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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망국지신(亡國之臣)
  번호 78842  글쓴이 이정랑  조회 917  누리 0 (0,0, 1:0:0)  등록일 2018-6-29 11:53 대문 0

[이정랑의 고전소통] 망국지신(亡國之臣)
(WWW.SURPRISE.OR.KR / 이정랑 / 2018-06-29)


통치자가 ‘망국의 신하(亡國之臣)’를 쓰는 것은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는 것과 같다. 망국의 신하는 자기중심적이다. 머릿속에 사적인 이익에 관한 생각만 꽉 들어차 있어 나라의 안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또한 흑백을 뒤섞고 역사를 운운하며 개혁을 거부함으로써 어떤 훌륭한 계획도 성공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붕당을 조직하여 통치자를 압박하고 나라를 어지럽힌다. 박근혜정권이 무너진 요인을 보라! 거기에 모든 해답이 담겨져 있다. 이처럼 인사문제는 통치의 근본이며, 나라를 나라답게 바로 세우는 핵심적 요건이다.

사람의 음험함과 악독함은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다. 겉으로는 건실하고 규율을 준수하는 것처럼 보이며 남에게 선량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통치자가 이런 겉모습만 보고 그들의 속마음을 통찰하지 못하면 그들의 기만과 유도에 의해 옳은 걸 그른 것으로, 흰색을 검은색으로 알고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은(殷)나라 주(紂)왕이 나라와 목숨을 잃은 것도 곁에 숭후호(崇侯虎)같은 망국의 신하가 있었던 탓이다. 주왕은 본래부터 음탕하고 잔인했다. 악사를 시켜 음탕한 음악을 짓게 하고 술이 가득한 연못을 팠으며 마치 숲처럼 고기를 줄줄이 걸어놓게 했다. 그는 술을 마실 때면 늘 발가벗은 남녀가 서로 쫓고 쫓기며 희롱하는 모습을 감상했다. 또한, 잔혹한 형벌로 백성들의 원한과 제후들의 반발을 잠재웠다. 그런데 주왕의 충복이었던 숭후호는 주왕의 그런 악행을 방기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도와주었고 주왕에게 불만을 가진 이들을 감시해주기까지 했다. 서백(西伯)이 남몰래 탄식을 했을 때에도 그 사실을 주왕에게 밀고하여 그를 유리(羑里)라는 곳에 유폐시켰다.

숭후호는 주왕의 학정을 도와 은나라의 멸망을 앞당겼으니 이런 자가 총애를 받은 건 실로 군주의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통치자는 역사의 교훈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똑같이 인재를 등용하면서 어떤 통치자는 인재 등용의 결과로 평안을 누리는데, 어떤 통치자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급기야 목숨과 나라를 잃는다. 이처럼 천양지차(天壤之差)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인재 등용의 잘하고 못함에 달려있다. 

망국의 신하를 쓰면 안 되는 것처럼 ‘불응하는 백성(不令之民)’도 써서는 안 된다. 불응하는 백성은 통치자의 명령에 불응할 뿐만 아니라 통치자의 명령으로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보통 사람은 이익을 좋아하지만 그들은 이익을 봐도 즐거워하지 않으므로 군주는 후한 상으로도 그들을 격려할 수 없다. 게다가 재난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군주는 엄한 벌로도 그들을 다스릴 수 없다. 허유(許由), 속아(續牙), 변수(卞隨), 무광(務光), 백이(伯夷), 숙제(叔齊)가 다 그런 자들이다.

요 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넘겨주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당신이 천하를 맡은 뒤로 이미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제가 당신을 대신하면 헛된 명성을 노리는 게 되지 않습니까? 또한 제게 천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설사 당신이 천하를 잘 다스리지 못했다 해도 저는 주제넘게 나서서 일을 떠맡고 싶지 않습니다.”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토벌했을 때, 그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탐욕스럽다고 말할까 두려워 무광에게 천하를 넘기려 했다. 무광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당장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이익으로도, 형벌로도 움직일 수 없는 자는 모든 삶을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며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마음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나라는 발전해야만 한다. 정치의 안정, 경제의 번영, 과학기술의 진보 등은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의 적극적인 실천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실로 오랜만에 국가다운 국가를 세우고 이끌어갈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선출했다. 역사적인 쾌거요 대사변이다. 그러나 대통령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미래의 청사진이 그려져 있으면 아무 결실도 맺지 못한다. 국민도 국민답게 나라를 나라답게 바로 세우는데 매진해야 할 때이다.

모든 일에 초연한 척하는 사람을 써서는 안 되니, 불응하는 백성을 써서는 안 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불응하는 백성은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 사회의 잉여인간(剩餘人間)이다.

통치자는 마땅히 주공(周公), 건숙(蹇叔), 관중(管仲), 백리해(百里奚), 범려(范蠡), 대부 종(鍾) 같은 이들을 등용해야 한다. 그들은 군주를 위해 밤낮없이 동분서주 했으며 법의 기강을 밝히고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다. 또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고 군주에게 충언과 좋은 계책을 올렸으며 통치의 방법을 훤히 꿰뚫고 있으면서도 뽐내는 일이 없었다. 아울러 성공을 거둔 다음에도 자신의 공로라 생각지 않았고 나라와 군주를 위해 자신의 집안과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희생했다.

그들은 항상 군주에게 절대적인 존엄을 유지하게 했다. 군주를 하늘이나 태산 같은 존재로서 조정 위에 군림하며 온 나라 백성들의 칭찬을 받게 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은 대단히 겸손해서 자그마한 명예로도 기꺼이 만족스러워했다.

주공(周公)은 일찍이 나이 어린 주나라 성왕(成王)을 보좌하며 왕권을 대리한 까닭에 다른 형제들의 원한과 반란을 야기했다. 하지만, 그의 충성심은 끝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진나라 목공을 보좌한 건숙(蹇叔)은 먼 길을 무릅쓰고 정나라를 치려는 목공을 애써 만류했다. 힘들여 원정을 수행하다 보면 진나라 군대는 힘이 다 떨어질 것이며, 그사이 정나라는 방비를 튼튼히 할 테니 결코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주공은 조정의 대권을 갖고서도 군주를 능멸하지 않았고 건숙은 높은 명망을 갖고서도 목공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우리는 그들이 유순하고 충성스러웠으며 억지로 자신들의 의지를 군주에게 강요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착실하고 근면하게 일을 수행했다. 그들은 어리석은 군주 밑에 있을 때도 능히 사업을 성취할 수 있으니, 현명한 군주에게 등용되면 훨씬 더 찬란한 위업을 이룰 것이다. 군주가 큰 사업을 하려 할 때 이런 사람들이 없으면 도움을 줄 심복이 없는 셈이니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것이다. 현재 우리 모두가 다 명심해야 할 대목들이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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