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산성(明博山城)의 추억
2004년 탄핵 촛불·2008년 광우병 파동·2025 윤석열 탄핵

(WWW.SURPRISE.OR.KR / 신상철 / 2025-04-03)

2004 - 한 방에 끝내 버립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저지 집회가 주말마다 열리던 어느 날,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광화문에 이렇게 모여서 언제 끝내겠습니까. 100만을 모아봅시다. 한 방에 끝내 버립시다.”

당시 광화문 주말 집회가 5만~10만이 모이는 수준이어서 결코 적지 않은 인원이었는데, 100만을 모으자고 하면 거의 열 배의 인원이 모일 수 있게 해보자는 것이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냐고 물으니 “오늘 밤 모여 의논합시다.”라고 했다.

그날이 화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네 사람이 여의도 포장마차에 모였다. 나와 서영석 대표, (아이디)산맥처럼 그리고 김어준 총수 네 사람이 소줏잔을 놓고 앉았다. 한 순배가 돌고 김어준 총수가 입을 열었다.

“이번 주말에 백만 명을 모읍시다.”
“이번 주말요? 남은 시간이.. 수, 목, 금.. 3일 뿐인데 백만이 가능하겠습니까?”
“온라인 하루는 오프라인 일주일입니다. 21일이 남은 셈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었다. 김어준 총수의 직관력과 실행력은 그때부터 빛이 났던 셈이다. 온라인 하루는 오프라인으로 일주일..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노란색 물결들이 온라인에서 메시지를 날리고 퍼뜨리면 백만 명을 거뜬히 모을 수 있다는 발상, 참으로 놀라웠다.

노사모를 비롯, 여론을 확산시킬 진보개혁 단체명을 취합하고 각자 열심히 사발통문을 날리기로 협의한 후 자리를 일어서니 새벽 3시가 조금 넘었다. 각 단체들에게 보낼 홈페이지 팝업과 웹자보 디자인을 서프라이즈에서 맡기로 하여 즉시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포토샵을 열었다. 

우선 강렬한 이미지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니 해병대 색상이 떠올랐다. 빨간 바탕에 노란색 글씨가 선명한 <모이자 광화문으로!> 웹자보가 그렇게 그려졌다. 당시 진보개혁 담론의 양대 산맥이었던 딴지일보와 서프라이즈를 시작으로 노사모와 민주진보 단체들 홈페이지에 팝업이 걸리고 주말 집회 참석 독려가 들불처럼 확산되기 시작했다.

수, 목, 금.. 3일이 지나고 토요일이 왔다. 그 날 광화문은 촛불로 불타올랐다.

온라인 3일을 오프라인 21로 치환할 생각을 했던 김어준 총수의 직관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침마다 윤석열 파면을 위한 투쟁 최일선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8년 – 명박산성(明博山城)의 추억

2008년 이명박 정권의 광우병 소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절정으로 향하던 어느 날, 세종대로 한 복판에 40-feet 컨테이너들이 두 개층으로 쌓아 올려진 바리케이트벽이 우뚝 섰다.

경찰은 컨테이너들을 용접으로 고정시키는 것도 모자라 내부를 모래주머니로 채웠고 모서리마다 와이어를 걸어 길바닥에 고정시켰다. 그 뿐 아니다. 시위대가 기어오를 것에 대비해 외부에 윤활유를 바르고 혹시라도 불을 지를까봐 곳곳에 소화기를 배치해 두었다. 역사가들은 그것을 명박산성(明博山城)이라 불렀다. 

역대급이었다. 경찰기동대 차벽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람 키의 세 배 높이가 주는 위압감에다 손바닥 들어갈 틈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십 명이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몇 활동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에 들어갔다. 쟁점은 명박산성을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였고 그것은 ‘공성전(攻城戰)’을 의미했다.

현장에서 목재를 자르고 사다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장비와 도구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등이 거론되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물리력을 동원한 경찰의 저지에 맞설 수 있을 만큼의 동력(집회인원)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런 중 여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정부가 명박산성을 조기에 철거하면서 그 논의는 상상속 그림에 그치고 말았다.

2025 - 윤석열 파면을 하루 앞두고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내일 아침 11시 탄핵이 기각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오늘 이런 끔찍한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 이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것은 워낙 상상할 수도 없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구속되었던 내란수괴가 제 발로 걸어나오는 꼴을 어느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주문을 외워본다. 지워버리자, 지워버리자, 그 생각을 깨끗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자.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수준과 권위를 믿자. 

국민의 보편적 상식에 어긋나는 결과가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에 대한 답변은 보수논객인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정확하게 설명해 줬다.

https://youtu.be/ldQSYt8daAE

동작대교, 반포대교, 한남대교, 동호대교, 용산부터 한남까지 그리고 모든 주요도로가 민주시민의 촛불로 가득 차는 그런 상황은 그저 아찔한 상상 속에 봉인될 <2025 탄핵의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윤석열은 파면될 것이므로. 그리고 그는 내란의 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