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 청사진 내놓고 식민분단 청산을”
김성수(91) 철학박사, ‘식민분단 적폐청산의 길’ 전국 순회강연 마치고 출국
(사람일보/ 박창덕 기자 / 2026-07-23)
재독동포 김성수(91) 철학박사는 조국을 방문하여 ‘식민분단 적폐청산과 조국통일의 길’을 주제로 전국 순회강연을 마치고 23일 항공편으로 거주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갔다.
김 박사는 20일 사람일보와 우리겨레연구소(준)가 마련한 송별좌담회에서 “세계사적인 대전환기에 유럽에서는 대안정당이 출현해 기성정당을 제치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지만 진정한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며 “우리 나라 진보운동은 조국통일이 민중에게 어떠한 행복을 안겨줄 것인지 청사진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식민분단 적폐청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18일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자주연합이 주최하고 전북자주연합이 주관한 초청강연과 16일 서울에서 진행된 분단과통일시 5집 출판 기념강연에서도 “우리 겨레는 멀지 않은 날에 독일통일보다 훨씬 멋진 조국통일을 이룰 것”이라며 “이제 우리 민족이 쟁취할 조국통일은 21세기를 이끌어갈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또 “우리 나라 역사발전과 사회발전을 목조른 것은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라며 “통일을 지향하고 새로운 사회를 바라는 양심세력은 우선적으로 집중적으로 외세를 몰아내고 자기 힘으로 조국통일을 하겠다는 확고한 정신을 견지할 때 식민분단 적폐청산과 조국통일의 민족의 염원을 실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이에 앞서 지난 6월13일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초청 광주강연, 6월20일 자주민회와 미군철수투쟁대경지부 초청 대구강연, 6월25일 부산인권포럼 (사)부산평화통일센터 하나 요산문학로문화센터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 초청 부산강연을 했다.
강연회 참석자들은 최근 정부가 ‘유럽거점간첩단사건’에 연루되어 희생된 고 최종길 교수에게 국가훈장 모란장을 추서한 것처럼 ‘유럽거점간첩단사건’ 배후로 지목돼 평생 고초를 겪으면서도 조국의 민주주의와 조국통일에 헌신해온 김성수(91) 철학박사에게도 살아생전 명예회복이 되도록 국가훈장을 수여할 것을 촉구했다.
김성수 철학박사 약력과 그가 독일에서 창간한 <우리신보> 창간사는 다음과 같다.
독일에서 조국의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해온 김성수(91) 철학박사 약력
김성수 박사는 1936년 3월 8일 전남 화순읍에서 태어나 전남 광주고등학교를 졸업(3회)하고,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로 유학을 가서 프랑크푸르트(요한 볼프강 괴테)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 박사는 1973년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와 관련된 ‘유럽거점간첩단사건’ 배후로 지목돼 1973년 10월부터 2003년 9월까지 30여년간 조국 방문을 할 수 없었다. 독일에서 50여년간 조국의 민주화운동과 평화통일운동에 주동적으로 참여했다.
김 박사는 초대 프랑크푸르트 한인회장을 지냈으며,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초까지 민주사회건설협의회 발기 창립회원(1974년), 코리아코미티 발기 창립회원(1976년), 해외기독자통일위원회의 창립회원으로 활동했다.
김 박사는 또 1970년대 초 독일 디아코니, 카리타스, 병원협회와 한인들로 구성된 한독사업공동회 회장을 역임하며 파독 간호사들과 광부들의 독일 생활 정착을 위한 지원사업에 헌신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귀향촉진회를 구성해 당시 김인서 김영태 함세환 비전향장기수를 고향으로 보내는 운동을 했다.
김 박사는 특히 1980년 5월 광주학살과 김대중 선생의 사형언도를 세상에 알리고 항의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시청 앞 니콜라오스 교회에서 민건회와 코리아코미티 회원 10여명과 함께 3박4일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 농성을 계기로 코리아코미티 회장 프로이덴벨크 교수는 당시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와 연결하여 이를 유럽 전반에 알리고 국제사회가 김대중 구명운동에 나서게 하는 외교적 성과를 이끌어냈다.
민건회, 코리아코미티, 노연(광부/간호원으로 구성된 노동자연맹), 재독 여성모임 단체 등의 회원들은 광주의 항쟁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5월민중제를 발기하고 ‘5월민중제준비모임’를 상설화해 80년대 초부터 해마다 5월18일을 전후하여 주말 2박3일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 박사는 6·15공동선언실천유럽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독한문화원(Deutsch-Koreanisches Kulturinstitut e.V.)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서양철학의 역설』 『동학 동경대전 독일어 번역과 해설』 (Das Goße Buch des Tonghak von Choe.Che―U, IKO―Verlag, Frankfurt am Main, 1997) 등이 있다.
우리신보 창간사(1974년 5월15일)
창간사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자
민주정치는 바로 여론의 정치이다. 그것에 반하여 독재정치는 국민의 여론에 근거하지 않고 소수의 권력자의 자의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를 말한다. 그럼 여론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여론은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자유로운 대화의 광장이 마련되지 않은 사회에 올바른 여론이 형성될 수 없다. 국민의 여론 형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매스콤이다. 매스콤 중에서도 신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신문의 사명은 뉴스의 정확한 보도와 국민대중의 비판과 주장을 전달하는 것이기에 민주사회에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지금까지 우리 교포사회에 올바른 신문 하나가 없었다는 것은 우리 사이에 소식의 전달과 의사소통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 만여 명에 가까운 우리 노동자들은 외화획득이라는 국가정책 아래 독일에 인력수출 되어 왔다.
그들은 국제노동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될 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중대한 권익들이 소외당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약소국가에서 왔다고 차별대우까지 받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모순들을 인식하고 버림받은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서도 신문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사회가 복잡화 되어감에 따라 종합된 여론을 반영함이 없이는 대중의 공동이익을 위한 목적을 추구하고 달성할 수도 없다. 그럼 국내사정을 돌아보자! 현재 우리나라는 언론자유가 상당히 제한되고 있어 신문은 일반 대중에게 뉴스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방적으로 조작된 선전이 강압적으로 작용되어 국민들은 정확히 알고 들을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언론탄압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여론형성에 장애를 받고 있다면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 또다시 남북대화가 정체에 빠져 희망마저 어두워지고 있는가 하면 물가앙등으로 인한 국민의 생활이 도탄에 빠져 있다.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자원파동 이후 긴장된 국제경제상황 속에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국가이익에 바탕을 둔 자국 위주의 경제주의를 실천함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에 있어서 우리 나라와 같은 의존자원에 고도성장 및 근대화를 기하려던 경제발전은 극히 근시안적 무계획성 때문에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이러한 국가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우리는 국민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협력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인식하여야 할 것이며 정부는 또한 국내외 동포들의 조국을 위해 올부짖는 건설적인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민족의 가는 길이 세계사의 진보에 있어서 어느 좌표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똑바로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가 가져야 할 중대한 책임은 우리 민족의 뼈가 거기서 자라고 또 거기서 묻혀야 할 우리의 조국이기에 우리는 어떠한 독재자의 자의나 외세에 의한 수치스러운 역사를 다시는 남기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불우한 현실을 민족성이나 숙명에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노력하면 복지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신념을 가지고 우리의 역사를 창조해 가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참여와 꾸준한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단독적이고 편협적인 사고방식에서 해방되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우리 신보>를 통해 자유롭고 솔직한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여 조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출처: https://www.saramilbo.com/23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