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①
트럼프의 집권을 초래한 미국 공화정 250년사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6-07-01)
마쓰바라 히로유키松原宏之
1971년생. 히토쓰바시 대학 사회학부 졸업.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크루즈 캠퍼스 역사학 박사 학위 취득. 릿쿄 대학 문학부 사학과 교수.
『벌레 먹는 근대 ― 1910년대 사회 위생 운동과 미국의 정치 문화』『‘오늘’을 생각하는 미국사』 등의 저서가 있다
* 이 번역글은 분량이 길어 편4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 역자 주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 사회가 민주적이라는 신화이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민주사회 미국이여’라며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도널드 트럼프 탓에 미국 민주정은 엉망이라고도 한다. 두 주장 모두 근본적인 진단은 같다. 미국의 본래 모습이 민주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주정은 애초부터 제멋대로이고 차별적이었다고 보더라도, 미국 역사를, 민주주의를 향해 일직선으로 발전해 온 역사로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독립선언이 발표된 때부터 헤아리면 250년에 이르는 미국 역사를 다시 살펴보자. 과감하게 단순화하면, 저 나라에는 민주정과 더불어 또 하나의 비전, 바로 공화정이 존재해 왔다. 이 두 흐름은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결합하며, 다양한 파생형을 낳으면서 미국 사회를 형성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 주목하여 현대 미국을 이해하는 하나의 발판을 제공하고자 한다.
민주정과 공화정은 비슷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양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으며 종종 첨예한 긴장을 빚었다. 쟁점은 모두를 위한 선(공공선)을 누가 실현할 것인가를 둘러싼 국가 운영관의 차이다. 모두의 일은 모두가 함께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민주정이라면, 무엇이 선인지를 넓고 큰 관점에서 숙고하고 판단하는 일은 그에 걸맞은 자질을 갖춘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 공화정이다. 민주정은 만인의 정치 참여를 제창한다. 반면 공화정은 소수의 덕성과 자질을 갖춘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통치를 맡긴다.
이 글에서는 미국의 본류가 공화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미국이 민주정을 대대적으로 기치로 내세웠던 것은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경험한 20세기 중반에 불과하다. 미국은 공화정의 나라로 시작되었다. 1830년대에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를 쓴 뒤에도 공화정은 민주정과 타협하기도 했고, 때로는 결별하기도 했으며, 또 때로는 민주정을 포섭하기도 했다. 그것은 또한 소수의 대지주와 자본가가 권력을 휘두르는 과두정과도 맞닿아 있으며, 19세기 말에는 다시 패권을 장악했다. 이 공화정 우위의 역사를 살펴보면 제2차 트럼프 정권의 지향을 공연히 일탈로 치부하지 않고, 그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이제 이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 반민주적인 미국 혁명
올해 250주년을 맞은 미국 혁명이, 실은 반민주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물론 영국 왕정에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왕정과 신분제에 대한 비판, 곧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상이 중요했다. 독립선언이 천명한 것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신념이었다. 이것이 민주정의 초석이다.
하지만 독립 이후의 사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18세기 말에는 민주정이라는 말이 중우정(衆愚政)을 떠올리게 했다. 푸줏간 주인이나 술집 여주인에게 국정을 맡기다니, 제정신인가? 훌륭한 왕정 통치를 벗어나 너희는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러한 질문을 받은 독립운동 지도층은 이에 답해야만 했다. 식민지 사회의 지도층이었던 그들에게도 사람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태는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었다.
계몽사상을 배우고 공화정에 정통했던 지도층은 새로운 정치 체제를 맡을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왕을 대신해 공공의 일(res publica)에 마음을 쓰는 주체였다. 그 주체는 다름 아닌 토지라는 확실한 재산을 가진, 따라서 당장의 사익에 좌우되지 않고 공공선을 생각할 수 있는, 자유롭고 자립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바로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공화정이 그들의 이상이었다. 이 정치 체제의 기반에는 타자에게 침해받지 않는 재산권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조적으로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설령 그들이 남성이든 백인이든,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는지 의심스러웠다. 실제로 건국 초기의 선거 제도는 이러한 무산자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민주정에는 엄격한 제약을 가한 것이다.
■ 전형적 공화정으로서의 남부 노예제 사회
이러한 공화정적 미국을 대표한 것은 노예제가 만연했던 남부의 여러 주였다. 뜻밖이긴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식민지 시기부터 북미의 중심지는 대농장을 운영하던 남부 식민지였다. 남부는 처음에는 설탕과 쌀을, 18세기 말부터는 면화와 같은 환금 작물을 노예 노동으로 생산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 재산이야말로 남부 농장주들을 자유롭고 자립한 공화정의 주체로 만들었다.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초기 대통령들이 모두 노예주(州) 출신이었으며, 그 가운데 다수가 노예 소유주였던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최근의 연구는 노예제 농업을 후진적인 것으로 보던 기존의 견해를 뒤집고 있다. 노예라는 명백한 강제노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노예제 농업은 고도로 조직된 근대적 생산 체제였다. 조면기(면화에서 솜과 씨를 분리하는 기계)를 비롯해 수송을 위한 증기선과 선박 운용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최첨단 기술이 가장 먼저 도입되었다.
면화 플랜테이션은 노동의 세분화, 세밀한 감독, 수확량과 노동 효율의 지속적인 계측과 같은 관리 기법을 발전시켰다. 장부와 통계를 활용한 노예 노동의 관리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합리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노예제 농업은 또한 신용 제도와 원격지 시장을 연결하는 금융 네트워크의 중핵을 이루었다. 남부 여러 주는 국내외 상업․금융․공업을 견인한 미국 경제의 중추였다.
이 번영하는 대농업 지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것은 북부 도시의 상인들, 남부와 마찬가지로 대토지 소유를 기반으로 한 금융 자본가들, 그리고 새롭게 부상하던 제조업 자본가들이었다. 면화는 미시시피 유역에서 뉴올리언스로 집적되었고, 뉴욕과 보스턴의 상인들에 의해 수출되는 한편, 신용과 환 거래의 네트워크 속에서 금융자산 형성의 기반이 되었다.
노예제 플랜테이션은 국가의 보호와 폭력으로 유지된 원료 공급지로서 글로벌 자본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북부의 은행과 보험업자들이 자금과 신용을 공급함으로써 노예제 농업은 단순한 남부의 제도가 아니라 대서양 세계를 아우르는 자본주의의 핵심 회로를 이루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전체가 노예제 국가로 편성되어 있었다. <2편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