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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달라지면 내 생각도 바뀝니다.”
  번호 80732  글쓴이 이준구  조회 666  누리 5 (5,0, 1:1:0)  등록일 2018-9-7 15:06 대문 0

“상황이 달라지면 내 생각도 바뀝니다.” - John Maynard Keynes 
(WWW.SURPRISE.OR.KR / 이준구 / 2018-09-07)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J. M. Keynes)를 싫어하는 어떤 사람이 그가 자주 말을 바꾼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비판에 대해 케인즈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는데, 두고두고 인용되는 명언이 되었습니다.

“상황이 달라지면 내 생각도 바뀝니다.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When the facts change, I change my mind. What do you do, sir?)

자신이 어떤 철석같은 신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상황이 바뀌어 그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버려야 마땅한 일입니다.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잘못된 신념에 고집스레 집착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고의 일관성보다는 유연성이 더욱 적절한 덕목이 될 테니까요.

이와 같은 사고의 유연성은 평범한 개인에게도 중요한 덕목일 테지만, 특히 정책 담당자에게는 더욱 필수적인 덕목입니다. 특정한 목표를 지향하고 도입된 제도가 실제로는 기대한 것과 다른 효과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와 다른 효과가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성격의 것일 경우도 많습니다.

이때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그 잘못된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일단 시행된 정책이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지체없이 수정해 더 큰 비용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케인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사고의 유연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내가 쓴 글 하나가 우리 사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임대주택등록제가 투기를 조장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내 지적이 정책에 영향을 미쳤나 봅니다. 정책 담당자가 내 글을 인용하며 임대주택등록제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난 그 제도가 언제 처음 도입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이명박근혜 정부 때도 그 정책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로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붙이던 정부였는지라, 임대주택등록제도 집 많이 갖고 있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의 일환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가난한 세입자들을 위한 정책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그 내용을 보면 부자들을 위한 정책임이 분명했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세입자들을 위한 정책을 생각했다면 단지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렇게 엄청난 세제상 혜택을 주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종합부동산세 문제도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이명박근혜 정부는 늘 다주택자의 수호성자처럼 행동했고 임대주택등록제도 그런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제도를 대폭 축소 내지 폐지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그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는 게 아닙니까? 최근 주택가격 급등이 문제가 되자 정부가 그 대응책으로 내놓은 것들 중에 이것도 포함되어 있더군요.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주택가격 급등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할 가능성이 있는 그 정책을 대응책이라고 제시하는 데 어이가 없었습니다. 내가 최근 문제된 그 글을 쓰게 된 배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부가 뒤늦게 임대주택등록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수정에 팔 걷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언론, 특히 보수언론이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을 들어 비판의 칼을 갈고 있네요. 물론 정부가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잘못된 정책을 고집스레 밀고 나가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정부는 이미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의 기득권은 인정하고 새로 등록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세제상 혜택을 축소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정부의 약속을 믿고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 중에 손해를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셈인데 구태여 정책의 일관성을 들고 나올 필요가 어디 있는지 모를 일이군요. 정부가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나온다면 그때는 정책의 일관성이 문제 될 수 있지만요.

일부 언론에서는 정부가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내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오락가락’이라는 표현이 정당화되려면 정부가 이렇게 고쳤다 저렇게 고쳤다 줏대없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건 절대 아니지 않습니까? 단지 종래의 임대주택등록제에 문제가 있으니 시정하겠다는 건데, 뭐가 오락가락입니까? ‘내로남불’이란 말을 또다시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나는 임대주택등록제가 갖는 문제점을 미처 몰랐다고 고백한 정부의 용기에 오히려 박수를 쳐줘야 한다고 믿습니다. 웬만한 정부라면 이왕 그렇게 된 것 계속 밀고 나가자는 식의 만용을 부리기 십상이고, 그렇게 솔직한 고백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이익은 안중에 없고 자신의 체면이나 지키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십상이니까요.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도 상황이 변화하면 생각이 달라지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임대주택등록제의 문제점이 드러난 이상 과거에 연연해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문제가 된 부분은 당연히 시정되어야 마땅하고, 그대로 묻어 버리는 게 오히려 졸렬한 일입니다.

새로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는 사람에게 적용대상을 한정시키겠다는 정부의 보완책은 정책의 일관성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전혀 없습니다. 정책의 일관성을 들먹거리면서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는 데까지 딴죽을 거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그 보완책을 하루라도 빨리 실천에 옮기라고 독려해야 마땅한 상황이라고 믿습니다.

이준구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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