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80년, 그리고 우울 - 가자, 뉴욕, 헤이그 ②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5-12-12)
가모시다 고우鴨志田鄕
NHK 해설 주간. 예루살렘, 런던, 파리, 뉴욕 특파원, 국제부 데스크, 「뉴스7」과 「NHK 특집」 제작 책임자를 거쳐, 현직.
■ 안보리의 강대국 지배
그리고 2013년에는 뉴욕으로 부임해 유엔 본부 담당 기자가 되어, 안전보장이사회의 방청석에 매일 찾아가서, U자 모양의 탁자에 둘러앉아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신랄하게 서로를 비난하는, 각국의 유엔 대사들의 겉과 속을 취재하게 되었다. 같은 유엔 본부에도,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면서 머리를 식히며 ‘인류의 과제’와 씨름하는 제네바와는 달리, 마천루의 소음에 휩싸인 뉴욕은, 각국이 각각의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주도권 쟁탈을 벌이는, 마치 ‘격투기 경기장’의 양상을 드러냈다.
거기서 보이기 시작한 것은, 유엔이 발족할 때부터 장악․운영해 온 ‘P5’로 불리는 미․영․프․중․러라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다른 가맹국과는 현격한 차이가 나는 권력과 존재감을 가진 현실이었다. P5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3개국과 중국, 러시아 2개국이 격렬한 승부를 펼치는 것 같지만, 실은 5개국만이 모이는 회합도 빈번하게 열리고, 각지의 분쟁 대응과 안보리의 운영 방식을 둘러싸고 밀실 협의가 이루어진다. 거기에서는 때로 “시리아 내전 개입은 양보하는데, 대신 남수단 지원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라든가, “다음의 북한 결의 채택에서는, 서로 체면을 세우면서도 일단 백지로 돌리고 싶다”와 같이, 도저히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밀담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한편, 끝까지 대립이 풀리지 않으면, 거부권으로 서로 마주 찌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그렇게 되면 안보리는 고사하고 유엔 전체의 활동도 막혀 버린다.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면, 유엔이라는 ‘대기업’의 방침이 P5라는 ‘대주주’들의 ‘담합’과 ‘내분’으로 결정되어 버리고, 사무총장이라는 ‘사장’은 거기에 저항조차 할 수 없다. 세계의 최전선에서 분쟁 해결과 인권 보호에 전념하는 유엔 직원들의 노력도, P5 중 한 나라의 의도 하나로 어이없이 무너져 버린다.
안보리에서 분쟁 지역의 정전과 인도적 지원을 둘러싼 결의안이 거부권으로 부결된 날에는, 유엔 본부 전체가 하루 종일 초상집 같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인다.
그리고 지금,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싸고 러시아가,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둘러싸고 미국이, 전가의 보도인 거부권을 주저하지 않고 내세우고, 국제 질서의 정점에 있을 터인 안보리는, 이제는 ‘평화의 파수꾼’으로 불리기에는 좀 그런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국제법의 수도’는 지금
유엔 80년의 역사 가운데 최근 3년간에,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동향이 있다.
뉴욕 안보리의 ‘강대국 지배’에 정나미가 떨어진 국가들이, 국제법상의 ‘정의’를 요구하며, 헤이그에 있는 국제 법정에 뜨거운 시선을 보내게 된 일이다.
네덜란드의 옛 수도 덴하그Den Haag는, ‘국제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17세기 법학자 후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가 유명한 곳으로, 그 뒤에도 국제회의 등이 자주 열린 전통으로, ‘국제법의 수도’로 불려 왔다. 20세기 초반 국제중재재판소로 건립된 대성당을 연상시키는 ‘평화궁Peace Palace’에는, 지금 유엔의 주요 기관인 국제 사법 재판소가 자리하고 있다. 유엔 총회와 안보리에서 선거로 선출된 각국 출신 15명의 재판관이, 가맹국끼리의 다툼을 국제법에 기초해 재판하는, 문자 그대로 ‘세계 법정’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당해, 국제 사법 재판소에는 과거에 없던 페이스로 소송이 제기되면서, 2025년 10월 현재, 도합 25건이나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국제 사법 재판소는 지금까지 러시아와 이스라엘에 대해 군사 행동의 정지를 요구하는 잠정 조치 명령을 내린 외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관해 국제법상의 위법성을 명확히 한 획기적인 권고 의견도 내렸다. 집행권을 갖지 못한 국제 사법 재판소의 판단을 러시아와 이스라엘은 계속 무시하지만, 국제법의 최고 권위에 의한 ‘단죄’는 착실히 축적되어, 국제 사회에서 널리 공유하게 되었다.
같은 헤이그 시가지 북쪽 변두리에는 국제 형사 재판소가 자리하고 있다. 유엔의 기관은 아니며, 23년 전에 로마 규정이라는 조약으로 설립된 국제 형사 재판소는, 국제 사법 재판소와는 대조적인 유리로 된 현대식 건축물로, 전쟁 범죄와 인도에 반하는 죄 등을 범한 개인의 형사 책임을 추궁하는, 수사 부문과 재판 부문이 병설되어 있다.
이 재판소도 이 3년간, 강대국의 심한 압력을 받았지만, 푸틴 대통령과 네타냐후 수상 등에 대해 전쟁 범죄 등의 혐의로 체포장 발급을 단행해 왔다. 국제 형사 재판소에 가맹하지 않은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맹렬한 반발에 더해, 국제 형사 재판소 가맹국마저 수사 협력을 망설이는 가운데, ‘수배범’들이 실제로 체포․소추될 가능성은 희박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120개국 이상의 국가가 가맹하는 공정 중립한 국제 형사 재판소가 찍은 ‘국제 사회의 범죄자’라는 낙인은, 두 번 다시 지울 수 없다. ‘인도에 반하는 죄’에 시효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국제 사법 재판소 소장을 도쿄대학 명예 교수 이와사와 유지岩澤雄司가, 국제 형사 재판소 소장을 최고 검찰청 출신 아카네 도모코赤根智子가 각각 맡아, 세계 ‘국제법 파수꾼’의 중책을 두 사람의 일본인이 담당하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국제 사법 재판소와 국제 형사 재판소가 자리하고 있는 헤이그에서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 회담이 개최되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일행도 참여했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이란의 핵 관련 시설에 공격을 감행하고, 이스라엘을 비호하며 국제 형사 재판소의 판사와 검찰관에게 제재를 부과하는 장본인에게, NATO의 정상들은 한결같이 넙죽 엎드리며, 경쟁하듯이 이란 공격의 ‘용기’를 찬양했다.
‘국제법의 수도’ 한복판에서 펼쳐진 이 광경은, ‘법의 지배’가 ‘힘의 지배’로 교체되는 세계의 현상을, 강렬하게 부각하는 한 장면이었다.<3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