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연합의 토대를 애민·애국의 기치로 해야 하는 이유?
(WWW.SURPRISE.OR.KR / 정호일 / 2026-09-14)
지금 시대는 국제 정세로 보나 국내 정세로 보나 격변기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맞아 민은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는 사회를 수립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대·연합을 잘 수행해야 할 과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의 승패가 우선적으로 연대·연합을 얼마나 잘 이루어 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1. 애민·애국은 외세와 매국노의 응징을 명확히 제시한다
연대·연합을 잘 꾸리기 위해서는 목적에 충실해야 합니다. 연대·연합을 수립하는 목적 중의 하나는 잘못된 세상을 고쳐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러자면 잘못된 세상을 지탱해 주는 최대의 세력을 고립시켜 응징해야 합니다. 이들을 응징하지 않고서는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대·연합을 제대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세상을 지탱하는 핵심 세력을 명확히 겨냥해 응징할 수 있는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신)식민지매국사회입니다. 미국의 식민 정책과 주권 유린 행위가 한국의 매국 정권을 매개로 해서 관철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의 최대 응징 대상은 외세와 매국노이기에 이들을 동시에 응징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응징하는 명확한 계선 형태는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 애민·애국은 광범위한 세력의 연대·연합을 이뤄낼 수 있다
민의 권리를 가로막는 최대 세력을 고립시켜 응징하는 것이 연대·연합을 잘 꾸려가는 방식의 하나라고 한다면, 또 다른 방식의 하나는 주체를 가장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모아내는 것입니다. 광범위한 세력을 하나로 모아내면 낼수록 그만큼 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광범위한 세력을 모아내는 데에 있어서 하나의 지켜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잘못된 세상을 바꿔낼 수 있는 질적 계선을 확고히 견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광범위한 세력을 모아내 보았자 본질적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외세와 매국노를 반대한다는 측면으로 놓고 볼 때 가장 광범위한 세력을 모아낼 수 있는 형태는 다른 계선이 아닌 애민·애국의 기치로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외세와 매국노를 반대하는 싸움을 하는 데 있어서 자주나 민주, 통일, 평화, 침략전쟁 반대, 반독재, 반미, 매국노 응징 등의 투쟁이 필요합니다. 또 상황에 따라서는 어떤 사안이나 부분적인 투쟁을 집중적으로 전개할 필요성도 요구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어느 한 부분으로 투쟁이 한정되는 계선을 설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부분에 대한 투쟁을 전개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모든 부분에 관통된 핵심적인 기치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 핵심적 기치가 바로 애민·애국이라는 것입니다.
3.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은 그 자체로 가장 광범위한 세력에 기반한 정권의 상을 제시한다
지금껏 정권은 일정하게 서로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이 정당을 구성하여 국민투표를 통해 권력을 잡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권은 광범위한 사람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잡는 세력들의 요구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이해되었고, 또 실질적으로 그런 식의 정책이 전개되었습니다.
실상 한국 사회는 김영삼 정권이 등장한 이래 거대 양당 체제로 되어 배신세력과 반동세력이 번갈아 가며 정권을 장악하여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의 광범위한 세력인 민의 이해와 요구가 대변되지 못하고 외세와 매국노의 이해가 관철되는 매국정권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권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니만큼 가장 광범위한 사람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야 합니다. 더욱이 앞서 말한 대로 연대·연합을 이룩하는 것은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정권은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는 확고한 정치적 무기로 됩니다.
그렇다면 연대·연합이 일시적인 형태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 연대·연합의 힘으로 정권까지 잡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애민·애국의 기치에 의한 연대·연합을 기초로 세워진 애민·애국 정권은 지금까지의 배신정권과 반동정권과는 달리 가장 광범위한 세력을 대변하는 정권의 상으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애민·애국의 정권은 당면 과제인 주권 회복과 빈부 격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금 시대적 요구는 자유와 평등의 형식적인 인정을 넘어 실질적으로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만 인정되면 별반 달라질 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누리자면 인간관계에서 단순히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사는 존재라고 선언되는 정도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인간 외적 조건에서도 빈부 격차를 해소해야 합니다. 인간 외적 조건이 불평등했을 때 그것이 고리가 되어 사실상 인간관계가 억압과 차별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을 해결하자면 인간 외적 조건에 의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느냐 문제로 접근해야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에 의해 세워진 애민·애국 정권은 바로 이 부분을 담보합니다. 애민·애국은 인간으로 자각한 사람은 누구나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본적인 사상적 기치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애민과 애국을 따로 떨어뜨리지 않고 하나의 표현으로 묶어 쓰는 것은 애민시대에서의 애국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껏 애민이나 애국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애민과 애국은 노예제나 신분제, 자본제 사회에서는 그 시대상에 따라 왜곡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애민이라고 해도 각 시대의 지배와 억압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 의해 그 주체가 한정되었고, 마찬가지로 애국 또한 지배 계급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었습니다. 이를 바로잡자면 인간으로 자각한 모든 사람은 주인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애민시대에서의 애국으로 확립되면 애민과 애국은 따로따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애민이 곧 애국이고, 애국이 곧 애민으로 이해될 것입니다. 그 때문에 빈부 격차의 해소도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자국 민의 이해와 요구에 맞게 정책을 수립하고 실시하는 것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주권 회복 또한 필연적인 당면 요구로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말해 애민·애국 정권은 현시대의 핵심적 개혁 과제인 주권 회복과 빈부 격차의 해소를 당면 요구로 내걸고 확고히 해결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5. 애민·애국 정권은 민이 모든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길로 나아가는 토대가 된다
애민·애국의 정권은 빈부 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할 뿐만이 아니라 민이 삶을 영위하는 모든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방향으로 계속 전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민은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자각한 사람은 누구나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자면 이 구체적인 삶의 방식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인 선언에 그치는 것처럼 빈말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권 회복과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데서 멈춰 있을 수 없고, 모든 영역에서 실현되도록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지난날의 시대처럼 지배와 억압, 채찍을 통한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인간으로 자각한 사람은 누구나 주인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사상적 기반에서 전개되는 것이기에 일치와 입체, 통일의 방법론을 통해 전개됩니다. 즉 서로의 이해와 요구가 일치되는 부분을 견지한다는 전제하에 상호 간의 차이를 입체적으로 존중하여 모순되거나 혼란됨이 없이 통일적인 질서 속에서 풀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애민·애국을 기초로 연대·연합을 이뤄가야 가장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세력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고, 그 힘으로 한국 사회의 최대 억압 세력인 외세와 매국노를 고립시켜 응징하면서 애민·애국 정권을 수립하여 당면 과제인 주권 회복과 빈부 격차를 해소해 나가고, 궁극적으로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새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26. 9. 14.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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