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해방전쟁과
분단고착화기도/통일담론자료7
1. 빨치산의 기억
ИСКРА’s RedEye
노동과 삶, 그리고 여행
지리산 역사 기행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흔적
Posted on 2013년 11월 22일 by ИСКРА — Leave a reply
<<지리산,
반란의 고향>>
백두산에서 뻗어나간 백두대간 정맥은 금강산과 설악산, 오대산을 거쳐 태백산에서 속리산으로 방향을 틀어 지리산에서 다시 솟구쳐 오른다.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끝이자 시작이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5개 시군에 걸쳐 있고, 둘레만도 320km에 달하는 지리산은 남한 내륙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서쪽으로는 보성강이 섬진강에 합류하여 남해로 흘러가고, 동쪽으로는 남강과 경호강이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그 웅대함으로 모든 것을 품어내는 지리산은, 예로부터 쫒겨온 자들과 저항하는 자들의 땅이었다. 멀게는 수탈을 피해 산으로 숨어들어간 화전민부터 민란, 반란 세력과 항일 의병들, 갑오농민전쟁의 농민군도 지리산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했고, 가까이는 빨치산의 주요 무대이기도 했다. 이렇게 지리산은 피끓는 저항의 역사를 품고 있다.
<<제주 4.3 항쟁과
여순사건>>
1945년 8월, 해방이 되었으나 그 해방은 우리 힘으로 식민지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며 이룬 것이 아니었기에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친일파 청산, 토지 개혁,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권력 수립 같은 수많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남북한에 미·소 군정이 수립되고 이러한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 급기야는 단독선거가 진행되어 분단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해방으로 부풀었던 기대감이 점차 무너지고 미군정의 무능함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확산되는 분위기 속에서, 1948년 5.10 단독 총선거를 저지하기 위해 일어난 사건이 제주 4.3 항쟁이었다. 그러나 4.3 항쟁은 군대와 경찰, 우익 단체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고, 적게 잡아 3만 명이 넘는 제주도민이 학살당했다.
그 해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14연대 2천여 병사들이 4.3 항쟁 진압을 거부하고 봉기하여 여수와 순천을 점령한 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에는 군인이 정치적 견해를 갖는 것에 대해 제재하지 않아 군인들 중 좌익이거나 남로당원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남로당의 계획이나 지도가 아닌 자발적인 봉기였다.2
이 14연대 봉기 병사들이 정부 진압군에 패하고 두 부대로 나뉘어 화엄사골과 문수골을 통해 지리산으로 들어가, 당시 남로당 지방당 조직이었던 ‘야산대’와 합류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3년 8월 26일 지리산 지구당에서 제5지구당 조직위원회가 해체를 결의하고도 수 년 동안 이어진 기나긴 유격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의신마을, 지리산 역사관이 있는 이곳에서 3km 정도 산을 오르면 지리산 중턱에 대여섯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삼정마을이 나온다. 마을 위쪽으로 나 있는 길이 빨치산 토벌을 위해 만들었다는 벽소령 작전도로다. 이 길은 지금은 통제 구간으로 마을 주민의 협조 없이는 들어가지 못한다.
이 폐쇄된 길로 30분 남짓 더 올라가다가 작전도로를 벗어나 길인듯 길이 아닌 듯한 곳으로 조릿대를 헤치고 들어가면 갑작스레 시야가 트이며 빗점골 끝자락 너덜지대가 나온다. 이 곳이 남부군 총대장 이현상의 최후 격전지이다.
이현상은 1905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때부터 활동한 사회주의자, 노동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26년 6·10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고려공산청년회, 경성트로이카, 경성콤그룹 활동을 거치며 파업과 동맹휴업을 조직했다. 이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1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남로당에서 활동하다가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 남로당 대표로 참석한 뒤, 남로당의 군사정치학교인 강동정치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남으로 내려와 지리산으로 들어간 여수 14연대와 합류한다. 이후 조선인민유격대 총사령관이었던 이승엽으로부터 남한 유격대 총지휘권을 받아 1951년 6월 덕유산 송치골에서 남한 유격대를 하나로 묶는 남부군을 결성하고 총사령관에 취임한다. 1951년 8월 지리산으로 들어간 남부군은 그 해 12월부터 벌어진 군경토벌대 2차 공세에 치명적 타격을 입고, 이현상이 위원장으로 있던 지리산 일대 남부 전역을 지도하는 제5지구당은 1953년 8월 해체를 결의하고, 이현상은 평당원으로 하산하여 지하에서 활동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현상은 9월 18일에 빗점골 너덜지대 자락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투중 사살설부터 자살설, 북한의 공작원에 의한 피살설, 심지어는 생존설까지 이런저런 설이 분분하다. 이현상의 시신은 20일간 서울 등지에서 전시된 후 10월 8일 화개장터 근처 섬진강 백사장에서 화장하여 뿌려졌다.
<<화엄사의
차일혁 공덕비>>
올해(2013년) 8월, 지리산 화엄사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에 비석 하나가 들어섰다. 고 차일혁 경무관 공덕비. 차일혁은 빨치산을 토벌했던 경찰토벌대장인데, 이현상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고 화장하여 뿌려주기도 한 사람이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던 그는 이른바 합리적 보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민간인 학살을 포함한 수많은 피해가 나온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차일혁은 합리적이고 온정적인 태도로 무력보다는 설득에 힘썼다고 한다.
화엄사 공덕비는 차일혁이 지리산의 모든 사찰과 암자를 모조리 불태우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문짝만 뜯어다 불태운 덕택에 소중한 불교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었기에 세웠다고 한다. 이런 일들과 함께 이현상의 장례를 치러줬던 일 때문에 상부에 밉보여 공적이 있어도 훈장도 받지 못하고, 나중엔 한직으로만 떠돌다 젊은 나이에 물에 빠져 죽는다. 비상식적인 시대에 상식인의 운명이 다 그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현재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남부군의 활동은 비극적으로 끝났다. 유격대와 군인, 경찰의 목숨이 덧없이 스러졌다. 토벌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여러 차례 발생했고, 비민분리식 토벌 정책으로 보급 경로를 잃어버린 빨치산이 산간 마을을 약탈하고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남부군은 결국 북으로부터도 외면당하고 남쪽에서 고립되어 힘겹게 생존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다 사라져갔다.
제주 4·3 항쟁과 여수·순천 사건, 그리고 빨치산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해방 후 남한에 남아있던 사회주의 운동 세력이 가진 정치적 역량의 한계와 그로 인한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식민지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통일된 국가를 만들어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민중들의 염원이 있었다. 이를 단순히 ‘공산 공비의 준동과 토벌’이나 ‘남부군 유격대의 영웅적 투쟁과 비극적 최후’로 바라보는 것 같은 도식적 이해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이현상의 최후 격전지인 빗점골 너덜지대를 지나 계곡을 건너 산비탈을 400m 정도 오르면 이현상이 아지트로 사용했다는 장소가 있다. 예전에는 빗점골 너덜 지대에는 <<남부군 총대장 최후 격전지>>라는 표지판이 있었고, 이현상 아지트에도 안내판이 세워져 답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너덜지대의 표지판은 뽑혀 나가고, 이현상 아지트 쪽에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여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 곰을 풀어놓아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결국은 미래를 지배한다. ‘광주사태’가 끈질긴 노력 속에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바뀌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다시 ‘사태’로 되돌리려 하는 자들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역사를 둘러싼 투쟁은 현재와 미래로 이어진다. 그것이 지리산 산봉우리와 골짜기마다 새겨진 역사 속에서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만들고, 나아가 보다 자유롭고 해방된 세상을 위해 싸웠던 민중의 염원을 읽어내야 하는 이유다.
1)최대 8만 명으로 보기도 한다. 최초의 자체 조사 당시 자진 신고만으로도 1만 5천 명이 집계되었다. 그리고 희생자 신고는 2013년까지 계속되고 있다.
2) 남로당은 라디오 뉴스를 듣고 사건 발생을 알았다고 할 정도이다. 지방당 관할이었던 하사관 이하 병사들이 봉기하면서 중앙당 관할이었던 장교들을 같은 남로당원인 줄 모르고 처형해 버리기도 했다. 이 때 처형당할 뻔하다. 당원임이 밝혀져 살아남은 포병 중위 김지회가 14연대 봉기 병사들을 이끌게 된다.
3) 당시 전북일보에 이 싸움은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후에 세월이 가면 다 밝혀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벌어진 부질없는 동족상잔이었다고…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4) 아들의 회상에는 자살에 가깝다는 암시가 있다.
5) 조지 오웰, 1984
국방경비대 12연대가 구례에서 200여 명의 마을 주민을 학살한 것을 시작으로, 산청, 함양, 거제, 문경에서 공비 소탕 명목으로 자행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
빨치산 초기에는 단독선거 반대와 제주도 파병 반대라는 명분이 전남 지역에 강한 호소력 있었고, 남한의 미온적 친일 청산과 농촌의 피폐함 같은 여러 이유로 지역의 주민들이 빨치산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이에 군에서는<< 통비부락의 우매한 주민들이 빨치산에게 식량과 정보를 제공한다>> 하여, 산간 마을 주민을 소개시키고 마을을 불태우는 이른바 청야전술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80만 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생겼고, 육군 제11사단이 <<작전명령 제5호 견벽청야>>라는 미명 아래 지리산 주변 마을의 민간인 천여 명을 학살하기도 하였다.
2. 이현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하종강의 노동과 꿈
http://hadream.com/xe/history/43635
엊그제 지리산 의신마을에서 <<역사와 산>> 회원들과 나눈 이야기와 못다 한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주로 <이현상평전>이 출판된 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새로 수집되었거나, 아니면 미리 알고 있었어도 책에 실지 않은 비공개 증언 혹은 회고담입니다.
<<이현상의
태생>>
이현상의 인물됨을 분석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음험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일 정도로 말수가 적고 실언이 없다는 점,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발언이라곤 없이 남긴 말마다 교과서처럼 정중하고 원칙적이라는 점, 극단적인 탄압을 받는 조직일지라도 항상 그 주류에 있었으며 반조직적인 기질을 보인 적이 없다는 점, 다시 말하자면 늘 가장 혁명적이고 과격한 조직의 지도자였으면서도 인품자체는 매우 보수적인 느낌을 주는 점이 그의 인간성을 측정하기 어렵게 합니다.
그런데 이현상의 출신을 생각해보면 그 성품의 비밀이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책에는 자세히 쓰지는 않았으나 이현상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직계 자손, 즉 왕손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8대조 할아버지 때까지 전주 덕진공원 근처에서 엄청난 부자로 살았는데 전주에 전염병이 창궐하자 금산군으로 이주를 했다고 합니다. 이주하면서 얼마나 많은 땅을 샀는지 - 혹은 본래 전주 이씨 소유 토지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만 - 금산군 군북면 일대에는 지금까지도 이 씨네 소유 토지가 5만여 평이나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현상의 가문이 이 일대에서 얼마나 유명한 정통 양반이었는가는 소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의 증언으로도 확인됩니다. 김성동의 부친은 금산과 대전 사이에 살던 김봉한이란 분으로, 일제 때부터 사회주의자로 항일운동을 하다가 한국전쟁 발발직후 남한 국군에 의해 처형됩니다. 김성동이 겨우 네 살 때였습니다.
김성동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대전에서 온 이상한 엿장수와 이 진사 댁 아들이 네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다>>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대전의 엿장수란 일제하 사회주의노동운동의 핵심이었으며 해방직후 조선공산당의 제 2인자였던 이관술을 가리킵니다. 이관술은 해방 전 두 해 이상, 이현상과 함께 대전에서 엿장수로 가장해 조직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현상이 유명한 이 진사 댁 넷째 아들이란 것이 그래서 할아버지의 기억에 남았던 것입니다.
진사댁이던 이현상의 집안은 대단히 유교적 법도에 엄격해서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외출해야 했으며 이현상이 여름에 남방셔츠만 입고 집에 갔다가 형에게 그러고 어딜 다니냐고 따귀를 맞은 일도 있다고 합니다. 이현상도 빨치산 지도자로 있으면서 대원들에게 복장을 단정히 하라고 지시했다는 일화가 증언으로 남아있습니다.
사실, 이현상이 조선 최고의 양반집안 출신이라는 점은 큰 의미는 없습니다. 봉건시대의 유물인 양반 출신이란 것이 이현상의 품위를 높여주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이현상이 반민중적인 보수주의자로 산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다만, 그의 신중하고 재미없는, 농담이라곤 할 줄 모르는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 다소 복잡하고 난해한 인품을 설명하는 기초가 됩니다.
<<파괴된
집안>>
조선조뿐 아니라 일제강점기까지도 왕손이자 지주로 우대받던 이씨 집안은 해방 후 완전히 쑥밭이 됩니다. 일제 때는 창씨개명을 거부해도 대지주 가문으로 존중받았으나 해방 후에는 빨갱이 집안으로 몰려 스스로 빨갱이가 되지 않으면 살 길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현상의 아버지 대는 세 형제로 이뤄졌는데 세 집 모두 쑥대밭이 됩니다. 특히 이현상이 1948년 가을부터 빨치산 지도자가 된 후로는 극도의 탄압과 살해위협에 시달리다 못해 대부분 고향을 등지게 됩니다.
<<남북한에 생존한 가족들에게 누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는 말아달라>>는 이씨 문중의 요청이 있어 정확한 내용을 공개할 수 없지만, 이현상의 형제와 사촌들은 대부분 고향을 떠났을 뿐 아니라 다수가 전쟁의 와중에 월북하게 됩니다. 남한에 남아 있어봐야 살해될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제일 큰집이던 이현상의 부친과 형들은 나이가 많아 일찍 죽었고 형수를 포함한 이현상의 직계가족들이 모두 월북한 이야기는 책에도 써놨는데, 이현상의 사촌들도 여럿이 월북을 하거나 월북하던 도중 숨진 것입니다.
예컨대 이현상의 둘째 삼촌 집안의 경우 일곱 형제자매의 대부분이 우익에 죽거나 월북하거나 혹은 월북도중 사망해 사실상 작은 아버지 혼자 고향에 남게 됩니다. 이현상이 죽은 후 경찰은 이 분에게 그 시신을 인수해가라고 요청하는데 <<집안 망친 빨갱이는 보기도 싫다>>며 단호히 거부한 것으로 책에 써 있습니다.
이는 사실입니다만, 그 내면을 보면 그렇게 말해야만 했던 작은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일곱 자식 모두 좌익 활동을 하거나 혹은 빨갱이집안으로 몰려 살해당하거나 월북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고향에 혼자 남은 늙은 그가 어떻게 이현상의 시신을 인수해 장례를 치룰 수 있었겠습니까? 전쟁직후의 살풍경한 상황에서 우익들의 준동으로 장례 자체도 불가능했을 것이고, 하더라도 손님 하나 올 리 없으니 말입니다.
막내 삼촌 집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막내 삼촌은 이현상보다 겨우 일곱 살 더 많았던 분으로, 일제 때부터 조카와 뜻을 같이 했다고 합니다. 지리산에 들어간 이현상은 대원들을 시켜 막내 삼촌에게 돈과 쌀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는데, 작은삼촌의 심부름으로 몰래 짐을 실어 나르던 사람이 경찰에 잡히는 바람에 작은삼촌도 연행되어 호되게 고생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터지자마자 곧장 끌려가 총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자식들의 고난도 말할 나위없습니다.
<<이현상의
최후>>
이현상의 최후에 대해서는 참으로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습니다. <<경찰이 죽였다, 국군이 죽였다, 북한의 지시로 빨치산이 죽였다, 아니다 자살했다>>는 의견까지 다양합니다. 사실, 그가 어떻게 죽었는가는 본질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설사 북한의 지시로 죽었다 해도, 남이나 북에서의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나간 후 새로 입수한 증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의 명령으로 그가 암살되었다>>는 증언입니다. 이 증언을 한 사람은 남로당 말기 김삼룡과 정태식을 보필했던 했던 박갑동으로, 현재 반북운동을 하고 있어 증언의 신뢰성에 의심받을 소지가 있지만 일본까지 찾아가 취재해본 결과 상황묘사나 당시 인물들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박갑동에 따르면 전쟁이 <<끝난 후 1957년 경 평양시내에서 우연히 조복애를 만났다>>고 합니다. 조복애는 이현상의 산중 동지의 한 사람으로, 남부군 중에 드물게 살아 북한에 생존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같은 경남 출신으로 박갑동과 오빠 동생으로 부르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이기도 했습니다.
조복애를 만날 당시 이미 남한 출신들은 대부분 숙청되고, 박갑동 역시 처지가 곤란한 때였습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평양거리에서 만난 조복애는 <<빨치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사람에게 북한으로부터 이현상을 죽이라는 무전이 내려왔다. 이에 따라 이현상을 암살했다. 빨치산 고위간부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복애의 말이 신뢰성을 갖는 것은, 이현상이 죽기 전부터 죽은 후까지도 지리산을 비롯한 모든 잔존 빨치산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비판회가 연일 열렸는데 이는 북한의 직접적인 지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국군이나 경찰은 서로 이현상을 죽였다고 주장했지만 어떤 부대가 죽였다는 식으로만 발표할 뿐, 어느 누구도 훗날 나서서 자기가 이현상을 죽였다고 자랑한 이가 없습니다. 이현상을 쏘았거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평생을 두고 자랑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는 보복이 두려웠다 해도 나중에라도 영웅담을 남겼을 텐데 그런 기록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공식적 기록에서 이현상을 사살한 부대로 알려진 경찰 제2연대장이던 차일혁은 <<부하들로부터 사실은 죽은 시체를 발견했을 뿐이라는 사후 보고를 받았다>>고 토로합니다.
박갑동의 상황묘사와 여러 인적관계의 증언은 상당히 신뢰성이 있어, 이 증언 역시 맞으리라 추측이 됩니다. 다만 이중의 간접증언이라서 공식적으로 기술하기는 어렵겠지요. 만일 조복애의 말이 사실이라면, 또 다른 논란이 될 만합니다.
<<남원에서의
시신 전시>>
또 다른 증언은 <<이현상의 시신이 남원읍 장날에 이동 전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현상은 죽었다>>는 내용의 깃발이 걸린 트럭에 이현상의 시신이 담긴 검은 관을 싣고 장터를 누비고 다니며 나와서 구경하라고 방송했는데, <<시신을 보러온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합니다.
관속의 시신은 단정히 염이 되어 검정색 가죽 잠바가 입혀져 있었는데, 사람들 사이에는 그것이 <<임실경찰서인가에서 빼앗은 경찰의 옷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죽은 후 서울에 올라가 이십여 일의 전시를 마치고 내려와 지리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민들을 선무하기 위해 남원에서 이동 전시를 한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현상 사망 후, 빨치산의 몰락은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무렵 남원읍에는 <<커다란 반공호 위에서 사살해 싣고 온 빨치산들의 시신과 생포자들이 매일 전시되어 강제로 주민들이 끌려나와 구경해야 했다>>고 합니다.
죽은 빨치산의 참혹함은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머리나 가슴이나 배가 터져 내장이 끔찍하게 흘러나왔거나 절단되어 차마 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생포된 빨치산들도 신발을 제대로 신은 이가 없고 옷은 전부 너덜거려 속이 다 들여다보였다>>고 합니다. 머리칼이며 수염을 자르지 못하고 감지 못해 거지도 그런 거지가 없구요.
그런데, 간혹 임신을 한 여자 빨치산들도 눈에 띠었다고 합니다. 배가 불룩 나온 젊은 여자빨치산들은 속이 다 들여다보이도록 낡은 옷을 걸친 채 더럽고 비참한 모습으로 앉혀져 있었답니다. 다른 생포자들은 시체 뒤에 줄지어 세워놓는데 임신한 빨치산들은 자리에 앉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네요.
<<이관술의
만세>>
이현상의 동지들이 모두 남과 북에서 처형되었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새로 채록된 증언 중에는 그동안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관술이란 인물은 1930년대부터 전쟁전까지 김삼룡, 이현상과 둘도 없는 선배요 동지였습니다. 그는 조선공산당이 정판사에서 위조지폐를 인쇄했다는 소위 <<정판사 사건>>의 누명을 쓰고 돌아오지 못할 감옥에 수감됩니다.
정판사 사건이 나던 당시 이관술, 이현상과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있던 박갑동은 6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위조지폐 사건은 미국과 이승만이 조작한 누명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쓴 <<이관술 1902-19950>>에 잘 나오는데 박갑동은 <<그 내용이 정확하다>>고 말합니다. 백 살에 가까운 나이로 죽음을 앞둔 노인이, 더구나 지난 수십 년은 우익과 함께 반공운동에 앞장서온 그가 정판사 사건이 확실한 누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아무튼, 누명을 쓴 채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집단처형 되기 위해 끌려나온 이관술에게 사형집행인들이 <<대한민국 만세 한 번 외치고 죽어라>>고 말합니다. 이에 이관술은 <<그럴 수는 없다>>고 대꾸합니다. 그러면 무슨 유언을 할 거냐고 물으니 이관술은 <<조선민중만세!>>를 외치며 총탄을 맞았습니다.
결국 남한의 사회주의지도자들, 이관술 뿐 아니라 이주하, 김삼룡, 정태식, 이현상은 북한에 올라가지 않은 채 대부분 남한에서 저항운동을 계속하다 죽어갑니다. 이현상 역시 지리산에 가지 않았더라도 남한에서 지하운동을 하다 죽었을 것입니다.
3. <<덧붙임>>
하동뉴스(http://www.hadongnews.co.kr)
지리산 빨찌산의 상징적 인물 이현상은 본관이 전주, 충청남도 금산 출신으로, 아버지는 면장을 지낸 이면배(李勉培)였다. 이면배는 4백섬지기 부농으로 덕망이 있어, 대전 충정로에 그의 송덕비가 세워 질 만큼 베품이 많았다. 이현상은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나와 1925년 20세 때 박헌영 등과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여하고, 광복 직후 미군정 시절 한반도 최초의 합법정당이던 조선공산당의 당수 박헌영 아래, 조직부장으로 20대 초반부터 정치 활동을 하였다.
이현상은 1948년 6·25 전쟁 이전부터 지리산에 들어가, 조선유격대 남부군사령관이 되어, 지리산 주변에서 극열한 빨찌산 준동(蠢動)으로 대한민국의 안정을 크게 위협하였다. 그는 6·25 전란 중에 중국 모택동의 전술을 본 딴 산악 유격전을 펼쳐, 결국 전방의 정규군 3개 사단을 지리산으로 유인하는데 성공, 정규전의 전선을 약화시켜, 개성부터 옹진까지의 3·8선 남부지방을 공산화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1953년 7월 휴전이 성립 되고, 김일성이 박헌영을 숙청 할 때, 지리산의 이현상도 박헌영 일파로 몰아 숙청하려 했다. 그해 9월 18일, 낌새를 눈치 챈 이현상이 산을 빠져 나오려 길을 나섰다. 화개 빗점골에 이르러 매복했던 국군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이현상은 따르던 심복들과 몰살당해 목숨을 잃었다. 나이 48세, 파란 만장한 일생을 마친 것이다.
그들 일행을 총격을 가한 국군은 이현상이 죽은 줄을 몰랐다. 정황을 살핀 경찰이 거짓 공격을 감행, 현장을 살펴 비로소 이현상의 주검을 확인 했다. 경찰을 손 안대고 공짜로 이현상 시신을 차지, 즉시 대통령 이승만에게, <<이현상을 잡았다>>고 보고했다. <<이현상은 죽이질 말고 산채로 잡아라>>고 말해 왔던 이승만은, 서울까지 운구 된 이현상을 <<죽은 이현상은 보기 싫다>>며, 시신을 화개로 돌려보냈다. 이현상을 잡은 전과를 두고, 군과 경찰이 법정에까지 가서 다투다가, 이승만이 <<시신을 갖고 있는 쪽의 전과로 하라>>고 명령하니, 경찰 측은 특진 잔치가 벌어졌고, 이현상의 시신은 화장 되어 섬진강에 뿌려졌다. 이현상은 생애 48년 가운데, 철이 든 18세부터 쳐서 30년을 살면서 독립운동을 비롯한 공산주의 운동에 몰두하다가, 12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고, 6·25전란 전후 8년을 지리산에서 보냈으니, 나머지 겨우 9년 동안이 학생시절과 사회주의 지하운동 기간이었다. 숨을 멈춘 그의 품속에서 발견된 수첩에 한수의 이런 시가 적혀 있었다.
智異風雲嘗鴻動 지리산에 풍운 일고 기러기 떼 움직이네
伏劒千里南走越 검을 품고 남쪽으로 천리길 달려 왔으니,
一念何時非祖國 뜻은 언제나 조국 걱정하지 않은 적 없어.
胸有萬甲心有血 갑옷 덮힌 가슴 속엔 피가 솟구치네.
출처 : 하동뉴스(http://www.hadongnews.co.kr)
4. 자료 게시를
맺으며
<<빨치산, 남로당>> 구간에 필요한 자료를 뒤지다가
느낀 것은 <<1945년 8월 15일 ~ 1962년 기억들>> 대부분도
일제강점기, 조선사, 고대사가 그런 것처럼
<<구석구석 손을 탔다. 끔찍하다>>였습니다.
위에 게시한 두 개의 블로그 글은 개인적인 노력, 식견, 경향을 갖고 있는 것이어서
망설였습니다만 공신력?을 갖는 자료들에 비해서
<<의도의 순수성이 있다>>는 점 때문에 게시를 결정 했습니다.
이현상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대체로 4가지 설이 있습니다.
<<진압군에 의한 사살,
조선에 의한 암살,
자살, 생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인모의 진술도 있는데 그는 <<진압군에 의한 사살>>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어떤 게 맞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죠.
역사란 게 그렇습니다.
당시 그것이 정확하게-정직하게 서술되지 않으면
<<추정, 입장에 따른 의견의 공간-그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에겐 지나간 역사가 모두
그에 해당합니다.
자료들을 대체적으로 <<인물중심>>으로 올리는 것은
그것이 옳아서가 아닙니다.
<<인물에 대한 술회를 통해서 보여지는 배경>> 때문입니다.
인물묘사에 추정과 견해가 집중(집착)하면서
자칫 배경에 사실을 실수로 묻혀놓을 수 있어서입니다.
예를 들자면 <<빨치산의 기억>>에서 부차적으로 기술된
차일혁 이야기입니다.
<<그는 빨치산을 토벌했던 경찰토벌대장인데,
이현상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고 화장하여 뿌려준 사람이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던 그는
민간인 학살을 포함한 수많은 피해가 나온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온정적인 태도로 무력보다는 설득에 힘썼다.
2013년 화엄사에 세워진 그의 공덕비는
지리산의 모든 사찰과 암자를 모조리 불태우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문짝만 뜯어다 불태운 덕택에 소중한 불교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었던 기억의 표식이다.
그리고 그는 한직으로 떠돌다가 젊은 나이에 익사한다>>이런 기억의 뒤쪽입니다.
차일혁 이야기는
고향인 금산에서 이현상과 면식이 있고
나이도 엇비슷한 친척들에게서
몇 차례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게 사실일 수 있다>>고 짐작하는 거죠.
그러므로
<<통일 이야기에 앞서서 게시하는 자료들을 볼 때>>
인물이나 얘기의 중심 보다는 그것이 풀어지는 바닥 쪽을 눈여겨보는 게
유익할 수 있습니다.
이 작업이 지루 할 수 있고,
무의미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만지면
분명 아픈데이고,
이제 만져야 하는 곳>>입니다.
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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