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애국과 매국 관계로 새판짜기하자
검은머리 미국인으로 행세하는 외교 관료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WWW.SURPRISE.OR.KR / 정호일 / 2026-05-26)
주권을 찾자면 정치권을 애국과 매국의 관계로 새판짜기 하면서, 특히 외교무대에서 검은머리 미국인으로 행세하는 외교 관료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주권을 고수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외교권을 제대로 행사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주권의 행사는 대외 관계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지위와 역할은 항상 인간 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간 간의 관계가 노예제나 신분제 관계로 되면 노예나 쌍놈으로 취급받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사회·역사의 주체인 민은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기 위해서 그런 잘못된 인간관계를 고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민이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조건에서, 이 모든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관계로 전환시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하자면 주권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주권 문제의 해결이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느냐의 관건적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권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서 본격적으로 거론되었습니다. 실상 인간이 노예나 신분적으로 차별받으며 억압받고 있는 조건에서 주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가 힘들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그 때문에 노예제나 신분제 사회에서의 주권 문제는 거의 대부분 노예주나 왕과 같은 통치자들의 목적에 이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를 누리는 존재라고 하는 조건에서는 주권 또한 평등하게 누리고 행사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요구로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의 법칙에 굴복하는 조건에서의 주권 행사는 형식적인 측면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제국주의 세력은 자본의 이윤을 더욱 광범위하게 수탈하기 위해 약소국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자본의 법칙과 같은 객관적 법칙에 굴복하게 되면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인 측면으로 전락하고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처럼 주권 또한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한마디로 말해 주권의 행사는 민이 사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전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애민시대에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로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자면 우선적으로 주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고, 그리하자면 정치권이 주권을 고수하는 입장을 확고히 견지해야 할 것이며, 이를 실무적으로 풀어가야 하는 각부 장관 특히 외교 관료들이 대외 관계에서 이런 입장을 확고히 뒷받침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치권이 주권 문제에 대해 외면하고 있고, 또 이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해 주어야 하는 안보 외교 관료들이 주권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검은머리 미국인으로 행세하면서 미국의 앞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놔두고서는 주권을 회복하는 길이 열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정치권을 애국과 매국의 관계로 새판짜기 해야 한다는 주장은 물론이고, 한국의 외교부는 외교가 없는 외무(無)부라고 하면서 안보 외교의 수장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해임과 함께 안보 외교 관료들에 대한 문책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주권을 찾는 데서 정치권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이에 발맞춰서 안보 외교 관리들 또한 주권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견지해야 합니다. 외교 안보 관리들이 주권 고수의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외교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외교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지위와 역할이 규정된다는 것입니다. 외교권을 잃으면 그 나라는 대외 관계에서 자기 나라의 주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므로 사실상 식민지로 전락하게 됩니다. 대한제국 시기에 을사늑약을 체결했던 을사오적을 매국노로 규정하고 단죄하였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교 관료들은 한 나라의 주권을 고수하는 데에서 항상 제1전선에서 싸우는 지위와 역할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지위와 역할로부터 한국의 외교부 장관은 국무장관 중에서 국무총리를 제외하고 그 서열이 가장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책무를 부여받았다고 한다면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고 검은머리 미국인으로서 미국의 앞잡이 역할을 한다면 그런 외교 관리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주권을 찾는 데에서 외교 안보 관리들의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되는 것은 다른 나라와의 대외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지위와 역할이 규정 받게 될 뿐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외세의 간섭을 허용하느냐, 막아내느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국정을 풀어가는 데 있어서 내정의 문제는 그 자체로 외세의 간섭을 불러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외교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권을 고수하는 외교관계를 맺지 못하면 그때로부터 외세의 간섭을 허용하게 됩니다. 이것은 을사늑약을 맺는 그때로부터 일제의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1907년 6월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여 국제무대에 호소하여 주권을 회복하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되기는커녕 1907년 7월 군대마저 해산해야 했으며, 마침내 1910년 강제로 병합되어 나라를 잃게 되었던 것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외교권은 다른 어떤 국무장관의 정책과 달리 외세의 간섭을 막아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는 직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는커녕 주권을 양도하여 외세의 간섭을 불러오는 짓거리를 벌인다면 어떻게 주권을 고수해서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한국의 현실이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미국은 한미동맹 현대화를 비롯해 관세 압박, 미국에 대한 우선적 투자 등을 강박하며 한국의 주권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영토와 자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국 사람마저 미국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식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외교 안보 분야의 관리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습니까? 미국의 부당한 간섭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막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간섭이 이뤄지는 근원적 요인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외교 관리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는커녕 한미동맹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부당한 주권 유린 행위를 감내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이들을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검은머리 미국인이기에 외교 부분을 담당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쿠팡의 문제를 놓고서도 주권을 고수하는 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에 한미동맹 관계도 잘 안 풀리는 것처럼 발언하는 데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기업이 개인정보를 유출했으면 국가가 그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쿠팡이 미국 기업이라는 법적 지위를 이용해 미국으로 하여금 간섭하고 나서게 하는 것은 주권을 제약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외교 관리들은, 한국의 조치는 지극히 당연한 주권의 행사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면서 미국의 주권 제약 행위에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이 주권을 고수하려고 하기 때문에 쿠팡 문제가 풀리지도 않고 한미동맹 관계도 원만하게 풀어지지 않는 것처럼 발언한다면 이런 외교 관리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동맹관계를 맺는 것도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도리어 동맹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주권을 양보하라니 이런 외교 관리라고 한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스타벅스의 문제에서 드러난 것처럼, 다른 날도 아닌 5.18을 맞아 탱크 데이로 광주민주항쟁을 조롱하는 기업 홍보까지 벌어졌습니다. 광주민주항쟁은 전두환 일당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무고한 광주 시민을 확살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북이 개입해서 벌어졌다고 하면서 광주 시민을 학살한 것도 정당하다는 식의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외교 관리로서 이 문제를 명확히 해결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중의 하나가 미국의 책임을 명확히 밝혀내는 것입니다. 한국의 전작권을 가지고 있는 미군이 전두환의 군사쿠데타 행위를 몰랐다고 한다면 도리어 말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미국의 책임을 묻는 것이 너무나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외교 관리란 자들이 미국에 대해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자기 책무를 다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꼭 다물고 있다고 한다면 이런 외교 관리가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외교 관리라고 한다면 외교무대에서 주권을 고수하는 입장을 확고히 견지해야 하고, 특히 외세의 간섭을 막아내기 위해 최일선에 서서 싸워야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이에 벗어나는 행위를 한다면 그런 외교 관리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국방 문제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전작권을 반환받아야 한다고 명확히 뜻을 밝혔다고 한다면 외교무대에서 이를 실현해 내기 위해 가장 앞장서서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작권을 찾는 데 걸림돌로 되는 그 근원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파기를 비롯해 주권을 명실상부하게 찾아가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미국이 한국에 전작권을 반환하지 않기 위해 그 무슨 조건이 갖춰져야 돌려줄 것처럼 발언한다면 그에 대해 따지고 들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 나라의 군대에 대한 작전 지휘권은 그 무슨 조건이 갖춰져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확보되어야 할 기본적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외교 관리라는 자들이 이런 당연한 기본적인 주권 요구 사항도 깨닫지 못하고 적반하장 격인 미국의 주장에 항의하지도 않고 묵인하는 것처럼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면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외교적 책무를 망각하는 행위일 뿐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뜻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외교 안보 관리로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냐는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제 한국은 다른 나라와의 외교관계에서 주권을 확고히 고수하고 행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난민 구호를 위해 공해상을 지나고 있는 배를 공격하여 한국인을 비롯해 구호 활동가들을 납치 감금하고 폭력을 행사했던 행위에 대해 단호히 문제를 제기하고 이의 해결을 요구했던 데에서 드러납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강력한 항의로 인해 이스라엘은 한국인을 비롯해 구호 활동가들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의 주권을 제약하거나 한국 민의 생명과 재산, 권리를 침해한다고 하면 결코 넘어가지 않고 단호히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주권을 제약하는 실질적인 나라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주권 유린 행위에 대한 항의는 그에 멈추지 않고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풀어가는 시발점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보 외교 분야에 관계하는 사람들의 책무가 막중하게 요구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외교 관리로서의 기본 책무도 자각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의중도 모르는 자들이 안보 외교 분야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미국은 주권을 회복하려는 한국 민의 요구를 가로막기 위해 한국이 중국을 겨냥한 고정된 항공모함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등의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한국을 계속 식민 지배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앞장서서 주장해 온 미셀 스틸을 주한 미국대사 후보로 임명하고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는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조선을 일제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광분했던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 의사에 의해 저격당해 죽었으며, 나라를 팔아먹는 을사오적들 또한 응징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안보 외교 분야에서 일하는 관리들에게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외교 관리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 자리에서 그만 물러나기를 바랍니다. 이런 요구에 응하지 않고 검은머리 미국인으로서 계속 행동한다면 민의 응징을 당하게 될 것을 필히 각오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날에는 실패했지만 이제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하는 애민시대의 흐름이 대세로 자리 잡은 조건에서는 그 길은 필연코 성공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그때 가서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도 소용없을 것이니 그런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2026. 5. 26.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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