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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코리언의 삶, 증오에 저항하는 길 ①
  번호 130898  글쓴이 김종익  조회 301  누리 0 (0,0, 0:0:0)  등록일 2022-6-29 11:22 대문 0

재일 코리언의 삶, 증오에 저항하는 길 ①
뿌리를 순회하는 여정 - 1, 뿌리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아버지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2-06-29)


이 글은, 올해 칸 영화제에 초청된 재일 코리언 사진 작가 야스다 나쓰키安田菜津가 일본 잡지 <세카이>에 4회에 걸쳐 연재한, <뿌리를 순회하는 여정, 증오에 저항하는 길>의 첫 번째 글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 3세로 母語가 일본어인 그는 왜 ‘뿌리’를 찾고 싶었을까요? - 역자 주

야스다 나쓰키 安田菜津紀
Dialogue for People 소속 사진 기자.
1987년, 가나가와神奈川현 출생.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일본 국내에서 난민과 빈곤, 재해를 취재.
『사진으로 전하는 일 – 세계의 어린이들과 마주해』 『당신의 Roots를 가르쳐 주세요』 등의 저서가 있다.


오늘은, 이제부터는 말이야, 네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간다.
학교? 일요일인데? 왜 아버지가 가는 거야?
이건 말이야, 중요한 일이야.

내 손을 잡고 이끄는 아버지를 쳐다보자, 여느 때 같으면 빙긋이 웃으며 온화한 표정을 띠었을 아버지가, 이상하게 숙연한 얼굴로 또박또박 이렇게 이야기했다. 늘 가는 공중목욕탕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빠져나와, 매일 오가는 통학로를 아버지와 걷는 일은, 왠지 마음이 설레는 순간이었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투표소가 될 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투표하러 갔다. 투표에 의해, 많은 표를 얻은 사람들이, 이 나라와 도쿄의 지도자가 된다는 막연한 이해는 내게도 있어, ‘평소는 불성실해 보여, 자주 어머니의 역정을 돋구었던 아버지가 왜 이렇게나 열심히 투표하러 가는 거지’라고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집안에서 느꼈던 ‘께름칙함’은 다른 데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열세 살 연상의 이복오빠, 나, 그리고 여동생, 이렇게 다섯이었다. 오빠의 친어머니인 R 씨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도쿄의 샐러리맨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서 자그마한 장어 요릿집을 운영했다. 좁고 길쭉한 가게 내부에 마찬가지로 길쭉하게 늘어선 카운터, 조금 어두컴컴했지만 간장 양념의 향긋한 냄새가 감도는 주방, 그곳이 어린 시절 내 ‘거처’였다. 활기 가득한 가게 안에, 불콰한 얼굴의 퇴근길 남성들이 흥겹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이곳을 도맡아 운영하는 인물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이, 어렸지만 자랑스러웠다. 장어는 결코 싼 어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참 뒤에 알았다. 그래서 나는 누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라고 물으면 반드시 “우나동”(고급 장어 덮밥 - 역주)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아버지의 귀가는 언제나 늦었고, 내가 일어날 무렵에는 코를 골며 아직 잠에 깊이 취해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배 위로 뛰어오르면,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수염을 깎은 지가 오래되어서일까, 아버지가 볼을 맞대고 비비면 까끌까끌한 감촉에 뺨 언저리가 아파서, “아빠 그만”이라며, 그때마다 입을 빼물었다. 아버지는 그런 얼굴이 재미있다는 듯이 싱긋이 웃고는 했다.

오빠는 늘씬하게 키가 커서, 집안의 여러 곳에 머리를 부딪치고는 했던 일이 생각난다. 운동도 잘해서 중학교 때는 중거리 달리기에서 탄 상장이 거실의 눈에 띄는 곳에 놓여 있었다. 조용해서 집에 있을 때는 말없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방에 혼자 있거나 하는 편이었다. 때로는 얼굴을 디밀고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좀체 표정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딱 눈이 마주치면 “뭐야 뭐?”라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꾸해 줬다. 그때마다, ‘아, 웃어 줬다’라고, 왠지 그래 주기를 바랐던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정한 용모여서 친구들이 집에 오면, “저기 있잖아, 저 오빠 멋있지 않아? 봐, 봐, 텔레비전에서 본 연예인을 똑 닮았어”라고 저희끼리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그때마다 왠지 낯이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갈 무렵에는 혼자살이를 시작하여, 아버지처럼 음식을 만드는 일에 취직했다.

오빠는 왠지 늘 아버지에게 ‘요, 입니다’ 같이 높임말로 공대했다. 처음에는 ‘남자아이는 아버지에게 저런 말을 쓰는 거구나’라고 여겼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주변을 훑어봐도, 아버지에게 그런 말투를 쓰는 아이는 없는 것을 바로 알았다.

“가족인데 왜 늘 공대하는 거야? 다른 집 아이 같아 이상해?”

이상하게 생각해 몇 번인가 그들에게 물어봤다. 아버지도 오빠도, 그저 웃으며 나를 바라보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점차 나는, ‘이건 물으면 안 되는 일인지도 몰라’라고, 그 ‘께름칙함’을 가슴속에 간직하게 되었다. 다만 그 ‘께름칙함’은 가슴속 깊이 간직할 정도로 마음속에 짙게 새겨졌다. “어쩌면 아버지는, 오빠에게만 일부러 차게 대하는 것이라면…?” 어느 사이엔가 그 께름칙함은 아버지에 대한 한 가닥 불신감으로 바뀌었다.

■ 마음에 남은 ‘애매한 상실감’

과묵하고 감정 표현이 서투른 아버지와 기가 센 어머니 사이에는 어느 때부터인지 입씨름이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혼하고, 어머니와 나, 여동생은 도쿄를 떠나, 어머니 친정에 가까운 요코스카橫須賀로 이사했다. 어머니는 시간제 근무까지 겸하면서, 아침에 신문 배달까지 한 적도 있다. 어머니가 배달을 끝내고 돌아오는 자전거 소리에 눈을 뜬 적도 있었다.

이렇게 떨어져 사는 동안에도 아버지와 오빠와는 도쿄에서 만나 식사를 한 적도 있지만, 중학교 2학년 가을 무렵, 연락이 뚝 끊어졌다. ‘마침내 끊겨 버린 건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아버지를 믿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강해,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할수록 자신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게 두려웠다. 연락이 끊긴 이유는 곧바로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11월, 조용하게 비가 내리는 으스스한 해가 질 녘,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득 집 전화로 들어온 팩스가 눈에 띄었다. 어디서, 무슨 내용이 도착한 건지, 이제 기억나지 않기도 하고, 그때도 자세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았으리라. 다만 거기에는 아버지 성함과 ‘사망’이라는 글자가 나란히 있었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몸이 앞서 반응해, 순간적으로 쓰러져 울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귀가한 후, 여동생이 눈치채지 않게 어머니를 불러내, “아버지, 살아있어…?”라고 억지로 목소리를 짜낸 순간, 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나를 껴안으면서, 할 말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듯했다. 긴 침묵 끝에, 오직 한 마디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으니까”라고 말을 걸어 주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부름은 받지 못했다. 아버지에게는 이미 다른 가정이 있었으니까.

다음 날, 학교로 가는 통학길에는 몸이 둥둥 떠서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감각이 엷어졌다. 학교는 원래 별로였지만, ‘아무도 내 기분 따위 몰라’라고, 나는 일방적으로 선을 긋고, 아버지 일은 거의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팩스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죽음에 대해 말을 꺼낼 시기를 가늠하다 다시 미루는 일을 되풀이했던 듯하다. 그 당시는 어머니와 거의 대화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 후도 서로 아버지 일을 화제로 꺼내는 일을 계속 피했다.

그리고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3월, 오빠가 아버지에 이어 세상을 떴다. 3월 12일, 아버지 생신날이었다. 오빠도 아버지처럼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왜 어떻게 사망했는지, 그리고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거의 알 수 없는 상태로, 애매한 상실감만 남았다.

■ 생각도 하지 못한 ‘한국 국적’ 기재

아버지와 오빠가 돌아가시고,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우연히 호적을 볼 기회가 있었다. NPO 프로그램으로 캄보디아에 가는 일이 결정되어, 여권을 만들 때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청에서 호적을 받아들었을 때, 아버지 칸에 익숙하지 않은 글자를 발견했다.
한국적韓國籍…?

그때 나는 처음 아버지가 재일 코리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태어나고 나서 2년 정도 지난 다음, 일본 국적을 취득한 모양이다. 그 사실을 안 순간의 기분을, 나는 지금도 잘 말로 할 수 없다.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글자가, 내 가족을 증명하는 서류에 새겨져 있는 것에, 솔직히 혼란스럽고, 흔들리는 정체성 앞에 얼어붙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주뼛주뼛하면서 물어봤다.
“저, 아버지 말인데, 일본 사람이 아니었어…?”
잠시 할 말을 찾는 듯이 침묵한 후, 어머니는 똑바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눈치챘구나. 너희 자매는 ‘half’야.”
당시 어머니도 나도, 복수의 선조를 가진 아이들을 표현하는 말을 ‘half’ 외에는 몰랐다. 거듭해 어머니는 계속 말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주 투표소에 데리고 갔잖아? 외국인은 투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 국적을 취득한 뒤 투표하러 갈 수 있는 것이 상당히 좋았던 거야.”
아버지는 뭐를 한 표에 부탁했을까? 그것은 이미 물어볼 수 없다.

호적을 보고 놀란 것은, 아버지 국적만이 아니다. 함께 살던 당시, 아버지가 오빠를 인지(혼인 관계가 아닌 남녀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그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라고 인정하고, 법률상의 친자 관계가 되는 것)하지 않았던 사실도 분명해졌다.

아버지는 왜 이다지 오빠에게 냉정한 태도를 계속 취해 왔을까. 아버지는 오빠를 가족으로 보지 않았던 걸까. 점점 불신이 쌓여가서, “아버지는 정말 자식들을 사랑했던 걸까?”라는 의문마저 치솟았다. 정말이지 그런 것까지 정면으로 어머니께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이리하여 점점 심해지기만 했던 의심을 풀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 상태에서 나는 거의 사용한 적이 없었던 고등학교 도서관을 이용해, ‘재일在日’로 불리는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국적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거기서 처음, 조선 반도와 일본 사이의 역사와 조선 반도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직면해 온 곤경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된 무렵부터, 조금씩 인터넷이 일반 가정에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집에 있으면서 정보 수집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여, 시험 삼아 검색해 보았더니, 이미 게시판에는 일부, “재일은 범죄 집단” “싫으면 일본에서 나가라”와 같은, 일본에 사는 한국 국적과 조선적 사람들을 겨냥한 차별적인 말을 써넣은 글이 즐비했다. 아버지 뿌리가 일본 이외의 나라인 사실만으로도 얼떨떨해 놀라고 있던 내게, 그런 비방과 중상의 언어를 보는 일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 후, 이른바 ‘혐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지역의 늘 다니던 책방에도, 점점 발길이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아버지도 재일 코리언인 것 같다”라고, 좀체로 주변에 말할 수 없었다. 이야기한 친구가 차별 발언이 즐비한 게시판의 글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면? 만약 몰래 ‘혐한 책’을 일고, 거기에 쓰여 있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자, 말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내 배경의 일부에 왜 께름칙함을 느껴야 할까. 그것 자체에도 위화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내 어디에 나를 지탱하는 축이 있는 걸까. 그런 어정쩡하고 어중간한 내게 혐오감마저 품고 있던 때에, 우연히 재일 코리언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을 만나서, 슬쩍 내 출신에 대해 털어놓았던 적이 있었다. 그녀는 엄격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이 사회에서 소수자로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예를 들면 당신이 아무리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고 해도, ‘과연 재일 아이네!’ ‘편모 가정 애는 역시 할 수 있어’ 라고는 하지 않아. 그런데 당신이 만약 나쁜 일을 저지르면, ‘역시 재일 아이는!’ ‘편모 가정 아이는!’이라고 해 버려. 그래서 특히 처신에 조심해야 해. 그것이 소수자로 사는 길이야, 노력하시라.”

어떻게 해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사회 속에서 행동거지에 조심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소수자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라면, 아무 생각 없이 받아넘길 수 없었다. 왜, 차별을 하는 쪽이 아니라, 차별을 받는 쪽의 태도 문제로 왜소화되어 버리는 것일까. 그러나 거기에 명확히 반론을 할 만큼의 말을, 당시의 나는 갖지 못했던 듯하다. 말이라는 형태를 갖추지 못한 그때의 감정은 지금도 내 마음 저 밑바닥에 가라앉은 상태다.

■ 오빠가 태어난 시대의 국적법

대학생이 되어, 수업의 일환으로 국적법에 대해 찾아보고 있었는데, 문득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었다. 내가 태어났던 때는 1987년, 그리고 국적법이 개정되어, 시행되었던 때는 바로 그 2년 전인 1985년이다. 개정 국적법하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어느 쪽의 국적을 스물두 살이 될 때까지 선택하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그때까지는 아버지와 어머니, 어느 쪽 국적을 가져도 위법이 아니었다.

나도 출생 후, 어머니 국적인 일본 국적을 가졌다. 그런데 이 국적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아이는 ‘아버지 국적’이 되도록 정해져 있었다. 만약 아버지가 오빠의 어머니인 R 씨와 결혼해 오빠가 태어난 경우, 오빠는 아버지 국적인 한국 국적이 된다. 당시 오빠가 일본 국적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R 씨와 결혼하지 않고, 오빠가 출생하기 전에 인지하지도 못했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인간에게, 세세한 것까지 이제는 물을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남긴 얼마 안 되는 말을 더듬다 보니, 다른 ‘과거’의 모습이 거기에 떠올랐다.

재일 코리언이 거쳐 온 도정은 물론 한결같지 않고, 가치관도 다양하다. 다만, 아버지가 생전에 주변에 남긴 얼마 안 되는 말을 더듬자, 아버지는 그 속에서도, ‘재일’이라는 자신의 배경으로, 힘들고 고생스러운 경험, 슬픈 생각을 겹겹이 쌓아 온 듯했다. 친족과의 연을 대부분 끊고, ‘재일처럼 보이는’ 생활 방식도, 일상 속에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어머니에게조차, 자신의 뿌리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을, 그녀는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뿌리의 모든 것을 지워 없애는 것은 어렵다. 아버지가 오빠에게 경어를 쓰게 한 것은, 결코 냉대한 것이 아니라, 가정 안이라 해도 상하 관계와 예의를 중시하는 조선 문화의 흔적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오빠를 인지하지 못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국 국적의 아이로 태어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은 부부 사이의 ‘혼외 출생자’로 태어나도, 어머니의 국적과 같은 일본 국적으로 사는 것일까. 당시 혼외자는 호적에 ‘장남’이 아니라 ‘남男’으로 표기되는 것을 포함해, ‘미혼모의 자식’으로 취직 차별을 당하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었다. 그래도 한국 국적의 아이로 태어나는 쪽이, 직면하는 곤란이 더 큰 게 아닐까, 아버지는 생각한 모양이다.

조금 까다로운 이야기겠지만, 호적상은 ‘single mother’인 R 씨에게 태어난 오빠가, 일본 국적을 받은 후에, 아버지가 R 씨와 정식으로 결혼하고, 오빠를 인지하면, 오빠는 일본 국적 상태로 혼인 관계에 있는 남녀 사이에 출생한 자녀, 말하자면 ‘적출자嫡出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 무렵 아버지는, 자신도 일본 국적을 취득하려고 다양한 절차를 밟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절차가 완료되기 전에, R 씨는 타계하고 말았다. 췌장암이 발견되고 나서, 아, 하는 사이에 사망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생각과 시차로, 그 후도 오빠는 ‘혼외 출생자’가 되고 말았다.

비슷한 고민 끝에, 같은 결단을 한 재일 코리언들이 적잖이 있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뒤였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오빠를 버리는 듯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애정이 있기에 고민을 거듭하고, 오빠의 장래를 걱정했기 때문에, 결단을 내렸으리라.

이걸 가지고 일률적으로, “일본에서 외국 국적으로 태어난 아이는 모두 불행하다” “인지되지 않는 편이 행복하다”라고 알리고 싶은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경험에 비추어, 아버지 나름의 자상함을 오빠에게 쏟았을 때, 그것이 아버지가 어렵게 도달한 답이었다는 것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 선택에, 아버지가 오빠에게 보인 애정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드러내 준 호적이, 마치 아버지의 의지가 깃든 ‘유서’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알아차린 뒤, 내 안에서 ‘과거’를 보는 방식은 완전히 바뀌어 갔다. 그때까지는, “만약, 다시 한 번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면”이라고 상상했을 때, “왜?”라고 몇 번이나 되물었을 내가 있었다. “왜 오빠에게 그런 태도를 취한 거야” “왜 오빠만 호적에서 제외되어 있는 거야.” 거기에는 분노와도 비슷한 감정이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그 분노는, 점차 감사의 마음으로 변했다. 우리가 뭔가를 계속 배우는 이유는, 이런 변화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은 불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돌아보느냐에 따라, 그 ‘과거’는 완전히 다른 색채로 보일 수 있다. 지금, 어찌할 수 없어 고통스럽고, 깊은 슬픔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배우고, 깨닫게 됨으로써, 다른 시야가 열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계속 배운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출생과 차별 문제를 깊이 파고든다는 일은,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자신의 ‘가해성加害性’과 마주치는 일기도 하니까.

■ 뿌리를 이야기하는 것의 ‘께름칙함’

“「재일 코리언과 나」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 달라.”

혐오 발언 문제에 몰두해 온 변호사로, 외국인인권법연락회 사무국장도 겸하는 모로오카 야스코師岡康子 씨로부터 강연 의뢰가 있었던 것은, 2020년 여름이 되기 직전이었다. 나는 이 강연을 의뢰받았을 때, 솔직히 주눅이 들었다. 께름칙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왜, ‘께름칙함’이 달라붙는 거지? 의뢰를 받고 나서, 이 떨떠름한 기분의 정체를 내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주변 분들에게 보호받으며, 성장했다. 철이 들고 나서, 재일 코리언이라 하여 괴롭힘과 차별을 당하거나, 거기에 저항해 오거나 한 사람들에 대해, 그런 고통을 그들만이 쭉 짊어지고 오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거기에는 있었으리라. 다만, 이런 감정의 정체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에서 돌아오는 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전차 안의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화면에는 최신 뉴스 영상이 비치고 있었다. 문득, 중학교 시절에 어머니와 여동생과 식탁에 빙 둘러앉아 있던 광경이 떠오른다. 가족끼리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둘러앉았을 때는, 대개 텔레비전에서 뉴스 프로그램을 본다. 화면에는, 북한의 대규모 매스게임과 ‘기쁨조’라고 불리는 여성들, 그리고 독특한 말투의 현지 미디어의 뉴스캐스터가 출연하고 있었다.

영상이 끝나자, 스튜디오에서는 그 모습을 비웃는 분위기가 있었다.
“야, 되게 무섭네.”
그렇게 최초로 말한 사람은 분명 나였다

나는 어느샌가 스튜디오의 분위기에 동조하며, “이상한 나라네.”라고, 가 본 적도 없는 그 나라를, 자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뭔가’로 여기고 있었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그건 북조선 스타일”이라고, 멸시하는 의미의 비유에 이 말을 쓴 적도 있다.

이렇게 자신이 일본 사회에서 ‘다수자’로 존재하는 한, 차별과 증오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넘어간다. 북한과 한국에 대한 공격적인 뉴스가 방영될 때마다, 조선학교에 혐오 편지가 오거나, 통학 중인 학생의 치마저고리가 찢기거나 하는 일에도, 등을 돌리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차별은 모두, 내 아버지와 조부모에게 향해졌던 것이다. 내 뿌리도 재일 코리언인 것을 알았을 때, 갑자기 내가, ‘무의식적으로 차별 공격을 보냈던 쪽’에서, 내 자신의 일부, 가족의 역사로 ‘차별 공격을 받는 쪽’이 되었다.

만약 내가 그 상태로, 냉소적으로 뉴스를 계속 보고 있었다면,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거리에서 증오 발언을 마구 퍼뜨리는 존재는 되지 않았겠지만, 그런 집단의 생각에 공명하거나, 특정 뿌리를 가진 사람들은 살 값어치가 없다는 말을 방치하거나 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또한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내가 느껴온 ‘께름칙함’은, 내가 그런 출신이라고 알기까지, 아픔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감정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내 자신 안에 있는 ‘가해성加害性’을 직시하지 못하고, 줄곧 마음속 깊은 곳에 눌러 두고 있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어느 쪽도 될 수 있다는 자각이 결여되어 있는 한, 차별 문제는 줄곧 내 피부 ‘바깥’에 있는 것, 말하자면 계속 ‘남의 일’이 되고 만다. 자신의 가해성에서 앞으로도 계속 눈을 돌릴 것인가, 아니면 그런 자기 인식을 받아들이고, 계속 행동할 것인가는, 중대한 분기점이 분명하다. 지금 내게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가족에 관해 얘기해 보자…. 전차에 흔들리며, 그렇게 결심했다.

■ 아버지에게 그림책을 퇴짜 놓으며 던진 말

이제까지 여러 번 남 앞에서 이야기하는 일을 해 왔다. 생방송이든, 많은 대중 앞에서 하는 강연이든, 이제 긴장하는 일 따위는 거의 없다. 다만, 이날은 조금 달랐다. 코로나 재난이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진행되지만, 비디오카메라와 PC 앞에 앉은, 내 손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외국인인권법연락회에서의 강연이 시작되고, 옆자리에 있어 준 사회자 모로오카 씨는, 그것을 넘겨다보고 있었던가, 침착한 진행으로 내게 배턴을 넘겨주었다. 꼭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었다. 나의 최초 ‘가해’에 대해.

어린 시절, 어머니는 ‘풍부한 감성을 기르도록’이라며, 내게 월 300권이나 되는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하루 10권이라고 치면,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고르는 일만으로도 좀 고생했을 게 뻔하다. 어느 때, 드물게 일찍 귀가한 아버지에게, 어머니 대신 그림책을 읽어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눈코 뜰 사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아버지는, 이날도 좀 지쳐 있었으리라. 그런데도 싫은 기색 없이, 나른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왠지, 아버지는 그림책을 술술 읽지 못했다. 간단히 읽을 수 있는 히라가나로 쓰인 쪽마저, 몇 번이나 막히곤 했다.

어머니의 매끄러운 낭독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점점 짜증을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됐어!”
채 한 권도 다 읽지 못한 사이에, 참지 못하고, 아버지의 무릎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불쑥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아빠, 이상하네. 일본 사람이 아닌가 봐!”

아버지는 조금 난처한 얼굴을 하고, 조용히 그냥 웃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왠지 슬픈 기색을 띤 아버지를 앞에 두고, 나는 순간적으로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른 건지도 몰라’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왜 ‘터무니없는’ 일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럴까 강렬한 기억으로, 내 마음에 새겨져 있다. 그때 나는 아직 그 말이 얼마나 잔혹한 울림인지 몰랐다.

아버지는 재일 코리언인 것에 더해, 복잡한 가정 환경 속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사실을 어머니에게 들었던 것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뒤였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출신에 대한 생각의 틈새에, ‘그때 왜 그런 태도를 취해 버렸을까’라고, 나처럼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직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던져 버린 “아빠, 일본 사람이 아닌가 봐”라는 말은, 과연 ‘몰랐으니까’ ‘어렸으니까’라며, 방치해도 괜찮은 걸까.

만약 지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보고 있는 공적 장소에서 울었던 일은, 몇 년간을 돌아보아도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울고 있는 자신에게, 내 자신이 놀라 버렸다.

조금씩 자신을 진정하면서, 계속했다.
“만약 지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즐겁게 아버지의 더듬거리는 낭독에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진심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가장 전하고 싶은데, 꼭 몇 번이나 ‘미안해’라는 심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때, 그런 말을 해서 미안해’ ‘더 상냥하게 못해 줘서 미안해’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십니다. 그래서 ‘만약’을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을, 이제부터 하고 싶습니다.”

대강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주뼛주뼛 온라인 전송 화면의 채팅방을 들여다봤다. 이런 사적인 이야기를 접하게 해 미안하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데 채팅방은 감상으로 넘치고 있었다. 감상이라기보다, “내 이야기”였다. “나도 내 자식의 행복을 생각해, 출신을 감춰 왔다” “내 아버지도, 자신의 뿌리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 논평이 속속 채워져 갔다.

“그만큼 모두 이야기할 장이 제한되어왔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자신도 재일 코리언인 주최 측 인사가, 깊이 감동한 듯 그렇게 알려 주었다.

회견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다른 지인이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내 아버지도, 글자를 못 읽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책을 읽을 때마다, ‘우리 딸은 천재로다’라며, 책값이 얼마든 주시곤 했어요. 사실은 책 구입 이외의 용도로도 사용했지만요”라고,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오늘 밤은 나쓰키菜津紀 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랜만에 그런 아버지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어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다른 사람과 이어지고, 그리고 그 사람 자신의 체험을 접할 수 있다. 마치 돌아가셔서도 새삼 아버지가 나를 이끌어주는 듯했다.

이제부터라도 가능한 한 계속해서 이야기하자. 그렇게 마음을 새롭게 먹으면서, 동시에 복잡한 생각이 스쳤다.

애당초 나에게는, 이 이상, 이야기할 게 없다. 조부모는 호적에 등재된 이름밖에 모른다. 아버지 가족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고, 조선 반도 어디에서, 언제 일본에 온 지조차 모른다. 비유하자면, 실이 끊어진 연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아버지도 필시 조부모도, 이미 이 세상 분들이 아니다. 죽은 자에게 물어 밝힐 수 없다면, 이 이상의 것을 되살리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나는 반쯤 체념하고 있었다. 친구가, ‘외국인등록증’이라는 존재를 알려주기까지는. 그래서 시작한 뿌리를 순회하는 ‘여정’에 대해서는, 다음 회를 기약한다.  (『세카이』, 202203월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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