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과 원소는 엄연히 다르고 따라서 집합개념과 원소개념도 분명히 다른 거다.
또 집합에는 부분집합이 속하기도 한다.
예컨대 남자들로 이루어진 집합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개개의 남자는 원소이고 이들은 남자들의 집합에 속하고, 남자지만 학생인 경우는 남자집합의 부분집합인 남자학생집합에 속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집합은 그 공유하는 특징에 따라 수만가지가 있을 수 있다.
즉, 남자 자영업자들의 집합, 남자 노동자들의 집합, 또는 남자 사장님들의 집합, 남자 귀신들의 집합. 김씨 성을 가진 남자들의 집합 등......수만가지가 있다.

민족과 그 구성원인 개개인도 서로 다른 거고 그 개념도 다른 거다.
민족은 일종의 집합개념이고 그 구성원인 개개인은 낱개의 원소와 같은 개념이다.
또 민족집합에는 무수한 부분집합이 포함에 돼 있다.
북한에 거주하는 부분민족집합, 남한국민인 부부민족집합, 일본거주 총련 부분민족집합, 조선족 부분민족집합, 해외거주 부분민족집합에서부터 시작해 남자인 부분민족집합,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자영업, 자본가, 근로자, 백수, 거지, 김씨, 이씨, .....등등등.

그런데...문제는 집합에 알맞은 표현이나 주장이 그대로 부분집합이나 그 원소에도 그대로 들어맞지 않는다는 거다.
예컨대, 민족해방이란 말이 집합개념인 민족에 그런대로 어울리는 표현,주장이라고 해도 그 부분집합이나 원소에 해당하는 소수 집단이나 개개인 모두에게 그대로 들어맞는 건 아니다.
쉽게말해, 막말로 민족이 해방된다 하더라도 내 삶이 개선되거나 해방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의 삶을 개선하길 바라지 민족이나 국가, 인류같은 뜬구름 잡는 거대 명분에 대해선 아무래도 흥~!이다.
간혹 예외인 사람들이 있긴 하다.
타인의 삶의 개선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삶을 희생하는 사람들...
그들은 존경받아 마땅하고 또 그만큼 존경받기도 한다.
그런 분들이 존경받는 건 그만큼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즉,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과 달리 아주 예외적으로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여전히 민족의 이익과 민족 구성원의 이익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거짓말쟁이 역설이란 게 있는데...천년이 훨씬 넘는 기간동안 수학자들을 괴롭힌 주제다.
집합에 대한 표현,주장이 그 구성원인 원소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때 헤어나올 수 없는 역설에 빠져든다는 게 이 거짓말쟁이 역설의 핵심이다.
즉, 집합에 대한 언명은 집합에만 적용되어야지 그걸 넘어 원소 개개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된다는 거다.
그러면 필히 역설이 발생하니까...!!

옛날 크레타 섬에 에피메니데스란 사람이 살았는데... 누군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크레타 섬 사람들은 다 그렇게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게 종특이요?"

이에 우리의 에피메니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크레타 인이지만....크레타 인들은 모두가 거짓말을 밥먹 듯하는 거짓말쟁이 입니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에피메니데스의 말이 옳다면 크레타 인인 그 자신도 거짓말을 밥먹 듯하는 거짓말쟁이라서 그가 한 말도 거짓이 되는데... 그가 한 말이 거짓이라면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쟁이가 아니게 되며 에피메니데스도 거짓말쟁이가 아니게 되고 따라서 그가 한 말도 또한 거짓말이 아니게 되는데...즉 거짓말이라고 하면 거짓말이 아니게 되고 거짓말이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 되는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역설에 빠지고 만다.
이를 해결하고자 버트런트 러셀은 계형이론이란 걸 도입했는데...여기서 계형이란 말은 1층, 2층 하는 것처럼 어떤 계단,층계를 두어 집합에 대한 표현,주장과 그게 속하는 원소 개개에 대한 표현,주장을 분리하자는 거였다.
따라서 크레타 인이라는 집합에 대한 표현,주장과 그에 속하는 원소인 에피메니데스에 대한 표현,주장을 1층과 2층을 구별하듯이 따로놓고 보아야 한다는 거다.
물론 이걸로 문제가 깨끗이 해결된 건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집합개념과 원소개념이 분명히 다르다는 건 맞다.
이와 비슷한 역설로는 세비야의 이발사라는 것도 있고...
또 현대 수학과 과학의 기초인 진리성을 뿌리부터 뒤흔든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도 따지고 보면 이 역설에 대한 수학적 증명일 뿐이다.
따라서 집합에 대한 표현,주장을 아무 구별없이 그대로 그 원소 또는 부분집합에 적용하면 피할 수 없는 역설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하다.
민족과 민족구성원도 분명 다른 개념이다.
그럼에도 이를 한데 엮어 싸잡아 같은 걸로 취급하면 역설을 피할 길이 없게 된다.

긴말 필요없이...
민족의 해방이 민족구성원들의 해방을 가져오진 않는다.
또 민족집단 하위의 수많은 부분집단들의 해방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더 간단히 말해, 그게 내 삶의 해방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거다.
친일,친미를 깨부셔서 그게 된다면 모를까?
그래서 민족구성원들이 거기에 동의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뜬구름 잡는 소리다.
반일, 반미, 그 이상이 있어야 한다.
민족해방이 민족구성원들의 삶의 해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큰둥한 거다.
자기의 삶과는 그닥 관계가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