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시대, 정치 앞에 놓인 좁은 문 ②
키어 스타머 노동당 정권의 탄생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4-09-27)

이마이 다카코今井貴子
세이케이成蹊 대학 법학부 교수. 전공은 현대 영국 정치, 비교 복지 정치.
『정권 교체의 정치 역학 ― 영국 노동당의 궤적 1994~2010』 등의 저서가 있다.

3. 포퓰리즘 시대의 ‘제3의 길’?
경제 정책에서는 중도 좌파로 꼽히는 스타머 노동당이지만, 그 윤곽을 이해하는 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문화적 보수로 기반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스타머는 코빈 시대처럼 문화적으로 리버럴한 스탠스를 가지고서는, EU 이탈을 지지했던 유권자는 노동당을 단념할 뿐이라고 위기감을 강화하며, 보수적 또는 권위주의적인 유권자를 받아들이기 위해, 문화적 보수 지향을 내놓았다. 이 사건을 알기 쉽게 어필하는 것이, 그가 끊임없이 반복하는, 노동당은 “참된 잉글랜드적 애국심의 정당”, “안전 보장의 정당”이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그는, 기후 변동 대책과 같은 리버럴한 스탠스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노동당을 지지해 온 도시 쪽의 리버럴한 유권자를 놓지 않으려고 하면서, 문화적 보수로 날개를 넓혀 지지층의 확대를 노린 것이다. 문화적 보수에 위치하며, 경제적 측면에서 날개를 넓히려고 했던 보수당과는 대조적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동당이 문화적 보수 쪽으로 사정거리를 넓히는 것은 스타머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예전에 블레어는, 보수당의 독무대가 되어 있던 치안 문제에 대해, 범죄에 대해 엄격한 대처를 우선한다고 어필하며, 보수당 지지층을 포섭하려 했다. 그러나 스타머의 보수 지향은 블레어의 그것을 능가한다. 영국 국기와 그 모티브를 선거 캠페인으로 사용하며, 애국심을 중히 여기는 태도를 강하게 부각시키려고, 대대적으로 이용한 것은, 영국 국기Union Jack와 그것을 디자인한 패널과 리플릿이었다. 국기의 이용은, 극우 정당의 배외주의를 상기시키고, 비호감이라는 강한 반발의 목소리가, 당내 리버럴파와 인종․마이너리티로부터 높았지만, 그러한 비판이 관심을 끄는 일은 없었다.

신정권의 정책 요점에는, ‘안전’, 바로 국내의 치안과 안전 보장이 놓여 있어, 국방 중시가 선명해졌다. 보수당 정권하의 불법 이민자 르완다 이송 정책은 폐기될 전망이지만, 국경 경비의 강화, 불법 이민 규제를 엄격하는 법제화에 착수하려 한다.
 
이러한 스타머 노동당의 ‘변화’는, 포퓰리즘 시대의 ‘제3의 길’ 모색으로 볼 수 없을까. 일찍이 블레어는, 대규모 국가 개입과 증세로 특징지을 수 있는 구좌익Old Left과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를 극복하는 ‘제3의 길’을 내걸었다. 스타머는 문화적 리버럴에 매달리며, 대대적인 재분배를 중시하는 코빈 노동당과, 대EU 강경 자세를 내건 존슨과 대대적 감세 정책을 감행한 트라스(전 수상)의 보수당, 어느 쪽과도 결별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는, 총선거 전에, 재원의 뒷받침 없는 감세 정책을 공약으로 삼는 리시 수낵Rishi Sunak 보수당을 “코빈스럽다”고 공격하며, 첫 의회 연설에서, “복잡하고 취약한 세계에서, 안이한 답을 제시하고, 실체 없는 매력을 뿌리는 포퓰리즘을 거절한다”고 천명했다. 말하자면, 스타머는, 코빈 노동당, 존슨 이후의 보수당, 모두 포퓰리즘으로 간주하며, 좌익 포퓰리즘도 우익 포퓰리즘도 아닌, 문화적 보수를 공감하는 중도로 활로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노동당이 문화적 보수에 접근한 궤적에는 틀림없이, 영국독립당 이후의 우파 포퓰리즘의 영향이 새겨져 있다.

과연 이 자기 재규정은, 앞으로 노동당에 밝은 전망을 줄 수 있을까. 노동당을 비롯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비교 연구가 시사하는 것은, 이러한 전략이 당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리스크다. 여러 가지 설이 있는 가운데, 예를 들면 옥스퍼드 대학의 Abu Saad 등에 따르면, 사민주의 정당의 퇴조는, 문화적으로 리버럴화되어 권위주의 지향의 노동자층 지지를 잃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문화적 우경화, 그리고 입지를 애매하게 하는 중도화 그 자체가, 리버럴층의 이반을 초래하는 데에 유래한다.

리버럴 지지층 이반은 실제로 진행 중이다. 환경, 가자 정세, LGBTQ+의 권리 등, 리버럴한 가치관에 절실하게 관계되는 문제를 둘러싸고, 젊은이, 도시 쪽 대학 졸업자, 무슬림 등 인종․마이너리티 들이, 스타머 노동당의 자세에 정나미가 떨어져, 당을 떠나고 있다. 총선거에서, 노동당에 비판적인 표가, 녹색당, 독립 후보, 중도화에 비판적인 노동당 의원으로 향했던 것은 앞에서 말한 그대로다. 스타머가 문화적 보수 쪽으로 당을 어디까지 이끌까, 리버럴파로부터의 심한 비판에 어떻게 응대해 갈 것인가, 어려운 판단에 내몰리는 장면은 적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문화적 보수층에 대한 접근이라는 전략의 유효성 자체에도 의문이 든다. 직전 총선거에서 보수당에게 빼앗겼던 ‘붉은 벽’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텃밭 선거구 가운데 70% 이상은 탈환했다고 해도, 그것은 일의적으로는 보수당의 자멸에 따른 것으로, 노동당의 득표율이 하락한 선거구마저 있다. 이탈 지지층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데 압도적인 강세를 보였던 Reform UK에게는 크게 뒤진다.

4. 견실하기에 좁은 문
난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의회에서 반석 같은 기반을 얻어 정권을 발족시킨 스타머 노동당은, 그런대로 견실한 출발을 한 것처럼 보인다. 각료 회의에 출석하는 각료는, 거의 반이 여성이며, 의원의 낙선이나 강등과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 전원이 shadow cabinet 내각에서 계속 등용되었다. 새로운 각료들은, 적어도 10개월간 shadow cabinet 장관으로 경험을 쌓아, 정책 영역에 정통하다. 각료 회의에 출석하지 않은 Outer Ministers(영국 등 의원내각제에서 항상 각료 회의에 참석하는 각내 각료Inner Ministers 이외의 각료를 말한다 – 역주) 등을 포함하면, 정권 내에서 각료를 지낸 경험을 지닌 인물은, David Lammy 외무 장관, Yvette Cooper 내무 장관을 비롯해 22명, 전체의 1/5에 해당한다. 첫 입각을 한 장관에 대해서는, 블레어․브라운 노동당 정권 시기의 각료 경험자와 그 영역의 전문가가 코치로 한 등급 아래의 Outer Ministers 등으로 정권에 참여한다. 다만, 외부에서 등용된 각료 경험자나 전문가는 선거를 거치지 않아, 민주적 정통성이라는 문제는 남는다.

정권 교체가 이른 시기부터 확실시되었던 노동당은, 몇 개월 전부터 주도면밀하게 정권 인수 준비를 해 왔다. 인사를 관통하는 것은 공약을 확실히 실행하기 위한 실력주의이며, 포진의 ‘안정감’ 확보가 놀랄 만큼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행정 전문가 측에서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스타머는, 정권 성립 초기부터, “국가가 첫째, 당은 두 번째”  “사명에 매진하는 정부”라고 반복해 강조한다. 여기에는, 당내 대립으로 ‘사명’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당내 비판 세력을 견제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이해해도 무방하리라. 이러한 자세에는, 엘리트에 의한 톱다운 형태의 정책 결정이 당내의 비판과 이론을 배제하고, 결과적으로 정밀한 자기 점검 결여를 초래하고, ‘사명’의 독보로 귀결되는 것에 우려도 따라다닌다.

이미 말했듯이, 제1야당이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세가 쇠퇴한 상황에서는, 2대 정당 간의 경쟁과 상호 견제에 의한 권력 통제는 발동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집권 여당의 자제가 관건이 된다. 스타머는, 권력을 제한하는 구조를 강구하고 있다. 시정 방침에서는, 세금과 공적 지출에 관련된 모든 재정 정책을, 예산 책임국Office for Budget Responsibility(독립된 경제 감시 기관)의 평가 대상으로 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새로운 법이 제시되었다. 또한, 장관 규범 위반을 조사하는 독립 고문의 권한 강화도 포함되었다. 유권자와 투자가의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 최대 목적이지만, 정치적 권한을 외부에서 통어해 투명성을 높이려는 개혁의 일환이다.

스타머 노동당은, 좌우의 포퓰리즘을 반면교사로 삼아, 현대의 ‘제3의 길’을 모색한다. 거기에 더해 예전의 노동당 정권의 교훈도 또한 각인되어 있다. 교훈은, 여론의 반대를 물리치고 결단한 블레어의 이라크 침공 실패 요인이, 폐쇄적 정책 결정, 다른 의견의 표명이 종용되는 집합적 논의 생략과 우회에 있었던 점(2016년, Chilcot 독립 조사 위원회의 보고서)을 가리킨다. 포퓰리즘의 ‘안이함’을 거절한 이상, 불확실성이 확산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 교훈은 한층 묵직하게 울린다. 견실함과 실행력을 제일로 삼는 신정권이, 경제적․문화적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공약한 ‘국가 재생’을 목표로, 좁은 문에서 어떻게 전망을 찾아낼까, 주목을 받고 있다. <끝>
(『세카이』, 202409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