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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죽을 각오 하고 올리는 문재인 대통령 비판-특별번외편(上)
  번호 59512  글쓴이 병파  조회 930  누리 5 (0,5, 1:0:1)  등록일 2018-1-4 17:36 대문 0 [문재인정부] 

맞아 죽을 각오 하고 올리는 문재인 대통령 비판-특별번외편(上)
(WWW.SURPRISE.OR.KR / 병파 / 2018-01-04)


원래 제2편을 올리려고 했으나, 그전에 내가 사용하는 용어에 대해서 정의(定義)를 내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특별번외편을 먼저 올리게 되었다. 원래 제2편에서는 2016년 10월 24일 이전과 이후로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이 크게 변했는데 이런 변화의 원인 및 변화의 범위와 한계를 논해서 앞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이 급격하게 변하겠지만 그런 변화의 폭을 과대평가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파시즘’의 위험성에 대해서 둔감한 편이고 ‘입헌주의’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지는 않지만)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이런 점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고 비판하려고 했는데… 이런 비판을 설득력 있고 알맹이 있게 해서 문재인 대통령의 어리석음에 강펀치를 날리고 뜻있는 賢人들의 호응을 얻으려면 좀 더 설득력 있는 언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먼저 ‘절차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표현부터 생각해보자. 노회찬이니 심상정이니 하는 사람들이 잘 쓰는 표현이다. 이런 양반들이 이들 용어를 사용하는 맥락은 늘 이런 식이다. “대한민국은 1987년 이후에 형식적 민주주의 면에서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에서는 많이 미흡하다. (나를 정치적으로 지지해주면 ‘실질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겠다.)” 이 양반들이 말하는 ‘1987년 이후에 대한민국에서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는 그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것이 뭔지를 분석해보면 이들이 하는 말의 當否를 판단하기 좋을 것이다.

1987년보다 16년 전인 1971년에, 지금 서울 구치소에서 만화책을 보고 계시는 503번 미결수의 선친인 故박정희 대통령은 세 번째로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면서 “다시는 여러분에게 표를 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얼핏 들으면 3선까지만 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그 뒤에 이 양반이 한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지 않고 종신 대통령 노릇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뭐 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정치체제에서는 국민들이 박정희 말고 다른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고 싶어도,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는 순간에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폐차장으로 끌려가서 짜부가 되기 십상이었다.

어쨌든 1972년부터 1987년까지 15년 동안 대한민국 국민은 국민의 대표자를 자신들이 직접 선출할 수 없었다. 국민 자신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는 ‘직접민주주의’는 논외로 하더라도 대의민주주의 관점에서 이 기간에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1987년에 투쟁을 통해서 직선제를 되찾았다. 그러나 1987년 대선에서는 원래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기로 되어 있던 사람이 국민 직선으로 당선되는 수준에서 변화가 이루어지는 정도였다. 대한민국의 비주류였던 정치인이 (총칼 등 무력이 아닌) 오로지 ‘선거’라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97년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1987년과 1997년 대선결과를 표현하는 수준에서 그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은 설득력이 매우 크다.

대통령을 ‘국민의 직접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서 선출하는 제도를 갖추었다면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제도가 생겼다고 해도(사실은 부활한 것이지만) 실제로 이런 선거제도를 통해서 (총칼 등 무력을 갖추지 못한) 야당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다면 그런 제도는 ‘형식’에 그칠 뿐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성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1997년 이전에 대한민국 민주화의 제1과제는 이 부분이었다. 1987년에 달성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통해서 5.16이나 12.12 같은 군사정변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정치질서가 바뀌지는 않고 선거라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서 대한민국 정치가 운영될 기틀은 마련했지만, 이 제도를 통해서 야당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대한민국 국민의 삶 속에서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다.

지금은 서기 2018년 1월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나라의 정치가 이만큼이나마 발전할 수 있었던 건 1997년 12월에 대통령 직선제가 실질적 의미를 획득한 덕이었다. 그때 유시민 작가는 김대중을 싫어하는 국민이 많으니까 김대중을 배제하자고 한 모양이던데, 이런 허튼 소리야말로 유시민 작가의 그릇크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고 하겠다. 유시민 작가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은 대통령 직선제가 실질적 의미를 획득한 뒤에야 그다음 단계로 전진이 가능하다는 역사발전의 큰 틀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위에서 말한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가장 좁은 의미로 파악하면 1997년 12월에 김대중이라는 야당 정치인이 총칼이 아닌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서 대통령이 됨으로써 달성한 성취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성취야말로 앨빈 토플러가 말한 ‘powershift’라고 볼 수 있겠다. (‘powershift’를 ‘권력이동’이라고 번역해서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번역본도 출판했는데, ‘권력변환’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토플러가 권력의 중심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되는 수단이 바뀌는 것을 ‘powershift’라고 표현했으니까. 토플러가 말한 ‘powershift’와 대비해서 말한 ‘power shift’야말로 ‘권력이동’이라고 번역하면 좋을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사 번역본은 ‘power shift’를 ‘권력의 이동’이라고 번역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1997년 12월에 김대중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해서 그 순간 대한민국이 유토피아가 된 것은 아니다. 당시에 많은 뜻있는 사람들(유시민 작가는 이 ‘뜻있는 사람들’에 속하지 않았지?)이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야 한다고 믿은 이유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다고 반드시 대한민국이 더 나은 나라가 된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김대중이 대통령이 안 되면 대한민국이 더 나은 나라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김대중이 대통령이 못 되면 실현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지금(1990년대)보다 더 나은 대한민국의 모습’이란 무엇이었을까?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존엄성을 누리는 나라의 모습’이라고 하면 어폐가 없을 것 같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지는 물론 異見이 크겠지만 말이다. 심상정이나 노회찬 등이 말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도 대강 이런 모습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심상정이나 노회찬 등 ‘진보주의자들’이 흔히 말하는 이런 理想은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표현하기보다는 ‘민주주의의 微視化’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꼼꼼히 따지는 것을 싫어하는 한국 사람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말꼬리를 잡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런 개념을 정확히 해두지 않으면 토론이 합리적인 의견교환이 아니라 감정싸움이 되면서 민주주의의 기초가 흔들린다. 합리적인 토론이 없다면 의견대립을 해소할 수단은 총칼 등 무력뿐이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좋아하던 바로 그 무력 말이다. 의견대립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합리적인 토론이 없다면 무력 말고 의견대립을 해소할 방법이 있는가? 박정희나 전두환의 武斷統治는 싫다면서 동시에 합리적인 토론도 싫어하는 韓國民의 이중성은 지적해둘 필요가 있겠다.

심상정이나 노회찬 등 ‘진보주의자’들이 김대중이든 노무현이든 문재인이든 중도세력(권영길의 표현을 빌리면 ‘사이비 진보’)을 싫어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너무나 더디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갖가지 부조리에 짓눌려서 신음하는 民草가 수두룩한데 저들은 엉뚱한 짓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답답해서 속이 터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심상정이나 노회찬 등 진보주의자들을 응원하는 여론을 보면 대개 그런 내용이다. 이런 사람들이 보기에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어떤 면에서 ‘민주주의 발전’인지 납득 못하겠다는 주장도 얼핏 들으면 그럴듯해 보인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명백하게 답을 제시할 수 있다. 그동안 내가 누차 강조해온 ‘백색테러 국민’이라는 용어를 생각하면 된다. 원래 나는 ‘전라도 공산주의자들을 모조리 구타해서 살해해야 한다고 믿는 주권자들’이라는 표현을 썼는데(‘대한민국 국적법上 대한민국 국적자이면서 전라도 빨갱이들을 모조리 때려죽여야 한다고 믿는 국민’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장아무개(장기정?)라는 者가 박영수 특별검사한테 ‘야구방망이 맛’을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굳이 이렇게 복잡한 용어를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백색테러 국민’ 내지 ‘백색테러 주권자’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들 중 상당수는 장아무개와 비슷한 ‘백색테러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이런저런 여론조사 등을 종합해보면 대한민국 국민의 약 10%, 즉 약 500만 명가량이 이런 ‘백색테러 국민들’이다. 노르웨이나 덴마크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군. 100보 양보해서 박근혜를 끝까지 지지한 ‘4%’라고만 잡아도 200만 명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어떤 외딴 ‘게토’(ghetto)에서 따로 떨어져 사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극단적인 폭력성을 보이지 않는 이상은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관용’하에서 아주 살고 있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예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속담을 가진 이 나라의 특성 때문인지 오히려 건전한 민주시민들보다 더 각별한 배려 속에서 살고 있다. THAAD로 큰 홍역을 치른 경상북도 성주 유권자들 중 압도적 다수가 홍준표를 지지하자 주요 포털 사이트 댓글에는 성주군민들을 비웃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이때 (문재인 지지자들을 광신도 취급하며 욕하던) 진보언론들은 홍준표를 지지한 성주군민들의 민심을 옹호하기에 바빴다. 홍준표를 지지한 성주군민들을 향한 그 애틋한 감정의 절반, 아니 1/4만이라도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주었다면 문재인 지지자들이 진보언론을 지금처럼 혐오하겠는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사회구성원의 10% 가량을 차지하는 사회가 도약할 수 있겠는가?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다 이들 ‘백색테러 주권자’들을 어르고 달래고 제어하는 쪽으로 흘러가니까 대한민국 사회가 발전을 못한 것이다. 즉, 대한민국 사회는 이 사회 자체를 파괴하려는 사람들(사회 구성원 중 약 10%)을 사회의 일원으로 끌어안고 사는, ‘시한폭탄 사회’라는 뜻이다.

심상정이나 노회찬 등 ‘진보주의자들’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이 느리고 답답하다고 자꾸 욕하고 공격하는데, 이들 중도파 정치인들이 ‘느리고 답답한’ 이유는 이런 ‘백색테러 국민들’도 ‘동료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여기고 대한민국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에 쓸 수 있는 소중한 에너지를 이들 ‘백색테러 국민들’이 싸놓은 똥을 치우고 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쪽으로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보주의자들’은 바로 이 점에 대해서 눈을 감아버린다. 노회찬이나 심상정 등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백색테러국민? 그딴 것이 세상에 어디 있어? 있지도 않은 허깨비를 들먹이면서 궤변을 늘어놓는가?”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진보주의자들’은 백색테러 국민들을 향해서 퍼부을 욕을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에게 퍼붓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이 글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상당히 특이한 스타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위 ‘점잖은 인텔리겐차들’은 이런 말을 하면 귀를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을 존중해달라고 한다. 가령 ‘전라도 빨갱이들을 모조리 때려죽여야 한다고 믿는 국민 10%’의 존재 자체를 외면하는 식이다. 내가 “이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고, 이런 사람들의 행동이 우리의 삶에도 분명히 영향을 끼치지 않나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심상정 등은 귀를 막아버린다. 사실 내 말은 “여러분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전쟁은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한 트로츠키의 말과 맥락이 비슷한데… 그래서 나는 ‘전라도 빨갱이들을 모조리 때려죽여야 한다고 믿는 국민들’이라는 표현을 ‘전라도 공산주의자들을 모조리 구타해서 살해해야 한다고 믿는 주권자들’이라고 바꿔서 ‘듣기 싫어도 억지로 들으라고’ 심상정 등의 귀에 억지로 쑤셔넣은 것이다. ‘때려죽인다’는 표현보다는 ‘구타해서 살해한다’는 표현이 더 점잖으니까 말이다. 듣기 싫어도 들으라구.

다음 편에서는 심상정이니 노회찬이니 하는 ‘진보주의자들’이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여서 신성시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것을 좀 더 꼼꼼하고 합리적으로 분석해서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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