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코리언의 삶, 증오에 저항하는 길 ④
뿌리를 순회하는 여정 - 4 미래로 차별을 넘기지 않기 위해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2-07-08)

이 글은, 올해 칸 영화제에 초청된 재일 코리언 사진 작가 야스다 나쓰키安田菜津가 일본 잡지 <세카이>에 4회에 걸쳐 연재한, <뿌리를 순회하는 여정, 증오에 저항하는 길>의 네 번째 글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 3세로 母語가 일본어인 그는 왜 ‘뿌리’를 찾고 싶었을까요? - 역자 주

야스다 나쓰키 安田菜津紀
Dialogue for People 소속 사진 기자.
1987년, 가나가와神奈川현 출생.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일본 국내에서 난민과 빈곤, 재해를 취재.
『사진으로 전하는 일 – 세계의 어린이들과 마주해』 『당신의 Roots를 가르쳐 주세요』 등의 저서가 있다.

2021년 3월 31일, 도쿄 아카사카赤坂에 있는 TBS 라디오 스튜디오는, 슬슬 날짜가 바뀌는 시간이 되었지만, 어수선한 분위기와 특유의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날은 중의원 선거 투‧개표일이어서, 오기우에荻上 치키 씨가 사회를 맡은 선거 특별 프로그램에 나도 출연했다. 아나운서와 기자가 각지의 당락 상황을 바쁘게 전하고 있었다. 출연진 좌석 앞에 죽 늘어서 있는 모든 TV 모니터 화면에는, 각 당이 획득한 의석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모든 모니터가 선거 보도로 도배되어 있었다.

다른 방송국의 진행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정치가에 전화를 연결하는 시간은 초 단위로 엄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오후 11시 반경, 스튜디오에서, 일본유신회의 바바 노부유키馬場伸幸 간사장(당시)에게 전화를 연결했을 때, 나는 연속 두 개의 질문을 던졌다. 하나는, 유신회가 내걸고 있는 증오 발언 대책에 대해서였다. 「일본유신회 정책 제언 유신 8책策 2021」 안에 게재된 증오 발언 대책 가운데, “일본‧일본인이 대상인 것을 포함한다”라는 문언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물론, 어떠한 입장의 인간이든, 언어폭력을 당해서 좋을 리 없다. 다만, 2016년에 시행된 「증오 발언 해소법」의 입법 사실에는, 소수자로서의 일본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증오 발언은 단순한 ‘욕’이 아니라, 차별을 선동하고, 소수자를 더욱 취약한 처지로 내모는 데 피해의 심각성이 있다. 이런 점에 대해 바바 씨에게 질문했더니, “(증오 발언을) 폭넓게 받아들인다”라고 뭔 말인지 알 수 없는 발언을 해, 나는 “그것은 유신회 독자적 해석이다”라고 의사를 밝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다음의 질문이었다.

유신회는 같은 정책집 안에, 국정 선거의 입후보자가 과거에 일본 국적을 취득한 경우, 국적 상실 이력 공표를 의무화한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이 정책을 보았을 때,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이른바 ‘검은 Seal 사건’이었다. 1983년의 중의원 선거 때,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의 대립 후보였던 아라이 쇼케이新井將敬의 선거 포스터에, “북조선에서 귀화”라고 적힌 종이가 붙여졌는데, 그 후, 이시하라의 비서가 관련된 사실이 판명되었다.

먼저 역사적 경위를 살펴보자.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되었던 조선 반도 출신자는, 전후는 일방적으로 일본 국적이 박탈되고, 특정 국적을 갖지 않은 ‘조선인’으로 취급되었다. 조선 반도가 남북 두 개 나라로 찢어지고, 일본이 남쪽의 한국하고만 국교를 맺은 뒤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도 있다면, 그대로 ‘조선적’ 상태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라이 씨도, 일본 국적을 취득하기 전은 ‘조선적’이었다. ‘조선적’과 ‘북조선’을 혼동하는 그 시점에서, 그들은 이러한 역사에 무지하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 후에도, 이시하라 스스로 차별 언동을 반복했다. 2000년에 육상자위대 네리마練馬 주둔지에서 개최된 ‘창설 기념식’에서, “제삼국인, 외국인이 흉악한 범죄를 반복해 저지르고 있어, 큰 재해가 있는 경우에는 소요 사건마저 예상된다”라고 발언한 것은, 그저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저 ‘검은 Seal 사건’도, 이시하라의 주변에 만연하는 뿌리 깊은 차별성과 일본 사회에서 출신을 밝히는 일로 어떠한 공격을 받는가, 라는 위험을 여실히 밝힌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나도 여전히, 이시하라의 차별 발언 다수가 일부 미디어에서 “이시하라 말투” “자유로운 발언” 따위와 왜소화하는 일본 사회에서, 출신 공표 의무화는, 변함없이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위험성을 수반하는 것이기 마련이다.

그런 점을 질문받은 바바 씨는, “외교, 안전 보장상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하는” 입장에서 “공인으로 ‘제대로 된 경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바로 사회자인 오기우에 치키 씨가 말했다. “차별받는 부락部落* 출신인 것을 적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국적 이력의 표시는 왜 필요한 거지요.”
바바 씨는 “동화 지역** 출신 쪽은 같은 일본인이니까요”라고 했다.

쉼을 돌릴 여유도 주지 않고 바로 오기우에 치키 씨가 말했다. “귀화한 사람은, 그 이외의 일본인과는 다르다는 말씀인가요?”
바바 씨는 목청조차 바꾸지 않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 部落 : 근세 초기 이후, 봉건적 신분제에서 최하층을 차지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재도 다양한 차별을 받는 지역. 1871년의 해방령解放令으로 법적 차별은 해소되었지만, 사회적 차별과 편견, 이에 따른 인권 침해는 해소되지 않았다. - 역주

※※ 동화同和 지역 : 피차별 부락을 가리키는 행정 용어. 엄밀히 말하면 피차별 부락과 같지 않다. 즉, 행정 기관에 의해 동화 대책 사업이 필요하다고 인정된 지역으로 한정되고, 역사적으로는 피차별 부락이라도, 동화 지역으로 인정되지 않는 곳이 있다. - 역주

몸이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숨을 쉬는 것도 깜빡할 정도였다. 다시 아나운서의 선거 보도가 시작되고, 스튜디오 음성이 꺼지자, 피로감이 몰려오고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바바 씨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을 때, “심각하네”라고 눈짓을 해 준 출연자가 있었다. “이 자체가 증오네요”라고 분개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반응에 도움을 받으면서, 납덩이처럼 답답한 감정이,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말할 수 없었던’ 뿌리

호적의 기재에 따르면, 내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고 몇 년 뒤에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이리하여 아버지도, “(누군가를 향해 - 역주) 당신은 일본 사회의 일원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어 오셨는지도 모른다. 10월 31일, 이날은 아버지 제삿날이기도 했다.

아버지 야스다 세이타쓰安田淸達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 돌아가셨다. 그 후 나는, 고등학교에 가서 가족의 호적을 접하게 되어, 아버지가 재일 코리언이었던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버지 가족은 조선 반도 어디에서 오셨을까. 왜 아버지는 가족과 연을 끊고, 뿌리에 관한 모든 것을 자식에게 그저 숨겨 오셨던 걸까. 그런 의문에 답을 찾으려고, 오래된 서류에 의지해, 아버지 가족이 살았던 흔적을, 조금씩 더듬는 여정을 이어왔다. 아버지의 생가와 그 주변에 사는 재일 코리언들의 목소리를 접하고, 그 역사를 조사해 가는 일은, 처절한 차별과 증오 발언이라는 문제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계속 소비되는 증오 범죄의 숱한 영상과 역 앞에서 반복되는 증오 가두 선전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이런 모습을 자신의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 자신의 뿌리를 “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라고.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인간의 태도와 언동에 놀라 정신이 아찔했던 것은, 뭐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도쿄도 지사 선거 전, 현직의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등 후보자 4명이, 인터넷 프로그램에서 의견을 주고받았을 때의 일이다. OX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 항목들이 나열된 가운데, 고이케는 증오발언금지조례 제정에 ‘X’를 쳤다. 이 설문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증오와 차별에 대한 고이케의 인식을, 프로그램 속에서 몇 번이나 접할 수 있었다. 매년 9월, 도쿄 구로다구에 소재한 요코아미쵸横網町공원에서는, ‘간토 대지진에서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의 추도식’이 열린다. 역대 도쿄도 지사는 이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왔다. 차별 언동을 반복해 온 이사하라 신타로조차도 그랬다. 그런데 고이케는 2017년부터 추도문을 중지했다. 거기에 더해, 요코아미쵸공원의 점유사용허가신청의 수리를, 도쿄도는 세 번에 걸쳐 거부했다.

사회자로부터 그 일에 대해 질문을 받은 고이케는, “크나큰 재해에서 희생되신 분, 그것에 이어 다양한 사정으로 희생되신 분, 모든 분에 대한 위령이라는 마음에 변함은 없다”라는, 애매한 회답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했다.

간토 대지진 때, 조선 반도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겼던 일은, 자연재해에 의한 사망과 크게 다르다. 당시, 거리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경찰 같은 공권력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따위의 선동적 악선전에 휩쓸림으로써, 학살이 일어난 사실이 지적되었다. 그래서 공인은 늘, 반복되지 않을 것에 대한 의사를 표할 필요가 있기 마련이다. ‘학살’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양한 사정”이라는 애매한 문맥으로 회수하려고 하는 것에도, 그녀의 역사 인식의 일단이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밖에도, 과거 한국인에 대한 차별 발언이 아닐까 의심되는 트윗을 반복하는 후보자가 있었다. 이것에 대해 그는, “내게도 재일 친구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런 ‘친구’의 존재는, 차별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다.

결국, 도지사 선거는, 개표와 동시에 당선 확정이 나온 고이케의 압승이었다. 트윗으로 증오 발언을 반복했던 남성 후보자도, 그 나름 표를 얻어 네 번째 순위를 기록했다. 나는 이날도, TBS 라디오 도지사 선거 특별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튜디오에서 담담하게 보도되는 당선 확정의 고지를 들었다. 고이케 도지사에 의한 추도문 중지 문제를 프로그램에서 얘기하면서, ‘도쿄를 나갈까’라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과장이라고 생각할까. 이 도시의 리더의 태도가 저런 수준이다. 만약 다시 같은 규모의 재해가 일어났을 때, 소수자를 표적으로 한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까지도 대규모 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조선인이 재해 지역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듯하다”라는 선동적 선전이 인터넷에서 난무했다. 트윗 초기 플랫폼 측은 그것을 방치해 왔다. 언어폭력은, 신체적 폭력과 종이 한 장 차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즐겁게 투표소로 향하던 뒷모습이 뇌리에 떠오른다. 이 연재 첫 회에도 언급했듯이, ‘보통은 좀 성실해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가, 왜 바지런하게 투표하러 가는 것일까?’라고, 어린 시절은 이상하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까지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어 기뻤던 것이겠지’라고 하는, 단순한 이해로 긍정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사회에는, 열심히 살지만, ‘일본 국적을 갖지 못한’ 이유로, 투표라는 수단으로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알고 있었을 것이다. 투표한다는 일이, 단순히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활에 닥친 절박한 선택인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으리라.

그해 9월 1일, 나는 구로다구의 요코아미쵸공원에서 행해지는 ‘9.1 간토 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갔다. 간신히 공원 사용 허가를 받아 개최에 이른 추도식이었는데, 코로나 재난 영향으로, 일반 참가를 모집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희생자를 추도하는 비석 앞에, 관계자들만이 작은 칸막이 공간을 마련하고, 추도의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이 추도식이 행해지는 같은 공원 안, 겨우 20미터 앞에, “일본인을 욕보이는 도립都立 요코아미쵸공원의 조선인 추도비를 허용하지 말라” “6,000명 학살도 거짓말, 징용공 강제 연행도 거짓말”이라는 간판을 늘어놓은, 다른 집단이 집회를 열고 있었다. 공원의 나무들 사이로도, 그 무시무시한 여러 개의 구호가 엿보였다. 집단은, ‘일본을 사랑하는 여성회’를 내건 ‘산들바람’이라는 이름의 그룹이었다. 이 집단이 추도 집회 바로 옆에서 집회를 여는 것은, 이해로 4년째였다.

사실은 지난해의 ‘산들바람’ 집회에서는, “범인은 불령선인不逞鮮人, 조선인 코리언이었다” 따위와 같은 발언이 있었고, 도쿄도가 2020년 8월, 인권 조례에 근거해 이 발언을 증오 발언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그 집회는, 올해도 변함없이 허가되었다. 추도 집회 관계자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나마 올해는 훨씬 낫네요. 지난해는 스피커를 이쪽으로 향해 역사 수정 발언을 반복했고요, 일부 사람이 실제로 추도식을 방해하러 오기도 했으니까요.”

‘산들바람’과 추도 집회와 사이에는, 빈틈없이 말뚝이 설치되어, 공원은 마치 각각 다른 부지인 것처럼, 가로막혀 있었다. 어느 쪽이든 참가자보다 경찰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항상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가 그곳에 떠돌고 있었다. ‘산들바람’ 쪽 공원 출입구 저쪽에는, “증오 발언을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구호를 내건, ‘센터’ 사람들이 집결해 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를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경찰들이, 출입구로 이어지는 건널목을 빈틈없이, 몇 겹의 대열을 만들어 막고 있었다.

“왜 도로를 못 건너가게 하는 거야”라는 항의의 목소리가 높아져도, 제대로 상대해 주지 않았다.

이윽고 예복을 몸에 두른 ‘산들바람’ 측 참가자들이 집회를 마치고, 공원 출입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성들이 중심이지만, 개중에는 30대 정도의 젊은 세대의 얼굴도 보였다(‘산들바람’은 여성 모임을 내걸고 있지만, 남성도 지원 회원으로 입회할 수 있다). 경찰들은 그들의 양쪽을 보호하는 모양으로 대열을 꾸려, 역까지 가는 길을 에스코트했다. 증오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하는 기자들이, 웬일인지 여러 명의 경찰에 둘러싸여 길이 막혔다.

센터 쪽에서는 “인종주의자 물러가라!”라는 요구를 반복해 외쳤다. 무시하며 계속 걸어가는 사람, 비웃는 듯한 얼굴을 내보이는 사람, “너희야말로 북조선의 납치, 지지하는 거잖아! 너희야말로 살인자다!”라고 응전하는 사람, 도로를 끼고 양쪽의 보도는, 돌연 시끌벅적댔다.

마침내 나를 포함한 기자들이, ‘산들바람’ 쪽 집회에 등단했던 남성을 빙 둘러서 쌓았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도 그 사람은, 질문을 막지 않았다. 진지하게 대응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에 어떤 오류도 있을 리 없다’라는 일종의 ‘자신’으로 뒷받침된 태도처럼 느껴졌다.

“당시,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돌아다녔던 일이 신문에도 보도되어 있죠.” 그렇게 쏘아붙이는 그는, “각 신문은 그 후 정정했습니다”라고 지적을 당해도, “그런 옛날 일을 물으면”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런 되풀이는 결국, 역에 도착하기까지 계속되고,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들이 떠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정적이 돌아온 역에서 문뜩,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조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이런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들이 발하는 ‘불령선인’과 같은 말의 확산성은, 인터넷에서도 현실 세계에서도 강대하다. 그렇다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맞서야 한다.

■ 문제를 다음 세대로 넘기지 말자

생명감이 느껴지지 않는 법원 복도를 통해, 학교 교실만큼 큰 법정에 들어간다. 피고석은 예상대로, 비어있었다. 평소에는 방청석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원고석에 앉아 있는 내 기분은 좀 야릇했다. 판사가 입정하고, 담담하게 응수가 진행된다. 텅 빈 좌석을 곁눈질하며, 나는 판사에게 하는 의견 진술을 소리를 내어 읽었다. 2분이 채 안 되는 의견 진술 가운데도, 응축한 생각이 있다. 날마다 인터넷에서 무서운 기세로 팽창하는, 차별 언어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에도, 본 건이 ‘차별’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이 내리기를 소원합니다.”

차별이라는 말에 힘을 넣을 작정이지만, 엄숙한 법원 공간에서는, 모든 목소리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둣한 무력감이 몰려온다. 2022년 1월 19일, 첫 기일은 형식적으로, 그리고 싱겁게 끝났다.

지난 2021년 12월 8일, 차별을 글로 표현한 일을 문제 삼아, 나는 서일본에 사는 두 사람을 상대로 제소를 단행했다. 제소의 발단이 된 것은, 내 가족에 대한 기사를 대상으로 SNS상에 투고된 글의 표현이었다.

이제까지 아버지와 조부모님의 「‘뿌리를 찾는 여정」을, 나는 기사로 정리해, 2020년 12월, 내가 부대표로 재직하는 Dialogue for People이라는 사이트에 게재했다. 반향은 컸고, 따듯한 목소리도 많이 달리는 한편, SNS상에서는 차별을 덧칠하는 듯한 말이 잇달아 내뱉어졌다. 나는 그런 부조리를 참고 못 본 체하고 지나가고 싶지 않았다. 내 아버지와 내 가족이, 돌아가셔서도 여태까지 계속 차별의 대상이라는 사실에 분노가 일었다.

뿌리에 대한 공격은, 이전부터 끊임없었다. TV에 출연해 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코멘트를 할 때마다, “이런 반일 분자는 배제해야 한다” “외국인이 일본 정치에 참견하지 마”와 같은 말이 날라 왔다. 과거 기사에서, 내 아버지가 재일 코리언이었다는 사실을 알자, 이번에는 “아, ‘역시’”라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역시나, 일본인이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겠지”라고, 어떤 내용의 코멘트를 해도, 모든 문맥이 출신으로 수렴되고 마는 것이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인간에게 ‘외국인’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내가 틀린 게 아니다’라며 안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증오 발언은, 단순히 ‘마음의 상처’라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다수자 쪽과 힘의 불평등을 배경으로, 창끝의 표적이 된 쪽에 공포심을 떠안기고, ‘목소리를 내면 또한 언어폭력에 시달린다.’라며 침묵을 강요해, 일상과 생명의 존엄을 깊게 도려내는 것이다. 이제까지 취재한 사람들 가운데도, “역 앞에서 증오 선전을 하고 있으니까, 오늘은 나갈 수 없다”고, 외출을 삼가게 된 여성이 있었다. 글로 표현한 차별을 당하고, “아이들에게 창끝을 겨누면 어떻게 하지”라며, 함께 외출해도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걸어야 했던 어머니가 있었다. ‘표현의 자유’는 ‘차별의 자유’가 아니다. ‘창끝의 표적이 된 쪽의 자유’가, 그 언어폭력에 의해 이미 박탈되었다.

뿌리에 대한 발신을 계속하게 되고 나서, 특히 다음 세대로부터 상담이 늘어났다. 제소를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어떻게 남 앞에서 뿌리 이야기를 할 수 있지요? 저는 그런 용기가 없는데”라며, 살짝 털어놓았던 대학생과 “이 사회에서 살 수 있을까”라고, 울면서 이야기하는 고등학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누구나가 뿌리를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감추고 싶지 않은데 감추어야 하는, 뿌리를 이야기하는 일이 ‘용기 있는 일’인 사회는, 관대하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때때로, 인터넷상의 피해에 대해, “싫으면 보지 않으면 된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이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일부가 되었다. ‘보지 않으면 돼’라는 말은, 피해당한 쪽의 일상이 조금씩 계속 깎여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그런 자구 노력으로 대처하려고 해 봤자, 공격의 창날을 겨누는 쪽은 목표를 바꿀 뿐이다. 말하자면, 피해당한 쪽의 태도 문제로 왜소화해도, 문제는 계속되고 해결을 뒤로 미루는 꼴이 될 뿐이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게 이런 언어폭력이 향하는 사태를, 앞서 세상을 산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막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송 대상으로 삼은 것은, 나와 아버지의 출신을 가지고 ‘チョン共’* ‘밀입국’ ‘범죄’ 등의 말을 나열한 두 개 계정이다. 상대는 익명 계정이었기 때문에, 먼저 그가 ‘누구인가’를 특정하기 위해서만, 발신자 정보 공개를 구하는 재판을 몇 차례 제기해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금전적인 부담, 노력이 원고 측에 가해졌다. 이런 제도상의 문제도, 피해자가 울며 겨자 먹기로 단념하고, 인터넷 가해가 방치되는 하나의 원인이리라.

※ 한국인을 경멸하는 뜻의 은어, 조센징 - 역주
 
그 발신자 정보 공개를 구하는 재판의 판결문은, 혐오를 글에 넣어 표현한 것을 단순한 ‘비방 중상’이 아니라, “차별이며, 인격권 침해다”라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차별’이 독립된 위헌 요소로 다루어졌다고 하는, 오늘날의 법체계에서는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예를 들면 ‘チョン共’라는 말은, “차별이기 해도, 넓은 조선 반도에 뿌리를 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개인을 차별한 것은 아니다”라는 판단도, 이제까지 재판의 흐름에서 보면 있을 수 있으리라. 발신자 정보 공개 판결문에는 이러했다.

“(소송 대상이 된 – 역주) 이 건의 글은, 원고의 부친만이 아니라, 원고를 포함해, 너른 한국에 뿌리를 둔 일본 거주자를 그 출신만을 이유로 일률적으로 차별하는 취지의 글”

“부친에 대한 원고의 경애와 추모의 정을 그 수인한도受忍限度를 넘어 침해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물을 필요도 없이, 원고의 인격권을 직접 침해하는 글이 분명하다.”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런 정도까지의 판결을 기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취재해 온 성폭력과 인터넷 중상 재판에서, 법원 쪽의 인권 감각에 진절머리를 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긴 하지만, 법원 쪽도 변화해 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은 판결이었다.

다만, 오늘의 일본 사회에는,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률은 없다. 정부에서 독립한 인권 구제 기관도 없다. 특정한 상대를 제소한 현재 진행형의 재판에서, 상대가 글로 표현한 것이 불법 행위라고 인정되었다고 해도, 판결에 ‘차별’ 문언이 들어있을지는 미지수다. 피해가 차별로 인정될지 안 될지가 불투명한 체제인 상태에서는, 안심하고 목소리를 전하는 일은 어렵다.

어느 때, 아는 사람이 살짝 털어놓았다.
“나도 소송을 제기하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당신 인생이 망가지니까 그만두는 편이 좋다’라고 듣고 말아, 고민했지만 단념했어요….”

소리를 지르는 것은, 두들겨 맞을 위험을 좀 더 짊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언어폭력의 표적이 된 쪽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포기해야 하는 ‘말한 자 승리’가 버젓이 통하는 힘의 비대칭성이 거기에는 있다. 제소하는 쪽이 구제받기 위해서는, 좀 더 부담 없이, 좀 더 안심하고,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수용 태세가 불가결한 것이다. “차별에 대한 판례를 착실히 축적하면 좋다”라는 목소리를 들은 적도 있지만, 그것을 기다리는 사이에도, 심각한 피해는 구제의 손에서 흘러넘치고 만다. 차별을 없애려고 호소하는 일도 불가결하지만, 그 토대가 되는 구조를 갖추는 일이 급선무가 아닐까 한다.

■ 조부모님이 살았던 시간

언덕 위 아파트 한 칸에서 베란다로 나오면, 고베 시가지 저쪽에 짙푸른 세토瀨戶 내해가 희미하게 보인다. 어쩌면 이 풍경은, 항구에 면한 한국의 부산 풍경과 비슷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품으면서, 나는 이 거리에서 할머니의 발자취를 더듬어 갔다.

오래된 서류의 기록에 따르면, 할머니는 현재의 나보다 젊은,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나셨다. 1938년, 11살 때, 본적이 있는 부산에서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市로 건너와 있었던 모양이다. 기록되어 있는 13년간에, 교토와 오사카, 나고야 등, 13곳이나 되는 땅을 전전한 뒤, 마지막 주소는 고베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서류와 대조해 맞춰보니, 이른 단계에 두 사람과는 떨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은 할머니가 고베에 살았던 형적은, 그 이전에도 몇 개가 남겨져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인 산노미야三宮역 근처의 구모이雲井 길거리에는, 전후, 단속과 이전이 되풀이되었던 ‘암시장’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에는 번화가로 변신한 구획도 있어, 당시의 모습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할머니가 여기서 숨을 쉬었다는 생각만으로, 혼잡한 가운데 마음 한구석이 차츰 따듯해졌다. 다만, 일찍 돌아가신 점도 있어, 가족 가운데, 인생의 발자취가 가장 수수께끼로 싸여 있는 인물이 할머니였다. 수중에 있는 흑백 서류에는, 야무진 얼굴 모습의 할머니가,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사진이 거칠게 인쇄되어 있었다.

어느 날 밤, 재일 코리언인 알고 지내는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적이네요”라고 흥분한 기색으로 이야기하는 그는, 기록에 남아 있는 할머니의 마지막 주소와 자신이 아는 사람의 땅 주소가 일치한다고 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전후, 사업을 일으키고, 많은 조선 반도 출신자를 지원해 온 여성의 집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아쉽지만 당사자는 이미 돌아가시고, 가족 중에도 내 할머니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아들 가족이 지금 사는 언덕 위의 아파트에서 따듯하게 맞아 주었다.

할머니가 살았을 예전의 자택에는, 조선 반도 출신자가 몇 사람이나 몸을 의탁하고, 번갈아 가며 살았다고 한다. 어쩌면 할머니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리라. 가족이 보여준 낡은 사진에는, 목조로 된 커다란 집을 등지고, 멋진 정원에서 대가족이 모인 모습이 수록되어 있었다.

“손님을 정성을 다해 대접하는 일은, 어머니가 철저하게 했던 일이기에”라며, 찾아간 내 쪽이 죄송할 정도로, 계절 음식 재료를 풍성하게 사용해 준비한 점심을 아들 부부는 내게 대접했다. 별 의미를 갖지 않는 대화에 서로 웃는 가족이었다. 그런 티 없는 응수에, 왠지 나는 강하게 동요되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은, 고독하지는 않았구나, 라고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2년 봄, 또다시 “기적이네요”라고, 이번에는 한국에서 소식이 왔다. 이 여정을 지원해 주는 서울에 사는 지인이, 할아버지의 제적 등본에 실려 있던 친척 이름이 기재된 기사를 발견하고, 실제로 본인에게 물어 확인해 주었다. 찾은 인물은, 할아버지의 형의 손자, 나에게 ‘육촌 형제’였다. 생각 밖의 가까운 친척이다. 철강업으로 유명한 바닷가 도시에 살며, 나보다 열두 살 정도 연상이라고 한다. 게다가, 내 할아버지, 김명곤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일, 그리고 그 후, 육촌이 일본에 유학하러 왔을 때, 도쿄에서 함께 지낸 일 – 내가 모르는 할아버지의 시간을, ‘육촌’은 정성껏 메일로 써서 보내 주었다.

바로 3년 전까지 나는, 아버지 쪽 가족에 관해 뭐 하나 알지 못하고 살았다. 그것은 실이 끊어진 방패처럼 붕 떠서 지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침내 그 실이 토막토막 끊어져 버린 것이 아니라, 끌어당겨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혈연이 가족의 모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속박에 저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솟아오르는, 이 억누르기 어려운 기쁨을, 어떻게 형용하면 좋을까.

코로나 재난은 아직 예단을 허용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난 2년 동안과 비교하면, 격리 기간은 꽤 단축되었다. 비자 없는 도항도 재개될지 모른다. 물론, 친척이라 해도, 갑자기 일본에서 찾아오는 일면식도 없는 인간을 환영해 주리라고는 할 수 없다. 현지에서 접촉하는 가족의 역사는 꼭 경사스러운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일부로서, 정면에서 가족의 뿌리와 마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세하다. 항간에 듣는 “양국의 가교가 된다”, 라는 말은 너무나 주제넘지만, 어쩌면 이 여정이, 이 사회가 반드시 단절되어 있지 않은 것을 드러내는 데 얼마간의 도움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버지 가족의 일을 발신하게 된 뒤, “뿌리란 뭔가”라는 말이, 내 내면의 큰 주제로 계속되고 있다. 그 답은 아직 명확한 윤곽을 갖지 못 했다. 이제까지의 취재 가운데, “이 사회에서,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면, “자신의 척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적어도 각자에게 소중한 축인 것은 틀림없다. 반복하게 되지만, 그렇기에, 그것이 부당하게 상처를 입고, 멸시를 당하는 일이 없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때로 흙탕물처럼 몰려오는 증오 발언․증오 범죄에도, 사진으로, 말로, 계속 저항하고 싶다고 단단히 다짐한다.

여정은 이어진다. 만약 원고가 이어지고 또한 여기에 게재하는 날이 온다면, 그 글의 첫 구절은, 부산 하늘 아래에서 시작되기를 소원한다. <끝>   
(『세카이』, 202206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