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80년, 그리고 우울 - 가자, 뉴욕, 헤이그 ①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5-12-02)
가모시다 고우鴨志田鄕
NHK 해설 주간. 예루살렘, 런던, 파리, 뉴욕 특파원, 국제부 데스크, 「뉴스7」과 「NHK 특집」 제작 책임자를 거쳐, 현직.
* 이 번역글은 분량이 길어 3편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 역자 주
올해 창설 80년을 맞이한 유엔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궁지에 몰려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세계 193개국으로 이루어진 국제 질서의 정점에서, 국제 사회의 평화와 번영, 인류 전체의 권리 향상을 내걸었지만, 그 이상은 지금까지 반복해 짓밟혀 왔다. 지금, 비참한 전쟁과 인도적 위기를 멈춰 세우지 못하는 유엔에 대해, ‘무익하다’ ‘존재 의의가 없다’와 같은 노골적인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그 가운데에서도 본보기가 되는 ‘안전보장이사회의 기능 부전’에 이르러서는, 거기에서 특권을 남용하는 강대국의 횡포가 비난받아야 할 일인데, 유엔 자체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일은 번지수가 틀렸다. 그러나 80년 동안이나 강대국의 횡포를 허용해 온 유엔의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그 말이 맞다.
필자는 유엔 직원도 외교관도 아니며, 국제법이나 국제기구론을 전공으로 하는 연구자도 아니다. 다만 4반세기에 걸쳐 가자의 인도적 지원 현장부터, 제네바에서의 인권과 군축을 둘러싼 술책, 뉴욕 유엔 안보리에서의 강대국 간 불화, 헤이그 국제 법정에서의 공방까지, 세계 여기저기에서 유엔의 이상과 현실이 엇갈리고 뒤섞이는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사람들이 유엔에 보내는 기대와 그 기대가 배반당했을 때의 실망도 목도해 온 기자의 한 사람으로, 이 난세에 유엔에 무엇이 문제시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따져보고자 한다.
■ 제80회 유엔 총회
9월 하순, 제80회 유엔 총회를 취재하기 위해, 초가을의 뉴욕을 찾았다.
매년 유엔 본부에 세계 정상이 모이는 이 한 주간, 맨해튼에서는 뉴욕 시경이 삼엄한 경비를 펴고, 간선 도로에 설치된 전용 차선을, 갑자기 시끄러운 사이렌과 함께 순찰차에 선도된 정상들의 차량 행렬이 달려간다. 시내에는 각국 외교 사절에 더해, 전 세계 NGO와 보도 관계자가 북적거려서, 호텔 요금은 평소의 배 이상으로 뛰어오른다.
생각하면 꼭 10년 전, 아직 뉴욕 주재 기자 시절에 취재한 제70회 유엔 총회에서는, 세계의 빈곤 박멸과 지구 환경 보호를 내건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DGs)가 전원일치로 채택되어, 당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도 그것을 칭찬하고, 국제 사회는 협력하며 인류 공통의 과제에 몰두할 고양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데 이 10년간, 신형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의 전투, 그리고 미국에 두 번에 걸친 국제 협조에 등을 돌리는 트럼프 정권이 탄생하여, 세계의 풍경은 일변했다.
제80회 유엔 총회는, 10년 전과는 분위가 돌변해 답답하고 꽉 막힌 느낌 속에 개막했다.
정상 연설 첫날, 트럼프 대통령은 국무부 장관과 재무부 장관 등 수십 명의 정부 관계자를 이끌고 5년 만에 유엔 본부에 진입해, “유엔이 진행해 온 난민 지원과 기후 변동 대책은, 한 나라의 주권을 침범하는 쓸데없는 정책이다. 각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국경을 관리하고, 번영을 위해 화석 연료를 자유롭게 사용해야 한다”라고, 1시간 가까이에 걸쳐 유엔을 비판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비장감에 찬 젤렌스키 대통령이 3년 연속 국제 사회에 지원을 호소했지만, 미국의 중개도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각국은 관망하는 양상이고, 침공 초기에 볼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 지원 열기는 해마다 차갑게 식어 간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각지에 가차 없는 미사일 공격을 계속하여,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찬물을 계속 끼얹었다.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우세해지는 가운데, 이제는 전투 종결을 위해서는 우크라이나가 영토 할양을 강요당할 가능성도 얼른거리고, 유엔 헌장이 내거는 “가맹국의 주권 존중과 영토 보전”이라는 대원칙을 도대체 어디까지 굽혀야 하는 건지, 딜레마는 깊어질 뿐이다.
한편, 가자 지구에서도 이 사이, 날마다 많은 주민이 공격에 휘말리게 되고, 지원 물자가 부족해 아사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파괴와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입식지 확대로, 이제는 ‘두 국가 공존’이 영원히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불안이 짙어지는 가운데, 유엔 총회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등이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의 ‘국가 승인’이라는 외교 패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런 압력에 굴하기는커녕 점점 완고해지고, 미국도 또한, 팔레스타인 당국자의 입국을 제한한다는 노골적인 대항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이제는 전쟁 범죄 혐의로 국제 형사 재판소에서 체포장이 발부된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수상은 예년처럼 총회의장에서 열변을 토하는 데, 국제 사회가 전력으로 지원해야 할 팔레스타인 잠정 자치 정부의 마흐무드 압바스 의장은, 총회에 출석도 못 하고 비디오 연설로 국가 승인에 사의를 표한다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유엔 본부에서는, 각국 정상이 분주하게 오가며 각자의 주장을 쏟아내어, 분단과 대립만이 부각되고, 시간은 헛되이 흘러갔다. 유엔 총회를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해버리면 그만이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많은 정상이 같은 장소에 회동하는 걸까, 이 상태로는 국제 질서가 붕괴하고 만다는 위기감을 왜 공유할 수 없는 걸까, 무력감만이 남는 일주일이었다.
■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돌아보면 유엔 취재를 강하게 의식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최초의 해외 부임지 예루살렘 지국에서, 매달 같이 가자를 드나들고 있었던 무렵이다. 당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평화 교섭도 단속적으로 이루어져 희미한 희망도 남아 있었지만, 그런데도 가자의 상황은 이미 비참했었다.
벽으로 둘러쳐진 ‘천장 없는 감옥’에서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제 사업기관(UNRWA)이 학교와 병원을 운영하고, 주민은 거기에서 일하며, 식품과 의약품 등 지원 물자의 배급도 받아, 정말 유엔이 없다면 하루하루 생명을 이어갈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분쟁 속에서도, 주민의 삶을 지원하고 어린이들의 교육에 힘을 쏟는 UNRWA 직원들의 모습은 실로 감탄이 나올 만큼 훌륭하여, 유엔의 사명과 든든한 존재감을 강하게 느꼈다.
한편, 일단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군사 충돌이 일어나면, 뉴욕의 안전보장이사회에 아랍 국가들이 전투 중지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해도, 늘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채택을 저지했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기세가 오른 이스라엘군이 가자에 더욱더 공세를 취해, 순식간에 주민이 희생되어 갔다.
파괴된 건물의 잔해 밑에서 젖먹이의 유해를 발굴하고, 까무러칠 듯 우는 유족의 모습을 취재하면서, 아득히 먼 뉴욕에서 펼쳐지는 강대국 간 외교 게임이, 이처럼 어이없이 약자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부조리에, 치가 떨렸던 일을 기억한다.
가자의 주민에게, 유엔은 생활의 모든 것을 지원하는 생명선임과 동시에, 같은 유엔의 안보리에서 이루어지는 채택 가부의 결과가, 내일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 뒤 파리에 주재하게 된 뒤에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유럽 본부의 취재를 맡게 되어, 구유엔 유럽 본부 건물 팔레 데 나시옹Palais des Nations에서 알프스의 설산을 올려다보며, 인권과 군축에 전념하는 유엔 기구의 취재에 빠져들었다.
2006년, 유엔 총회 직할인 유엔 인권 이사회가 발족하여, 세계 각국의 인권 상황을 다각적으로 검증해서 개선을 촉구하고, 결의는 47개 이사국의 다수 찬성으로 채택되게 되었다.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과제를, 정치색을 적극 배제하고 논의하는 ‘이상’이 내걸렸지만, 이윽고 이사회는 중소 국가들이 무리를 이루어 강대국과 대결하는 주요한 싸움터로 변해 간다. 또한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내에서 대체로 기본적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국가들도 잇따라 이사국에 선임되어, 신용도 또한 흔들려 간다.
군축의 경우, 각국 정부의 교섭장인 ‘군축 회의’가 정체하는 가운데, 당시 중동 레바논 분쟁에서 대량으로 사용된 클러스터 폭탄(cluster bomb)을 규제하는 논의가 급부상했다. 대형 포탄에서 무수한 소형 폭탄이 분산되는 클러스터 폭탄은,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는 ‘효율성’이 요긴하게 여겨져서, 세계 여러 분쟁 지역에서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많은 불발탄이 오랜 세월에 걸쳐 시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비인도적 측면’도 지적되었다.
그래서 노르웨이 등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이 클러스터 폭탄의 제조와 사용을 금지하는 조약을 마련하고, 최종적으로는 유럽의 주요 국가들과 일본도 참여했지만, 가장 중요한 미국,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등은 참여하지 않아, 군사 대국의 행동을 속박하는 국제 규범에는 이르지 못했다.
인권이나 군축 같은 인류 공통인 주제도, 늘 강대국의 정치력이라는 벽에 가로막혀서, 그것을 어떻게 피해 빠져나가느냐는, 끝없는 흥정이 계속되고 있었다. <2편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