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본모습 1 - ②
북의 문둥이, 서울에서 화려한 변신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5-11-18)
요시가와 나기吉川凪
작가, 번역가. 인하대학 국문과 대학원에서 한국 근대문학 전공. 문학박사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제4회 일본 번역 대상 수상.
저서로 『초선 최초 모더니스트 정지용』, 『경성의 다다이스트, 도쿄의 다다이스트 ― 고한용과 동료들』이 있다.
역서로 최인훈 『광장』, 이청준 『소문의 벽』, 김원일 『마당깊은 집』, 박경리 『완전판 토지』 등 소설 외에, 정지용, 오규원, 신경림, 김혜순 등의 시집이 있다.
■ 미군정 시대의 서울에서
미국의 군정이 펼쳐졌던 서울에서, 하운은 이방인 같은 고독을 느꼈다. 군정청을 찾아가, 미국인 보안 책임자와 면담을 시켜 달라고 떼를 썼다. 보안 책임자는, 신약 프로민과 DDS(한센병 치료 항생제diaminodiphenyl sulfone – 역주)는 효과가 좋아, 한센병은 완치된다고 알려주면서, 소록도 갱생원의 월슨 의사 앞으로 소개장을 써 주었다. 서울의 번화가 한가운데서 한센병 환자가 빈 깡통을 가지고 구걸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급행열차를 타고 대구로 가서, R이 방문했던 애락원을 찾아갔다. 기독교계로 시설이 좋았지만, 입원하는 데는 적지 않은 비용과 사전 교섭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체념했다.
대구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열차에 타고, 저녁때 부산에 도착했다. 공산당원에 붙들려서, “왜 남으로 왔냐”라는 이유로 두들겨 맞았다. 풀려나 싸구려 여관에서 묵었다. 다음 날, 한센병 요양소 상애원을 가기 위해, 노면 전차에서 내려 해운대 큰길을 걷고 있는데, 젊은 여성이, 같이 가자고 말을 걸어 왔다. 그 사람은 상애원에 입원해, 회복되어 퇴원했다고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환자였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언덕길을 올라가다 중간에 바다를 바라보면서 잠시 쉬었다. 여성은 하운에게 입원을 권했다. 핸드백에서 DDS를 세 알 꺼내 주고서, 하루 한 알 먹으면 된다며, 대구 동산병원에 가면 2, 30정 살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다시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그 여성은 지친 하운에게 양산을 받쳐 주고, 부채로 부쳐주었다. 귀뚜라미가 금속 같은 소리로 시끄럽게 울어댔다.
상애원에서, 하운은 남쪽의 실상을 알았다.
“도청은 환자들에게 식품만을 주고, 그밖에 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환자 자신이 준비해야 하고, 살아가기 위해 돈벌이 수단을 찾아야 한다. (중략) 예수를 믿지 않으면 이 요양소에선 살 수 없고, 여기 목사는 사실상 환자들에게 제왕처럼 군림한다.”(『반생기』).
경상도에는 군마다 한센병 환자 촌락이 18, 19곳이 있으나, 상애원 이외는 식품 배급도 없어, 구걸로 연명하고 있었다. 사정은 다른 지역도 비슷한 듯했다. 하운은 환자 자치회 간부로부터 함께 살자고 들었지만, 한 번 북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답하고, 약을 준 여성과도 헤어졌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하운의 유명한 시 「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 앞부분이다. ‘낯선 친구’라는 말은, 부산에서 만났던 친절한 여성을 연상시킨다. 전라도의 황토가 붉은 것은, 철분이 많기 때문이리라. 다만 이때 하운이 실제로 소록도를 방문했다는 기술은 없다.
하운은 대구로 돌아가 동산병원에서 DDS를 사고, 1947년 6월 23일, 밤 기차로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에서는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서윤복 선수 환영회가 열리고, 다른 쪽에서는 미군의 장갑차가 신탁 통치 반대 시위대에게 기관포와 기관총을 겨누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사상이 뒤섞여 비등하고, 혼란한 역사가 목적지를 잃은 남한의 불안을 목격하면서”(『반생기』)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 월북과 체포, 탈옥, 다시 월남
한탄강 근처의 주막에 도착하자, 자신 외에도 월북하는 사람들이 있어 동행하게 되었다. 남자 셋과 여자 다섯이 강을 건널 때, 여자가 업은 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해, 총성이 울렸다. 일행은 소련군에게 손목시계를 빼앗기고, 연행되었다. 하운은 보안서로 인도되었지만, “문둥이는 빨리 남으로 돌아가라”라고 해서 밖으로 나왔다. 퉁퉁 부은 다리로 걸어서 연천역에 도착해, 함흥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고산역에서 연행되어 유치장에 갇혔다. 자신과 남동생을 체포한 함경남도 보안부 정보과 조 형사가 나타나서, 남에서 음모를 획책했을 거라며 몰아댔다. 새벽에 유치장을 나왔다. 무장한 보안서원 두 명과 함께 열차에 올라, 이번은 함흥으로 갔다. 보안서원을 매수해 집에 들렀더니, 기와지붕의 저택은 파괴되고, 아무도 없었다.
함경도 보안부에서 독방에 수용되어, 다시 조 형사의 조사를 받았지만, 그 이후 다시 호출되지 않았다. 계속 내리는 빗소리와 하루 세 번 주먹밥 먹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일도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하운은 자신이 살아 있는 사실을 떠올리기 위해, 큰 소리로 노래하게 되었다. 간수와 다른 사람들에게 “시끄럽다!”라고 호통을 들으면, “내가 아직 인간 사회와 근근히 이어져 있는 증거처럼 여겼다. (중략) 간수도 익숙해져 내 얼굴만 보면 빙긋거리게 되었다. 그 웃음이 내게는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마지막 한 사람의 웃는 얼굴처럼 보인다.”(『반생기』).
기쁜 일도 있었다. 유치장에서 매일 DDS를 복용한 결과, 증상이 극적으로 개선된 것이다.
7월 8일 아침, 하운은 트럭 화물칸에 실려, 원산 중심부에 도착했다. 도로 양쪽에는, 누군가의 마중에 동원된 원산 시민이 죽 늘어서 있었다. 하운이 운전석 뒤에 서서, 수갑을 찬 두 손을 들어 올려, “어, 어!”하고 소리쳐 보이자, 길 양쪽에 늘어선 사람들도 깃발을 흔들면서, “어, 어!”하고 소리쳤다. 환영해야 할 사람이 왔다고 짐작한 것이다. 누구의 마중에 동원되었는지, 하운도 그들 자신도 몰랐다….
트럭은 원산 교도소에 도착했다. 하운은 독방에 감금되었다. 서쪽으로 난 문은 판자로 막혀 있었다. 바람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더워서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하운은 이대로 죽기보다는 탈옥을 시도하려고 결심했다. 교도관에게, 대변이 보고 싶다고 나가게 해 달라고 부탁해, 밖으로 나와서 주변 상태를 관찰했다. 감방에 돌아와 수갑의 열쇠 구멍을 관찰하니, 트럭의 열쇠 구멍과 비슷했다. 호주머니에 트럭 열쇠가 있어, 갈면 쓸 수 있을 듯했다. 온 힘을 다해 트럭 열쇠를 바닥에 문질렀더니 손이 아프고, 피가 났다. 마모된 열쇠를 왼손의 수갑 열쇠 구멍에 넣자, 수갑이 풀렸다. 오른손의 수갑은, 어찌 된 셈인지 열리지 않았다. 초조해 온몸이 떨렸다. 바로 날이 밝았다. 필사적으로 당겼더니, 손목의 살이 찢어지고 수갑이 바닥에 떨어졌다. 서쪽 문을 막은 판자를 힘껏 밀었다. 아래쪽이 조금 열려서 기어나갔더니 복도였다. 유리창에서 밖으로 뛰어내렸다. 개가 짖었다.
숲속을 기어서 철조망 밖으로 나왔다. 몇 번이나 총소리가 나고, 손전등이 번쩍였다. 오래된 공동묘지의 폐묘에 숨어들어 있는데, 유령이 된 기분이 들었다. 밤이 되어 묘를 나와 옥수수밭 속을 걸었다. 덕원에서 평안남도 양덕 온천의 산악 지대를 넘어, 황해도 곡산, 신계를 우회하고, 연안인가 고령포를 거쳐 38선을 넘을 생각이었다. 이번 월남은 북의 체제로부터 도피행이었기에 ‘탈북’이라는 말이 어울렸지만, 당시는 아직 그런 말이 없었다.
새벽 무렵, 비가 그쳤지만, 피로와 허기로 쓰러지고 말았다. 작은 개천의 물을 마시고, 밭에서 날감자나 옥수수를 갉아 먹었다. 짐이 무거워서 어쩔 수 없이 버렸다. 밤이 오고, 다시 아침이 왔다. 정오 무렵 화전 농업을 하는 화전민의 집을 발견하고, 돈을 내놓고 식사하게 해 달라고 했더니, 으깬 감자에 산나물을 섞은 것을 내주고 돈도 받지 않으려 했다. 감사하면서 다시 빗속을 걷기 시작했다.
추가령 준령은 병풍 같은 절벽으로, 계곡의 물은 계속 내린 비로 불어서 뇌성 같은 굉음을 내면서 흘렀다. 천하에 유명한 삼방협三防峽이다. 바닥이 다 닳은 신발도 버렸다. 한 걸음만 헛디디면 깎아 지른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진다. 비는 그쳤다. 하운은 삼방협을 천하의 명승이라 하여 하이킹을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가혹한 자연을 원망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이윽고 넓은 초원 지대가 나왔다. 맨발이어서 발바닥은 온통 상처투성이고, 다리도 부었다. 임파선도 붓고, 고열이 나서 오한에 떨면서 초원에 쓰러졌다. 그런데도 고통을 참으며 발꿈치로 걸었다. 복계를 지나 철원에 도착했다. 철원 외곽부를 거쳐 남으로 가는 길을 일주일간 걸어서, 연천, 전곡의 38선에 다다랐다. 한탄강은 물이 불어나 있었다. 강폭이 좁은 곳을 건너려고 어두워지기를 기다려서, 필사적으로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도 한동안은 북의 영역이 이어지기 때문에 불이 켜진 집을 목표로 부리나케 걸었다. 원산에서 한 달 이상 걸려 마침내 남쪽에 도착했다.
초가집에서 잠시 쉬고, 동두천역을 목표로 걸었다. 동두천에서 기차로 서울로 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집도 없는 문둥이가 서울로 가서 뭘 어떻게 하지? 『반생기』의 기술은 여기서 끝난다.<3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