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사십년도 넘은 옛날옛적에 전두환이가 군사반란을 일으킬 무렵에 경기도 부천에서 자치를 하고 있을 때인데 내 옆방에 신학대학을 다니고 있던 친구가 목포에서 올라 온 고등학교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워낙에 방음시설이 안되는 집이라 그 형제가 나누는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되었는데 오늘 나 빠구리 해야겠다고 하는 형에게 동생도 대뜸 나도 오늘은 빠구리 해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빠구리라는 말은 대한민국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국팔도 공용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 나로써도 형과 동생이 나누는 빠구리대화가 정말 너무 당혹스러웠다. 그게 어떻게 형과 동생이 아침에 얼굴을 맞대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란 말인가?

아무리 쉬는 시간 어두운 학교 변소에서 담배를 한모금씩 나눠 펴 본 적도 있고, 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질 때까지 동네 어두운 공터에서 친구들과 짤짤이를 해 본적도 있는, 말하자면 어느 정도 불량끼가 있다고 말할 수 있던 나였지만 전라도 목포 출신의 두 형제가 나누는 빠구리 대화가 던져 주던 그 때 그 시절의 당혹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사십년이 지난 불혹과 지천명, 이순을 모두 넘긴 지금에 와서도 마누라한테 우리 오늘 빠구리 한번 할까?하고 직언을 드리지 못하는 데 말이다….

나중에서야 그 때 나의 당혹감이 얼마나 터무니 없었는 지를 알게 되었다. 전라도 목포에서는 ‘컨닝을 하는 행위’나 ‘수업을 빼 먹는 행위’를 일러 ‘빠구리 한다’ 또는 ‘빠구리 친다’고 표현한다는 이야기를 전라도 친구에게서 듣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나의 상식이 일순간에 무너지자 사십년 전 내가 느꼈던 당혹감보다 더 큰 당혹감을 직면하던 순간이었다. 큰 깨달음이 왔다.

인도 델리 45도가 넘는 땡볕에서 땀에 시험지가 온통 젖어버리던 시절 목격한 충격적인 장면이 생각난다. 부산 용두산 공원에서 모이를 주면 구구구 모여들던 평화의 상징 비둘기들이 델리의 우리 집 테라스에서 둥우리를 서로 차지 하기 위하여 피를 흘리며 서로 싸우던 장면을 목격하였다.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펼치는 생존을 위한 전쟁은 실로 참혹했다. 피를 머금고 있는 비둘기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버둥거리는 비둘기는 이미 내게 평화의 상징이 아니었다. 무너진 상징의 체계가 내 상식의 체계를 무너뜨렸다. 내가 보편적인 진실이라고 알고 있던 사실의 체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찰떡 같이 믿고 있던 사실이 실제로는 편견에 찌들은 고정관념일 수도 있음을….


“친한 누나가 자꾸 ‘빠구리’를 치잡니다”…
전라도 밖에서 쓰면 민망해지는 사투리
2020.07.13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2877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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