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이라크 전쟁을 잊었는가? ①
중동의 얼굴을 바꾸는 이스라엘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5-08-29)
사카이 게이코 酒井啓子
치바 대학 특임 교수, 글로벌 관계 융합 연구 센터장.
『‘봄’은 어디로 갔나 ― 세계의 ‘모순’을 조망하는 장소에서 2017-2022』 『9․11 뒤의 현대사』 등의 저서가 있다.
* 이 번역글은 분량이 길어 2편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 역자 주
6월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의 주요한 군사, 첩보, 산업 시설을 100곳 이상, 공중 폭격했다. 피해는 테헤란의 국제 공항과 타브리즈 같은 지방 도시의 주거 지역에도 널리 미쳤다. 다음 날 아침에는 이란이 이스라엘을 미사일로 공격해, 수도 텔아비브를 비롯해 라마트간 등 주거 지역과 하이파의 산업 시설 등에 피해를 냈다. 두 나라의 격렬한 응수는 12일간 계속되었는데, 6월 23일에는 미 해군․공군이 이란의 원자력 시설 세 곳(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을 공격했다. 다음 날 이란은 카타르의 미군 기지를 보복 공격했지만,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이스라엘 간에 정전 합의가 성립했다고 SNS에 올리고, 이후 긴장 속에서도 소강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 응수에 관해, 일본의 많은 미디어는, 이스라엘 및 미국의 무력행사에 비판적인 형태로 보도했지만, 동시에 이란의 핵 개발 정책에 문제의 근간이 있다고 하는 논조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아사히 신문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때에는, 이스라엘이 핵보유국인 점을 들면서 ‘이중 기준’을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하는 한편(6월 14일), 미군의 공격 뒤에는, 그 비합법성을 지적하면서도 “이란에 잘못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 (우라늄 농축이) 이스라엘에 공격 구실을 주었다”라고 기술한다(6월 23일). 또 요미우리 신문의 사설은, “이란이 핵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이스라엘과 미국이 자위권 발동을 압박할 정도로 명백한 위협이 닥쳤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라고 미군의 공격에 의문을 드러내지만, ‘이란의 핵 개발’을 사실로 전제하고, 분쟁의 원인으로 간주한다(6월 25일).
무엇보다, 어느 보도나, 같은 nuclear인데도 ‘원자력 개발’이 아니라 ‘핵 개발’로 보도하며, ‘평화 이용 목적의 원자력 개발’이라는 이란의 기본적인 주장을 처음부터 부정한다.
이러한 보도 방식을 보며, 필자는 위화감을 떨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과거 이라크 전쟁 때 전개된 전쟁의 정당화 수식과 그 자의성․사실 오인, 그리고 그로 인해 초래된 전쟁과 전후의 막대한 인적, 경제적 피해에 대한 반성이, 거의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출판된 서적의 대부분이 절판되거나 품절로, 배움의 차원에서 다시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인간은 이처럼 빨리 과거의 실패를 망각하는 걸까.
■ 잊히어 가는 이라크 전쟁의 비합법성
이라크 전쟁과 이번 미국의 이란 공격은, 여러 유사점이 있다. 첫째는, 무력행사의 국제법상 비합법성이다. 이라크 전쟁에서는, 대이라크 무력행사를 진행하는 부시 정권에 대해 프랑스 등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반대해, 결국 대이라크 공격은, 유엔 결의가 없이 미국과 영국 중심의 ‘뜻을 같이하는 유지 연합군’의 독자적 군사 행동이 되었다. 그렇다 해도 전쟁 개시 전에 미국이 무력행사를 위한 유엔 결의를 얻으려 한 경위를 보면, 당시는 유엔이라는 국제 규칙 형성의 장을 어느 정도 존중하려고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미군의 이란 공격도 또한 국제법상의 정통성이 부여되지 않았지만, 유엔을 통한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앞의 이라크 전쟁 당시와 비교해도 이번의 유엔 무시는 매우 심하다. 더욱이 이란의 원자력 개발의 우라늄 농축 관리를 정한 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JCPOA)이 기능하고 있었던 때에는, 그 계획에 따라 이란은 고농도 우라늄을 폐기하고 있어, 그 틀의 유효성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런데도 그 틀에서 이탈한 것은, 이란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여기서도, 위기관리 구상의 국제적 틀에 반하는 존재는 미국 측이라고 할 수 있다.
거듭 지적할 수 있는 유사점으로, 공격 상대국을 “핵을 포함한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려고 한다”라고 죄를 단정하고, 단죄하기 위해 국제기구의 보고를 자의적으로 이용하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번 미군의 이란 공격은, 이란이 개발 중인 핵 시설을 파괴해 ‘핵 개발을 늦춘다’라는 구실이었지만, 그 배경으로, 국제원자력기구가 5월에 제출한 보고서가 “이란의 60% 농축 우라늄 보유량이 과거 3개월간 약 50% 늘었다”라고, 이란이 군사 전용이 가능한 직전 수준에 있다고 지적한 일이 있다. 6월 12일에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란은 공표하지 않은 복수의 원자력 개발 행동을 하고 있으며, 그 위반 행위와 관련해 충분히 국제원자력기구 조사에 협력적이지 않다”라고 해 ‘보장 조치 협정’ 위반 결의를 채택했다. 그로 인해 단숨에 이란의 위법성이 강조되었다.
이런 경위는, 대량 살상 무기의 폐기 임무로 이라크 국내에서 조사 활동을 계속하던 유엔 사찰단이 이라크로부터 협조적 자세를 얻지 못한 일을 문제로 삼아, 한달음에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 보유와 은폐’를 의심한 미국이 이라크를 군사 공격한, 이라크 전쟁의 정당화 과정과 너무 흡사하다. 당시의 이라크는 대량 살상 무기의 개발, 보유를 부정했지만, 사찰단의 안하무인격 조사 행위에 이라크 정부가 반발, 협력을 거부했기 때문에, ‘대량 살상 무기 은폐’라고 의심을 사서, 무력행사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제로, 전직 사찰관 당사자에 의해 임무의 반은 간첩 활동의 명령을 받았던 사실이 지적되고,『War on Iraq: What Team Bush Doesn't Want You to Know』, William Rivers pitt, Scott Ritter
이라크 전쟁 뒤 부시 정권은 대량 살상 무기가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이란과 과거 이라크의 핵 개발 의혹에 대해서는, 기억해 둬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원자력이든 핵이든, 보유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보유하는 국가가 반미인가 친미인가, 공격 의도가 문제라는 점이다. 애당초 이란에서 원자력 개발이 진행되었던 때는 1970년대 전반, 친미 정권인 왕(팔레비 국왕) 체제 아래서다. Michael Crowley “How the United States Helped Create Iran’s Nuclear Program” New York Times, June 24, 2025
당시 미국 정권은 물론, 서방측 국가들은 전면적으로 원자력 개발을 지원했다. New York Times “France and Iran Sign $4-Billion Accord ; Shah Will Receive 5 Nuclear Reactors”, June 28, 1974.
그것이 ‘원자력 개발’이 아니라 ‘핵 개발’로 위험시하게 된 시기는, 이란이 1979년의 이슬람 혁명으로 미국과 국교를 단절하고 대립 관계에 빠진 일이 계기다. 마찬가지 상황은, 이라크에서도 볼 수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 말기, 이라크와 미국 관계가 밀월 상태에 있었을 때, 미국은 이라크를 위해 농업 지원을 하지만, 걸프 전쟁으로 양국 간 관계가 단절된 이후, 이때의 수출 물자가 이라크 국내에서 생물 화학 무기로 사용된 것이 아닐까, 라는 의혹이 부상했다. The Riegle Report로 알려졌다. United States Senate, 103d Congress, 2d Session “U.S. Chemical and Biological Warfare-Related Dual Use Exports to Iraq and their Possible Impact on the Health Consequences of the Gulf War” May 25, 1994.
이 밖에도, 다양한 유사점을 이란 공격과 이라크 전쟁 간에 볼 수 있다. 미군의 이란 공격 전후에, 이란 혁명으로 망명한 팔레비 왕의 아들(미국 거주)이 현재 이란 이슬람 체제를 대신하는 존재로 갑자기 주목을 받지만, 이러한 발상은 과거 군사력에 의한 정권 전복 구상에서 빈번하게 부상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970년대 중반까지 존속한 왕정 시기 마지막 국왕인 모하마드 자히르 샤를 내세워, 2001년 탈레반 정권의 전복 뒤 국가 재흥의 상징으로 삼았다. 이라크 전쟁에서도, 1958년 혁명으로 타도된 왕가의 후예를 등에 업은 정치 조직이, 후세인 정권 뒤의 리더십이 기대되었지만,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친이란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당에 전후 체제의 핵심을 빼앗긴다는, 미국의 처지에서는 얄궂은 결과가 되었다.
이라크 전쟁이 보여준 역사적 교훈 가운데 하나는, 군사력에 의한 타국 정권의 전복은 전혀 수지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역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정권의 이란 공격도, 그런 부담을 짊어진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자신이, 대외적 개입 행위 탓에 미국의 국력이 쇠약해지는 일을 회피하는 일이야말로 MAGA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 선거에 승리했다. 그런데도 대이란 공격을 실행한 일은, 트럼프 본인의 본래 의도에서 벗어난 일이 틀림없다.
오히려 이란․이라크 전쟁 정전 이후 37년이라는 세월 동안, 외국으로부터 본격적인 군사 공격을 경험한 일이 없는 이란에서는, 이스라엘, 미군의 공격을 당해 내셔널리즘 기운이 생기고 있다. 특히 이제까지 정권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젊은 층에서 조국 방위 의식의 싹이 보인다는 일은, 근년 흔들리던 이란 이슬람 체제의 존속에, 거꾸로 유리한 환경을 초래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도 이라크 전쟁 실패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정권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이다. <2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