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은 파도를 잘 탄다.
시류를 잘 탄다는 말이다.
그의 말과 그의 생각이 유행을 잘 탄다.
거꾸로 말하면
그가 시류의 핵심을 잘 읽는다는 말이다.
대중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중의 가려움증을 잘 긁어줄 줄 아는
지식판매업의 귀재이다.
하지만 젊은이의 고통문제나 코인 문제 등에 이르러면
사정은 달라진다.
유시민은 사정없이 꼰대가 되고,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을 내비친다.
물론
러셀의 집합개념이 시대의 불행을 자초하는
개념토대가 될 것이라고 통렬하게 지적했던
비트겐슈타인처럼
종편의 등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미디어를 장악한 소수의 권력이 여론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민주당에 경고했던 경우처럼
유시민이 시대를 앞서갔던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지식판매업자의 운명이기 때문인지
대중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
대중이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에는 눈을 감는다.
가령 진보세력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진보세력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닫는다.
줄기세포조작 문제가 불거질 때 황우석을 지지하거나
음모론으로 명성과 부를 얻은 김어준과 부하뇌동하거나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을
잃어버릴 지도 모르는 있는 위험에 직면하면
유시민은 언제나 사정없이 숨어버린다.
비판기능을 잃어버린 지식이 판매에 눈이 멀면
그는 이미 엔터테이너이고, 연예인이다.
대한민국 진보세력의 어두운 골짜기 골짜기를 헤집고 다니며
세세하게 파헤치기를 거부한다.
그는 그냥 주어진 산맥의 도면을 펼쳐놓고
전체를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해 한다.
도면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그런 점에서 그는 근본주의자도 아니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혁명가도 될 수가 없다.
조국이 자신의 저서 법고전산책을 들고
유시민과 토론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는가?
유시민은 법학자인 조국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리어 유시민이 조국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서울을 실제 가본 사람보다 서울을 더 잘 아는 것 처럼 보이는 것
그게 바로 유시민의 타고난 재능이다.
유시민은 이론이나 가설을 설립하거나
사상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삶이 아니라
그냥 지식을 여기 저기 핥아 먹는 사람이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주워 모아서
상품을 만드는 데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유시민은 장사꾼이다.
빛하나 들어오지 않는 동굴 속에서 수십년을 앉아 있는 요기도 아니고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학자도 아니고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
진보진영으로 부터도 온갖 수모를 겪어내야 하는 강진구 같은 기자도 아니다.
유시민은 그냥 단지 생활인이며,
지식장사를 생존의 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장사치일 뿐이다.
그래도 유시민은
여전히 진보진영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매불쇼나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면
공전의 히트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