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들, 이제 다 물러갔소?
- 충남아산 유해발굴현장, “그들은 악마였다”

권말선

경찰 놈들이랑 향토방위대인가 하는
총 들고 인상 찌부린 몇 놈들이 우리를
일정때 금광이 있던 산자락으로 끌고 갈 때부터
어째 느낌이 쎄하드라고
뒤통수에 대고 누가 자꾸
가지마라, 야야, 거 따라가지 마라
나 얼라 때 죽은 울 어매 목소리 같기도 하고
니 장가가는거 보고 죽어야지 하시던 울 할매 목소린가
우는 소리 맹키로 자꾸 부르는 거 같아서 섬��하드라고
그래도 설마허니 뭔 일이야 있겠는가 싶었지
저 여나믄 놈들이 얼추 봐도 백 명은 넘어 뵈는
마을 사람들 한티 뭐 심하게 해코지 하긋나
뭔 방공교육인가 시킨다드만 그런거겄지
지 아무리 총을 들었기로 다 이래저래 안면도 있고
저 맨 앞에 총 들고 가는 놈이사 친구놈 동생인디…
설마설마 했지 저 놈들도 다 사람들인디…
아이고, 아지매 등에 업은 아 자꾸 울어싸서 어쩌요
아직 젖도 안 뗀 거 같은디 얼라 놀랐는갑소
어허이, 저그 영식이 처도 끌려와부렀네
쌍가락지 끼워주는거 놀리든게 엊그제 같은디
손주가 인민군 따라갔다고 집안이 풍비박산났다던
웃집 할배까지, 낼모레하는 양반을 뭣 할라고 끌고 왔노
에이, 호로자슥들! 이 전쟁통에 뭐 얻어 먹을거 있다고
쪽바리 물러갈 때 지은 죄 들통날까 발발 떨던 놈들이
양코배기 미국 놈들 등에 업고 총 들고 설쳐�幻�
에잇, 퉤!

고 쪼마낳고 딴딴한게 가슴팍에 사정없이 팍 박혀불더니
아이고야, 더럽게 아프네 옴짝달싹 못 하겠네
구덩이로 몸이 떨어지던 것까진
알라들이 울고 어매들이 소리지르고
여기저기서 윽 윽 신음소리 터지던 거 까진
기억이 가물한데 매캐한 이 냄새는 또 뭐까
내 몸뚱이 우로 그 우로 또 그 우로 겹겹이
그 놈들이 울 동네 사람들 다 총질로 죽인 건가
그 모지른 놈들이 기어이 다 죽인 건가
총질도 모자라 몸뚱이에 불까정 놓았나
마을사람들 죽은 혼이 돼서도 웅성웅성
매일같이 총 맞아 죽는 꿈을 꾸고
총소리에 놀랜 우는 아이 달래고
죽어서도 불에 타 죽는 꿈을 꾸고
죽어서도 부들부들 치를 떨며
행여 저 놈들 들을세라 속엣말로 수근대네
저 놈들이 또 오면 인쟈 우리 한꺼번에 달려듭시다
나무뿌리 꼭 붙잡고 흩어지지 맙시다
남은 사람들 몇 한테라도 말을 해줘야 할낀데요
동네사람들, 더는 여기 산으로 올라오지 마소
양코배기 미국 놈들 총 든 경찰 놈들
향토방위대, 서북청년단 인간도 아닌 그 놈들
쳐다보지 말고 말 붙이지도 따라오지도 마소
말이라도 해 줘야 할 낀데요

어매, 할매!
해가 환히 비추는
풀내음 번지고 꽃내음이 막 나는
대명천지 여기가 어데요?
미국 놈들 이제 싹 다 물러갔소?
악마 같은 그 놈들은 어찌 됐소?
우리 한 다 풀려 나 이제 울 어매 만나로 가는 갑소?

쉬쉬하며 풍문으로만 나돌던 이야기로
67년 만에 우리를 찾았다네
불에 탄 흔적이 보인다며
쌍가락지도 찾았다며
어린 아이도 여럿이고 아녀자들이 많다며
총알이 머리를 뚫고 갔다며
산 사람들이 저리 많이 와서
우리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그래, 그 미국 놈들 이제 영 물러갔소?
완장차고 설치던 우익 놈들 다 잡아들였소?
나 낳다 죽은 울 어매
따라가지 말라고 울며 부르던 어매
한 다 풀리면 저승서 만나려던 울 어매, 할매
아직 여기 구천서 떠도느라 못 만나고 있는데
그라믄 미국 놈들 우리 땅서 여적지 설치는갑소?
총들고 히히덕 거리던 놈들 아직 살아 있는갑소?

그렇다면 날 깨우지 마소
콩 볶듯 따다닥 울리는 총소리
살도 피도 눈물도
울음까지도 다 삼키던 화마
그 뒤에서 히히덕 웃던 놈들 아직 살아있다면
피투성이 한 많은 이 땅에 얼굴을 처박고
우리 더 울어야겠소
날 깨우지 마소
날 깨우지 마소
저 놈들 다 쳐 죽이기 전에는
제발 나를, 우리를 깨우지 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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