통신수단에 대한 접근권이 매우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이 보통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진보적인 주장이 부자와 권력이 조정하는 보수, 주류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맥락에서다. 이런 문제를 논할 때 인터넷은 동등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부자와 권력자들과 대응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길을 여는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기회로 평가된다. 인터넷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른 진보적인 활동가들과 연결 통로를 만들고 가상공간 속에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고들 한다. 클리버 등등은, 인터넷이 정부의 검열을 피해갈 가능성을 열고, 전자적 장벽을 잘라내고 정보를 기업과 정부의 지배에서 해방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전자 통신의 성과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멕시코 내 진보 단체들이 여론에 접근할 전자적 수단 확보에서 공평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파티스타가 언론에 능숙한 의사소통 천재라는 당연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다른 좌파 운동이나, 푸에블라(Puebla)와 게레로(Guerrero)와 오악사카(Oaxaca)에서 활동하는 인민해방군(EPR)(역6) 같은 다른 무장혁명세력은 자신들의 웹 관리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마르코스 같은 돋보이는 대변인이 없어서만이 아니다. 그 결과 그들의 전망은 우리 앞에 컴퓨터 화면을 통해 등장하지 못하며 그들의 활동은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좌파에서 가장 중요한 당인 민주혁명당에 대해 멕시코의 언론 전문가 한명은 “멕시코의 전통 좌파는 기술을 혐오하며, 전자적 통신수단을 어떻게 활용할지 아이디어도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유가 뭐든지, 민주혁명당은 인터넷을 활용하는 데 아주 느리며, 그 결과로 이 당이 전자적 자료에 등장하면 그것은 주로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에서 나오는 자료에 뭔가 부족한 당이라는 맥락으로 등장할 때다. 인터넷에 이렇게 편파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전 세계의 동조자들 가운데 두 쪽의 성명에 바탕 해서 각각의 상대적 장점, 다양한 전략과 전술의 적합성을 따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리 참여(Vicarious Participation)

전자적 통신 수단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동료 활동가들과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흥분과 만족의 강도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변치 않고 있다. 글을 올리고 그에 답하는 글을 올리고, 탄원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고 항의성명에 동의하고 (시위 등의) 대중적 집결 경험을 나누는 것 모두가 전세계 진보세력에게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만들어 줬다. 특히 사파티스타 지지자들 사이에서 더 그렇다. 실로 전자 통신수단이 조성한 정치적 업적에 대한 인식은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연대 활동가들 사이에서 가장 민감하다.

하지만 이 연결됐다는 느낌의 상당 부분은 허황된 것인데, 연대행동 차원에서 이뤄지는 전자적 의사소통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치 참여가 단추를 눌러 이름을 목록에 올리는 것으로 이뤄진다면 이런 행동이 꼭 사람들을 단결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탄원 지지자는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게 되고, 아마도 신문 광고료를 기부할 수도 있다. 서명을 거부하는 것조차 탄원집회 옆을 지나가는 사람과 잠깐이라도 논란을 벌일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적 견해를 거부하는 것조차 삭제 단추를 누르는 것만으로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극도로 낮은 개입도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렇게 손쉬운 방법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권력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자리에 수천, 수백, 수십 명의 활동가가 모여 같은 주장을 펴는 것과 비교해 약하기는 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인터넷을 쓰는 우리는 토론 모임에 들어가고 대화방에 들어가 동지를 만날 수 있다. 과거에 우리가 정치적 모임에서 일할 때는 꼭 했던 서로의 차이 확인도 필요 없이 말이다. 더 이상 서로 꼭 만나야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주장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 토론 주제에 싫증이 나면 그냥 접속을 끊고 나오면 된다.

이런 정치 참여로 발생하는 익명성, 모임에서 즉각 빠져 나올 수 있는 가능성, 연대를 표시할 때 노력이 거의 필요 없다는 점은 인터넷 활동의 매력인 동시에 한계다. 전자적 전투성은, 집을 나서기 위해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컴퓨터 의자에서 일어나는 노력조차 없이 운동에 참여하고, 우리가 기억하는 세상의 탄압받는 사람들과 통신할 수 있는 수단을 준다! 치아파스 주변의 연대활동조직에서 널리 존경받는 린 스티븐은 전자적 통신의 또 다른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것이 실로 풀뿌리 활동의 걸림돌이 아니냐>>고 묻는다.

<<매일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치아파스에서 최신 소식을 받고 다른 이들과 대화방에서 만나면서 뭔가 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은 상황파악을 하고 있다. 그러나 통신에서 이끌어낸 것 같은 행동은 중요한 정치적 압력을 형성하는 전술과는 거리가 멀다. 통신에 연결됐다는 느낌은 높은 수준의 지속적인 정치적 압력 같은 것이 생기게 하지 못하는 일이 잦다. 이런 지속적인 압력은 미국 의회에 장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교회 지하실에 모여 지역 의원을 찾아가 전달할 자료를 만드는 것은, 상원의원에게 치아파스의 군국화에 미국이 참여하는 것과 관련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자우편 첨부파일을 보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스티븐은 <<인터넷을 통해 협력하는 활동 가운데 어떤 종류는 실제로 풀뿌리 조직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터넷에서 시민 불복종 운동을 벌이고 팩시밀리를 보내고 전자우편으로 사파티스타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 대하고 풀뿌리 조직화를 하는 것의 대체물은 아니다. 치아파스에 강력한 기반을 갖추고 있는 멕시코 내 모든 단체가 참여하는 광범한 전국적 집회를 개최하는 데 4년 이상이 걸렸다는 것은, 인터넷의 정보 과잉이 전국적 네트워크 형성의 시급함을 약화시켰음을 내비친다.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적인 계획 수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전자적 정치운동의 가장 열성적인 제안자인 해리 클레버조차 인터넷에 의지하는 것의 한계 몇 가지를 인정한다.



<<(인터넷의 힘)의 한계는 인터넷 범위의 한계 (모든 사람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우리가 주지하듯이), 연결 방식 이 두가지에 있다. 인터넷에는 많은 종류의 투쟁에 대한 정보가 널려 있는데, 이 각각의 투쟁은 사파티스타와는 물론이고 서로간에도 연결되지 않은 상태다.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연결 수단이 있다는 것은, 실제로 연결될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보와 연결수단이 보완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데 효과를 발휘한다는 보장도 없다. 인터넷에 널려 있는 사회투쟁에 대한 모든 정보원에 접근할 수 있는 정치 활동가조차도 주기적으로 그 정보의 양에 압도당한다. 인터넷이 확대되면서 또 인터넷을 투쟁에 이용하려는 집단이 늘어나면서, 이 문제는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결론(Conclusions)

치아파스 연대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정보를 얻고 자신들의 정치적 행동의 안내를 받기 위해 인터넷에 의존하게 된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점검했다. 이 새로운 기술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용감하지만 아주 취약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국제적 노력을 상당히 쉽게 만들어 준다. 인터넷 행동주의는, 벌어지는 사건에 영향력을 강화하도록 사람들을 연결하기보다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 연결됐다는 느낌과 정치적 효과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고 다시 중계되는 사건의 모습은, 연대 활동가들한테 정보의 양에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남긴다. 이와 동시에 그 정보는 종종 너무나 편파적이어서 잘못해석하게 한다. 치아파스에 대해 돌아다니는 너무나 단순화한 사건의 모습은 억압받는 사람 쪽에 비중을 더 두는 결정을 상대적으로 쉽게 하게 만든다. 그러나 거기서 어떻게 진전할 것인지, 또는 무엇을 할 것인지의 문제는 아주 어렵다.

전 세계 상당한 숫자의 사람은 치아파스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 문제는 그들이 치아파스의 복잡함을 이해하고 치아파스가 멕시코에 속해 있는 방식을 이해하고 또 멕시코가 국제 질서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더 시간을 투여할 것이냐 여부다.

신자유주의의 돌진과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대중적 투쟁을 전 세계 운동 세력들을 묶는 조직화의 개념으로 활용하려는 의지는 아주 강하다. 그러나 이런 환원주의적 접근은 과거의 환원주의적 모형들이 그랬던 것과 똑같은 좌절과 실패를 불러오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치아파스에서 펼쳐지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약탈로 축소될 수 없으며, 원주민 정체성 문제로 축소될 수는 더욱 없다. 우리는 이렇게 주장하는 접근법을 조심해야 한다.

인권을 존중하라는 아주 근본적인 호소는 상황의 특수성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원대한 기획이라면 진지한 분석이 필요하다. 치아파스에 대한 특정 이념 몇 가지만을 계속 전달하고 반복함으로써 생기는 인식 및 준비 부족은 그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라는 점은, 1998년 5월에 134명의 이탈리아 연대 활동가 가운데 108명이 추방당한 이후 발생한 반발에서 잘 나타난다.

이탈리아인들의 <<우리는 모두 원주민이다>>는 식의 접근법의 모순은 포위된 사파티스타 여성들에 대한 우려와 지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들이 타니페를라스(Taniperlas)에서 행진했을 때 금방 명백해졌다. 이탈리아인들이 나타나자 인디오들이 그들을 공격하고 난폭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그들은 원주민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인디오들이었는데, 제도혁명당 지지자들이며 <<우리는 모두 원주민이다>>는 말이 제시하는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에서 한참 먼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인디오인 것도 분명하다.

혁명 이후의 멕시코 민족주의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이탈리아인들은 덫에 걸렸다. 결국 이 사건은 외세의 침략을 잘 아는 나라에 대한 외세의 침략으로 그려졌으며, 세디요 정권이 민족주의적 방식을 써먹고 외국인 혐오를 강화할 수 있게 했다. 이 정권은 치아파스 주민들에 대한 국제적 우려와 관심에 오직 이런 식으로만 대응했다. 이 불행한 결과는 멕시코와 치아파스에 대한 아주 편파적이고 표피적인 이해에 바탕 한 연대활동 곧 가상공간의 치아파스만 아는 연대활동이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단언컨대, 사건에 대한 심하게 단순화하고 평면적인 설명을 유포하는 것은 방어할 수단이 없는 이들을 향한 전쟁 와중에 차이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어떤 이들은 주장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차이에 대한 공개 토론이 벌어지면 멕시코 정부가 외국 진보세력의 압력을 물리치는 데 이를 악용할 것이라고 우려할 만한 측면은 있다.

과거 세대의 좌파 가운데 많은 이들이 소련 또는 중국 밖으로 차이를 노출시키면 악용될 수 있다고 걱정한 것과 똑같이 말이다. 연대활동가들이 좌파 세력간 또는 원주민사회 내부 또는 치아파스의 비정부기구간 분열과 분쟁을 거론하지 않으면, 멕시코 정부가 이를 모를 것이고 분노와 분열을 악용해 상황을 장악하고 운동을 해체하려 하지는 않을 거라고 정말 믿는 한 좌파의 오랜 문제점은 더 심해지기만 할 것이다.

이 주장을 평가할 때 우리는 세디요 정부의 대중 동원 및 반란 진압 전술의 핵심 고안자가 아돌포 오리베 베를링게르(Adolfo Orive Berlinguer)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1970년대에 오리베는 고지대에서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 전도사들의 의식화 활동과 마오주의자들의 조직화 노력을 조율하는 데 있어서 개인으로서는 아마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파리에서 샤를 베틀랭(Charles Bettleheim)과 함께 공부한 오리베는 멕시코로 돌아와 대중정치 성향의 지도자가 됐고, 이어 마오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전선의 지도자가 됐다. 이 운동에는 마르코스도 참여했다. 오리베는 사무엘 주교의 직접적인 요청에 따라 치아파스에 와서는 농민 중심의 운동을 조직했는데, 이 운동은 마오주의자, 급진적인 교사, 해방신학자, 노동운동가가 뭉친 것이었다.

1980년대 말에 오리베는 카를로스 살리나스를 위해 일했는데, 분쟁지역의 물리적 지형과 정치적 지형을 상세히 아는 점 때문이었다. 또 1994년에는 세디요가 치아파스의 민중봉기 대응을 이끄는 데 그를 기용했다. 오리베가 역사적인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간에 모든 분열을 알고 있기에, 치아파스의 수많은 활동가들의 전망 차이를 우리끼리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논하지 않으면 이런 불일치가 정권에게는 비밀로 유지될 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국제 연대는 목숨을 걸고 정의를 요구하는 수천 명의 생존에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지원은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외부인이 할 때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치아파스를 수사로 여기는 이들이나 심한 단순화로 실제 상황을 아주 어렴풋이 닮았을 뿐인 가상의 사건과 인물에 그냥 만족하는 이들이 지원에 나설 때 효과적인 것이 아니다.

치아파스에 대한 국제적 우려 표명은 의문의 여지없이 사파티스타와 그 지지자들에 대한 공격을 억제하고 제한하는 일을 했으며 물론 많은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효과적인 인권 운동에는 무엇보다 옳고 믿을 만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매력 회복을 덜 생각하고 대신 남부 멕시코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더 생각하려 할 것이다. 비록 그 껄끄러운 현실의 일부는 매혹적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위기에 빠진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중요한 구실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마침 글

실비아 고메스 타글레(Silvia Gómez Tagle), 스티브 헬먼(Steve Hellman), 피터 아이브스(Peter Ives), 콜린 레이스(Colin Leys), 리오 파니치(Leo Panitch), 스콧 로빈슨(Scott Robinson), 에미코 살디바르(Emiko Saldivar), 시드 태로(Sid Tarrow), 찰스 틸리(Charles Tilly)의 조언에 감사한다. 더글러스 찰머스(Douglas Chalmers), 루인 골드링(Luin Goldring), 론 헬먼(Ron Hellman), 켄 사프(Ken Sharpe)에게는 이 생각을 세미나에서 펼칠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다. 또 스티브 헬먼과 피터 아이브스의 지속적인 격려와 자료 제공에 감사한다. 이 연구에 재정적인 지원을 해준 캐나다 사회과학 및 인문학 연구 협의회에도 감사한다.

[[다]]
맺으며

이번 자료도 매우 깁니다. <<권력의 새로운 개념(The Concept of Power and the Zapatistas) ㅡ 죤 홀로웨이 (John Holloway)>>는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선전문제 그리고 그들 투쟁의 긍정성 부분에 초점이 다소 몰려 있는 자료입니다. 반면 보건의료단체연합(http://kfhr.org/?p=26992)이 두 차례에 걸쳐서 게제한 <<실제와 가상의 치아파스: 마술적 사실주의와 좌파(Real and Virtual Chiapas: Magic Realism and the Left)1,2 주디스 애들러 헬먼(By Judith Adler Hellman)箸 소셜리스트 레지스터(Socialist Register) 2000년호>> 는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취재물 가운데 눈에 띄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권력의 새로운 개념에 비해서 <실제와 가상의 치아파스: 마술적 사실주의와 좌파1,2가 보다 더 심층적이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두 개의 자료는 외부의 눈으로 본 사파티스타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사파티스타를 그렸다>>고 가정하지는 않습니다. <<서구의 시각으로 사파티스타를 바라봤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세 개의 글을 만지작거리면서... <<현미경과 망원경이 동시적으로 구비된 눈>>에 대한 경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것의 질적 량적 미진함에 따른 코웃음?>>이 나란하더군요.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 콜롬비아무장혁명군(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 / FARC-EP), 쿠바혁명군(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은 중남미 군구전술에 따라 포진한 조직들이죠. 관련해서 오르테가(산디니스타)는 <<우리는 조선로동당과 협력하여 왔고, 앞으로도 그 협력을 바탕으로 모든 혁명사업을 진행해 나갈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관련해서 2007년 1월 18일 조선중앙통신은 다음과 같이 보도 했습니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신임대통령은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과 정부는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조선 로동당과 정부와의 친선 협조관계를 확대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취임식에 참석한 조선 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KIM동지가 니카라과에 물심양면의 지지와 굳은 연대성을 보내준 것을 잊지 않고 있다. SKIM동지의 영도밑에 조선로동당과 인민이 사회주의 건성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기를 축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니카라과 인민에게 영광 있으라!!!>>는 구호를 재선 인사에서 사용하기도 했죠. 이런 오르테가의 행적은 그가 조선에 대해서 갖고 있는 존경의 정도를 표시합니다. 이런 조선의 그림자는 사파티스타의 투쟁에서도 간헐적으로 비칩니다. 그것을 <<권력의 새로운 개념>>에서 죤 홀로웨이는 우연히 이렇게 드러냅니다.

<<1) 참은 곧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다. 존엄해지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는 자주적 지향이기 때문이다. 참은 또 참다 참다 안 되면 마침내 야! 바스타! 라고 즉 이제 그만 좀 해!라고 말할 수 있는 긍지,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싸우다 죽은 자들의 죽음은 그 의의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존엄성에 대한 태도는 사파티스타의 원칙에서도 적용된다. 그 원칙은 복종함으로써 지도한다(mander obedeciendo), 물어 가며 함께 걸어간다(preguntando caminamos) 이것이다>>.

사파티스타의 이런 원칙은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 콜롬비아무장혁명군, 쿠바혁명군에게서도 적용되는 <<모두의 존엄성, 인민중심>>이 바탕이죠. 바꾸어 말하면 <<중남미에 적용된 주체주의>>입니다. 그들에게 조선과 조선의 근간인 항일무장투쟁 경험 및 그 조직기술-사상은 선진적인 모범이죠.

죤 홀로웨이와 주디스 애들러 헬먼이 놓친 부분이 이것입니다. 몰라서거나, 알면서도 외면했거나...하여간 그들은 그곳에 드리워져 있는 조선의 그림자 또는 주체주의의 흔적을 빠뜨렸죠. 때문에 길고, 깊은 취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창작물은 <<알맹이가 없는 만두>>가 되었습니다.

위 자료가 그런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 합니다.
하지만 사파티스타의 다른 문제들을 들여다보고,
이후 강제 또는 자의에 따라 경험할 수도 있는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실무조직의 구성, 해방사업, 통일사업의 과정을 미루어 짐작하는 재미는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긴 자료를 골라서 올렸습니다.

물론
자료는 단지 자료일 뿐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자료가 널려있고,
과잉 생산되지만...
이런 자료의 포화는 80년~90년 운동 동력을 끊기 위해서
FBI, CIA가 벌인 그 짓거리의 연장이다>>는 점을 참고 한다면
그런 의도에서 좀 자유로운 자료를 찾는 게 어렵다는 사실도 고려돼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덤불 안에서
끄집어낸 자료>>라고 여기고
지루하더라도 살피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르테가(산디니스타), 콜롬비아무장혁명군, 쿠바혁명군, 인디헤나네트워크 등
지역 군구를 건설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나머지 중남미 자주와 주체를 위한 혁명그룹들을 자료로 다루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했습니다.

따라서
통일얘기를 위한 자료는 여기서
마칩니다.

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