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평화, 이제 시간이 없다 ②
아우슈비츠 해방 80주년에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5-07-31)
모가미 토시키最上敏樹
1950년생. 바젤 대학(유럽 국제 문제 연구소) 객원 교수. 국제기독교대학 교수. 동 대학 평화연구소 소장을 거쳐, 동 대학 명예 교수. 와세다 대학 명예 교수.
국제법, 국제기구론, 평화 연구 전공.
『유엔 시스템을 넘어서』『국제기구론』 『인도적 개입』 『유엔과 미국』 『국경 없는 평화로』 『지금 평화란』 『국제 입헌주의 시대』 등의 저서가 있다.
■ 착종 끝의 도착倒錯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력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첫째로 그것이 이 역사적 역행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설령 그것을 복수의 역사적 문맥으로 돌리고 이해한다 치더라도,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특이한 요소가 남기 때문이다.
애당초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폭력의 다양한 근거는, 모두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일까. 건국의 토대인 신명神命이라든가, 유대 ‘민족’의 계승성, 시오니즘의 초법규성, 홀로코스트 유제로서의 이스라엘 처벌 면제성, ‘자위권 행사’의 통용 가능성 등등,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검토해야 할 논점이 산적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역사 다시 읽기를 통해, 국제법 이론의 재구축을 촉구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건국의 근거, 특히 주권적 민족 국가 창설의 근거는, 다름 아닌 ‘유대인’ 자신에 의해 정밀하게 재검토되고, 비판되었다. 거기에 관한 연구는 이미 여러 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슐로모 산드(1946년생. 텔아비브대학 역사학 명예 교수)의 『유대인의 기원 ― 역사는 어떻게 창작되었던가The Invention of the Jewish People』는 조사와 연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많은 ‘유대인 신화’가 역사적으로 근거 없는 (혹은 날조된) 것임을 증명한다.
첫째, 팔레스타인의 땅이 신이 유대인에게 주었다는, 일종의 영역 신수설神授說에 대해서는, 주된 근거인 구약성서 창세기 몇 군데에 관해, 유대인에게만 약속이 주어진 확증은 없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지만, 슐로모 산드는 여기에 더해, 이 주장이 역대 유대인 종교가․역사가․고고학자에 의해 각색되고, 창작된 것임을 자세하게 해명한다. 그리스에 있던 유대인 학자, 독일에 있던 유대인 학자 등 출신은 여러 곳이며, 특히 후자 그러니까 독일에 있던 유대인 학자들의 신화 창작 공헌이 결정적이다.
구약성서의 유대인에게서 이용 가치를 찾아내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고대 유대인이 성지에서 ‘추방’되어 ‘유랑’민이 되었다는 ‘역사 과정’까지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유대인의 ‘선천적 우수성’ 신앙도 생겨난다. 하지만 슐로모 산드는, 이러한 ‘이론’의 역사적 사실과의 모순과 작위성을 매우 분명하게 해명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성서가 근대적 유대 국가 형성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명확히 열쇠라고 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았던 것은, 19세기 후반이 되어, 초기 시온주의자적인 역사 기술이 비약했던 것과 같은 시기의 일이었다”라고 단정한다.
둘째, 유대인의 혈통이 순수 혈통을 유지하고, 그 집단이 하나로 뭉쳐 ‘유랑’했다는 시온주의자 세계의 통설도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것을, 슐로모 산드는 상세하게 논증한다. 고대부터 다른 장소로 ‘이주’하는 유대인은 많았고, 이집트에도 로마 제국에도 거주했다. 이주처에서 사람들을 유대교로 개종시켜서, 개종으로 ‘유대인’을 늘렸다. 예전에 유대의 나라로 불렸던 팔레스타인은, 7세기에 이슬람교 군대에 정복되었는데, 거기서 유대인이 근절된 적도 없다. 그 유대인 후예가 아직껏 남아 있는 팔레스타인 농민일 가능성마저 있다. 4세기에는 현재의 이스라엘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었던 힘야르 왕국을 유대교로 개종시키고, 7세기에는 현재의 튀니지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베르베르인 왕국에도 세력을 확대했다. 7~10세기, 러시아 남부 일대와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권세를 떨쳤던 하자르 왕국도 또한, 강대한 유대교 국가였다. 당연하지만, 인종적으로도 많은 뒤섞임이 있었다고 보인다. 이렇게 유대인은 추방되어 유랑도 하지 않았거니와, 순수 혈통을 유지한 것도 아니다.
이리하여 슐로모 산드가 기술한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대부분의 유대인은 동유럽 출신이며, 주로 하자르 출신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유대인의 선조는, 유전적으로는 훈족과 위구르족과 마자르인과 깊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셋째, 이렇게 계속 창작되어 온 ‘유대 민족’이라면, 그것이 팔레스타인 땅을 독점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고 슐로모 산드는 말한다. 사실에 기초를 두지 않은 신화가 근거라면 영유의 정통성도 없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슐로모 산드의 결론은 사리에 맞다.
덧붙여 필자(모가미)는, 역사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것을 밝히기 위한 이론적 도구로서, “과거로 회귀한다”라는 사고를 제창한다. 제노사이드와 노예무역 등, 예전에 행해지고, 아직도 불문에 부쳐진 상태의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하다못해 법적으로 결착을 지어야 할 시점을 원래로 돌려 생각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이스라엘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리자고 해도, 2,000년 혹은 3,000년이라는 유구한 태고에까지 돌아가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불필요하게 망치는 것이고, 추방과 분산과 유랑과 같은 논거도 거의 창작인 이상, 거기에 기초하는 故國 탈환 주장도 근거가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회귀를 고려해야 한다면, 약 80년 남짓 전에, 2,000년 가까이에 걸쳐 거의 평온하게 살아온 고향에서 폭력적으로 내쫓겨, 난민 상태가 된 팔레스타인인(혈통적 유대인을 포함한)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시점이며, 파괴와 살육의 증거는 충분히 있고, 피해자가 잔존하고, 아직도 계속되는 가해의 희생자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 서구형 식민지화 ― 주디스 버틀러와 에드워드 사이드
1. 슐로모 산드의 조사와 분석이 유일한 바른 역사기술인지 아닌지는, 아직 논의의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도 인용된 “시온주의자”의 반발과 반론으로 볼만한 것은 없고, 당분간 앞의 요약 같은 역사 이해를 전제로 논의를 진행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배타적 또는 폭력적인 유대 국가 건설이라는 의미에서의 시오니즘이 현대 세계에서 용인될 수 있을까, 그것이 이스라엘 및 다른 국가의 유대인 공동체에도 행복한 일일까, 일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애초에 시오니즘이 유대교의 이념과 심지어는 유대주의Judaism와 같은 것인지 아닌지가 된다. 유대교의 이념과 유대주의는,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의 거주지를 빼앗고 생명을 파괴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탈선한 폭력적 시오니즘이 행한 업인 것일까.
주디스 버틀러의 『갈림길 – 유대성과 시오니즘의 비판Parting Way - Jewishness and the Critique of Zionism』은, 발터 벤야민과 엠마누엘 레비나스와 프리모 레비, 나아가서는 한나 아렌트와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상, 바로 그 사상들의 역사적 문맥을 이해하는 해박한 책이지만, 이 책이 핵심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바로, 오늘의 이스라엘 혹은 시온주의자 우파가 취하는 행동이 본래의 유대주의인가, 유대 민족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었던가, 라는 점에 있다. 슐로모 산드와 같은 유대인이지만, 슐로모 산드와는 또 다른 유대 역사 검증에 나서, 그의 역사론의 한 발 앞에 있는 것(있어야 할 것)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현재의 이스라엘이 하는 행동에 체현되고 있는(있다고 오해되고 있는) 유대교와는 다른 유대교 및 유대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행위라는 점에 있다. 그것은 유대인으로, 자민족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으려 하는 학문적인 영위임과 동시에, 자민족을 대표하는 존재처럼 보이는 이스라엘의 위법 또는 반윤리적인 행동에 비판을 가하는, 보편주의적 유대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시도이다.
이스라엘 국가형의 유대적 정체성 또는 유대교, 또는 시오니즘에 대한 비판은, 한나 아렌트의 비판과 완전히 공명한다. 바로 “이스라엘은 유대 국가여서는 안 된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선주민이 있는 땅에 주권 국가를 수립하는 것은, 국가 폭력으로 토지 소유권을 빼앗는 것이며, 식민지주의의 인종 차별 형태이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1948년의 건국 전쟁(팔레스타인인에게는 ‘나크바=대재앙’) 같은 수단이 미래에 어떤 화근을 불러올지, 그것을 예리하게 간파했다. 이스라엘이 설령 전쟁에 승리했다고 해도, 많은 적에게 말려들어, 오랜 세월에 걸쳐 전쟁을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동시에, 그 근저에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굴절도 간파했다. “자신들을 어떤 의미에서 ‘선택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은 (중략), 자기 멋대로 왜곡한, 일종의 인종 차별적인 미망에 갇혀 있는데 불과하다.”
주디스 버틀러는 이런 아렌트 사고를 거의 전면적으로 긍정하며, 그 위에 자신의 사고를 덧붙인다. 신의 용서에 대한 이해로서, “보상과 처벌에 갇힌 처방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그것과 다른 선택지가 돼야 한다”라고 하는 벤야민의 이론에 기대어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 및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종교적 최후 통고라고 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대체 사고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유대교” 가능성이며, 그것은 “복수의 연쇄에서 해방된 시간”을 불러오고, “복수심을 불태우는 신이 아니라, 복수 그 자체를 파괴하려 하는 신이다.”
그리고 좀 더 말한다.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에 특징적인 ‘전진’이라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우월적인 사람이 ‘전진’할 때마다 (희생자들이 입은 고통에 대한) 기억 상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 전개에 따라 복수가 행해지는 대신에, 진보를 ‘제공한’ 이런저런 정치적 기억 상실에 저항하는 현실 투쟁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모두 없었던 일로 하고, 뒤로 내팽개치고 온 사람들과 사태에 대한, 냉엄한 경고이다. 고통을 당하고, 버려진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기까지 저항을 그만두지 않는다.
이 성찰은 또한, 에드워드 사이드가 반복한, 하나의 고난을 보편화한다는 사고에도 일치하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경험했던 극한의 고난은, 우리만이 아니라, 이제 누구에게도 지워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수탈된, 고국을 상실했다는 경험은, 비단 유대인만의 일이 아니다. 그것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공통하는 경험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는 한, 팔레스타인 문제 = 유대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얻을 수 없다.
2. 이리하여 슐로모 산드든 한나 아렌트든 주디스 버틀러든, 유대인 지식인들이 자민족에 대한 피나는 성찰을 거듭한다. 그것은 지적 성실함에 다름 아니지만, 동시에 그것이, 상대방인 팔레스타인 출신의 에드워드 사이드와 공명하는 점이 많은 사실은,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를 북돋운다.
주디스 버틀러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입식형入植型 식민지주의로 부르고, 아직도 요르단강 서안에서 계속되는 ‘입식지入植地’ 확대가, 바로 ‘식민지주의’임을 의문의 여지 없이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역사 수정 = 시간 거꾸로 돌리기를 재촉하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도리나 이유를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이스라엘 지지에 망상적으로 집착하기만 하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나치즘 반성’이라는 한 가지만 밀고 나가며 지원을 계속하는 독일, 식민지 지배라는 부끄러워해야 할 경력이 풍부한 영국과 프랑스. 저 유럽과 아메리카의 대국들이, 바로 서구 식민지주의와 같은 형태의 행동을 취하는 이스라엘을 지원해 왔다. 유럽과 아메리카의 대국들이 식민지주의를 반성하고 청산을 하지 않은 채, 식민지주의라는 최악의 유산이 팔레스타인에서 분출하고, 계속 분출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이 하는 짓이 서구 식민지주의와 흡사한 모양인 것을 지적한, 최초의 인물은, 말할 것도 없이 사이드이다. 그의 저서 『팔레스타인 문제The question of Palestine』에서 그는, 요람기 시오니즘을 강력하게 떠받쳤던 영국의 아서 밸푸어의, 불합리한 역사관 및 정책론을 비판적으로 인용한다. 1919년, 아서 밸푸어가 외무부 장관 재직 무렵의 외교 문서인데, “(연합국) 4대 대국이 후원하는 시오니즘”은, “그 땅에 고대부터 지금도 살고 있는 70만 아랍인의 소망이나 신념 따위보다 훨씬 깊고 중요하다.” 이렇게 하여 역사의 정의 실현을 왜곡하는 방해가 식민 제국의 재가를 얻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없는 존재로 멸시하는, 시오니즘의 자의적 역사 구성은, 사이드에 따르면 “유럽인에 의한 문명화 사명이라는 신조 체계와 완전히 같은 방식이다.”
유엔에서 가맹국 지역 구분에서, 이스라엘은 “서구 기타”로 분류된다. 중동 국가들이 속한 “아시아 태평양”이 아니다. 슐로모 산드 등도 지적하듯이, 이스라엘로 이주해 온 유대인의 대부분이 유럽 유래이기 때문에, 그 분류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설령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쳐도, 거기에는 지역 선주민의 생존권 부정과 역사 왜곡이 있다. 인권 박탈과 평화 파괴를 수반하는 분류다. 사이드에 따르면 “시오니즘과 서구 간에는, 예나 지금이나, 언어와 이데올로기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더욱이 사이드에 따르면, 서구 입장에서 이스라엘은 본받아야 할 규범이고, 아랍은 골칫거리가 되며, 어느새 이스라엘은 서구 민주주의의 화신이 되어, 반유대주의(anti-Semitic) 아랍인들에 의해 이유도 없이 습격당하는 사람들과 서구 국가로 여겨진다. 이리하여 “현실의 역전은 완성이 된다.”
그리고 시오니즘은, 서구에서 반유대주의 해독이 퍼뜨려졌던 시대에 발흥했음에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서구 식민지주의에 의한 전대미문의 식민지 획득과 시기를 같이 하고 있었다. 스위스 바젤에서 제1회 시온주의자 회의가 열린 것은 1897년이며,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분할을 결정한 베를린(콩고) 회의 2년 뒤의 일이다. 사이드에 따르면, 시오니즘 운동의 선구가 되었던 테오도르 헤르츨은 일찍부터 “유대인을 위한 해외 식민지”라는 구상을 품고 있어, 배타적․차별적․제국주의적 실천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사이드는, 이스라엘이 초래한 것은, “시오니즘을 대리인으로 하는, 본질적으로 차별적이고 강력한 문화였다”라고도 한다. <3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