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은 좌초입니다.
천안함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선박 전문가 신상철의 비망기
오동나무 아래서 역사를 기록하다.
권력을 사익 확대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오늘날 부패한 고위 관료들.. 김종익
도둑맞은 주권
18대 대선은 합법으로 위장한 부정선거였다. 김후용
진보적 글쓰기
우리의 글쓰기가 사회를 개선하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김갑수
진보를 복기하다
국회의원으로서 내놓았던, 내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정책을 열한 가지의 주제로 묶어 정리했다. 이정희
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
사건의 재구성과 57명의 증언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
분단체제 프레임 전쟁과 과학 논쟁 (한겨레 오철우 기자)
논  쟁   문재인정부   천안함   세월호   최순실   검찰개혁   국방개혁   정치개혁   일반   전체 
🎴송상석목사법 vs 김영란판사법🎴
  번호 123841  글쓴이 심층분석  조회 148  누리 5 (30,35, 0:6:7)  등록일 2020-2-18 05:56 대문 0 [문재인정부] 

송상석목사법 vs 김영란판사법
심층분석

http://reformanda.co.kr/xe/index.php?mid=theology&document_srl=102622&ckattempt=2

기독인의 국가법정 송사

출옥성도들과 송상석목사

기독인의 국가법정 송사

송상석 목사(1896-1980)는 해방 후 마산의 문창교회 목사로 시무했고, 고려신학교(현 고신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한국교회에 이바지한 바 크다. 첫째, 기독교절제운동의 선구자이다. 나라를 잃은 백성들과 조선 청년들의 아픔을 싸매면서 민족적 자존감을 갖게 하는 운동을 펼쳤다. 둘째, 교회 재산은 '교인총유'라는 판례(이른바 '송상석 법')를 남겨 거의 반세기 동안 적용된 한국교회 재산분규의 지표를 남겼다. 대한민국은 2006년에 이 판례가 교회 분쟁을 증폭시킨다는 이유로 폐기하고, 대법관 김영란의 발의로 교회구성원 3분의 2 그룹이 재산 전체를 가지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친일과 배교의 대명사인 경남노회장 김길창 목사(현 경성대학교 설립자)는 문창교회(담임 목사 송상석)를 상대로 교회 재산 양도 소송을 제기했다. 박윤선 목사(당시 고려신학교 교장)는 피소당한 송상석 목사에게 법정변론을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 송상석이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자 뜻밖에도 고려신학교 교장직을 사임하겠다고 했고, 사임하여 서울에서 새로운 신학교를 세우고 가르치다가 얼마 뒤 복귀했다. 송상석의 교회의 법정 대응에 대하여 박윤선이 자신의 고려신학교 교장직을 담보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기독인의 국가 법정 송사에 대한 신학자 박윤선의 견해는 목회자적이었고, 목회자 송상석의 시각은 신학자적이었다. 송상석은 장로교회의 원리와 노회의 전례를 간파하고 있었고, 칼빈의 기독교강요(일본어판)를 읽었으며,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 기초한 기독인의 법정 소송에 대한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송상석은 예수를 믿기 전에 일제 경찰로 활동한 전력 때문에 해방 후 반민특위에 소환되었다. 송상석이 해방 후 출옥성도들 그룹에 가담하고 상당한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한상동 목사 그룹과 대립각을 세우는 등 그와 출옥성도들의 만남은 기구한 인연이다. 그는 일제시대 말기에 신사참배를 피해 황해도에서 과수원을 운영하고 민족교육을 목적으로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옥살이를 했다는 일설이 있지만, 이는 사실호도이거나 오해로 보인다.

송상석은 자기 시대의 요구에 때로는 바람직하게 때로는 바람직하지 않게 반응한, 교회사적인 주목을 받아야 마땅한 인물이다. 그의 교회사적 의의와 장점은 고신교단의 정치적 상황에서 파뭍히고 있다. 리포르만다(기독교사상연구원)는 "송상석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제11차 학술회(2018.12.6.)를 가졌다. 아래는 필자가 발표한 논문이다. 두 편으로 나누어 게재한다.

박윤선의 건덕론과 송상석의 방임불가론: 기독인 간의 법정소송에 대한 신학충돌

기독신자 간의 시비 건을 국가법정에 가져가는 것은 허용적인가? 예장 고신교회는 이 물음에 대한 상반된 견해로 말미암아 두 차례에 걸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고려신학교의 교장 박윤선 교수와 마산 문창교회 목회자 송상석 목사 사이의 논쟁(1957)과 고신교회와 ‘반고소측’ 사이의 대립이었다. 고신교회 제24회 총회(1974)는 국가법정에서의 성도 간의 소송행위가 결과적으로 부덕할 수 있으므로 소송을 남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고소측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소송할 수 없다’면서 분리하여 독자적인 교단(1975)을 만들었다.

고신교회의 신앙고백서는 “신자의 자유를 구실 삼아 어떤 사람들이 국가적이든, 교회적이든 간에 그것의 합법적 권세와 합법적 행사를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에 반항하는 것이며…, 교회의 치리와 국가 기관의 권세에 의해 문책되고 고소되는 것은 합법적이다”고 명시한다. 종교개혁신학자 존 칼빈은 신자가 신체와 재산상의 부당한 압박을 받을 때와 증오심과 복수심을 품지 않은 채, 경건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고소(告訴), 반소(反訴), 응소(應訴)가 가능하다고 한다.

박윤선은 고신교회 안에서 최초의 신학논쟁 된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 허용성 여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고린도전서 6장 1-7절을 근거로 건덕론을 펼쳤다. 그는 진리운동을 펼치는 고신교회가 신사참배 죄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는 마당에 그들을 법정에 세우고 또 싸우면서 어떻게 타인을 회개하도록 할 수 있겠는가, 신자 간의 세상법정 소송은 결과적으로 당사자에게 유익하지 않고 교회와 기독교 전체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주장했다. 이에 송상석은 방임불가론으로 맞섰다. 악을 방임하면 더 큰 악과 혼란을 교회에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론 논쟁에서 신학자 박윤선은 목회자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목회자 송상석은 신학자다운 방식으로 반격했다.

1. 예장 총회파의 교회당 명도 소송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6회 총회 계속회(1951, 부산)가 고려신학교를 지지하는 경남(법통)노회를 축출하자, 우상숭배의 죄 참회를 외치며 교회재건을 힘쓰다가 부당하게 제거된 경남노회 산하 교회들과 그 개혁운동에 동조하는 교회들은 불가피하게 독자적인 교회를 조직했다.

이에 총회측은 고신측 교회당을 접수하려고 접수위원회를 구성하고, 교회당과 재산의 명도(明渡)를 요구했다. 총회측 경남노회 유지재단 이사장 김길창 목사는 초량교회·영도교회·문창교회·거창교회·진주교회를 상대로 세속 법정에 명도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김길창은 유명한 경남 친일파 거두였다. 총회는 과거에 저지른 신사참배·우상숭배·신도침례·친일행각·백귀난행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출옥성도 그룹을 축출했고, 그들을 세상 법정까지 끌고 갔다. 각 지역의 대표적인 교회들을 상대로 교회당을 내 놓으라고 법정소송을 제기했다.

교회 안에 분쟁이 발행하면 예배당과 교회재산 문제로 말미암아 갈등이 증폭된다. 장로교회의 재산은 교인의 헌금과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다. 교단이 마련해 준 것이 아니다. 교회가 그것들을 노회, 총회 등의 유지재단에 증여하지 않는 한 그 소유권은 각 교회에 있다.

부산 초량교회의 한상동 목사는 교인들의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진리운동, 참회운동, 교회재건운동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회원 양성봉 장로가 총회측의 교회당 접수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서 재산권 쟁탈전이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훼손하리라 생각하고서 교회당을 내어주고 떠났다. 재산을 잃어버리더라도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한편, 문창교회·영도교회·진주교회·거창교회는 쉽사리 명도요구에 응하지 않았으나 거창교회는 나중에 넘겨주기로 했다. 문창교회는 주기철 목사와 한상동이 담임 교역자로 시무한 교회였다. 총회측은 문창교회가 명도요구에 응하지 않자 법적인 소송을 제기했다. 피소된 문창교회 대표자 송상석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맞서 싸웠다. 마산지방법원 판결에서 패소판결을 받았으나 고등법원에 항소하여 승소했고, 대법원이 교회재산 분할을 조정하여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문창교회는 광복 직후에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된 진리운동을 지지했으나 이를 반대하는 어느 목회자가 부임한 뒤로는 지지를 중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목회자가 떠나고 송상석이 부임하여 진리운동에 동참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임자가 만들어 놓은 교회 안의 진리운동에 반대하는 세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교회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오전에는 고신파가, 오후에는 총회파가 사용했다.

문창교회의 교회 재산을 둘러싼 법정투쟁이 시작될 무렵, 고신측 신도는 총회측 신자들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십여 년에 걸친 재판 끝에 교인수가 적어져 총회측이 예배당과 사택을 차지하고, 고신측은 교회별관을 차지했다. 소송투쟁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고신측 신도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교회를 분리해 나갔다. 제2문창교회, 오동동교회(현 마산동광교회), 신마산교회, 마산감리교회를 세워나갔다.

박윤선은 고려신학교 학우회가 발간한 『파수군』에 세 차례에 걸쳐 송상석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우리의 걸어갈 길’(1957)은 재산문제로 신자끼리 법정에서 투쟁하고 비기독교인 판사의 판결을 받는 것이 진리운동의 건덕에 이롭지 않다고 역설한다. 차라리 재산을 내어주고 불의를 당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박윤선은 고신운동 10년 기념강좌에서 고신교회가 시정해야 할 첫 과제로 ‘예배당 쟁탈전 포기’를 꼽았다.

이에 송상석은 ‘교회소송문제 재검토’(1957)라는 글을 『파수군』에 세 차례에 걸쳐 기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박윤선이 ‘현실을 모르는 편의주의자이며 궤변론자’라고 공박했다. 총회파의 불법과 부당한 재산 명도 요청에 대응하는 것은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을 변호했다. 성경, 교회정치, 신학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자기 입장의 정당성을 변호했다.

박윤선은 자신의 권유가 당사자에게 먹혀들지 않고 교단의 공식 정책으로도 채택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고신운동, 진리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송상석이 국가법정 응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자신이 고신교회와 고려신학교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송상석이 이에 불응하자 박윤선은 1957년 2월에 교장 직을 사임했다.

경기노회 안의 이북출신 교역자들은 동향인 박윤선을 지지하여 경기노회로 하여금 고신교회 제7회 총회(1957)에 예배당 쟁탈전은 비성경적이므로 이를 중지시켜 달라고 하는 건의안을 올리게 했다. 총회는 이 건의안을 받고도 만족스런 답을 주지 않았다. ‘예배당 건물 소송 문제는 지금까지 되어 진 결과로 보아 피차 덕이 되지 못하니 이 문제는 믿는 형제들끼리 적극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하면서 이를 위해 위원 5인을 선정했다. 그러나 위원들은 신자끼리의 소송이 바람직하지 않으나 교회 재산의 소유권은 각 교회에 있으므로 총회가 개 교회나 개인의 재산권 확보를 위한 소송을 강제로 금지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경기노회는 이에 불만을 품고서 1958년에 예배당 소송 문제를 그만둘 때까지 교제를 단절하기로 하고 ‘행정보류’를 결의했다. 경기노회장 전칠홍 목사의 이름으로 ‘행정보류 헌의서’(1957)를 총회에 제출했다. 예배당 소송 문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떨어지고, 기독교가 매몰당한다고 하면서 신자 간의 소송이 비성경적이라고 하는 이유를 밝혔다. “이것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진리운동은 저해되므로 작년 10월 임시노회로 모여 본 노회는 총회가 소송을 그만 [두게 할] 때까지 총회와의 행정관계를 보류하기 결의하였습니다.”

총회는 신자 개인의 시민적 권리행사를 제재하거나 타교파의 유지재단이 소송을 제기한 것을 취하하도록 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총회가 송상석과 문창교회로 하여금 재산권을 포기하도록 권면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강제(强制)할 권한은 없다. 고려신학교의 교수들은 신앙정신 면에서 신자가 국가법정에 호소하여 투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나 예배당 소유권 을 둘러 싼 법적 대응 곧 응소를 정죄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견해를 표명했다. 고려신학교의 이사장 한상동은 이 문제를 주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기도하며 기다리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신교회 총회는 이북출신들이 주도하는 경기노회의 행정보류를 교회분리와 불법적인 파당행위로 여겼다. 총회는 행정보류를 선언을 포기하도록 하려고 권면위원을 선정했다. 이때, 박윤선도 경기노회가 행정보류를 선언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기노회 안의 행정보류측 인사들은 고신교회와 결별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들은 고신파와 승동파와 합동 환원(1963) 뒤에 합동 교단에 합류했다.

2. 박윤선의 건덕론

박윤선은 국가법정에 제소된 송상석의 법적대응을 반대하면서 진리운동의 “방향과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전진력(前進力)이 없고 교착상태에 빠진다”는 말로 시작하여, 송상석의 법정 대응을 비난했다. 신덕(信德) 곧 교회의 건덕(建德)에 유익하지 않다고 했다.

박윤선에 따르면, 우리가 진리싸움에서 승리하려고 하면 형제의 마음을 얻고 덕을 쌓아야 한다. “지금 우리 단체는 타파 신자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는 것보다 건덕이 필요하다.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대외적으로 사랑과 덕을 잃지 않아야 된다.” 고신교회가 10년 동안 우상숭배를 회개하는 문제로 말미암아 반대파와 대항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고, 진리를 파수한 것은 잘 한 일이다. 진리싸움도 싸움이었기에 손실도 있었다. 진리가 중요하기에 전국적으로 인심을 잃으면서까지 진리를 파수해 왔다. 그것은 잘 한 일이다. 우리가 타파 신자들과의 관계에서 진리는 분변(分辨)하고 파수해야 하지만 편파심으로 그들과 장벽을 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도 복음을 믿는 한 하나님의 자녀이다.(펌순이: 천하의 친일악질 배교자 김길창과 그를 지지한 목사들이 실제 예수 믿는 자들인가는 심히 의심스럽다) 그들은 우리의 적(敵)이 아니다.

우리의 사명은 그들의 마음을 얻어 회개하도록 하는 데 있다. 진리 문제 이외의 사항은 무엇이든지 달라고 하면 주어 덕을 세우고 그들의 마음을 녹여 회개하도록 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을 보라. 그들은 진리투쟁에서 승리한 뒤에 로마가톨릭교회의 거창한 교회당 건물에 집착하지 않았다. 재래(再來)의 교회당을 지녀야 ‘법통’이 된다든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영구히 그들과 싸워서 그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가 만리장성으로 막히게 되는 것을 원하는가? 우리가 진리에 따라 살고자 하다가 불가피하게 독자적인 교회를 형성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를 성취하려면 그들의 마음을 점령할 수 있는 신덕을 소유해야 한다. 진리 문제 외의 것들 때문에 다른 교단 신자들과 격렬하게 다투면 그들과 담을 쌓게 된다. 이는 교회의 보편성(Catholicity) 교리에 저촉된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박윤선과 초기 고신교회가 비고신파 교회들을 거짓교회로 보지 않은 점이다. 선민주의, 배타주의, 율법주의는 엿보이지 않는다. 고신교회는 타 교단에 속한 신자와의 법정투쟁도 고린도전서 6장의 가르침에 저촉되는 것으로 보고 이를 남용하지 않도록 했다. 이는 그들을 적 또는 거짓교회로 본 것이 아니라 ‘형제’로 여겼음을 반증한다.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고신교회가 출범하면서 내외에 공포한 선포문(1952.10.)은 고신측이 총회 교회를 장중보옥(掌中寶玉)처럼 사랑했다고 토로했다. “충고, 혹은 경고, 혹은 진정, 혹은 항의와 이의 등으로 반성과 시정을 요구”한 것은 “결코 대한예수교장로회가 밉다든지 싫어서가 아니고 장중보옥같이 사랑하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박윤선은 한상동이 초량교회당을 내어주고 신덕으로 일관되게 나아가고 있으며 또 진리문제 이외의 일로 덕에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해 양보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것이 회개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이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라고 말한다. “남들과 싸우고 소송하면서 어떻게 그들을 회개시킬 수 있습니까? 우리 단체의 [수가] 적어도, 남들에게 대해 신덕 있게 행하며 고상한 정신을 보이면 결코 적은 것이 아니므로 영적 정복력을 가지고 전진하게 될 것입니다.”

박윤선은 송상석도 일을 바르게 하자고 하여 법정 대응을 하는 것이며 그가 그 문제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산권을 포기하고 법정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말한다.

“교회행정 문제로서도 우리 단체의 신분이 어떻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우리 단체의 걸어갈 노선에 대하여 치명적인 [결함]을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리가 좋은 교파라도, 그 교리들을 파수하여 선포하는데 관계된 중대한 행정이 바르지 못하면 그 교리를 세상에 발휘시키지 못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윤선은 교회의 행정문제는 교리 문제에 가까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고신교회의 예배당 건물 문제에 대한 대외적 시책이 그러한 중대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박윤선은 교회당 건물을 내어주지 않겠다고 하여 소송에 가담하는 것은 고린도전서 6장 1-7절의 말씀에 저촉된다고 한다. “이런 류의 싸움은 장기화되기 마련이다. 예배당 쟁탈전에 가담하는 것이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그것은 우리의 방향과 진로에 관련된 치명적인 문제이다. 부덕한 싸움에서 손을 떼고 곧바로 전진해야 한다. 성경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일이므로 즉각 그만 두고 대외적으로 성명을 해야 한다.” 그리고 거듭 말하기를 “신덕을 손상시키는 정도의 예배당 파수행위는 우리가 펼치는 진리운동에 치명적인 해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박윤선에 따르면, 예배당 쟁탈전 가담이 가져오는 해독은 네 가지이다. (1)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문을 막는다. 한 건물 안에서 2부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불신자들에게 싸움구경을 시키는 격이다. (2) 개인 신자들의 신앙상 손해 곧 일시적인 물질의 손해를 감수하면 신앙상 큰 부흥이 있다. 응소로는 신자와 후배를 그러한 신앙의 용사로 키울 수 없다. (3) 영권(靈權)을 잃는 일이다. 곧 고신파의 교인 수는 적으나 바르게 살려고 하는 노력과 영권으로 반대파 보다 앞섰다. 그러나 예배당 쟁탈전은 고상한 신앙의 모범이 아니다. (4) 기타 손해가 많다. 불신법관 앞에 서야 한다. 재산 문제나 다른 교단에 속한 사람이기에 교회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라고 하지만 다른 교파 신자와의 법정투쟁도 신자의 이름에 손해를 가져다준다. 간접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훼손한다. 기독교 전체의 명예를 손상한다.

박윤선은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이 서양사회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서양교회와 달리 비기독교와 긴장상태에 있다는 까닭으로 이를 극력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한국기독교는 기독신자끼리 세상 법관 앞에서 소송하는 문제에 서양의 기독교를 너무 본받지 않아야 됩니다. 그 이유는, 서양 나라들은 적어도 문화적으로 기독교화 되었으므로 기독교와 비기독교의 대립이 격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와 긴장 하에 있습니다. 서양 교회들은 교회와 교회가 건물 문제로 소송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그것을 극력 피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는 정통이란 것은 교회의 신조나 교리 등 신령한 복음진리를 내용에 달려 있는 것이지, 세상법정의 판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신앙의 정통성이 교회당 소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윤선은 고린도전서 6장 초두의 신자 간의 소송에 대한 가르침이 일종의 금령(禁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쳐지나가는 말로 할 뿐 그 점을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이 본문을 주석하지도 않는다. 신학적인 해석을 하지도, 논리성 있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의 요점은 한 마디로 “남들과 싸우면서, 소송하면서 어떻게 남들을 회개시킬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열린 고려신학교 설립 10주년 기념강좌와 부흥회에서 거듭 신자 간의 소송이 진리운동에 방해되기 때문에 이를 삼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교정하지 않으면 고신파가 전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영력이 쇠퇴할 것이라고 했다.

박윤선은 국가법정 소송를 반대하는 자신의 지도가 관철되지 않자 고신교회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나의 지도 이론이 서지 않는 교계에서 ‘진리운동의 지도자 중 하나’라는 이름을 가지기가 너무 두렵기 때문”일 뿐, “현하 진리운동 총회가 기독교 단체인 사실을 부인함이 아니다”고 말했다. 고신교회가 지금의 모양으로 걸어가면 고신파다운 특징을 잃을 것이므로 자신은 “은퇴의 뜻으로 탈퇴선언”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총회석상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목사의 교단 탈퇴는 노회가 처리할 사안이라는 말을 듣고서 탈퇴하겠다고 한 말을 취소했다.

1957년 2월에, 박윤선은 고려신학교 교장 직임과 교수직을 사임했다. 고려신학교 이사회는 교장 직임만 사임하고 교수직은 유지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는 ‘신학교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성경주석 집필에 매진하겠다고 말하고 그 말을 실행에 옮겼다.

3. 송상석의 방임불가론

송상석은 교회 재산권 문제로 처음 피소되었을 때 그 소유권을 넘겨주고 투쟁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인들과 함께 심적 고통을 겪으며 심경의 변화가 생겨 명도요청 소송에 맞섰다.

그는 『파수군』에 실은 ‘교회소송문제 재검토 1’(1957)에서 박윤선이 구체적인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무책임하게 자신을 비난, 공격한다고 말했다. 총회측의 제소로 자신은 남모르는 딱한 사정에 기막혀 울고 영예롭지 않은 일로 고통을 당하며 진상이 밝혀질 것을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는 처지에서 뜻밖에도 같은 진영의 신학자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러한 행위는 제소인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의 적개심을 조장할 뿐이다. 개인을 매장(埋葬)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박윤선이 이 주제에 대한 세계 신학계의 견해를 도외시하고 독단적으로 판단하는 점이다. 그의 교단 탈퇴선언은 고신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오류에 빠지게 한다. 그가 신학자, 성경주석가, 신학교 교장이라는 신분을 가진 공인이기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박윤선과 송상석은 장로회신학교(평양)의 동기동창생이며, 진리투쟁 전선에서 함께 일하는 신우였다. 느닷없는 탈퇴라는 폭탄선언에 놀란 송상석은 박윤선의 “고려파 탈퇴선언은 교회소송 문제와는 하등의 관련성이 없다”고 말했다. 고려신학교는 고신교회 총회나 노회가 경영하는 학교가 아니다. 총회나 노회가 교회소송 문제에 찬성을 하거나 협조한 일도 없다. 교회소송 문제는 자신과 문창교회의 일이지, 고려신학교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 박윤선은 그와 아무 관계가 없는 문창교회 소송 문제를 신학교 교장 직책에 결부시켜 고려파에서 탈퇴하고 고려신학교를 떠나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송상석은, 경남노회가 국가법정소송이 성경의 가르침에 저촉되지 않으며 장로회 헌법 규정상 적절한 조치라고 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경남노회는 교회당 건을 다루었으며, 그 결과로 “각 교회의 형편에 따라 적당히 처리하기로 결의”했다. 그런데 박윤선이 어찌 이를 모르는 체 하는가? 장로교 정치문답 제349와 제376문답이 명시하는 것처럼 교회재산 소유권은 각 교회에만 있으므로 재산권은 노회나 총회가 간섭할 사안이 아니다. 교회의 헌법은 교회재산을 국법과 법률에 입각하여 조처해야 된다고 명시한다고 말한다.

송상석은 고린도전서 6장 1-8절 해석과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근거로 박윤선에게 다섯 가지 질문을 한다. (1) 바울이 말한 고린도교회 소송 문제와 현재 한국교회 소송 문제는 그 성격이 다르지 않은가? (2) 교회 재산 소유권 확보를 위한 대응과 응소가 죄를 범한 것에 해당하는가? 교리에 위반되는가? (3) 성경은 국가법정 소송 재판을 부당하다고 말하는가? (4) 장로회 헌법의 규정을 어긴 것인가? (5) 고신파는 교회의 재산권을 포기해야 하며 또한 폭력적인 침략을 당할 때도 정당방위조차 하지 않아야 하는가?

송상석은 이 다섯 가지 밖의 주장들은 모두 지엽적인 것들이며 진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논의가 아니라 시비를 위한 시비라고 말한다. 언필칭 소송이 건덕에 방해되고 은혜롭지 않다고 하지만, 그 일을 당면하고 있는 자신도 그 점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법정대응을 하는 것은 신자의 덕을 더 심각하게 손상하며 더욱 큰 폭으로 은혜 되지 않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송상석은 ‘교회소송문제 재검토 2’(1957)에서 이 문제를 더욱 치밀하게 논의한다. 고신교회가 진리운동을 시작할 때 그 일이 “대한예수교장로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투쟁이고 결코 딴 교파를 세우려고 한 운동이 아니었다”고 공약한 것을 상기시킨다. 총회측은 장로교회다운 정통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총회가 재산권을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교회재산권 소유는 어느 종파, 교파에 있지 않고 각 교회에 있다. 이것은 장로회 헌법 규정만이 아니라 한국 법조계가 공인하는 바이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총회측이 종주권(宗主權)을 앞세워 우리 교회의 재산을 자동적으로 소유하려고 하는가. 어찌 이를 용인할 것인가.” 법을 무시하는 사람은 진리를 파괴하는 자이다. 자기만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거나 진리를 바로 세우려고 법에 호소하는 것을 부덕스러운 일로 여기고 도외시하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인간의 상도(常道)를 역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 안에 향기로운 일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부덕(不德)한 일이 있는 것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향기로운 일에만 참가할 특권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부덕한 일을 수습하는 데는 자신은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에게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중략)

그런고로 소송이 “(1) 죄가 되는가? (2) 비성경적인가? (3) 교리에 위배되는가?”를 검토하여 만일에 죄가 되지 않고 교리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며 성경이 용인하는 일이라면 일시적인 부덕과 은혜롭지 못함을 이유로 이를 고집하며 일종의 교리화 하려는 주장을 우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송상석은 송상석의 교회당을 제단, 성전처럼 여기고 존엄하게 생각하는 신도들이 예배당을 빼앗긴다는 데 대해 많은 충격을 받고 많이 동요하고 있다면서 ‘교회소송 건의 응소동기’를 밝히고 방임불가론을 제시한다. 만일 악질적인 불법과 폭행을 피하려고 예배당을 모두 다 무조건 내어 준다면 이는 오히려 악을 조장하는 것이 된다. 교회의 재산은 교인들이 총유(總有)이다. 총회측에 교회당을 무조건 내어주는 것은 더 큰 악을 조장하는 일이다. 악을 방임하면 더 큰 혼란이 일어나고 더 많은 분규가 일어나 고신측 교회들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만일에 제 것을 안 빼앗기겠다고 응소하는 것이 죄라고 하면 고려파 교인들은 재산권을 다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악과 불법을 방임하는 것은 불의를 감행케 하는 기회를 증대시켜서 인간사회에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안 될 것입니다.

송상석의 방임불가론의 핵심은 여덟 가지이다. (1) 폭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데 대한 항거는 정당하다. (2) 예배당 안에서 혈투가 벌어지고 예배를 방해하는 일이 거듭되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피차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양편이 각각 다른 교단에 속해 있는 탓에 교회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법정 소송은 이러한 ‘불가피한 상황’의 난제를 합리적으로 정당하게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 (3) 예배당을 탈취하려는 상대방 측의 불법과 폭력을 배제하기 위한 응소가 죄이며 비성경적이며 교리위반이라고 말하면서 이를 부덕하고 은혜롭지 않게 보는 것은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그의 근시안적인 편의주의, 굴욕적인 무사안일주의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4) 기독교는 노예근성을 종교 또는 자주권이 없는 미신종교가 아니다. 약자가 국법에 의거하여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는 것은 정당하다. (5) 악과 불법을 용인, 방임하면 불의를 감행하게 하는 기회를 증대시켜 인간사회에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게 된다. (6) 교회당과 교회의 재산은 해(該) 교회의 소유이다. (7) 예배당을 폭력으로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강도짓이다. 이러한 불의에 저항하는 것은 정당방위이다. (8) 응소는 교리와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다. 죄를 범하는 일이 아니다.

송상석은 쯔빙글리와 칼빈의 법정투쟁,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피득 선교사와 관련된 봉산신원교회 소송사건(1924), 대구남성정교회의 이만집 예배당 탈취소송 건(1923-1932) 등 역사적 사건들을 예로 들어 자신의 법정대응의 정당성을 변호한다. 장로회 정치문답과 신경과 성경의 여러 부분들을 언급하고 소송과 재판이 죄를 범하는 일이며, 교리에 위반되는 행위이며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삼은 고린도전서 6장 18절을 해석한다. 이 본문이 피고로 소송에 대응하는 것조차 금한다고 보는 것은 정당하지 않으며, 응소를 정죄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 기독교인이 국법의 보호를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송상석은 한상동이 초량교회당을 내어준 것과 문창교회가 교회당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응소하는 것은 상충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상동이 초량교회당의 명도요청을 받고서 교회당을 넘겨주고 조용히 나온 것도 잘 한 일이고, 문창교회가 그렇게 하지 않고 대응하는 것도 정당하다. 내어준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지 않겠는가. 한상동의 그러한 태도와 전례가 보편적인 규범이 될 수는 없다. 초량교회당을 내어준 것을 과대평가 선전하고 문창교회당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 것을 과소평가 악평하는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한다.

송상석에 따르면, 신자 간의 분쟁과 갈등은 교회법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한 편이 교회법을 무시하거나, 교회가 통제할 수 없는 처지일 경우, 차선책으로 국가의 힘을 빌려 해결하는 것은 정당하다. 소송을 무조건 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소송을 당할 경우에 재산을 모두 다 내어주고 빈손으로 나오는 것만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은 교회 안에 악이 성행하도록 만들고, 불의를 방조, 방임하는 일이다. 교회와 사회의 질서유지를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4. 박윤선의 반론: 교회규정으로 제재해야

박윤선은 송상석이 두 차례에 걸친 변론의 글을 읽고 ‘교회소송문제 재검토’라는 글을 『파수군』에 기고했다. 첫 글에서 제기한 건덕론을 보완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박윤선에 따르면, 고신파라고 하여 일반적인 정당방어를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자신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문창교회의 재산권을 둘러싼 소송을 반대하는 것이며,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 근거하여 교인 대(對) 교인, 교회 대 교회의 국가법정 소송을 반대하는 것이지 모든 류의 소송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고신교회가 타파(他派) 사람들, 특히 총회파 교회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는 사명을 가진 처지이고, 예배당과 부속 건물의 소유권을 둘러 싼 소송과 이에 대한 대응이 회개운동을 무력하게 하고 전도의 문을 가로막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고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단체는 수난 성도들이 진리를 위하여 예배당도 버리고 심지어 교회도 떠나 산중이나 암혈이나 옥중에서 수난당한 자들의 뒤를 따르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신앙과 덕과 주의 영광을 위해서는 그 어떠한 재산이라도 필요하면 포기하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나의 이 말은 결단코 우리 단체가 일반적인 정당방어를 취할 경우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현하 한국장로교회가 싸움투성이가 되어 심지어 건물 한 채를 가지고 피차간 양보를 하지 못한 탓으로 혈투 전까지 벌어지는 마당에서 우리 단체로서는 이런 싸움에는 책임 없는 깨끗한 입장을 취하여 한국교회 역사상 모범을 보이자는 것 뿐입니다.

송상석이 ‘예배당 건물 문제로 일어난 국가법정 소송을 교회가 교리화하여 금지, 정죄할 수 있는가’ 하고 질문하는데 대해, 박윤선은 교회가 이를 교리화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규정을 만들어 제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박윤선에 따르면, 신앙이나 도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교회는 성경을 보고 그 문제를 공동성(共同性) 있게 해결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금주금연을 시행하고 있으나 그것을 교리화하여 금하지는 않는다. 이를 금하는 성경 구절을 확실하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교회와 영국과 미국의 신자들이 술을 마시는 일이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교회의 행정적인 결정(決定)으로 이를 금한다. 한국에서는 주초가 유흥과 관계되어 있으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방탕한 생활에 빠지는 일이 흔한 까닭 때문이다.

박윤선에 따르면, 문창교회의 국가법정 소송 문제는 교파와 교파 간의 문제이므로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는 해석과 해당된다고 하는 해석이 병립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교파와 교파 간의 법정소송 건을 교리화 하여 금할 수는 없으나, 바울이 교파, 교단이 다른 신자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가르친 바 없으므로 이를 삼가해야 한다. 문창교회의 소송 건은 위 성경말씀에 역행한다. 교파와 교파 간의 소송에도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교회가 교인 간의 소송금지를 교리화 할 수는 없을 지라도 그것을 하지 말라고 규정할 수는 있다. 교회가 그런 종류의 “소송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일종의 교규(敎規)를 세울 수는 있을 것이다.” 문창교회의 응소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다”(고전6:12)는 가르침에 역행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1) 박윤선이 모든 종류의 국가 또는 세속 법정 소송을 반대하지 않으며, (2)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을 교리화 하여 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는 점이다. 특별한 경우의 신자 간의 소송 허용 가능성을 시사한다.

송상석이 교회의 재산소유는 해당 교회에만 있고 총회, 노회에 없으므로 총회나 노회가 간섭할 수 없으며 재산은 법률에 따라 처치함이 가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박윤선은 다시 건덕론으로 맞선다.

만일 한 교회 교인들이 양분되어 예배당 사용권을 다투는 경우에는 (재단 법인 소속이 없는 고로) 원칙상 신자들끼리 협의적으로 그 재산을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협의적으로 성사되지 않을 때에는 어느 한편이 포기하는 것이 유익하고 덕스럽고 신앙적입니다. 그 이유는 그런 사건을 가지고 법정에 가서 장기적으로 소송을 한다면 이는 신자의 명예와 그리스도의 이름에 수치를 가져올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자들이 그만한 것을 협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주님을 모르는 이들 앞에 가서 그것을 판결하여 달라고 하는 까닭입니다.

박윤선은, 송상석이 경남노회가 이 건과 관련하여 ‘각 교회의 형편에 따라 처리하라’고 결정한 것을 가지고 타파 신자를 대상으로 국가법정에 소송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데 대하여, 그것은 노회의 결정 정신과 다르다고 한다. 교회당 쟁탈전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을 통일하기 위해 한 개의 둥근 원칙을 세웠을 뿐이다. 무제한적으로 각기 형편을 따라 법정소송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부덕한 일이 생길 때는 노회의 충고를 받고 상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노회의 결정은 전도에 방해되는 건물 쟁탈전을 하는 것이 무방하다는 것은 아니다. 노회가 그 결정을 할 때는 국가법정 소송이 신덕에 방해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박윤선은 부득이 한 경우에 신자가 불신자를 걸어 국가법정에 소송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이 반대하는 것은 신자가 신자를 걸어 소송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뿐이라고 한다. 신자가 불신자를 상대하여 부득이하게 세상 법정에 갈 일이 있다. 그러나 신자를 상대한 경우에는 억울한 일이 있어도 그 건을 법정에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이 성경말씀의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박윤선은 자신이 모든 류의 소송을 다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 해당하는 소송을 반대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본문을 주석하거나 그것을 신학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고려신학교와 문창교회 소송 건은 하등의 상관이 없다고 하는 송상석의 주장이 성립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고려신학교가 진리운동의 선봉에 서 있으며 고신교회라고 하는 단체의 진로에 직결되어 있다고 한다. 응소 건이 취소되지 않으면 회개운동이 특색을 잃는 줄 알고 지도자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진리운동의 연대관계를 근거로 서로 관련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을 언급하면서 “만일 서로 불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고 말했다. 송상석이 법적인 관점에서 하등 관련이 없다고 한 말을 박윤선은 연대관계의 관점에 관련성이 있다고 말한다.

박윤선은 성경이 과연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을 금하는가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는 하지 않는다. 다만 거듭하여 “성경을 거스리는 소송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 주장을 한다고 하여 고려파의 진리운동도 허사라고 할 필요는 무엇입니까?” 하고 응수한다. 고신교회가 진리운동, 회개운동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을 걸어 국가법정에 소송을 하면 회개하라고 말하기 어렵게 된다는 말을 반복한다. “우리는 잊지 맙시다! 우리의 하는 일은 교파운동이 아니고, 아직껏 [우리는] 총회파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회개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고 말한다.

4. 송상석의 재반론: 고린도전서 6장 해석

송상석은 박윤선의 반박의 글을 읽고 그를 고신교회 전체와 진리 진영의 형제를 훼방하는 이적행위자로 규탄하면서 역공했다. 자신이 이 문제에 붙들려 6-7년 동안 죄인처럼 머리를 숙이고 문제해결을 기다리는 참담한 상태이며 “심장주머니가 터질 지경”인데, 동지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근거 없는 주장으로 상대방을 이롭게 만든다고 지탄한다. 자신은 불가피하게 제소에 대응하고 있으며, 교회의 재산 소유권이 해당 교회에 있는 사실과 교인들의 기부금으로 장만한 재산을 지키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장로교 규정과 정치문답 조례, 총회측과 고신측의 재산 관리 규정이 다른 점 등을 언급하면서 입증한다. “재산이 재단법인에 속한 것이면 쟁론도 없고 소송도 있을 이유가 없지만, 해당 교회의 소유이므로 이를 빼앗으려는 소송에 대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고 말한다.

송상석은 고린도전서 6장 1-8절을 더욱 구체적으로 강해하고 신학적인 해석을 결들여 ‘교회소송문제 재검토 3’이라는 제목으로 『파수군』에 기고했다. 고린도교회의 특수한 사정과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일곱 가지의 설문(設問)을 제기하고 그것들에 대한 답을 서술하는 형식으로 전개한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은 교황 그레고리 시대와 종교개혁 시대에도 논의가 된 본문이다. 칼빈 선생도 ‘소송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고린도전서 6장 1-8절을 방패로 세우고 나타나는 상례(常例)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비추어 보면 박윤선은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이용한다. 그 증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고린도전서 6장은 ‘어느 형제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에 [다른] 형제(제3자)에게 재판(또는 중재)을 받으라’고 한다. 고린도교회라는 같은 치리기관 아래 있는 교인이 이 교훈에 순종하지 않으면 반역자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 총회측 교회의 교인들과 고신측 교회의 교인들은 같은 치리기관 아래 있지 않다. 고신측 교회 교인이 총회측 교회에 가서 치리를 받고, 총회측 교회 교인이 고신측 교회에 와서 치리를 받으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치리기관이 같지 않기 때문에 마태복음 18장 15-17절에서 가르친 예수님의 교훈이 적용될 수 없는 처지이다.



둘째, ‘불의한 자 앞에서 송사하지 말라’는 이 말에 나오는 ‘불의한 자’는 세 가지에 해당한다. (1) 이교도 법관―회개하지 않는 자, (2)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는 법관, (3) 심령이 어두워 사리(事理)를 바르게 판별하지 못하는 자이다.

위 가르침은 고린도 지역에서 국가법정에 소송을 하는 기독신자들과 그 당시의 고린도지방 재판관들의 비정상적인 처사를 전제로 하여 경계한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제한 없이 적용되어야 하는 규정으로 볼 수 없다. 바울 자신도 고린도에서 유태인들의 제소를 받아 총독의 심판을 받았고, 로마의 비기독교인 황제에게 상소했다. 그러므로 위 본문은 때와 장소와 사람을 불문하고 불신자 재판관 앞에 서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정당방위 차원의 소송은 정당하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이방 불신 황제에게 호소하여 자기 민족을 구출한 것을 보면 성경은 사리사욕을 떠난 기독교 단체와 윤리를 위한 소송의 정당성을 용납하고 있다. 한 교회 안의 형제끼리 다툼이 생길 때에 그 교회 치리기관을 도외시하고 즉각 불신법정에 제소한 것을 꾸짖은 것이다. 지극히 사소한 것들(고전 6:2)까지 교회의 중재 역할을 경유하지 않고 곧장 세상 법정에 가져감으로써 마태복음 18장 15-17절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셋째,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임을 당할지언정’이라고 한다. 이것은 원고와 피고가 서로 격분하여 행악과 패역을 참지 못할 뿐더러 형제를 해치려고 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사소한 일로 한 교회 안에 있는 형제에게 교회의 치리기관을 벗어나서 곧장 불신법관 앞에 가서 세도를 부리고 뇌물을 써가면서 약한 형제를 억울하게 한 일에 대한 교훈이다. 당시 고린도교회에는 소송을 남용하는 일이 많았다(고전6:7). 문창교회 건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생활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자기 것을 포기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넷째, 예수께서는 재판을 부정하지 않았다. 억울한 일을 당해 법정에 호소하는 것은 정당하다(눅18:1-8).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기본 권리이다(벧전2:13-14).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고 말했다. 이 말은 자신이 무법자들로부터 곤욕을 당할 때 불신 로마총독과 황제에게 제소한 것과 관련이 있다. 약한 신자가 불법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로부터 침해를 당할 때에 국법에 호소하여 보호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은 국가와 소송제도를 허락하셨다. 그런데도 사람이 어찌 함부로 이 제도를 부정하며 소송을 하거나 응소를 하는 일로 형제를 저주하며 그릇된 판단을 하는가? 정당하게 제소하는 소송이 덕이 되지 않고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왜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소송을 용납하셨는가? 국가법정 소송이 덕이 되지 않고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상태를 피하려고 하면 진리의 종들이 실천하고 성삼위 하나님께서 용납하고 간섭하고 계시는 국법에 맡겨서 해결하는 것이 현명하고 선량한 방책이 아닌가?

다섯째, 국가법정 소송을 부정하고 배격하는 것은 인기전술로 보인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일종의 호기심으로, 성경을 세밀히 살펴보지도 않고, 다만 자기의 주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것과 같다. 박윤선은 처음에는 국가법정 소송, 응소가 죄라고 말하더니 그 다음에는 비진리라고 하고, 그 다음에는 교리에 위반된다고 하고, 또 그 다음에는 비성경적이라고 하고, 지금은 이상에 말한 모든 것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덕이 되지 않고 은혜롭지 않다는 이유로 불신자 재판관 앞에 서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24장은 말미에서 “부득이 하여 이혼하게 될 때에는 법관 앞에 가서 하고 자의로 하지 말라”고 한다. 이 말은 법관 앞에 가서 판단을 받는 것이 성경적인 교훈이라는 뜻이다. 장로교 정치조례 제349문답, 제376문답, 제377문답은 교회의 재산은 국법과 법률에 의하여 조처하라고 한다. 재산권 문제가 발생할 때 그것을 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죄를 범하는 일이 아니다.

여섯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건축과 관련하여 바벨론 재판정에서 승소했다. 기독교의 개인 윤리와 단체 윤리는 구분해야 한다. 교인들에게 개인재산은 법적으로 확보하라고 하면서, 교회가 소유한 재산은 법에 따르지 말고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일곱째,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장로교회의 신학적 기초이다. 위 제4권 20장은 고린도전서 6장 1-8절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고린도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의 분쟁과 무절제로 말미암아 불신자들로부터 우롱을 당하고 있었다. 형제와 형제가 분쟁을 하고 있었다. 바울은 우리가 침해를 받을 때 대응하지 않고 그대로 참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탐욕에 불타올라서 남의 재산을 두고 서로 격분하여 소송을 하는 그런 일이 교회에 손해를 초래했다. 바울이 금한 것은 광기를 가진 법정쟁론이다. 모든 류의 소송을 완전히 금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칼빈의 가르침이다. 송상석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일본어 번역판을 읽고서 답한다고 밝힌다.

송상석은 수년 뒤에 출간한 『법정소송과 종교재판』(1976)에서 “성도 간의 문제를 교회법정의 재판 절차를 밟지 않고 불신법정에 제소하는 것은 법과 도리 상 성도의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을 언급하면서 신자 간의 불신법정 소송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자신이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회로부터 법정에 기소되고 고신교회 총회로부터 목사 면직저분을 받은 상태에서 자기를 환영해 주는 ‘반고소 고려교단’의 입장을 강하게 의식한 말로 보인다.

5. 목회자다운 박윤선, 신학자다운 송상석

신자 간의 국가법정 소송론 논쟁에서 신학자 박윤선은 목회자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목회자 송상석은 신학자다운 방식으로 반격했다. 박윤선은 이 주제에 관련된 성경본문을 신약전공 신학자답게 분석하거나 교회의 신앙고백과 개혁주의 신학에 따라 검토하지 않고 다만 건덕·신덕·은혜 되지 않음·진리운동에 방해됨·전도의 문이 막힘 등 현실 상황에 호소했다. 그는 ‘성경이 그것을 명백하게 금한다’고 말하지 않고, 진리운동이 성공하자면 신덕을 쌓고 좋은 소문을 얻어야 하므로 문창교회의 응소는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윤선이 자신의 지도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려신학교 교장, 교수직을 사임한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고려신학교가 진리운동의 선봉에 선 것과 문창교회 건이 연대 관계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지역 교회의 응소는 진리운동 그룹의 표상인 고려신학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연대관계를 고려하여 송상석에게 재산을 넘겨주라고 권면할 수 있지만 신학교 교장 직임을 담보로 송상석과 문창교회의 응소를 규탄하고 학교를 떠난 것은 합리성을 벗어난 행동으로 보인다.

반면, 송상석은 신학자답게 논의를 진행했다. 그가 펼치는 역사신학, 교의학, 성경해석학적 고찰에 바탕을 둔 논증의 정확성은 접어두더라도, 접근방법은 학자적이었다. (1) 신자와 불신자, (2)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법을 따라 교회 안에서 문제해결을 시도한 뒤에, (3) 치리회가 서로 다를 경우에 신자가 국가법정에 호소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원고와 피고가 같은 교단에 속해 있지 않는 탓에 재산권 문제를 교회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송상석은 자기 재산이 아니라 교회의 재산을 보호하고자 고소에 맞섰다. 기독신자인 상대방이 소송을 제기하면 그가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지 않는 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았다. 교회재산은 총회나 노회의 소유가 아니라 교인들의 헌금으로 모아진 교인의 합유(合有) 또는 총유(總有)이다. 그 재산을 무조건 내어주는 것은 청지기의 도리가 아니며, 악과 불법을 방임하는 일이다. 불의를 감행하는 기회를 증대시키고, 사회적인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게 된다고 보았다. 불의를 방임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교회법정이 판결할 수 없는 재산권 같은 문제는 국가법정에서 판단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송상석은 주장은 이처럼 신학, 역사, 논리에 호소하며 매우 치밀한 논의를 전개했다. 일본어로 번역된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분석하여 참고 적용했다. 신학자 박윤선과 목회자 송상석의 논쟁은 후자의 승리로 평가된다. 소송을 인간생활의 가장 저급한 행위로 보는 한국사회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건덕’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그리고 법정 소송이 난무하고 국가 법정이 교회의 고유한 사안을 결정하는 악습이 반복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어느 편이 진정으로 승리했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평가해야 할 사안이다.

송상석이 법정대응 투쟁에서 확인한 ‘교인 총유’(總有)라고 하는 판례는 약 50년 동안 한국교회의 재산권 재판의 기준이 되었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2006년 4월, ‘총유’ 개념의 판례가 교회의 분쟁을 부채질하고, 갈수록 교회 재산권에 대한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는 점을 고려하여, 그리고 교회는 법인이 아니라 사단(社團)이라는 이유를 근거로, 교회가 분열할 경우 교인 2/3 이상을 확보한 경우에만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판결했다.

리포르만다(기독교사상연구원 제11차 학술회, 2018.12.06.) 발표논문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저작권자 ⓒ 리포르만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 시 출처 표기>




치마를 벗고 정조를 스스로 내주는
오늘의 사태에 대한 정확한 원인 진단이 되어야 한다...

[7/7] 눈팅1 IP 121.254.16.x 작성일 2009년1월11일 09시49분
제가 써프에 자주 들어와 글을 읽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님의 글 때문입니다. 항상 새로운 자료 첨가해서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항상 그 노고와 정성에 감사드리며....

귀하가 서프라이즈에 올리는 기독교 신사참배 문제와 여러 목사들의 죄악상에 대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마 서프에서 귀하가 올린 글만 수십차례(우연히 클릭)해서 읽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님이 이상한 글을 올리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정독한 결과 내게 유익을 주었습니다. 나는 교인인데 평소에 교회의 죄악상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고 신사참배 건도 문제가 있는 것만 피상적으로 알았지, 귀하가 올린 내용처럼 그렇게 파렴치하고 인간쓰레기 백정짓이 해방 후에 자행됐는지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분노하였습니다.

나는 귀하의 글 애독자가 되었는데 서프에 들어와서 귀하의 글을 어떻게 찾냐면 자극적인(?) 제목을 우연히 클릭하면 귀하의 반가운 글이 있고, 예전에는 귀하가 ★▶ 이런 찐한 별표, 화살표 문양을 제목에 넣어서 제가 얼른 알아차리고 클릭해서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서프에 와서도 시간을 많이 쓸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 글이나 읽을 시간이 없어서 귀하의 글을 찾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하여튼 앞으로도 잘 읽겠습니다. 부디 귀하의 글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아직 귀하가 링크한 파일은 바이러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클릭해서 다운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내 조심성이니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어떤 경건한 개혁목사이자 신학자는 당시의 썩어빠진 사이비 목사들을 향해 "잡종 성직자" "우상의 목자" "바벨을 사랑하는 자"라고 격하게 비판하였더군요. 나는 이 말이 오늘의 많은 사이비 목사들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진실하게 믿어보고 이웃을 위해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부족한 저에게는 한국교회의 과거 어두운 역사와 현재 많은 목사들의 더러운 행태를 알려주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인간적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군요. 그럼...


아래가 어느 분이 여러해전 "성경 다음으로 보관 하겠습니다!!"라고 댓글을 올린 글

치마를 벗고◆정조를 스스로 내주는


수치의 순간

◆강조점들을 컬러처리하여 기억하기에 좋게 만들었사오니 저장해 두시어 여기저기 게시판들에 푸기 등 많은 이용바랍니다. 서문은 맨뒤로 옮겼습니다.


일본에 가서 신사참배를 한 조선교회 교역자 대표들(1943년)

숫처녀가★갈보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쫓겨났습메
한국교회는 이 공적인 불경건 죄에 대하여 아직까지도 교단적으로 회개를 한적이 없다.

열왕기하 4 : 26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이렇게 속이지 말자는 겁니다)

1938년 평양에서 열린 조선장로교 총회가 일본 우상에 절하는 것에 찬성을 가결하였는데 여기에 맹렬히 반대한 소수의 목사님들이 있었다. 널리 알려진 평양의 주기철 목사(1897-1944, 경남)는 양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조직적인 반대운동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경남출신인 한상동 목사(1901-1976)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 맹렬히 반대운동을 벌이고 다녔다

한상동 목사(평신, 고려파 총수, 고신대학장)
그리고 만주에서는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메이쳔파 선교사인 한부선 선교사(1903-1992년, 나중 고려파에 가담)가 반대운동을 주도하다가 2차대전 발발후 귀국보다는 감옥행을 택하였다가 나중 포로교환 때 미국으로 강제송환되었다.


▲고려신학교는 신사참배에 항거하던 지도자 주남선 목사, 한상동 목사 등 옥중 교인들의 특별기도회의 결과 1946년 9월 20일 개교했다. 고려학교를 설립한 후 앞줄 왼쪽부터 한부선, 주남선, 박윤선, 한상동. ⓒKPM

이러한 반대운동을 하고 다닌 목사, 전도사들의 숫자는 많지는 않다. 현재 충현교회 원로 목사인 김창인 목사의 경우는 반대하다가 만주로 도망을 가서 신앙적인 정조는 지킨 셈이다. 신학교는 1950년대 말에 가서 부산의 고려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런데 성경에 말하고 있는 바는 목사는 당연히 이러한 것에 대하여 경고하고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에스겔 3 :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에스겔 3 : 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일본우상에 절하는 것에 반대운동을 하다가 옥중에서 순교한 순교자의 수는 약 50명이고 고문과 옥중기아와 추위(영하 40도)를 견디어내고 출옥한 성도들의 숫자는 20여명이다. 그래서 이들을 “옥중성도(獄中聖徒)” 혹은 “출옥성도(出獄聖徒)”라고 부른다.

출옥성도중 주요인물은 한상동 목사(1901-1976, 사진에서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손양원 목사(1902-1950), 주남선 목사(1893-1950), 이인재 목사(1908-1999, 미국), 조수옥 권사(2001년 현재도 마산에 생존, 사진에서 뒷줄 맨왼쪽) 등이다.



출옥성도들, 유명한 사진인데 구하기 힘든 고화질 저장바람
(8.15 해방과 함께 출옥한 옥중 성도들이 평양의 주기철 목사 사택에 모인다.)

해방이 되자 일본우상에 절한 목사들은 면목을 잃게 되었고 감옥에서 나온 옥중성도들은 배도한 한국교회에 대하여 회개를 촉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2천명 정도 되는 장로교 목사들은 자신들의 생명줄을 끊는 것으로 여겼으므로 이에 대하여 반발하고 저항을 하게 되었다. 출옥성도들이 제출한 회개법안이란 것은 단 2개월의 자숙기간을 갖자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반발 한 것이다. 만주로부터 귀국한 평신교수였던 박형룡 박사(1897-1978, 프린스턴 졸업, 평신, 고신초대교장, 총신 교수 역임)가 수양회 도중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자 다음날부터 강사자격을 박탈한 것은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박형룡 박사(1897-1978, 프린스턴, 평신교수, 고신교장, 총신교수)
해방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친일파 경찰들에 의해 습격되어 구타 고문 당한 후 해산된 것같은 현상이 한국교회 내에서 벌어진 것이다.

독일에서는 나치에 협력한 대부분의 목사들이 3년동안 목회를 못하고 그 동안에 지하에 있던 목사들이 교회를 주도하였다.

그런데 한국교회 대부분의 아마도 99.9%가 넘는 양떼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르고 있다. 아예 관심도 없다는 편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50대의 목사들조차도 자세한 얘기는 거의 모른다. 아니, 아예 관심 대상조차도 아닌 것이다. 여기에 역사의식(歷史意識)의 결여(缺如)를 볼 수 있고 이와 유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가 있는 것이다.

1951년에 6.25중 부산에서 장로교총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배도한 목사들이 출옥성도들을 여지없이 제명해 버렸다. 그리고 시무중인 예배당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다. 말하자면 요새 어느 토론장에 어떤 분이 “■나성한인교회 속보” 하고 올려놓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예배당 쟁탈전”이 벌어질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출옥성도중의 중심인물이었던 한상동 목사는 저항을 하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대부분의 성도들 약 4백명과 예배당을 내주고 나와 맨땅 위에서 비가 오는 가운데 예배를 드렸다. 이때 초량교회를 접수한 목사가 년전에 세상을 뜬 1958년에 장로교 총회장을 한 노진현목사이다. 당시 초량교회에 남아서 예배당을 차지한 교인들 수는 구영기 목사, 양성봉장로 등 20명 정도이다.

위에서 구영기 목사는 예배당을 내주고 나온 대부분의 교인들로부터, 스스로 말하기를, 인간취급을 못 받았고 경남지사로 이승만 박사의 총애를 받던 양성봉 장로는 훗날 60년대에 세상을 뜰 때 당시의 잘못을 회개(悔改)하고 한상동 목사를 불러다 기도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예배당 탈취한 당시 장로교 총회쪽에서 생각하듯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출옥성도는 내주고 나왔으나 그를 지지하는 교인들의 교회는 그렇게 탈취가 용이하지 않았다. 피땀 흘려 세운 예배당을 쉽게 내주리라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약신 목사(1952년 고려파 1대 총노회장, 이효재 교수 부친)등이 시무하던 교회 등은 탈취할 틈새가 없어서 탈취를 못하였다.

그리하여 총회측(당시에는 합동과 통합측이 나뉘기 전)에서는 법정에 소송을 걸게 되었다. 그리고 총회적으로 지원을 하게 되었다.

성경에 교회 내의 문제를 세상법정에 고소할 것을 금지하는 유명(有名)한 구절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고린도전서 6 : 1-7

너희 중에 누가 다른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위 총회측의 “법정 고소”에 대하여 “응소”한 분이 1930년대 한국교회에서 주초문제 등 절제운동을 하기도 한 절제운동가 송상석 목사(1897-1978)이다. 그래서 장장 10여년 세월에 걸쳐서 대법원에까지 올라가는 법정 공방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송상석 목사(1896-1980, 고신의 행정지도자, 속칭 ‘부곡사단’ 총수)
총회측에서 출옥성도측을 고소한 이유는

☆ 재산이 탐나고 또 교인 이탈을 막고자 하는 점도 있었겠지만 다음과 속셈이 있었다.

☆ 즉 “출옥성도라는 사람들이 뭘 세상 재산에 관심을 갖느냐?”는 식으로 망신을 주고자 하는 비열한 계산.

☆ 또 고소한 인간보다는 고소를 당하는 쪽이 시달린다는 것을 이용하고자 아는 속셈과

☆ 고려파 내부를 흔들어 놓고자 하는 교활한 착상.

아닌 게 아니라 우선 고려파 내부에서 논란이 심하게 일게 되었다. 즉 박윤선 교수가 응소를 극력 반대하여 송상석 목사와 논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박윤선 교수(1905-1988, 평북 철산, 고신교장, 총신교장, 합신교장)
박윤선 교수는 앞서의 ‘고린도 전서 6장’을 들어 여기에 위배가 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덕이 되지 않는다고 반대하였고 이에 항거하는 송상석 목사의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 고소한 게 아니라 불가피하게 응소한 것이다.

* 위 구절은 같은 형제간의 문제이다. 갈려져서 서로 “치리기관”이 다르니 총회측과 고려파측이 서로 잘못이 있을 때 내부적인 치리를 할 수 없으므로 해당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송상석 목사의 10여년에 걸친 세월 동안의 항거는 실로 놀라운 바가 있었다.

그런데 1960년 합동측과 통합측이 갈릴 때 합동측 목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과거 출옥성도들을 쫓아낸 것을 사과하고 하나가 되자 했을 때 거절하면 교만하다고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한국 보수신앙의 위기였기 때문에 출옥성도 한상동 목사를 총회장으로 내세우고 합동하게 되었다. 이때 합동총회의 사회를 본 분이 바로 송상석 목사이다.


http://kcm.co.kr/korchur/chpic/1960-2.gif

사진설명:
(NAE운동을 지지하는 장로교는 고려파 교회와 합동하여 1960년 승동교회에서 합동총회를 개최하여 소위 예장 합동이 형성되었다. 맨앞줄 가운데 분이 출옥성도 한상동 목사이다. 그리고 맨 오른쪽 분 뒤에 분이 박형룡 교수이다. 1947년 고려신학교(교장)에서 나온 것을 몹시 후회하고 돌아가시기 전에 한국교회 개혁에 관한 한상동 목사의 견해가 옳았다고 하였다.)

그 이후 총회장을 한상동 목사가 연임했으니 처음 약속과 달리 숫적 우세를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나가므로 부득이 다시 분리하게 되었다. 이것이 유명한 한상동 목사의 1962년 ‘복교선언’이다. 이때 경남노회 소속의 고신측 교회는 송상석 목사의 탁월한 행정력에 힘입어 거의 다 환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로 이북출신의 목사님들로서 고려파에 가담했던 분들은 환원하지 않고 합동측 교단에 잔류하게 되었다. 주요한 분들은 나중에 1980년대에 합동측의 총회장을 역임한 세사람 김창인, 최훈, 김현중 목사(2001년 소천)등이다. 이 세사람은 모두 신학교는 1950년대에 고려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러면 그 대법원까지 올라간 “예배당 양도 소송”의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1965년 판결은 “예배당은 교인의 총유”라는 것이다.

그런데 응소한 처음 당시에는 송상석 목사의 교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응소항전이 계속 되는 과정에서 너무나 고통스러운 고로(출옥성도 지지측이 예배를 못 드리게 막거나 시간을 갈라서 예배를 보게된 일) 많은 교인들이 여러 교회를 만들어 나가거나 이웃 다른 교파의 교회로 옮기거나 하게 되었다. 이북에서 내려온 교인들 알박기 등 그래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결국은 숫자가 적으므로 예배당은 통합측에 내주고 교육관으로 물러서게 되었다.

이 와중에 응소에 반대하는 박윤선 교수는 고려파 탈퇴선언을 하기도 하였다.



3. 결언

위같은 이러한 대법원까지 올라가 판결이 난후 교회간에 분쟁이 있을 때 처리는 쉬워지게 되었다. 즉 송상석 목사의 소신이 법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나중에 심판하실 것인가? 여러분들이라면 여러분들의 교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불신자들은 앞으로 교회에 다니게 되어 이런 일이 벌어진 다면 어떡할 것인가?

* 고소를 한 총회측 목사들이 잘한 것인지?
* 응소한 송상석 목사도 잘 한 것인지?
* 예배당을 서슴없이 내주고 나온 한상동 목사가 잘 한 것인지?

한상동 목사가 잘했고 송상석 목사 박윤선 목사도 각각 잘 한 것인가?
대법원에까지 가서 예배당 탈취에 성공한 총회측 목사들이 “승리(勝利)의 기쁨”을 누렸으니 신나는 일인가?

예배당을 서슴없이 내주고 나온 한상동 목사의 경우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목사의 처신은 교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라인홀드 니버가 지적한 바 있지만 ▼“사람이 패거리를 이루어 환장을 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게시판에 들르는 여러분들은 각별히 이 점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예배당 탈취하고 천당 안가기로 작정한 다음이 아닌 다음에야 그리고 회개는 심리적인 카타르시스에 불과한 게 아닌 다음에야 기독신문 주필인 한명수 목사의 다음 말을 빌어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한경직 목사님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한 목사님께서 63빌딩에서 템플턴상을 수상하실 때, 신사참배에 대해 자숙한다고 해서 상당히 그 자리가 엄숙해졌던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투옥되고 순교한 사람들 앞에 해야할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멘~~~~~~~~~~~~~~▶




사진첨부 추악한 한국장로교회사
내일의 교훈

사진 & 추악한 한국장로교사


『종교는 공적 영역에서 거론되지 않는 것이 좋다는 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정만석 간사--(맨 뒤 추가 설명)


●한국장로교의 추악한 역사를 밝힌다●

* 성경에 더러운 얘기는 감추고 기술이 안되어 있습니까? 아니지요! 다 모두 기술했지요. 그러한 추악한 얘기들을 왜 읽습니까? 후세에 교훈을 삼았지요! 과거에 눈감으면 현재에도 봉사가 됩니다. 내일은 오늘의 미래입니다. 오늘 바로잡지 아니하면 밝은 내일은 없습니다.

* 다른 교파들은 더 했으면 더해서 아예 바르게 살아보자는 분들이 없었을 정도였으니 오해는 마십시오.

* 이런 얘기를 쓰는 것은 아직도 장로교 각교단들이 교단적으로 회개 선언을 안했기 때문입니다. 개별적으로 뜻있는 분들이 선언한 것은 있습니다.(●부록1) 맨뒤에 붙입니다. 회개할 때까지 회개를 촉구하는 게 성경적이며 이제 사회가 교회를 개혁시켜야 할 때입니다.(●부록2) 건전한 상식부텀 회복하라고 말입니다.

열왕기하 4 : 26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이렇게 속이지 말자는 겁니다)


RE;[질문]합동.통합.... : 아주 자세한 설명 1

* 계속 주요 내용을 추가 개정하고 있으니 참고 하실 분은 다운로드 해놓으시면 좋습니다. 성경공부 백번 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가치가 훨씬 더 있습니다.


맑은 새벽입니다. 안녕하세요.
이곳의 글을 읽다가 보니 기독교에 '합동' , '통합' 등이 있다고 하는데 이건 장로교나 침례교와같은 교파를 말하는 건가요? 그럼 미국이나 외국에도 합동파, 통합파등이 있나요?

기독교에도 종류가 많은것 같아 헷갈리네요? 잘 알고 있는 분 계시면 간단한 설명 부탁합니다.

안녕히...

[ 김 형석 : ]


자세한 설명: 우선 쓴 것을 올리고 몇시간후 나머지 부분들을 올리겠습니다. 우선 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장로교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에서는 주도적인 교파로 전개신교인의 70% 정도를 점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242개 장로교 교단들이 있습니다.

해방전까지는 장로교파는 한 개였습니다. 미국북장로교 호주장로교 등 여러나라 장로교선교부에서 왔지만 협력하여 전도했기 때문에 교파는 하나였고 신학교도 1908년에 설립된 평양신학교로 하나였습니다.


http://kcm.co.kr/korchur/chpic/1908-3.gif
(평양에 설립 (1901)된 장로회신학교는 이후 한국 장로교회 신학자와 목회자 양성의 요람이 되었다. 사진은 1908년에 건축된 초기 교사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장로교가 1938년도에 교단적으로 신사참배를 결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의 전목사가 신사에 참배를 하고 그 이후 예배당안의 강대상 전면에 일본 우상신을 설치하고 거기에다 먼저 절하고 예배를 드리는 끔찍한 일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들은 악질목사들의 주도로 일본중이 주는 ‘미소기 바라이’라는 세례의식을 한강이나 혹은 추운겨울에 바다에 나가 완전 나체로 받았던 것입니다.


다른 감리교파나 성결교, 카토릭은 등은 자발적으로 신사참배에 나섰기 때문에 뭐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 속된 말로 “알아서 긴” 것입니다.


http://kcm.co.kr/korchur/chpic/1943.gif
(일본에 가선 신사참배를 한 조선교회 교역자 대표들(1943년))

가장 강력히 저항한 교파가 장로교파였는데 그 저항을 한 목사님은 약 천명 가까운 평양신학교 졸업생인 목사들중 겨우 20여분이었습니다.

이분들이 다수가 감옥에서 순교하고 일부가 살아서 해방후 출옥하였는데 이들을 “옥중성도” 혹은 “출옥성도(出獄聖徒)”라 부릅니다. 약 20여 분이었는데 그 중에는 전도사였던 분도 있고 여전도사도 몇분 있었습니다. 5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계신 분이 두어분 됩니다. 한국 교인들은 이분들을 이름을 아는 분이 0.01%나 제대로 될까요? 놀랍지요! 영양실조 기아로 여러분들이 줄줄이 순교하셨는데...

출옥성도중 주요인물은 한상동 목사(1901-1976, 사진에서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손양원 목사(1902-1950), 주남선 목사(1893-1950), 이인재 목사(1908-1999, 미국), 조수옥 권사(2001년 현재도 마산에 생존, 사진에서 뒷줄 맨왼쪽) 등이다.


http://kcm.co.kr/korchur/chpic/1945.gif
(8.15 해방과 함께 출옥한 옥중 성도들, 평양)
-위 쪽에 더 고화질로 나와 생략-

해방후 신사참배에 나섰던 목사들은 참으로 면목이 없게 되었는데 나치에 협력했던 도이치 기독교단에 소속되었던 독일의 목사들은 종전후 3년간 목회를 안하고 자숙을 하고 그동안 나치치하에서 지하교회로 있었던 고백교회 목사님들이 교회를 주도하였습니다.

여기에 비하여 일제에 아부하려고 신사참배에 자발적으로 앞장서고, 신사참배를 거절하는 혹은 반대운동을 하는 성도들을 일경에 밀고하여 끔찍한 고문을 받게한 목사들이 속을 못차리고 교권을 다시 장악하려고 하였고 또 많은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것을 지지하여 주었으니 문제였습니다. 요사이 김홍도 목사 사건 때 교계지도자들이 한결같이 김목사를 지지하는 걸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겁니다. 기득권 즉 밥그릇을 놓칠까 바 혈안이 되어 그러는 겁니다.

출옥성도들이 회개안을 제출하고 단2개월간의 자숙기간을 갖자고 하였는데 이것조차도 거부하고 1951년 그 출옥성도들을 교회밖으로 축출하여버렸습니다. 그래서 고려신학파가 생긴 것입니다. 이 출옥성도들은 경남출신들이 많아 신학교도 부산에 있는데 고려신학대학이 그것입니다.


(만주 봉천신학교에 있던 박형룡교수를 교장으로 하여 1947년 부산에서 고려신학교가 설립되어 고려파운동이 본격화되었다.)

그후 그들이 시무중인 예배당을 소송을 걸어서 빼앗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물론 출옥성도들은 두말 않고 내주고 나왔습니다. 이 교회당을 피땀흘려 가꿔온 많은 성도들은 자신들의 예배당을 버리고 빈손으로 출옥성도들을 따라 나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것에 분개하여 출옥성도들을 지지하는 교회들이 있었는데 친일파목사들의 총회에서 소송을 걸어서 10년간에 걸쳐서 필사적으로 항거하는 것을 제치고 예배당을 탈취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항거한 분을 지지하는 성도가 대다수였으나 그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운고로 제2문창교회, 동광교회등 새교회를 세워 나기도 하고 다른교회로 옮기거나 하여 예배당은 결국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고신측 송상석목사의 소신대로 “교회건물은 교인의 총유”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러한 판례가 있기 때문에 이제는 교회분쟁시 문제가 없습니다. 숫자적으로 우세한 측이 처음부터 소유권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식으로라면 맨처음 예배당을 서슴없이 내주고 나온 교회는 출옥성도를 따라서 그 교회를 나온 교인이 90%가 넘었으므로 그 예배당은 출옥성도측 교인들의 것인셈입니다.

그런데 세계교회협의회가 이차대전후 결성 되었는데 여기에는 공산주의자도 참여하고 노선이 불분명하고 불교 마호멧교와도 짬뽕을 하려고 논의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48년인가 장로교가 아직 하나일 때 몇몇 정치목사들이 가서 무조건 가입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일반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한국장로교는 WCC 소속이 된 겁니다. 여기에 옥중성도측은 처음부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1952년에는 국회에서 감리교목사이자 독립투사인 국회의원 이규갑(1887-1970, 충무공 이순신 9대손, 사모인 이애라도 독립투사)외 22명의 기독교인 국회의원이 WCC를 용공이라고 성명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럴만도 한 것이 전선에서는 공산군과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장로교대표들은 방콕에서 열리는 WCC 총회에 공산당들과 같이 참석했거든요. 그리고 6.25 때도 공산군이 서울에 진주하자 지금도 살아 있는 모모 목사가 대표들로 나서는둥 수백명의 기독교 인사들이 YMCA회관인가에 모여서 소위 “인민군환영대회”를 “김일성 장군... 운운” 하며 열었습니다.

그런데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를 반대한 장로교총회측에서 김재준이 자유주의신학을 가르쳐 그에 반대하는 학생들 수십명이 총회에 진정서를 내기도 하고 항의 했는데 그러다가 마침내 1952년 자유주의자들이 분리되어 기독교장로회 즉 기장교단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합니다. 여기에는 우두머리들이 주로 자유주의적인 캐나다 선교부가 맡아 선교한 함경도 출신들이 많습니다. 김재준 강원룡 조향록 등...

그때 김재준의 자유신학에 51명의 학생이 항거하였는데 일제말 설립된 조선신학교 학생 34명이 고려신학교로 전학을 했습니다. 전학의 이유는 평양신학교 교수였던 프린스턴신학교가 1929년 좌경화 되기 전에 유학을 다녀온 박형룡박사가 만주의 봉천신학원으로부터 귀국하여 고려신학교로 부임하기로 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34명의 학생들 주요한 인물은 지금도 교계원로로 활동하고 있는 정규오, 김준곤, 박창환, 신복윤 등등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총회안에서는 50년대에 NAE라는 보수적인 복음주의동지회측에서 세력이 매우 컷습니다.. 그당시 총회장은 명신홍(일제말 칼빈신학교유학, 나중 합동), 한경직(친일경력), 전필순(친일행각으로 반민특위에까지 체포된 자) 목사 등이 하고 있었습니다.

위 기장을 포함한 당시 총회측 목사들은 신사참배는 회개를 하기보다는 1938년의 총회에서 신사참배 가결한 결의를 취소해 버렸습니다. 즉 원인무효시켰는데... 그리고 신사참배를 안했다면 취소가 가능합니다. 다 신사참배 하고서 회개를 안하고 가결시킨 옛날 것만 취소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것도 여러번에 걸쳐서 취소하고 또 취소하고 그랬습니다. 장난도 아니고 이거...

그런데 신사참배 회개를 거부한 자들이 무슨 보수 자유를 따지는 게 의미가 별로 있었는지 서로 긴장관계에 있었는데... NAE 측의 우두머리가 지금 ‘합동’에서 나온 ‘개혁’의 정규오목사입니다. 그리고 그 고문이 박형룡박사입니다. 박박사(평북)는 1897년생으로 미국 프린스턴신학교가 좌경화되기 직전에 졸업하고 평양신학교에서 1920년대부터 신학교육을 시작한 당시 최고 교수였습니다.

이 박형룡박사가 1947년 중반 고려신학교 초대교장으로 있다가 외국선교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신학교의 위치가 부산인 점 그런 것 때문에 서울로 가버리고 서울에서 전학온 34명 학생 전원은 박형룡박사를 따라 서울로 가서 불과 두어달 후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부실한 거지요.

박형룡박사도 해방후, 평북, 전주 집회 등에서 수차에 걸쳐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였으나 그때마다 목사들이 들고 일어나 반발하고 집회강사를 못하도록까지 저항하는 고로 회개 보다는 후진양성에 주력하자고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1978년경 세상 뜨실 때 출옥성도인 한상동 목사님의 말대로 “회개를 우선하도록 하는 것이 옳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WCC를 찬성하는 우두머리가 한경직 목사(1902-2000, 평북, 숭전, 좌경무렵의 프린스턴졸)이고 WCC 즉 에큐메니칼운동을 반대하는 측의 우두머리는 박형룡박사였습니다. 이 두사람이 직접 치열하게 싸운 것은 아니고 그 아래사람들이 붙어서 싸운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1958년경 신학교부지를 구입하려는데 박박사가 외국선교부의 원조금 3,000만환을 박호근이라는 사기꾼에게 속아 날려버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WCC 찬성측에서는 “이때다!” 하고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한편 정규오목사(해방후 신학교 1회 졸업생)를 우두머리로 한 NAE측에서는 자신들의 고문이자 스승인 박형룡박사를 보호하기 위해 WCC 찬성측을 뒤늦게 용공으로 맹렬히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경기노회에서 총회에 보낼 총대를 뽑는데 이때 NAE측 목사들이 총대로 많이 뽑혔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발표했는데 그만 WCC측 한명이 누락되었습니다. 자기네들이 유리하게 뽑혔으므로 그 자리에서 다시 발표하면 될 것인데 그냥 넘어가서 이게 나중에 싸움이 붙어 걷잡을 수 없이 싸움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WCC에 찬성하는 파들(통합)은 저들끼리 따로 모여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된 바도 있었던 친일파 전필순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선교부들의 원조 등 때문에 목사들이 많이 쏠렸을 거는 당연합니다. 당시엔 태반의 사람들에겐 미국이 천당 가는 거였으니깐요. 기독교 학교 등 재산 등은 통합으로 남았지요. 평신도들은 합동측이 많았었다고 합니다.

한편 위기에 몰린 NAE측 목사들은 박형룡박사와 자기들도 한패가 되어 내쫓은 출옥성도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과거에 총회에서 축출한 것을 사과하고 하나로 합칠 것을 제의하게 되었습니다.

출옥성도측에서는 자신들을 교회밖으로 축출하고 예배당까지 탈취한 과거를 생각하면 그리 쉽게 화해 할 일은 아니지만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는데 거절하면 교만하다는 비난을 모면키도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고 한편 위기에 몰린 한국보수신학을 살려야 할 필요성이 요구되게 되었습니다.

http://kcm.co.kr/korchur/chpic/1960-2.gif

사진설명:
(NAE운동을 지지하는 장로교는 촐옥성도측 즉 고려파 교회와 합동하여 1960년 승동교회에서 합동총회를 개최하여 소위 예장 합동이 형성되었다. 맨앞줄 가운데 분이 출옥성도 한상동 목사이다. 그리고 맨 오른쪽 분 뒤에 분이 박형룡 교수이다. 1947년 고려신학교(교장)에서 나온 것을 몹시 후회하고 돌아가시기 전에 “한국교회 개혁에 관한 한상동 목사의 견해가 옳았다”고 하였다.)

---얘기가 점점 흥미 진진하게 전개 되는데...

NAE측과 고려측이 합하는 과정, 다시 분리하는 과정, 그후 전개 되는 상황, 그리고 1979년부터 시작된 합동측이 수십개로 분리되는 과정을 기술하자면 도저히 한두번에 끝내기는 힘들고 앞으로도 여러번 나누어 계속해야 할 것같습니다. 오늘은 이걸로 그치고 내일부터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나중에 위의 것을 다시 보충 정리하고 맨나중에 최후로 정리하여 한번에 시리즈로 올리겠습니다. 다운로드하여 참고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kcm.co.kr/korchur/chpic/1960-3.gif
(자유당선교위원회가 마련한 오찬에 참석한 교계지도자들(1960.2.18). 지금도 알만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위 내용은 많은 교회사 책들을 참고로 하고 여기저기 오랜기간 읽은 것들을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구두로 여기저기서 전해들은 것도 합했습니다. 자세히 쓴 교회사책이라도 한두권만 읽어서는 위같이 객관적 종합적으로 기술된 것을 찾기는 힘들것입니다.




위글을 가져오게 된 성경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열왕기하 4 : 26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이렇게 속이지 말자는 겁니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이라는 게 물질입니까?)

에스겔 34:10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현실과 일치합니다)

-----------------------------------------------------------------

**처녀가 당하고도 말못하는 충격사연 심층취재**
사진첨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성폭행 당하고도 신고하는 율이 2% 정도밖에 안된다고 언론들에 보도된 바가 있다. 법정에 서는 것조차 수치스런 일이지만 그 재판 진행과정에서... 한국의 성폭행은 세계 1위라고 한다. 얼마나 썩은 나라인지 미국은 인구 10만명당 몸파는 여자가 23명인데 우리나라는 몸파는 여자가 무려 1백만명이 넘는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몇 cm를... 몇분동안...” 하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 게 진행된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잡아 죽일 것같지만... 재판정에서서 호소하렵니까? 그렇게 “몇 cm를... 몇분동안...” 재판관에 호소하렵니까?

한국의 여성단체에 신고되는 여신도 성폭행 숫자는 엄청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단 1년만에 47건이 신고되었는데 실제 100배에 이르고... 교회의 특성상 모호하게 진행되는 점도 많고... 그런점을 감안하면 성가대원 50명 성폭행등 헤아릴수 없이 많이 여신도들이 교역자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근데 위와같이 당하고도 말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근래 모교수가 쓴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이란 책이 있다. 본문과 현장사이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현재 한국교회 실정과 교단간 눈치보기 때문에 얼마나 솔직하게 쓰여있나 의심스러웠는데 예상보단 신랄하게 쓰여 있다. 그래서 통합측과 한신대 즉 이른바 진보(내지는 자유)와 그 아류교단의 과거사를 상당부분 노출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먹사가 신사참배에 항거운동을 하는 성도들을 밀고하여 죽도록 고문 당하게 만들었고 어느 먹사가 주기철 목사의 노모 등 가족을 목사관에서 끌어내어 탈취했느냐는 등은 언급이 안되어 있다. 이름을 밝히지 못했음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이자들이 해방후 한국교회를 주름 잡았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최고 지도자로 행세하며 존경을 받고 있는데...

위 책의 점수를 매긴다면 한 70점이나 될까? 위 책에 비하여 성결교 소속의 이선교 목사님이 쓴 “다시 써야 할 한국교회사”는 신랄하게 까발긴 점으로 보아 한 80점은 된다. 하기야 이선교 목사님은 한경직 목사를 검찰청에 반란방조혐의로 고발하여 신문에 보도되고 한동안 그것 때문에 지하언론이 무성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위 두책이 최초라 할만치 전반적으로 한국교회의 친일 친독재문제 그리고 그에 따른 부정 사기 협잡들을 노출시킨 점에서 훌륭한 책이라고 할 것이다. 예상보단 불과 몇 개월 사이에 4판까지 나온 것을 보아 그것도 반가운 일이고.


통합측이나 한신측 그리고 합동측에서 사이비 교회사가들이 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들이 있다.

“(출옥성도 성자란자들이) 예배당 쟁탈전을 벌였다...” 즉 자세한 서술도 없이 무조건 소위 성자들이 세상 재산에 탐이 나서 혈안이 된 인간들이라고 하는식으로 매도한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출옥성도측에서 나온 책에는 이 부분이 거의 누락되어 있다. 이 문제는 좀 긴 설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출옥성도들은 물론 대부분의 교인들과 두말없이 피땀흘려 가꾼 교회를 내주고 나와 맨땅위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출옥성도들을 지지하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예배당을 내놓으라고 총회측(통합과 합동이 분리되기 전)에서 소송을 걸자 그걸 항거하는 성도들이 응소를 하여 장장 10년간에 걸쳐 대법원에까지 가서 판결이 난 것이다. 즉 예배당은 교인의 총유이다. 그러면 위 출옥성도측의 예배당은 교인들 90% 이상 대부분의 지지를 받았으니 출옥성도측의 예배당이다.

사기꾼 먹사와 교회사가중 대부분인 사이비 교회사가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소리가 있다. 즉 “하나님만이 누가 뭣이 옳은지 아신다”는 것이다. 미친넘들! 성경은 뭐하러 끼고 다니고 설교까지 하나? 성경에 비추어 보면 알 것 아닌가? 일반계시인 양심으로도 판단 할 수가 있는 문제이고. 잘 몰랐다? 그럼 아래 태만의 죄에 해당한다.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리고 또하나 사이비 교회사가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소리가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할 문제이다” 라는 것이다. 단순히 신사참배만 한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친일하며 갖은 악행을 다하고 동족을 못살게 군 목사들에게 맞는 소리인가? 성경은 치리의 의무성을 말하고 있다.

더구나 Y 신과대학 명예교수란 또라이 교회사가는 “그 말에는 반박못할 논리와 신학이 있다”고 하는데 그럼, 컨닝하다 걸린 신학생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할 문제이다”하고 반발한다면 어떡할 셈인가? 공적인 죄는 공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위에 대한 참고문은 다음 “몸버린시골처녀를” 클릭하며 자세한 것을 읽을 수 있다.

(3-2 파일을 열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위자가 속한 교단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에 까지 체포된 바 있는 일경에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는 성도들을 밀고하여 죽도록 고문 당하게 만든 추악한 악질 한국교회 지도자를 읽고 싶으면 아래 “치마를 벗고” 안에서 나오는 “최고악질”을 클릭하시면 자세한 얘기를 읽을 수 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총회측(합동과 통합, 기장)이 출옥성도들을 독선주의자 분리주의자들로 매도하니 그것을 방어하기에 급급한데 과연 성경신학적으로 그게 옳은 태도인가? 자의적으로 분리했나 쫒겨남을 당한 것인가 하는 사실확인을 해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론 아예 맞받어 쳐버리는 게 나을 것이다. 실제 처음부터 그런 교단도 두 개나 있다.

아래를 “치마를 벗고” 클릭하면 자세한 얘기가 나온다.

(3-1 파일을 열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왕따 당하는 게 두려웠던가?
“스스로 자기를 위해서 말할 능력이 없는 자들을 위해 말하라”(잠 31:8)

당시 응소한 목사는 출옥성도는 아니고 해방후 출옥성도편에 선 1930년대에 한국교회에서 절제운동(주초문제)을 하던 송상석 목사(1897-1977)이다. 이분이 행정능력이 탁월하여 그대로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운 것이다. 그리고 이분이 바로 해방후 당시까지 만주봉천신학원에 머물던 한국보수신학계의 거성 박형룡박사(1897-1978)를 배를 전세내어 타고 만주에 가서 비밀리에 모셔온 분이다. 즉 오늘의 총신이 있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치마를 벗고 정조를 스스로 내주는■★←클릭!!

■비명을 지르는 여자는 때려 쓰러뜨린후...■★←클릭!!

■바른진리를 찾아서, 고신환원■★←클릭!!

■친일파들의 악랄함을 만천하에 폭로한 분■★←클릭!!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123841


IP : 107.167.108.x
닉네임
번  호 제        목 글 쓴 이 조  회 누  리 등 록 일
이명박, "BBK는 내가 설립했다" (5) 편집국 147704
5
35
07-05 14:24
[법원제출] 프로펠러 손상 관련 검증에 대한 의견서 (7) 신상철 363822
95
205
06-13 07:16
[법원제출] '제3의 부표'관련 UDT 대원 증언에 대한 의견서 (9) 신상철 419765
70
145
06-30 21:18
[검증] 천안함 '1번 어뢰'는 고철 덩어리 (9) 신상철 356304
86
45
10-28 09:10
[단상] 신에게는 아직 12번의 재판이 남았습니다 (12) 신상철 196583
40
80
07-13 13:35
124446
천안함 사고를 목격한 초소 위치를 알려줄게 正추구 7
0
0
03-31 21:45
124445
난 이낙연 같은 넘은 필요없다. 들어오고 시프면 들와 엿장수냐 8
0
0
03-31 20:02
124444
오늘밤 8시30분에 mbc every 원에서 미스터 트롯 예능... 마파람짱 7
0
0
03-31 17:52
124443
3월 십팔일은 그야말로 십팔놈의 날이었네 마파람짱 7
0
0
03-31 17:44
124442
가디언, 한국 대 미국 같은 시작 다른 결과: 트럼프 ... 뉴스프로 43
5
5
03-31 14:34
124441
[이정랑의 고전소통] 선성후실(先聲後實) 이정랑 20
0
0
03-31 12:51
124440
남조선 사람들은 은근히 일본인보다 더 일본걱정 하네 김순신 167
20
0
03-31 09:49
124439
제주 도민들이 ‘강남유학생 모녀 1억 3천만원 소송’... 아이엠피터 46
0
5
03-31 09:27
124438
여자들은 투정거리는 것 뿐이니 건드리지 않겠다. 간다. 10
0
0
03-31 08:50
124437
내잎을 건드렸으니 피값은 무조건 받겠다. 낙장불입 15
0
0
03-31 08:28
124436
허경영😎강간범도 공천 8억받아🔞 보조금 타내 120
10
10
03-31 08:13
124435
자결해라 7
0
0
03-31 07:53
124434
경기도의회가 탄핵을 하지 않았는데 재판장이 탄핵을 ... 주제파악해 8
0
0
03-31 07:50
124433
❎썩어문드러진 정치검찰 원래 그러고 사는 장도리만화 125
20
10
03-31 01:02
124432
😎황교활 갈팡질팡 우슴꺼리😎 국민일동 134
20
10
03-31 01:00
124431
그런건 꿈틀거리는 거야 - 밟지마 13
0
0
03-30 20:31
124430
경기도의원이 135명이잖아 - 언급할 가치가 없다. go 17
0
0
03-30 20:28
124429
황교안이 짓밟은 아람회사건 피해자들의 원상회복을 ... (1) 사람일보 56
5
5
03-30 13:52
124428
이제 남조선도 경제노예화->경제민주화로 가자 김순신 124
10
0
03-30 12:13
124427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움, 문재인이라는 부끄러움 대깨문 60
5
0
03-30 11:54
124426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움, 황교안이라는 부끄러움 권종상 82
0
5
03-30 11:49
124424
문재인 대통령님께 드리는 세 번째 브리핑 (1) 신상철 152
0
5
03-30 10:29
124423
‘문재인 심판’ 내건 서병수 전 부산시장…부산노동... 아이엠피터 93
0
5
03-30 09:05
124422
정치포탈 서프라이즈 들어오기 무지 어려워졌네용 마파람짱 22
0
0
03-30 06:14
124421
암환자 아버지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한 아이는 잘못되... 마파람짱 16
0
0
03-30 05:31
124420
💖격조높은 주방장 오른손이 한걸 왼손 모르게 132
30
15
03-30 01:44
124419
개불천 신자👩이은재의원 웃다 죽을뻔 133
30
15
03-30 01:40
124418
이런 병신이 어떻게 대통령이냐? 문재앙 53
5
0
03-29 21:49
124417
의미? - 철학자를 사랑하는가 보지? 간다. 11
0
0
03-29 16:27
124416
🔴문재앙 뜻 ㅋㅋㅋ🔴 (1) 웃다 죽을뻔 160
20
0
03-29 04:15
124415
🔴인도경찰 코로나 단속 몽둥이찜질🔴 동영상 154
30
25
03-29 01:58
124414
"😎전두환과 MB의 차이"❎웃다죽을뻔 일리 있음 157
30
25
03-29 01:50
124413
코로나19, 교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될 것인가? 시골목사 35
0
0
03-28 18:43
124412
병원들은 왜 코로나에만 올인했을까? 마파람짱 26
0
0
03-28 18:15
124410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코로나 사태만 보아도 알겠... 마파람짱 20
0
0
03-28 12:39
124409
피고 김성주는 왜 정동영후보를 고발 못하나??? YK 36
0
0
03-28 12:38
124408
❌죽지 않고 천국에 간 3경우❌ 💖 143
30
30
03-28 10:09
124407
🚫성폭행 치외법권지대🚫 주의 검 134
30
30
03-28 10:04
124406
그래도 일왕에게 맞춰줘야지 10
0
0
03-28 09:38
124405
세대교체를 해야겠군 8
0
0
03-28 09:35
124404
일본은 최소 10배로 보면 되겠군-13000 이상이야 갤럽 15
0
0
03-28 08:51
124403
결정적인 순간마다 패착을 두는 김어준을 보면 0042625 40
5
0
03-28 05:27
124402
새벽 한두시면 꼭 깨어나게 되는데,습관이네요 마파람짱 15
0
0
03-28 03:29
124401
코로나는 이제라도 퇴직해야 정답 아닌가요? 마파람짱 9
0
0
03-28 02:58
124399
검찰총장 님은 이제 사퇴해야 정답이 아닌가요? (1) 김순신 136
20
10
03-27 19:55
124398
이혼에 사기당하시기까지 .코로나는 사기꾼들이나 잡... (1) 마파람짱 37
0
0
03-27 18:05
124397
이런글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도움주신다면 감... 못믿을조사 32
0
0
03-27 17:40
124396
G20. 6.000조원 풀어서 코로나 대응 김순신 167
5
0
03-27 12:47
124395
삼륜(三輪)의 뇌물사건, 윤우진, 윤대진, 윤석열 0042625 56
0
5
03-27 09:19
124394
천안함 10년 2심재판서 밝혀진 의혹 8가지 (1) 미디어오늘 293
10
5
03-27 08:48
124393
여기엔 다시 오지마라 culling 32
0
0
03-27 08:48
124392
천안함 비극 10주기 , 국제적인 영구 미제 사건으로 ... (1) 프레시안 170
0
5
03-27 08:44
124391
“5공 청산 짓밟은 황교안 후보는 물러가라” 사람일보 104
0
5
03-27 08:38
124390
🔞코로나19이 강적이면 무적은??🔞 장도리 만화 163
30
30
03-27 01:39
124389
하나님 이름 더럽히는😎사깃꾼 회개의 시간 153
30
30
03-27 01:29
124388
쏘리꾼 비투비 정일훈 코로나 환자 27
0
0
03-26 23:00
124387
👍총선 포스터 (1) ♥️ 45
5
0
03-26 22:46
124386
대구학생은 본인이 코로나 의심스러워한게 아닌데 왜?... 마파람짱 23
0
0
03-26 16:55
124385
문재인정부 3년 천안함 재조사 왜 외면하나 “취지는 ... 미디어오늘 155
0
5
03-26 12:53
124384
코로나 충격으로 아파트가격 반토막은 시간문제 김순신 158
10
0
03-26 10:58
124383
“천안함 사건, 아직도 현재진행형” 통일뉴스 100
0
5
03-26 10:47
124382
천안함 침몰사건 10주기에 부쳐 (3) 신상철 186
10
5
03-26 10:19
124381
4·15총선 투표율 걱정 없을까? 김용택 109
0
0
03-26 09:33
124380
먹은 놈들 근황 먹은 놈 78
10
0
03-26 07:50
124379
못생긴 여자랑 사느니 혼자사는게... 청와대 62
5
5
03-26 07:40
124378
천지창조론 종말론 구원론등 마파람짱 18
0
0
03-26 06:57
124377
여호와라 이름하신 참하느님께서 천지창조 하신게 맞... 마파람짱 19
0
0
03-26 06:12
124376
구라당 뺨맞은 이중대 정의당과 의원 꿔주기 고발한 ... YK 19
0
0
03-26 06:07
124375
안 와야 하는데 대구학생 때문에 또 왔네요 마파람짱 15
0
0
03-26 05:46
124374
🔻격전지 모두 열세로 통합당 초상집~🔻... (2) 민주당 우세 167
30
30
03-26 01:53
124373
WHO 사무총장 양성반응 (1) WHO 53
0
0
03-26 01:53
124372
🔺️문재인 지지 54.8% 반대 42%㈟... (1) 압승예상 134
30
30
03-26 01:49
124371
문재앙 마스크 교체 ㅋㅋㅋ 마스크재앙 32
10
0
03-26 01:47
124370
쏘리꾼 엑쏘 백현 코로나 환자 15
0
0
03-25 21:36
124368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갑자기 멈춰버린 이유 (1) 김순신 129
5
0
03-25 18:54
124366
아이엠피터가 조선족이라는데 해명부탁드립니다 조선족공작원 31
5
0
03-25 14:28
124365
조주빈, 얼굴 공개하고 ‘손석희 사장’ 언급한 이유 (1) 아이엠피터 237
0
10
03-25 13:41
124364
천안함 <항소심 석명요구-1> 스크래치에 대하여 (3) 신상철 199
10
5
03-25 09:22
124362
이재명💖"병들어 죽기전🚫굶어죽을 것" 대박!!!!!!!! 159
30
30
03-25 05:16
124361
권종상은 짱깨 폐렴 걸렸냐? 시애틀 장난아니게 퍼졌... 시애틀폐렴 29
5
0
03-25 04:51
124360
😎조선일보 ❎총선완패 공포분위기 🔵 164
30
30
03-25 01:12
124358
쏘리꾼 몬쏘타엑쏘 손현우 코로나 환자 17
0
0
03-24 23:31
124357
쏘리꾼 몬쏘타엑쏘 임창균 코로나 환자 19
0
0
03-24 23:21
124355
세월호 천막 쓰리썸 얼굴들 세월호 섹스 63
0
0
03-24 22:29
124352
신종코로나바이러스(COVID-19) 비타민C로 치유가 되나... 시골목사 314
0
5
03-24 16:01
124350
N번방 사건, 서지현 검사의 간절한 호소 “함께 분노... 아이엠피터 134
0
5
03-24 13:44
124349
이탈리아에서 코로나의 사망자가 늘어난 원인 김순신 124
15
0
03-24 12:06
124348
코로나 격리 외국인에 45만원 생활금 줘? 미친 정부 ... YK 49
5
0
03-24 11:25
124347
일본 중국 코로나 종식선언 학교 개학등 모든 것 정상... 김순신 131
0
0
03-24 10:54
124346
코로나 소독하다 일가족 메탄올 중독, 문제는… 프레시안 122
0
5
03-24 09:54
124345
아이들과 함께 가정헌법 만들어 보세요 김용택 78
0
5
03-24 09:32
124344
천지창조론 (창세기 1장) (1) 김순신 84
5
0
03-24 09:13
124343
💘나경원<<<💖이수진 감동먹... 흑흑... 170
30
30
03-24 09:00
124342
문화일보💖더민주 총선압승 예상💖 만만세!!!!!! 170
30
30
03-24 08:58
124340
세월호 광장 옆에서 유족과 자원봉사녀 성행위, 대책 ... 세월호 섹스 60
10
0
03-24 02:58
124339
N번방 박사 조주빈은 전라도 좌파 대깨문이다 (1) 역시 그쪽 54
5
0
03-23 22:04
124338
대깨문 근황 만화 꺽은 뇌 36
0
0
03-23 21:55
124337
나도 노벨상 한 번 타는가 보다. 꺾은 붓 29
0
0
03-23 20:10
124336
여야 개 떡치는 비례대표 김순신 138
0
0
03-23 20:06
124335
김미경 술집 빠순이 출신 미아리 출신 (1) 낮짝이 두꺼... 79
0
0
03-23 19:19
124334
코로나 안 걸리기 좋은 나라 순위 김순신 180
10
0
03-23 15:42
124333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완료 노사모 68
0
0
03-23 14:03
124332
[이정랑의 고전소통]선타약적(先打弱敵) 이정랑 202
0
0
03-23 13:19
124331
장도리만화😎코로나보다 무서운 이것??㈴... 무시무시 186
30
30
03-23 11:34
124330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누군가 봤더니…최강욱·황... (2) 아이엠피터 225
0
5
03-23 10:43
124329
전북도지사 신천지인거 걸림ㅋㅋㅋ Red fish 67
10
0
03-23 10:00
124328
기본소득 패러다임과 바꿔야 할 정치 (1) 권종상 140
0
5
03-23 09:24
124327
종말론 (2) 김순신 208
10
0
03-23 09:08
124326
🔵유시민 vs 😎멍청 진중권 난타전!! 유시민 승~~~ 178
30
30
03-23 06:03
124325
공수처 1호 사건과 윤석열이 저지른 ‘부적절한 일들... 0042625 52
0
5
03-23 04:25
12345678910 ..1081
버그신고,시스템문의 | 오픈개발
민진미디어소개 | 개인정보취급방침 | 회원약관 | 광고문의 | Copyright ⓒ 민진미디어.
운영문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3 진미파라곤 930호 T. 02-761-1678 F.02-6442-0472 poweroftruth@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