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은 좌초입니다.
천안함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선박 전문가 신상철의 비망기
오동나무 아래서 역사를 기록하다.
권력을 사익 확대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오늘날 부패한 고위 관료들.. 김종익
도둑맞은 주권
18대 대선은 합법으로 위장한 부정선거였다. 김후용
진보적 글쓰기
우리의 글쓰기가 사회를 개선하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김갑수
진보를 복기하다
국회의원으로서 내놓았던, 내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정책을 열한 가지의 주제로 묶어 정리했다. 이정희
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
사건의 재구성과 57명의 증언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
분단체제 프레임 전쟁과 과학 논쟁 (한겨레 오철우 기자)
논  쟁   문재인정부   천안함   세월호   최순실   검찰개혁   국방개혁   정치개혁   일반   전체 
[원희복의 인물탐구]천안함 진실투쟁 8년 신상철 “북한 김영철 증인신청 고려 중”
  번호 65937  글쓴이 경향신문  조회 1724  누리 6 (24,30, 6:1:6)  등록일 2018-3-12 09:10 대문 1 [천안함] 

[원희복의 인물탐구]천안함 진실투쟁 8년 신상철 “북한 김영철 증인신청 고려 중”
(경향신문 / 원희복 기자 / 2018-03-11)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이 8년 만에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천안함은 인양돼 지금 평택 2함대 사령부에 전시돼 있다) 천안함 침몰의 진실문제가 다시 떠오른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북한이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파견하자 자유한국당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라며 극력 반발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파주 통일대교에 드러누우며 철야농성까지 감행했다.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 우철훈 선임기자

이에 국민들은 ‘차제에 천안함 진실을 규명하자’고 나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재조사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2월 28일 청와대 청원에 ‘천안함 진실규명’이 공식 등록됐다. 이에 금방 6만여명이 동의했다. 사실 세월호는 416재단까지 만들어졌고 검찰도 진실조사를 방해한 당시 해양수산부 장·차관을 사법처리하는 등 진실규명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기자협회 차원 조사단까지 만들 정도로 의혹이 컸던 이 천안함은 잊혀졌다.

민·군 합동조사단 야당 추천위원 참여

그러는 동안 이 천안함 진실투쟁에 8년간 외롭게 매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신상철 < 서프라이즈> 대표다. 민·군 합동조사단 야당(현 민주당) 추천위원으로 참여한 그는 ‘북한군 어뢰에 의한 폭발’이라는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며 지금까지 진실투쟁을 하고 있다. 2010년 8월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과 해군참모총장, 합동조사단장 등에 의해 피소돼, 재판 4년 만에 그는 공소사실 34건 가운데 32건은 무죄, 2건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검찰이 기소한 34개 공소사실 모두 천안함과 관련된 분석글이다. 이 중 유죄로 인정된 2건은 천안함 스크래치(스친 흔적)를 국방부가 인멸했다고 했는데 1심 재판부는 ‘장관은 증거를 없애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나는 국방부가 인멸했다고 했지 장관이 인멸했다고 하지 않았다. 또 내가 ‘초기에 구조할 의사가 없었다’고 한 것이 해군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했다. 반토막 났지만 길이 38m, 높이 10m 크기가 침몰한 곳에서 18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천안함 길이 2배에 불과한 바로 옆이다. 그것을 이틀 동안 못 찾았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어선에 장착된 어군탐지기에도 물고기가 보일 정도다.”

침몰지점도 알고, 깊지도 않은 바닷속 천안함을 해군이 못찾고 어민이 찾았다는 사실은 바로 그 시각, 해군은 다른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제기됐다. 그것은 별도 서재정·이승헌 박사의 잠수함 충돌설로 이어진다. 신 대표는 초기 좌초와 구조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46명이 탄 선미는 금방 침몰했지만, 선수에 있던 1명도 희생됐다. 신 대표는 “그 선수는 16시간 22분 동안 바다에 떠 있다 침몰했는데 거기에 박성균 하사가 있었다”면서 “국방부 관계자들이 퇴근해 쉴 때 박 하사는 침몰하는 배에서 처절한 생존투쟁을 벌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을 지적한 것이 해군의 명예를 훼손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핵심은 천안함 침몰 원인이다. 처음부터 좌초라고 주장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인가.

“그렇다. KBS가 최초 ‘침수, 5㎞ 포류 후 반파’라고 보도했다. 모든 사건을 보면 최초의 상황이 가장 진실을 많이 담고 있다. 조작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게 정답이다. 침수는 배에 물이 들어온다는 것이고 포류는 엔진이 꺼졌다는 것이다. 반파는 거대한 충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고 발생시간도 네 번이나 번복했다.”

-나도 기자지만 특히 재난상황에서 초기 보도는 부정확한 것도 많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배가 반파되고 46명이 죽는 사고에서 그것도 일주일이 넘어서도 계속 발생시간이 바뀔 수는 없다. 그래서 사고는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라는 추론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때도 많이 제기됐지만 폭발이 있었느냐가 계속 논란거리다. 당시 김용옥 선생은 북한 어뢰에 의한 폭발이라는 정부 발표에 “나는 0.0001%도 설득이 안 된다”고 주장했고, 최근 유시민 전 의원도 “폭발 침몰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폭발이 없었다는 것은 10개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화약냄새를 맡았다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바닷가에서 폭죽 하나만 쏘아도 화약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성인 6명 크기인 360㎏의 TNT가 터졌는데 화약냄새가 없었다? 둘째, 승조원 누구도 코피나 고막손상 등 이비인후과적 손상이 없다. 시신 또한 전원 ‘익사’였다. 셋째, 수중 폭발이 있었다면 2만 기압의 압력으로 100m 이상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야 한다. 그러나 함교 밖 좌우 견시병 누구도 물기둥을 본 사실이 없다.”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가 열화상카메라 동영상을 통해 천안함 침몰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좌초라고 주장하는 10가지 이유

그는 계속 설명했다. 3∼4월 까나리철에 360kg TNT 폭발에 죽어 떠오른 까나리가 한 마리도 없었다, 천안함 절단면 하부에서 3000도 고열 발생 흔적이 없다. 2만 기압 충격파와 3000도 고열에도 형광등이 깨지지 않았다. 화염이 없었다, 충격파가 없었다, 굉음이 없었다, 열관측장비(TOD)에 폭발로 데워진 바닷물 증거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이를 충격이 없는 10가지 이유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천안함이 좌초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배를 빼내다 스크루가 굽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난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신 대표는 좌초로 인한 배의 절단 증거로 외국 사고 사진을 제시한다. 그러나 해당지역 해저는 암반이 아닌 모래톱인데 여기서 배가 두 동강이 날 수 있을까. 의문은 계속 이어진다.

-비교적 정확한 조사를 했다는 러시아 조사단도, 또 그레그 전 미국대사도 2015년 JTBC와 인터뷰에서 천안함이 좌초했다가 기뢰에 의해 비접촉 폭발했다고 증언했다. 비접촉 폭발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러시아도 처음에 제대로 보도하다가 이명박 대통령과 단독면담 후 기조가 바뀐다. 그레그 대사도 처음에 ‘한국 정부와 이명박은 곤란해질 것’이라고 했다가 기뢰 폭발로 얘기를 바꿨다. 기뢰는 언제, 누가 설치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건을 미궁에 빠지도록 방향을 돌린 것이라 본다. 그레그는 미국이 곤란한 입장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현 휴전협정에 남북 분쟁은 중립국감시위원단이 조사하게 돼 있다.(서해상은 휴전협정에 아무런 명시가 없지만) 당시 왜 중립국감시위원단 조사를 받지 않았나.

“북한은 2010년 8월 한국과 미국, 중국 4자 간 공동조사하자고 제안했는데 우리 정부가 거부했다. 북한은 다시 그 어뢰를 판문점에 가져와 조사하자고 했다. 북한은 특수합금으로 어뢰를 만드는데, 그 어뢰와 비교해 보자고 했는데 우리가 ‘노’ 했다. 북한은 계속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는데 우리 주류언론은 이런 북한 주장을 보도하지 않았다. 이러면서 우리는 뭐했나. 싱가포르에서 김태효 (청와대) 비서관이 ‘천안함에 대해 유감 표시만 해달라’며 돈줄 테니 정상회담을 해달라고 구걸하지 않았나.”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은 사고 직후인 2010년 4월 6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한·미 공동작전 중에 북한이 도발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정부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 그가 국방부 장관이 된 지금, 진실을 밝힐 수 있지 않을까.

“송 장관은 나중에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라고 못을 박았다. 문 후보를 데리고 백령도까지 갔다. 아마 송 장관의 국방부는 재조사할 의지가 없을 것이다.”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 우철훈

선임기자해군 소위로 임관 서해 5도서 근무

그는 대선 직전 문재인 캠프에서 이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인 사실을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얘기했다. 그 대목 중에는 이해가 되는 부분도, 아닌 부분도 있었다. 사실 문 대통령은 2015년 3월 25일 당대표 시절 천안함 5주기를 맞아 해병대 2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천안함은 북한 잠수정의 타격”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신 대표는 당시 문 대표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보수표를 얻기 위한 것이며, 종북프레임이 두려웠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신 대표는 앞으로가 문제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김영철을 내려보낸 것은 천안함을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보인 것”이라며 “국방부가 천안함 조사결과를 왜곡했다면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자유한국당이 김영철 부위원장 문제를 제기한 것은 “펄펄 끓던 감자를 덥석 문 격”이라고 말했다. 새롭게 제기되는 진실규명 요구가 오히려 이명박 정권의 부도덕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신 대표는 1958년생이다. 서울에서 출생했지만 부산에서 초·중·고를 나와 1978년 한국해양대 항해학과에 입학했다. 82년 해군 소위로 임관해 천안함보다 큰 호위함을 탔다. 중위 때는 인천에서 수송함(LSM)을 타고 서해 5도에서 근무했다. 그는 “군 수송함은 일부러 배를 좌초시켜 하역하기 때문에 좌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특히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근처는 손바닥 보듯이 훤하다”고 말했다.

해군에서 제대한 후 한진해운에 입사해 컨테이너선을 타고 미주항로를 다니다 삼성조선소에서 선박 건조 감독을 했다. 92년 배에서 내린 그는 전산프로그래머 사업을 하다 2002년부터 <서프라이즈>에서 진보논객으로 활동했다. 이 인연으로 그는 민주당 추천 국방부 세월호 민·관 합동조사단의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민·관 합동조사단원으로는 유일하게 조사단의 결론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기자가 ‘나름 전문가들인데 정부가 지시한다고 일사불란하게 조작에 가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그는 “인혁당 사건이 났을 때 우리나라 검찰·법원·언론 모두 동의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이 대답에 기자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우리는 지난 촛불혁명에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동영상을 수없이 보면서도 서울대병원 주치의의 ‘병사’라는 억지를 그냥 듣고 있었다.(정권이 바뀌고 이는 수정됐지만)

그는 2006년부터 <서프라이즈>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한때 기자가 43명까지 됐던 적도 있었다”면서 “광고가 끊어진 지금은 ‘천안함 진실을 지키는 사명으로 매체를 남겨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별도 시사문제를 다루는 <진실의 길>이라는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8년간 법정투쟁으로 운영하던 매체와 건강을 잃었다. 2013년에는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 두 번을 거쳐 겨우 최근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항소심에서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과 이상의 합참의장 등을 증인으로 신청할 것”이라며 “북한 김영철도 증인으로 부를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냉정히 말하면 천안함 사건은 신 대표와 개인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 사건에 이렇게 집착하는 것을 보면 참 고집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보수단체로부터 ‘간첩보다 더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그는 “천안함 사건은 단순한 해상사고가 아니다”라면서 “북한 소행으로 은폐·조작했다면 언젠가 통일이 됐을 때 우리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856551&sid1=001&lfrom=kakao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6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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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진실만이 힘  IP 73.15.65.x    작성일 2018년3월12일 13시11분      

*** 말씀하신 것이 모두 다 맞습니다!!!.

우선, 건져올렸다는 그 어뢰가 그 폭발을 했다는 증거는???
또한, 연관을 어떻게 설명하나?? 60년 전 전쟁때 것??? (요즘 북한도 그런 쇠로 만들지 않는다던데.)
해경에 왜 조난구조를 요청하고 전속력으로 백령도 해안가로 달려 갔는가???

왜 선수 밑의 소나돔의 앞쪽이 콱 찍혀 있나???
왜 후미의 옆 밑쪽 바깥 철판만이 쭈우욱 찢어져 나갔나???
당시 애인과 통화를 했다는 병사의 통화기록???
해경의 통화기록???

고스란히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바로 맡에서 폭발을 당했다는 엔진이, 폭발파괴 부분이 하나도 없다???
배가 폭발을 당해 찢어져 떳다 떨어지면서 다 날아가는데, 폭약실의 폭약상자들이 가지런히 한쪽으로 쏠려서 있었다???

뭔 말이 되어야, 해군을 월급주면서 유지할 필요가 있지 않는가???
기본방어 조차 못해서 병사를 46명이나 죽인 패잔병 ㅅㄲ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무기징역에 패가망신을 당하지 않고, 승진을 하고, 결혼식 주례를 하고 다니고???

해경 배에 옮겨타던 병사들의 사진에는 전혀 폭발 화염, 전쟁상황을 볼 수가 없이, 여행선에서 얌전히 옮겨타는 어불성설의 모습들.
CCTV 조차 전부가 의문 투성이와 앞 뒤 안맞는 설명들 뿐.!!!
전쟁이 터진 상황의 중요한 것이, 핸드폰을 거두는 것이 더 급한 이유???????

우선 그들이 바닥을 망을 늘어 뜨려서 한방에 딱 건져 기적을 올렸다고 하는 어뢰로, 천안함에는화약흔적, 폭발의 찢어진 흔적, 초고온 화염파괴 흔적, 등이 하나도 없다...
기적같이 폭발후 메직펜으로 쓴, 글씨가 초고온의 상태에 아무런 변화가 없이, 녹쓴 위로 남아 올랐다???

*폭발되서 파편에 떨어져 나간 페이트가 없는 부위에 파란 메직펜으로 쓴 1번글씨가 증거라는 것의 전부.:
(녹위로 쓰여진 메직펜 글씨가 Color 분석가들의 당시 확대사진들에 보라색으로 나와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녹위로 급히 써진 유치한 조작의 증거.!!!!!!!)
녹위로 쓰다보니, 녹이 난 돌출부분 위로, 글씨가 삐껴나간 상태까지 나타나 있다...
참 어처구니 조차 없다.

어뢰를 반짝 건져올렸다는 위치에서 어망끌이가 불가능한 위치에 커다란 폐선박이 있었다.
어찌 끌어서 올리고 있는 배위의 당시 사진에는 엄청난 양의 바다바닥의 이물, 쓰레기들이, 어뢰와 엉켜서그것을 물로 씻거나 처리하는 과정이 전혀 없다.
바짝 마른 갑판??? 단 한번에 어뢰만 반짝???
(미리 마른 갑판 구석 옆에 쌓아놓은 사진이 기사에 나와있고.)
어찌알고 별도 촘촘한 낛시잡이 어망조각 부분과 알미늄 포일, 미리준비???
그 썩은 어뢰가 폭발의 원인이라는 연결은 어느 누가???

말짱히 마른 갑판위 구석에 작은어망조각(촘촘한 별도 어망 조각)에 따로 싸여있던 이미놓여져 있던 것이 사진에 나와있다.
현장에서 뚜껑까지 따고 1번을 추적해서 다 말려서 어디서 준비했는지 은박지 조각으로 뚜껑부위까지 덮어 놓았다???
실체라며 현장에서 뚜껑을 따고 찍어서 1번이라고 분석까지 마쳐??

전형적인 국정조작원의 유치한 어거지 조작행태 수준.!
(어디서 가져온 바짝마른 녹쓸은 구식 정체불명 어뢰조각)
동해안의 따깨비가 들어간 구멍보다 더 크게 자라나 있었다???
따깨비 껍질만 남아?
동해의 따깨비, 속살은 건져 올리자 마자 누가 먹었나???
그리고 알미늄 포일로 싸서 말렸나???

한준위 장례식에서 미망인에게 한미 합동사령관과 주한미대사가 조의금 돈봉투 전달하는 것이 기사의 사진에 나와있다.
대한민국 군 역사에 없던 대 사건!!!
한준위는, 무엇을 제삼의 장소에서 몇일 동안 둥그런 헷치를 열고 들어가서 건져올렸나???

당시, 왜 이스라엘 대갈통이 급히 왔다가 갔는가???
대한민국과의 현안이 아무 것도 없었는데...
한미 군사훈련중에???
아무런 발표도 없었고...

오바마가 문대통령 당선후에, 급히와서 바기와 밀담을 하고 간 내용에 대한 녹취록이 어딘가에 있을 것.!
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모든 것을 한방에 해결하는 것이, 그의 재선을 보장받는 길이다.
트 대통령은, 대한민국, 북한과의 포괄적 진실해결로, 모두가 자유로워 지고, 조작질로 도배해온 지난 정권들을 정리하며, 강군으로 강력해 지는 것이다.!!!!!!!!!!!!!!!!!!!!!!!!!!!!!!!!!!!!

참수형만이 답이다.!!!!!!!!!!

[2/8]     IP 73.15.65.x    작성일 2018년3월12일 13시16분      

한준위 작업시 찍은 둥그런 햇치, 케이블 널려진 바다 밑 사진.!!!
반국가 조작범죄는 역적죄에 해당 합니다.
[3/8]     IP 73.15.65.x    작성일 2018년3월12일 13시25분      

방산비리로, 한겹짜리에, 엔진부위 밑에만 시늉처럼 있던 용골의 상태로, 당시의 초계함이 만들어져서, 악천후 높은 파도에도, 배가 떠다니는 것은, 피로파괴를 자처하게 됬다고 했지요.
물이 발목까지 들어와서, 매번 항상 수리를 하고 재출항을 하던 상태였다는데, 병역기피범들이 계속 대북훈련 한다며 불러대서, 보수도 못하고 나다니다가, 짜게지자 전속력으로 해안가로 달려나간 것이 시고의 시작이라는 의견이 99.9999% 입니다.
[4/8]   비나이다  IP 121.153.167.x    작성일 2018년3월12일 16시41분      
이스라엘은 무슨 대책을 세우고 있을 지 궁금해 집니다.
CIA 와 국정원 안에 있는 모사드 세작들은 또 무슨 지시를 받고 행동을 할 지 궁금해 집니다.
[5/8]   진상규명  IP 122.128.69.x    작성일 2018년3월13일 00시26분      
재판에서 건져 올린 소득!

(1) 이원보 22전대장으로부터 천안함이 2함대사의 허가를 받아 피항을 했다고 증언한 것.

---> 남은 것: 천안함의 피항 요청 이유와 2함대사의 허가 이유와 허가 사실 추적.

9시15분 최초상황(침수) 발생과 관련하여 중요한 내용. 해군2함대사, 해작사, 합참 모두 사고시각
을 9시15분으로 적고있는 상황보고서 작성.--->나중 군은 해작사만 9시15분 최초상황 발생보고
를 했다고 거짓말. 하지만 해군2함대사는 9시33분에 구조요청하면서 9시15분을 사고시각으로 적
은 상황보고서를 돌림(해경 상황보고서 1보)

해군2함대사, 해작사,합참 모두 사고시각을 9시15분으로 적고있는 상황보고서 법정 제출 요구 필요

9시15분 최초 상황발생 -->피항 요청---> 함대사 허가-->백령도 남방 저수심 지역 진입--> 좌
초나 충돌--> 급격 우현 전복, 침몰 중 두동강.

따라서 사고 다음날 해군2대사가 실종자가족들을 상대로 아시아경제상황도를 들고 빨간점을 <사고
해역>이 아니고, "함수침몰지점"이라고 밝혔다는 전대장 이원보의 증언은 위증. 실종자가족들을
법정에 불러 증언하게 하면 이원보의 증언은 위증이라고 확인해줄 것임.
(내용 추가- 나중 천안함 실종자 가족대표인 박모씨는 추적 60분에 출연해, 3월27일 오전에 이원보
전대장등이 백령도 서방에서 최초 사고가 났고 함수는 이 만큼-백령도 남방 해역을 아시아경제상황
도를 보면 손가락으로 가리킴-가라앉아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큼)

실종자가족들은 <3월27일> 오전과 오후 3시경까지의 해군2함대사의 사고 설명에서 천안함의 두동
강을 들은 바 없음.

아시아경제상황도를 빼앗았던 이용기도 그렇게 증언할 것임.당시 아시아경제 상황도 관련 보도
어디에도 천안함 두동강은 언급된 적이 없음.

[사고직후 실종자가족과 간담회장에서 ‘최초좌초’라 씌어진 작전상황도를 펼쳐든 유가족 이용기씨
는 2012년 6월 법정에 출석해 “2010년 3월 27일 오전에 이원보 천안함 22전대장으로부터 ‘<천안
함>이 (연봉바위쪽에) 좌초돼있다’는 말을 듣고, 평균수심 6m 정도밖에 안되는 곳에 천안함이 갔다
는 것이 의문이 들어 오후에 천안함 작전관인 박연수 대위에게 ‘최초좌초’ 지점이 어디냐고 물었
다”며 “‘백령도 서방 몇마일쯤’이라고 하길래 좌표를 찍으라고 했더니 해당 지점을 찍었다. 그 지점
에 ‘최초좌초’ 별표표시를 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3월27일 오후 5시가 되어서야 함장 최원일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배가 두동강이 났으며 함정 후미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고 주장한 것이 다임. 이 때에야 실종자가족들은 천안함이 두동강 났다는 것을
처음 들음. (아래 링크 참조)

침몰 '천안함' 최원일 함장 브리핑 전문과 일문일답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27/2010032701000.html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ss_pg.aspx?CNTN_CD=A0001353191


(2) 작전관 박연수가 사고지점 수심을 20여m라고 증언해서, 합참이 사고 다음날 국회에서 증언한 <사고지점 수심24m> 보고가 천안함으로부터였음을 확인해준 것.

----> 남은 것: 사고지점 수심24m라고 단단위까지 보고한 경위. 이를 적시한 해군함대사, 해작사 보고
서 제출 요구 필요.

(3) 해작사 작전처장 심승섭이 <천안함 영상>을 보면서 합참에 9시보고했다는 증언
<“(우리는) 천안함 영상을 보면서 상태를 보고했는데, 21시30분 이전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해 보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해작사가 이를 합참에 보고한 시각은 21시43분~45분 사이였다고 심 전 처장은 전했다.>

-----남은 것: 해작사 심승섭이 합참 보고 시 보았다는 <천안함 영상>이 무엇인지 심승섭을 다시 불러
증언 청취 필요. tod나 kntds가 아닌 해상작전위성통신체계(MOSCOS)였을 가능성이 큼. 이는
“합조단이 발표한 구조시점 이전에 벌써 함정들이 와서 상황을 파악하고 <촬영>을 한 것으로 안
다”고 주장한 한 소식통의 말에 부합함.

심승섭의 보고 당시 천안함은 함수만 표류하는 상태가 아니었음으로 심승섭은 천안함의 두동강을
합참에 보고할 수 없었고, 합참은 3월27일 국회 국방위에서 천안함이 두동강났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냐는 유승민의 질의에 그것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 신뢰성이 없다고 답한 것임. 오늘
(3월 27일)까지 두동강이 났는지, 파공이 얼마인지 확인된 것이 없냐는 질의에 이기식은 그렇다고
답함.

심승섭이나 이원보나 알 사람은 알아먹을 것이라 대놓고 말했던 것임. 비록 법정 질의에 대한 응답
이긴 하지만.

[6/8]   진상규명  IP 122.128.69.x    작성일 2018년3월13일 01시49분      
3월27일 국회 국방위에서 국방위원장 김학송이 " 천안함이 백령도 서남쪽 1마일에서 침수가 되어서 3시간만에 (백령도)정남쪽에서 침몰되었다"고 국방위 회의 중 말할 때도, 합참처장 이기식은 천안함 두동강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신뢰성이 없다고 말한 바 있음.

KBS의 ‘침수, 5㎞ 표류 후 반파’보도는 해경 상황판을 보고 kbs가 보도한 것으로 "표류"는 kbs가 해석한 것임. 군은 사건 초기 한번도 백령도 서방에서 천안함이 두동강이 나서 함수가 7.4km를 표류했다거나, 천안함이 두동강이 났다고 말한 바 없음.

백령도 서남쪽 1마일 지점에 대해서는 이게 진짜 사고지점인지, 아니면 군의 기만전략인지 파악을 해야 함.
(아래에 내용 상술)

천안함 작전관 박연수는 사고 당시 시정(視程)은 3마일(4800m)로 백령도 불빛이 육안으로 식별되었다고 증언했음. 좌현 견시병 공창표는 우현으로 백령도 불빛이 보였다고 증언.

하지만 백령도 247초소병들은 해무로 인해 시정이 500m로 야시장비로 관측이 불가능했고, 육안으로 사태파악이 쉽지 않았다고 진술함. 하지만 천안함 근무자들은 이와같이 백령도 불빛이 육안으로 보였다고 증언함.

천안함 근무자 박연수, 공창표등의 증언에 의하면, 군이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공식폭발원점"이 있는 백령도 서방해역은 사고 당시 해무가 없었어야함. 그리고 247초소병들이 백령도 서북쪽 두무진 돌출부에서 보았다는 백색섬광은 해무에 의해 산란되었다고 주장할 이유가 없어야 함.

하지만 247초소병들의 증언은 그렇지 않으니, 천안함 작전관 박연수와 좌견시 공창표가 보았다는 우현쪽의 백령도는 백령도 서방 해역에서 바라본 것이 아님.

천안함 작전관 박연수와 좌견시 공창표의 증언에 의하면, 사고 직후 생존자들이 정신없이 쏘아올렸다는 조명탄 섬광들을 백령도 247초소병들은 못 볼 수가 없음. 하지만 공개된 tod 시각상 9시30분경의 천안함 함수 위치 지점에서 조명탄 섬광들을 백령도 247초소병들은 전혀 목격, 청취하지 않았음. 보고 자체가 없음. 이런 일은 경계근무를 서는 초소병들의 근무수칙 상 있을 수 없음.

생존자들이 정신없이 터트렸을 조명탄은 신호조명탄일 것으로 추정되며, 3만촉광 이상의 빛으로 높이 221m이상 올라가서 6.5초 동안 연소하는 조명탄임. 생존자들은 함교에 비치된 조명탄이란 조명탄은 죄다 끌고 나와서 터트렸을 것임. (초계함 함교에 평소 비치된 조명탄 갯수 조사 필요.)

백령도 서방을 관측하는 247초소병들이 조명탄 섬광과 그 소리를 전혀 목격, 청취, 보고하지 못한 것과는 달리 백령도 남방 장촌 주민들중에는 9시30분부터 20분동안 포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하는 주민들이 여러명 있음. 이들은 천안함 생존자들이 쏘아올린 조명탄 터지는 소리를 들었을 것임. 그리고 합조단과 tod가 말하는
구조시각보다 일찍 도착한 해군함정들이 구조를 위해 터트린 조명탄 터지는 소리를 들었을 것임.

백령도 247초소병들은 9시30분경부터 초소기준 방위각 170, 180도로 <해군 함정 3척>과 <해군함>이 와서 좌초된 PCC를 구조했다고 진술함. 상병 김승창은 구조당시에는 <소형선박 3여척>과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이 해상에서 계속 이동하며 움직이는 것을 보았으며, 선박들이 크게 흩어지지 않고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진술함.

[7. 사고 발생전 이상징후 목격 여부?

- 침몰함정 기동상태
사고발생 전에는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 침몰함정 주변선박(의아물체 포함) 이동 여부
침몰함정 주변에는 없었고 의아물체로 판단되는 것도 없었습니다. 이동하는 물체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10. 초계함이 침몰되던 상황은? (함수와 함미 구분하고, 침몰시간은)
초계함이라고 판단하지 못하였고 함수나 함미 등을 관측하지 못하였습니다.

11. 구조당시 상황은?
구조당시에는 <소형선박 3여척>과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이 해상에서 계속 이동하며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박들이 크게 흩어지지 않고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2010년 4월 2일 진술인 상병 김승창]

[박일석 상병 진술서

필승! 62대대 6중대 60A+ 2포 부사수 상병 박일석은 후임 근무자 상병 김승창과 2010년 3월 26일 247초소 야간 2직 19:00~21:00까지 근무시간에 근무를 수행하던 중 21:23분에 낙뢰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들어 ‘쿵’소리와 함께 하얀 불빛이 247초소 기준 방위각 ∠280°4km지점에서 보였습니다. 불빛은 섬광처럼 보였는데 좌·우 둘 중에 좌쪽이 더 밝어 보였습니다. 우쪽은 두무진 돌출부에 의하여 불빛이 가려진 상태였습니다. 야시장비(PVS-7)을 이용해 불빛이 일어난 쪽을 관측했는데 불빛은 2~3초 후에 바로 꺼졌고 그날 해무가 심해 시정이 500m여서 PVS-7으로 관측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그 후 21:30분경 247초소 방위각 ∠170°2km지점에서 해군함정 3척이 와서 구조하였습니다. 해안 탐조등으로 247초소 근처 해안을 비추면서 해군들이 이쪽으로 올 수 있게 비추었고 생존자가 있지 않을까 탐조등을 계속 비추었습니다. 그 후로 247초소 기준 방위각 ∠180°3km지점으로 해군함이 계속와서 좌초된 PCC를 구조했고 22:59분에 247초소 기준 방위각 ∠270°6km지점 아군함정이 경고사격 약 20발 정도 발사했고 그 후에 구조헬기가 247초서 기준 방위각 ∠160°방위각 ∠10°등 수많은 헬기가 구조하기 위해 초소와 연화리 위쪽을 날아 다녔습니다. 헬기 구조작업은 2010년 3월 27일 02:10경까지 계속 되었으며 02:40분경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이상입니다. 필승!

2010년 3월 28일 상병 박일석]

<함수>를 관측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상병 김승창은 구조 당시에는 <소형선박 3여척>과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이 해상에서 계속 이동하며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함.

문제는 이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이 과연 우현으로 기울어진 천안함이었을 것인가 하는 점임. 김승창은 함수를 보지 못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음. 국회국방위원장 김학송이 백령도 서남방 1마일에서 침수가 되어 3시간만에 정남쪽에서 침몰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병 김승창이 보았다는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이 천안함일 수는 없음.

상병 김승창이 본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은 박일석 상병이 진술한 180도로 온 <해군함>이며, 소형선박 3여척은 박일석 상병이 진술한 <해군함정 3척>임.

상병 김승창이 보았다는 <PCC로 보이는 큰 선박>은 함수도 아니요, 천안함도 아닌, 속초함이었을 것임.

군은 사고 이후 속초함은 외곽 경계를 섰을 뿐, 천안함 직접 "구조"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음. 하지만 추정할 수 있는 것처럼, 속초함은 사고지점 조작을 위한 천안함 "구조 쇼"에는 참여한 것으로 보임.

백령도 247초소병들은 해군함정(고속정) 3여척만 진술한 것으로 볼 때, <고속정 4척>이나 <5척>이 천안함을 구조했다고 한 것이 이 상황에는 들어맞지 않음을 알 수 있음.

공개된 조작된 TOD영상을 보면, 소위 함수에 다가서는 고속정들은 한 척을 제외하곤, 천안함 함수를 지나쳐서 멀리 감. 이들 고속정들이 바로 247초소병들이 170~180도에서 목격한 "구조쇼"를 벌인 해군함정 3척들 중 2척임. (물론 TOD상 고속정이 접근하는 함수는 조작된 것임), 그리고 속초함도 사고지점 조작을 위해 서둘러 "구조쇼"를 벌리기 위해 백령도 서남단 쪽으로 갔을 것임. 아시아경제상황도에는 빨간점 주위의 고속정 5척 중에는 대청도 소속 고속정편대에 속하지 않는 연평도 고속정 편대 고속정 2척이 보임. 대청도 소속 고속정 편대 3척이, 속초함과 함께 백령도 서남단 "구조쇼"현장에 동원되고 , 사고가 발생한 백령도 남쪽 해상에는 대청도 고속정 편대 2척과 연평도 고속정 편대 2척이 천안함을 구조한 것으로 보임. 그래서 군은 천안함을 구조한 고속정이 처음에는 4척이라고 했다가 5척이라고 말을 바꾼 것임.

아시아경제상황도를 보면 중화동 TOD초소에 선체가 두동강난 것 같은 표시가 보임. 군은 백령도 남해안 중화동TOD초소에서 촬영한 TOD를 백령도 서해안 238 TOD에서 촬영한 TOD로 조작한 것임. mbc 군 상황일지는 중화동 tod초소의 tod촬영에 부합함. 그렇다고 mbc군상황일지 상 사고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1.8km떨어진 tod초소병들이 폭음을 청취한 시각인 <9시20분>-이는 보고사항임-이 천안함의 두동강 시각이 될 수 없고, 두동강시각은 9시30분~45분 사이일 것임. 해작사 심승섭의 천안함 영상을 보면서 상태를 합참에
보고했다는 증언으로 보건대, 천안함 두동강은 45분 이후일 가능성이 큼.

따라서 247초소병들에 의해 초소기준 170~180도에서 9시30분경부터 목격된 소위 "구조 상황"은 쇼임.

군은 이 247초소병들의 진술서는 제출했으면서도 백령도 서남단 초소(9시30분경부터 가장 가까이서 소위 "구조상황"을 지켜보게되는 것이 될)병들의 진술서나 보고내용은 제출, 공개한 바 없음.

247초소병들이 천안함 생존자들이 사고 직후 쏘아올렸다는 조명탄 섬광들을 목격, 청취했는지 재판에 다시 불러 반드시 물어보아야함.. 그리고 초소기준 170~180도에서 9시30분경부터 소위 "구조"가 이루어질 때, 이 지점에서 <조명탄 섬광>을 목격했는지 반드시 물어보아야 함.

그리고 다음은 아주 중요함. 247초소병들이 보았다는 소위 "구조 상황"이 몇 분 동안 목격되었는가 하는 것임. 왜냐하면, 어느 시점부터 군은 백령도 서남방 1마일 해상을 <사고 , 침몰, 구조지점>으로 그래픽등으로 어느 시점부터 주장했기 때문임. 군이 사고지점을 조작하기 위한 기도를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음. 하지만 해경의 그간의 주장에 따르면, 해경이 천안함 승조원들을 구조한 곳은 바로 백령도 남방 장촌 앞바다일 수 밖에 없음. 한편 국회 국방위 김학송의 위 발언은 군이 아니라 해경의 보고에 근거를 둔 것일 수 있음. 해경에 의해 드러난 사고, 구조당시 상황이 군에 의해 억압되고 은폐되었다면, 해경의 구조지점까지 백령도 서방으로 대외적으로 조작되었을 것임.

만약 "구조상황"이 30분~1시간 정도 목격되었다면, 이는 "공식사고경위"와 전혀 맞지 않음. TOD상 함수에 고속정이 접근하는 9시56분부터 TOD사각지역으로 접어드는 시각인 10시8분까지는 10여분에 불과하기 때문



[7/8]   진상규명  IP 122.128.69.x    작성일 2018년3월13일 01시51분      
재판에서 얻은 또 하나의 소득은 전탐장 김수길 상사의 증언임.

[천안함 침몰 당시 국방부가 발표한 어뢰 폭발지점에 가장 근접한 곳에 있던 생존자가 ‘폭발음’(충격음)에 대해 다른 함정과 부딪히는 소리로 알았으며, 폭뢰와 같은 폭발소리와는 달랐다고 증언했다. 또한 그 소리를 청취한 위치도 선저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서 들었다고 이 생존자는 전했다.

천안함 사고 당시 전탐장(수상 접촉물 탐지 책임자)이었던 김수길 상사는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유남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합조단 민간위원)의 명예훼손 사건 공판에 출석해 이 같이 증언했다.

2010년 3월 26일 당시상황에 대해 김 상사는 “당직시간인 그날 16~20시 근무후 교대한 뒤 취침하러 ‘CPO실(수면하침실)’로 내려와 21시20분쯤 스탠드를 켜고 눈감고 있을 때 ‘쿵’소리가 들렸다”며 “다른 선임하사가 근무하고 있는데 다른 함정하고 부딪혔나 하고 있었는데, 몇십초 만에 다시 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배가 넘어졌다. 쪼그리고 있다가 눈 떠보니 함정이 거꾸로 서있었다”고 묘사했다. 그는 전탐장 업무에 따라 소리에 예민해 쿵~쾅 하는 두차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고순간 들었던 소리에 대해 김 상사는 “뭐에 부딪히는 소리인 줄 알았다”며 “(천안함보다) 큰 함정이거나 동급함정에 부딪힌 줄 알았다”고 전했다.

김 상사는 “쿵소리(를 들은 뒤) 반동에 의해 ‘무슨 일이 있나 보다’ 하고 튀어 나와 나가려고 하고 있었으며, 그 후 들었던 ‘쾅’ 소리는 처음 ‘쿵’ 소리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두번째 쾅 할 때도) 물체(함정)와 배(천안함)가 부딪힌 것으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다른 함정과 충돌한 경험은 없지만, 수중폭뢰실험을 통해 폭발소리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폭뢰실험, 사격훈련 했을 때 터지는 소리와 쿵 쾅 소리가 유사하다고 봤느냐’는 피고인 신상철 대표의 신문에도 김 상사는 “폭뢰는 터질 때 팡 소리가 나는데, (천안함 때는) 퉁하고 부딪히는 소리였다”고 밝혔다.수중폭뢰실험(훈련)을 했던 경험에 대해 김 상사는 “함정(의 함미 쪽에서) 폭뢰에 있는 핀셋을 뽑으면 자동으로 폭뢰가 배 아래로 굴러내려가면서 물 속에 들어갔을 때 폭발하면 물기둥이 엄청나게 크게 솟아오른다”며 “폭발시 함정이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함미쪽이 털린다(흔들린다는 뜻-기자 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처음 쿵소리 났을 때는 폭뢰와 다른 소리였으며, 뭔가의 물체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는 것인가’, ‘부딪히는 소리에 대한 경험은 처음이었지만 평소 해왔던 수중폭뢰 실험에서의 소리와 달랐다는 것인가’ 등 거듭된 김형태 변호인의 신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 폭발음(충격음)의 강도에 대해 김 상사는 “(쿵 소리에)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배가) 외부에서 부딪히면 ‘쿵’ 하는 느낌이었다”며 “(쿵 소리 직후 나가 떨어질)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쿵’ 소리가 났을 때 보고서의 천안함 승조원 위치 표 상 13번 격실(수면하침실-CPO)에 있었으며, 절단면 바로 옆이었다고 김 상사는 전했다.

또한 당시 침실에 누워있는 것을 기준으로 ‘폭발음’(충격음)의 위치에 대해 김 상사는 “머리를 함수방향으로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내가 누워 있을 때 방향으로) 내 왼쪽 방향에서 처음 쿵 소리가 났다”며 “함수 우현 쪽에서 쿵소리가 났다”고 증언했다.

이는 국방부 합조단이 보고서에서 어뢰가 천안함 선저 중앙 ‘좌현’에서 폭발했다는 것과 상이한 증언이다.

이와 관련해 합조단이 자신을 조사한 경위를 두고 김 상사는 “사고 직후 처음엔 쿵~쾅 소리에 (합조단 등이) 관심이 없었다”면서도 “어뢰 발견 이후 어뢰와 기뢰가 추정된다고 하는 얘기가 나오고 난 이후에 조사하러 왔다”고 전했다...두차례 연달아 청취했다는 폭발음(충격음)의 주기에 대해 김 상사는 재판 초기엔 “수십초” 또는 “20~30초”라고 진술했다가 사고 직후 자신이 3~5초라고 인터뷰했던 기사내용을 제시하자 “그 정도였던 것 같다”고 번복했다. 그러나 김 상사는 국방부 합조단이 제시한 공중음파 감지 주기인 ‘1.1초’에 대해서는 “1.1초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잠수함이 와서 어뢰를 쏘는데 모를 수 있느냐’는 김형태 변호사의 신문에도 그는 “(모를 수) 없다”고 답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636

전탐장 김수길 상사는 사고 당시 들었던 쿵하고 쾅하는 소리의 간격을 수십초 간격이라고 증언해 주어서
1.1 초 간격의 버블주기를 주장했던 합조단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임을 증명함.

또한 전탐장 김상사는 절단면에 가장 근접해있던 생존자로 사고 당시 ‘폭발음’(충격음)에 대해 다른 함정과 부딪히는 소리로 알았으며, 폭뢰와 같은 폭발소리와는 달랐으며, 또한 그 소리를 청취한 위치도 선저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서 들었다고 증언해 줌.

전탐장 김수길 상사의 증언은 아래 천안함 함미절단면의 단면도가 보여주는 우현 선저의 수축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천안함 우현 선저에 충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해주는 증언임..

천안함에 외부 충격이 있었다면 그 충격지점이 가장 심하게 변형될 것임. 함미 변형 상태를 보면 우현 선저가 가장 크게 변형되었으며, 1,080mm가 수축된 우현 선저가 합조단이 주장하는 충격지점인 좌현 선저 102m보다 10배가 넘게 변형되었음. 변형 방향도 우현은 수축됐고 좌현은 팽창됨.

따라서 천안함에 가해진 힘의 방향은, 합조단의 주장과는 달리 함체의 우현 하단에서 좌현쪽 방향이었다고 판단해야 하고, 천안함 전탐장 김수길 상사의 증언은 이러한 함미 절단면의 변형 형태에 부합한 증언임.




합조단이 버블제트 물기둥 때문에 치솟았다고 주장하는 함미 좌현 주갑판의 경우, 함체 우현 선저의 충격(좌초)을 경험한 천안함이 이후 가스터빈실을 중심으로 함수가 우현으로 넘어지는 과정에서 함미와 찢어지는 과정에서 치솟았을 가능성이 있음. 생존자들 중에는 함체가 두번째 기울어질 때 꽈~꽈꽝하면서 철판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고 증언해주었음.

천안함의 스크류의 휨 현상은 좌초가 아니고서는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함.

따라서 사건 당시 <사고지점 수심 24m>라고 보고한 천안함 작전관 박연수를 비롯한 사관들은 사고지점 수심을 속여서 보고한 것이라 추정할 수 있음.

천안함 사고는 백령도 남방의 6m 정도의 저수심 지역에서 암초에 우현 선저가 충격을 받아 좌초된 것이라 할 수 있음. 연봉 바위 근처도 그 사고지점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음.

다시 반복하면, 천안함의 선체 변형 양상으로 볼 때 천안함은 함미 선저 우현에서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좌초 피해를 입고 우현으로 전복되었으며, 우현으로 기울어진 과정에서 함수가 함미가 찢어지면서 합조단이 버블제트가 솟구쳐서 만든 것이라 주장했을 법한 함미 좌현 테크 철판의 솟구침 현상이 만들어졌을 것임.

이 함미 우현 선저나 건져올린 가스터빈실의 변형 양상을 볼 때, 잠수함이 이 우현 선저를 부딪혔다고 볼 수 없음. 천안함은 침수 등의 이유로 최초 상황이 발생하여, 피항 허가를 얻어 백령도 남방 저수심 지역에 갔다가 함미 선저 우현에 암초가 부딪쳐 좌초되어 우현 전복으로 침몰된 것임.

저수심지역에서 좌초가 된 것이라면, 설사 침몰과정에서 두동강 났을지라도, 조수가 밀려들어오기까지 함미는 쉽게 가라앉기(안 보이게 되기) 어려웠을 것이며, 해경구조 동영상을 군(軍)이 갖은 방법으로 흐리게 만들어서 해경이 구조 당시 우현으로 전복된 천안함의 온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한 이유가 되었을 것임.

더군다나 합참은 3월27일의 국회국방위 보고에서 선체 전체가 20분만에 60%가 잠겼다는 등의 보고를 한 바, 충격 이후 상당한 시간 함수와 함미가 붙어있는 듯한 외관을 보였을 수 있음. 함수 역시 저수심 지역에서 암초등에 얹힌 채로 상당한 시간을 우현으로 기울어져있다가, 조수가 들어차면서 본격 침몰하기 시작한 것일 수 있음. 그렇지 않다면 전혀 다른 사고경위가 있거나.






[8/8]     IP 73.15.65.x    작성일 2018년3월13일 07시34분      

선수 밑에 있던 소나돔 앞 코가 콱 찍혀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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