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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격한 기억, 한일 역사 인식 문제의 연원을 살피다 (하)
  번호 122502  글쓴이 김종익  조회 190  누리 5 (0,5, 0:0:1)  등록일 2019-11-1 09:37 대문 0

현격한 기억, 한일 역사 인식 문제의 연원을 살피다 (하)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19-11-01)


글에서 동학농민전쟁 진압에 참가했던 일본군 병사의 일기를 발굴하여,일본군의 잔학함을 폭로한 이노우에 가쓰오井上勝生 교수는, 며칠 전 나주에서 열린 동학농민전쟁 학술 대회에서, 일본군의 동학 농민군 학살에 대해 사죄한다고 했다.

한일 간 ‘역사 현격’의 연원을 간토 대지진 - 삼일 만세 운동 - 동학농민전쟁 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필자의 견해는 많은 함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반성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되기 마련이며, 이 되풀이를 풀어갈 실마리를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하는 필자의 말을 들어보자. - 역자 주

현격한 기억, 한일 역사 인식 문제의 연원을 살피다 (하)
- 조선인 학살의 원체험, 몇 개의 ‘전후’를 넘어서 -

와타나베 노부유키渡邊延志
저널리스트. 1955년 후쿠시마 태생.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졸업. 독자적으로 역사 자료의 발굴·해독에 전념. 『가나가와神奈川 기억』, 『GHQ 특별 수사 파일 군사기밀비』, 『허망한 3국 동맹』 등의 저작이 있다.

* 참고 : 글 가운데 (  )는 필자가, [  ]는 역자가 붙인 주석이다. 「  」 기사나 글의 제목 등을, 『  』은 책의 제목 등을 나타낸다.

■ 살의殺意는 왜 발생했을까?

간토 대지진 취재를 시작한 것은 2013년이었다. 1923년 간토 대지진 발생으로부터 90주년이 되는 해이며, 기획전과 심포지엄이 각지에서 개최되고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아직 얼마 안 되어, [간토 대지진이] 어떤 재해였는지, 부흥은 어떻게 진행되고, 교훈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등과 같은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조선인 학살은 ‘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데, 좀 돌아다니는 동안에 의문이 불어났다.
“그런 유언비어를 왜 믿었을까”
“서슴없이 타인을 죽인 것은 왜 그랬을까”

전시를 기획한 학예원이나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연구자들에게, 소박한 의문을 던져 보았다.

그런데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렇다 할 직접적인 원인, 동기는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다. 1919년에 조선에서 있었던 3·1 독립 운동을 언급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비무장 운동이고, 많은 일본인이 희생된 것은 아니다. “일본 지배에 불복한다 + 불령不逞”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일본인은 있었지만, “조선인이 집단으로 습격해 온다”라고 하는 유언비어를 다 같이 믿고, 분별없이 사람을 죽일 것인가. 앞 연재에서 소개한 조선총독부 자료를 떠올리기 바란다. 일본인은 “고양이에 몰린 쥐와 같이” “들개를 때려잡듯이” 조선인을 살해했던 것이다. 납득할 수 없었다.   

조선에서 오는 이민이 늘어나고 있었던 사실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었다. 1910년에 일본은 한국을 병합했다.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특별 수요가 발생하여, 부족한 노동력을 싼 임금으로 조선인이 메웠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경기가 침체되어, 일본인 노동자와 일자리를 둘러싼 언쟁이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요인의 하나이겠지만, 지역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작가 요시무라 아키라吉村昭[1927~2006년. 소설가. 현장, 증언, 사료를 주도면밀하게 취재하여, 치밀하게 구성한 다채로운 기록 문학, 역사 문학의 장편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는 『간토 대진재関東大震災』[1973년 발표, 그해 기쿠치칸상菊池寛賞 수상] 속에서 “유언비어는, 통상 사소한 사실이 부당하게 과장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지만, 간토 대진재에서 조선인 습격설은 정말 아무런 사실도 없었다는 특이한 성격을 갖는다. 이 사실은 당시 관헌 조사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는데, 엄청난 재해에 의해 사람들의 태반이 정신 이상을 겪고 있었던 결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요코하마에서는 학살과 동시에 약탈이 발생했다. 구원의 손이 좀처럼 닿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식료품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요코하마항 일대에 밀집한 창고에서는 비단 등 수출용 상품이 대량으로 탈취당하고 있다. 그런 정신 이상이 있는 것일까.

유언비어 가운데에는 “조선인 빨치산”이라는 말이 보이고, 러시아 혁명에 간여하려고 하여 실패로 끝난 시베리아 파병, 특히 1920년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 사건尼港  Nikolaevsk-na-Amure[러시아 극동의 아무르 강 어구에서 40㎞ 상류의 좌측 연안에 있는 항만도시에서 일본이 시베리아 파병 중인 1920년, 빨치산과의 충돌로, 니콜라옙스크나에서 700여명의 일본군 수비대 및 거류민이 살해된 사건]의 영향도 생각할 수 있다. 니콜라옙스크나에서 활동하고 있던 육군 부대 등 700명 이상의 일본인이, 적군赤軍 빨치산의 희생이 되어,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다. 빨치산에는 1,000명가량의 조선인이 가담하고 있었다고 여겨지는데, 어디까지나 주체는 러시아인이다.

몇 가지 요인이 겹치어, 조선인을 위험시하는 풍조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무차별 학살이 야기될까.

■ 동학농민전쟁 - missing link의 단서

석연하지 않은 상태로, 그 후에도 새로운 연구를 두루 살필 양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만난 사람이, 홋카이도 대학의 이노우에 가쓰오井上勝生 명예 교수의 동학농민전쟁 연구였다. ‘동학당의 난’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던 사람도 많을 것이다. 조선에서 1894년에 시작된 농민 봉기이며, 청일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

메이지 유신을 전문으로 하는 일본사 연구자인 이노우에 씨는, 홋카이도 대학이 보관하는 인골人骨의 반환을 이십 몇 년 전에 직접 관여하여, “진도珍島 지방에서 동학 농민 수백 명이 처형되고, 괴수들은 효수되었다. 이 뼈는 그 가운데 하나”라는 쪽지를 발견했다.

어떤 사람인 것일까. 유골은 누구에게 반환하면 되는 것일까. 이노우에 씨는 찾아보았지만, 단서를 잡을 수 없었다. 기록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감춰진 역사가 있다.” 그런 생각에서 이노우에 씨는 동학농민전쟁 연구에 착수했다.

당시 한반도 남쪽에서는 흉작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 정부가 파견하는 관리에 의한 가혹한 정치가 이어져서, 견딜 수 없었던 농민이 전라도에서 들고 일어났다. 결집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 민중 종교인 동학이었다. 감당할 수 없게 된 정부는 종주국인 청淸에 원병을 요청했다. 그러자 [청과] 대결하는 일본도 출병했다. 농민과 정부 간에 화의가 성립하지만 일본은 철군하지 않고, 왕궁을 점거하여 정권을 교체시키고,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새로운 정권에 선언하게 했다. 그리고 8월 1일에 청나라에 선전 포고를 했다. 9월에 평양을 함락시키고, 황해 해전에서 승리했다.

10월에는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 영토로 들어갔다.

그 사이 주된 전투장은 조선이었다. 전쟁에 반대하는 민중이 들고 일어났다. 그것이 동학 농민의 재봉기였다. 

자료를 계속 찾던 이노우에 씨는 한 병사가 기록한 종군 일지에 이르렀다. 도쿠시마德島현 안에 남아 있었는데, 그것을 독해하여,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으로 갔다. 일지에 기록되어 있던 부대의 활동 자취를 답사하고, 지명과 거리, 위치 관계 등을 알아보고, 내용이 정확한 것을 확인했다. 2018년에 일지 전문을, 교토 대학 인문과학연구소 연구 기요紀要에 발표했다.

『청일 교전 종군 일지』라고 제목을 붙인 일지는 1894년 7월 23일에, “소집 영장, 면사무소에서 송달이다”라고 시작한다. 다음 날 아침 바로 출발하여, 27일에 마쓰야마松山 연병장에 도착하여, 육군 후비後備 제19대대에 편입되었다. 시모노세키에서 포대砲臺 근무를 거쳐, 10월 28일에 “동학당 재기로 말미암아, 토벌대로 한국으로 건너가야 한다”라는 명령을 받는다.

유교와 불교 등을 통합하여 탄생한 동학은, 평등과 상부상조를 설파했다. “곤궁한 자 구제” “탐욕스러운 관리 축출” 등 농민군이 내건 12조의 군율軍律은 동학의 가르침과 민중의 소망을 보여주고 있다. “역자효유逆者曉諭”라는 것도 있다. 불복하는 자는 잘 타이르라는 것이다. 놀랄만한 이상주의이다.

그런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부대의 움직임을 일지에서 찾아본다.

11월 12일에 서울을 출발한다. “충청·전라에 있는 바의 동학도를 진멸鎭滅”이라고 임무를 적고 있다. 마을 마을을 탐색하면서 진군한다. “인가를 포위하고 집집이 탐색한다. 달아나는 자가 있으면, 그 자를 총살한다”라고 적고 있다. 다른 부대가 통과한 자취에서는 “60리 동안, 민가에 사람이 없고, 또 수백 채를 소실시켰다. 또 많은 사체가 길가에 엎어져 있어 개나 조류의 먹이가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철저한 초토화 작전을 연상하게 만든다.

해가 바뀌어 1895년이 되자 전투가 격화되었다.

“우리 부대는 서남쪽으로 적을 추격하여, 때려죽인 자가 48명, 부상당한 생포자 10명, 그러나 해가 져서, 두 부대가 함께 개선한다. 부대로 돌아온 뒤, 생포자는 고문하고 나서 불에 태워 죽이다.”

“남문에서 약 5킬로미터 되는 곳에 작은 산이 있다. 사람 뼈가 첩첩이 쌓여 있는데, 실로 산을 만들었다. 문책을 하고 나서, 중죄인을 죽이는데, 날마다 12명 이상, 103명에 이르고, 따라서 이곳에 시체로 버려진 자는 680명에 달한다. 악취가 심하고, 땅은 백은처럼 되고, 시체에서 나온 기름이 얼다”

“동학도의 잔당 7명을 잡아 오다. 이들을 성 밖의 밭 가운데 한 줄로 세우고, 총에 착검하여, 호령에 따라 동시 동작으로 그들을 찔러 죽이다. 구경하게 한 한인과 통제하던 병사 등이 더없이 심하게 놀랐다.”

일지에 기록된 것은 처참한 학살의 실태였다. 진압 작전에는 세 개 대대가 투입되고, 농민군 쪽 희생자는 모두 3~5만 명으로 추정된다. 일지를 남긴 병사가 소속된 대대는 660명 정도의 규모라고 생각되는데, 전사자는 한 명뿐이었다. 화승총과 죽창 정도였던 농민군과는, 장비의 수준이 너무나 차이가 났다.

학살이 거듭된 이유는,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자료인 『남부병참감부진중일지南部兵站監部陣中日誌』가 보여주고 있다. 한국 인천에 위치했던 일본군 사령부의 기록이다. 

10월 27일엔 “가와카미川上 병참총감으로부터 전보가 있었다. 동학당에 대한 조치는 엄격하고 심하게 할 것을 요한다. 향후 모두 살육해야 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병참총감은 청일 전쟁을 위해 설치한 대본영의 직무로 가와카미 소로쿠川上操六 참모차장이 맡고 있었다. 당시 참모총장은 황족으로 가와카미는 실질적인 참모총장이었다.

일지는 출전 직전인 11월 9일에 부대에 전달된 명령 내용도 기재하고 있다.

“동학당 근거지를 조사하여 찾아내고, 이들을 싹 쓸어 없애야 한다.”
“이 화근을 싹 쓸어 없애서 다시 일어나는 후환을 남기지 말 것을 요한다.”

근절하거나 죽이라는 것이다.

동학농민전쟁은 근대 일본이 조선 민중과 직접 마주친 최초의 장이었다. 그래서 불복하는 민중에 대한 대처로 일본이 선택한 것은, 살육이었다 - ‘은폐된 역사’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 학살의 연쇄를 더듬으며

일본인의 눈이 미치지 않는 역사의 존재를, 이노우에 씨의 동학농민전쟁 연구는 가르쳐 준다. 그 시점에서 뒤돌아보면 마찬가지의 조선인 희생이 이밖에도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선의 비극』은, 영국 신문기자 Frederick Arthur McKenzie[1869~1931년]에 의한 르포르타주이다. 20세기 초반에 취재를 위해 몇 번인가 한반도를 여행한 매켄지가 1908년에 출판한 것으로, 일본 번역은 동양문고東洋文庫에 들어 있다.

1905년 러일 전쟁이 끝나고, 제2차 한일 협약에 따라 한국은 외교권을 상실했다. 서울에는 총감부가 설치되고, 이토 히로무비伊藤博文가 총감으로 취임했다. 1907년에는 제3차 한일 협약에 따라 일본은 내정 전반을 장악하고, 한국군을 해산시켰다. 그러자 일본 지배에 저항하는 의병 운동이 본격화했다.

“일본인에 대한 민중 봉기가 일어나고 있다. ‘의병’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눈부신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일본군은, 그 지역 전체를 파괴하고, 대규모 대량 살인을 저질러 보복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매켄지는, “어디까지 진실인 것일까”라고 회의적인 생각에서 현지를 방문하려고 작정했다.

서울을 출발하고 눈에 띤 마을들은 “그림처럼 평화로웠다” “그 아름다움과 번영은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다 타버린 촌락, 황폐하기 짝이 없는 마을, 버려진 시골을, 잇달아 통과하면서 여행”하게 된다.

여기서도 일본군은 초토화 작전을 반복하여 펼치고 있었다.
“제발 집을 태우지 말아 주시길. 나는 여기서 죽을 거니까”라고 울며 부탁하는 노인. 풀을 베는 낫을 갈고 있어 ‘반란군’이라고 총살된 젊은이. 그런 증언을 잇달아 적어 둔다.

“이 무리에게는 일본의 강한 기세를 과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이 얼마큼 강한가를 깨달아야만 한다.”

서울에서 만난 지도적 지위에 있는 일본인이 한 말을 매켄지는 다시 생각한다.

인구 2, 3천 명이었다고 하는 읍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불상 한 점과 한 채의 관청만 남아 있었다. 이 읍에서 의병의 공격을 받고 퇴각한 일본군은, 증원 부대를 불러들여 탈환하자마자, 본보기 장소로 만들기로 결의하고, 읍 안의 모든 물자를 수북하게 쌓아 놓고, 그 무더기에서 피어나는 불꽃을 부채질하며 읍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매켄지는 “이렇게 완전히 파괴되어 있는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고 기록한다.

집을 잃은 것 이상으로 조상 대대의 기록이 소실되어 버린 것을 한탄하는 민중의 말도 전한다. “이름도 없다, 치욕에 차서, 떠돌이가 되고 말았다.”

의병과도 직접 만났다. 열여덟 살부터 스물여섯 살가량의 청년들로, 여섯 명이 다섯 종류의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도 쓸 만한 것은 없고, 화승총도 포합되어 있었다.

맥켄지는 의병 장교의 말을 전한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겠지요, 좋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일본의 노예로 살아가기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죽는 편이 훨씬 좋아요.”

일본 육군이 정리한 『조선폭도토벌지誌』는, 살해한 의병 수를 17,697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숫자가 얼마큼 실태를 반영한 것인지 판단할 방법이 없지만, 반면의 일본 쪽 전사자 는 100여 명 정도였다. 여기서도 희생의 격차는 매우 큰데, 그것이 어떻게 기억되고 전승되었던 걸까. 그 격차는 그 이상으로 더욱 큰 것은 아닐까.

■ 독립 운동 봉쇄로

그 후, 1919년에 3·1 독립 운동을 맞이한다. 이 운동에 관한 흥미 깊은 자료를 올해 우연히 만났다.

도쿄 국립공문서관에서, 내각서기관실 자료철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한 것으로, 표제는 이러했다.

『조선 소요 사건에 대한 선인의 언설에 관한 건』

 우치다 코사이内田康哉[1865~1936년] 외상가 하라 다카시原敬[1856~1921년] 수상에게 보낸 문서로, 1919년 5월 5일자가 있다. 첫 쪽에는 수결이 있는데, 조사해 보았더니 하라 다카시 수결이었다.

상세한 내용을 검토하려 해도 붓으로 쓴 글씨筆文字에는 자신이 없어서, 요코하마시 역사박물관 부관장 이노우에 오사무井上攻 씨께 부탁을 드렸다. 바쁘신 와중에 며칠 만에 모두 독해해 주셨다.

3·1 독립 운동이 일어난 원인과 배경에 관해 안동安東 영사가 조선인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정리해 제출한 보고서를, 우치다 외상이 하라 다카시 수상에게 전송한 것이었다. 안동은 조중 국경을 흐르는 압록강의 중국 쪽, 오늘날의 랴오닝성 단둥丹東이다.

내용이 조목별로 써서 기재되어 있다. 요약하면
▶ 태도가 거만한 일본인 관리가 많고, 조선인은 겉으로 따르고 있어도 항상 강한 반감을 품고 있다
▶ 조선인에 대한 총독부 압박은 끝이 없는 상태이며,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것은 그 증명이다
▶ 총독부는 일본 유학 경험자를 직원으로 채용하기는커녕, 유학생을 집요하게 감시하기 때문에 미움을 받아, 독립 운동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 조선인 관리는 급여가 낮아서 살기가 힘들다. 그 때문에 근무 태도도 나쁘고, 일반 조선인이 일본에 반감을 품는 원인이 된다

- 등을 지적하며,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큰일이 된다고 제언하는 것이다.     

내용도 만만하지 않은 거지만, 이 문서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날짜이다. 안동 영사가 이야기를 들은 것은 3월 말. 그것을 외상에게 보고로 정리한 것은 4월 4일로, 그날 도쿄에서는 육군 6개 대대와 헌병의 증파를 각료회의에서 결정한다. 운동이 확대되어, 현지 병력만으로는 수습이 안 되게 되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 마지막 부분에 영사는 “우측 내용은 한 개인의 담화입니다만, 일단 핵심을 파악하는 관찰로 생각하게 되어, 이 점을 보고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右は一個人の談話に候共, 一應肯綮に當れる觀察とも思考せられ候に付, 御參考迄此段及申報候”라고 기록한다. ‘긍계肯綮’란 ‘사물의 급소’라는 의미로, 외상에 보고해야 할 중요한 정보라고 영사가 판단했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운동이 시작되고 한 달이 경과하고도, 일본이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같은 4월 4일, 하라 다카시의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번 사건 진압에 대한 총독의 의견을 묻고자 말을 전했는데, 총독의 대답에 각별한 의견은 없고, 다만 증병 및 헌병 증파를 바란다는 데 지나지 않아서, 정말이지 무책無策인 모양이지만, 본건에 대한 정부의 조치로서는 단호한 조치를 필요로 한다.”

‘無策’이라고 하라 다카시가 평한 조선 총독은 육군 대장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1850~1924년]이다. 하세가와는 한일 병합 전 지위는 한국주차군사령관이며, 의병 진압 책임자였다. 군을 동원하여 강제로 억누르는 수법은, 체험으로 보아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거라는 연상을 하게 만든다.

조선인의 의도나 배경을 파악하지 않고 일본은 병력을 증강했던 것이다. 교회에 불을 질러, 교회에 모인 사람들을 학살한 제암리 사건은 4월 15일에 발생한다.

4월 말에는 운동은 누그러들었지만, 외상 우치다 코사이가 수상 하라 다카시에게 보고를 보낸 것은 5월 5일이었다. 이 단계에서도 현지로부터는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라 다카시는 대강 훑어보고 수결을 했던 것이리라.

육군은 이해 9월, 『조선소요경과개요朝鮮騷擾經過槪要』라고 제목을 붙인 보고서를 정리한다.
“불령한 조선인이 모든 허구 사실을 내세워 민심을 선동했던” 것이 원인으로, 운동의 중심이 된 천도교에 대해서는, “종교로서의 가치가 없고, 교주 등 간부의 정치적 야심하에 조직된 단체에 지나지 않고, 미신이 많은 국민성을 이용하여 어리석은 남녀를 미혹하고” 있다고 한다. 들고 일어난 조선 민중을 진지하게 대면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 ‘자경단’과 재향군인회

동학 농민, 의병, 그리고 3·1 독립 운동. 조선에서 학살을 반복하고 있던 일본군의 모습이 부상했다. 그것은 간토 대지진과 어떻게 연결될 것이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학살의 중심이 된 자경단이다.
“엄청난 재해로 사람들 대부분이 정신 이상을 겪고 있던 결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간토 대진재関東大震災』에 쓴 요시무라 아키라는, 거기에 이어서 “그리고, 그 이상異常 심리에서, 각 읍과 마을에서 조선인 습격에 대비하는 자경단이라는 조직이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라고 기술한다.

자경단에 대한 이런 것이 일반적 인식이리라. 하지만 자경단은 간토 지방에서 3,000개 이상이라고 간주된다. 그 정도 개수의 조직이, 그렇게 간단히 조직되고 기능하는 것일까.

이 의문에 답해 준 사람이 있었다. 재일 조선인의 역사를 연구해 온 히구치 유이치樋口雄一 씨로, 자경단의 기본적인 틀은 1918년 쌀 소동을 계기로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고 한다.

시베리아 출병 때문에 쌀값이 급등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각지에서 연쇄적으로 들고 일어난 쌀 소동의 참가자는 전국에서 70만 명 이상이라고 여겨진다. 다이쇼大正[1912~1926년] 시기의 자유주의·민주주의 풍조 아래 사회주의 사상도 보급되고 있었다. 그런 사태를 염려하고 두려워하여, 경찰을 관할하는 내무 관료들이 ‘민중의 경찰’을 만들어 내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히구치 씨의 연구에 따르면, 자경단, 자위단, 자경조합, 안전회 등 명칭은 다양했지만, 가나가와神奈川현[간토 지방 서남부 위치]의 경우는 지진 재해 전년부터, 경찰이 호소하여 조직 만들기가 활발해지고 있었다. 재해 방지, 화재 경비, 방범, 비적 단속 등 경찰 활동을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지진 재해가 발생한 해 봄 단계에서, 어느 한 경찰서 관내에서만 327개 조직이 결정되고 있다고 신문이 보도한다고 한다.

자경단의 중심이 된 것은 재향군인회였다. 오늘날에는 퇴역 병사들의 친목 단체와 같은 정도로 이미지화되기 쉽지만, 어엿한 군 조직의 일부였다.

제국재향군인회가 결정된 것은 1910년. 러일 전쟁의 교훈으로, 현역병인 상비군만으로는 이후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사실을 통감한 육군의 발안이었다. 당시 병역兵役은 스무 살에 징병 검사를 받고, 현역으로 3년을 복역하면, 그 후에 4년여의 예비역, 나아가 10년의 후비역後備役이 있으며, 그동안은 연습과 점호 등 군사적 의무가 부과되고 있었다. 그러한 병역 기간의 국민을 감시, 감독할 목적을 가지고, 지방 조직을 촘촘하게 설치했다.

재향군인회 입장에서도 쌀 소동은 커다란 전기였다. 전국에서 검사의 처분을 받은 사람은 8,185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재향 군인이 990명을 차지했다. 자경단에서 또 하나 핵이 되는 청년 단원 처분자도 868명에 달했다. 치안을 담당하는 쪽에서 보면 위협을 느꼈던 것이다.

재향 군인이 쌀 소동에 들고 일어난 배경은 메이지 이후 병역 제도를 더듬어 가면 보인다. 메이지 전반, 병역을 기피하는 풍조는 사회에 강하여, 병역 면제의 다양한 특례가 있었다. 돈을 납부하면 됐던 시기도 있으며, 병역을 떠맡은 존재는 기본적으로 가난한 집의 둘째와 셋째 아들이었다.

그런 사정으로 병역에 나간 것이어서, 사회로 돌아와도 경제적으로는 약자이기에, 쌀값이 오르면 생활에 쪼들린 사람은 많았던 것이다.

여기서 동학농민전쟁 종군 일지를 떠올려 보자. 일지를 남긴 병사는 후비대대, 그러니까 후비역 병사를 모은 부대 소속이었다. 그 대대에서 단 한 명의 전사자는 소작인의 둘째 아들로 서른여섯 살이었다는 사실이 이노우에 가쓰오 씨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이러한 사람들이 병사로 동원되어 학살의 최전선에 서고, 귀향하자마자 재향군인으로 병역 부과를 받고, 나아가 자경단으로 조직되었다는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간토 대지진에서 가장 일찍 학살이 시작되었다고 여겨지는 요코하마 출신 병사는 동학 농민 진압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청일 전쟁에서는 뤼순旅順 공략 전투에 동원되었다. 이곳도 또한 처참한 민중 학살 현장으로 유명하다. 간토 대지진은 청일 전쟁으로부터 29년 후이며, 재향군인회에도 자경단에도, 청일 전쟁 경험자가 조직의 간부였을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요코하마에서는 상당수의 중국인도 살해되었다. 중학교에서는 교련용 총이 대량으로 반출되었는데, 병역 경험자 입장에서는 가장 익숙한 무기이며, 실탄이 없어도 총검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분명 몸으로 알고 있었던 바이다.

작가 사토미 돈里見弴[1888~1983년. 요코하마 출신 소설가]은 자전적 소설 『안죠가安城家의 형제』 안에서, 지진 재해 후에 재향군인이 자경단과 함께 지역의 집들을 방문하여, 오스기 사카에大杉榮[1885~1923년. 사회운동가. 간토 대지진 때, 아내와 함께 헌병 대위 아마카스 마사히코甘粕正彦 등에게 학살되었다]를 학살한 아마카스 마시히코甘粕正彦[1891~1945년. 육군 군인. 육군 헌병 대위 시절에 아마카스甘粕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단기 복역 후, 일본을 떠나 만주로 건너가서, 관동군 특무 공작을 행하며, 만주국 건설에 일익을 담당했다. 종전 직후, 독을 복용하고 자살. 아마카스 사건은, 1923년 간토 대지진 직후, 헌병 대위 아마카스 마시히코 등이 오스키 사카에 부부 등을 학살한 사건. 조선인 학살 사건 등과 함께 계엄령하의 불법 탄압 사건 가운데 하나] 헌병 대위의 감형을 구하는 서명을 모으는 모습을 묘사한다. 근위병이 군모에 카키색 외투의 군복 차림을 적는다.

그것은 실제 체험이었다고 하며, 에세이 안에서 “가족이 와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든가, 바로 성가셔서, 싫지 않으면 당신이 써 주는 정도라면 상관없어, 라고 하고 말았어요, 그 비겁함에, 나중에 무척 고민한 것도 잊히지 않습니다”라고 토로한다.
당시의 재향 군인과 자경단의 모습을 전한다. 

■ 몇 개의 ‘전후’가 망각한 것

“왜 유언비어를 믿었을까?”
“왜 간단하게 사람을 죽였을까?”
부풀어 오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서 새로운 연구와 자료를 탐색하는 동안에,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이 결부되어, 조선인이 습격해 온다, 그러니까 일본인에게 보복을 하자고 결심하여 이상하지 않은 배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선인을 거리낌 없이 죽인다는 경험이 사회에 축적되어 있었던 것이라는 점, 자경단은 사전에 조직되어 있고, 그 핵심이 된 재향군인회가, 그런 경험을 가장 직접적으로 획득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점, 경찰이 거의 기능을 상실한 지진 재해 직후, 그들이 ‘민중 경찰’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했던 것이라는 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러한 역사는 왜 일본인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던 것일까.

지진 재해 4년 후에 도쿄에서 태어난 요시무라 아키라가 『간토 대진재関東大震災』를 완성한 것은 지진 재해로부터 반세기 후가 되는 1973년이었다.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들었던 체험담, 개중에서도 “인심의 혼란에 전율한” 것이 집필의 동기였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 혼란의 원인을 ‘정신 이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요시무라 부모 세대라면, 학살의 배경에 있던 사회적인 사정을 몰랐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떠오르는 것은 요코하마에서 발견되는 초등학생들의 작문이다. 지진 재해로부터 3~6개월 정도 경과하고 나서 쓰인 것인 듯한 데, 유언비어가 거짓이었던 것을 언급한 것은 없었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았던 것이리라.

너무나 많은 민중이 가해자였다. 누가 가해자인지 지역 사회는 알고 있기 마련이다. 잘못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면, 없었던 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리라.

조선과 중국에서 한 병사들의 경험 가운데 처참한 실태는 일본 국내에서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메이지와 다이쇼 전장에 한하지 않고, 쇼와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좀 더 이야기하면 전후 사회도 바뀌지 않았다. 15년 정도 전, 일본과 중국 사이에 역사 인식을 둘러싼 불화가 표면화되었을 때, 중국인 연구자에게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전후, 일본 교직원조합은 “제자들을 다시 전장에 보내지 말라”는 것을 평화 교육의 슬로건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 전에 “전장에서 무슨 짓을 했던가”를 제자들에게 왜 따지지 않았던 것일까. 일본인이 지니고 있는 것은, 그냥 나쁜 짓을 했다고 하는 이미지밖에 없다고.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자세이다. 동학농민전쟁 연구에서 이노우에 씨가 고생한 것은, 실마리가 되는 기록이 없는 것이었다. 육군이 정리한 전사戰史에도 기재가 없다. 종군 일지를 남긴 병사의 대대에서 단 한 명이었던 전사자가 사망한 것은 청나라 군대와의 전투로 기록되어 있었다. 농민군과의 전투 그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발견한 안동 영사의 보고인 경우에도, 들어 있던 것은 『採余公文』이라는 철이었다. 앞 연재에서 말한 대로, 내각서기관실 공문서는, 영구, 10년, 1년으로 보존 기간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뉘어 있었는데, 『採余公文』은 1년짜리 보관 철이었다. 본래라면 1년에 폐기되기 마련인 철 속에 끼어들어, 이 문서는 공교롭게 오늘까지 전래된 것이다. 이해의 문서철은 세 종류가 함께 남아 있었는데, 모두 넘겨보았지만, 3·1 독립 운동에 관한 문서는 이 한 점밖에 찾을 수 없었다. 정권 입장에서 중대한 일이며, 수상에게 보고가 달리 없을 리 없다. 지진 재해 때 학살에 관한 문서가 그랬듯이, 조직적으로 처분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라 다카시의 일기는 3월 11일에 조선총독에게 다음과 같은 전보 훈령을 보낸 것을 기록한다.

“이번 사건은 내외에 대해 매우 경미한 문제로 만드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엄중한 조치를 취하여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기하라. 단 외국인은 가장 본 건에 대해 주목하고 있을진대 잔혹하고 철저한 비평을 초래하지 말 것을 충분히 주의를 바란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일본은 열강의 지위를 획득하려고 하고 있었다. 유럽과 미국의 시선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었다. 조선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비판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경미한 문제’로 조치할 필요가 있었다.

3·1 독립 운동을 둘러싸고는, 외국 신문에서는 비판적인 보도도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잔학한 행위 따위는 없었던 게 되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도 정부의 설명을 믿었다. 우치무라 간죠內村鑑三[1861~1930년]는 그해 8월, 미국인 앞으로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미국인이 문제로 삼는 잔학 사건의 대부분은, 하찮은 날조(그것을 꾸며낸 것이 신문기자인지 선교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에 불과하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주님은 오셔서, 우리를 올바르게 심판하시겠지요. 아아, 신문지가 범하고 있는 죄여!”

오늘의 일본인이 품은 역사상은, 이러한 우치무라의 인식에서 어디까지 자유로울 것인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 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고 박근혜 대통령의 말에 놀랐던 것은 2013년이었다. 내가 이 취재를 시작한 해이기도 하지만, 그로부터 6년, 소박한 의문을 추적하는 동안, 가해자로서 일본의 자세가 어렴풋하지만 보이기 시작하자, “역사를 직시하는 자세를”이라고 하는 한국의 호소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정권은 교체되었지만, 일본과의 불화는 심화될 뿐이다. 한국이 주장하는 역사가 기괴하다고 지적하는 책이 일본에는 넘치고, 서로 이해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다, 라는 목소리도 강해질 뿐이다. 정치의 도구가 되고 있는 측면도 있는 것이지만, 이렇게 더듬어 보면,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둘러싼 현격한 연원은 생각하기보다 깊은 곳에 있는 듯하다. 그 틈이 간단하게 메워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인가를,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여기며 품고 있는 역사상의 정체와 내력을 자문한다. 그런 것에서 시작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12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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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람의나라  IP 116.44.211.x    작성일 2019년11월2일 01시39분      

착각이 깊네

일본인들 중상층 이상은 한국인들 이나물건 을

거의

힌국인이 동남아 ,,,

태국 정도로 본다

1억 이라는 인간들 중에

친한 이 잇을수 잇지만

대세 라는것이 잇다

중상층과 준고위층은 여전히

낮쳐 본다

일본 국민 교육교과서를 봐도 알수 잇다

역사 외곡과 추가 해서

일본인들의 잠재의식은 아니라는것 이다

정치 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내면에 내재 돼어 잇는 인식 이다

대표적으로 한국 물품 파는것 찾아 보길

차량 현대 차 1988년 올림픽때 100대 팔고

그것도 친한 파나 재일 교포가 사줫는데

문제는 그이후 한대고 팔지 못 햇다는점이다

일본인들은 한국 물품 사지 않는다

어리석게 한국인만 일본 물품을 산다

대안 물품이 잇는데도

그게 차이다

그것을 이해 못 하면은 자기 위안의 식민지 근성 일것 이다


어차피 대중은 개돼지 라고 한말이 인용 돼는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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