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압살(학살)은 먼 과거 아닌 현재진행형
언론개혁 제1과녁은 국가보안법 철폐

(사람일보/ 정일용 / 2025-07-07)

1. 들어가며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때가 1987년이었다. 그 때 6·10민주항쟁 취재현장에서 최루탄 가스를 원없이 마셨다. 눈물을 흘렸던 것은 이 최루가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용 기자’를 배척하는 싸늘한 눈총이 훨씬 더 아팠다. 시위대가 기자에게 주먹다짐하는 건 예사였다. 실제로 두들겨패기도 했다. 공권력도 보호막이 아니었다. 시위 진압경찰마저 취재 기자를 팼다.

그때 우리는 ‘뼈를 깎는 반성’으로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약속했다. 그 이후에도 약속하고 또 약속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을 것 같은 절박한 심정에서였다.

그때로부터 40년 가까이 흘렀다. 강산이 네 번 바뀔 세월이다. 또 한번 뼈를 깎았다간 서지도 못하고 주저앉을 것만 같은 고통의 나날들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반성을 계속하고 언론개혁 화두를 반복하고 있다. 

‘어용 기자’ 비판은 그래도 점잖았다. 이젠 쓰레기 기자 ‘기레기’다. 언론이 제4부이며 기자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자부심은 온데간데 없다. ‘영혼 없는 기자’들이 ‘영혼 없는 공무원’을 꾸짖는다. 아니, 꾸짖는 척하면서 그 비겁한 짓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 독자들이 나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고 훈수해도 할 말이 없다.

기사 한 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입 밖에 꺼내기 민망하다. 권력을 견제하기는커녕 빌붙어 빵부스러기 하나라도 챙기려는 추악한 몰골, 그것이 한국 언론의 민낯이다.  한국 언론이 대체 왜 이 모양이 됐을까. 대체 어디서부터 꼬여 이 꼴이 됐을까.

2. 언론개혁 제1 과녁…국보법 철폐

언론개혁은 언론의 잘못된 점을 고치는 것이다. 그러니 잘못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서부터 언론개혁이 시작된다. 언론의 문제점은 활쏘기에 비유하면 과녁이다. 과녁도 없이 무작정 쏴대는 건 그냥 활쏘기 놀음인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목표 제시도 없이 맨날 언론개혁 외쳐봐야 별무소득일 것이다.

한국 언론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언론 자유가 있기는 한 건가? 당장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고…. 그리고 또 하나, 왜 다른 많은 나라 중에서 하필 조선(북한)에 비교하는지 모르겠는데, 조선에 비할 바가 아니지 않는가 하고 반박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의 요체 중 하나는 언론자유의 향유이다. 만약 한국에 언론자유가 없다면, 그 자유가 천부적 기본권으로 누리는 게 아니라면, 민주공화국으로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천부적 기본권’이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한국적 언론자유’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즉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민주국가는 있을 수 없다. 언론 자유는 천부적 기본권이므로 이런저런 이유를 달 것도 없다.

국가보안법은 언론자유와는 양립할 수 없다. 국보법을 그대로 놔둔 채 언론자유를 외치는 건 연목구어나 마찬가지이다. 국보법은 1948년 12월 1일자로 제정됐다. 단독정부 수립 석 달여 만이다. 그러니 한국 사회는 80년 가까이 언론자유를 억압 당한 채 ‘사이비 민주국가’로 지내온 셈이다.

국보법으로 사법 살인까지 저질러온 나라에서, 수십 년이 지나서 ‘죽여서 미안하다’는 사과로 끝내는 나라에서,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제21조 언론자유 조항)를 요구하는 게 과람한가.

언론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언론자유 보장이다. 국보법을 그대로 놔 둔 채 언론개혁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과문인지 모르겠으나,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암적 존재인 국보법을 철폐하라는 주장을 언론계에서 제기하고 투쟁한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분단국가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국보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옹호하는 주장을 펴왔다. 그 결과는 ‘친미반북반공’이라는, 시대정신이라고 칭할 수도 없는 일부 수구기득권 세력의 허접한 주장을 80년 가까이 견고한 방패로 만들어 줬을 뿐이다.  

의도적으로 ‘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약칭)이라고 썼다. 분명히 실재하는 실체를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지구는 둥글다고 하지 지구가 둥글어야 하기 때문에 지구가 둥글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조선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는 건 익히 아다시피 헌법 3조 영토조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현실에 반하는 이 조항을 그대로 두는 건 ‘조선은 한국의 적이어야만 한다’는 괴상한 주장을 펴는 것이나 똑같다. 적국은 어떻게든 줄이고 우방은 하나라도 더 늘리는 것이 정상적인 외교활동이다. 어떻게든 조선을 적국으로 둬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국보법을 한·조관계(韓·朝관계) 개선을 저해하는 실정법으로만 인식할 게 아니라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암 같은 악법으로, 언론계에서는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언론개혁의 제1 과녁은 국가보안법 철폐이다. 국보법 철폐는 언론개혁 과녁 명중(命中) 중에서도 가히 관중(貫中)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3. 3개 권력의 ‘언론 공모압살’, 책임 물어야

한국 언론사에서 내가 기억하는 ‘언론 학살’은 적어도 네 차례 이상 자행됐다. 박정희 정권 시절 민족일보 사태,  언론 기본윤리법 파동, 역시 박 정권 시절의 동투·조투 사태, 전두환 정권 때 언론인 강제 해직과 언론사 강제 통폐합 사태 등이다. 

이걸 3개 권력의 언론 공모압살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3개 권력이란 입법 행정 사법부이며, 언론 공모압살이란 이들 권력이 합동으로 언론인들을 언론계에서 축출함으로써 오늘날 ‘요모양 요꼴’의 한국 언론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언론은 국가 4권(四權) 중 하나이다. 민주국가의 운영 원칙으로 작동해 온 3권분립에다 제4부, 제4권력으로 언론이 추가됐다. 3개 권력을 감시하는 제4부로서 언론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권(정부, 또는 행정부)이 언론을 탄압하고, 입법부에서는 그를 견제 없이 방관했으며, 사법부 또한 그에 동조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결과적으로 3개 부가 제4부인 언론을 공동으로 억압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민주국가에서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언론압살의 책임을 물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당시 압살 사태의 진상이 단편적으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그 책임을 물어 응당한 조처를 했던 적은 없었다.

동투 조투는 백발이 성성해진 지금도 거리투쟁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으나 ‘책임자’는 입을 닫고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그 선배들 덕에 이제는 남산에 끌려가 ‘빠따’를 맞을 일이 없어진 후배들은 선배들 덕택을 잊고 그저 까마득한 역사로 기억할 뿐이다.

군(軍)의 일개 준위가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언론사를 이리 찢어다 저리 붙이고, 무관의 제왕이라는 기자들을 제맘대로 갖고 놀았던, 생각하기도 싫은 혐오스런 사건이 40년 전 전두환 정권에서 일어났다.    

잘못에 책임을 묻지 않은 결과는 참혹하다. 최근 내란사태에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수첩에 쓰여진 ‘수거’ 대상자 중에는 ‘언론 쪽 : 100∼200’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 언론인은 쥐도 새도 모르게 수거될 뻔했다가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았지만, 누구를 대상으로 삼았는지, 그 수가 몇 명이나 됐는지, 어떻게 학살하려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7개월이 넘도록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노상원 수첩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은 언론 압살, 언론인 학살 사태가 먼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재직했던 연합뉴스만 봐도 그렇다. 연합뉴스 입사에 뜻을 두면서 한 가지 놀랐던 것은 무슨 통신사가 그렇게 많았던가 하는 것이었다. 통시사라곤 연합뉴스(입사 당시 연합통신)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이만저만한 통신사까지 합쳐 ‘수 많은’ 통신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일개 준위가 국보위에서 제맘대로 이리 찢어 저리 합치는 웃기지도 않은 농단을 벌인 사실에는 분노가 치밀었다. ‘이게 나라냐’는 통탄이 절로 나왔다.

뒤늦게 1990년대 말부터 전두환 일당이 연합뉴스에 만들어놓은 적폐 청산에 나서 2003년에 와서야 뉴스통신진흥법을 제정했지만, 중간단계 해결에 그치고 말았다. 그 적폐 역시 아직도 살아남아 악취를 풍기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는 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다. 뉴스통신진흥법에 따라 설립된 뉴스통신진흥회가 지분 30.77%로 1대주주이며 나머지 가운데 약 50%는 KBS와 MBC가, 약 20%는 조중동 같은 전국지와 몇 개 지역지가 갖고 있다. 몇몇 관계자들에 확인해 봤으나 신문 방송사들이 주식 대금을 납입했는지도 불분명하다. 전두환 일당이 자의적으로 배정했다는 데에는 관계자 말이 일치했다.  

연합 출범 당시에는 통신 신문 방송 매체 간 협업이 가능했을 수 있다. 통신의 도매상 역할과 신문 방송의 소매상 역할이 윈윈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 환경의 변화로 인해 ‘주식회사 연합뉴스’의 정체성에 혼란이 일고 있다. ‘대체 이런 주식회사가 어디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언론 환경의 변화란 정보통신 기술 발달로 인한 매체 융합 현상을 말한다. 모든 매체가 통신 매체의 속성, 즉 실시간 뉴스 전달의 특성을 공유하게 됨으로써 통신, 신문, 방송 매체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통신매체 입장에서는 모든 매체의 통신화가 이뤄지고, 이에 따라 모든 매체가 연합뉴스의 경쟁매체로 바뀌었다. 언론 시장의 상호 경쟁자들이 그들의 또 하나의 경쟁자인 연합뉴스의 주주가 된 셈이다. 자신들이 참여해 만든 주식회사와 경쟁을 하다니, 이런 주식회사(연합뉴스)가 대체 어디에 존재할까?

과거 잘못에 책임을 묻지 않는 한 잘못된 역사는 또 되풀이된다. 3개 권력에 의한 언론 압살 사례는 1980년대 후반 언론계에 들어선 나로서는 일일이 기억해내기 벅찰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흘린 피눈물값을 가해자들로부터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몇 십년 전 일이라고 해서 책임 추궁이 면제된다는 법은 없다. 언론 개혁을 위해서는 언론 압살 책임을 꼭 물어야 한다.

4. 언론은 제4부…위상 정립 필요

한국 사회는 말 그대로 민(民)이 주인인 민주사회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뿌리깊은 유교 전통 때문인지 관(官)이 주인이고 민(民)은 관에 복속된 신민(臣民)이다.

대통령 선거 때나 국회의원 선거 등 선출직을 뽑을 때마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상머슴(대통령), 머슴(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다짐을 듣지만 그것이 말성찬에 불과하다는 걸 민(民)은 잘 안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을 당선시킨 뒤 그들에게 왜 머슴이 되지 않느냐고 따지지도 않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윤석열 내란세력이 국민을 주인으로 받들었다면 그런 짓을 저지를 생각이나 했을까. 검찰이, 또 판사가 ‘우리는 공복(公僕.civil servant)’이라는 자기들의 처지를 손톱만큼이라도 염두에 뒀다면 지금과 같은 안하무인 행태를 보일 수 있을까. 경찰관이 민중의 지팡이인지, 민중의 몽둥이인지, 그 표현이 과하다면 ‘완장 차고 거들먹거리는 공무원’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다 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공무원도 있다.

그러나 관직을 얻어차야 출세했다는 관(官) 우선주의는 너무도 강고하게 뿌리박혀 있다. 민이 세금을 내 관을 먹여살리니 당연히 민이 주인이고 관은 종이 돼야 마땅할 터이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주인을 지키라고 준 총으로 주인을 겨누는 현장을 얼마 전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이걸 보면서도 한국 사회가 민주사회라고 단언할 수 있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이 의문은 계속된다. 대통령실, 법무부, 검찰 등의 이른바 ’특수활동비‘ 때문이다. 무슨 특수 사정이 있길래 영수증 제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금 지출을 해야 한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는 수천억 단위일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국정원이 민(民)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마도 국정원 직원, 그 친지들뿐일 것이다.

현대사회는 언필칭 정보사회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야 정보 불균형이 없는 정보복지 사회가 이뤄지고 이 사회 구성원의 행복한 삶과 지속적 발전을 꾀할 수 있다.그런데 한국 사회는 정보 취득에서도 관(官) 우선주의가 횡행한다. 세금으로 생산된 정보의 주인은 당연히 민(民)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마치 자기 재산인 것처럼 여긴다. 언론에 정보를 풀 때면 자기 주머니에서 자기 돈 꺼내주듯한다. 민의 재산을 자기 것인 양 시혜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정보사회의 정보 고속도로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은 관 우선주의를 견제하기는커녕 거기에 편승해서 떡 한 조각 더 얻어먹으려고 안달하고 있다. 기자실을 만들고 기자단을 구성하는 진짜 목적은 기성 언론매체 몇몇이 관(官)에 유착, 정보 독점을 하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온당치 않은 정보 장사로 회사 수익을 올리고 기자로서 성가를 높이려 한다.

관(官)은 공무원 전체 조직을 일컫는다.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입법 행정 사법부 및 독립된 헌법기관 소속의 모든 공무원을 아우른다.

언론은 민으로부터 이들 권력을 감시하고 이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상호 견제를 하도록 권한을 위임받았다. 이래서 언론을 제4부, 제4권이라고 부른다.

유감천만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기자들은 어떻게 하면 공무원들로부터 정보를 빼낼 수 있을까 노심초사한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형님, 아우를 쫓아다니며 일용할 양식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헤맨다. 어쩌다 던져주는 홍보성 보도자료라도 가리고 말고할 처지가 아니다. 내가 쓰지 않아도 누군가는 쓰게 마련이고, 쓰지 않는 나는 게으름뱅이로 낙인찍히기에 딱이다.

그러니 정신 없이 그저 쓰기에 바쁘다. ‘한 발작 더 깊이’ 취재는 다음 일이다. 수많은 언론사에서 수만 명의 기자들이 쏟아내는 기사가 그저 그런 기사, 읽어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것은 바로 이런 현실에서 기인한다. 이 현실을 달리 표현하면, 관(官)의 정보독점, 자기 밥도 찾아먹지 못하는 언론의 무분별한 처신, 이로써 초래되는 관언유착 현상이다.

세금으로 생산되는 정보의 주인이 민(民)이며, 민의 위임을 받은 언론은 공복인 공무원으로부터 정보를 보고받는 게 상식적이다. 이런 상식은 한국 사회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다.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기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공무원이 정보를 갖다 바치면 기자가 할 일은 무엇이냐고 당당하게 반론을 펴는 황당한 경우를 맞닥뜨린 적도 있다.  

기자들의 무분별한 처신은 정보 독점욕에서 비롯된다. 혼자서는 정보 취득 자체가 어려우니 기자단을 구성하고 기자실을 둬 떼거리로 공무원을 압박한다. 역시나 정보 독점욕에 찌들어 있는 공무원들은 바로 옆방 기자실에 들러 기자단 소속 기자들에게 ‘월급값 할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기자들을 달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정보의 주인인 민(民)은 이들에게 관심 밖이다.

지난 2007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은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 소속 기자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한국기자협회 회장 등 일부 집행부는 기자실과 기자단 운영의 폐지가 기자협회의 일관된 입장이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폐지에 찬성했다. 그러나 거의 99%에 이르는 회원들이 반대했다. ‘기자실을 없애면 어디에 가서 취재하란 말이냐’는 원망 섞인 항의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당시 기자협회에서는 기자실 폐지 대신 정보공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해 정부측과 상당한 수준의 합의에 이르렀다. 공무원이 취재에 불응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줄 것을 정부측 내규에 정하기로 했던 점도 기억에 남는다.

어디로 가서 취재하란 말이냐에 답은 분명히 나와 있었다. 어디에서든 취재원 공무원과 연락을 취할 수 있다면 취재를 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했던 것이다. 기자단이나 기자실이 취재 편의를 위한 장치이고 정보공개 활성화 대안도 역시 취재 편의를 위한 동일한 목적의 장치이다. 일부 기자들이 소속된 기자단만이 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온당치 않은 처사이다.

민이 알아야 할 정보는 모든 기자들이 보도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기자단만이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은 기득권 매체들의 횡포에 다름 아니다. 결국 취재선진화 방안은 약 8개월 여간 논란을 벌이다 기득권 매체와 소속 기자들의 무분별한 처사로 꺾이고 말았다. 하나 더 첨언하자면, 기자실 폐쇄는 2003년 노무현 정권 출범 초기 경남도청(당시 도지사 김두관)에서 시작됐었다. 기자실에 대못을 박아 폐쇄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뒤로는 잠잠해졌다가 2007년 다시 불거졌다.

정보공개법은 1996년 12월 31일에 제정됐다. 그러나 이 법이 정보공개에 효과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부 매체에서, 특히 세계일보에서 이 법을 활용해 특종을 낚은 것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대체적으로는 법이 있어도 정보공개가 시원치 않아서인지 기자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방식인 것 같다.

정보공개에 소극적이기는 행정 입법 사법부는 물론이고 헌법상 독립기관 역시 그렇다. 국가보안법은 모든 공무원들의 입을 채우는 족쇄 구실을 한다. 안보상 이유로 공개를 할 수없다는 건 정보 비공개에 좋은 빌미가 된다. 안보상 이유는 갖다 붙이면 되기 때문이다. 민의 세금으로 생산된 정보의 주인은 민이며, 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언론은 당연히 공무원에게 정보 공개를 요구할 수 있고, 공무원은 그 요구에 응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과거나 현재나 너무나 많은 비상식적 사례를 목도하고 있다. 행정 입법 사법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제4부 언론이 너무도 초라해 보인다.

4라는 숫자는 서열이 아니다. 민주국가 운영에서 언론의 중요성이 행정 입법 사법 3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부각된 결과이다. 오히려 3권에 대한 언론의 견제권이 더 상위에 위치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언론의 제4부로서의 위상 정립은 우선적으로 언론이 스스로의 각성이 전제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 이 글에서 ‘언론’은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언론’, ’레거시 미디어‘를 지칭한다.

<정일용 전 연합뉴스 기자, 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 

출처: https://www.saramilbo.com/22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