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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정책의 경제학 - 신화(myth)와 현실(reality)
  번호 56932  글쓴이 이준구  조회 426  누리 10 (10,0, 2:1:0)  등록일 2017-12-4 12:43 대문 0

감세정책의 경제학 - 신화(myth)와 현실(reality)
(WWW.SURPRISE.OR.KR / 이준구 / 2017-12-04)


신자유주의자들은 “감세는 미덕”이라는 신화(myth)의 신봉자들입니다. 감세를 해주기만 하면 침체했던 경제가 마치 날개라도 단 것처럼 뛰어오르기라도 하는 듯 감세의 미덕을 선전하기 일쑤입니다. 그 영향을 받아 보수적인 정치인은 정권을 잡자마자 감세부터 서두르기 마련입니다.

1981년 미국의 R. Reagan이 그랬고, 지금 이 순간 D. Trump도 전대미문의 감세를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35%인 법인세율을 무려 20% 포인트나 깎아 15%까지 내리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10년 전 MB가 이와 똑같은 모습을 보였지요.

그러나 역사는 R. Reagan과 그 뒤를 이은 G. Bush의 감세정책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음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 점은 내가 최근에 펴낸 『미국의 신자유주의 실험』에서 엄밀한 근거를 들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지 느낌으로 감세정책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단정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축적된 많은 연구결과에 기초해 그런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감세정책이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주장의 근거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면 사람들이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면 저축이 늘어나는 동시에 투자도 늘어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노동공급의 증가, 그리고 저축과 투자의 증가가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신자유주의 실험』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R. Reagan의 획기적인 감세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노동공급이 현저히 증가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동공급이 약간 늘어나기는 했어도 다른 이유 때문에 늘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지적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근로장려세제에 해당하는 Earned Income Tax Credit제도의 영향이 더 컸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감세정책이 노동공급을 늘리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면 노동공급의 증가가 주로 고소득층에서 관찰되어야 합니다. ‘부자감세’라는 말이 있듯, 감세정책의 주요 수혜자가 바로 고소득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소득층에서 노동공급의 증가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노동공급이 증가한 계층은 감세정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던 중, 저소득층이었습니다. 몇몇 경제학자는 신자유주의정책의 여파로 이들의 삶이 너무나 어려워졌기 때문에 더 많이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난 이것이 매우 설득력이 높은 해석이라고 봅니다.

여하튼 감세정책이 노동공급을 늘려 성장에 기여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 방면으로 수행된 수많은 실증연구의 결과가 거의 이론의 여지없이 이런 결론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 두 개의 연구결과가 그런 것이 아니라 수십 개의 연구결과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실험』은 R. Reagan의 감세정책이 저축과 투자의 증가를 이끌어내는 데도 실패했음을 의문의 여지없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축 촉진책으로 우리의 세금우대연금저축에 해당하는 Individual Retirement Account를 대폭 확대하는 정책을 썼지만 저축의 순증가는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입니다. 단지 다른 형태의 저축을 세금 혜택이 있는 IRA로 전환하는 효과만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R. Reagan의 감세정책이 도입된 직후 투자가 일시적으로 증가한 현상이 나타나기는 했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에 환호했지만 경제학자들의 평가는 냉정했습니다. 그와 같은 투자의 일시적 증가는 감세정책의 효과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을 한 것입니다. R. Reagan의 취임을 전후해 미국경제는 극심한 침체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거기서 회복되는 국면에서 일시적인 투자 증가가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경제학자들의 중론은 세제상에서 투자유인을 제공해도 실제로 투자가 증가하는 효과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감세정책을 통해 투자의 기회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 ‘자본의 사용자비용’(user cost of capital)을 낮춰 줘도 실제의 투자증가는 기대만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론적으로 약간 복잡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실험』의 관련 부분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R. Reagan과 G. Bush의 감세정책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이렇다 할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중론입니다. 노동공급, 저축, 투자 어느 것에도 이렇다 할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니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나올 리 만무한 것이지요.

마침 최근 Economist지에 나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좋은 기사가 하나 올라 왔습니다. 여러분의 참고를 위해 여기 그 기사를 올려 놓을 테니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장하는 감세정책 무용론과 거의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기사는 D. Trump가 지금 획기적인 감세를 공언하고 있지만 그것이 미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D. Trump측에서는 감세정책이 실천에 옮겨질 경우 경제성장률이 4%대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습니다.

Economist지는 그것이 근거 없는 낙관론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Penn Wharton Budget Model이라는 권위 있는 연구기관의 성장률 추정 결과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감세정책이 실현되더라도 그 효과는 2027년의 경제성장률을 고작 0.4%에서 0.9%에 이르는 수준으로 올리는 데 불과하다고 합니다. 잠재성장률이 바로 4%대로 뛰어오른다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거지요. (이 대목에서 10년 전 경제성장률을 단번에 7%대로 끌어올리겠다는 허황된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MB를 생각하고 실소를 터트렸습니다.)

Economist지는 미국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의 분석결과를 인용해 법인세율의 대폭 인하가 장기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미미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분석 결과에 따르면 법인세율을 10% 포인트나 대폭 내려보았자 장기성장률은 고작 0.15% 더 커질 뿐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법인세율 인하의 혜택이 외국인 주주들에게 상당 부분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민의 소득이 증가하는 폭은 한층 더 작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D. Trump가 법인세율을 절반 이하로 내려 천지개벽을 일으킬 것인 양 떠들지만 실제의 성장 제고 효과는 지극히 미미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걸 보면 우리나라에서 일부 거대 법인에 대해 제한적으로 법인세율을 3% 포인트 올린다고 하는데 난리법석을 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길거라고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이 감세정책이 경제성장을 제고하는 효과는 미미한 데 비해, 그것에 따르는 비용은 매우 큽니다. 감세정책이 조세수입의 감소를 가져올 것은 뻔한데, 이는 곧바로 재정적자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공화당측도 현재 구상중인 감세정책이 실천에 옮겨질 경우 향후 10년 동안 정부채무가 국내총생산의 8%에 해당하는 규모로 증가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합니다.

미국 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급격히 늘어나는 부채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 겪고 있는 정부 부채 문제의 상당 부분이 R. Reagan과 G. Bush의 감세정책의 귀결입니다. 여기에 D. Trump가 또다시 휘발유를 들이 부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공화당의 신조가 ‘건전재정’인데, 건전재정을 말아먹은 주인공이 바로 공화당이란 사실이 역설적입니다.

감세정책의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그것이 분배상태에 미치는 악영향입니다. 신자유주의적 감세정책은 언제나 ‘부자감세’라는 말이 따라올 정도로 고소득층에게만 압도적인 혜택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에 비해 서민들이 얻게 되는 직접적 감세효과는 미미하기 짝이 없습니다.

Economist지는 Tax Policy Center의 분석결과를 인용해 현재 하원에서 심의중인 감세안이 실천에 옮겨질 경우 최상위 0.1%의 세금 부담은 2027년에 무려 1인당 평균 27만 8천 달러만큼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반면에 하위 20%에 속하는 사람이 얻는 세금 경감 효과는 고작 평균 10달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런 부자감세가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한층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감세정책의 손익계산서를 만들어 놓고 보았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의문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감세정책인가?”라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과 보수 정치인이 만들어낸 허황된 신화(myth)가 감세정책에 대한 가당치 않은 기대를 부풀리게 만든 주범입니다. 감세정책의 현실(reality)은 그 신화와 너무나도 다른데, 아쉬운 점은 일반 대중이 그 사실을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실험』에는 미국의 보수파들이 보수적 지식인과 보수적 싱크탱크를 통한 이념전쟁을 통해 보수의 헤게모니를 확립한 과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런 보수파의 적극적인 선전활동이 신화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일으킨 주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념전쟁은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그것이 부자의 편을 드는 공화당이 계속 집권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요?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념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겁니다. 보수언론과 보수 지식인, 보수 정치인이 세금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보면 천편일률적인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보수적인 언론이면서도 옳다고 생각되면 서슴지 않고 말하는 Economist지 같은 기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쪽의 영향력이 훨씬 더 큰 편입니다. 주요 언론이 보수세력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상황의 결과겠지요. 그 결과 저소득층까지 “감세는 미덕”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신화를 무비판적으로 신봉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라도 이와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이런 글을 계속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준구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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