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과 모직 산업, 그리고 방적기의 등장
(WWW.SURPRISE.OR.KR / 권종상 / 2020-12-18)
윤석열이 2개월의 정직이란 징계를 받고, 추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들은 감정은 아무래도 좀 그랬습니다. 중징계를 예상했고, 그를 통해 검찰개혁의 터를 완전히 닦는 것을 기대한 사람들도 많았을 터이고. 그러나 추 장관의 이러한 행보가 사실 그녀가 생각했던 임무를 완수했기에 나온 것이었다고 보도한 언론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완수의 선언은 며칠 전 ‘권력기관 개혁 관련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또 추미애 장관의 사의 표시는 그 징계조차 받지 않겠다며 전직 검찰총장들까지 불러들인 윤석열의 정치적 행동을 그대로 대비시켜 드러나게 만듭니다. 또 윤석열에겐 법무부장관은 사퇴하는데 너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는 비판을 불러오게 만들기도 하지요. 문제는 바로 그런 사실에 대해 언론이 입을 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언론이 제대로 제 역할을 했다면, 검찰조직은 저렇게까지 드러내놓고 반발하거나 쿠데타를 꿈꾸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검찰이 그럴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언론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고, 실제로 그들의 언론플레이는 어느정도 먹힌 바 있었습니다.
기실, 언론은 처음부터 검찰 편이었습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지금 언론의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기사가 얼마나 많이 노출되는가, 즉 클릭수가 생존의 조건이 되는 지금의 상황 아래서, 언론은 늘 각 언론사별로 그들이 더 많이 ‘뜰 수 있는’ 뉴스를 원합니다. 그것은 보통 ‘단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포털의 대문에 걸리기 마련이고, 그래서 기자들은 이른바 ‘특종’이라는 걸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특정 및 단독 뉴스는 그들 나름으로 신뢰할 수 있는 취재원을 필요로 하지요. 그런 면에서 늘 뭔가 ‘먹을거리’를 주던 검찰에게 이제 기자들은 그냥 순치를 넘어서 완전 그루밍 당했다고 보는 게 맞을까요. 사실 그것도 그렇지만, 검찰과 기자들의 엘리트주의라는 것이 합쳐져 이런 이상한 꼴을 우리가 보고 있는 거겠지요.
최근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종편에 대해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바꿀 것을 고민할 때라는 말을 했지요. 이 뉴스를 보면서 저는 방직기가 보편화되기 직전 누구나 모직업에 뛰어들었던 과거 유럽 역사가 딱 떠오르더군요. 한 위원장의 뜻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게 실제로 이뤄진다면 방송이란 플랫폼은 아마 끝장날 겁니다. 이미 기존의 방송은 포화상태, 기존 광고시장도 한계가 있는 상태에서의 무한경쟁… 저는 이렇게 되는 게 오히려 우리가 보기에 즐거운(?)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미 인터넷/유튜브/넷플릭스 등의 ‘방적기’가 돌아가는 상태에서 기존 지상파라는 ‘모직업’에 뛰어들 바보들도 많을 것 같아서.
기자들이라는 직업이 마땅히 가져야 할 에스쁘리를 잃은 지 오래고, 이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게으름과 엘리트의식이 섞여 ‘괴물 바보’들을 만들어 낸 상태, 이게 싹 사라져야죠. 대신 이번 정부 끝나기 전에 확실하게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배상 기준을 강화하고, 그들로 하여금 가짜뉴스에 대해 책임을 ‘과할 정도로’ 물도록 만든다면... 아마 기자라는 직업도 진짜 에스쁘리 있는 기자들만 살아남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다뤄야 할 듯 합니다. 원래 저도 몸담고 있던 분야기도 하고.
시애틀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nVmqCI2l7lA&feature=youtu.b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