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보장과 체제수호를 정확히 접근해야 북미관계가 읽힌다.
(WWW.SURPRISE.OR.KR / 동녘 / 2018-08-12)

싱가포르에서의 북미 정상회동 이후, 북미 사이의 변화는 이북의 일방적인 조치만 진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수구언론이나 수구 논객들조차 미국이 너무 해주는 것 없으니 이북으로서는 섭섭할 만하다는 진단을 서슴지 않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실정이다.

누가 보더라도 미국은 현재 이북에게 해준 것이 없고 이북만 하나하나 뭔가 실행을 하는 형국이다. 이를 두고 미국의 압박이 통했다느니 그만큼 이북이 체제보장에 목숨을 건다느니, 절실하다느니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북미정상회동에서 최상위의 주문은 체제보장과 핵의 영구적 폐기일 것이다. 그런데 체제보장이라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있을 것이지만 실상 체제보장을 이북에서 요구했을 가능성은 0.0001%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체제보장 요구를 이북에서 했을 거라고 당연시 받아들이면서 북미 관계의 현 상황을 바라보니, 겉으로는 일치하는 모양세 같은데 뭔가 찜찜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이북이 일방적으로 미국이 희망하는 바를 실행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순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체제보장이라는 용어가 자의적으로 창조됐을 가능성은 물론 그것의 요구 또한 애초에 없었음을 전제로 해야 이해를 할 수 있다.

체제보장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우열적 관계를 전제한다. 보장해 줄 역량과 지위가 확고하고, 상대는 그 아래에서 은혜적인 보답을 받는 그러한 개념이다.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이북이 과연 체제보장이라는 말을 들이댔을 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게다가 체제보장이라는 것은 이북이 이야기하는 체제수호와는 결이 다른 관점이다.

체제보장이라는 것은 권력개념이 강한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즉, 체제보장이라는 것은 정치세력의 온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미국이 자신들은 김정은정권을 교체할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정치적 관점에서 체제보장을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논리 연장선이다.

그런데 이북에서 언급하는 체제수호라는 것은 권력을 앞에 전제로하는 개념이 아니라 시스템을 우선한 개념이다. 체제수호는 곧 사회주의 시스템인 것이다. 즉 인민을 위해 봉사함,,이라는 구호처럼 이북의 모든 국가시스템은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인민의 일상을 우선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주장, 혹은 형식적인 주장일지라도 그 자체를 긍정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용어다.

그 진정이나 현실성의 문제는 내가 확인할 수도 확인해줄 수도 없는 문제지만 적어도 이북의 시스템과 통치철학이 주는 형식상, 명분논리로는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 연장선에서 체제수호를 이해해야 한다.

체제보장은 정치적 관점으로 이북의 집권층에게 보내는 안위의 약속이다. 체제수호는 이북이 내부적으로 국가와 사회를 지키고 발전시켜가야 하는 당면 과제이자 권력으로서의 의무일 것이다. 미국의 도움이나 기대로 발전을 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단적인 예이다. 우리는 이북이 이야기한 체제수호를 체제보장으로 받아들여서 이번 협상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이는 심각한 기본 전제의 오류라 아니할 수 없다. 출발의 시야가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북은 왜 체제수호를 이야기했는가. 그들은 병진노선을 채택하며 갖은 고생을 했다. 그럼에도 병진노선 중에 하나를 완벽히 달성했고, 이제 남은 하나에 매진하려 한다.

알다시피 이는 핵완성으로 안보를 담보했으니 이젠 인민경제향상을 위해 전진하는, 이전보다 나은 성장단계라는 말이다. 안보가 담보됐는데 체제보장을 요구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뭔가 모순 아니겠는가!

즉 미국이 이야기하는 체제보장이라는 것은 핵무력 완성과 동시에 달성됐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이미 지어 놓은 밥을 버리고 새로 밥을 짓겠다는 것이 체제보장요구인 셈인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겠는가? 그럼에도 이북은 마치 체제보장을 위해 협상을 하는 것처럼 굴욕적인 모습으로 일방적인 조치를 연이어 실행하고 있다.

이 대목은 체제보장 요구가 사실이었구나 하는 관점을 정당화한다. 그만큼 절박했고 미국의 압박에 힘들었으니 병진노선을 위한 고생으로 힘들게 완성한 안보달성을 물리려 한다는 논리는 수구들 관점에서는 당연한 논리로 도출된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북의 권력이 양아치 권력이 아닌 이상 그러한 거래는 하수중에 최하수들이나 하는 결정이다. 과연 하수중에 하수로 세계무대에 섰다면 이북이 오늘날 핵까지 완성할 수 있는 지금의 수준까지 가능이나 했을까? 결코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여기에 관점을 회복해야 하는 당위성이 도출된다.

이북은 미국 및 우리측에서 이야기하는 체제보장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체제보장이 아니라, 체제수호를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이는 병진노선에서 경제중심논리로 변화한 전략과 한 흐름에 완벽히 부합하는 주장이다.

병진노선 중에서 핵무력의 완성으로 정치군사적인 위협 문제는 말끔히 해소되었다. 해서, 그들은 이제 두 노선 중에서 경제발전 노선만 가면 된다. 묶였던 두 다리 중에 하나가 풀렸으니 하나로 깡총깡총 뛰어도 지금까지 아장아장 반뼘씩 걸어왔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고무적인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인데 여기서 그걸 다시 포기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병진노선 중에 핵의 완성으로 체제보장 문제는 저절로 사그라들었다고 볼 것이므로 당연히 나머지 한 가지가 경제시스템의 완성문제로 귀결된다. 비정치영역의 경제문제인 것이다.

미국이나 우리측이 이야기하는 체제보장 요구는 이북의 체제수호 의지를 정치적공학적으로 접근한 개념이고 군사적인 의미가 포함된 개념이다. 하지만 이북이 주장하는 체제수호에는 이미 그 영역은 배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오직 경제시스템 발전과 사회주의의 완성이라는 남은 하나의 목표가 녹아 있는 말이 바로 체제수호인 것이다. 통치세력의 보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개념이다.

이러한 체제수호를 체제보장으로 인식하는 수준에서는 영원히 이북의 의도를 파악해내지 못하고 겉돌게 되어 있다. 남북, 혹은 북미 정상회동에서 굳이 주한미군철수 문제가 이북으로부터 거론되지 않는 이유는 이 문제의 영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군철수문제는 정치군사안보의 영역이고, 체제수호의 문제는 내부 경제적인 영역인 까닭이다. 이북이 경제제재를 완화하라는 요구는 하지만 미군철수 문제는 안 건드는 이유가 바로 다루는 영역이 다르다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북의 일방적인 여러 획기적인 조치들은 미국에 다분히 선물로 기능하는 것이고 상징적인 수준의 것들이라 보면 된다. 또 그러한 조치들을 해도 체제보장과 관련한 정치안보적인 문제는 여전히 확고히 방비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북미 관계는 미국이 주도권을 잡으면 정치군사문제가 부각되고, 이북이 중심이 되면 경제문제가 부각된다는 것을 알아야 제대로 판을 바라볼 수 있다.

잘 기억해 보자. 북미정상회동 이후 언론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 중에 하나가 중미 무역전쟁 기사다. 관세보복을 시작하며 중미간 치열하게 싸움이 시작되었다. 인터넷을 보면 한반도 화해무드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강대국들의 흑심을 알 수 있다는 반응들이 상당히 많다. 이슈를 덮으려는 것이라는 논리다. 이는 미디어정치에서 가장 기본적으로쓰는 전술이니 뭐라할 것은 못되겠지만 중미간의 무역전쟁은 북미협상의 진전과도 밀접히 연관이 있다.

체제보장은 정치영역이라 볼 수 있는데, 미국은 철저히 정치논리로 북미관계를 접근하고 싶어 한다. 이북이 가시적인 효과를 내주지 않으면 트럼프는 위험에 빠진다. 이북이 정치적인 효과를 고려해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건 트럼프가 다음 이행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고 반대를 줄이기 위한 필수선택사항이다. 이북이 일방적으로 여러 폐쇄조치들을 취하는 이유가 그런 이유다. 단지 그로인한 반대 급부는 북미 양측이 어느 정도 소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산 항공우주, 정보통신 신소재 등의 첨단 제품에 관세를 매겼다. 이것들은 대외적으로는 상징성을 갖지만 미국 국내적으로는 정치기반 제거와 물려있다. 이 산업제품들을 다루는 자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민주당 지지층이다. 그런데 관세폭탄을 당하는 기업들이 사실상 다국적 혹은 미국이 대주주인 기업이 많다. 트럼프로서는 별로 나쁘지 않은 실속을 챙길 수 있는 품목선정이다.

중국이 반발해 트럼프의 정치기반에 타격을 주려고 선택한 관세품목은 농,수산물 자동차 ,화공류, 설비 에너지 등인데 트럼프 지지기반과 밀접하다. 당연히 트럼프는 지지기반의 동요를 막기 위해 정치적인 결정을 하게 된다. 해당 산업에 대한 지원을 즉각 명령했던 것.

이걸 두고 미국의 보수 신문은 품목선정에 실패해 미국이 질 수 있다며 앓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중국은 수출다변화를 해야 할 형편이다. 중국이 수출다변화를 시도한다면 북중간의 교역은 늘 수밖에 없다.

이북이 경제발전에 매진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외부로부터 첨단기자재가 대량으로 공급돼야 한다. 이남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겠지만 실력이 안 되는 문정부로서는 미국 눈치만 보면서 개꿈이나 꾸는 신세에 머물 것이고 중국은 그 배후지로 기능을 할 운명이다.

대북제재 완화는 그렇게 중미간의 무역전쟁의 여파로 자연스레 느슨해지는 것을 방조하면서 이북의 활로를 개척할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 핑계를 대고 중국은 미국 핑계를 대면 명분은 괜찮다.

결론적으로 북미 간의 현 진전 상황은 중국을 끌어들여 미국이 제공해야 할 간접적인 경제적 댓가를 차근차근 확보하는 단계로 보면 된다. 물론 미국으로서는 비공개로 직접 댓가를 제공하고 있을 가능성이 100%다.

중미간의 관세무역 전쟁은 어차피 중국이 불리한 게임이고 백기를 들 수박에 없다. 미국의 중국공격을 빌미로 중국이 작은 나라 이북과 교류를 확대한다 해도 경제지형에서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미국에는 명분을 중국에도 핑계를 이북에는 어부지리를 가져다 주게 되어 있다.

한반도 비핵화 비용을 중국 일본 한국 등이 낼 것이라고 한 트럼프의 발언을 상기한다면 가장 맷집이 큰 중국에게 기습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중국의 역할을 작동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다음 대상은 일본인데, 미국이 싱가포르 회동 이후 일본에게 하는 대우가 급냉했다는 것을 보면 모종의 준비가 검토돼고 있는 게 틀림없다. 다만 중일 동시 자극으로 자칫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아마도 일본을 적극 활용하는 작전은 중간선거 이후에 시도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북이 요구하는 것은 일본을 활용하든 너희들이 돈을 내든 속히 진행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중간선거에서 이기려면 일본까지 빨리 끌어들여 경제적 제원이 되도록 정치력을 구사할 것이 분명하다. 이북도 선거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므로 아마도 속히 뭔가를 하라고 독려할 것이다. 미국은 그에 따라 주는 편이 정치적으로도 훨씬 이익이다.

이 거대한 동아시아의 경제판도에 따라 북미종전선언은 이루어진다. 종전선언은 정치군사 상황이다. 이북이 종전선언을 언급하는 것은 한반도에서의 문제보다 중동군사문제와 연결된 발언에 가깝고 미국에게 경제적 결행을 서두르라는 의미를 애둘러 표현한 것이다.

핵무력의 완성으로 안보 위협이 사라진 마당에 종전선언은 그저 형식적인 행위에 불과할 수 있는 영역으로 간주된다. 물론 종전선언은 남북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남은 종전선언의 참관자는 될 수 있어도 서명 당사자는 될 수 없다. 이미 남북불가침선언이 문서화한 게 수십 년 전이다. 남북 간에는 종전선언이니 핵무력 사용불가원칙이니,, 뭐든 다 형식을 갖춰 이미 마친 상태다.

더 이상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간에 할 수 있는 요식행위는 남아있지 않다. 박정희때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역대 거의 모든 정권들이 정치적 효과를 염두하여 이 같은 형식을 수도 없이 만들어 완성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이 잘 돼 있지만, 그 운용하는 사람이 문제가 되어 헌법이 욕먹고 있는 것과 같다. 남북간에는 이미 평화할애비도 만들어졌고 전쟁도 안 하기로 골백번도 더 약조했다. 그걸 문서로 수없이 만들었다. 남북은 더 이상 할 게 없다. 그저 터놓고 교류하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보다듬는 민족애로 실천만 잘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더 이상 무슨 종이에 서명할 내용이 없다. 페인트에 똥칠을 더할 뿐이다.

문재인이 결국 적폐들의 약점을 이용해 그 결집된 힘을 자기 정치력 확보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드루킹 특검을 이명박 라인으로 임명했을 때, 지난 정권시절의 것과 김경수 건을 딜하여 드루킹을 정치브로커로 낙인 찍는 것으로 종결할 모양이다. 노건평 건을 딜 했다는 루머가 사실이라면 단순 반복이니 어려운 결정도 아닐 터.

경제구조적으로 2017년 위기가 시작되고 고조된다는 분석이 여실히 적중되니 씁쓸할 따름이다. 촛불염원이 왜곡되지 않을 새로운 아지트가 필요하다. 작년부터의 주장에 사람들이 서서히 동요되고 동조하고 있다. 각자 힘을 모아 대비하자.