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되는 ‘내부의 적’이라는 딱지
배외주의 메커니즘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5-11-21)
모리 지카코森千香子
1972년생. 국제사회학, 도시사회학 전공. 도시샤 대학 사회학부 교수
『브루클린화하는 세계』『배제와 저항의 교외』 등의 저서가 있다.
2000년대부터 유럽에서는 이민 배척을 호소하는 극우 정당이 약진하고, 202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제3세력이 되어,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에서는 다른 나라에 앞서, 배외주의를 주창하는 극우 정당이 지지를 확대했다. 장 마리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이 “100만 명의 실업자는 100만 명의 이민자 탓이다!”를 구호로 1980년대 전반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결선 투표까지 진출했다.
2011년에 딸 마린 르펜이 당 대표가 되자, 아버지 시대의 과격한 주장 등을 고치고, 정당 이름을 국민 연합으로 변경하는 등 이미지 쇄신에 노력했다. 2017년, 202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2위, 2024년 하원 선거와 유럽 의회 선거에서 제1당이 되어, 프랑스 정치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2025년 봄 르펜은 공금 부정 유용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피선거권 5년간 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젊은 층 등에서 지지를 끌어내는 당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가 르펜을 대신해 출마를 표명해, 극우 정권의 탄생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
그러나 40년에 걸쳐서 극우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이민자에 대한 배외주의 정치는 이제 극우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선거전에서 극우를 강하게 비판해 온 보수와 혁신의 역대 정부에 의해, 반이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책이 운용되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표적이 된 대상은 옛 식민지 출신 무슬림 이민자들이다. 1990년대 알제리 내전과 ‘9․11 동시다발 테러’ 등 국제 정세를 배경으로 국내 무슬림 이민자는 문제시되어, ‘좋은 무슬림’과 ‘나쁜 무슬림’을 만들어내는 포섭과 배제의 정치가 운용되었다.
그러나 2015년 1월 샤를리 에브도 습격 사건과 11월 파리 동시다발 습격 사건을 계기로, 국내 무슬림 전체를 ‘내부의 적’으로 간주해 권리를 제한하고, 주변화하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그 가운데에서도 무슬림 차별을 조사․집계하고, 법적 해결을 요구하는 단체 ‘프랑스의 이슬람 증오에 반대하는 모임Collective Against Islamophobia in France’에 국가가 해산을 요구하고, 2020년 해산에 이른 사건은 국가에 의한 결사의 권리 박탈이라는 점에서 마지막 선을 넘은 사건이었다. 억압적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국외 이주를 선택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Esteves et al, 2024). 필자도 브뤼셀로 이주한 무슬림 프랑스인에 대한 청취를 2024년부터 계속해 왔다.
이렇게 배외주의는 표적이 되는 사람들의 정신과 신체적 측면에 다양한 타격을 입히고, 인생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이하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것은, 배외주의가 이민자․외국인과 같은 마이너리티만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층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배외주의 확산과 함께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을까? 이하에서, 그 일단을 밝히고자 한다.
■ 「세금을 내는 사람은 니콜라」가 보여주는 것
이전부터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극우 지지층은 ‘몰락하는 노동자 계급’이라는 이미지에 겹쳐 왔다. 철학자이자 작가인 디디에 에리봉은, 노동자인 자신의 부모와 형제가 오랜 세월 지지했던 공산당에 실망해 극우에 투표하게 된 경위를 정치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에리봉, 2020년).
그러나 극우 정당의 주류화에 수반해, 지지층의 주류화도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 최대 출판사 아셰트를 비롯한 출판사와 TV․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하고, 미디어에 큰 영향력을 지닌 실업가 빈센트 볼로레와 극우와 우파의 규합을 지원하는 피에르 에두아르 스테랭과 같은 대부호가 극우 지지를 표명하는 한편, 상위 중산 계급Upper middle class의 지지 확대도 지적되었다.
그 한 예로 인터넷 밈 「세금을 내는 사람은 니콜라」가 있다. 니콜라라는 가공의 30세 남성이 높은 세금과 사회 보장비에 머리를 싸맨다는 밈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 일이 미디어로 보도되고, 국회 등에서도 “많은 니콜라가 고생하고 있다”라고 받아들여져서 화제가 되었다. 이하에서는, 이런 메시지들이 어떤 층에 작용하고, 어떤 층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니콜라는 그림책 『꼬마 니콜라Le Petit Nicolas』 등으로 유명하며, 프랑스에서 자주 쓰이는 이름이다. 「세금을 내는 사람은 니콜라」라는 밈을 퍼뜨린 대표적 X 계정의 톱 페이지(https://x.com/nicolasquipaie)를 보면, 니콜라는 깔끔하게 다듬은 머리와 와이셔츠 차림으로, 젊은 비즈니스맨, 기업가 같은 풍모다. 이러한 젊은 백인 근로 세대를 상정하고 있는 것을 미루어 살필 수 있다.
니콜라 밑에는, 카림이라는 25살의 아랍계 젊은이 사진이 있다. 그 옆에는, 비행기 사진과 국제 송금 서비스 웨스턴 유니온의 로고, 아프리카 대륙의 지도, 가족 수당, 생활 보장(RSA)의 로고가 나란히 있고, 그 위에 커다란 X 마크가 기재되어 있다. 이것들을 종합하면, ‘세금을 내는 사람은 니콜라’란 ‘일하지 않고, 생활 보장 등으로 얻은 돈을 자국으로 보내거나 하는 젊은 이민자’ 탓에 높은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사회 보장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나쁜 이민자’라는, 자주 있는 복지 배외주의 언설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젊은 이민자와 함께 또 하나의 범주를 비난의 표적으로 삼는 점이다. 같은 페이지의 카림 곁에는, 베르나르와 샹탈이라는 70세의 남녀 사진이 있다. poolside chair에 걸터앉아, 한 손에 잔을 들고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미소 짓는 백발의 부부다. 그 옆에는 크루즈 투어를 개최하는 여행 회사의 로고, URSSAF 등 프랑스의 사회 보장비를 징수하는 조직의 로고가 나란히 있으며, 거기에도 커다란 X 마크가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해 30살의 니콜라의 분노는, ‘나쁜 이민자’만이 아니라, 우아한 생활을 보내는 고령자에게도 향해 있다.
이러한 밈의 확산이 반드시 실태를 반영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미디어와 정치가가 확산하고, 동원에 활용하려고 한 사실을 한 번 생각해 볼만 하다. 배외주의와 노인 차별을 결합한 반세금 캠페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주류화하는 극우의 전략 재편이다. 제2차 트럼프 정권에서 볼 수 있는 배외주의와 경제 자유 지상주의의 결합에 영향을 받아, 프랑스의 극우에도 마린 르펜이 추진해 온 사회복지 중시형에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령자는 이민자․외국인과 함께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을 이 캠페인은 암시하고 있다.
■ 사회 운동 참가자의 범죄화와 배제
배외주의 확대와 같은 시기에 생긴 사회 변용으로는, 사회 운동과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탄압․공격의 격화도 들 수 있다.
2018년 사회 불평등에 대한 분노로 전국에 퍼진 ‘노란 조끼’ 운동 때에도, 경찰의 무력행사가 예전에 없던 수준이었다고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노란 조끼’가 예외가 아니었던 사실은, 그 뒤의 사회 운동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통해 밝혀졌다. 이런 일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2023년 3월, 중서부 농촌 생트솔린에서 일어난 대형 저수지 건설 반대 시위에 대한 경찰의 무력행사는, 많은 부상자를 내 문제가 되었다.
생트솔린에서는 다국적 기업의 옥수수 농장 등 대규모 농업이 행해지고 있는데, 기후 변동으로 강우량이 감소하는 사실을 확인하고, 관개용으로 겨울철에 대량의 지하수를 퍼 올려서 저장하는 저수지 건설이 공적 예산(총비용의 70%)을 사용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물 부족이 해마다 심각해지는 가운데, 공공재인 물을 일부 기업이 대량으로 퍼 올려서 독점하는 일은 불평등을 확대할 뿐 아니라, 생물다양성을 상실하는 등 환경 파괴로도 이어진다고 하여, 반대 운동이 조직되어, 2022년에도 생트솔린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2023년 3월 시위는, 환경 단체와 소규모 농가 그룹 등이 몇 개월간 준비한 축제(가족을 동반 참가자도 있어 차분한 분위기였다고 한다)의 일환으로 실시되어, 이벤트 장소에서 3만 명(주최 측 발표)이 저수지 건설 예정지로 이동했다. 내무부는 3,200명의 경찰을 배치해, 이동해 온 시위대를 쫓아 보내려고 하여 충돌이 일어났다. 시위대는 중상 40명을 포함해 200명이 부상하고, 그 가운데 한 명이 두개골과 등뼈가 손상되어 의식불명, 또 한 명도 뇌내출혈 등으로 중태에 빠졌다. 또 경찰 측 부상자 47명이 구급 대원에 의해 신속하게 처치된 데 반해, 시위대의 중상자 후송이 몇 시간이나 지체된 사실이 그 뒤의 조사에서 밝혀졌다.
일례로 중상을 입은 A의 사례를 보자. 19살의 그녀는, 생활 보호 대상 세대의 아동 지도원을 지향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학생이었다. 기후 변동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룸메이트와 둘이서 이벤트에 참여했다. 시위에 참여한 일도 처음이었다. 그녀는 돌이나 화염병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며, 그저 평화적으로 그 장소에 있었을 뿐이었지만, 경찰이 던진 수류탄을 안면에 맞아, 턱이 부서지고, 안면 마비라는 중상을 입었다.
그녀는 취재에 임해 “그들은 나의 미소를 파괴했지만, 발언은 막을 수 없다”라고 하며, “시위가 끝난 뒤에 생각했다. 나라가 기후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이제 우리를 죽게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고. 그런데 그 순간은, 정말로 생명의 위기에 처했다고 느꼈다. ‘아, 우리를 제거하고 싶은 거구나’라고 생각했었고,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좌절을 맛보게 하려는 거라고 느꼈다”라고 했다.
다수의 부상자가 나온 것은 경찰 대응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시위대에는 폭력적인 ‘극좌 분자’가 있었기 때문에, 대응은 타당했다고 발언했다. 또 시위가 허가를 받지 않았던 점을 이유로 시위대를 기소하고, 주최 단체 가운데 하나인 환경 단체 ‘대지의 반란’을 ‘에코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며, 해산 절차를 시작할 의향을 밝혔다.
그 뒤 국제 사면 위원회 등 인권 단체가 항의하고, 지식인 등의 서명이 집중되어, 해산 명령은 취하되었지만, 정부 방침에 이의를 신청하는 시민을 ‘극좌 분자’ ‘테러리스트’로 비난하며, 무력행사가 이루어지는 사태는 반복되고 있다.
■ 마이너리티의 권리 침해에서 모든 사람의 권리 침해로
이러한 사회 운동의 탄압은, 어떤 점에서 배외주의 확대와 관련된 게 아닐까. 모나 숄레는 이 점을 ‘내부의 적’이라는 개념으로 고찰한다. 모나 숄레에 따르면, 사회 운동이란 실로 민주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많은 사람의 이해를 옹호하는 민주주의에 불가결한 요소다. 앞에서 말한 생트솔린의 운동도, 지역 사회의 공유재이고, 환경 유지에 불가결한 물이 일부의 이윤 추구에 사용되는 것에 대해, 차세대도 포함한 다수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재검토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의 이익 옹호 관점에서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극좌’ ‘테러리스트’의 낙인을 찍어 ‘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내부의 적’으로 범죄화하여, 그 목소리를 봉쇄하고 있다고 모나 숄레는 말한다. ‘내부의 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무슬림 이민자를 비롯한 배외주의 메커니즘과 공통한다.
배외주의의 표적이 되는 이민자에게만 채택되고 있던 ‘예외적 조치’가 다수자에게도 행해져서, ‘소수’가 ‘전체’로 확대되고, ‘예외’가 ‘정상 상태’로 전환되는 것에 대해서는, 디디에 파생도 마찬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디디에 파생은 마크롱 통치하에서 일어난 사회 운동에 대해, 비폭력 시위대에 경찰의 무력행사가 일상화되어, 심각한 상태가 되고 있으며, 거듭되는 비판에도 정부가 계속 용인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것은 이제는 국가 기관의 일부인 경찰 폭력을 넘어, 국가 폭력이라고 한다.
이러한 폭력은 현정권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그것은 이민자와 인종 소수자에 한정되어 행사되었기 때문에, 다수자에게는 간과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 폭력은 정부가 진행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확대되고 있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 예전의 ‘소수자의 권리 침해’였던 것이,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의 권리 침해’가 되어 가고 있다고 디디에 파행은 고찰한다(Fassin 2025년).
이상의 분석은 배외주의 침투가 이민자․외국인만이 아니라, 고령자와 그 밖의 젊은이, 또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 등 좀 더 넓은 층에 대한 공격이나 권리 제한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알려 준다. 다시 말해 배외주의란 ‘내부의 적’을 잇따라 만들어내고, 사회 전체를 위축시킨다. 이렇게 생각하면, 배외주의의 확산을 막는 일의 의의는, 소수자의 인권은 물론, 사회 구성원 전체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이 글에서 살펴본 프랑스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세카이』, 202511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