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of Book 『서양 근대의 죄』
전후戰後의 악인惡人 정기설正機說 ― 자유·평등·민주주의는 이대로 패배하는 걸까?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5-07-18)

후지사와 슈藤沢周
1959년생. 소설가, 전 호세이 대학 경제학부 교수

도대체 지금은 어떤 시대가 되고 만 것일까.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자에서의 제노사이드, 트럼프 관세로 대혼란에 빠진 이 시대는…. 세계는 점점 광란의 상태로, 절망적인 공포와 불안의 격류에 휘말릴 뿐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세계는 이러한 광기에 빠져, 폭주하고 있는 걸까.

아니 미친 것은 아니다. 자유, 평등,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축으로, 서양 근대의 고질병인 식민지주의와 인종주의 역사를 생각하면, 오히려 필연은 아니었던가. 오사와 마사치大澤真幸의 『서양 근대의 죄』는, 그런 역사와 흐름의 배후에 있는 시대의 무의식을, 정치에서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시스템과 표상을 척결해, 현재에 이른 길과 미래를 보여주는 제언의 책이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의 역사이기 때문에, 아직 희망은 있을지 모른다. 시대가 변화하는 몇 개의 결절점을 분석함으로써 부상해 오는 것. 먼저 그것들을 봐야 한다.
 
예를 들면, 현대에서 정치, 사회가 위태로운 조짐을 보였을 때, 우리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쁜 상황을 불러온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처럼 폭력에 호소할까. 아니다. 이 책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미국의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Erica Chenoweth가 방대한 자료 해석을 해 제시한 결과가 있다. 비폭력적 캠페인 = ‘시민적 저항’ 쪽이 폭력 수단보다 훨씬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시위, 파업, 불매 운동, 공개 토론 등등이다. 게다가 ‘3.5% 규칙’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국민의 3.5%가 일제히 일어나서, 뭔가 현상 변경을 요구했을 때, 정부에는, 그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3.5%의 국민이 정권에 등을 돌리게 하거나, 두 개의 길밖에 없다.”

트럼프든, 푸틴이든, 네타냐후, 시진핑의 악정에 대해서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3.5%’라는 숫자는 실제로는 상당한 장애인 것은 분명하지만, 세계 각지에서는 가자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의 히잡 강제에 대한 항의 행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21세기에 들어선 뒤 대규모 시민적 저항으로 친다면, 탈원전을 요구하는 시위(2011년)와 헌법 해석 변경에 의한 안보법제 반대 시위(2015년)가 기억에 새롭지만, 그 항의 행동들의 빈도는 극단적으로 낮다.

“인류 사회․지구 사회의 총체적 파국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심층에서 ― 때로 의식적으로, 때로 무의식적으로 ― 작용하기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급격하게 시민적 저항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왜 일본만 적은 걸까. 일본인도 물론 세계의 변혁과 개선에 공헌하고 싶은 의욕은 가지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그것이 현실로 체현되지 않는 하나의 요인을 탐구하면서, 저자는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世界系’라는 특수한 이야기 유형에 착안한다.
 
“자신이 ‘세계’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체라는 확신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떨까. 그때 사람은,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고, 원하고 바라는 것을 허구의 세계를 통해 대리 충족하게 된다.”

이 주체에 관한 독특한 ‘인지 지도’에서 생겨난 허구 = ‘世界系’가, 사실은 일본인의 戰中 戰後를 둘러싼 왜곡된 인식에서 생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저자는 고찰한다. 결국, 전쟁의 가해자는 누구였던가를 애매하게 만든 채, 자신을 ‘악의 없는 희생자’로 인식해 온 기만이야말로, 일본인의 주체 왜곡을 낳은 원인 가운데 하나로 분석한다.
 
서양 근대를 모방해, 식민지주의와 인종주의를 포함한 ‘악’을 행한 자인데도 불구하고, 전쟁 패배를 내면화하지 않은 상태로, ‘선의의 희생자’였다고 위조한 일본인. 평론가로 치면, 예를 들면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가 「타락론」과 「백치」 등에서, “희박한 반성 의지와 중우衆愚의 망동”으로 한 나라의 운명이 움직였던 사태를 철저하게 까발린 필치와 공통한다고 본다.

‘악에서 선으로’의 주체화 과정을 생략한 채 전후를 어떻게 인식하고, 내면화하고, 초극할까에, 모든 것이 매달려 있다는 말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악’의 지옥을 두루 돌아다니며,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극복하기 때문에 선(= 구원, 왕생)으로 향할 기회와 인연이 있다고 설파한 신란親鸞의 ‘악인정기설惡人正機說’. 이 책은 ‘악인정기설’의 현대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악인정기설은, 일본 정토진종의 핵심 교리다. 정토진종은, 정토 신앙을 기반으로 하며, 특히 아미타불의 힘에 의지해 극락왕생을 이룰 것을 강조한다. 신란은, 아미타불의 원력願力을 믿고 염불하는 것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파한다. 악인정기설은, 단순히 악인이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악인이야말로 부처님의 자비와 구원의 대상임을 보여준다. 즉, 악인에게는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고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반적인 불교에서는, 선행을 쌓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악인정기설은 선행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한다. 신란은, 인간의 힘으로는 선행을 온전히 행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오직 부처님의 힘에 의지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 역주

만약 현대 일본이 진정한 주체를 확립했다면, 예를 들면 가자 전쟁의 중개자를 떠맡는 것으로 패전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고, 저자는 제기한다. “꿈같은 일”라고 저자 자신은 표현하면서도, 이제는 ‘테크노 봉건제’(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 : 경제학자, 전 그리스 재무장관)로 화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에서 멀어지기만 하는 현재에 있어, 많은 시사와 제언이 넘쳐나는 책이다. ‘서양 근대의 죄’를 묻는 일은, 그대로 현대 일본의 죄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세카이』, 202507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