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따멍大濛』이 증언하는 백색 테러의 실상
발밑을 확인하면서 짙은 안개를 헤쳐 나가다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6-02-27)
스미키 히카리栖來ひかり
1976년생. 교토시립예술대학 졸업. 문필가. 타이완 거주.
『시간을 가로지르는 타이완 Y자형 갈림길』 『일본 타이완 만화경』 『타이완리즘』등의 저서가 있다.
■ 천위쉰陳玉勳 감독이 도전하는 백색 테러
2025년 12월 말, 타이완에서 한 편의 영화가 뜨거운 반응 속에 상영되고 있다.
제목은 『따멍大濛』. 백색 테러 시대의 타이완이 무대인 역사 영화로, 공개되고 불과 2주 사이에 흥행 수입은 약 19억 원을 돌파했다. 극장에는 10대 젊은이부터 고령자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령층이 찾는다고 한다. 오랜 세월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가 시장을 석권해 온 타이완에서, 타이완 영화, 게다가 백색 테러라는 무거운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이 정도로 폭넓은 연령층을 동원하는 일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역주】 타이완의 2․28 사건(1947년)
1947년 2월 28일, 타이완에서 정부의 부패와 폭력에 항의하는 시민 시위가 발생했고, 당시 중국 국민당 정부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수천~수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당시 타이완은 일본 식민지 지배(1895–1945년) 이후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 정부가 통치하고 있었다. 정부 관리의 부패와 경제 혼란 속에서 시민 불만이 폭발했고, 진압 과정에서 많은 지식인과 지역 지도층이 체포․처형되었다. 2․28 사건은, 타이완 현대사에서 가장 큰 국가 폭력 사건이며, 이후 장기간의 권위주의 통치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감독은 천위쉰. 허우샤오셴侯孝賢과 에드위드 양 등과 함께 타이완 뉴시네마의 차세대에 해당하며, 시험 경쟁과 학력 사회를 그린 『열대어』(1995년), 타이완의 연회 문화를 유쾌하게 담아낸 『축연! 셰프』(2013년), 그리고 일본에서는 야마시타 노부히로山下敦弘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1초 앞 그녀』(2020년) 등, 결핍과 실패 속에서도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간적이면서도 경쾌하게 그려 왔다.
그런 천위쉰이 백색 테러를 정면으로 다룬다고 듣고, 줄곧 고대해 왔다. 그 배경에는 『건망촌健忘村』이라는 작품에서 제시된 시선이 있다. 청나라 말부터 민국 초기, 중국 서남부의 빈한한 마을에, 어떤 도사가 ‘근심을 잊게 하는 신기한 물건’을 들여와,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는 대신 마을을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게 하는 내용이다. 기억을 잃는 감미로움과 그 이면에 잠복한 권력과 폭력을 그린 이 작품은, 매우 정치적인 우화였다.
【역주】 백색 테러(1949~1987년)
2·28 사건 이후, 특히 1949년부터 약 40년간 이어진 정치적 탄압 시기를 말한다. 1949년 국공 내전 패배 후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으로 이전했다. 같은 해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이는 1987년까지 지속되었다. 계엄령하에서 공산주의자로 의심되거나 정부를 비판한 사람들은 체포․고문․처형․장기 투옥을 당했다. 약 14만 명이 체포되고, 수천 명이 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색 테러는, 타이완의 민주화 이전까지 지속된 공포 정치 시기이며, 오늘날 타이완 민주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건망촌』이 제작된 당시의 타이완은, 국민당의 마잉주 정권 아래 중국과의 ‘융화’가 내세워지고 있었다. 경제적 성공을 추구하는 많은 인재가 중국으로 건너가고, 영화 산업도 그런 흐름에 편입되어 갔다. 중국․타이완 합작은 급증하고, 출자자의 대다수를 중국 기업이 점유하자, 서사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눈에 띄지 않는 배려가 스며든다. 타이완 출신의 배우가 중국인 역할을 연기하는 광경도 드물지 않게 있었다.
그런 일은 영화계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사이에 타이완 사회 자체가 자신의 설 자리를 잃고, 발밑의 역사로부터 조용히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 『건망촌』은 부와 성공의 대가로 ‘2․28 사건’과 ‘백색 테러’와 같은 고통을 잊으려 하는 사회를 냉철하고 예리하게 드러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대가는 컸다. 천위쉰 감독이 2014년의 해바라기 학생 운동을 지지한 일이 논란이 되어, 인터넷 공간에서 ‘타이완 독립파’로 규탄당하자, 중국에서의 공개는 조기에 중단되었다. 결과적으로 『건망촌』은 중국․타이완 합작 영화로서는 사상 최대의 손실을 기록하고, 흥행에 ‘참패한 실패작’으로 낙인찍혔다.
【역주】 해바라기 학생 운동
2014년 타이완에서 일어난 학생 주도의 대규모 민주화․시민 운동, 정식 명칭은 太陽花學運 Sunflower Movement이다. 해바라기 학생 운동은, 중국과의 ‘융화’가 민주주의를 잠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 타이완 청년들이 거리와 의회를 점거하며, 절차적 민주주의를 요구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 중국․타이완 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분위기
같은 시기에, 비슷한 운명을 겪은 창작자는 적지 않다. 일본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가수 루광중盧廣仲도 해바라기 학생 운동을 지지했다고 여겨져서, 다음 해 중국에서 예정된 많은 공연이 갑자기 취소되었다. 2016년에는, 타이완 배우 다이리런戴立忍이 ‘타이완 독립파’로 딱지가 붙여져 중국 인터넷 공간에서 악플이 쇄도, “나는 진정한 중국인”이라고 사죄하도록 강요받는 데까지 내몰렸다. 나아가 중국 정부가 “접촉을 금하는 타이완 연예인 55명”이라는 명단을 작성한다는 정보가 베이징 영화 관계자로부터 흘러나와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업계에 퍼졌다.
타이완 영화가 중국 자본을 들여 올 때에도, 주연이나 조연급에 중국인 배우 기용을 의무화하는 등 세부적인 조건이 부과되었다. 중국 시장 공개를 전제로 하는 이상, 각본이나 연출에 당국의 역정을 살 표현이 없는지, 제작진이나 출연자가 과거에 홍콩․타이완의 민주화 운동이나 독립운동에 관여 또는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는지가 엄격하게 심사된다. 그러한 현실에 대해 많은 창작자는 침묵을 선택하고, 중국․타이완 엔터테인먼트의 벽은 점차 낮아지고 애매해졌다. 영화의 향방 자체가, 타이완을 둘러싼 국제 사회의 불안정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최근 다카이치 수상의 발언을 계기로 하마사키 아유미를 비롯한 아티스트들의 중국 공연 중지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었는데, 타이완에 사는 내 처지에서 보면 그것은 중국 공산당의 통상적 운영에 지나지 않고, ‘뭘 이제 와서’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오락이라는 외피로 감싸면서 역사와 정치를 까발리려 했던 『건망촌』의 시선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 감독이 이번에는 백색 테러라는 타이완 현대사의 핵심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따멍』은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 『따멍』, 그 이야기
무대는 1950년대의 타이완이다. 타이완 남부 자이嘉義의 농촌, 눈앞에 펼쳐진 사탕수수밭에서 형 위윈育雲은 『두 방울의 물兩滴水』이라는 우화를 쓰고, 열다섯 살 아웨阿月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 무렵 형제의 미래는 아직 이상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1954년, 아웨는 정치범으로 총살당한 형의 유체를 인수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고 홀로 타이베이로 향한다. 유체 인수에는 가족의 한 달 생활비에 버금가는 큰돈이 필요하다고 들었지만, 아웨의 손에 있는 것은, 고구마 두 쪽과 형의 유물인 손목시계, 그리고 ‘민며느리’로 시집간 누이가 보낸 한 통의 편지뿐이다.
처음 발을 디딘 도시에서 하마터면 인신매매로 팔려 갈 뻔한 아웨를 구한 사람은, 중국 광둥성 출신의 삼륜차 인력거꾼 자오궁다오趙公道다. 얼굴도 몰랐던 친누나 아샤阿霞와 재회한 아웨는, 과연 형의 유체를 인수할 수 있을까. 이것이 『따멍』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역주】 『두 방울의 물』
아미와 아슈이라는 두 개의 작은 물방울에 얽힌 이야기다. 두 방울의 물방울은 자유를 갈망했고, 구름이 되기를 꿈꿨으며, 마침내 비가 되어 땅을 적셨다. 하지만 구름으로 승화되는 과정에서 불행히도 흩어지고 말았다. 물방울 하나가 하늘로 솟아오르려 애썼지만 실패하고 ‘중간에 갇힌 안개’가 되어 공중에서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백색 테러 아래에서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마치 ‘안개’처럼 땅을 적시는 ‘비’가 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현실을 암시한다.
■ 백색 테러 시대의 삶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일본의 패전으로 타이완은 일제 강점을 벗어나, 중화민국의 지배로 편입되었다. 그래서 대륙 중국에서 이어지던 국공 내전 여파는 타이완에까지 미치고, 나아가 1949년 이후의 미․소 대립이라는 냉전 구조를 배경으로, 타이완에서는 ‘좌익분자’로 여겨진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말하자면 백색 테러가 전개된다. 특히 숙청이 심했던 시기는 1951년부터 1954년에 걸친 기간이었다.
탄압 대상은,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타이완에 살고 있었던 ‘본성인本省人’만이 아니라, 전후에 중국 국민당과 함께 타이완으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에게도 미쳐서, ‘간첩’ ‘비적’이라는 명목으로 처형과 장기 구금을 당했다. 그런 배경에는, 2․28 사건 이후, 타이완 사회에 퍼지고 있었던 국민당 정권에 대한 불만을 이용해, 이를 중국 공산당 쪽으로 끌어들여 조직화하려 했던 ‘타이완성 공작 위원회’라는 존재가 있었다.
50년에 이르는 일제 강점하에서 피식민자로 산 타이완 사람들, 특히 지식인과 엘리트층 처지에서는, 타이완인 자체의 손으로 자치를 확립해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고, 주체적으로 미래를 선택하는 일은 오랜 세월에 걸친 비원이었다. 그런 생각은 국민당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바뀌어, 타이완성 공작 위원회에 대한 참가로 이어졌다.
국민당 정권은 이것을 철저하게 소탕하여, 1954년을 기점으로 타이완성 공작 위원회를 괴멸시켰다. 『따멍』이 묘사하는 것은, 바로 소탕의 최종 국면이다. 아웨의 형 위윈도, 말단에 이르기까지 적발되어 처형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으리라. 또한 아웨를 돕는 자오궁다오도, 일찍이 체포와 구금, 게다가 고문을 경험한 과거를 지녔기 때문에 안정된 직업을 가질 수 없어, 사회의 주변부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백색 테러의 희생이 된 ‘외성인’의 대다수는, 주류에서 벗어난 자오궁다오 같은 군 관계자이며, 장제스 정권의 지배 체제 재구축 과정에서 버려진 존재였다. 타이완 정치사상을 전공하는 우루이런吳叡人은 이 시기의 백색 테러 희생자에 대해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이라는 두 개의 국가가 타이완인의 충성심을 쟁탈하는 처참한 과정에서 생긴 무고한 피해자였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타이완, 혹은 고립무원의 섬 사상』)
■ ‘이행기 정의’를 향한 역동성
최근 타이완에서는, 문화 정책의 중요한 중심 사항으로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와 관련한 표현 활동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학살, 고문, 강제 이주, 장기에 걸친 감금 ― 국가 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대대적인 인권 침해와 마주하여, 침묵을 강요당해 온 기억을 건져 올리고, 침묵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의 존엄을 회복하고, 다시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배움으로 연결해 간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시간이며, 아픔을 수반하는 대화이며, 인내 그리고 강한 상상력이다. 사회의 트라우마를 껴안으면서, 치유와 화해를 목표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긴 과정이 ‘이행기 정의’이며, 영화 『따멍』은 그런 흐름 속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시선은 이 영화에서, 청춘의 대부분을 항일 전쟁과 국공 내전이라는 삶과 죽음의 선택 속에서 보내고, 어쩔 수 없이 타이완으로 건너간 국민당의 퇴역 군인에게도 향해 있었다.
천위쉰 감독은 ‘자오궁다오’라는 이름으로,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건져 올림으로써 ‘궁다오公道’(정당한 평가)를 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퇴역 군인들의 대다수는 스스로 전쟁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명령에 따라 전쟁터를 전전하다, 타이완으로 건너온 뒤에도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겉돌게 되었다. 백색 테러 희생자에 이목이 쏠리는 한편으로, 이러한 노병들의 인생은 영화 『샹자오 톈탕香蕉天堂』(바나나 천국)과 같은 작품 외에는 그다지 다뤄지지 않았다.
제목 ‘따멍’은, 타이완어의 ‘罩雺’의 발음(따멍)과 유사하고, 시야를 완전히 뒤덮어 앞을 내다볼 수 없게 하는 짙은 안개를 의미한다. 영화의 마지막, 스크린에는 “역사 속에서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되었던 모든 사람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라는 자막이 조용하게 나타난다. 물은 증발해, 구름이 되고, 이윽고 단비가 되어 대지를 적신다. 언젠가 나 또한 구름이 되어, 이 대지에 은혜로운 비로 쏟아져 내린다 ― 그것은 공정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를 꿈꾸었던 사람들의 소박하고 절실한 소망이었으리라.
그러나 현실에서는, 구름이 되는 일마저 허용되지 않아서, 안개가 되어 대기 속을 정처 없이 떠돌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에서 ‘안개’는 백색 테러 시대에 스러져 간 희생자들,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편차를 알고, 침묵을 강요당했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은 무수한 사람들의 상징이다.
하지만, 안개는 그저 시야를 빼앗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안개는 풍경을 낳고 숲을 가꾼다. 그 풍경을 본 사람의 기억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를 만든다. 문화인류학자 이마후쿠 류타今福龍太의 “안개는 권력으로부터 몸을 숨기고, 보이지 않는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출발점이다”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운명에 농락되어 약자로 살아가는 아웨와 자오궁다오의 심적 교감은, 전후 타이완 사회에 오래 각인된 ‘본성인’ 대 ‘외성인’이라는 이항 대립을 안개 속에서 살짝 피해 가며, 부드러운 연대로 변화시켜 간다. 안개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어렴풋이 확인하며, 더듬어 가듯 삶을 이어간다.
■ 타이완의 미래에 대한 책임
나는, 이 영화를 두 번 봤다. 두 번째 상영에서는, 대부분의 객석을 20대로 보이는 젊은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엔딩 자막이 시작되고 조명이 켜지면, 관객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일상적인 타이완의 영화관에서, 이 영화에서는 거의 아무도 일어나지 않고, 마지막 한 줄이 사라질 때까지 묵묵히 스크린을 응시했던 일이다. 그 침묵은, 이 영화가 단순히 과거를 그린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복잡하고 불안정한 세계의 한복판에서 타이완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감각에 분명히 닿았다는 증표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타이완 사회의 안개는 국민당 정권하에서 갑자기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자욱했던 짙은 안개로부터 해방을 요구하며, 새로운 미래를 탐색하려 하는 과정에서 2․28 사건과 백색 테러는 일어났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완에서 전후 오랫동안 자행되어 온 인권 침해와 우리 ‘일본인’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타이완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은, 타이완의 미래에 책임이 있다. 그것은 먼저, 타이완이 품어온 기억을 정확히 아는 데서 시작된다. 영화의 세세한 하나하나가, 타이완이 걸어온 유일무이한 역사 경험을 알려 준다. 타이완은 중국이라는 국가의 일부가 아니다. 이 영화의 일본 상영을 기대한다.
(『세카이』, 2026년 02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