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은 좌초입니다.
천안함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선박 전문가 신상철의 비망기
오동나무 아래서 역사를 기록하다.
권력을 사익 확대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오늘날 부패한 고위 관료들.. 김종익
도둑맞은 주권
18대 대선은 합법으로 위장한 부정선거였다. 김후용
진보적 글쓰기
우리의 글쓰기가 사회를 개선하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김갑수
진보를 복기하다
국회의원으로서 내놓았던, 내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정책을 열한 가지의 주제로 묶어 정리했다. 이정희
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
사건의 재구성과 57명의 증언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
분단체제 프레임 전쟁과 과학 논쟁 (한겨레 오철우 기자)
논  쟁   문재인정부   천안함   세월호   최순실   검찰개혁   국방개혁   정치개혁   일반   전체 
🔵🔴중대발표🔴🔵
  번호 125637  글쓴이 전원필독  조회 181  누리 0 (30,30, 0:6:6)  등록일 2020-6-27 05:40 대문 0

중대발표
전원필독 -아래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짧게 정리.
출옥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반대편에 서 있던 신사참배 찬성파들이 그 분들을 어떻게 대접했는지 차근차근 공부해 가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같은 상황이 닥쳐왔을 때 한국 교회가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지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공부는 단순한 과거사 찾기가 아니라 잘못된 미래를 막기 위한 예방 효과를 갖습니다.


손봉호교수가 쓴글에... 서울문리대 영문과에 응시한 1950년대 말 일요일날 수험표를 나눠주므로 주일성수하느라 거부하였는데... 기독교인 교수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니... “고려파구나! 웃기지 말라!” 했다.

손교수는 월요일에 교무처 직원의 야단을 맞아가며 간신히 수험표를 받아 입실 기도후 수학시험 문제를 보니 첫문제가 얼마전 친구와 토론하던 문제라 쉽게 풀고 사상최고로 어려웠다는데 한 60점 받은 거 같다 함.

위 교수는 다른글에 보니 서울대 종교학과 신사훈(1911-1998) 교수라고 한다. 종교학과를 창설하고 30년동안 과장. 고창고보 출신의 천재로서 가는데마다 1등을 하고 일제말엔 스탠포드대 교수였고 18개 언어를 안다고.(https://artium.tistory.com/24)

아래 글중...
“주일에 사법시험을 치러 가면서도 별로 신앙양심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던 저 같은 사람도, 1924년 올림픽 대회에 참가해 “나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하고 자기 종목이 아닌 분야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획득했던 에릭 리델의 실화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신사훈교수에게도 이런 마음이 요구된다. 왜냐?

다저스팀의전설적인 샌디 쿠팩스(1935- ) 투수는 1965년 335 2/3이닝 트리필크라운 사이영상 수상으로 팀을 월드시리즈에 올려놓은후 1차전 등판을 유대교의 속죄일(Yom Kippur)과 겹쳐 사양후 5, 7차전 완봉승 MVP.

브랜치 리키(1881-1965)는 흑인 재키 로빈슨을 다저스에 입단시켜 메이저리그에 인종의 벽을 허문 주인공이다. 그는 메이저리그 구장에 조명등을 설치해 야간 경기를 가능케 하고 최초로 라디오중계를 시작해 불붙은 메이저리그 인기에 기름을 부었다. 또 팜시스템이나 현재 타자들이 착용하는 헬멧, 배팅 케이지, 피칭 머신도 모두 그가 고안한 것들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리키는 일요일만큼은 안식일로 절대 야구를 하지 않았다. 일요일에는 고참선수나 친구를 감독으로 내세워 경기를 치렀다.

신사훈 교수가 이북에 고려호텔에 가서 식사기도를 한다면 다음과 같은 소리를 종업원에게 들었음직하다. 어느 책에서 본 소리이다.
종업원이 신사훈에게: “식사 하기전에 눈감고 고개 숙이고 중얼 거리는 머저리들 있죠?”




http://blog.daum.net/godsren/9500954

정의가 강물처럼 평화가 들불처럼

1973년 김해여고 사건을 통해 다시 생각해 보는 종교의 자유 | 정의가 강물처럼 평화가 들불처럼
돌봉 2014. 7. 31. 18:00http://blog.daum.net/godsren/9500954
제목 관련한 논문(신학석사)을 진행하고 있으며, 관련 자료로서, 김두식교수님이 저자인 위 제목의 글을 찾고 있습니다. 본 글이 정확히 복음과상황에 실린 글인지, 아니면 복상 사이트 게시판에서만 실린 글인지 알 길이 없어서 문의드립니다.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찾아본 바에 의하면 아래 인터넷주소가 출처인 것 같구요...
http://www.goscon.co.kr/zboard/view.php?id=ver2_article&no=4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꼭 찾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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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김해여고 사건을 통해 다시 생각해 보는 종교의 자유

▲ 김두식 교수

경남 김해 출신으로 경북대 의예과에 재학 중인 정규식 형제님으로부터 지난 8월 말 이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김해중앙교회 대학부 학생인 그는 먼저 그동안 <한겨레>에 실린 저의 칼럼들과 제 책 <헌법의 풍경>을 잘 읽었다고 밝힌 다음, 제 책의 내용 중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른바 ‘김해여고 사건’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1973년 김해여고에서는 고등학생 6명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다가 제적 처분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학생들은 이와 같은 처분이 잘못되었다며 소송을 제기하지만, 대법원까지 올라가 패소하게 되지요. <헌법의 풍경>에서 저는 그 소송의 진행과정을 간단히 설명한 다음, 대법원 판결이 헌법상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제가 김해여고 사건에 대해 처음 전해들은 것은 1년 반쯤 전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탈영자들의 기념비>라는 책의 공동 집필에 참여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군법무관 시절 국선변호를 하면서 젊은 여호와의 증인 병역 거부자들을 대면한 일은 있었지만, 법정 밖에서 여호와의 증인들 다수를 한꺼번에 만나보게 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심지어 2002년 봄 <칼을 쳐서 보습을 :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와 기독교 평화주의>라는 병역 거부 관련 책을 내면서도 여호와의 증인들을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헌법상 기본권 차원에서 옹호하면서도, 여호와의 증인들 자체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버리지 못했던 까닭에 그들을 직접 대면할 기회를 애써 피해왔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어쨌든 바로 그 날 여호와의 증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는, 1973년 김해의 어느 곳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사건이 있었고 학생들이 제적처분을 당해 대법원까지 올라갔었다는 이야기를 참석자들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 사건이 당연히 자기 쪽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었고, 저도 그걸 그대로 받아들였지요. 제가 여호와의 증인들의 기억을 그대로 받아들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자라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이나 통합 전통을 생각해 보면,

도무지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애국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였고, 일부 교회에서는 강단 위에 태극기를 놓거나 국경일에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애국조회와 교련검열 때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수없이 반복되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혹시 이것이 일종의 우상숭배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던 적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 의문에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목사님, 전도사님들께 여쭤보면, “국기에 대한 경례는 국가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는 의식일 뿐, 우상숭배가 아니다”라는 상투적인 대답만 반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일제시대에 신앙 선배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과 국기에 대한 경례는 무엇이 다른 것인지, 신사참배는 경배의 대상이 침략자들의 신이었으므로 문제되었던 것이며 우리나라 국기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지, 단순히 국가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면 왜 하필 사람 손으로 만든 국기에게 인사하는 형식을 취해야 하는 것인지, 경의와 경례가 그렇게 다른 것인지, 그렇게 치면 집안의 제사도 그저 사진에 절하며 가족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닌지, 여러 애국심 표현의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면서 거부할 경우의 처벌은 왜 그렇게 가혹한 것인지.... 고등학생이었던 제 마음 속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단들이나 하는 것으로 배웠기 때문에, 저는 그저 제 마음 속에 자꾸 떠오르는 이러한 ‘이단적’ 생각을 지워버리기 위해 노력했을 뿐, 저의 생각을 발전시킬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험들 까닭에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로부터 김해여고 사건을 전해 듣고, 해당 대법원 판결을 찾아 읽으면서도 이게 여호와의 증인 사건이라는데 대해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탈영자의 기념비>에도 그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고, <헌법의 풍경>에서도 여러 면을 그 판례 비판에 할애했습니다.

정규식 형제님의 메일은 바로 이 사건의 주인공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아니라, SFC(학생신앙운동, Students for Christ) 활동을 열심히 하던 고신 교단 소속 고등학생들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고맙게도 그는 이 사건으로 제적처분을 당한 여섯 명 중의 한 명이 향상교회 사모님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주었습니다. 메일을 받고도 저는 긴가민가했습니다. 설마 예장 고신 소속 학생들이 그랬을 리가 있을까?

그래서 먼저 대법원 판결부터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책을 쓰기 위해 수십 번은 읽어본 판결이었습니다. 거기 어딘가에는 분명히 해당 학생들이 여호와의 증인이었다는 서술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본 판결 어디에도 그들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제 책의 오류가 드러나는 순간이라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기대 섞인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이 학생들은 누구일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일을 벌였던 것일까? 그래서 정규식 형제을 찾아 전화를 걸었고, 정 형제는 자신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근거자료인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1951-2001 : 김해중앙교회 50년의 발자취>를 저에게 보내주었습니다.

<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는 이 사건 당사자들 중의 한 명으로 훗날 브니엘 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박명순 선생님의 증언을 중심으로 사건의 진행경과를 차분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워낙 깔끔한 문체로 잘 정리되어 있어 별로 가감할 것이 없는 기록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유신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3년 9월 18일 김해여고에서는 영어를 가르치던 어느 선생님이 수업시간 중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대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도록 학생들에게 지시합니다. 아마도 자신의 충성심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그 수업을 받던 학생 한 명이 우상숭배를 할 수 없다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고, 학생과 영어 선생님 사이에는 심한 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사건은 곧 교내 전체에 알려지게 되지요. 마침 교련검열대회를 앞두고 예행연습이 한참이던 민감한 시기였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교련검열이 있다면 전국의 고등학생들은 거의 수업을 전폐하다시피하고 그 준비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런 민감한 시점을 맞아 전교생이 운동장 조회대 앞에서 교련검열대회를 위한 제식훈련을 하던 중에 이번에는 35명의 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함으로써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문제는 김해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합니다. 경례 거부로 적발된 35명의 학생들은 모두 김해지구 SFC에 소속된 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 측 학생들이었습니다. 마침 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김해여고 교장 선생님은 “내 목이 달아나나 너희들이 쫓겨나나 보자”며 노발대발합니다. 선생님들 중에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너희를 구해주는지 두고 보겠다”며 기독교를 비방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 분도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목사님 한 분이 다음 날 학교를 방문해 “교장 모가지가 얼마나 두꺼운지 보자”라는 식의 과격한 표현을 하는 바람에, 이 사건은 단순히 몇 학생들의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를 넘어 학교와 지역 기독교계 사이의 심각한 충돌로 비화됩니다.

이 사건은 국가 주도하에 한창 애국심을 고취하던 당시 분위기와 맞물려 전국 중요 일간지에 크게 보도되기까지 하지요. 이에 따라 학생들은 불온한 사상에 물든 공산주의자들이 아닌가 하는 사상적 의심까지 받게 됩니다. 교장 초임발령을 받고 의욕에 넘치던 50대 초반의 윤 모 교장과 선생님들은 적발된 학생들을 한 명씩 불러 회유와 협박을 계속합니다. 이를 견디지 못한 학생들 일부가 이탈하여 거부 학생수는 며칠 후 22명으로 줄어들게 되지요.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겠노라고 담임선생님과 약속한 어느 학생은 신앙 양심을 저버리고 친구들을 배신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국기경례 절대거부”라는 혈서를 써서 학교에 제출하기도 합니다. 학교 측의 대응도 갈수록 교활해져서, 학교 게시판에 ‘제적 공고’라는 제목으로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22명의 학생들 이름을 게시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해놓고 나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수용하겠다는 학생들이 나올 때마다 그 이름들을 한 명씩 지워나가기로 한 것이었지요. 교회를 다니지 않는 학부모들을 불러 자녀들이 부모님들 앞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등, 압박의 강도도 높여갑니다.

이런 엄청난 압력 앞에 노출된 사람들은 성인이 아니라 고등학교 1, 2, 3학년에 불과한 어린 학생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 엄청난 시련을 믿음으로 이겨나가기로 결심하고 학교가 끝나면 교회로 달려가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지요. 그러나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이런 압력을 이겨내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학생수는 곧 7명으로 줄어들게 되었고, 그 중 2학년이었던 김해중앙교회 출신 박복숙 학생이 브니엘 고등학교로 전학하게 되어 최종적으로는 6명만이 남게 됩니다. 박복숙 학생의 전학비용을 소속 교회에서 부담하기로 했던 것을 보면, 교회도 이 문제에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사건 발생 후 13일째인 1973년 10월 1일 학교 측은 교사의 지도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남아있던 학생들을 제적 처분합니다. 제적된 학생들은 류영화 (당시 3학년, 가락교회), 백순옥 (2, 대저제일교회), 이화영 (1, 대저제일교회), 문은미 (1, 대저제일교회), 김영혜 (1, 활천중앙교회) 박명순 (1, 조눌교회) 등이었습니다. 학부형과 김해지역 기독교 지도자들은 학교장을 찾아 제적처분을 다시 고려해 달라고 간청했으나 학교 측으로부터 이미 전교생에게 공고했고 언론에도 보도되었으므로 재고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듣게 되지요. 결국 제적학생들이 소속된 김해시찰과 부산노회, 고신총회는 이 사건을 수습하고자 특별처리위원회를 구성했고 부산지방법원에 제적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교회 차원을 넘어 교단 차원에서 이 사건에 대한 대응을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학교 측의 제적처분이 정당했다는 판결을 내리지요. 이 소식을 전해들은 부산 브니엘 고등학교에서 이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기로 하고 1973년 12월, 6명 제적생들의 입학을 허용해 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고신 총회에서는 이 사건을 놓고 두 가지 논의가 벌어졌습니다.

첫째는 국기에 대한 경례가 과연 제2계명에 위배되는 우상숭배인가 하는 논쟁이었고, 둘째는 이 학생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하는 논의였습니다. 박명순 선생님의 기억에 따르면, 첫 번째 문제는 ‘각자의 신앙양심에 맡긴다’는 애매모호한 방향으로 정리되었고, 두 번째 문제는 학생들의 복학을 위해 각계각층에 호소하는 쪽으로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들은 청와대의 육영수 여사를 직접 접촉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누구로부터도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지 못합니다. “학생들이 국기경례를 거부할 자유가 있듯이, 학교장은 교사의 지도에 불응하는 학생들을 퇴학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답변했던 육 여사는 목사님들의 방문을 받은 며칠 후 문세광에게 저격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신 교단 측은 각계각층에 호소하는 한편, 부산의 인권 변호사였던 김광일 씨를 선임하여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소송 진행도 계속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김해여고 측은 “만약 행정소송을 중단한다면, 해당 학생들이 현재 학적도 없이 브니엘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협박조의 타협안을 비공식 경로로 제시합니다. 고신 측은 이에 응하지 않고 소송을 계속했지요. 결국 김해여고 측은 브니엘 고등학교를 상대로, 전학서류도 없이 제적된 학생들을 받아들여 공부시키는 것은 불법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당시 브니엘고등학교의 교장이었던 박성기 목사는 헌법상 기본권인 교육을 받을 권리를 들어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지만, 역부족이었고 1974년 7월 학생들은 브니엘 고등학교에서도 퇴교당하고 맙니다. 사건 발생 3년 후 대법원에서도 학생들이 패소함으로써 이 사건은 법률적으로도 완전히 마무리되지요.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는 이 사건 당사자들 중 세 사람의 후일담만을 간결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3학년이었던 류영화 학생은 고신대학에 특례 입학하여 정주채 목사의 사모가 되었고, 1학년이었던 박명순은 검정고시로 부산대에 진학한 후 브니엘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으며, 이화영은 김해 양무리 교회 집사로 섬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기본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저는 먼저 제 책을 낸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지금 진행 중인 3쇄에 나의 실수를 고백하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출판사 측의 답변은 안타깝게도 막 인쇄가 끝냈기 때문에 몇 달 후 4쇄에서나 반영할 수 있겠다고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와 관계없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그 사건의 주인공이 여호와의 증인이든 예장 고신 측 학생들이든 종교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뭐가 다를 게 있냐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책을 당장 수정할 수 없게 되고 보니, 급한 대로 류영화, 박명순 두 분 자매님께라도 연락을 드려 먼저 사과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주채 목사님은 서울에서 잠실중앙교회라는 상당히 큰 규모의 교회를 담임하며 임기제 도입 등 개혁적 조치에 앞장서다가, 2000년 10월 용인 향상교회를 분리 개척한 것으로 유명한 분이라서 그 사모님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8월 말에 교회에 연락을 드렸을 때는 목사님과 사모님이 함께 해외여행 중이어서 연락이 좀 늦어졌지요. 박명순 선생님을 찾기 위해 브니엘 고등학교로 전화를 걸었지만, 선생님께서 이미 명예퇴직하신 후라서 연락이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9월 14일에야 두 분과의 연락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류영화 사모님과의 통화에서 저는 책을 쓰게 된 경위와 제가 범한 오류, 그리고 진실을 찾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드렸습니다. 류 사모님께서는 누군가가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진 것에 대해 무척 놀라시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범한 오류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려 친절하게 사건 내용을 이야기해 주셨지요. 제가 궁금했던 것은 그 당시에 고 3의 신분으로 불이익을 감수해 가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류 사모님은 “전혀 칭송받을만한 일이 아니었다.”면서 “저희는 그저 배운 대로 했을 뿐입니다.” 하는 말만 강조하셨습니다. 이야깃거리 될 것도 없다는 겸손한 태도였습니다. 6명의 학생 중 유일한 고 3이었던 류영화 사모님은 졸업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제적을 당했고, 불이익을 감수하며 브니엘 고등학교에서 다시 1년을 더 공부했지만 끝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교단 측의 특례 인정으로 고신대학교에 입학하여 남들과 똑같은 학부 4년 과정을 마치고도 마지막에는 고졸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정식 졸업장을 받지 못했지요. 서울로 올라온 다음에도 여러 번 공부를 더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학사 학위를 갖지 못한 상태라 제약이 너무 많았습니다. 만족스러운 사모 사역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는 듯 했습니다.

류 사모님께서 박명순 선생님이 부산 동부삼일교회에 출석하고 계신다고 알려주신 덕분에, 교회에 연락하여 박명순 선생님과도 연락이 닿았습니다. 박 선생님께서는 또렷한 목소리로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에 실린 내용들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다만 당시 고신 총회에서 진행된 논의에 대해서는 전은상 목사님께서 가장 잘 기억하고 계신데, 지금은 캐나다에 계시기 때문에 당장 여쭙기가 곤란하다고 아쉬워 하셨습니다. 고 3이었기 때문에 검정고시를 준비할 여유조차 없었던 류영화 사모님과 달리, 고 1이었던 박명순 선생님은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해여고 사건을 정리하고 관련자들과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뜨거운 감동을 느꼈습니다. 유신독재의 어두운 그늘이 내려진 가운데, 김해라고 하는 조그만 동네에서 일어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만큼 빨리 잊혀져서 이제는 그 사건이 여호와의 증인들 사건으로 잘못 알려져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상황이 되고 말았지요. 사람들이 이 사건을 여호와의 증인들 것으로 오해하도록 만드는데 일조한 저의 입장에서는 무척 부끄러운 ‘진실의 발견’이었지만, 이 사건의 내용은 그런 부담감을 덮어버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감동적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한 찬반 입장과 상관없이 이 이야기를 듣는 기독교인이라면 저와 같은 감동을 느끼리라 믿습니다. 주일에 사법시험을 치러 가면서도 별로 신앙양심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던 저 같은 사람도, 1924년 올림픽 대회에 참가해 “나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하고 자기 종목이 아닌 분야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획득했던 에릭 리델의 실화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김해여고 사건도 그와 같습니다. 신앙이 일종의 액세서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요즘 한국교회 분위기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신앙의 진지성을 발견한 기쁨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30여 년 전의 이 사건은 잔잔한 감동과 함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몇 가지 과제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우선 첫째로, 국기에 대한 경례는 과연 우상숭배인지 아닌지를 신학자들이 정리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가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논쟁이라도 벌여 신도들의 판단을 도와야 합니다. 박명순 선생님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고신 총회가 이에 대해 ‘개인의 신앙 양심에 맡긴다’는 결론만 내렸다면, 그건 사실상 목양을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신도들이 자기 신앙을 지키기 위해 결행한 일로 인해서 학교에서 제적되었고, 만약 그곳이 학교 아닌 군대였다면 항명죄로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각자의 신앙 양심에 맡긴다니요. 저는 신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지만, 초대교회 신도들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아마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초대교회 교인들이 로마제국으로부터 그처럼 심한 박해를 받은 이유에 대해서는 대체로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그들이 로마 황제에 대한 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주의 입장에서 병역을 거부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시각이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이 국가와 충돌하게 되는 경우는 모두 ‘국가가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할 때’입니다. 국가가 자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행위이고, 시민의 생명을 직접 빼앗거나(사형제도) 시민에게 다른 사람을 죽이라고 명하는 것(전쟁) 역시 ‘생명을 주기도 하고 거두어 가실 수도 있는 유일한 분’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행위입니다. 그런데도 기존의 주류 교단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 문제를 너무 소홀하게 취급해 왔습니다. 가정에서 드려지는 제사에 대해서 극단적인 저항을 했던 것과는 한참 다른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징적 행위에 불과하고 가족간의 우의를 돈독하게 하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제사가 우상숭배라면, ‘상징적 행위에 불과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국기에 대한 경례도 우상숭배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제사가 우상숭배가 아니라면, 국기에 대한 경례도 우상숭배일 수 없겠지요.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적어도 우리 교회가 최소한의 일관성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군사독재 정권이 물러가고 국가의 과도한 폭력이 완화되어 가는 지금 시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신학자들의 보다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둘째로, 국기에 대한 경례가 우상숭배인지 아닌지를 잠시 접어두고 나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로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비록 국기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로 생각하지 않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표시하는 형식적인 의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기독교인들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의 문제는 남게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신학의 영역이 아니라 법학의 영역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라는 두 개의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와도 구별됩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병역의무 위반이라는 중대한 실정법 위반행위를 낳기 때문에 형벌권의 발동이 어느 정도 정당화될 여지를 갖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그렇지 않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로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할만한 헌법적 가치를 찾기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계속하고 있을 뿐이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헌법상의 의무로 받아들이기도 어렵습니다. 법학자로서 저는 만약 김해여고 사건이 지금 다시 일어난다면 대법원에서든 헌법재판소에서든 분명히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는 판결이 나오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그 정도 종교의 자유도 보호해주지 못하는 나라는 이미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우리나라 기독교가 가진 다양한 전통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에서 자라나 통합 측 교회를 다니고 있는 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전통인 고신 측의 신앙에 대해서 배워볼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린시절을 고신 측 교회에서 보내셨고 사촌들 대부분을 비롯한 일가가 여전히 그 교단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신사참배 거부 역사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 주일 날 뭘 사먹으면 배탈 나는 줄 아는 사람들, 율법적인 전통이 강한 사람들’ 정도로만 생각해 온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고신 측 전통이 그렇게 쉽게 무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 편 ‘신사참배 찬성 결의라는 아픈 상처를 간직한 교단일수록 애국심을 더 강조하고 태극기와 애국가를 앞세우는 등 수선을 떠는 게 아닌가’ 하는 혼자만의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젊은이들이라면 기회가 되는 대로 다른 교단들의 좋은 전통을 따로 공부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친일파들을 색출하는 식의 역사 바로 세우기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기 생명을 바쳤던 보수 기독교인들의 긍정적인 유산을 적극적으로 찾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한 ‘신화적’ 인물들과 출옥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반대편에 서 있던 신사참배 찬성파들이 그 분들을 어떻게 대접했는지 차근차근 공부해 가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같은 상황이 닥쳐왔을 때 한국 교회가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지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공부는 단순한 과거사 찾기가 아니라 잘못된 미래를 막기 위한 예방 효과를 갖습니다.

넷째로, 다른 사람들의 신념을 우리가 어떻게 존중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기독교 사학 대광고등학교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어떻습니까. 예수 믿지 않는 학생이 일방적으로 기독교 학교에 배정을 받아, 종교 교육을 거부하고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젊은 친구에 대해서 “기독교 선교를 위해 기독교의 돈으로 세워진 학교에서 학생 교육도 마음대로 못한다니 말이 되느냐? 기독교 교육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행동”이라며 배척하고 불관용 입장을 고수하는 것만으로 과연 충분할까요. 종교계 학교로부터 학생선택권을 빼앗은 교육당국의 책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면책될 수는 없습니다. 한 번 그 학생의 입장에 서 보십시오. 애국심에 불타는 선생님들에 맞서 신앙 양심을 지키고자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김해여고 학생들과 이 남학생의 차이는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이 중요한 만큼, 그의 무신론적 신념도 중요합니다. 더 늦기 전에 기독교 학교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학생 선발권과 평준화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작업을 시작하는 한편, 억지로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대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님의 황금 같은 가르침을 실천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저의 오류를 지적해 준 정규식 형제님과, 전화통화에 친절히 응해 주신 류영화 사모님, 박명순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급하게 정리한 내용이라 여러 모로 거친 표현이 많습니다. 앞으로 이 사건에 대해 교계의 심도 있는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김두식 (한동대 법학부 교수)

http://www.goscon.co.kr/bbs/list.html?table=bbs_44&idxno=54653&page=1&total=341&sc_area=&sc_word= 원출처




치마를 벗고 정조를 스스로 내주는
오늘의 사태에 대한 정확한 원인 진단이 되어야 한다...

[7/7] 눈팅1 IP 121.254.16.x 작성일 2009년1월11일 09시49분
제가 써프에 자주 들어와 글을 읽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님의 글 때문입니다. 항상 새로운 자료 첨가해서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항상 그 노고와 정성에 감사드리며....

귀하가 서프라이즈에 올리는 기독교 신사참배 문제와 여러 목사들의 죄악상에 대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마 서프에서 귀하가 올린 글만 수십차례(우연히 클릭)해서 읽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님이 이상한 글을 올리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정독한 결과 내게 유익을 주었습니다. 나는 교인인데 평소에 교회의 죄악상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고 신사참배 건도 문제가 있는 것만 피상적으로 알았지, 귀하가 올린 내용처럼 그렇게 파렴치하고 인간쓰레기 백정짓이 해방 후에 자행됐는지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분노하였습니다.

나는 귀하의 글 애독자가 되었는데 서프에 들어와서 귀하의 글을 어떻게 찾냐면 자극적인(?) 제목을 우연히 클릭하면 귀하의 반가운 글이 있고, 예전에는 귀하가 ★▶ 이런 찐한 별표, 화살표 문양을 제목에 넣어서 제가 얼른 알아차리고 클릭해서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서프에 와서도 시간을 많이 쓸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 글이나 읽을 시간이 없어서 귀하의 글을 찾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하여튼 앞으로도 잘 읽겠습니다. 부디 귀하의 글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아직 귀하가 링크한 파일은 바이러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클릭해서 다운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내 조심성이니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어떤 경건한 개혁목사이자 신학자는 당시의 썩어빠진 사이비 목사들을 향해 "잡종 성직자" "우상의 목자" "바벨을 사랑하는 자"라고 격하게 비판하였더군요. 나는 이 말이 오늘의 많은 사이비 목사들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진실하게 믿어보고 이웃을 위해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부족한 저에게는 한국교회의 과거 어두운 역사와 현재 많은 목사들의 더러운 행태를 알려주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인간적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군요. 그럼...


아래가 어느 분이 여러해전 "성경 다음으로 보관 하겠습니다!!"라고 댓글을 올린 글

치마를 벗고◆정조를 스스로 내주는


수치의 순간

◆강조점들을 컬러처리하여 기억하기에 좋게 만들었사오니 저장해 두시어 여기저기 게시판들에 푸기 등 많은 이용바랍니다. 서문은 맨뒤로 옮겼습니다.


일본에 가서 신사참배를 한 조선교회 교역자 대표들(1943년)

숫처녀가★갈보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쫓겨났습메
한국교회는 이 공적인 불경건 죄에 대하여 아직까지도 교단적으로 회개를 한적이 없다.

열왕기하 4 : 26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이렇게 속이지 말자는 겁니다)

1938년 평양에서 열린 조선장로교 총회가 일본 우상에 절하는 것에 찬성을 가결하였는데 여기에 맹렬히 반대한 소수의 목사님들이 있었다. 널리 알려진 평양의 주기철 목사(1897-1944, 경남)는 양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조직적인 반대운동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경남출신인 한상동 목사(1901-1976)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 맹렬히 반대운동을 벌이고 다녔다

한상동 목사(평신, 고려파 총수, 고신대학장)
그리고 만주에서는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메이쳔파 선교사인 한부선 선교사(1903-1992년, 나중 고려파에 가담)가 반대운동을 주도하다가 2차대전 발발후 귀국보다는 감옥행을 택하였다가 나중 포로교환 때 미국으로 강제송환되었다.


▲고려신학교는 신사참배에 항거하던 지도자 주남선 목사, 한상동 목사 등 옥중 교인들의 특별기도회의 결과 1946년 9월 20일 개교했다. 고려학교를 설립한 후 앞줄 왼쪽부터 한부선, 주남선, 박윤선, 한상동. ⓒKPM

이러한 반대운동을 하고 다닌 목사, 전도사들의 숫자는 많지는 않다. 현재 충현교회 원로 목사인 김창인 목사의 경우는 반대하다가 만주로 도망을 가서 신앙적인 정조는 지킨 셈이다. 신학교는 1950년대 말에 가서 부산의 고려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런데 성경에 말하고 있는 바는 목사는 당연히 이러한 것에 대하여 경고하고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에스겔 3 :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에스겔 3 : 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일본우상에 절하는 것에 반대운동을 하다가 옥중에서 순교한 순교자의 수는 약 50명이고 고문과 옥중기아와 추위(영하 40도)를 견디어내고 출옥한 성도들의 숫자는 20여명이다. 그래서 이들을 “옥중성도(獄中聖徒)” 혹은 “출옥성도(出獄聖徒)”라고 부른다.

출옥성도중 주요인물은 한상동 목사(1901-1976, 사진에서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손양원 목사(1902-1950), 주남선 목사(1893-1950), 이인재 목사(1908-1999, 미국), 조수옥 권사(2001년 현재도 마산에 생존, 사진에서 뒷줄 맨왼쪽) 등이다.



출옥성도들, 유명한 사진인데 구하기 힘든 고화질 저장바람
(8.15 해방과 함께 출옥한 옥중 성도들이 평양의 주기철 목사 사택에 모인다.)

해방이 되자 일본우상에 절한 목사들은 면목을 잃게 되었고 감옥에서 나온 옥중성도들은 배도한 한국교회에 대하여 회개를 촉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2천명 정도 되는 장로교 목사들은 자신들의 생명줄을 끊는 것으로 여겼으므로 이에 대하여 반발하고 저항을 하게 되었다. 출옥성도들이 제출한 회개법안이란 것은 단 2개월의 자숙기간을 갖자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반발 한 것이다. 만주로부터 귀국한 평신교수였던 박형룡 박사(1897-1978, 프린스턴 졸업, 평신, 고신초대교장, 총신 교수 역임)가 수양회 도중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자 다음날부터 강사자격을 박탈한 것은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박형룡 박사(1897-1978, 프린스턴, 평신교수, 고신교장, 총신교수)
해방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친일파 경찰들에 의해 습격되어 구타 고문 당한 후 해산된 것같은 현상이 한국교회 내에서 벌어진 것이다.

독일에서는 나치에 협력한 대부분의 목사들이 3년동안 목회를 못하고 그 동안에 지하에 있던 목사들이 교회를 주도하였다.

그런데 한국교회 대부분의 아마도 99.9%가 넘는 양떼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르고 있다. 아예 관심도 없다는 편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50대의 목사들조차도 자세한 얘기는 거의 모른다. 아니, 아예 관심 대상조차도 아닌 것이다. 여기에 역사의식(歷史意識)의 결여(缺如)를 볼 수 있고 이와 유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가 있는 것이다.

1951년에 6.25중 부산에서 장로교총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배도한 목사들이 출옥성도들을 여지없이 제명해 버렸다. 그리고 시무중인 예배당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다. 말하자면 요새 어느 토론장에 어떤 분이 “■나성한인교회 속보” 하고 올려놓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예배당 쟁탈전”이 벌어질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출옥성도중의 중심인물이었던 한상동 목사는 저항을 하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대부분의 성도들 약 4백명과 예배당을 내주고 나와 맨땅 위에서 비가 오는 가운데 예배를 드렸다. 이때 초량교회를 접수한 목사가 년전에 세상을 뜬 1958년에 장로교 총회장을 한 노진현목사이다. 당시 초량교회에 남아서 예배당을 차지한 교인들 수는 구영기 목사, 양성봉장로 등 20명 정도이다.

위에서 구영기 목사는 예배당을 내주고 나온 대부분의 교인들로부터, 스스로 말하기를, 인간취급을 못 받았고 경남지사로 이승만 박사의 총애를 받던 양성봉 장로는 훗날 60년대에 세상을 뜰 때 당시의 잘못을 회개(悔改)하고 한상동 목사를 불러다 기도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예배당 탈취한 당시 장로교 총회쪽에서 생각하듯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출옥성도는 내주고 나왔으나 그를 지지하는 교인들의 교회는 그렇게 탈취가 용이하지 않았다. 피땀 흘려 세운 예배당을 쉽게 내주리라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약신 목사(1952년 고려파 1대 총노회장, 이효재 교수 부친)등이 시무하던 교회 등은 탈취할 틈새가 없어서 탈취를 못하였다.

그리하여 총회측(당시에는 합동과 통합측이 나뉘기 전)에서는 법정에 소송을 걸게 되었다. 그리고 총회적으로 지원을 하게 되었다.

성경에 교회 내의 문제를 세상법정에 고소할 것을 금지하는 유명(有名)한 구절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고린도전서 6 : 1-7

너희 중에 누가 다른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위 총회측의 “법정 고소”에 대하여 “응소”한 분이 1930년대 한국교회에서 주초문제 등 절제운동을 하기도 한 절제운동가 송상석 목사(1897-1978)이다. 그래서 장장 10여년 세월에 걸쳐서 대법원에까지 올라가는 법정 공방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송상석 목사(1896-1980, 고신의 행정지도자, 속칭 ‘부곡사단’ 총수)
총회측에서 출옥성도측을 고소한 이유는

☆ 재산이 탐나고 또 교인 이탈을 막고자 하는 점도 있었겠지만 다음과 속셈이 있었다.

☆ 즉 “출옥성도라는 사람들이 뭘 세상 재산에 관심을 갖느냐?”는 식으로 망신을 주고자 하는 비열한 계산.

☆ 또 고소한 인간보다는 고소를 당하는 쪽이 시달린다는 것을 이용하고자 아는 속셈과

☆ 고려파 내부를 흔들어 놓고자 하는 교활한 착상.

아닌 게 아니라 우선 고려파 내부에서 논란이 심하게 일게 되었다. 즉 박윤선 교수가 응소를 극력 반대하여 송상석 목사와 논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박윤선 교수(1905-1988, 평북 철산, 고신교장, 총신교장, 합신교장)
박윤선 교수는 앞서의 ‘고린도 전서 6장’을 들어 여기에 위배가 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덕이 되지 않는다고 반대하였고 이에 항거하는 송상석 목사의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 고소한 게 아니라 불가피하게 응소한 것이다.

* 위 구절은 같은 형제간의 문제이다. 갈려져서 서로 “치리기관”이 다르니 총회측과 고려파측이 서로 잘못이 있을 때 내부적인 치리를 할 수 없으므로 해당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송상석 목사의 10여년에 걸친 세월 동안의 항거는 실로 놀라운 바가 있었다.

그런데 1960년 합동측과 통합측이 갈릴 때 합동측 목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과거 출옥성도들을 쫓아낸 것을 사과하고 하나가 되자 했을 때 거절하면 교만하다고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한국 보수신앙의 위기였기 때문에 출옥성도 한상동 목사를 총회장으로 내세우고 합동하게 되었다. 이때 합동총회의 사회를 본 분이 바로 송상석 목사이다.


http://kcm.co.kr/korchur/chpic/1960-2.gif

사진설명:
(NAE운동을 지지하는 장로교는 고려파 교회와 합동하여 1960년 승동교회에서 합동총회를 개최하여 소위 예장 합동이 형성되었다. 맨앞줄 가운데 분이 출옥성도 한상동 목사이다. 그리고 맨 오른쪽 분 뒤에 분이 박형룡 교수이다. 1947년 고려신학교(교장)에서 나온 것을 몹시 후회하고 돌아가시기 전에 한국교회 개혁에 관한 한상동 목사의 견해가 옳았다고 하였다.)

그 이후 총회장을 한상동 목사가 연임했으니 처음 약속과 달리 숫적 우세를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나가므로 부득이 다시 분리하게 되었다. 이것이 유명한 한상동 목사의 1962년 ‘복교선언’이다. 이때 경남노회 소속의 고신측 교회는 송상석 목사의 탁월한 행정력에 힘입어 거의 다 환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로 이북출신의 목사님들로서 고려파에 가담했던 분들은 환원하지 않고 합동측 교단에 잔류하게 되었다. 주요한 분들은 나중에 1980년대에 합동측의 총회장을 역임한 세사람 김창인, 최훈, 김현중 목사(2001년 소천)등이다. 이 세사람은 모두 신학교는 1950년대에 고려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러면 그 대법원까지 올라간 “예배당 양도 소송”의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1965년 판결은 “예배당은 교인의 총유”라는 것이다.

그런데 응소한 처음 당시에는 송상석 목사의 교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응소항전이 계속 되는 과정에서 너무나 고통스러운 고로(출옥성도 지지측이 예배를 못 드리게 막거나 시간을 갈라서 예배를 보게된 일) 많은 교인들이 여러 교회를 만들어 나가거나 이웃 다른 교파의 교회로 옮기거나 하게 되었다. 이북에서 내려온 교인들 알박기 등 그래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결국은 숫자가 적으므로 예배당은 통합측에 내주고 교육관으로 물러서게 되었다.

이 와중에 응소에 반대하는 박윤선 교수는 고려파 탈퇴선언을 하기도 하였다.



3. 결언

위같은 이러한 대법원까지 올라가 판결이 난후 교회간에 분쟁이 있을 때 처리는 쉬워지게 되었다. 즉 송상석 목사의 소신이 법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나중에 심판하실 것인가? 여러분들이라면 여러분들의 교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불신자들은 앞으로 교회에 다니게 되어 이런 일이 벌어진 다면 어떡할 것인가?

* 고소를 한 총회측 목사들이 잘한 것인지?
* 응소한 송상석 목사도 잘 한 것인지?
* 예배당을 서슴없이 내주고 나온 한상동 목사가 잘 한 것인지?

한상동 목사가 잘했고 송상석 목사 박윤선 목사도 각각 잘 한 것인가?
대법원에까지 가서 예배당 탈취에 성공한 총회측 목사들이 “승리(勝利)의 기쁨”을 누렸으니 신나는 일인가?

예배당을 서슴없이 내주고 나온 한상동 목사의 경우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목사의 처신은 교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라인홀드 니버가 지적한 바 있지만 ▼“사람이 패거리를 이루어 환장을 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게시판에 들르는 여러분들은 각별히 이 점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예배당 탈취하고 천당 안가기로 작정한 다음이 아닌 다음에야 그리고 회개는 심리적인 카타르시스에 불과한 게 아닌 다음에야 기독신문 주필인 한명수 목사의 다음 말을 빌어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한경직 목사님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한 목사님께서 63빌딩에서 템플턴상을 수상하실 때, 신사참배에 대해 자숙한다고 해서 상당히 그 자리가 엄숙해졌던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투옥되고 순교한 사람들 앞에 해야할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멘~~~~~~~~~~~~~~▶




사진첨부 추악한 한국장로교회사
내일의 교훈

사진 & 추악한 한국장로교사


『종교는 공적 영역에서 거론되지 않는 것이 좋다는 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정만석 간사--(맨 뒤 추가 설명)


●한국장로교의 추악한 역사를 밝힌다●

* 성경에 더러운 얘기는 감추고 기술이 안되어 있습니까? 아니지요! 다 모두 기술했지요. 그러한 추악한 얘기들을 왜 읽습니까? 후세에 교훈을 삼았지요! 과거에 눈감으면 현재에도 봉사가 됩니다. 내일은 오늘의 미래입니다. 오늘 바로잡지 아니하면 밝은 내일은 없습니다.

* 다른 교파들은 더 했으면 더해서 아예 바르게 살아보자는 분들이 없었을 정도였으니 오해는 마십시오.

* 이런 얘기를 쓰는 것은 아직도 장로교 각교단들이 교단적으로 회개 선언을 안했기 때문입니다. 개별적으로 뜻있는 분들이 선언한 것은 있습니다.(●부록1) 맨뒤에 붙입니다. 회개할 때까지 회개를 촉구하는 게 성경적이며 이제 사회가 교회를 개혁시켜야 할 때입니다.(●부록2) 건전한 상식부텀 회복하라고 말입니다.

열왕기하 4 : 26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이렇게 속이지 말자는 겁니다)


RE;[질문]합동.통합.... : 아주 자세한 설명 1

* 계속 주요 내용을 추가 개정하고 있으니 참고 하실 분은 다운로드 해놓으시면 좋습니다. 성경공부 백번 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가치가 훨씬 더 있습니다.


맑은 새벽입니다. 안녕하세요.
이곳의 글을 읽다가 보니 기독교에 '합동' , '통합' 등이 있다고 하는데 이건 장로교나 침례교와같은 교파를 말하는 건가요? 그럼 미국이나 외국에도 합동파, 통합파등이 있나요?

기독교에도 종류가 많은것 같아 헷갈리네요? 잘 알고 있는 분 계시면 간단한 설명 부탁합니다.

안녕히...

[ 김 형석 : ]


자세한 설명: 우선 쓴 것을 올리고 몇시간후 나머지 부분들을 올리겠습니다. 우선 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장로교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에서는 주도적인 교파로 전개신교인의 70% 정도를 점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242개 장로교 교단들이 있습니다.

해방전까지는 장로교파는 한 개였습니다. 미국북장로교 호주장로교 등 여러나라 장로교선교부에서 왔지만 협력하여 전도했기 때문에 교파는 하나였고 신학교도 1908년에 설립된 평양신학교로 하나였습니다.


http://kcm.co.kr/korchur/chpic/1908-3.gif
(평양에 설립 (1901)된 장로회신학교는 이후 한국 장로교회 신학자와 목회자 양성의 요람이 되었다. 사진은 1908년에 건축된 초기 교사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장로교가 1938년도에 교단적으로 신사참배를 결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의 전목사가 신사에 참배를 하고 그 이후 예배당안의 강대상 전면에 일본 우상신을 설치하고 거기에다 먼저 절하고 예배를 드리는 끔찍한 일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들은 악질목사들의 주도로 일본중이 주는 ‘미소기 바라이’라는 세례의식을 한강이나 혹은 추운겨울에 바다에 나가 완전 나체로 받았던 것입니다.


다른 감리교파나 성결교, 카토릭은 등은 자발적으로 신사참배에 나섰기 때문에 뭐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 속된 말로 “알아서 긴” 것입니다.


http://kcm.co.kr/korchur/chpic/1943.gif
(일본에 가선 신사참배를 한 조선교회 교역자 대표들(1943년))

가장 강력히 저항한 교파가 장로교파였는데 그 저항을 한 목사님은 약 천명 가까운 평양신학교 졸업생인 목사들중 겨우 20여분이었습니다.

이분들이 다수가 감옥에서 순교하고 일부가 살아서 해방후 출옥하였는데 이들을 “옥중성도” 혹은 “출옥성도(出獄聖徒)”라 부릅니다. 약 20여 분이었는데 그 중에는 전도사였던 분도 있고 여전도사도 몇분 있었습니다. 5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계신 분이 두어분 됩니다. 한국 교인들은 이분들을 이름을 아는 분이 0.01%나 제대로 될까요? 놀랍지요! 영양실조 기아로 여러분들이 줄줄이 순교하셨는데...

출옥성도중 주요인물은 한상동 목사(1901-1976, 사진에서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손양원 목사(1902-1950), 주남선 목사(1893-1950), 이인재 목사(1908-1999, 미국), 조수옥 권사(2001년 현재도 마산에 생존, 사진에서 뒷줄 맨왼쪽) 등이다.


http://kcm.co.kr/korchur/chpic/1945.gif
(8.15 해방과 함께 출옥한 옥중 성도들, 평양)
-위 쪽에 더 고화질로 나와 생략-

해방후 신사참배에 나섰던 목사들은 참으로 면목이 없게 되었는데 나치에 협력했던 도이치 기독교단에 소속되었던 독일의 목사들은 종전후 3년간 목회를 안하고 자숙을 하고 그동안 나치치하에서 지하교회로 있었던 고백교회 목사님들이 교회를 주도하였습니다.

여기에 비하여 일제에 아부하려고 신사참배에 자발적으로 앞장서고, 신사참배를 거절하는 혹은 반대운동을 하는 성도들을 일경에 밀고하여 끔찍한 고문을 받게한 목사들이 속을 못차리고 교권을 다시 장악하려고 하였고 또 많은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것을 지지하여 주었으니 문제였습니다. 요사이 김홍도 목사 사건 때 교계지도자들이 한결같이 김목사를 지지하는 걸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겁니다. 기득권 즉 밥그릇을 놓칠까 바 혈안이 되어 그러는 겁니다.

출옥성도들이 회개안을 제출하고 단2개월간의 자숙기간을 갖자고 하였는데 이것조차도 거부하고 1951년 그 출옥성도들을 교회밖으로 축출하여버렸습니다. 그래서 고려신학파가 생긴 것입니다. 이 출옥성도들은 경남출신들이 많아 신학교도 부산에 있는데 고려신학대학이 그것입니다.


(만주 봉천신학교에 있던 박형룡교수를 교장으로 하여 1947년 부산에서 고려신학교가 설립되어 고려파운동이 본격화되었다.)

그후 그들이 시무중인 예배당을 소송을 걸어서 빼앗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물론 출옥성도들은 두말 않고 내주고 나왔습니다. 이 교회당을 피땀흘려 가꿔온 많은 성도들은 자신들의 예배당을 버리고 빈손으로 출옥성도들을 따라 나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것에 분개하여 출옥성도들을 지지하는 교회들이 있었는데 친일파목사들의 총회에서 소송을 걸어서 10년간에 걸쳐서 필사적으로 항거하는 것을 제치고 예배당을 탈취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항거한 분을 지지하는 성도가 대다수였으나 그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운고로 제2문창교회, 동광교회등 새교회를 세워 나기도 하고 다른교회로 옮기거나 하여 예배당은 결국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고신측 송상석목사의 소신대로 “교회건물은 교인의 총유”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러한 판례가 있기 때문에 이제는 교회분쟁시 문제가 없습니다. 숫자적으로 우세한 측이 처음부터 소유권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식으로라면 맨처음 예배당을 서슴없이 내주고 나온 교회는 출옥성도를 따라서 그 교회를 나온 교인이 90%가 넘었으므로 그 예배당은 출옥성도측 교인들의 것인셈입니다.

그런데 세계교회협의회가 이차대전후 결성 되었는데 여기에는 공산주의자도 참여하고 노선이 불분명하고 불교 마호멧교와도 짬뽕을 하려고 논의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48년인가 장로교가 아직 하나일 때 몇몇 정치목사들이 가서 무조건 가입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일반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한국장로교는 WCC 소속이 된 겁니다. 여기에 옥중성도측은 처음부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1952년에는 국회에서 감리교목사이자 독립투사인 국회의원 이규갑(1887-1970, 충무공 이순신 9대손, 사모인 이애라도 독립투사)외 22명의 기독교인 국회의원이 WCC를 용공이라고 성명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럴만도 한 것이 전선에서는 공산군과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장로교대표들은 방콕에서 열리는 WCC 총회에 공산당들과 같이 참석했거든요. 그리고 6.25 때도 공산군이 서울에 진주하자 지금도 살아 있는 모모 목사가 대표들로 나서는둥 수백명의 기독교 인사들이 YMCA회관인가에 모여서 소위 “인민군환영대회”를 “김일성 장군... 운운” 하며 열었습니다.

그런데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를 반대한 장로교총회측에서 김재준이 자유주의신학을 가르쳐 그에 반대하는 학생들 수십명이 총회에 진정서를 내기도 하고 항의 했는데 그러다가 마침내 1952년 자유주의자들이 분리되어 기독교장로회 즉 기장교단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합니다. 여기에는 우두머리들이 주로 자유주의적인 캐나다 선교부가 맡아 선교한 함경도 출신들이 많습니다. 김재준 강원룡 조향록 등...

그때 김재준의 자유신학에 51명의 학생이 항거하였는데 일제말 설립된 조선신학교 학생 34명이 고려신학교로 전학을 했습니다. 전학의 이유는 평양신학교 교수였던 프린스턴신학교가 1929년 좌경화 되기 전에 유학을 다녀온 박형룡박사가 만주의 봉천신학원으로부터 귀국하여 고려신학교로 부임하기로 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34명의 학생들 주요한 인물은 지금도 교계원로로 활동하고 있는 정규오, 김준곤, 박창환, 신복윤 등등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총회안에서는 50년대에 NAE라는 보수적인 복음주의동지회측에서 세력이 매우 컷습니다.. 그당시 총회장은 명신홍(일제말 칼빈신학교유학, 나중 합동), 한경직(친일경력), 전필순(친일행각으로 반민특위에까지 체포된 자) 목사 등이 하고 있었습니다.

위 기장을 포함한 당시 총회측 목사들은 신사참배는 회개를 하기보다는 1938년의 총회에서 신사참배 가결한 결의를 취소해 버렸습니다. 즉 원인무효시켰는데... 그리고 신사참배를 안했다면 취소가 가능합니다. 다 신사참배 하고서 회개를 안하고 가결시킨 옛날 것만 취소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것도 여러번에 걸쳐서 취소하고 또 취소하고 그랬습니다. 장난도 아니고 이거...

그런데 신사참배 회개를 거부한 자들이 무슨 보수 자유를 따지는 게 의미가 별로 있었는지 서로 긴장관계에 있었는데... NAE 측의 우두머리가 지금 ‘합동’에서 나온 ‘개혁’의 정규오목사입니다. 그리고 그 고문이 박형룡박사입니다. 박박사(평북)는 1897년생으로 미국 프린스턴신학교가 좌경화되기 직전에 졸업하고 평양신학교에서 1920년대부터 신학교육을 시작한 당시 최고 교수였습니다.

이 박형룡박사가 1947년 중반 고려신학교 초대교장으로 있다가 외국선교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신학교의 위치가 부산인 점 그런 것 때문에 서울로 가버리고 서울에서 전학온 34명 학생 전원은 박형룡박사를 따라 서울로 가서 불과 두어달 후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부실한 거지요.

박형룡박사도 해방후, 평북, 전주 집회 등에서 수차에 걸쳐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였으나 그때마다 목사들이 들고 일어나 반발하고 집회강사를 못하도록까지 저항하는 고로 회개 보다는 후진양성에 주력하자고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1978년경 세상 뜨실 때 출옥성도인 한상동 목사님의 말대로 “회개를 우선하도록 하는 것이 옳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WCC를 찬성하는 우두머리가 한경직 목사(1902-2000, 평북, 숭전, 좌경무렵의 프린스턴졸)이고 WCC 즉 에큐메니칼운동을 반대하는 측의 우두머리는 박형룡박사였습니다. 이 두사람이 직접 치열하게 싸운 것은 아니고 그 아래사람들이 붙어서 싸운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1958년경 신학교부지를 구입하려는데 박박사가 외국선교부의 원조금 3,000만환을 박호근이라는 사기꾼에게 속아 날려버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WCC 찬성측에서는 “이때다!” 하고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한편 정규오목사(해방후 신학교 1회 졸업생)를 우두머리로 한 NAE측에서는 자신들의 고문이자 스승인 박형룡박사를 보호하기 위해 WCC 찬성측을 뒤늦게 용공으로 맹렬히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경기노회에서 총회에 보낼 총대를 뽑는데 이때 NAE측 목사들이 총대로 많이 뽑혔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발표했는데 그만 WCC측 한명이 누락되었습니다. 자기네들이 유리하게 뽑혔으므로 그 자리에서 다시 발표하면 될 것인데 그냥 넘어가서 이게 나중에 싸움이 붙어 걷잡을 수 없이 싸움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WCC에 찬성하는 파들(통합)은 저들끼리 따로 모여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된 바도 있었던 친일파 전필순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선교부들의 원조 등 때문에 목사들이 많이 쏠렸을 거는 당연합니다. 당시엔 태반의 사람들에겐 미국이 천당 가는 거였으니깐요. 기독교 학교 등 재산 등은 통합으로 남았지요. 평신도들은 합동측이 많았었다고 합니다.

한편 위기에 몰린 NAE측 목사들은 박형룡박사와 자기들도 한패가 되어 내쫓은 출옥성도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과거에 총회에서 축출한 것을 사과하고 하나로 합칠 것을 제의하게 되었습니다.

출옥성도측에서는 자신들을 교회밖으로 축출하고 예배당까지 탈취한 과거를 생각하면 그리 쉽게 화해 할 일은 아니지만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는데 거절하면 교만하다는 비난을 모면키도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고 한편 위기에 몰린 한국보수신학을 살려야 할 필요성이 요구되게 되었습니다.

http://kcm.co.kr/korchur/chpic/1960-2.gif

사진설명:
(NAE운동을 지지하는 장로교는 촐옥성도측 즉 고려파 교회와 합동하여 1960년 승동교회에서 합동총회를 개최하여 소위 예장 합동이 형성되었다. 맨앞줄 가운데 분이 출옥성도 한상동 목사이다. 그리고 맨 오른쪽 분 뒤에 분이 박형룡 교수이다. 1947년 고려신학교(교장)에서 나온 것을 몹시 후회하고 돌아가시기 전에 “한국교회 개혁에 관한 한상동 목사의 견해가 옳았다”고 하였다.)

---얘기가 점점 흥미 진진하게 전개 되는데...

NAE측과 고려측이 합하는 과정, 다시 분리하는 과정, 그후 전개 되는 상황, 그리고 1979년부터 시작된 합동측이 수십개로 분리되는 과정을 기술하자면 도저히 한두번에 끝내기는 힘들고 앞으로도 여러번 나누어 계속해야 할 것같습니다. 오늘은 이걸로 그치고 내일부터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나중에 위의 것을 다시 보충 정리하고 맨나중에 최후로 정리하여 한번에 시리즈로 올리겠습니다. 다운로드하여 참고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kcm.co.kr/korchur/chpic/1960-3.gif
(자유당선교위원회가 마련한 오찬에 참석한 교계지도자들(1960.2.18). 지금도 알만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위 내용은 많은 교회사 책들을 참고로 하고 여기저기 오랜기간 읽은 것들을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구두로 여기저기서 전해들은 것도 합했습니다. 자세히 쓴 교회사책이라도 한두권만 읽어서는 위같이 객관적 종합적으로 기술된 것을 찾기는 힘들것입니다.




위글을 가져오게 된 성경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열왕기하 4 : 26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이렇게 속이지 말자는 겁니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이라는 게 물질입니까?)

에스겔 34:10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현실과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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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가 당하고도 말못하는 충격사연 심층취재**
사진첨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성폭행 당하고도 신고하는 율이 2% 정도밖에 안된다고 언론들에 보도된 바가 있다. 법정에 서는 것조차 수치스런 일이지만 그 재판 진행과정에서... 한국의 성폭행은 세계 1위라고 한다. 얼마나 썩은 나라인지 미국은 인구 10만명당 몸파는 여자가 23명인데 우리나라는 몸파는 여자가 무려 1백만명이 넘는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몇 cm를... 몇분동안...” 하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 게 진행된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잡아 죽일 것같지만... 재판정에서서 호소하렵니까? 그렇게 “몇 cm를... 몇분동안...” 재판관에 호소하렵니까?

한국의 여성단체에 신고되는 여신도 성폭행 숫자는 엄청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단 1년만에 47건이 신고되었는데 실제 100배에 이르고... 교회의 특성상 모호하게 진행되는 점도 많고... 그런점을 감안하면 성가대원 50명 성폭행등 헤아릴수 없이 많이 여신도들이 교역자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근데 위와같이 당하고도 말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근래 모교수가 쓴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이란 책이 있다. 본문과 현장사이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현재 한국교회 실정과 교단간 눈치보기 때문에 얼마나 솔직하게 쓰여있나 의심스러웠는데 예상보단 신랄하게 쓰여 있다. 그래서 통합측과 한신대 즉 이른바 진보(내지는 자유)와 그 아류교단의 과거사를 상당부분 노출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먹사가 신사참배에 항거운동을 하는 성도들을 밀고하여 죽도록 고문 당하게 만들었고 어느 먹사가 주기철 목사의 노모 등 가족을 목사관에서 끌어내어 탈취했느냐는 등은 언급이 안되어 있다. 이름을 밝히지 못했음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이자들이 해방후 한국교회를 주름 잡았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최고 지도자로 행세하며 존경을 받고 있는데...

위 책의 점수를 매긴다면 한 70점이나 될까? 위 책에 비하여 성결교 소속의 이선교 목사님이 쓴 “다시 써야 할 한국교회사”는 신랄하게 까발긴 점으로 보아 한 80점은 된다. 하기야 이선교 목사님은 한경직 목사를 검찰청에 반란방조혐의로 고발하여 신문에 보도되고 한동안 그것 때문에 지하언론이 무성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위 두책이 최초라 할만치 전반적으로 한국교회의 친일 친독재문제 그리고 그에 따른 부정 사기 협잡들을 노출시킨 점에서 훌륭한 책이라고 할 것이다. 예상보단 불과 몇 개월 사이에 4판까지 나온 것을 보아 그것도 반가운 일이고.


통합측이나 한신측 그리고 합동측에서 사이비 교회사가들이 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들이 있다.

“(출옥성도 성자란자들이) 예배당 쟁탈전을 벌였다...” 즉 자세한 서술도 없이 무조건 소위 성자들이 세상 재산에 탐이 나서 혈안이 된 인간들이라고 하는식으로 매도한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출옥성도측에서 나온 책에는 이 부분이 거의 누락되어 있다. 이 문제는 좀 긴 설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출옥성도들은 물론 대부분의 교인들과 두말없이 피땀흘려 가꾼 교회를 내주고 나와 맨땅위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출옥성도들을 지지하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예배당을 내놓으라고 총회측(통합과 합동이 분리되기 전)에서 소송을 걸자 그걸 항거하는 성도들이 응소를 하여 장장 10년간에 걸쳐 대법원에까지 가서 판결이 난 것이다. 즉 예배당은 교인의 총유이다. 그러면 위 출옥성도측의 예배당은 교인들 90% 이상 대부분의 지지를 받았으니 출옥성도측의 예배당이다.

사기꾼 먹사와 교회사가중 대부분인 사이비 교회사가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소리가 있다. 즉 “하나님만이 누가 뭣이 옳은지 아신다”는 것이다. 미친넘들! 성경은 뭐하러 끼고 다니고 설교까지 하나? 성경에 비추어 보면 알 것 아닌가? 일반계시인 양심으로도 판단 할 수가 있는 문제이고. 잘 몰랐다? 그럼 아래 태만의 죄에 해당한다.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리고 또하나 사이비 교회사가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소리가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할 문제이다” 라는 것이다. 단순히 신사참배만 한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친일하며 갖은 악행을 다하고 동족을 못살게 군 목사들에게 맞는 소리인가? 성경은 치리의 의무성을 말하고 있다.

더구나 Y 신과대학 명예교수란 또라이 교회사가는 “그 말에는 반박못할 논리와 신학이 있다”고 하는데 그럼, 컨닝하다 걸린 신학생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할 문제이다”하고 반발한다면 어떡할 셈인가? 공적인 죄는 공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위에 대한 참고문은 다음 “몸버린시골처녀를” 클릭하며 자세한 것을 읽을 수 있다.

(3-2 파일을 열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위자가 속한 교단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에 까지 체포된 바 있는 일경에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는 성도들을 밀고하여 죽도록 고문 당하게 만든 추악한 악질 한국교회 지도자를 읽고 싶으면 아래 “치마를 벗고” 안에서 나오는 “최고악질”을 클릭하시면 자세한 얘기를 읽을 수 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총회측(합동과 통합, 기장)이 출옥성도들을 독선주의자 분리주의자들로 매도하니 그것을 방어하기에 급급한데 과연 성경신학적으로 그게 옳은 태도인가? 자의적으로 분리했나 쫒겨남을 당한 것인가 하는 사실확인을 해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론 아예 맞받어 쳐버리는 게 나을 것이다. 실제 처음부터 그런 교단도 두 개나 있다.

아래를 “치마를 벗고” 클릭하면 자세한 얘기가 나온다.

(3-1 파일을 열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왕따 당하는 게 두려웠던가?
“스스로 자기를 위해서 말할 능력이 없는 자들을 위해 말하라”(잠 31:8)

당시 응소한 목사는 출옥성도는 아니고 해방후 출옥성도편에 선 1930년대에 한국교회에서 절제운동(주초문제)을 하던 송상석 목사(1897-1977)이다. 이분이 행정능력이 탁월하여 그대로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운 것이다. 그리고 이분이 바로 해방후 당시까지 만주봉천신학원에 머물던 한국보수신학계의 거성 박형룡박사(1897-1978)를 배를 전세내어 타고 만주에 가서 비밀리에 모셔온 분이다. 즉 오늘의 총신이 있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치마를 벗고 정조를 스스로 내주는■★←클릭!!

■비명을 지르는 여자는 때려 쓰러뜨린후...■★←클릭!!

■바른진리를 찾아서, 고신환원■★←클릭!!

■친일파들의 악랄함을 만천하에 폭로한 분■★←클릭!!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12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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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번  호 제        목 글 쓴 이 조  회 누  리 등 록 일
이명박, "BBK는 내가 설립했다" (5) 편집국 197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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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14:24
[법원제출] 프로펠러 손상 관련 검증에 대한 의견서 (7) 신상철 4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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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3 07:16
[법원제출] '제3의 부표'관련 UDT 대원 증언에 대한 의견서 (9) 신상철 50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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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21:18
[검증] 천안함 '1번 어뢰'는 고철 덩어리 (9) 신상철 42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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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09:10
[단상] 신에게는 아직 12번의 재판이 남았습니다 (12) 신상철 28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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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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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 개쉬끼 너 와 나헌티 열받아 쥐랄이냐? 박 정 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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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 20:11
126266
북조선에서 최고 유명한 3가지는 무엇일까요? (13) 김순신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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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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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지금, 이 혹성에서 일어나는 일 - 1 (2) 김종익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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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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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이 천정천인 금강하류이고 군산 앞바다와 연결된 ... 마파람짱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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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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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뒷광고’ 사태… 금지법 발의에 “영상 삭제... 아이엠피터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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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식이 없는 주권자들이 만드는 세상은…? (12) 김용택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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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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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아 니 댓글 지금 보았는디,외모 자신 있음 딴데가... (2) 박 정 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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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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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장교 vs 공군조종사 패싸움☎ 39명 중상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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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농민 유대인 죽여라” 선동💔 전두환 빰쳐!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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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부부 청와대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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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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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益 (2) 復仁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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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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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너무 무모하다 이미 다 헤집어 놓은 거를 파괴... (1) 마파람짱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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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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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급격한 민심이반, 이너서클 강화로는 되돌릴 ... (1) 임두만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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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의놀이’를 아시나요? 아이엠피터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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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맞아죽을 각오하고 올림!!💖 화팅!!!!!!!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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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양단억장(揚短抑長) 이정랑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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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는 죄짓고 깜빵가지 않으려는 고위 공무원을 위... YK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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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은퇴다 - 잘살어 비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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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은 그냥 계셨음 좋것네 껄떡이지 말라우 (1) 박 정 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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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허울쓴 살인면허💘 🎴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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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의 OOO Top3🔺ʊ... 궁금하시죠??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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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단심 민들레는 조용필 작사로 되있네 누군가가 (2) 박 정 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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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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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올해를 민족자주와 조국통일 원년으로 창조하... 사람일보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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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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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누가 더 정상이고, 누가 더 비정상인가? (1) 다른백년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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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는 통합당의 궤... 아이엠피터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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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사회 바꿀 수 있을까? (1) 김용택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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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과 맞짱뜬 전설의 오월대 녹두대d... (1) 최루탄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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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카페] 문재앙 디스 시작 맘카페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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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홍수에 비상사태인데 진중권은 여유만만이네 마파람짱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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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くりびと bye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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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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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may chain ge but... why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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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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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 lady なな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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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ot it 80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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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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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it when young sunday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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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국, 윤미향의 문 구라정권....반 민주주의 꼴통의 ... YK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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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이명박그네시절이 그리운가보다 국민들도 그... 마파람짱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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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GLY KOREAN🔵 🎴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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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센징 내로남불 삼포왜란 원인❎ 놀랍군~~~~~~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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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쓸더니 이젠 홍수로구나 정말 걱정이네 마파람짱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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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상대졸 집사가 술에 만취한 사연㈏... (1) 흥미로움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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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들의 편집국장 한동훈과 이동재기자의 특수관... 0042625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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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개 아이엠 피터 (1) 아이엠개피터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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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왜 악에 받히는데?지지하지 않는다고 세금폭탄... 마파람짱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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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대표 경력은 있구만-같잖어서 한마디 줬다. goodbye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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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야당대표도 아닌 자의 말을 듣냐-네걱정이나 ... ㅎㅎ안녕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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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 “언론의 ‘무단침입’ 주거침입... 임두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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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니는 뇌를 지구에 붙들어 매놓아 그리 똑똑허냐 ... 마파람짱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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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언론, 아직도 바뀔 때 안 됐느냐 (13) 이기명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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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shf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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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라면을 몇 봉까지 먹을 수 있을 까? (5) 김순신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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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 창당 이후 최고 지지율… 마냥 기뻐할 수 없... 아이엠피터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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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이 낫지 최악인 통당을 지지하다니 이런 짜가리들 (1) 마파람짱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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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류출신 추미애와 김두관이 구라당 추락을 부추기는 ... YK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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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목소리가 부드럽고 잔잔하고 감미롭다 나도 느... 박 정 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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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은 지금 굳이 신곡 안내어도 인기 지속이것는디 박 정 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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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의원에 “Fucking Bitch!” 야만 폭로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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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 😎일본을 휩쓴 신라 해적들😎 숨겨진 역사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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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뻐꾸기 새낀 키우지 않는다. 내가가지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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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니까 법적처벌을 면제해 주는거야-야 젖 먹어 goodbye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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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도 아닌 애를 왜 신경쓰냐-각자 가는거야 ㅋㅋ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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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자식 드럽게 질척거리네-내가 네 엄마냐 ㅎㅎ 안녕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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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승헌씨께옵서 팜스빌 선전을 하신데 많이들 배부... 박 정 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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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네이션, 미국 전쟁 멘탈에서 평화 멘탈로 사고의 ... 뉴스프로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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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 피터는 이쪽 보좌진 같던데 남의집에 와서 마파람짱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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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미스터트롯 콘서트 하네 고재근도 나가니까 박 정 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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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책 일관성인가? (2) 이준구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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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균형 맞추기, 그리고 인간에게 닥치는 재해 권종상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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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개 아이엠 피터 (2) 아이엠 개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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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의원 미니 원피스등원🔞 선진한국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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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人物論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유... (1) 이정랑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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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쓴 글💖💖 💖.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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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 “국회가 비로소 밥값을 하는 날이다” 아이엠피터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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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최악의 폭발 참사… 최소 73명 사망, 4천여명 ... (1) 김원식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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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첫사랑은 참 좋겠다라는 백지영 싸브의 말 박 정 설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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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엿같은건 저작권 등록하면 내맘대로 누구에게 줄... 박 정 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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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성폭행신부 300명 명단공개😎 놀렐루야!!!!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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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포착💖김연아 박근혜 수영복 놀랍네!! 운동효과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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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새끼들이 기를 쓰고 애새끼들 미국 시민권 만... 교포 권종상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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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같은 건 다 잘라버려 안녕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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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는 내가 받고 넌 관직을 구걸하는 새끼일뿐이라고 똑바로살어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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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하고 아무관련 없으면 지옥에선 헛소리라고-병신아 너같은거안봐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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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같은게 말이 많네-국민이 평가하는거야 이직이나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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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거 관심없어 - 그냥 가는거야 안녕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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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 그럼 언론을 대표해서 사과해봐,자세도 못잡... 한심하긴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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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들 셋도 다 치워 나도 자주 안올겅께 박 정 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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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서울, 제주에서 겪었던 진짜 임차인 이야기 (1) 아이엠피터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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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이 아니라 너절리즘의 벼룩들, 눌러 죽이는 ... (1) 권종상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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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중부 폭우, 3일 천안시내 물폭탄… 도로 잠기... 임두만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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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성추행 외교관 김홍곤 사진😎 ##화보맨##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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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리들이 류지광 김수찬 고재근 더 넣지 생각 같아... 박 정 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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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바다로 낙하 장외 홈런🎯 영상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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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한인 LPGA선수 주차장서 맞았다㈎... 현장포착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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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 앞잡이 문재앙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중국몽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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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언론을 욕하지는 않아 - ㅋㅋ 안녕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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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미지 사이를 뚫지-가슴이 뛰기 시작하는군 그노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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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힘으로 올라가라고 나도그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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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묘지에서 사진찍는다고 그쪽에선 표 안줘 헛지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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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노란 대답하지마 운명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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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건 이상 너두 걸어야 해 - 골라 골라 ~~ 드루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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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배당 큰거만 해-지면 은퇴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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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표 떨어지면 대선은 포기해 올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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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박주민으로 드럼을 치겠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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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dumdum dururu dumdumdum dururu drummer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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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생님, 입술이 부르텄네요 (4) 이기명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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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평] 거북한 계보 권총찬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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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55
이러다가 우리말과 글이 소멸되는 것은 아닌지? (2) 꺾은 붓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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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54
‘임대차3법’ 때문에 전세가 사라진다?… 언론의 ‘... (1) 아이엠피터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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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경제정책 이해하기 (1) 문재인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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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교회 면죄부 팔고 한국교회 ○○○를 판다㈟... 놀렐루야!!!!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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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 05:34
126151
긴급😎주호영 역전 만루홈런포 허용!!!! ☦ㅎㅎ....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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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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