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 조직 건설이 왜 필요한가?
(WWW.SURPRISE.OR.KR / 정호일 / 2026-07-20)
1. 인류사의 격동 시기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유일 패권 체제가 붕괴되어 가고 있는 데에서 명확하게 확인됩니다.
미국의 유일패권의 붕괴가 왜 이렇게 중대한 의미를 띠는가는 세계 유일 패권이 인류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선 미국은 세계 유일의 패권을 행사하는 나라입니다. 지금껏 대제국을 형성시켰다고 해도 한 대륙 내지는 두 대륙에 걸쳐 영향력을 미쳤을 뿐이지 지구의 전 대륙에 패권을 행사하는 나라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이것만 봐도 그 규모가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배 방식도 확연히 다릅니다. 세계 유일 패권 세력은 세계적 차원에서 유일 패권을 수립해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지배하고 수탈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자본의 유통이 자유로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 유일 패권 세력은 국가라는 매개 수단도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런 세계적 차원의 유일 패권적 지배 체제의 붕괴 이후의 그다음 방향은 어떻게 될까요? 유일 패권이 지구에서 우주로 확대해 나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배와 패권이 더 확대되는 경우의 방향은 제외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 상이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국제적 차원과 국내적 차원이 긴밀하게 연결된 조건에서 상호 연동되어 풀어질 것이란 점은 명확할 것입니다.
세계 유일 패권은 쉽게 말해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인 세계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형성된 지배 체제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사는 존재라고 천명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형식적으로만 인정되거나 형해화되면서 사실상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에 따라 국가 주권도 형식적으로 인정되거나 형해화되어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의 지배와 억압, 패권과 침략의 형태가 붕괴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과정은 미국의 유일 패권 체제의 붕괴로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하든지 간에 이를 대치할 수 있는 해결책이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만 인정되는 차원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누리게 되는 방향이어야 하고, 또 국가적 차원에서도 주권의 형식적인 인정을 넘어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회 역사의 주체인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전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는 방향으로 인류사가 발전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주체가 마련되어 이를 실질적으로 실현해 가야 합니다. 지금도 세계 유일의 패권 세력인 미국과 그 카르텔 세력은 이를 가로막기 위해 혈안이 되어 나서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미국과 이란의 중동 전쟁 등은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쟁 과정을 통해서도 미국의 유일 패권 체제가 붕괴되는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미국의 유일 패권적 지배 체제에서 벗어나, 즉 국제적 차원에서나 국내적 차원에서 형성된 지배와 억압, 패권과 침략의 질서 체계를 붕괴시키고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전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 체계를 수립할 수 있는지 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이 방안의 마련이 현시기에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방안을 마련하고 지금의 시대사적 과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요?
2. 인류사의 전개 과정과 교훈
현시기의 시대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사의 전 흐름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시기의 인류 사회는 갑자기 우연히 세워진 것이 아니라 지난한 인류사의 투쟁 과정을 통해 수립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 흐름으로 볼 때 인류사는 인간으로 자각하여 인류라는 운명 공동체를 형성해서 누구나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여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사회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류사는 다름 아닌 인간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류사가 시작되려면 인간으로 자각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마지막 단계는 그렇게 자각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전 인류가 하나의 운명 공동체 집단으로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과정이 순차적으로만 진행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편에서는 반동 세력이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급진 세력이 나타나 일정하게 사회적 혼란도 발생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류사의 큰 흐름은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이 인간으로 자각해서 전 인류로서의 운명 공동체 집단을 형성해서 누구나 다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류사가 처음 개척된 이래, 왜 맨 처음 동물과 같은 원시 사회에서 벗어나 노예제 사회가 성립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이니만큼 인간으로 자각하지 못하면 동물이나 도구와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인류사의 맨 처음 기준은 인간이냐 아니냐의 계선으로 설정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예제 사회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동물이나 도구와 다른 존재라는 게 너무 명백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간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예제 사회는 신분제 사회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으로 인정하겠으나 세상에 고귀한 것과 천한 게 있듯이 고상한 혈통의 피를 받고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차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신분적 차별을 내세워 지배하고 억압하는 체제였습니다.
여기서 신분제 사회를 봉건적 사회라고 명명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봉토의 하사가 그 사회 유지의 기본으로 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봉토의 하사가 이뤄지는 근거는 신분적 지위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봉건제 사회라고 하기보다는 신분제 사회라고 부르는 것이 더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이해하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튼 신분제 사회 또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고귀한 혈통의 피를 받고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고상한 것이 아니라 더 천한 짓거리를 벌이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의 지위와 역할은 타고난 신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천부인권을 가지고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천명되었습니다. 이로써 인류사는 인간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차별이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되고 누구나 온전한 인간 존재로 인정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인간으로 자각하여 온전한 인간 존재로 성립되는 인류사의 장구한 투쟁 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은 다름 아닌 민이 사회·역사의 주체로 우뚝 서는 노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회·역사의 주체가 되자면 무엇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온전한 인간 존재로 대접받는 것이 명확히 확립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구한 인류의 역사가 민이 사회 역사의 주체로 확립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은 노예제와 신분제 사회에서도 사회 운영의 기본 원리가 애민으로 작동되었다는 데에서 확인됩니다.
노예제와 신분제 사회의 기본 작동 원리는 노예이냐 아니냐, 고귀한 혈통에서 태어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천하의 근본은 백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노예제와 신분제를 기본으로 둘 것이냐, 아니면 백성을 기본으로 둘 것인가의 모순 관계가 발생하였습니다. 여기서 이 모순을 완화하는 길로 나아가면 일정하게 사회·역사의 발전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격화하는 길로 가게 되면 사회적 혼란과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노예제와 신분제 사회였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성군이나 폭군으로 그 평가가 갈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우여곡절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나 자각하여 온전한 인간 존재로 대접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였기에 그런 시대적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장구한 투쟁 과정에서 애민은 확고한 사회의 기본 운영 원리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애민이 사회의 기본 운영 원리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면 또 하나의 기본 원리가 애국의 기치입니다. 애국이 사회 운영 원리의 기본 척도로서 작용하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인류사의 전개 과정이 나라와 민족 단위로 운영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법적 제도와 질서가 실시되는 영역도 나라와 민족 단위이고 주권의 행사도 나라와 민족 단위로 이뤄집니다. 여기서 애국의 기치를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노예제와 신분제 사회에서는 애국의 기치 또한 모순을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체 구성원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한 애국이냐, 아니면 지배 통치 세력의 이익만을 내세운 애국이냐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모순을 완화하거나 봉합하는 차원으로 나아가면 융성한 민족적 발전이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 때도 단호히 항거하여 조국을 지켜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모순이 격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는 사회적 혼란을 겪고 쇠퇴와 쇠락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류사에서 수많은 족속과 민족이 존재했고, 또 한때 커다란 영화와 번영을 누리기도 하였지만 애국의 기치를 확고히 하지 못했을 때 그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갔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장구한 인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회의 기본적 운영 원리로 애민과 애국이 두 축으로 작동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노예제와 신분제 사회에서처럼 인간에 의한 억압과 지배가 존재하는 조건에서는 애민과 애국이 온전히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인류 역사의 발전을 이룩하자면 바로 이 부분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회 운영 원리의 기본 두 축인 애민과 애국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을까요?
3. 애민과 애국의 일치와 전면적 발화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천부인권의 선언은 인류사의 발전에 있어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로써 인간관계 자체를 놓고서는 차별이 가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명확히 확립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운명 문제가 이로써 다 해결될 수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자연물을 가공해서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관계를 맺고 물질 문화적 재부를 창출해 이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약받음으로써 제대로 누리고 살지 못하게 된다면 인간의 운명 문제를 주인답게 해결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 재부에 대한 권리는 인간의 생존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이를 확보하지 못해 먹고사는 것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자유와 평등은 형식적인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미명하에 노동자들을 고용해 사회적 재부를 창출해 놓고는 자신들의 독점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자본가들이 사회적 재부를 창출할 때 그들이 기여한 부분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사회적 재부를 자본가만의 독점적 소유권으로 받아들여야 하느냐, 아니면 사회적 권리로 확대해서 받아들이게 하느냐의 입장 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회적 권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자본가의 독점권을 인정하게 되면 민은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운명을 개척하자면 인간끼리가 자유와 평등한 관계로 되어야 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먹고사는 데에서 필수적인 사회적 재부에 대해서도 주인의 권리를 행사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재부에 대해 민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면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제국주의로 전화되었던 모습에서 명확히 확인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산업자본으로부터 독점자본, 국가독점자본, 세계거대독점자본으로 발전함에 따라 제국주의, 현대제국주의, 세계제국주의로 발전하여 나갔습니다. 제국주의의 길로 가는 그때로부터 약소국을 식민 지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이를 위해 제국주의 전쟁까지 불사하였고, 마침내 세계적 차원에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약탈과 수탈 체계를 수립해 세계 유일의 패권 체제까지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 체제가 형성된다는 것은 민의 권리 실현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되겠습니까? 식민 지배는 식민지 민을 사실상 노예의 처지에 빠지게 합니다. 민이 자기 운명을 개척하자면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주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노예의 취급을 당한다면 과연 거기서 인간관계가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 거론되기는 하겠지만 사실상 인정되지 못하고 무시되기 일쑤일 것입니다. 제국주의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만 인정되고 실질적으로 실현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노예제나 신분제 사회에서 분명 노예도, 천한 신분의 사람도 아닌 고위직 신분이라고 해도 최고 통치권자 앞에서는 사실상 노예나 천민으로 부당하게 취급당하기 일쑤였던 것도 동일한 맥락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떤 한 부분에서의 지배와 억압이 관철되는 형태로 되면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다른 여타의 부분에까지 파급 효과를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누리자면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 문제, 즉 인간이 사회적으로 창출해 낸 사회적 재부에 대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형식적으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사되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민의 구체적인 삶의 방식을 따져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삶에서 실현되지 못하면 별반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평등이 아무리 형식적으로 인정되더라도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하면 별반 의미가 없는 것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민은 누구나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창출된 물질 문화적 재부에 대해 이 모든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행사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행사하는 데에서 일정한 질적 차이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합법칙적 발전 과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여곡절을 겪지 않고 풀어갈 수 있습니다. 객관적 조건과 주체 역량을 타산하지 않고 진행하였을 때 실패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향은 큰 흐름으로 볼 때 맨 처음에는 최대의 억압 세력을 고립 청산한 다음, 그다음으로 억압과 착취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주인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향유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맨 처음의 단계인 최대의 억압 세력을 고립시키고 청산해야 하는데, 세계 유일의 패권적 지배 체제가 형성된 조건에서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각 영역에서 그 대상은 각각 외세의 세계거대독점자본과 동맹 카르텔 세력 및 매국노로 일치하고, 그 주체 또한 각각 민으로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지금껏 사회 운영의 기본 두 축으로 작동되었던 애민과 애국이 지난날과 달리 서로 모순되거나 상충되지 않고 참답게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껏 인류사의 장구한 노정을 겪어온 과정에서 노예제와 신분제 사회는 물론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시대에서는 사회 유지의 근본으로 백성이나 (국)민을 내세웠지만 그것은 형식적이거나 빈말에 지나지 않았고, 실질적으로는 지배 통치 세력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애국 또한 사회의 지배 통치 세력이 민을 침략과 전쟁으로 내몰든가, 그렇지 않으면 외세의 침략에 부화뇌동해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도용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의 기본 운영 원리의 두 축이 애민과 애국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발현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기에 이 모든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니 이런 모순과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세계 유일 패권 세력이 세계적 차원에서 국가라는 장벽조차 무력화하면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수탈하고 약탈하는 체계를 수립한 조건에서 이 과제는 국제적 차원에서나 국내적 차원에서 긴밀하게 연계되어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과 달리 애민과 애국이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애민이자 애국의 길이 하나로 일치되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사회 운영 원리의 기본 두 축인 애민과 애국의 기치를 전면적으로 들고 풀어간다면 민이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인류사의 새로운 발전 단계로 올려 세우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 조직을 건설해 나가자
애민과 애국이 사회 운영 원리의 기본적 두 축이고, 이를 전면적으로 발화시킨다면 인류사를 새로운 발전 단계로 진입시킬 수 있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해야 이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선 사상, 이론적 기초를 세워 총적 좌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사회운동은 사상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의 이해와 요구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민·애국 운동을 전면적으로 발화시키기 위해서는 사상, 이론적 기초를 밝히면서도 총적 좌표를 분명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애민·애국의 사상적 뿌리는 민이 사회·역사의 주체이자 나라의 주인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민은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 모든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행사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자주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민족 자주만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영역에서도 자주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주적 권리는 제도와 질서를 통해 실현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각각의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민주적 제도와 질서 체계가 수립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민주적 제도와 질서의 수립은 압도적인 역량으로 담보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 단결된 정치적 역량을 구축하여야 합니다. 결국 자주적 권리 보장, 민주적 제도 수립, 통일 단결된 정치적 역량 마련이 애민·애국 운동의 총적 좌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총적 좌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법론을 통해 풀어가야 합니다. 올바른 방법론의 확립이 특별히 중요하게 제기되는 이유는 민이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게 하자면 원만하게 조종해서 풀어가야 합니다. 만약 어떤 한 부분을 강조하고 다른 부분을 무시하게 되면 편향을 범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해관계의 불일치로 서로 단결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승리를 이룩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방법론을 확립해야 하는데, 그것은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조건에서 일치와 입체, 통일의 방법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치된 지점에 대해서는 서로 단합하고, 이 지점을 견지한다는 전제하에서는 상호의 차이를 입체적으로 존중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고, 그러면서도 각각의 요구가 상호 모순되거나 혼란됨이 없이 통일적인 전망성을 세워 풀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애민·애국 운동의 방법론은 일치된 지점 견지, 입체적 존중, 통일적 전망성을 세워 옳게 풀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총적 좌표를 세우고 올바른 방법론을 적용하여 풀어간다고 하더라도 핵심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승리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핵심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 선차적인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핵심적 과제의 하나는 사회적으로 창출된 물질 문화적 재부에 대해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면서 자유와 평등이 형해화되고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빈부격차의 해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빈부격차를 해소하자면 자기 나라의 독자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하니만큼 주권을 회복해야 합니다. 결국 현시기 애민·애국 운동의 핵심적 과제는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의 핵심적 과제를 해결하자면 대결의 전선 축이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전선의 축이 바로 세워지지 못하면 힘이 분산된 관계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핵심적 과제도 실현할 수 없습니다. 핵심적 과제가 실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조건에서는 애민·애국 운동의 총적 좌표도 유명무실해지고, 일치와 입체, 통일의 방법론도 제대로 구사할 수 없게 됩니다. 탄핵도 이루어지고 정권도 여러 번 바뀌었지만, 한국 사회의 핵심적 과제인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의 길에 지금껏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던 원인도 대결의 전선 축이 잘못 설정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껏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정치 전선의 축은 제1당과 제2당, 즉 거대 양당 간의 대결 체제 내지는 진보와 보수 간의 대결 구도였습니다. 거대 양당 간의 대결 체제가 되니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두 양당 간의 권력 나눠 먹기가 이뤄졌을 뿐입니다. 거대 양당이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에 관심이 없는 것은 오십보백보인데 거기서 뭐가 달라지기를 소망하는 것은 고목에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대 양당 간의 대결 체제가 두 세력 간의 권력 나눠 먹기를 허용하게 한 구도였다면, 진보와 보수 간의 대결 체제는 실질적으로 진보와 보수가 아닌 세력인데도 허구적인 대결 체제를 벌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보수주의자라고 한다면 국가의 안보관이 투철해야 할 것이기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주권부터 찾자고 주장하고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말아야 하고, 국익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런 사람이 무슨 보수주의자라고 지칭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자는 매국노일 뿐입니다. 바로 여기서 보수와 진보라는 대결 체제는 한국의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허구적 대결 체제를 벌임으로써 매국노들이 보수와 진보의 탈을 쓰고 위장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길만 열어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한국 사회의 본질적 문제가 무엇인지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혼란을 조성했을 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핵심적 과제인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의 실현에도 아무런 진전을 가져올 수 없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핵심적 과제인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전선 축을 형성해야 합니다. 바로 그 전선이 애국과 매국의 계선입니다. 한마디로 외세와 매국노를 응징하는 전선 축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세와 매국노의 응징을 전선 축으로 삼는 이유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창출된 물질 문화적 재부를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기에 이들 세력을 응징하고 청산해야 빈부격차가 해소될 수 있고, 주권을 회복하려고 해도 이들을 응징하고 청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국 사회의 핵심적 과제를 해결하자면 애국과 매국의 계선으로 전선 축을 형성해야 하는데, 문제는 외세와 매국노들이 이를 한사코 방해하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이를 해결할 방법은 정치적 역량을 구축해서 풀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여기서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 조직 건설이 이 모든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핵심 고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 조직을 건설하지 못한다면 애국과 매국의 대립 관계가 명확하게 형성되지 못하고, 그러면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의 핵심적 과제가 해결될 수 없고,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민이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세상을 건설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 조직을 건설하게 된다면 애국과 매국의 계선이 확립됨으로써 외세와 매국노를 응징하고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의 핵심적 과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개척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 조직 건설에 선차적인 힘을 기울여야 할 절박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26. 7. 20.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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