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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18
  번호 130593  글쓴이 강진욱  조회 534  누리 0 (0,0, 0:0:0)  등록일 2021-10-12 09:18 대문 0

[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18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

(WWW.SURPRISE.OR.KR / 강진욱 / 2021-10-12)

 

18. “83년 테러” : 전두환의 예언과 레이건의 친서

1983년 새해 벽두부터 전두환네는 또 공격적으로 대북 통일 선전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1981년 1.12 제의와 1982년 1.22 제의(소위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에 이어 1983년 벽두에 또 빈 깡통을 요란하게 흔들어댄 것이다. 마치 자신들이 남북의 화합과 평화통일을 바라기라도 하듯이. 전두환은 1월 18일 국회 연설에서 남북 최고당국자회담 촉구 발언을 이어갔고, 언론은 그의 말을 과대 포장하며 북측을 비난하는데 열을 올렸다.

[이처럼 [전두환 대통령이] 대화와 화해, 통일 추진의 길을 활짝 열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북괴는 김일성 부자의 왕조 체제를 유지하려는 시대착오적 야욕과 극소수 특권 체제[?]에 눈이 어두워 우리의 제의에 마이동풍 격으로 버티다가 지난 18일에는 돌연 주한미군 철수 등을 토의하기 위한 남북한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란 것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나섬으로써 대화가 아닌 폭력의 저의를 다시 한 번 노출시켰다. 주한미군의 존재가 ... 그들의 남침 준비에 기인하고 있음에도 불구 ... 최고당국자끼리의 대화를 마다하고 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란 것부터 들고 나오는 저의는 무엇이며 유독 주한미군 철수를 의제로 부각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이와같은 요청은 제의라기보다 우리의 통일 노력과 제의가 국제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게 된 데 대한 불안감의 표시이며 한미 양국을 비방하려는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 하겠다.] (<연합통신> 1983.1.20)

이렇게 북측의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를 시비하더니 2월 1일에는 남북의 각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들이 참가하는 대표회의를 빨리 열자며 ‘맞불’을 놨다. 

[정부는 1일 남북한 당국 최고책임자회담을 실현하는 문제와 평화적 통일을 위해 남북한 쌍방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협의하기 위한 ‘남북한 당국 및 정당사회단체 대표회의(가칭)’를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자고 북한 측에 제의했다. 손재식(孫在植) 국토통일원 장관은 이날 오전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대북 성명을 발표 ... “남북한 쌍방은 ... 당국 대표 2명과 정당대표 3명이 참가하는 실무급 예비회담을 오는 3월 중에 판문점 또는 평양에서 개최하자”고 조의 ... ] (<동아일보> 1983.2.1)

( 동아일보 1983.2.1 / 손재식은 내무차관 출신으로 이범석의 후임. 이범석이 통일원장관에서 물러난 이유는 앞글 5편에서, 손재식에 대해서는 16편 글에서 각각 설명했다.)

전두환네의 이런 ‘통일 공세’가 빈 깡통 흔들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저들이 통일 관련 제의와 동시병행으로 ‘북괴 도발’ ‘남침’을 떠벌리면서 연일 남북 대결 분위기를 조장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좌: 경향신문 1983.2.1) (사진 우: 조선일보 1983.2.2)

뒤에서는 은밀하게 버마 테러를 획책하면서 앞에서는 남북 최고당국자회담과 정당.사회단체 대표회의를 제안하고, 동시에 ‘남침’ ‘도발’을 떠벌리는 버라이어티쇼를 연출했던 것이다. 위장평화 공세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새해 벽두 통일 선전전과 함께 ‘남침 공포(空砲)’를 먼저 쏘아 올린 것도 대통령 전두환이었다.

그는 1월 21일 대간첩대책중앙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는 “북한 침략주의자들이 전면적인 무력 도발을 감행할 준비를 완료해 놓고 금년에는 특히 지하당 재건을 노리면서 학원과 노조.종교계 및 우리사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우회침투 공작을 더욱 격화시킬 것”이라고 떠벌렸다. 그러면서 ①간접 침투와 기습에 대비한 철저한 대비 ②국가 중요 시설 방호 체제 공고화 ③주민신고 의식 고양 등 3대 지침을 하달했다(<경향신문> 1983.1.21). 

( 조선일보 1983.1.22 / ‘1983 버마 사건’이 바로 전두환네가 떠벌린 ‘우회 도발’에 해당한다. / 대간첩대책중앙회의는 1968년 1.21 사건 이후 해마다 대통령 또는 대리인이 주재하는 회의로 전두환 때까지 이어지다 노태우 정권 출범 후에야 없어졌다.)

전두환의 언사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그는 북측이 “내부의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과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남북한 간의 국력 격차에 초조한 나머지 금년에는 1.21 사건과 삼척.울진 무장공비 침투 사건보다 더 악랄하고 과격한 도발을 감행할 우려도 없지 않다”고 떠벌렸다. 1.21 사건과 울진.삼척 사건은 ‘6.25 남침’ 다음으로 ‘가장 악랄한 북괴 도발’로 우리 뇌리에 박혀 있는 사건이다.

전두환은 이들 사건보다 ‘더 악랄한 사건’이 곧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고 실제로 그런 사건이 일어난다. 전두환네와 미국이 합작한 ‘1983 버마 사건’이 그것이다. 전두환의 1.21 발언은 열 달 뒤 일어날 버마 사건의 컨셉에 대한 암시였고, 실제로 버마에서 사건이 일어나자 <경향신문> 등은 이를 ‘제2의 1.21 사건’이라고 제목을 단다. (*1.21 사건이나 울진.삼척 사건에 관한 정부나 학계 및 언론계의 해설은 사건의 내막을 은폐하기 위해 - 상당 부분 - 조작된 것으로 본다. 졸고「이승복 논란과 울진.삼척 사건의 진상」① <진실의길(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690) 참조.)

전두환 정권은 이처럼 ‘북한의 도발’을 집중 거론하며 남북 간 대결 분위기를 조장하다 급기야 자기네들이 획책하고 있는 음모를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이때는 버마와 한국 양쪽에서 ‘1983 버마 사건’이 일어나는데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을 때였다. 버마와 한국 양측에서 이 사건을 조작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면서 남북 최고당국자 회담을 촉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도발’ 분위기를 조장한 것이다. 먼저 기세를 올린 것은 미국이었다.

[【워싱턴=문명호 특파원】미 국방성은 31일 84회계연도 국방예산 심의를 위해 의회에 제출한 연례 국방보고서를 통해 소련이 재래식 병력으로 두 개의 결정적 전역인 서구 및 서남아시아에 공격을 개시할 경우 북한은 한국에 대해 양적으로 우세한 육군 및 전술 공군으로 공격해 올지 모른다고 ... 335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는 ... 만약 소련의 재래식 군사력이 미국에 치명적인 이 두 지역에 공격을 가하거나 또는 이 지역의 동맹군을 묶어두는 동안 북한은 이 상황을 유리하게 이용, 한국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지상군과 전술 공군으로 한국을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 동맹국과의 집단방위를 강조한 이 보고서는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비, 미국은 동해에 항공모함을 배치하겠다는 전략을 시사 ... ] (<동아일보>1983.2.1)

위 글에 내포된 의미가 실로 크다. 미국이 동북아 패권체제 구축을 위해 소련과 조선(북한)을 공동의 적으로 삼고 있으며, 남한의 대북 적대감을 근간으로 하는 남북 분단체제는 미국의 동북아 패권체제에 부속돼 있다는 역사적 사실. 이는 남북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계속 유효한 ‘분단의 공식’이고 ‘분단체제 유지 보수의 매뉴얼’이지만 특히 1980년대는 미국의 동북아 적대동맹 체제가 가장 비열하고 극렬하게 작동할 때였고 그 필요에 따라 남한의 대북적대감은 최고조로 끌어올려져야 했다. 전두환 정권 시기 북측을 겨냥한 끔찍한 자작테러가 연발한 것은 그 때문이다. ‘1983 버마 사건’ 등을 미국의 패권적 지배질서에 편승한 전두환 정권이 제 국민을 제물 삼아 벌인 자작테러로 정의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지극히 타당하다.

위 미국 국방부 문건에서 일본의 역할이 강조된 것은 이 해 초(1983.1.11) 일본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가 한국을 다녀간 것과 관련이 있다. 이 시기 레이건 정권은 한.일을 동북아 대북대소 동맹체로 묶으려 했고, 한.일 두 꼭두각시 정권들은 미국의 동북아전략에 발가벗고 따라 나섰다. 미국에게 있어서 한.일 두 나라를 군사동맹체로 묶기 위한 최선의 방략은 소련과 소련의 동맹국인 조선을 악마화(적대시)하는 것이었다. 

레이건 정권은 또 한국이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함으로써 일본의 경제발전을 돕고 있다며 나카소네 정권이 ‘안보경협자금’ 명목으로 40억 달러를 전두환 정권에 제공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돈의 상당액은 미제 무기를 한국에 팔아먹은 미 군산복합체의 금고로 들어갔을 것이다. 나카소네가 1월 12일 오전 김상협(金相浹) 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 던진 조크는 전두환이 미국에 다녀오면서 3년 연속하는 비동맹 순방 외교와 역시 3년 내리 계속되는 대북 통일 공세 및 미국 주도로 미.일.한 3국 동맹체가 구축되는 상황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카소네 수상은 ... “남북통일에 대한 전두환 대통령의 제의에 공감하고 있다”고 전제, “전 대통령은 취임 초 레이건 미 대통령과 만났고 이어 아세안과 아프리카 순방 외교 등 적극 외교를 펴는데 감명을 받았다”면서 “나의 방한과 앞으로 있을 미국 방문도 전두환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을 흉내 내는 것 같다”고 조크.] (<동아일보>1983.1.12)

( 매일경제신문 1983.1.11 / 40억불 타결될 듯)

( 동아일보 1983.1.12)

나카소네가 다녀간 지 한 달 뒤 미 국무장관 조지 슐츠(George Pratt Shultz)가 내한했다. 슐츠의 방한은 넉 달 전인 1982년 11월 이미 예고됐다. 당시 미국 언론은 슐츠가 1983년 2월 초 한.중.일 3국을 순방할 예정이라고 보도했고, 한 달 뒤 그의 방한 일자가 1983년 2월 6일로 확정 발표됐다. 이어 그의 방한 직전인 1983년 1월 말에는 주미대사 유병현이 슐츠 집무실로 가 슐츠와 뭔가를 숙의했다. 1982년 부시 방한 때 백악관으로 직접 부시를 찾아갔던 그 유병현이었다.

[【워싱턴=연합】유병현 주미대사는 27일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과 만나 슐츠 장관의 방한 문제를 비롯한 양국 상호 관심사를 약 30분 간 논의했다. ... 이날 국무성 집무실에서 유 대사와 가진 ... 이날 회담에는 폴 울포위츠 미 국무성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데이비드 램버트슨 한국과장이 배석했다.] (<매일경제신문> 1983.1.28)

( 매일경제신문 1983.1.28 유병현-슐츠 회담)

( 경향신문 1983.2.7 / 슐츠-전두환)

이런 가운데서도 전두환과 그 정권의 부역자들은 연일 ‘북괴 도발설’ ‘남침설’을 설파하고 있었다. 저들은 2월 25일 MIG19기를 몰고 남으로 내려 온 북측 공군 조종사(이웅평)를 ‘남침설’을 조작하는데 적극 활용했고, 재일동포 간첩 사건을 연달아 조작해 ‘우회 침투’설을 확산시켰다. 6월에도 ‘간첩(?)의 남침’이 연달았고 전두환의 서남아.대양주 순방 계획이 발표되는 8월에는 정체불명의 선박을 격침시켜 놓고 “무장간첩선을 격침했다”고 떠벌리는 사건이 두 차례나 있었다. 가히 ‘국가안보 조작 전성시대’. 전두환 정권 시기는 이처럼 극악무도한 불법의 시대였다. 그 시기에 상상 초월의 대북 관련 의혹 사건들이 일어났다면 그 모두가 전두환네와 이들을 조종하는 미국의 소행이라고 보는 데 주저할 이유가 있을까.

( 매일경제신문 1983.3.4)

( 동아일보 1983.3.11 / 김장호 씨는 2017년 9월 21일 무죄판결을 받는다.)

 ( 경향신문 1983.5.26 / 이 사건은 2010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다.)

3월이 되자 전두환은 ‘북괴의 1983년 도발’을 공공연히 떠벌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25일 상오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 주재로 제8차 안보정책회의를 소집, 북괴의 도발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을 다각적으로 검토했다. 관계자들은 북괴가 최근 그들 내부의 경제 사정 악화와 김정일 세습체제 등으로 빚어진 내부 갈등과 이에 따른 국민 불만, 그리고 점차 크게 벌어지고 있는 국력 열세와 각종 국제회의 서울 유치로 인한 국제사회에서의 지위 손상에서 오는 초조감 등으로 IPU(국제의회연맹) 등 국제회의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금년에는 어느 때보다 무력 도발을 해 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다.] (「남침, 올해가 위험 고비 - 전 대통령 “초동 단계서 철저 분쇄토록”」<경향신문> 1983.3.26)

( 경향신문 1983.3.26)

( 동아일보 1983.3.9 남침)

전통은 다음날 인천시청을 순시한 자리에서도 “군.경찰.예비군.민방위대와 모든 관은 각각 일사분란하게 모든 조직을 재점검해서 만반의 대비를 갖추도록 하고 아울러 주민 신고체제도 재점검.강화시키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전통의 지시는 반복적으로 언론을 탔고, 당장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북한의 테러’를 조작하려 음모를 꾸미면서 북측이 그런 일을 꾸민 것으로 믿게끔 만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4월 들어 전두환은 ‘비정규전 도발’을 입에 올린다. 그는 4월 2일 예비군의 날 치사에서 “북한 공산집단은 기회를 엿보아 기습적인 전면 남침과 무장간첩을 대규모로 침투시키는 비정규전을 감행하여 전후방의 동시전장화를 기도한다는 전략 아래 전쟁 준비에 혈안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경향신문 1983.4.2)

‘무장간첩 대규모 침투’는 바로 전두환 자신이 1월 21일 대간첩중앙회의에서 떠벌린 ‘1.21 사건이나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보다 더 악랄한 사건)’을 말한다. 이때부터 전두환 정권 담당자들은 이 두 사건을 수시로 거론한다. 며칠 뒤에는 오경환(吳慶煥) 해군참모총장은 지휘관 확대회의를 주재하면서 “북괴가 취약시기를 틈타 해안 침투를 감행, 울진.삼척 사태와 같은 대남 기습을 통해 한국의 사회적 혼란을 획책할 수 있다”고 떠벌렸다. 그리고는 해안경계태세 보완과 주요 항만 경계 강화, 육.해.공 입체작전능력 강화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다짐했고, 1983년을 ‘적 해상 도발 말살의 해’로 선언하는 등 전의를 불태웠다.

국방장관 윤성민(尹誠敏)도 4월 22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북한이 남한 및 미군 군복과 잠수복 및 고무보트 등 침투 장비들을 사들이고 있다며 북측이 곧 남침할 것이라는 공포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두환이 말한 ‘1.21, 울진.삼척 사건보다 더 악랄한 사건’ 즉, ‘게릴라의 대량 남침’이 당장 현실화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분위기였다.

( 조선일보 1983.4.23)

4월 24일 자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윤성민의 말을 되풀이하면서 “이미 1.21 및 울진.삼척  사태를 겪었지만 10만이 넘는다는 특수8군단을 투입, 국군을 가장한 비정규전을 감행하려”한다고 떠벌렸다. 이처럼 전두환 정권이 1.21 사건과 울진.삼척 사건을 연일 상기하는 것은 6개월 뒤 일어날 버마 사건을 ‘제2의 1.21 사건’ ‘제2의 울진.삼척 사건’으로 규정하기 위한 선무 작업이었다.

급기야 전두환은 북측이 서울의 주요 시설을 폭파하려 한다는 이야기까지 흘렸다. 그는 4월 25일 새벽 서울시경과 한국방송공사 및 국방부 등을 예고 없이 방문한 자리에서 북측이 “IPU 서울총회 개최 저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에 실패한 뒤 2차로 서울 시내 주요 시설에 폭발물을 터뜨리는 무력 도발을 해 올 가능성이 있어 한반도로서는 올해가 큰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송, 발전, 통신, 급수 등 주요 시설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도록 지시했고, 곧바로 발전소와 수원지 등에 대한 경계의 수위를 높여 ‘북한의 폭탄 테러 공격’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처럼 ‘북괴의 도발’ ‘북괴의 서울 폭파 테러’을 기정사실화하며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것처럼 떠들던 전두환이 미 대통령 레이건을 한국에 초청했다. 미국에서 열린 제15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윤성민 국방장관이 백악관으로 레이건을 찾아가 직접 전두환 대통령의 초청 의사를 담은 친서를 전달했다.

전두환 정권이 남발하는 언사로 봐서는 오늘 내일 전쟁이 발발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이 위험천만한 나라에 미국 대통령을 초청한다는 것부터가 당치않은 일이다. 전두환네가 연일 발설하고 있는 ‘북괴의 도발 및 테러 위험’이 실재했다면 미국 측은 ‘그 위험한 곳에 어떻게 우리 대통령이 가냐’며 면박을 줘야 마땅하다. 그런데 미국 측은 전 정권의 대통령 방한 초청에 흔쾌히 응했다. 그러면 ‘북괴로부터의 도발’ 또는 ‘테러’는 미국과 전두환네가 짜고 벌인 거짓선전인 것이다. 그네들이 은밀히 준비하고 있는 ‘1983 버마 자작테러’를 위장하려 했을 것이다. 또한 2월부터 4월까지 연인원 20만에 가까운 대 병력이 동원된 사상 최대 규모의 팀스피리트 83 훈련의 거짓 명분도 필요했을 것이다.

전두환 정권 스스로가 ‘내 나라는 곧 남침을 당할 나라’라고 외치는 와중에 버마 체신청장관 우 소프 루가 내한한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그것도 레이건의 방한을 초청한 시점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그가 KAL를 타고 왔다는 것으로 보아 전두환네가 또 특별기를 보냈을 공산이 크다. 그를 초청한 이는 이희성(李憘性) 교통부 장관. 2년여 전 전두환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한(12.12 쿠데타) 뒤 그 후임으로 임명됐던 전두환 패거리. 그가 어느 새 교통부장관이 돼 있었다. 버마 체신부장관의 방한 목적은 “버마 교통 및 체신 사업의 개발을 위한 차관 교섭과 설비 구매 등에 관한 협의”였다 한다(<매일경제신문> 1983.4.14).

( 매일경제신문 1983.4.14 윤자중 회담)

당시 우리 남측은 버마에 체신 및 교통 관련 사업을 지원하고 차관을 줄 처지가 아니었다. 그 차관은 분명 ADB(아시아개발은행)이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일명 세계은행) 등 미국과 서방의 자금이었을 터.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 등이 버마를 친미.친서방 국가로 만들기 위해 풀기 시작한 ‘돈 줄’은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뒤에도 계속 풀고 있었던 것이다.

1983년 국제의원연맹(IPU) 총회를 서울에서 열기로 최종 확정한 것도 이즈음이다. 전편 글(17편)에서 살펴봤듯이 1년 전 IPU 서울 총회 개최 결정은 매우 이례적이었고 예상 밖이었다. 그렇게 졸속으로 ‘서울 총회 개최’를 결정했던 것을 이때 확정한 것이다.

( 경향신문 1983.4.30 IPU 서울 확정)

‘1983 버마 작전’이 실행 단계에 들어서는 1983년 5월 전두환의 ‘북한의 테러’ 여론몰이는 더 구체화된다. 그는 5월 11일 밤부터 12일 새벽까지 ‘멸공 83’ 훈련을 순시하는 자리에서 [강조]“앞으로 적은 비정규전인지 전면전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강된 대규모 병력을 침투시킬 것이 예상된다”[강조]고 떠벌렸다. 이쯤 되면 거의 제2 한국전쟁 분위기다.

‘멸공 83 훈련’은 5월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 동안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과 강원 지역에서 실시됐으며, 각 지역 군.경.예비군.민방위대 등 350여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모의 간첩’ 4명이 “국군과 똑같은 차림에 소총과 기관총, 박격포 등으로 무장하고 농어촌, 산간벽지는 물론 도심지 주요 기관에까지 침투해 파괴.살인.납치 행위 등을 벌이는”작전이라 했다(<경향신문> 1983.5.6). 앞서 언급한 ‘1.21, 울진.삼척 사건보다 더 악랄한 사건’을 금방이라도 재현할 분위기다.

나흘 뒤인 5월 16일 문공부장관 이진희(李進熙, 전 MBC 사장)의 ‘북한의 대외적 모험주의’ 발언은 다섯 달 뒤 일어날 버마 사건에 대한 예언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이 요상한 발언은 영국 런던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연설에서 나온 것이었다. 문공부장관이 런던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에 연사로 초청된 것부터가 수상한 일이다.

그는 “북한 내부에서는 김일성 부자의 권력 세습 체제가 구체화됨에 따라 권력 구조 내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것이 대외적으로는 극히 위험한 모험주의로 나타날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은 한국의 계속적인 경제발전과 88년 서울올림픽 유치 성공 등으로 좌절감에 빠져 자신들의 패배에 대해 극단적인 방법으로 돌파구를 마련해 보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떠들었다.

북측이 남측의 경제 발전을 시기해서, 또는 서울올림픽이 열리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어떤 ‘극단적 선택’을 할 것이라는 발상은 대북 적대감을 먹고 사는 분단 이데올로기 환자들의 환각 속에게서나 나올 법한 범죄적 구상이다. 이진희의 런던행과 이곳에서의 그의 발언은 ‘1983 버마 사건’을 위한 ‘812 계획’이 실행에 옮겨졌다는 신호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진희의 발언이 나온 지 열흘 만인 5월 25일 전두환은 그 작전의 실행 시점을 예고하는 듯한 말을 한다. 그는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IPU총회와 관련 “북한이 다른 나라 대표단의 불참을 획책하는 등 방해 공작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대한 만반의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IPU 서울 총회 개최 시기에 모종의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실제로 전두환은 10월 4일 IPU 총회 개막 연설을 하고 나흘 뒤 버마로 갔고 바로 그 다음날 사건이 벌어졌으며 곧바로 IPU 총회장은 ‘북괴 만행 성토장’이 된다. 그의 예언은 막연한 예언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표에 따른 예고였던 것이다.

또 ‘1983 버마 테러’에 앞서 일어나는 ‘북괴 간첩선 격침’ 등과 같은 해괴한 사건들을 북측의 IPU 방해 테러라고 명명한 것을 보면 이들 사건 역시 자작극임이 분명하다. IPU 총회를 방해하기 위해 북측이 무장 테러리스트들을 배에 태워 내려보낸다는 발상이 얼마나 해괴한 가.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북한의 비정규전 도발’을 재확인하는 레이건의 친서가 전달된 것이다. 레이건은 5월 26일 주한미국대사(리처드 워커)를 통해 전달한 친서에서 한반도에서의 침략을 저지할 결의와 능력 침략 운운하면서 “본인은 침략에 대응하려면 결단력과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으며 비정규 대리전으로 야기되는 위험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전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대리전으로 위협을 받는 국가들을 지원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대리전으로 위협을 받는 국가’는 버마일 수도 있고 남한일 수도 있다. ‘북한이 버마에서 남한 대통령을 살해하려 테러를 저질렀다’는 각본이 그 ‘대리전’의 전형이다.

그렇다면 전통이 5월 11일 “적은 비정규전인지 전면전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강된 대규모 병력을 침투시킬 것이 예상된다”고 떠벌리고 ‘북한의 폭탄 테러’를 예언하면서, 서울과 수도권 및 강원도 군.경.예비군과 민방위대원 약 350만 명을 동원해 ‘멸공 83’ 비정규전 대비 훈련을 벌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 다섯 달 뒤 버마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비정규전(테러 사건)을 획책하는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낸 것 아닌가. 

(사진 좌 : 조선일보 1983.5.28 레이건 친서) (사진 우 : 경향신문 1983.5.28 친서 전문)

레이건 친서에 의미심장한 구절이 있었다. “본인은 한반도에서 우리가 공동으로 당면하고 있는 특별한 위험을 명심하고 있으며, 한반도에서 효과적인 억지력을 유지하려는 각하의 공약을 함께 한다.”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는 경우 현존하는 한미 간 협의기구와 통수 체계는 우리로 하여금 적절히 또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당장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1983 버마 사건’이 일어난 시각에 박세직 안기부 2차장과 박준병 보안사령관, CIA 서울지부장 셋이 서울 안기부 내 테니스코트에 앉아 있다 ‘함께 놀라며 공동으로 대응’하는 모습.

( 박세직 책『하늘과 땅 동서가 하나로』50쪽)

( 박세직 책『하늘과 땅 동서가 하나로』51쪽)

또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버마 주재 한국 외교관과 정보기관원들이 미국 대사관과 미 CIA 지부 관계자에게 각각 연락하고, 미국은 즉각 수송기를 급파해 부상자들을 필리핀 소재 미군 기지로 옮기는 장면도 있다. 그 뿐인가. 한미 양측은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긴밀히 협력하며 ‘대북괴 버마 외교 공작’을 전개해 왔고, ‘버마 사건’을 북측의 소행으로 뒤집어씌운 뒤에는 손발을 맞춰 ‘늑대사냥’이라는 이름의 ‘대북괴 외교’를 펼치며 조선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켰다. 전두환네와 레이건 정권은 또 버마 사건을 기화로 조선을 ‘테러지원국’ 명부에 올리려 했다(두 정권은 4년 뒤 KAL 858 조작한 이듬해 기어이 조선을 그 명부에 올렸다). 전두환과 레이건이 친서를 주고받을 때 이미 이런 일들이 예정돼 있었을 것이다.

한미 양측이 ‘북한의 비정규전’ 운운하며 수상한 친서를 주고받은 때는 버마에서 군 정보국장 틴 우(Tin U) 중장이 숙청돼 치안권력의 공백이 생기는 때 즉, 전두환네 특수부대가 비정규전을 벌일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는 때였다. 전두환네가 ‘멸공 83’이라는 작전을 순시하면서 비정규전 운운한 직후 버마 군 정보국장 등이 숙청됐고(5월 17일), 이후 약 열흘 동안 버마 군 정보국을 사실상 해체시킨 뒤 레이건이 대리전으로 위협받는 국가들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친서를 전두환에게 보냈던 것이다.

‘1983 버마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미 극소수 최고 권력자들이 ‘비선’을 통해 긴밀히 소통하며 기획하고 저지른 사건이 분명하다. 전두환과 레이건, 부시 등이 유병현 주미대사를 통해 여러 차례 친서를 주고받으며 나눈 메시지가 바로 그 증거다!

P.S.

1980년대 레이건 정권의 군사적 팽창 야욕과 대소대북 적대 전략은 5년 전 베트남 침략전 패퇴의 치욕을 털어내고 다시 한 번 미국의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의 발로였다. 저들의 이 야심이 우리에게 얼마나 불길한 조짐이었는지를 아는 이가 있었다.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鄭敬謨) 선생. 분단된 조국의 불행에 가슴 아파하고 평생을 민족의 통합을 염원하며 살던 이에게만 허락되는 통찰이었을 것이다.

(정경모 책『찢겨진 산하』125쪽)

(정경모 책『찢겨진 산하』125쪽)

정경모 선생은 1983년 3월 “한국군 10만 8천 명을 포함한 18만 8천 명의 병력이 동원된 유례없는 대규모 군사연습 팀스피리트 83이 전개”되는 등의 사실에 착안해 이 해 미국이 조선을 상대로 제한 핵전쟁을 벌일 것으로 우려했다. 그는 “1983년이 되자 급속히 지구를 뒤덮기 시작한 불길한 검은 구름을 응시하면서 아주 큰 변고라고 생각”했고(위 책 5쪽), “1983년이 되자 급격하게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긴박성을 띠”었다(위 책 125쪽)고 썼다. (19편으로 계속)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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