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이 철학적 범주로서의 사람으로 확립되는 과정은 지난한 합법칙적인 발전 과정을 겪어야 했다
(WWW.SURPRISE.OR.KR / 정호일 / 2026-02-23)
출처: 『애민철학의 이해』(도서출판 우리겨레) 191쪽~198쪽에서 발췌
* 민이 철학적 범주로서의 사람으로 확립되는 과정은 지난한 합법칙적인 발전 과정을 겪어야 했다
우선 민이 사회적 존재로 실재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밝혀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존재로 인정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라는 것이 보편화되어야 했습니다. 누구나 자유를 누리는 평등한 존재라는 것이 부정당하면 사회적 존재로서의 보편성이 주장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예제나 신분제 사회에서처럼 인간 자체가 차별을 받는 상황에서는 그에 따른 인간 이해가 성립됩니다. 성인이나 철인, 군자가 등장하고 이들이 참다운 주체로 정립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성인과 철인, 군자가 주체를 차지하기에 나머지 사람들은 이들의 지배와 통치를 받고 복종하며 따라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자체를 가지고 차별과 억압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자유와 평등의 사상은 인류사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질적 전환을 가져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누리고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상이 보편화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데서도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세계는 물질로 통일되어 있고, 합법칙적으로 변화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인간 간의 관계가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하니 물질세계 또한 자연스럽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측면을 위주로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은 사회를 구성하여 생존하고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라는 규정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평등한 존재라고 했지만 객관적 측면을 살펴볼 때 차이와 차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 자체가 아닌 인간이 소유하는 물질적 차이를 따져보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주되게 생산수단의 소유 여하에 의해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여러 계급, 계층으로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파악하고, 여러 계급과 계층으로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밝힌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큰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인간에 대한 파악을 객관적 토대 위에 올려세움으로써 판별의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허나 객관적 측면을 위주로 바라봄으로써 인간에 대한 파악은 동시에 일정한 제한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원리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와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객관적 측면이 한 인간의 사회적 의식과 계급의식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회적 위치와 지위에 따라 무조건 사회적 의식과 계급의식을 형성하게 된다면 생활과 처지가 거의 비슷해도 서로 다른 사회적 의식과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 사회적 의식과 계급의식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주체적 요구와 관련된다
서로 다른 사회적 의식과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자면 의식의 문제에 대해 명백하게 파악하고 해명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사회적 처지와 상황이 거의 비슷한데도 무슨 이유로 해서 서로 다른 사회적 의식과 계급의식을 갖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함유하는 사회적 의식과 계급의식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체적 요구와 관련됩니다.
실상 민은 각계각층으로 존재하지만 저절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요구에 따라 단합해 나갑니다. 단합이 얼마나 공고하게 형성되느냐는 주체적 요구에 달려 있습니다. 주체의 지향과 요구에 따라 공고하게 단합해 나가면 사회 역사의 실질적인 주체로서의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회와 역사를 발전시키는 실질적인 담당자이면서도 지배계급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대상자로 취급당합니다. 여기서 민이 사회와 역사의 실질적인 주체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주체적 요구를 어떻게 세워갈 것인가의 과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 주체시대의 주체적 요구는 다름 아닌 민의 요구이다
여러 계급,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의 주체적 지향과 요구에 따라 민으로 개념 정립하였고, 그 민을 철학적 개념으로 사람이라고 표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철학적 개념이 곧 사회 역사적 범주에서는 민을 뜻함을 분명히 하지 못함으로써 주체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애매모호 하게 되어 혼란을 초래하였습니다. 민을 떠나게 되니 표준 잣대가 사라지게 되고, 주체의 문제는 개별적인 인간이 자기 맘대로 알아서 결정한다는 식의 주관적 차원의 문제로 귀결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민은 주체적 지향과 요구를 견지하기에 주관적 측면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체적인 지향과 요구라는 것 자체가 벌써 가치관을 내포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주관성은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의 주관성입니다. 인간 개개인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도 되는 식의 주관적 이해가 아닙니다.
단적으로 사회에서 남을 탄압하고 약탈하면서 못살게 구는 사람을 사람이라고 봐야 하겠습니까? 만약 이런 자도 사람이라고 보고 주체적 요구를 논한다면 그 어떤 논의도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자도 사람이라고 인정했으니 남을 못살게 구는 행위도 용납되어야 할 터인데, 그래 가지고서 어떻게 사회와 역사의 발전을 논하고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은 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주체적 요구라고 할 때의 주체는 민이고, 일정하게 가치관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관적이기는 하나, 이 또한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라는 의미에서 주관적이라고 말하지 않고 주체적 요구라고 표현합니다.
* 주체적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선차적으로 존재와 의식 간의 관계 문제가 제기되었다
주체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부터 요구한다
주체의 요구는 주체로부터 나옵니다만, 그 내막을 보면 주체의 의식에 담보되어 있습니다. 실상 주체의 의식에 담보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주체에게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바로 여기서 의식에 대한 전면적인 고찰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존재와 의식 간의 관계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실상 인간의 행동을 살펴볼 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의식을 지니고 있느냐입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타인이나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회적 의식과 계급의식을 함유하고 있느냐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보고 세계의 변화 발전에서도 의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판단하였고, 나아가 이 세상의 변화와 발전은 결국 의식의 변화와 발전이라고 바라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를 가장 잘 집대성하여 표현한 것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 의식이 중대한 역할을 한다고 하여 세계의 변화 발전이 의식에 의해서 이뤄진다면 의식만 바꾸면 될 것입니다. 허나 누구나 알듯이 자신의 의식을 바꾼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그것은 주관적 의식에 해당한 것이고, 절대정신이나 절대의식은 그렇지 않다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 또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절대정신, 절대의식은 곧 신 같은 것을 상정하는 것인데, 인간이 어떻게 신의 뜻을 알겠습니까? 설사 알았다고 한들 어떻게 개입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신의 뜻대로 이뤄지고 있으니 현실을 인정하자는 게 될 것이고, 그렇게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자는 조건에서 어떻게 사회와 역사를 발전시키는 길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존재와 의식 간의 관계 문제를 옳게 정립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 해결의 관건은 결국 존재(물질)와 의식(정)과의 관계에서 무엇이 선차적이고, 또 인간은 과연 이 세계를 옳게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냐에 대해 그 해답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의식과 존재와의 관계에서 선후차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결국 무엇을 선차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것에 의해 세상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물질, 즉 존재가 선차적이라면 물질에 의해서 세상이 움직일 것이며, 의식이 선차적이라면 의식에 의해서 세계가 변화 발전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또 의식의 문제로 인식의 가능성을 따지는 것은 이 세상을 인간의 요구에 맞게 개조 변혁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관련되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의 변화 발전 과정을 옳게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조건이라면 어떻게 세상을 개조하고 변혁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세계는 물질로 통일되어 있고, 물질 자체가 합법칙적으로 변화 발전하며, 인간은 단번에 세계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지속적인 실천 과정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실상 인간이 이 세상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실천 과정을 통해 옳은지, 그른지 검증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은 여러 실험을 통해 그 검증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곧장 파악하지 못하고 여러 번의 실천 과정을 통해 검증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세계의 변화 발전 과정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결국 존재와 의식 간의 관계에서 선후차를 어떻게 보느냐,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인간이 세상을 개조 변혁할 수 있느냐 하는 사람의 이해관계와 결부됩니다. 그것도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이해관계와 관련됩니다. 왜냐하면 존재와 의식이라는 단어는 가장 기초적이고 일반적인 개념 규정인데, 그런 논리의 전개에서 의식을 선차적으로 보거나 인간의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보면 세상을 개조 변혁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서게 되고, 반면에 물질을 선차적으로 보고 인간이 인식할 수 있다고 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인간이 개조 변혁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람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쟁이 벌어지는 철학사의 논쟁 과정을 두고 관념론과 유물론의 투쟁사라고 설명하였습니다.
허나 이것은 존재와 의식을 가장 기초적인 범주로 놓고 살펴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상 존재와 의식의 관계로 놓고 보면 존재와 의식이 가장 기초적인 범주로 됩니다. 아무리 사물의 형상이 천차만별이더라도 존재(물질)라는 개념보다 더 기초적인 범주는 성립할 수 없고, 또 수많은 생각과 관념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의식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겨레연구소 소장(준) 정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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