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안기부냐?”라며 싸늘했던 북측 김봉익 사장 “의형제 하자!”
[남북경협기업인의 도전과좌절3]
(저스트 이코노믹스/ 황창환 / 2025-09-10)
남북대립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무심히 흐르는 강물과 삼엄한 철조망이나 초병도 없는 북·중 국경의 적막감, 그리고 그 속에서 사는 생명체들, 자연의 편안함을 마주하면서 내 가슴속은 숨이 막히는것 같았다.자연과 현실과의 괴리감..
황창환 글로벌특파원
시화물산 창업, 그리고 대북 접촉승인
1994년 12월에 이뤄진 북경 합의가 국내외 환경으로 실행이 잘 안되면서 이후 북측과 대화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에게 속았다고 완강히 거부하는 북측을 달래 후속 회담을 이듬해 3월 2일~6일 심양에서 어렵사리 성사시켰다. 나는 펄펄 뛰는 북측과 우리 대표단 중간에 끼어서 그들을 설득하느라 폭삭 늙다시피 했다. 중국에서 평양으로 전화만도 수십통 한 것같다.
오죽하면 평양에서 회담하러 4명이 나온다고 하니까 이윤구 회장이 “이건 기적이야, 기적!”이라면서 좋아했을 정도였다.
북측과 회담 전후에 쓴 메모지
어쨌든 심양회담은 잘 마무리됐고 김봉익사장과 그 일행은 새벽 2시에 심양에서 평양으로 가는 열차을 타기 위해 호텔을 떠났다. 떠나면서 김 사장은 “앞으로는 형님, 아우하는 의형제를 맺자”고 갑자기 말했다. 내가 그때까지 회담 성사를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고 끙끙거리는 모습이 좀 안쓰럽고 진실되게 보였던 것 같다. 처음에‘안기부 냐?’라고 의심했던 것과는 180도 바뀌었다. 당시 김봉익 사장은 대우 김우중 회장과 남포공단을 조성하고 있을 때였다. 1995년 나는 북한 무역을 위한 첫 회사인 시화물산을 창업하고 대북 접촉승인을 얻었다.
무심한 두만강
그해 봄에는 두만강변을 서른 번 이상 오가면서 강 건너 북녘땅에 평화로이 드러누운 소떼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나의 심신은 지쳤으나 가슴에선 시적인 감성이 일기도 했다. 남북대립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무심히 흐르는 강물과 삼엄한 철조망이나 초병도 없는 북·중 국경의 적막감, 그리고 그 속에서 사는 생명체들, 자연의 편안함을 마주하면서 내 가슴속은 숨이 막히는것 같았다.자연과 현실과의 괴리감..
【강변의 봄】
강 건너 마을도 봄인가 보다
사람들 움직임이 분주하고
밭은 새 곡식을 심기 위해
겨우내 잠을 깨워 놓았다
한껏 물을 품은 수양버들
그 아래 누런 황소는 제멋대로
드러누워 있다
저 무심한 강물을 보면서
풋풋한 미소가 봄빛과 함께
저 마을에 닿는다
내일 모래면 재너머 강건너 마을
뒤편에도
곱디고운
씨앗이 뿌려 지리다.
이 희년의 봄에
-1995년 5월9일
【용정 가는 길】
차창의 봄비는 시인의 시을 쓴다.
시인 곁으로 가는 길은
녹색의 융단위에 사과배꽃으로
온통 헌화를 했다
시인이 살았던 옛터에는
아직도 우리의 순종이
씩씩하게 숨쉬고 있다.
피가 통하니
외가댁에 온
편안함
든든함!
그러나
시인이 노래했던 별들을
자리바꿈하여 볼 수 없는
하늘의 별따기 같은
시절의 마디 끝
그래서
용정가는 길은
시인이 묻는 길
이제
차창은 화폭이 되었다.
햇볕은
혜란강의 넋을 반사하여
우리들의 닺힌 그 속으로
힘차게 꽂힌다.
- 1995년5월19일
사진은 용정중학교에서 필자의 모습
도문에서 남양을 바라보는 고 이윤구 총재(사진 가운데, 왼쪽은 필자)
출처 : https://www.justeconomix.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