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이미 칼에 베인지도 모르게 상대를 베는 칼잡이는 고수다. 그 보다 더 진짜 고수는 칼을 쓰지 않고도 상대를 제압하는 무사이다. 단지 칼만 사람을 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칼을 맞지 않고도 우리는 칼을 맞은 것처럼 쓰리고 아플 때가 있다. 때로는 봄날의 꽃잎이 칼이 되어 피를 흘리게 할 수도 있고, 한 소절의 노래가락만으로도 식음을 전폐할 수 있다. 한마디 스쳐 지나가는 말이 우뢰가 되어 천지개벽을 일으킬 수도 있다. 상대를 죽이지 않고도 상대로 하여금 싸울 의욕을 잃고 무릎을 꿇게 만드는 기술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고수의 검법이라 할 수 있겠다. 정치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소잡는 칼로 회를 뜨겠다고, 백정의 칼질로 암환자의 환부를 도려내겠다고 설쳐대는 정치인이 있다. 그는 결국 상대를 죽여야만 속이 풀리겠다는 속내를 몰래 감추고 있는 지도 모른다. 칼을 든 상대 앞에서 덜컥 겁이 난 것이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도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조바심 탓인가? 노무현의 죽음을 보고 타산지석의 시절을 거쳐온 이재명으로서는 진심으로 그런 그를 말리고 싶어한다. 그렇게 해서는 이 싸움이 결코 끝날 수 없다. 나의 죽음으로도, 당신의 죽음으로도 이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모두를 살리는 싸움을 해야지 모두를 죽이는 싸움을 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의 정치판이 전 국민들을 희생시키는 사망유희의 전쟁터가 되어서는 안된다. 당신은 지금 역모를 꿈꾸는 장돌뱅이로서 관군을 마주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청래당의 청래야.
사람은 때때로 자신이 하는 말보다는 자신의 말과 다르게 행동하는 모습 속에서 그의 진정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정청래는 들켰다. 그가 무엇을 꿈꾸고 계획하고 있는 지 우리는 알게 되었다. 우리가 보고자 한 바가 아니다. 정청래 스스로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전라도를 볼모로 삼아 정청래는 장차 무엇을 하려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박지원의 오랜 숙원과 정청래의 꿈이 마주친 지점에서 온갖 혼란이 빚어질 것이다. 윤건영까지 '두고 보자'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