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발견된 유골들과 감출 수 없는 진실
(WWW.SURPRISE.OR.KR / 권종상 / 2019-12-23)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자기와 광주와는 상관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5.18이 뭔지 알고 싶지 않은 이들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이미 이것이 법적으로 국가폭력이었으며 전두환 일당의 쿠데타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이었다는 사실이었다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북한 특수부대가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하거나, 그런 주장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서 광주의 비극은 결국 그 다음 세대의 민주화를 여는 계기가 됐습니다. 1980년 광주의 비극이 일어나고 나서 그 진실을 요구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도 많았습니다. 제 친구의 형도 이른바 ‘운동권’이었고,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대학에 다녔는데 어느날 이른바 ‘변사체’로 발견돼 그 친구와 형을 알고 있던 주위 사람들이 모두 안타까워했습니다. 쉬쉬하는 분위기도 옆에서 지켜봤고, 왜 이 형이 죽음을 맞아야 했는지 그때는 잘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 죽음의 한가운데에 '광주'라는 화두가 있었다는 것을 조금 더 나이 들고 알게 됐습니다.

광주는 저로 하여금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한 사람을 만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5.18 최후의 망명자’라고 불리우던 합수 윤한봉 형님. 당시 광주 운동권의 상징 같은 이 분을 만난 건 미국에 와서였습니다. 그리고 내 삶은 그를 만나기 전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게 됐습니다. 그냥 어렴풋이 느꼈던 분노들이 보다 구체적인 것이 되었고, 그때의 분노와 슬픔, 충격 같은 것이 고스란히 제게 화인을 남긴 셈이 됐습니다. 그 형님이 세운 ‘한국청년연합(한청련)’ 에 가입하고 역사 공부를 하면서 한국 현대사가 안은 비극들을 더욱 깊게 바라보게 됐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광주에서 희생됐는지 우린 아직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리고 군부독재 기간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광주는 그 진실을 완전히 밝히기 힘들었습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데다, 상처를 다시 들추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때 그 가해자들이 계속해 권력을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월은 결국 그 흔적들을 드러냅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그들이 저지른 죄악은 감춰질 수 없습니다. 최근 광주교도소 터에서 발견된 유골들은 이제부터 밝혀져야 할 진실들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학살의 주범은 12.12 40주년이라며 자기를 따라 국가를 찬탈하는 데 앞장섰던 세력들과 당당히 모여 밥을 쳐먹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단죄가 없었던 대한민국은 기회주의와 한탕주의가 드러내놓고 판치는 사회가 됐습니다.

이제라도 밝혀 내야지요. 묻혔던 과거들이 다시 살아나 다시는 과거의 그 비극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리고 지금까지도 행방을 찾을 수 없었던 가족들을 기다리던 유가족들의 가슴을 달래주기 위해서도, 그리고 이것을 거울삼아 대한민국이 다시 정의를 세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때 그 짓을 저지른 자들과 그 후예들이 아직도 의회에서 적지 않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 현실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부끄러움을 씻어내야 합니다. 적어도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정권을 찬탈한 자들의 후예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거짓 선전을 확대 재생산하고 권력의 발판으로 삼았던 자들은 정치판에서 걸러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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