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칼럼] 한반도 체스판 다시 두기
(피렌체의 식탁 / 송영길 / 2025-07-11)
- 겐셔리즘 : 모두를 친구로, 나의 이익을 취하는 전술로써 외교 중요성
-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반성 불가피...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았나
- ‘한미일’은 ‘북러중’을 부른다 : 트럼프도 이재명도 ‘외교 안보’ 고민
- 중러 연합 용인 안 할 트럼프 견제 전략 파악 필요
이재명 정부의 안보라인. 안규백(국방부) 장관 후보, 정동영(통일부) 장관 후보, 조현(외교부) 장관 후보(왼쪽부터)
전 국회 외통위원장이자 민주당 대표였던 필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으로 한반도 신 외교 방략을 펼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다. 우선 한미일 군사동맹의 본격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점에서 트럼프의 실용성에 기대가 있다.
대안으로 한중일 정상회담의 정례화, 한러중일 정상회담의 개최 등을 얘기한다. ‘미일과 친하되 북중러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한국 진보의 오래된 제안이자 제대로 펼쳐보지 못해본 방안이다. 필자는 한국의 한스 디트리히 겐셔와 같은 외교적 리더십, 송민순 전 외교장관의 칼끝같은 실리외교를 칭찬한다. [피렌체의 식탁 편집자 주]
북핵문제, 남북관계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의 입장은 그때마다 ‘한미일 협력강화’다. 하도 듣다 보니 어떤 때는 진부한 표현(cliche)같다. 한미일 협력, 대화 중요하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미일 협력은 필요조건이면서 현상유지요소다. 결국 적대관계, 분단상태를 유지하는 구조다.
적대적인 분단상태를 극복하는 데 필요조건은 북중러와 필요한 만큼의 협력이다. 외교는 모두와 친구이되 나의 이익을 지키는 전투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녔으면서 독일 실리외교의 대가이자 통일 외교의 초석을 깐 한스 디트리히 겐셔 독일 외무장관의 교훈을 떠올린다.
타계한 독딜의 겐셔 전 외무장관.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 꼽히는 그의 철학은 ‘겐셔리즘’으로 실리외교의 대명사가 됐다.
겐셔가 외무장관이 되기 전 독일(아데나워)은 프랑스(드골)과 협력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를 확실하게 확립하였다. 그후 1970년대 들어서 사민당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이 있었는데 이때 사민당, 기민당 등 모두와의 연정을 통해 정권에 참여한 소수정당 자유민주당의 겐셔는 외무장관으로서 최장수를 역임한다. 브란트 치세에 시작해 콜의 독일통일 이후 그만 두었으니 무려 18년간 한 사람이 외무장관을 맡은 것이다.
그는 18년 동안 보수, 진보정권과 연립내각의 외교부 장관(1974-1992)으로서 미,영,프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소련의 고르바쵸프 당서기와 세바르드나제 외교부 장관, 동독측과 긴밀히 대화와 설득, 협력을 얻어냈다. 그가 있었기에 소련군의 동독 철수와 베를린장벽 붕괴, 독일 통일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 겐셔리즘이 필요하다고 믿는 이유다.
같은 진영 국가들과 잘 지내고 손익을 나누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고, 타 진영에 속하는 나라, 특히 분단 상태에서의 적대적 반쪽 국가와 실리의 합(合)을 잘 만들어내는건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이게 외교의 본령인데 겐셔는 이 점에서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겐셔가 동독과 소련을 상대로 독일통일이라는 역사의 분기점에서 난제들을 풀어낸 것은 우리로 치면 북한, 러시아, 중국과의 외교에서 공존과 실리의 합의를 잘 만들어 낸 것이다.
여기서 일본 얘기를 하고 싶다. 일본은 식민통치와 국권침탈의 주역이고 현재는 미국의 요구에 의해 군사정보까지 교환하는 우방이다. 일본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21세기초 6자 회담에서 여실히 드러났는데 당시 일본은 회담이 성공할 것 같으면 은근 어깃장을 놓았다. 당시 일본의 태도를 두고 ‘일본인 납치문제로 6자회담을 납치하려고 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나 통일을 싫어한다는 오래된 속설이 그 시기에 한번 더 입증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세한 내용은 당시 한국 측의 협상대표였던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빙하는 흐른다> 저서를 참고해주시길.
이런 일본을 상대로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 외교가 있어야 하는데 최근의 대일 외교는 일방적 양보가 지나치게 많았다. 퍼주고 당하기였다. 한일은 2016년 11월 박근혜 정권말기 지소미아(한일정보군사보호협정)를 체결하였다. 그러나 식민지시대 일본제철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된 일본내 반발이 일어나자 일본은 한국을 자국의 무역 리스트,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이른바 소부장 파동이다. 한국측이 이에 대한 반발로 지소미아를 중단시키려고 하였으나 미국의 압력으로 2019년 11월 22일 종료 6시간 전 조건부 유예되었다.
윤석열 정권은 더 형편없었다. 홍범도 장군상 철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옹호, 위안부 문제 양보, 징용 관련 손해배상 소송 집행저지,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방치, 독도 문제, 동해 표기 문제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마침내 2023년 8월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바이든, 윤석열, 기시다간 회담에서 한미일 군사훈련 정례화를 합의하였다.
윤석열-바이든-기시다 말기인 2024년 6월에는 제주 남방 항공과 해상에서 첫 연합훈련이 실시되었다. 미국은 환호했다. 미국, 일본의 오랜 숙원의 첫 단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확장시켜 대만,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연합,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어 중국을 봉쇄하고자 하는 꿈이다. 미국으로서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부추켜 미국의 방위비를 줄이고 미국의 역할을 일본에게 넘기는게 목표다.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의 이런 기조는 아직 유지되는 듯하다. 지난 3월말 도쿄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회담한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은 한반도와 남중국해를 하나의 전구(戰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미일의 현재 구상은 종국적으로 아시아판 NATO를 만드는 것이다. 나토 5조와 같은 조항이 도입되면 센카쿠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 분쟁, 대만해협 분쟁, 러일간 쿠릴열도 분쟁에 아시아판 NATO로 인해 자동 개입되는 것이다. 한미일 협력이 설마 군사동맹까지 이어지겠느냐 의문하지만 현실은 그쪽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다. 아무런 설명없이.
다행히 최근 일년 사이에 변화가 생겼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대신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고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다. 일본도 총리가 바뀌었지만 외교의 기조는 아직 그대로인 듯하다. 한국과 미국은 바이든-윤석열과는 확 달라질 수 있다.
우선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을 겪으면서 또하나의 긴장, 더구나 대만 해협도 아닌 한반도에서의 긴장은 원하지 않는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NATO 동부확대와 우크라이나의 무리한 나토가입이 푸틴을 자극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대선 승리 직전인 2024년 10월 31일의 FOX 뉴스 인터뷰를 인용하여 본다. “미국이 중러가 함께 하도록 밀어붙이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나는 그들을 다시 분리할 것이고 그것을 할 수 있다. 멍청한 사람들이 러시아와 중국, 이란, 북한을 한 무리로 함께 하게 했다.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해야 하는 것이 러시아와 중국의 연합이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서로 간에 적이다. 러시아는 큰 땅이 있고 중국은 그것을 필요로 한다. ”
북한도 태도 변경이 가능하다. 싱가폴회담 이후 하노이회담 성공의 희망이 보일 때 김정은 위원장은 원산항을 미국함대 기항에 개방할 수 있다는 의사도 표시하였다고 한다. 얼마나 큰 발상의 전환인가? 그런 북한을 한미일 동맹강화로 북중러 군사동맹으로 유도하는 것은 재앙이다. 북한 원산항에 러시아함대, 중국 항모가 기항한다고 생각해보라? 한국은 물론 일본의 안보가 얼마나 위협에 처하게 될 것인가?
이재명 정부와 트럼프 정부는 <안보딜레마>를 생각해야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의 완벽한 방어는 상대방이 취약한 공격상태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나의 안보 강화는 상대방에게는 안보 위협이다. 상대방과 상대국의 안전과 안보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나의 안전과 안보를 보장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현재의 상황은 만만치 않다. 이재명 정권이 들어선 이후인 6월18일에도 제주도 상공에서 대한민국공군 F-15K 2대, 미국 F-16 파이터 6대,일본 자위대 F-2 파이터 2대가 합동 군사훈련을 하였다.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지나갔다. 국방부 외교부 장관 청문회 등이 마무리되면 심도깊은 논의와 전략수립이 필요하다.
한국은 한중일 정상회담 정례화, 블라디보스톡에서 매년 열리는 한러중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 북중러로 군사적 긴장고조 가능성을 경제협력을 통해 완화시켜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실용외교는 오바마, 바이든의 일본중심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와는 다른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를 유도할 수 있는 한국에도 겐셔와 같은 외교적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다.
15년전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한다. “한미일이 똘똘 뭉쳐 있기만 해서는 눈앞의 벽을 돌파하기 어렵고 또 앞으로 협상에서 한국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 미, 일의 논리를 따라가는 종속변수가 될 가능성도 우려했다.”
“한미일 동맹강화는 미국 동아시아 정책의 최우선 목표이다. 그 결과 동북 아시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으로 확연하게 대립하는 상태가 되고 분단의 비극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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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송영길은 민주당에서 국회의윈(5선), 인천시장을 거쳐 당 대표를 지냈다. 2022년 대선이 끝나고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본인 지역구인 인천계양구갑을 양보하고 서울시장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80년 광주 대동고 3학년 때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다.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하다 투옥됐으며 인천에서 7년 동안 노동운동을 했다.
서른 살에 사법고시에 합격, 인권·노동변호사로 살다 정치에 투신했다. ’외교하는 민족이어야 한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신념을 받들어 남북통일과 국리민복을 정치의 본령으로 삼아 활동해왔다. 5개국어를 구사한다. 윤석열 정부시절 정치자금법 사건으로 기소돼 2심이 진행중이다. |
출처: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