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게임 시대의 논픽션 ①
『Going Infinite』, 가상 화폐 제국 FTX의 붕괴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4-12-03)

와카바야시 게이若林惠
1971년생. 편집자․黑鳥Black Swan社 콘텐츠 디렉터.
『잊힌 일본인을 끌어내다』 『안녕 미래』 등의 저서가 있다.

『Going Infinite』는,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루이스Michael Monroe Lewis가 2023년에 펴낸 논픽션으로, 한국에는 번역이 안 된 책이다. 이 책의 일본어 번역 제목은 「1조 엔을 훔친 남자–가상 화폐 제국 FTX의 붕괴」다. 이 번역글은 분량이 길어 3편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 역자 주

■ 음모론의 Rabbit Hole

새뮤얼 벤저민 뱅크먼프리드Samuel Benjamin Bankman-Fried(이하 ‘SBF’)라는 이름을 듣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 그놈 말이야”라고 할까. ‘전미 최대 금융 사기 사건 주모자’라는 전과는 뭔가 장대하고 담대하게 보이지만, 악당으로서의 영향으로 말하자면,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이나 바로 최근에 체포된 퍼프 대디Puff Daddy에게는 훨씬 못 미친다. SBF가 설립한 가상 화폐 거래소 ‘FTX’는, 투자자가 예탁한 수십억 달러 상당의 운용 자산 소멸로 파산하고, 막대한 손실을 투자자만이 아니라, 사원에게 초래했지만, 그것이 가상 화폐라는, 지금도 뒤가 구리다고 여겨지기 십상인 분야에서 일어난 점도 작용해서, 그다지 세상의 관심을, 강하게, 오래 잡아두지 못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는 거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란, 시시껄렁하게 말하면, 그것에 관해 나도는 음모론의 질과 수에 비례한다. 음모론이 그 나름의 복잡함을 가지고 길고 깊은 Rabbit Hole을 만들 수 있으면,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둘러싼 narrative는 강고하게 지속되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다시 되풀이돼서는 확장되어 가게 된다.

성 학대, 인신 매매 의혹에 얽혀, 할리우드 유명인부터 비즈니스계, 과학계, 정치계 명사가 죽 언급되는 제프리 엡스타인의 Rabbit Hole은,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과 같은 화제에까지 연계되어, 이제는 오늘날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모든 중대 뉴스에 관여할 것 같은 기세지만, 서민의 눈에서 가려진 음모에 의해 세계 그 자체가 작동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음모론이라면, 엡스타인의 스캔들 같은 확대를 가져야만, 바로 음모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것은 그저 산발적 사건으로 정보의 파도에 잠식되어 사라져 간다.

실제로, SBF를 둘러싸고 나돌았던 음모론풍의 언설에서 재미가 있었던 것은, 우크라이나에 관한 화제 정도였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2022년 중간 선거에서 소지 소로스에 뒤이어 두 번째 거액의 헌금을 바이든 민주당에 한 인물이 SBF였다. 바이든은 군사 지원 명목으로 연방 예산을 덤벙덤벙 우크라이나에 투입해 왔는데, 음모론자들을 들끓게 한 것은, 가상 화폐 분야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헌금을 모으는 「Aid for Ukraine」라는 프로젝트가, FTX와 우크라이나의 디지털혁신청Digital Transformation Agency의 협력으로 설립되었을 때였다. 음모론자들은, 이 세 개의 단편적 정보에서, FTX에서 바이든 민주당에, 바이든 민주당에서 우크라이나 정부에,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FTX로 자금이 환류하고 있다는 논리를 짜맞추어내어, 그것을 돈세탁 책략으로 간주했지만, AP 통신과 포브스 같은 미디어에서, 상당히 이른 단계에서 반증되어, 타오르지 못한 채 진화되고 말았다.

■ 일론 머스크의 ‘무용담 모음집’

SBF가 「전미 최대 금융 사기 사건의 주모자」이지만 음모론으로 번질 만한 뭔가 생생한 모습이 하나도 없는 것은, 사건의 배후에 애당초 모종의 흉계나 모략이 있었던 건지 없었던 건지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SBF의 재판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점이기도 했다. SBF는, 모종의 이유에서, 의도하고 사기를 쳤던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만약 모종의 의도가 있었다면, 거기에 음모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발생하지만, SBF 사건은, 이 부분이 한결같이 애매하다.
 
전미 최고의 논픽션 작가 마이클 루이스Michael Monroe Lewis는, 그 천재적인 취재력과 필력으로, 350쪽에 걸쳐 SBF와 FTX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하는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이 있고 재미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이 책이 도대체 독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은, 결국 SBF가 무슨 짓을 했다는 것인지, 다 읽은 뒤에도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 조직도도 제대로 없고, 회계도 그저 대충대충, 게임처럼 금융 거래를 계속 농락한 SBF와 그 일당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에서, 그냥 야무진 데가 없는 집단의 이야기다. 거기에 세상이 기대했듯이 성적인 방종이라도 있으면 조금 더 재미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루이스가 상세히 밝힌 대로, SBF의 러브 스토리는, ChatGPT끼리 연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묘미가 없는 것이었다.

찾아내야 할 배움도 교훈도 없는, 그 이상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경박한 이야기. 그것을, 이만한 스릴과 스피드감을 가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낸 루이스의 수완에는 새삼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이 책은 도대체 뭐를 이야기하는 걸까.

비슷한 감상은, 인물 평전을 썼다 하면 전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쓴 상하 두 권의 대작 『일론 머스크』도 포함되는데, 『일론 머스크』에서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책의 주체인 머스크의 말이 적다는 점이었다. 저 아이작슨으로 하여금, 이 정도의 말밖에 끌어낼 수 없게 만들었던 건가, 라고 놀랄 만큼 머스크의 말은 단편적이고 맥락도 없고 깊이마저 없다. 스티브 잡스라면, 거기에 ‘사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끄집어 낼만한 말의 깊이도 있었겠지만, 일론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결과적으로 『일론 머스크』는, 머스크가 ‘해 온 일’을 관계자들의 증언 같은 것으로 구성해 가는 일종의 ‘무용담 모음집’ 같은 게 되었는데, 머스크의 ‘해 봤다’는 그 자체가 대담 내지 무모한 것이기 때문에 재미있지만, 책을 읽은 독후감은, 세계 최대의 해 봤다 계열 YouTuber인 Mr.Beast(Jimmy Donaldson이 운영하는 YouTube 채널. 전 세계 YouTube 구독자 수 1위, 약 3억 명 – 역주)의 동영상을 연거푸 본 느낌이 든다.<2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