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트럼프를 저지할 수 있을까?
국제적 내전 시대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6-04-06)
니시 다이라西平等
1971년생. 간사이 대학 법학부 교수.
저서로 『분쟁의 전쟁화를 막기 위해 : 국제법적 통제 가능성』 『법과 힘―전간기 국제 질서 사상의 계보』 『글로벌 헬스법 : 이념과 역사』 등이 있다.
■ 베네수엘라 침공의 ‘내전 논리’
미국의 군사 침공은 지금 새로 시작된 일은 아니다. 무력으로 ‘나쁜’ 정치 지도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도, 어쩌면 익숙한 풍경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6년 1월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허다한 무력 분쟁을 아는 국제법 연구자에게도 충격이었다. 트럼프 정권이, 마약 단속 법령의 집행을 무력행사의 근거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현대 법질서의 근간에 관련되는 사안이다. 먼저, 각국이 자국의 영역에서 배타적으로 강제 집행권을 가진다는 원칙을 정면에서 뒤집는 것이다. 외국에서 행해진 범죄를 미국은 처벌할 수 있지만, 미국의 법 집행 기관이 외국 영역에서 직접 체포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국제법의 원칙이다.
예를 들면, 미국과 중국의 경찰이나 정보부가 일본에서 테러 용의자를 체포․송환하면, 그것은 중대한 주권 침해가 된다. 또한, 법의 강제 집행을 위해 시민을 말려들게 하는 형태로 무력을 행사한 사실은, 형사 절차와 전쟁(무력행사)의 구분을 무너뜨린다. 예를 들면 경찰이, 마약 범죄 조직의 보스를 체포하기 위해, 주변을 폭격해 지역 주민을 살해하는 조치는 결코 허용될 수 없다.
또는 마약 범죄 용의자를, 체포 시도조차 하지 않고 범행 현장에서 잇따라 살해하는 일은 명백한 위법이다. 범죄에 관한 법 집행이 전쟁과는 별개인 것을, 우리의 법질서는 자명한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법 집행과 무력행사가 병존하고, 서로 뒤섞여 있는 예외적 상태도 존재한다. 내전(비국제적 무력 분쟁)이 바로 그러한 혼합적 사태이다. 내전이, 정통성을 자인하는 정부와 그런 정부의 전복을 기도하는 반도와의 사이에 생기는 경우, 적어도 정부 측에서 보면, 반도에 대한 무력행사는 흉악한 범죄 조직에 관한 법 집행으로 규정할 수 있다.
트럼프 정권은,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기 4개월 전부터, 해양에서의 마약 밀수 단속을 법 집행 방식에서 무력행사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때까지는, 해상 보안 기관(Coast Guard)에 의해 용의자를 체포해 재판에 회부한다는 경찰적 방법이 취해지고 있었던 데 비해, 2025년 9월 2일 이후, 마약 밀수 조직의 구성원(으로 의심되는 자)을 현장에서 폭격해 살해한다는 군사적 방법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권의 설명에 따르면, “마약 카르텔”과의 사이에 ‘무력 분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불법 전투원’인 마약 밀수 조직 구성원을 폭격하는 일이 허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2026년 연초에는, 마약 단속 법령의 집행을 이유로 베네수엘라의 수도를 폭격하고, 현직 대통령을 마약 범죄 조직의 주모자로 체포․연행하는 데 이르렀다. 다시 말해, 트럼프 정권은, 법 집행과 무력행사의 구별을 개의치 않고, 오히려 법 집행을 위한 무력행사라는 ‘내전 논리’를 사용하며, 국제적인 군사 조치를 실행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제법의 기본 원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 국제 범죄와 국제법
국제 범죄에 대한 국제법의 표준적 대응은, 범죄인 인도 등의 사법 공조에 의한 확실한 처벌 확보다. 마약 거래와 테러 행위 같은 국제 범죄에 관해서는, 항공기 불법 탈취 방지 조약(1970년)과 마약 부정 거래 방지 조약(1988년), 폭탄 테러 방지 조약(1997년) 등, 다수의 국제 조약이 제정되어 있다.
외국에 있는 범죄자의 확실한 처벌 방법으로, 이런 조약들은, 국제 범죄의 용의자가 그 영역 내에서 발견된 조약 체결국(이하 영역 국가)에 대해서, 그 용의자를 관계국에 인도하든가, 혹은 자국에서 소추․처벌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용의자의 체포는 영역 국가의 사법 당국에 위임되고, 피해를 당한 국가 등 다른 관계국은 영역 국가에서 범죄인의 신병 인도를 받아 소추․처벌을 한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전쟁 범죄와 인도에 반하는 죄 등을 소추하는 국제 형사 재판소(ICC)에 대해서도, 영역 국가에서 용의자 인도를 받는다는 점은 동일하다. 이 점은 “각국은 그 영역 내에서 법의 강제 집행을 배타적으로 행한다”라는 국제법의 기본 원리에서 보더라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 구조가 충분히 기능하지 않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중대한 테러 사건의 용의자를 영역 국가의 정부가 은닉하고, 자국에서 명목적인 처벌을 하고, 관계국으로의 인도를 거절한다면, 적절한 처벌을 요구하는 피해국이 불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피해국이 무력으로 용의자를 영역 국가에서 탈취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국제적인 분쟁(dispute)을 무력으로 해결하는 일은, 켈로그-브리앙 조약(일명, 파리 부전不戰 조약)과 유엔 헌장에 의해 금지되어 있으며, 범죄인 인도 의무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유엔 체제의 기본 원리는, 적어도 20세기 동안은, 국제 사회에서 존중되고 있었다. 1988년 팬암 항공기 폭파 사건(로커비 사건)에 대한 국제 사회의 대응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270명이 희생된 이 테러 사건에서, 리비아 정보원의 관여가 강하게 의심되었다. 주된 피해국인 미국과 영국은, 리비아에 용의자 인도를 요구하고, 리비아가 이를 거절하자, 유엔 안보리(결의 748)를 통해 리비아에 제재를 부과했다. 이 제재는(유엔 헌장 제7장에 근거한 것이라 하더라도) 리비아에 인도를 강제하기 위한 한정적인 비군사적 조치(경제 제재)일 뿐, 용의자 체포를 위해 리비아에 군사 침공을 허가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국제법 학계의 논의는, 그래서는 ‘미온적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범죄자 인도 거부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인정한 일이 ‘지나치지’ 않는가(월권은 아닌가)라고 묻는 것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1999년, 네덜란드에 설치된 특별 법정에 리비아가 용의자를 인도함으로써 해결된다.
물론, 외국 소재 ‘테러리스트’에 무력을 행사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무력행사들은 국제 사회로부터 준엄한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면, 남아프리카의 레소토에 대한 무력행사(1982년)와 이스라엘의 튀니지 폭격(1985년)은, 테러 범죄 조직 구성원이 은닉되어 있다는 것을 이유로 한 무력행사였지만, 아프리카민족회의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표적으로 삼는 무력행사들에 대해서는, 유엔 안보리에서 비난 결의를 포함한 강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1986년에, 미군 병사를 노린 베를린 폭탄 테러에 관여한 이유로 미국이 리비아를 폭격했을 때도, 유엔 안보리․유엔 총회 같은 포럼에서 다수의 국가가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이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에서는 결의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총회는 이 무력행사를 명확히 비난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이 포럼들에서 강한 비난을 표명한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와 제삼 세계 국가들이었다고는 해도, 서방 국가들이 꼭 비판을 주저했던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유엔 총회에서 전해졌던 다음과 같은 스웨덴 외무 장관의 성명은, 당시 외교 담당자의 양식을 보여준다.
스웨덴 정부는 모든 형태의 테러리즘을 반복해 비난해 왔습니다. 이 위협에는 국제 협력의 강화로 대응해야 합니다. 테러 행위에는, 정치적·경찰적 수단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지, 전쟁 행위로 대응해서는 안 됩니다.
국제법 전문가들도, 자위권에 기초해 테러 조직에 무력을 행사한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당화론을 수긍하지 않았다. 당시의 지배적인 견해에 따르면, 국가의 실질적인 지배와 지시를 받지 않는 조직(비국가 행위자)의 테러 행위를 이유로 자위권을 발동해, 국제적인 무력행사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외국에 있는 테러 조직에 대해 국경을 넘어 무력을 사용해 법 집행을 하는 것도 자위권에 포함된다는 주장은 매우 드문 예외적 견해였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 테러 행위를 중대한 안전 보장상의 위협으로 보는 국가가, 테러 조직에 대해 국경을 넘어 무력행사를 기도하는 것에, 국제 사회와 전문가들이 반복해 비판을 표명한다는 것이 1980년대의 세계 상황이었다. 그래서 무력에 의해 범죄 조직을 진압한다는 ‘내전 논리’의 국제화가, 어떻게든 억제되고 있었다.
1990년대에는, 냉전 후에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비판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래도 1998년,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테러 조직의 시설에 미국이 미사일로 공격했을 때, 비판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자위권 행사라는 클린턴 정권의 정당화를 다른 나라가 지지하지는 않았다.
상황이 일변하는 것은 2001년이다.
■ ‘대테러 전쟁’에서의 자위권 이완
2001년 9월 11일, 납치한 여객기를 건물에 충돌시킨다는 미증유의 테러가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테러를 실행한 조직은 아프가니스탄에 근거지를 둔 테러 조직 알카에다였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건 아프가니스탄 정권은 미국에 적대적이며, 알카에다 구성원을 인도하려 하지 않았다. 미국 부시 정권은, 동맹국과 함께, ‘자위권’에 근거해 아프가니스탄에 무력을 행사하고, 저항하는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타도했다. 안보리를 포함한 국제 사회는 이 무력행사를 전면적으로 지지하며, 테러 범죄에 대해 자위권에 근거해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인정하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미국은 자위권에 근거하는 ‘대테러 전쟁’을 그 뒤에도 계속하며, 아프가니스탄만이 아니라, 파키스탄과 예멘 등에서도, ‘표적 살해’로 불리는 테러 조직에 대한 군사 작전을 전개했다. 또한 이스라엘도 이웃한 국가들에 있는 ‘테러 조직’에 대한 군사 행동을 활성화하여, 시리아 공습(2003년)과 레바논 군사 침공(2006년) 등을 실시했다. 이라크 영내의 쿠르드족 조직 PKK에 대해 튀르키예가 행한 군사 작전(2007년)도 ‘대테러 전쟁’의 일종이다. 이러한 군사 행동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초점은 무력행사 자체의 정당성 여부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자위권 행사로서는 과도하다(균형을 결하고 있다)는 점, 다시 말해 무력행사의 규모와 정도를 문제 삼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2014년에는, 이라크 전쟁 후의 혼란과 시리아 내전 중에 급격히 세력을 증식한 무장 조직 ‘이슬람국’을 상대로 무력행사를 시작한다. 과격한 이슬람 원리주의에 기반해 잔혹한 지배를 하는 한편, 프랑스와 벨기에, 튀르키예 등 세계 각지에서 대규모 테러 범죄를 실행한 이 무장 조직에 대해서는, 미국만이 아니라, 아랍 국가들․유럽 국가들․러시아․튀르키예․이란 등도 무력을 행사했다. 무력행사의 법적 근거로 자위권이 내세워진 데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없었지만, 국제 사회가 일치해 이 무력행사를 지지한 것은, ‘대테러 전쟁’의 정통성을 고양했다고 할 수 있다.
‘대테러 전쟁’의 실천이 일상적으로 축적되어 가는 가운데, 국제법 전문가들 또한 그것을 용인하는 자위권론을 제시하게 되었다.
“비국가 행위자의 무력 공격에 대해서도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저강도 테러 행위더라도, 그것이 누적되면 무력 공격으로 간주한다.”
“영역 국가는 스스로 테러 조직을 진압할 의지와 능력이 없으면, 다른 국가의 무력행사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식의 법률 논리가 제기되어, 범죄 조직을 진압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서 실행되는 무력행사에 대한 법적 문턱이 점차 낮아지게 되었다.
■ ‘대마약 테러’ 전쟁으로 비약
이번 베네수엘라 침공에 즈음해, 트럼프 정권은, 침공이 ‘마약 테러리즘’에 대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마약 거래도 비행기 납치 등의 테러 범죄와 마찬가지로, 조약으로 국제적인 형사사법 협력이 각국에 의무화되는 국제 범죄이기는 하지만, 통상적으로 마약 거래가 ‘테러 범죄’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마약 테러리즘’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대테러 전쟁’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이리라.
테러 조직에 대한 무력행사는 지금까지도 용인되었다. 2011년 오바마 정권이 파키스탄에 군대를 파견해, 거기에 잠복하는 테러 조직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처형’했을 때, 유엔 사무총장을 포함한 국제 사회는 환영과 만족의 뜻을 표명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정권도 베네수엘라에 군대를 파견해, ‘마약 테러’ 조직 지도자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해도 되는 게 아니냐고,
일상화되어 버린 ‘대테러 전쟁’을 위해, 테러 범죄 조직에 대한 무력행사가 용인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침공은, 거기에서 한층 더 나아가고 있다.
첫째, ‘대테러 전쟁’이 자위권을 근거로 하는 것에 비해, 베네수엘라 침공은 미국의 마약 단속 법령의 강제 집행을 근거로 삼는다. 국제법상, 자위권은 국제적인 무력행사를 위한 근거로 인정되고 있지만, 법의 강제 집행은 그렇지 않다. ‘대테러 전쟁’은, 범죄 조직을 진압한다는 법의 집행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법적인 정당화의 측면에서는, 자위권의 확장적 해석으로 근거를 확보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는, 여전히 국제적 무력행사를 정당화하는 전통적인 국제법 이론의 틀 안에 있었다. 이에 비해, 베네수엘라 침공은, 범죄 수사와 진압을 위한 무력행사라는 ‘내전 논리’ 그 자체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테러 전쟁’이 말하자면 ‘위장된 국제적 내전’인데 비해, 베네수엘라 침공은 ‘명백한 국제적 내전’이다.
둘째, 베네수엘라 침공이, 정권 교체를 무력행사의 직접적 목적으로 삼고 있었던 점도 심각한 문제이다. 자위권의 목적은 무력 공격에 대한 반격이지, 상대국 정권의 타도가 아니다. 유엔 안보리도,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목적으로 무력행사를 허가하는 것에는 매우 신중하다.
2011년, 안보리는 리비아 내전에 무력 개입을 허가했지만, 이것은 문민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개입을 담당한 NATO군이 실질적으로 반정부 측의 카다피 정권 타도를 지원한 일은, 당시, 강한 비판을 받았다. 무력에 의한 정권 교체는 중대한 내정 간섭이며, 자결권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강하게 비판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번 베네수엘라 침공에서는, 미국은 현직 대통령을 범죄 조직의 주모자로 보고, 체포에 따른 정권 교체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아 군사 작전을 실행했다. 확실히 마두로 대통령은 정통성이 의심스러운 독재자였을 것이며, 심지어 범죄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베네수엘라의 집권자가 범죄자이고 정당하게 통치할 자격이 없는 자라고 미국 대통령이 판단하고, 그 판단을 강제적으로 실현하려고 하면, 그때 베네수엘라의 통치 방식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주권은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미국 대통령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자치권을 행사하는 데 불과하다는 게 될 것이다.
■ 국제적 내전의 시대로
치안과 안전 보장상의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의 영역에서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군사 대국이 바라는 바이다. 특히 상대의 유효한 반격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저비용의 확실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범죄 조직과 반대 세력에 대한 역외에서의 무력행사를 요구하는 압력은 늘 존재해 왔다.
1980년대까지는, 국제 사회의 강한 경계와 비판이 그러한 압력에 대항해, 국제적 내전의 상시화를 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테러 전쟁’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는 가운데 비판의 힘이 약해지고, 국제적 내전의 움직임이 급속히 빨라졌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침공에서는, 국제적인 ‘내전 논리’가, 외국 영역에 있는 범죄 조직의 진압만 아니라, 범죄적이라고 보이는 타국 정권을 굴복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전쟁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자에서 이스라엘의 ‘10월 7일 전쟁’이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특별 군사 작전’이든, 오늘날의 전쟁에는, ‘테러’와 ‘제노사이드’을 행하는 범죄자 집단에 대한 무력행사라는 ‘내전 논리’가 수반한다. 우리는, 국제적 내전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과거 유사한 사건과의 비교는, ‘내전 논리’가 얼마나 확대해 왔는가를 분명하게 부각시킨다. 1989년, 미국은 파나마를 침공해, 독재적 권력자 노리에가 장군을 미국으로 연행해 마약 거래 죄로 소추했다. 이때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이 주장한 정당화의 근거는, 재외 자국민의 보호와 파나마 운하 조약으로 미국에 부여된 간섭권, 노리에가가 무효로 만든 선거에서 승리한 ‘정통한’ 정치 지도자의 동의였다.
낡은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를 감지할 수 있지만, 이 주장은 전통적인 국제법상의 논의를 기조로 하고 있어, 법 집행을 위한 무력행사라는 급진적인 정당화 근거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 군사 침공에 대해서는, 국제 사회에서 명확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유엔 총회는, 미국의 국제법 위반을 비난하고, 즉시 정지와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또 미주 기구(OAS)도 파나마 인민의 자결권을 지지하고, 침략을 비난하는 결의를 냈다.
이번 베네수엘라 침공에서는, 분명히 ‘내전의 논리’라고밖에 볼 수 없는 논리가 제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의 비판은 미약하다. 이번만이 아니다. 무력에 의한 테러 용의자의 살해인 표적 살해에 관해서도, 또는 지난해 9월에 마약 밀수 선박이 폭격을 당했을 때도, 국제적인 비판의 목소리는 작았다. 법이 계속 경시되기 때문에 비판할 의욕을 잃은 것은 아니다. 비판할 의욕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법이 계속 경시되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법 질서의 노골적인 경시로 인해, 고전적인 주권 국가 간의 권력 정치가 다시 도래하리라고 보는 견해는 상당히 낙관적인 시각이리라.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닌 미국 정권이, 법 집행을 이유로 타국에 일방적으로 간섭하고, 그 나라의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면, 미국이 정당하지 않다고 여기는 정치 지도자는, 그와 같은 간섭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대국의 비호를 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세력권에 의한 세계의 분할을 의미한다. 고전 외교에서, 세력권이란, 유럽의 주권 국가 간의 관계를 제어하는 원칙이 아니라, 식민지에서 대국 간의 이익 분배를 실현하는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세력권에 편입된 식민지 사람들은, 지배적 대국의 이해에 따라 자유롭게 처분될 대상일 뿐이어서, 자주적인 정치적 주체성을 가질 수 없었다. 정치적 주체성과 주권이 상호 승인되지 않은 관계에서는, 주권 국가 간의 권력 정치조차 성립할 수 없다.
■ 법의 지배를 위해
노골적인 힘의 발동으로 국익의 일방적인 실현을 노리는 트럼프 정권의 행동에 대해, 법의 지배를 옹호해야 한다는 점을 말할 필요도 없다. 원래 국제 사회에서 ‘힘의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법의 지배란 무엇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조약 문서가 스스로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법을 이용해 지배하는 것이며, 법 그 자체가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권력자가 법을 원용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법의 지배’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권력 욕구를 관철하기 위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정당화를 꾀한다면, 그것은 ‘법에 의한 지배’일 뿐 ‘법의 지배’가 아니다. 법에 의해 정당화를 꾀하는 권력자의 논리를 비판하고, 법의 적절한 해석을 통해 그 행위를 제약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법의 지배가 실현된다.
적대하는 국가의 국제법 위반을 지적하고 철저하게 비판하는 한편, 동맹국의 위반은 눈을 감는 태도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법을 이용하는 ‘법에 의한 지배’의 한 측면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태도가 횡행하는 와중에는, 위법 행위의 비판은 단순한 정치적 적대의 표현으로 보여 설득력이 없다. 그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정당화가 정치적 적대를 강화하여, 오히려 질서 파괴에 가담하고 만다. 그 때문에 ‘법의 지배’의 실현에 있어서, 동맹국의 진지한 비판이야말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린란드에 대한 강경한 병합 요구를 트럼프 정권이 일단 취하한 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맹국의 일치된 비판은 결코 무력한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국제법에 힘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강대한 권력자에게 영합하여 독자적인 이익을 노릴 일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여 강한 비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세카이』, 202604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