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추석과 임진강…강은 흐르는데 사람의 길은 막혀 있다
(WWW.SURPRISE.OR.KR / 임두만 / 2026-09-29)
추석 연휴, 임진각을 찾았다. 가을은 이미 임진강에 내려와 있었다. 하늘은 높았고 햇살은 맑았다. 들판의 벼는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하고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그러나 임진각에서 보는 가을은 조금 달랐다. 풍경 하나에도 역사가 묻어 있고, 길 하나에도 분단이 걸려 있다. 강 건너편을 바라보는 일조차 단순한 풍경 감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추석이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의 산소를 찾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하지만 임진각에는 정작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돌아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찾아오는 망배단(望拜壇.)이 있다.
돌기둥 가운데 세 글자가 선명했다.
望拜壇. 바라볼 망(望), 절 배(拜), 단 단(壇).
고향을 바라보며 절하는 곳이라는 이름 자체가 분단의 역사다.
파주도시공사가 만들어 붙인 안내판에는 “한국전쟁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은 설과 추석이 되면 북녘에 두고 온 부모와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기 위해 임진각을 찾았다. 처음에는 임시 제단을 만들어 제를 올렸고, 오랜 염원 끝에 1985년 이곳에 상설 망배단이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이곳에서 추석은 단순한 명절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추석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추석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 날이었을 것이다.
남쪽의 자식들이 차례상을 차리고 북쪽을 향해 절했다. 산 하나, 강 하나만 넘으면 닿을 것 같은 고향인데 갈 수 없었다. 부모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만나지 못했고, 세월이 흐른 뒤에는 살아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망배단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망향의 노래비’가 서 있다.
비석 앞에는 이산가족이 서로 부둥켜안은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한 시대를 울렸던 노래, ‘잃어버린 30년’을 만난다.
파주도시공사가 붙인 노래비 안내판에는 “1983년 KBS의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기억하는 세대라면 그 노래를 쉽게 잊지 못한다. 당시 방송은 138일간 이어졌고 1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다시 만났다. ‘잃어버린 30년’은 그 시대 이산가족의 아픔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고, 1995년 임진각에 망향의 노래비가 세워졌다.”고 써 있다.
그런데 이제는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제목조차 역설적이다. 30년의 두배가 넘는 70년을 넘겼기 때문이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거의 세상을 떠났고, 부모를 기다리던 아이는 8순 9순 노인이 됐다. 만나지 못한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이니 생전 효도는 꿈일 뿐이다.
분단은 지도 위에서는 그대로인데 이처럼 사람들의 생애만 먼저 끝나가고 있다. 그래서 망향의 노래비 앞에서 느끼는 것은 과거에 대한 슬픔만은 아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이다.
임진강 평화곤돌라에 올랐다. 곤돌라가 움직이자 임진강이 발아래로 펼쳐졌다. 강 위를 건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이 이상하게도 길게 느껴졌다.
평화곤돌라는 임진강을 가로질러 민간인출입통제선 지역까지 이어진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설명한 안내문에 따르면 2020년 개장한 뒤 관광객이 임진강 너머 민통선 지역을 바라보고 분단의 현장을 보다 가까이 경험할 수 있는 길이 됐다.
곤돌라 안에서 창밖을 내려다봤다. 임진강의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도 평온했다. 사람이 만든 지도에는 군사분계선이 있고 DMZ가 있고 민통선이 있지만, 강물과 바람과 새에게 그런 경계는 없다. 그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했다.
강을 건너 곤돌라에서 내리자 벽면의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하늘길로 들어 올 수 있는 유일한 민간인 통제구역입니다”
그리고 또 한 구절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곳, DMZ 우리가 가야 할 길에서 마주하다.”
그 위에는 철조망을 형상화한 ‘DMZ’ 글자와 흰 비둘기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철조망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철조망과 비둘기. 분단과 평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이미지가 한 벽에 함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한반도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전쟁은 멈췄지만 평화가 완성된 것은 아닌 땅. 그래서 생각했다. “분단은 오래됐지만 영원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곤돌라에서 바라본 민통선 남쪽의 가을 들녘은 놀라울 만큼 아름다웠다. 논마다 벼가 익어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는 모습이 평회를 상징하는 아름다움이다.
그어진 논두렁 사이로 가을이 내려앉아 있다. 사진만 떼어놓고 본다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을 들녃 풍경. 평범한 가을 풍경과 분단의 현실이 한 화면 안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저 평화로운 풍경과는 다르게 그곳 가까이에 철책이 있고 초소가 있고 지뢰가 있고, 갈 수 없는 길이 있다는 것을.
임진강은 오랜 세월 한반도를 흘렀다. 분단 이전에도 흘렀고 전쟁 중에도 흘렀으며 정전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고 남북관계가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강물은 한 번도 흐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강물은 북에서 남으로, 또 서해로 흘러간다. 사람이 철책을 세워도 물길까지 끊지는 못했다.
▲ 임진강 남쪽의 가을 들녃
추석, 고향이라는 말
추석은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명절이다.
그래서 임진각의 추석은 더욱 특별하다.
누군가는 고속도로를 몇 시간 달려 고향으로 간다. 누군가는 기차를 타고 간다. 그리고 누군가는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임진각 망배단에 섰던 사람들에게 고향은 평생 갈 수 없는 곳이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두 시간이면 올 수 있는 곳까지 와서 북쪽을 바라보며 절하고 다시 남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고향. 그들에게 추석은 얼마나 잔인한 명절이었을까.
임진각을 떠나며 다시 망배단을 바라봤다. 이곳이 언젠가는 필요 없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망배단을 역사로 남기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며...
2026년 추석.
임진각의 하늘은 유난히 높았고 들판은 황금빛이었다.
곤돌라는 사람들을 태우고 임진강을 오갔고, 그 아래 강물도 말없이 흘렀다.
그러나 그 너머로 가는 사람의 길은 막혀있다. 그래서 임진각의 가을은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